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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15 885회 0건




148. 다시 토론토로



[1]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늦게까지 잠을 잤다. 나중에 나와 최은희는 잠에서 깨어나기는 했어도,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장난을 치고,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휘발유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또 한번 불을 피워버린 것이다. 우리는 기진맥진해졌다. 배가 너무 고파서라도 호텔을 나가야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피임 문제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밤에 최은희가 나에게 생리대를 보여주면서까지 나를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나에게 불안한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다.

최은희가 샤워를 하고 나서 옷을 입다가 나를 불렀다. 당장 생리대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제 밤에 내가 자기한테 보여준다고 자기 침대에 갖다 놨거든. 빨리 좀 가져올래?"
"급해?"

"어. 지금 터지네."



나는 생리대를 찾아서 들고 최은희에게 갔다. 그녀는 지금 티슈를 대고 있다면서, 나에게서 생리대를 받아서 들고 욕실로 사라진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
우리는 짐을 챙겨서 프론트로 내려갔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차에 실었다. 운전은 내가 하기로 했다. 우리는 차에 올랐다. 차 안은 완전 냉골이다. 우리는 가볍게 키스하고,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히터가 빨리 들어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급한 것은, 우선 뭐라도 먹는 것이다. 12시가 거의 됐으니까 문을 연 식당은 많다.

나는 어제 내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해변에서 본 레스토랑을 생각해냈다. 차를 출발시키고, 항구 쪽을 향하여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최은희는 가까운 곳에서 대충 먹자고 한다.



"이제 자기가 여기를 나보다 더 잘 아네? 여기서 멀어?"
"아니야. 공단 끝에서 얼마 안걸려. 15분?"



항구에는 공단 지역이 있다. 그 다음은 공원이고, 거기서 호수로 향하는 길로 좌회전을 한다. 레스토랑은 바로 그 길 끝에 있다.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레스토랑 입구로 걸으면서 나는 최은희의 손을 잡는다. 우리는 입구 옆에 있는 메뉴표를 들여다본다.



"와아아. 자기야, 여기 엄청 비싸네."
"그래? 그 대신 맛은 있을 것 같아. 어제 오후에 보니까 꽉 찼더라."

"에이. 그냥 들어가자. 배가 너무 고파."




배고프다는 말을 하면서 최은희가 웃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조금 일찍 왔는지, 홀에 사람들은 별로 없다. 최은희는 생선 훈제 요리를, 나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같이 나누어 먹기다."
"고기랑 생선이랑 같이 먹는다고?"

"나는 잘 먹거든. 혼자 다 먹지마."




최은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방을 메고 화장실로 간다.



"자기야. 지금 수정이한테 전화해."




나는 밖으로 나와서 한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일어났어?"
"아니. 식당에 왔어."

"일어나서 바로 전화하라니까?"
"늦잠 자는 바람에, 체크아웃을 12시까지 하라고 해서."

"언니 기분 어때? 우울해하지 않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어제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아. 지금 옐로우나이프니?"

"아직. 비행기 시간이 멀었어. 우리도 점심 먹는 중이야. 오늘 들어가서, 오늘 밤에 바로 봤으면 좋겠는데 .."

"기왕에 거기까지 갔는데, 너만 바쁘지 않으면 서두르지 마. 우리는 출발을 늦출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아무래도 한 번은 꼭 보고 가야겠지? 기다려. 지혜가 바꿔달랜다."




금방 지혜의 목소리로 바뀐다.



"오빠. 이제 일어났다며? 잘 잤어?"
"어 지혜도 잘 잤니?"

"전기장판으로 찜질한 것처럼 잘 잤어. 누구 꿈 꿨어? 나 아니면 수정언니?"
"둘 다."

"뭐?"
"아니라고"

"뭐라는 거야? 둘 다? 아니면 둘 다 아니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아픈 데는 없지?"

"지금 헷갈려서 머리 아픈 것 빼고는. 하하."
"언니가 바쁜데도 어럽게 시간을 냈으니까, 언니한테 예쁨 받아라. 괜히 말썽 부려서 언니 속 썩이지 말고,"

"하이고오. 안 그래도 언니가 너무 예뻐해줘서 미치겠다. 하하."
"아무래도 언니가 착하니까."

"그럼 나는? 나는 안 착해? 아아. 언니가 지금 나 째려본다. 언니 바꾼다."




다시 한수정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보고 지혜 예뻐하라고 협박한거니?"
"내가 협박하면, 먹혀들어가기는 하고? 잘 있다가 와."

"아프지 말고, 언니 우울해하지 않게 잘 좀 해줘라. 부탁한다."



