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앞에 이야기에 댓글을 써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물론 댓글 안쓰신 님들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2) 이번 글은 소라스럽거나 야한 내용이 절대 아닙니다. 공연히 미리부터 그런 기대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엄청 걱정돼서요. 어느 독자님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지만, 특히 그 분들 ..ㅋㅋ..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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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우와의 첫 키스
[1]
영철이가 해외로 도피한다는 말을 하고 난 후에, 내 마음은 끝없이 허탈하고 공허해진다. 너무 외롭고 고독함을 느낀다. 아마도 오래 사귄 커플이 깨지면 이런 마음일까? 도대체 내가 학교를 휴학하기까지 하면서 웰빙 라이프에 이토록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허무해진다. 의욕을 잃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마약에 손을 대기라도 해야 할 입장이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직원들 때문이다. 특히 아줌마 부대.
그녀들은 아침에 나타날 때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해맑은 모습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들은 수다를 떨면서 제일 먼저 자기 남편들의 잘못을 들고 나온다. 처음에는 험담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꼭 칭찬으로 끝난다.
애들 얘기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40대인 아줌마들은 애들이 중2병에 걸렸다고 엄청 속상해 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누구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걸그룹 흉내만 낸단다.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라고 학원을 보내면, 차라리 실용음악 학원에 가겠다고 떼를 쓴단다. 그렇게 속 썩이는 자식 얘기를 하면서도, 나중에는 무슨 예쁜 짓을 했다는 둥 하면서 꼭 칭찬으로 끝낸다.
욕먹을 짓을 백 가지를 했어도 칭찬 받을 일 한두 가지만 하면 그것으로 다 용서가 되고, 끓어올랐던 자기 마음도 치유가 되는 모양이다. 저것이 사람 사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살이에서 백 번을 속고 억울해하고 답답해 하면서도, 어쩌다 한번 웃으면 다 잊어버리는 .. 나도 황영철로부터 받은 충격을 떨치고, 일에 열중해보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녀들과 대화를 하면서 웃기도 한다.
나는 그녀들과 잠시 커피 타임을 갖고, 그녀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를 다스리려는 노력을 한다. 내가 내 일을 소홀하게 해서 저 아줌마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이 될까? 아줌마 한명 한명을 만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는다.
[2]
영철이는 그 몸을 하고도 동분서주 하면서 배추를 구하러 다닌다. 그는 해리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해리는 나에게 더 이상은 혼인 신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해리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하다. 다음에는 해리가 또 어떤 카드를 들이 밀을까?
황영철은 내 말에 따르기로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황영철의 문제에 대하여 이메일을 썼다. 아버지께 해리의 오빠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해리는 지난 번에 미국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지만, 황영철은 아직 아버지를 모른다. 아버지는 내게 승낙을 하셨다.
아버지는 한국에 있는 현화그룹의 이사이고, 미국에 있는 미주 지사의 지사장이다. 황영철을 먼저 한국에 있는 현화그룹에 특채로 입사를 시키고, 그룹에서는 그 직원을 미주 지사로 파견 보내는 형식으로 해서 체류 허가를 받도록 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이 일로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내가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고 회사에 매달려 있다는 말을 해버렸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엄청 화를 내셨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망가진다면서, 추석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신 엄마를 당장 귀국하라고 하셨다.
원래 아버지는 나에게 미국에서 공부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싫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국에 있는 중이다. 내가 이 약속을 어기면 아버지는 언제든지 나를 미국으로 불러가도록 되어있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진짜 죽기보다 더 싫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께서는 부랴부랴 귀국하셨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나와 만나자마자 나를 나무라셨다.
"오피스텔 정리하고 당장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 정말 죄송한데요. 저기에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20억이거든요?"
"아니. 대학생 주제에 그 큰 돈을 어디서 끌어다가 그 난리를 부려? 너 진짜 정신 안 차릴래?"
"앞으로 1년만요. 내년 연말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아버지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일이 이렇게 돼 버린 것을 어쩌겠어? 그건 알았으니까, 당장 집으로 들어와."
