2장
프롤로그
“구토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생의 자의식 중에 가장 나쁜 것이다.
구토는 싸구려 모텔 하수구의 코를 찌르는 악취를 가지고 내 생을 뚫고 들어온다.
모든 사고와 모든 감각이 그것을 통해서 맛없고 무가치한 것이 된다.
쓰레기통에 넣기 알맞도록..”
새벽 4시.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크레졸과 피비린내가 뒤엉킨 역겨운 냄새.
-instep BP 110에 38, HR 정상, semicoma입니다.
-tourniquet, irrigation, atavin 준비하도록.
살을 찢는 고통에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보호자 되십니까.
-가족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언제쯤 이런겁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새벽 2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부상이 심각해서 감염의 위험이 크기때문에 응급수술이 필요합니다.
동의서에 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을까요?
-수술 후 지켜봐야 알겠지만 최악의 경우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소파 팔걸이에 앉아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이문열作 삼국지 전권과 직사각형의 상자 두 개 그리고 카드였다.
-생일 축하해요.
언젠가 말했었죠. 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던 책이에요.
내 손 때가 묻은 책장을 연희씨가 다시 넘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 책 보다는 이걸 선택했어요.
그리고 다른 건 보너스.
일과 문학을 사랑하는 연희씨에게 잘 어울릴 거에요.
언제나 많이 사랑해요.
준호.
나는 나머지 상자를 마저 개봉했다.
몽블랑 다이어리와 만연필이었다.
나는 주말이라 함께 생일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준호의 비상한 배려에 풍요와 포식을 느끼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이 후 나는 소파에서 잠들었다.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도 준호의 존재를 느끼며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
세포의 구석구석으로부터 한 방울씩 피로를 짜내듯 빠져드는 잠이었다.
그리고 어스름 속에서 춤추는 나비 꿈을 꾸었다.
나비는 풀밭 위를 사뿐히 날아다니며 춤췄다.
나비는 꽃 위에 앉았다.
바람이 불었고 점점 거세졌다.
꽃잎은 으스러졌고 나비는 바람에 떠밀려 사라져버렸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새벽 3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달은 기울고, 바람은 자고, 나는 낯선 기분을 느꼈다.
자면서 땀을 흘려 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러나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불길한 전조처럼 느껴지는 꿈 때문이었을까.
나는 생각을 회피해버렸다.
나는 일요일 아침의 늑장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대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생일날 대청소라니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나는 더러운 것들이 깨끗해지는 과정에서 일종의 행복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점심에는 지훈이를 만난기로 돼 있었다.
생일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조촐한 축하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라면 그 바쁜 녀석이 미리 식당을 예약하고
오후시간을 모두 나와 함께 보내겠다고 말할 리 없었을 테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아끼는 파란색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생일날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로맨틱한 원피스였고
준호가 제일 좋아하는 원피스이기도 했다.
봄볕은 따사로웠고 하늘의 뭉게구름은 그 모양을 금새 바꿔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 이름을 말하자 직원이 예약석으로 안내했고 지훈이 도착해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이라 그런가 특별히 더 예뻐보인다.
지훈이 반갑게 인사했다.
-고마워. 그건 아마도 이 원피스 때문이 아닐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야.
-나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할게.
지훈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쇼핑백을 내밀었다.
-여전사, 생일 축하해. 나는 로맨티스트가 못 돼서 이런 것 밖에는 생각이 안 나더라.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전권이었다.
-올해 생일에는 책 복이 넘치네.
내가 읽어야 할 목록에 포함된 책이라는 말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마워.
나는 경쾌하게 웃었다.
-누가 또 네게 책 선물을 했어?
-응. 그 사람도 삼국지를. 이문열은 아직 못 읽어봤거든.
-넌 이문열을 싫어하잖아.
-그렇지. 하지만 이문열이 삼국지를 통해 재해석한 인물에 대한 평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 쪽에 흥미가 있다고 말했더니 나에게 숙제를 선물로 주네. 너처럼...
나는 익살스럽게 말했지만
지훈은 호응하지 않고 선수를 빼앗겼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었다.
잠시 후 직원이 케익에 초를 꼽아 가지고 왔다.
-치즈케익이잖아! 김지훈에게 이렇게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감탄조로 말했다.
-넌 뭐든 정을 붙이면 오직 그것만 찾는 사람이잖아.
이 호텔 치즈케익 맛을 보면 다른 건 시시해질걸.
-감동이야. 보답할 수 있게 되길 바래.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응?
-나는 네가 좀 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더 많이 나에게 쏟아 내어주길 바래.
그러니까 만일 네가 누군가에게 감정을 퍼붓고 싶거든 내게 그렇게 해줬으면 한다.
그러면 우린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거야.
-이미 그런 거 아니었어 우린?
-음.. 그러니까..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난 뒤부터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겨버린 것 같아서
조금은 섭섭한 마음에 하는 신사적 충고라고 이해해줘.
-뭐야!
하면서 나는 경쾌한 조롱조로 말하며 웃어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지훈이 마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가장 부드럽고 정당한 표현을 택하려고 애쓰는 것 같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하자면’하는 태도가 나를 점점 긴장하게 만들었다.