우리는 오늘 앞으로 있을 일들을 이야기 하고 통화를 끝냈다.


어제, 그리고 오늘, 한수정은 나에게 최은희를 부탁하는 말을 여러 번 한다. 그래야 할 만큼 내가 미덥지 못 하겠어서인가? 최은희가 경험한 사건 때문에, 너무 딱해 보이는 최은희의 모습이 한수정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일까? 그런데 한수정의 말은 마치 그녀가 어딘가 멀리 떠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혹시 과제나 논문 때문에 장기간으로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아닐까?




[3]
내가 홀 안으로 들어서니까, 최은희는 벌써 자리로 돌아와서 앉아 있다. 우리 테이블로 음식도 놓인다. 메인디쉬와 샐러드들이 나온다. 나와 최은희는 마주보고 웃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마치 생존을 위한 결전의 시간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

최은희는 자기 접시에 있는 생선을 잘라서 가시를 들어내고 몸통 조각을 내 접시로 옮겨놓는다.



"먹어봐."



나도 내 스테이크 한 조각을 넘겨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스테이크는 자주 먹는 거잖아."



그녀는 식사 도중에 이맛살을 찌푸린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그녀는 그냥 고개를 젓기만 한다.



나는 마주 앉은 최은희의 모습에 압도된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한수정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녀들이 나를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랑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뭔가 뒤바뀐 느낌이다.

한수정의 지배력 앞에서는 내가 두려움과 위압감을 느낀다. 말 그대로 막강한 퀸의 포스이다. 그렇지만 최은희의 포스는 나에게 전혀 엉뚱하게도 애잔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마치 봄처녀 같다. 두껍고 긴, 그래서 지루한 이 겨울의 끝 무렵에 언젠가 나타나서, 이 세상을 부드럽게 품에 안고, 모든 생명에게 이제는 드디어 시작의 첫발을 내디디라는 사인을 던질 그 봄처녀가 최은희의 모습에서 떠오른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전에는 한수정이 봄처녀이고, 최은희가 퀸이었을 것이다. 강직하던 최은희는 마치 봄동이처럼 한없이 여려보이고, 철모르는 사춘기 소녀와도 같던 한수정은 이제는 대차고 강단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 겨울에 강한 여인과 여린 여인이 내 마음 속에서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섰다. 벌써 2시이다. 겨울이라서 일찍 어두워진다. 우리는 토론토로 돌아가기로 했다. 최은희는 엄청 아쉬워한다.



"우리도 관광 좀 하면 안 돼?"
"나는 아직 관광할 정도로 나이를 먹지 않아서 .."

"관광에 나이가 따로 있어? 여기 해밀턴에도 볼만한 것 많아. 나이아가라 폭포도 안 멀은데 .."
"추운데 무슨 폭포야? 거기는 나중에, 여름에 가요."

"여름에 자기가 여기 오기나 해?"
"글쎄. .. 올 일이 있으면, 여름, 겨울 따지지 말고 와야지?"

"자기는 구경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해?"
"지금은 누나만 보면 돼. 내 옆에서 매력발산을 하니까."

"아이. 참. .. 내가 무슨 볼거리라고 .."
"볼거리라고 안 했거든. 매력덩어리라니까."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4]
나는 토론토로 바로 출발하자고 했고, 최은희는 더 놀다 가자고 했다. 이상하게 토론토의 호텔 방이 더 그립다. 내 집도 아닌데.

최은희가 고집을 꺾는다. 그 대신 우리는 토론토에 도착하면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고속도로로 달렸다. 가는 길에 최은희는 기분이 좋은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가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한다. 토론토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녀가 꾸벅거리면서 졸고 있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그녀를 깨웠다.



"누나 다 왔어요."
"아이. 참. 식곤증인가?"

"그럴 거면서 무슨 관광? 집에 가서 쉬세요. 몸살 나겠다."
"나 하나도 안 피곤해. 배고프다가 먹어서 그래."



이번에도 나는 최은희에게 양보하지 않고, 바로 그녀의 집으로 가자고 우겼다. 그녀는 내 고집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밤에 무리했나봐. 생리통도 조금 있기도 하고 .."




최은희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나는 최은희의 집 앞으로 가서 차를 주차했다.




"같이 올라가자. 아직 우리 사는 집은 구경도 안 했잖아. 나랑 수정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니?"
"그럼 뭐라도 하나 사들고 가야 .."

"아이. 참. 그런 소리를 왜 하는? 나중에 수정이 오면, 우리가 초대할거야. 그 때 해도 되잖아. 오늘은 그냥 올라가서 커피나 나시고 가."
"그래요. 차라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 보다 그게 좋겠네."