"내년에 그렇게 할게요. 당장은 말고."
"에휴. 내가 너를 무슨 재주로 이기겠니."
어머니는 나에게 져주신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귀국하셨다는 말에 해리가 엄청 좋아한다. 해리는 당장 그 날 저녁에 우리 엄마에게 왔다. 우리 엄마도 해리를 고딩때부터 알기 때문에, 또 우리 집에 딸이 없어서, 마치 친딸처럼 엄청 귀여워하신다. 해리가 어머니 앞에서 애교를 부리면, 어머니는 그냥 녹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어머니와 해리는 주방에서 설거지 한다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는 과일을 들고 소파로 왔다. 그 때 나는 내 방에서 데스크탑 컴퓨터로 사이트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방 문을 열어놓고 있어서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훤히 다 들린다.
"어머니. 윤하오빠는 왜 혼인 신고를 안 하려고 할까요?"
"해리야. 혼인신고는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하거든.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혼인 신고를 해? 혹시 나 없는 사이에 윤하가 비밀 결혼이라도 했니?"
"그게 아니라 순서를 바꿀 수도 있잖아요? 결혼식을 나중에 올리고, 그 대신 혼인 신고는 먼저 하고 .."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도 해. 그렇지만 그 것은 이혼이라는 문제가 있어서 별로 좋지는 않거든. 그런데 윤하가 왜 혼인신고를 한다는 거야? 누구랑?"
"어머니. 아직 모르세요? 나랑 윤하오빠랑 결혼할건데요."
"뭐야? 해리 너도 참. 사람 놀라게 하기는."
"어머니. 진짜거든요. 우리 집에서는 윤하오빠한테 완전 사위 대접을 하는데요?"
"해리야. 결혼이라는 것은 말이지. 그러니까 남자나 여자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 ."
"나보고 졸업을 안 했다고, 결혼 안 한다는 것은 핑계죠? 아직 사랑이 없나?"
"졸업은 윤하도 안 했거든? 결혼 하는데 졸업이 무슨 상관이야? 학교에도 졸업할 때쯤 되면 결혼한 부부 학생들 있잖아? 우리 때는 꼭 있었는데, 요새는 없나?"
"왜 없어요? 지금 우리 과에도 3학년이 결혼해서 임신한 여자도 있는데요."
"그럼 해리 너도 순서를 바꿔봐. 먼저 결혼부터 생각하지 말고, 사랑을 먼저 생각해봐."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빠가 나를 고딩 때부터 알았잖아요. 지금도 내가 아직 그 때처럼 어려 보이나 봐요. 도대체 나한테는 기회를 안 주는 거예요. 다른 여자들이랑은 할 짓, 안 할 짓 다 하고 다니면서. 이번에 내가 나가서 한 3년 있다 들어오면 어떻겠어요? 아마 아들 딸 몇은 거느리고 있을걸요?"
"아니. 해리 너 지금 뭐라는 거야? 윤하가 여자랑 이상한 짓거리 하고 다닌다고?"
"어머머. 모르셨어요?"
"그럼 쟤가 여자랑 자러 다니고 그러니?"
"어머니. 그게 한두 명이랑 그러면 내가 이런 말을 왜 하겠어요? 젊고 한참때니까 잠시 객기 부리나 보다 하고 넘어가죠."
"여자랑 어디 가서 자는데? 모텔?"
"모텔에도 물론 가겠죠. 그런데 지금 오피스텔에서도 잘 것 같은데요."
"아니. 학교에서 밤샘하는 날이 많다고, 학교 가까이에 있는 오피스텔을 사달라고 워낙 졸라대서 사줬더니, 거기로 여자를 끌어들여서 살림을 차렸다고?"
"오빠가 그러는데, 요새는 실기가 없고, 이론 수업이 많아서 학교에서 밤샘하는 일이 없대요. 더군다나 지금은 휴학하고 사업하는데, 굳이 학교 가까이에서 살아야 할 필요도 없거든요?"