프롤로그
“구토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생의 자의식 중에 가장 나쁜 것이다.
구토는 싸구려 모텔 하수구의 코를 찌르는 악취를 가지고 내 생을 뚫고 들어온다.
모든 사고와 모든 감각이 그것을 통해서 맛없고 무가치한 것이 된다.
쓰레기통에 넣기 알맞도록..”
새벽 4시.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크레졸과 피비린내가 뒤엉킨 역겨운 냄새.
-instep BP 110에 38, HR 정상, semicoma입니다.
-tourniquet, irrigation, atavin 준비하도록.
살을 찢는 고통에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보호자 되십니까.
-가족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언제쯤 이런겁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새벽 2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부상이 심각해서 감염의 위험이 크기때문에 응급수술이 필요합니다.
동의서에 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을까요?
-수술 후 지켜봐야 알겠지만 최악의 경우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소파 팔걸이에 앉아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이문열作 삼국지 전권과 직사각형의 상자 두 개 그리고 카드였다.
-생일 축하해요.
언젠가 말했었죠. 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던 책이에요.
내 손 때가 묻은 책장을 연희씨가 다시 넘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 책 보다는 이걸 선택했어요.
그리고 다른 건 보너스.
일과 문학을 사랑하는 연희씨에게 잘 어울릴 거에요.
언제나 많이 사랑해요.
준호.
나는 나머지 상자를 마저 개봉했다.
몽블랑 다이어리와 만연필이었다.
나는 주말이라 함께 생일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준호의 비상한 배려에 풍요와 포식을 느끼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이 후 나는 소파에서 잠들었다.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도 준호의 존재를 느끼며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
세포의 구석구석으로부터 한 방울씩 피로를 짜내듯 빠져드는 잠이었다.
그리고 어스름 속에서 춤추는 나비 꿈을 꾸었다.
나비는 풀밭 위를 사뿐히 날아다니며 춤췄다.
나비는 꽃 위에 앉았다.
바람이 불었고 점점 거세졌다.
꽃잎은 으스러졌고 나비는 바람에 떠밀려 사라져버렸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새벽 3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달은 기울고, 바람은 자고, 나는 낯선 기분을 느꼈다.
자면서 땀을 흘려 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러나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불길한 전조처럼 느껴지는 꿈 때문이었을까.
나는 생각을 회피해버렸다.
나는 일요일 아침의 늑장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대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생일날 대청소라니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나는 더러운 것들이 깨끗해지는 과정에서 일종의 행복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점심에는 지훈이를 만난기로 돼 있었다.
생일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조촐한 축하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라면 그 바쁜 녀석이 미리 식당을 예약하고
오후시간을 모두 나와 함께 보내겠다고 말할 리 없었을 테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아끼는 파란색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생일날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로맨틱한 원피스였고
준호가 제일 좋아하는 원피스이기도 했다.
봄볕은 따사로웠고 하늘의 뭉게구름은 그 모양을 금새 바꿔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 이름을 말하자 직원이 예약석으로 안내했고 지훈이 도착해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이라 그런가 특별히 더 예뻐보인다.
지훈이 반갑게 인사했다.
-고마워. 그건 아마도 이 원피스 때문이 아닐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야.
-나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할게.
지훈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쇼핑백을 내밀었다.
-여전사, 생일 축하해. 나는 로맨티스트가 못 돼서 이런 것 밖에는 생각이 안 나더라.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전권이었다.
-올해 생일에는 책 복이 넘치네.
내가 읽어야 할 목록에 포함된 책이라는 말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마워.
나는 경쾌하게 웃었다.
-누가 또 네게 책 선물을 했어?
-응. 그 사람도 삼국지를. 이문열은 아직 못 읽어봤거든.
-넌 이문열을 싫어하잖아.
-그렇지. 하지만 이문열이 삼국지를 통해 재해석한 인물에 대한 평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 쪽에 흥미가 있다고 말했더니 나에게 숙제를 선물로 주네. 너처럼...
나는 익살스럽게 말했지만
지훈은 호응하지 않고 선수를 빼앗겼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었다.
잠시 후 직원이 케익에 초를 꼽아 가지고 왔다.
-치즈케익이잖아! 김지훈에게 이렇게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감탄조로 말했다.
-넌 뭐든 정을 붙이면 오직 그것만 찾는 사람이잖아.
이 호텔 치즈케익 맛을 보면 다른 건 시시해질걸.
-감동이야. 보답할 수 있게 되길 바래.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응?
-나는 네가 좀 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더 많이 나에게 쏟아 내어주길 바래.
그러니까 만일 네가 누군가에게 감정을 퍼붓고 싶거든 내게 그렇게 해줬으면 한다.
그러면 우린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거야.
-이미 그런 거 아니었어 우린?
-음.. 그러니까..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난 뒤부터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겨버린 것 같아서
조금은 섭섭한 마음에 하는 신사적 충고라고 이해해줘.
-뭐야!
하면서 나는 경쾌한 조롱조로 말하며 웃어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지훈이 마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가장 부드럽고 정당한 표현을 택하려고 애쓰는 것 같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하자면’하는 태도가 나를 점점 긴장하게 만들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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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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