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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must go on - 12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32 592회 0건
저녁에 준호는 연희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차를 대고 기다렸다.
창문을 반쯤 열었다.
저녁 공기는 제법 쌀쌀해져 있었다.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새가 날고 있었다.
바람이 새를 떠받들 듯이 준호를 들고 앞으로 보내는 말할 수 없이 강한 행복감이
준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너의 생을 구멍 뚫린 장화처럼 내던질 용의가 있던 네가
하루를 생의 찬가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에 검정색 빅백을 매고 몇 권의 책을 겹쳐서 든 연희가
총총걸음으로 아파트 현관문을 통과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준호는 빠른 동작으로 차에서 내려 가방과 교재를 받아 들었다.
연희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어젯밤의 고백 때문일까) 라고 생각하며 준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연희의 몸이 우아하게 차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연희는 준호를 자기의 집으로 초대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장을 보았다.
-와인 좋아하세요?
준호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마실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싫어하진 않아요.
-우리 와인 마셔요.
저는 가난한 학생이라 비싼 와인을 대접할 능력은 안 되지만
향이 꽤 깊은 저가의 좋은 와인을 알고 있거든요.
준호는 짝사랑이라는 외로운 투쟁에서 막 해방된 남자의 모범적 예를 보이며 들떠 있었다.

연희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식탁에 앉아 바라볼 때에도
준호의 기막힌 명랑함은 계속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여자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라고 준호가 노래를 부르듯 리듬감 있게 외쳤다.
-롱펠로우!
연희가 준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활짝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연희씨는 모르는 게 없네요!

연희가 준호를 위해 만든 스파케티가 완성되었고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준호가 Grey Syrah를 오픈했다.
코르크 마개는 자기 살을 서서히 파고드는 오프너의 강한 힘에 밀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섹시해요.
연희가 깍지 낀 손을 턱에 받치고 말했다.
-네?
준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준호씨 말고 와인병이 오픈되는 소리가 그렇다구요.
연희는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연희씨는 나를 항상 주눅 들게 해요.
-모를거에요. 내가 얼마나 복종하기를 좋아하는지를!
나는 아주 부드럽게 있고 싶고 명령받는 것을 얼마나 좋하하는지 몰라요.
-에이 그거 거짓말 같아요.
라고 준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연희씨의 상상에 불과한 걸거에요.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은 후유증인가?
연희씨는 그처럼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잖아요.
-그래야 하니까요.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필연에 의해서죠.
사람들은 서연희는 현대적이고 해방된 여자의 모범적인 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주체적이고,
남자처럼 사고가 명료하고 남자처럼 대담하게 생을.. 아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건 모두 나의 일부분에 불과해요.
나는 불가피한 것에 대한 강한 감각이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것은..
연희는 여기서 말을 마치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준호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나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아주 허술해요.
연희는 이렇게 이어서 말하며 조금 웃었다.
-나도 결혼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어하는 보통 여자의 하나에 불과해요.
-연희씨는 결혼을 열 두 번이라도 하려면 할 수 있지 않았어요?
라고 준호는 조금 반박하듯 말했다.
연희는 잠깐 어두운 시선을 준호에게 던지더니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나의 재능을 종종 저주했어요.
나는 결혼해서 애를 낳고 가구의 먼지를 닦고 마당에 빨래를 널고..
하는 여자들 하고 나를 백 번이나 바꾸고 싶었어요. 왜 웃어요?
-욕심쟁이
준호가 사랑스러움을 담아 대꾸했다.
-당신은 이기적이에요
연희가 즉시로 응수했다.

준호는 연희가 이렇게도 갑자기 우울한 열정의 모습으로 돌변해 하는 도발에
순간적으로 매혹을 당했다.
준호는 연희와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연희가 수다를 떨고 있다.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와인을 함께 마시고
지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서 나에게 화를 낸다.
저 수다스럽고 뾰로통한 입술에 키스를 퍼붓고 싶다. 지금의 이 여자를 온통 갖고 싶다)

준호가 일어나 연희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연희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에로틱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것은 준호가 곧 자기에게 어떻게 할지를 아는 마음에서였다.
준호는 연희를 소파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붉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연희의 밖은 죽은 듯 고요했고 안은 요동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가 연희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연희는 눈을 감았다.