"뭐라고? 내 이 녀석을 그냥. 야! 최윤하! 너 당장 짐 싸서 집에 들어와. 그 오피스텔 팔아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내 말 안 들으면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 할거야."
"어머니께서 또 미국으로 가시면, 여기라고 괜찮겠어요?"
"아니야. 나 이번에는 미국에 바로 안 들어가. 한참 있을 거야. 그럼 되겠니?"
"어머니께서 그렇게만 해 주시면 훨씬 안심이죠."
"어이구우.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저 아들녀석이 어쩜 저렇게 아버지를 빼다 박았는지 .."
"예에? 아니 그럼 아버님께서도 바람둥이? 앗! 어머니 죄송해요. 말이 잘못 나갔어요. 갑자기 저한테 유체이탈이 .. 이러면 안 되는데. .."
"뭐. 다 알아버렸는데, 이제 숨겨서 뭐하겠니? 내가 우리 해리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저 녀석이 속을 썩이면, 혼자 속 상해 하지 말고,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알았지?"
"예에. 어머니. 제 편에 서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어머니께서도 우리 결혼에 찬성하시죠?"
"윤하랑 네가 서로 좋고 사랑해서 하는 결혼인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니? 이렇게 예쁘고 착한 우리 해리가 며느리로 와준다면 나야 고맙지. 하늘이 두 쪽 나도, 나는 항상 우리 해리편이거든. 하하."
해리 때문에 진짜 돌겠다.
그렇다고 해리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
이제 보니까 여우는 해리가 진짜 완전 여우다.
그것도 꼬리 아홉개짜리 여우.
해리가 어머니에게 아홉개의 꼬리로 애교를 부리면서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나는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동숭동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오게 된다. 그 대신에 어머니는 내가 웰빙을 하는 것을 아버지께는 비밀로 해주시기로 약속을 하신다.
그래도 나는 박혜주의 아파트, 윤은경의 아파트, 신예진의 원룸, 또 김하늘과는 모텔에 간다. 그 대신 외박은 절대 하지 않고, 늦더라도 집에는 꼭 돌아온다.
[3]
우리는 방문자들을 끌기 위하여 엄청 노력을 해야 했다. 일일 방문자 수가 우리는 10만을 넘은 상태이지만, 여우네는 20만에 가깝다.
어느 날 박혜주가 아이디어를 냈다. 웰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웰빙 식품에 대해서 머리를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직접 농작물을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유기농 식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를 찾는다.
그런데 이런 가게들은 주로 길거리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다. 그들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얼마 안 되는 농작물이나, 또는 그 농작물로 조리한 식품들을 소량으로 판매한다. 또 이런 가게들은 주로 단골 거래처들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먼저 아줌마들이 입소문을 찾아서 이런 가게들을 찾아내고, 직접 방문을 한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 사이트를 소개하고, 그들의 식품을 우리가 대신 판매를 해 주는 것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여 판매 대행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수량도 한정되어 있기 대문에 입점을 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에 우리는 수량을 정하여 공동 구매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이트의 방문자 수가 10만을 넘었기 때문에 효과가 엄청 좋다.
그런데 우리는 판매를 대신 하면서 중간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그러면 그 가게에서는 엄청 고마워 하면서 자기네 단골 거래처에 우리 사이트를 꾸준히 홍보해준다. 이 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4]
그러니까 우리가 사이트를 개편하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서이다. 이 일주일 동안은 오픈 세일 기간이었다. 우리가 오픈 세일용으로 들여온 상품은 3일만에 다 팔렸다.
우리는 할인용은 더 이상 재고가 없으므로 판매 중지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사과하는 공지를 내야 했다. 그런데 고객들은 우리 입장을 알아주지 않는다. 할인 판매 기간이 지나기 전에 주문한다면서 빨리 상품을 올리라고 성화다. 게시판에 벼라별 글이 올라온다.