최은희는 나를 데리고 그녀의 아파트로 올라갔다. 그녀는 보일러를 올리고, 커피 메이커에 커피를 얹는다. 나에게 키스를 하고나서, 옷을 갈아입겠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저 쪽에 문 열린 방 두 개가 수정이 방이야. 거기부터 가보세요."



거실을 둘러보니까 수정이네 가족사진, 그리고 최은희네 가족사진도 걸려있다. 그런데 수정이가 지난번에 살던 집에 걸려있던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진에는 나와 수정이가 같이 나와있었다. 나는 거실과 주방, 욕실 그리고 베란다까지 둘러보았다.

수정이의 방은 문이 열려있다. 안을 들여다보니까 아직 짐을 다 풀지 않은 것 같다. 박스들이나 여행가방들이 그대로 있다. 수정이가 저럴 정도로 게으른 여자는 아닌데 .. 이사해놓고 짐도 풀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는 말인가? 아니면, 여기서 또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서 짐을 싸놓았나?

그녀들은 이 건물의 8층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저 아래로 도로와 주차장, 그리고 겨울 숲이 보인다. 오늘은 하늘이 맑고 푸르다. 가벼워 보이는 하얀 구름이 조금 떠있다.

내가 서울에서 한수정이나 최은희가 생각나고 보고 싶을 때에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구름에 덮인 하늘도, 맑고 푸른 하늘도, .. 나는 하늘을 보면서, 한수정이나 최은희가 보고 싶다는 내 마음을 하늘에 대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 여기서 보는 하늘은 누군가가 그리워서 보는 하늘이 아니다. 나 말고도 저 하늘을 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하늘은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일까?


수정이의 침실과 작업실을 둘러보고 나오니까 최은희는 자기 방도 구경하란다. 그녀의 성격대로 깨끗하고 단정한 방이다. 그녀는 나를 창가에 있는 소파로 가라고 하고, 자기도 커피를 들고 왔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이 집 월세는 엄청 비싸겠다. 집도 깨끗하고, 위치도 좋고, 거실도 넓직하고, 방도 네 개나 되네."
"그렇지 뭐."

"수정이 방에 아직 그대로 있는 박스들 봤어?"
"어. 짐을 아직 안 풀었나?"

"바쁘다고 저렇게 하루하루 미루고 있어."
"그런데 이번에 지혜 데리고 엘로우나이프에 갔다고?"

"그러니까, 나도 걔 마음을 잘 모르겠어. 평소에 안 그러던 애가 자기 오니까 갑자기 저러네. 자기가 봐도 쫌 이상하지?"

"글쎄 .. 아직 수정이랑 그런 얘기는 안 해서 나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생각도 안하고 있던 오로라가 왜 지금 갑자기 보고 싶은지. 왜 자기는 두고 지혜만 데리고 갔는지, 왜 자기를 나랑 해밀턴에 보내는지, .. 우리 영원이 일도 자기랑 나랑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 우리 둘이 같이 있으면 지난 번처럼 그런 일이 또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을텐데 .. 하여간에 알 수 없는 애야. 모르겠어."

"생각하지 말자. 알아서 하겠지."
"자기보고는 뭐라고 했는데?"

"누나 우울해하지 않게, 누나한테 잘 해주래."
"하아. .. 작년 가을에 우울증 걸렸던 얘기구나. .."

"지금은 괜찮아졌고?"
"아직 마찬가지야. 그렇게 쉽게 금방 없어지나? 임신이라는 것이 사람을 확 뒤집어서 바꿔놓네. 나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라니까. 어제 오늘 자기랑 같이 있으면서는 그런 일이 아직 없으니까, 앞으로는 두고 봐야지."




나는 최은희의 손을 잡았다. 최은희도 손깍지를 낀다. 나는 그녀의 어깨로 팔을 둘렀다. 최은희는 아예 나에게 안긴다. 나도 그녀의 몸을 안았다. 우리의 얼굴이 포개진다. 우리의 입술도 포개진다. 나는 최은희의 입술에 키스했다. 최은희도 내 입술과 혀를 빨았다.

그런데 최은희가 갑자기 얼굴을 들고 내게 묻는다.



"뭐야? 자기 호텔로 가려고 키스하는 거니?"
"어떻게 알았어? 완전 쪽집게네."

"가서 혼자 뭐하게? 이제 겨우 4시인데."
"한숨 자고, 나중에 저녁 먹으러 나가자."

"여기서 자면 안 되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짧기만 하고, 소라스럽지도 않죠? 죄송해요.
오늘 쫌 바빠서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에 또 ..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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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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