준호와의 첫 경험 후 결합을 회피해 온 것은 연희였다.
그러나 연희의 속에서는 준호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맛에 대한 그리움과 두려움이
오랜 시간 동안 심한 투쟁을 거듭해 왔다.
연희는 곧 생겨날 맹렬한 폭발이 누군가에게 갇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부터 해방되는 것임을 알 수 없었다.

연희는 준호의 섬세한 손가락이 원피스 앞 단추를 순서대로 끄르는 것을
마치 꿈의 연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으로 느꼈다.
이윽고 연희는 알몸이 되었다.
부드러운 달빛에 비친 연희의 몸은
갓 태어난 아기의 새로운 육체처럼 윤기 있고 애처로웠다.
(어쩌면 이렇게 완전한 육체인가) 라고 준호는 생각했다.
준호는 숨을 쉴 때 마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연희의 가슴과 배와 은은한 불빛에 어린 실루엣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연희는 어둑한 스탠드의 불빛이
자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준호는 연희가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흥분하여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자기를 만끽했다.

준호가 자기의 벗은 몸을 내버려 둔 채 가만히 보고만 있자
연희는 점점 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손으로 양 팔을 감싸며 움츠러들었다.
준호는 이런 모습의 연희를 당장 가지고 싶어졌다.
준호는 거침없이 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무자비한 약탈자처럼 연희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연희는 아랫배를 꽉 채워오는 포만감에 참지 못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연희는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랑으로 결합된 육체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를.
준호가 모든 것을 쏟아내자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는 잦아들었다.

준호가 연희를 안아 침실로 데리고 가 뉘였다.
두 사람은 모로 누운 자세로 마주보고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연희의 눈은 피곤하고 흐려졌으나 그것은 달콤한 긴장의 이완과도 같았다.
-졸려요. 그런데 자고 싶지가 않아요.
연희가 준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준호는 이번에야 말로 부드럽고 끈기 있는 공격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매혹은 다시 돌아왔다.
연희와 준호는 샤워조차 하지 않은 몸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
연희의 색깔와 준호의 색깔이 섞였다.
섞인 색깔은 마블링이 되었다.
마블링은 두 사람의 옅고 짙은 신음에 이리저리 휘어지며 춤췄다.
무수한 종류의 감각이 차례대로 부드럽고 강렬하게 연희를 덮쳤다.
연희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스러운 황홀함에 경련했다.

준호는 일그러진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외쳤다
-사랑해요!

연희와 준호는 그쳐지지 않을 사람들 같았다.
두 사람은 네 번이나 사랑을 나누고 온 몸의 에너지를 전부 소진하고 난 뒤에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연희가 눈을 떴을 때 준호는 이미 깨어있었다.
준호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연희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연희는 그 시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사랑스러움에 겨워있지만 동시에 너무도 아까워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하는 시선이었다.
-언제 일어났어요?
-한참 전에요
준호가 엷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연희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며 덧붙였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내가 연희라는 사람을 완전하게 가진 것이.
-나도 믿어지지 않아요. 나는 내가 느낄 수 없는 여자인 줄 알았어요.
나는 섹스 따위는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여자였어요.
그런데 준호씨는 묘한 힘을 가졌어요. 그것은 강한 힘이었어요.
마치 눈에 안 보이는 준호씨의 어떤 힘이 나를 붙들어 순종하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이것은 내가 준호씨를 좋아해서일까요?

연희가 이렇게 말하자 준호의 얼굴이 희미하게 만족으로 번졌다.
-아니요. 내가 연희씨를 사랑하기때문이에요. 아직은 내가 더 많이 사랑해요.
그리고 연희의 볼을 약하게 꼬집듯 잡고는 덧붙여 말했다.
-당신은 냉소주의가 안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본래 밝고 다정하고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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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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