심지어 어떤 고객은 할인판매에서는 이윤이 낮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인 판매를 할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냐는 항의도 들어있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고객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그래서 일부는 할인 상품이 아닌데도, 할인 판매를 계속 해야 했다. 또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할인판매를 하려고 계획했던 상품들도 미리 올려야 했다. 결과는 완전 적자였다.
김영숙은 화가 나서 부랴부랴 다시 주문을 한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거의 세 배가 많은 양을 수입했다.
그런데 할인 행사가 끝나도 판매량은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신촌의 대학가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도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나는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그 때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나야 정상이다. 오픈 세일이 끝나면 주문량이 일단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처음에는 판매량이 낮다가 서서히 증가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이렇게 높다가 언젠가는 갑자기 추락할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나는 일주일 동안 이 불안한 현상을 지켜보다가 김팀장과 토요일 저녁에 만났다. 원래는 다음 주 수요일 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계획보다 며칠 앞당겼다. 우리는 저녁으로 초밥을 먹고 나서, 택시를 타고, 이태원의 칵테일 집으로 갔다. 황영철과 갔었던 그 집이다. 우리는 낮은 도수로 6잔짜리 한 판을 주문했다.
첫잔을 들고 건배한 후에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내 문제를 이야기 했다.
"까칠이 너 진짜 웃긴다. 소심한거니? 너무 잘 팔려도 걱정이야?"
"이렇게 잘 팔리는 일이 얼마나 오래 갈까가 걱정이야. 이러다가 갑자기 매출이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일을 또 어떻게 감당해?"
"그러니까 대표님께서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실 시간이 있으시면, 차라리 잘 팔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어차피 문제는 "처음부터 왜 이렇게 잘 팔리나?" 아니니?"
"그거야 우리 상품 기획이 워낙 좋았으니까 .."
"다른 데는 상품 기획을 잘 못해서 그만큼 안 팔리냐? 그 사람들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거든요. 다들 경험이나 경력 진짜 빵빵하다고."
"그럼 왜 잘 팔리는 거지? 내가 잘 생긴 것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
"하하하. 으이구우 이 자뻑아. 너는 김영숙이랑 이런 얘기 안 하니?"
"그 누나는 얘기는 고사하고, 매장 다니느라고, 얼굴 볼 시간도 별로 없어."
"김영숙이 책정한 판매가격이 다를 쇼핑몰들보다 10% ~ 15% 정도가 싸다는 것이 먹혀 들어간 거야. 원래 인터넷 판매는 반품이나 환불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비해서 이윤을 30% 정도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거든. 그런데 김영숙은 소비자 가격을 책정하면서 이윤을 과감하게 낮게 잡았단 말이야. 그런 것은 서로 이야기를 좀 해라."
"그럼 우리가 질 낮은 싸구려 상품을 파는 곳으로 알려지는 것은 아닐까?"
"그건 간단하지. 다른 사이트에서 파는 비싼 상품도 올려봐."
"커피는 사타박스가 제일 비싸도 제일 잘 팔린다던데?"
"에이. 그런 된장들이랑 비교가 안되지. 지난 번 너네 김치 공동 구매 때 5천개를 올렸을 때 영숙이가 깜짝 놀라더라."
"너무 많아서?"
"공동구매에서 할인한 것은 겨우 10% 였거든. 그러면 할인 폭이 겨우 2천원 3천원이거든요. 그래도 아줌마들이 그렇게 많이 몰리잖아."
"그만큼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짠순이라고?"
"이유없이 짠순이겠어? 생각해봐. 대학생들이야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싼 상품을 찾겠지? 대졸자들도 취직이 안되니까, 알바 하면서 어렵게 사는데, 비싼 상품을 찾겠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야. 소득은 늘지 않는데, 지출은 많아지거든."
"전 국민이 알뜰하게 산다고?"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는 가난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앞으로는 가격이 싼 상품이 대세로 갈 것 같아. 슬픈 일이지. 상류층이야 언제나 고가의 명품들을 찾겠지만, 그러는 사람들이 얼마 되기나 해?"
"으으음. ..."
"그건 그렇고. 나도 너네 웰빙으로 갈 생각이니까, 나도 받아달라고."
"그럼 우리 완전 폭삭 망하거든요. 우리 방문자가 20만이 될 때까지 누나는 거기 절대로 떠나면 안돼."
"20만? 그거만 넘으면 나 받아줄거지?"
"그렇다고 치사하게 알바생들 풀어서 클릭 시키지 말고. 하하."
"이제 나가자."
"드디어 따러 가나? 하하."
"요게 요새 은근히 밝힌단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누나. 미안해. 방금 그 말 취소야."
"누가 취소하래?"
"어?"
"빨랑 가서 계산이나 해."
[5]
나는 여우팀장과 함께 칵테일 집을 나섰다. 11월 하순의 밤 기온이 쌀쌀하다. 나는 그녀를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여우가 내게 팔짱을 낀다. 게다가 젖가슴까지 밀어붙인다. 지금까지 몇달을 만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술도 500 딱 한잔인데. 뭔가가 전과는 다르다. 그녀가 입을 내 귀 가까이에 대고 내게 말했다.
"까칠아. 이제 겨우 10시잖아? 우리 조금만 걷자."
"그럴까? 누나. 혹시 어디가 안 좋은 것은 아니지?"
"어? 그런 것 없거든? 너무 많이 먹었나? 배가 쫌 더부룩한 정도?"
"그럼 소화제 필요해? 저 앞에 편의점 있네."
"참나. 무슨 말을 못해요. 쓸데없이 잘생긴 남자가 매너까지 있으면 나보고 어쩌라구요? 하하."
"따라고. 하하."
"요게? 진짜로 확!"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야. 하하"
"너 거기 동업하는 여자애랑 사귄다며?"
"사귄다고? 그게 어때서? 나한테는 다다익선이거든요? 하하."
"말 진짜 처음으로 말하는 것이 완전 개싸가지네."
"누나. 겨우 그 말로 기분 나빴어? 김수연 팀장이 그 정도로 삐질 누나가 아닌데?"
"누가 삐졌대? 그런 말로 삐질거면 이 바닥에서 일 못하지. 나 김수연은 간도, 쓸개도 다 빼서 한강물에 던졌고,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고 .."
그런데, 내 귀에 들리는 여우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은 느낌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매가 젖어있다. 그녀가 애처로와 보이고, 내 마음이 너무 안타깝다.
"어라? 누나 지금 울어? 누나가 요새 많이 힘들구나?"
"표나니?"
"이러언. .. 나, 누나 안아도 돼?"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니? "
"길거리인데 괜찮을까?"
"뭐 어때? 사람도 별로 없는데. 약간 길 안쪽으로 .."
나는 가로수에 기대고 섰다. 여우의 등으로 두 팔을 둘러서 그녀를 당겨 안았다. 여우도 내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서 내 등을 감싸 안는다. 그녀의 젖가슴이 내 가슴을 밀고, 그녀의 얼굴이 내 어께로 얹힌다.
나는 내 얼굴을 그녀의 머리로 묻는다. 그리고 숨을 내쉬고 또 들이마신다. 그녀가 몸을 움찔한다. 그녀의 머리에서 아직도 샴푸인지 린스인지 냄새가 난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하아. 윤하. .."
"누나. .. 무엇이 누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꼬옥 안아줄래?"
"왜 그래? 남친이랑 싸웠어?"
"분위기 깨지 말고, 입 닫아."
나는 그녀의 등을 감고 있는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따뜻한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을 뭉클하고 짓누른다. 그녀도 힘껏 나를 당긴다. 우리의 두 몸이 빈틈없이 밀착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 달려있는 볼륨에 있는 굴곡이 워낙 심해서 실패한다.
그녀는 이제 나의 가슴과 배를 내리누르고, 나는 떠받치는 자세이다. 이렇게 되면 잠자는 사자의 코털 뽑기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번 달아 오르기 시작하면, 나 스스로 포기하거나 절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은 진짜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다.
"하아 .. 윤하야."
"어?"
"윤하가 안아주니까, 너무 좋다."
"왜 그래?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상무한테 까였어?"
"나도 여자거든. 이런 밤에는 남자한테 안기고 싶기도 하단 말이야. 그런데 내 옆에 우리 까칠이가 턱하니 있네. 나 너한테 안기고 싶다고. 나 이상하니? 이러면 내가 밝히는 건가?"
"에이이. 너무 오바하네. 무슨 소리야? 우리가 뭐 안지도 못할 사이는 아니잖아?"
"그렇지? .. 하아아아."
"그럼 수위를 쪼끔 높입니다. 누나를 위한 특별 서비스."
"뭔데? 뭐 하려고?"
나는 사전 경고를 하여 내 매너를 발휘한 후에 내 뺨을 여우의 뺨에 가볍게 얹었다. 여우의 뺨이 차갑다. 밤 공기 때문이겠지. 내 뺨도 이 정도는 차가울 거다. 우리는 서로를 안은 채로, 뺨을 맞대고 한동안 서있었다.
나는 내 입술이 그녀의 귀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게 했다. 그녀가 몸을 움찔한다.
그녀의 고개가 조금씩 돌아간다. 내 입술에서 자기 귀를 멀리 하려는 것일까? 여우의 귀와 내 입술은 조금씩 천천히 멀어지지만, 이제는 여우의 입술이 내 귀를 향하여 다가온다.
여우의 입술이 내 귀에 닿는 순간 재빨리 떨어진다. 여우가 깜짝 놀랐나보다. 잠시 후에 여우의 입술이 또 내 귀로 다가와서 닿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부드러운 입술과 접촉 하는 것만으로도 내 몸에는 전율이 흐른다. 내 가슴에서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여우의 입술이 가만히 닿고 있다가, 그녀의 닫혀있던 입술이 조금 열린다. 그녀의 입술이 내 귓볼의 끝부분을 조금 살짝 물었다가 재빨리 놓는다. 아마 엄청 용기를 내는 것 같다. 또 한번을 문다. 그런데 이번에는 놓지 않는다. 그녀의 따뜻한 혀 끝이 가볍게 쓸고 지나간다. 그녀의 입술에 힘이 살짝 들어간다.
이제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에는 내 차례이다.
그런데 나는 고민하고, 망설인다. 지금까지 우리 둘은 일에 있어서는 천상의 궁합이었다. 우리는 진짜 좋은 사이였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러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색한 사이로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 일은 어떻게 되지?
고민이다.
고민과 망설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어쨌든 그녀는 벌써 내 귓볼을 물고 가볍게 살짝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낮은 소리로 여우를 불렀다.
"누나."
"어?"
마치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깜짝 놀라서 대답한다. 여우가 깨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너무 귀엽다.
나는 일부러 약간 뜸을 들인다. 그녀의 숨결은 내 귀로 쏟아진다. 이렇게 여우는 지금 나를 지독하게 자극한다. 어느새 야구방망이로 변해버렸다. 나는 가로수 때문에 엉덩이를 뒤로 뺄 수도 없다. 야구방망이는 그녀의 배에 눌리고 있다. 몸을 옆으로 빼서 피할 수도 없다. 여우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이 길면 포기하고 체념해버리는 법. 그렇지만 다혈질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되묻는다. 혹시 여우가 다혈질은 아닐까? 맞다. 그녀가 내게 말한다. 나는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었다. 그녀가 낚인 거다.
"뭐야아. 불러놓고 왜 말을 안해?"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또 가늘었다. 끊어질 듯 하다가 다시 이어졌다. 마치 내 귓볼을 입술로 물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우선 숨을 깊이 내쉬었다.
"하아아. ..."
"말 안할 거니?"
아무래도 여우가 눈치를 채버린 것 같다. 벌써 그녀의 얼굴이 내 코 앞에 와있다. 오히려 잘 된 것이다. 내가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가 먼저 왔으니까 내 죄질은 그리 불량하지 않게 된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서 옅은 화장품 냄새가 내 코에 느껴진다. 갸름한 얼굴. 커다란 두 눈, 오똑 솟은 콧날, 얄팍한 윗입술, 약건 도톰한 아랫입술.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너무 또렷한 이목구비이다.
나는 말 대신에 내 입술을 그녀의 이마에 대고 입맞춤을 했다.
한번.
그리고 또 한번, 그런데 지긋이 누르면서 약간 길게.
그런데 두번 째는 그녀의 두 눈이 이미 감겨있었다. 나는 양쪽 눈에도 번갈아가며 가볍게 스치듯이 내 입술을 댔다. 그녀의 눈꺼풀과 속눈썹이 파르르 떠는 것이 내 입술에 그대로 느껴진다. 야구 방망이가 들썩거린다. 그녀의 배에도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의 콧날의 왼쪽과 오른 쪽에 그리고 콧날의 끝에 입술을 잠시 댔다. 그녀의 턱이 올라간다. 그녀의 숨이 멎어있다. 그녀의 뺨에 내 입술을 대고 지긋이 누른다. 이 쪽 그리고 저 쪽에. 볼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움이 내 입술을 자극한다. 나도 숨을 멈추었다.
이제 여우는 남은 곳이 입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입술을 그녀의 턱으로 가져가서 지긋이 누른다. 그리고 숨을 내쉰다. 내 콧바람은 그녀의 목으로 향하게 했다.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녀가 나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면서 고갯짓을 좌우로 절레절레 한다.
그녀는 다혈질이다. 그녀는 오래 기다리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가 먼저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개고 가볍게 입맞춤을 한다.
한번.
또 한번.
그리고 계속.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지 않았다. 내 입술에 먼저 키스한 것은 여우이다. 입술키스에 관한 한 나는 무죄이다. 어딘가에 CCTV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몇번을 계속해서 입술을 내 입술에 붙이고 떼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힘이 드는지, 아예 입술로 내 입술을 누르고 가만히 있다.
나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들였다. 그래도 그녀는 입을 들어내지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빨아당겼다.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내 입 안으로 그녀의 입술이 점점 더 많이 빨려 들어온다. 내 윗입술도 그녀의 두 입술 사이로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간다. 드디어 그녀도 내 윗입술을 빨아당기기 시작한다. 나는 내 혀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좌우로 핥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살짝 밀어 넣었다. 그녀가 입술로 내 혀끝을 물어버린다. 나는 더 깊이 밀어 넣는다. 그녀의 혀가 나와서 내 혀를 짓누른다. 그리고 입 안으로 빨아당긴다. 빠는 힘이 점점 세어진다. 내 혀는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혀와 내 혀가 그녀의 입안에서 뒤엉킨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혀가 내 혀를 밀어내고 내 입 안으로 쑤욱 밀고 들어와버린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혀를 빨아당겼다.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아음. .. 아앙. .. 하음. .."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힐끗거린다. 나나 여우에게는 그런 것이 이미 안중에도 없다. 우리의 키스는 상당히 뜨거워져 있었다.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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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월 1일입니다. 새 해 시작하고 벌써 한달이 후닥딱 가버렸네요. 이 글을 1월중에 매듭짓는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아직 못 끝냈습니다. 이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진짜 빨리 끝내고 알바로 갈겁니다. 말로만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글의 내용에 대하여 드리는 안내 말씀 :
이번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연장해서, "다음에는 분명 어떨 것이다"라고 미리 상상하거나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내용이 완전 다르면 저한테 욕을 진짜 엄청 퍼부으실거잖아요? 물론 제가 여러 사람들한테서 욕을 많이 얻어 먹고, 오래 오래 사는 거야 좋기는 한데,.. 그래도 여엉 찝찝이가 있어서요. ㅋㅋ - Ja"dore -
(2) 이번 글은 소라스럽거나 야한 내용이 절대 아닙니다. 공연히 미리부터 그런 기대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엄청 걱정돼서요. 어느 독자님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지만, 특히 그 분들 ..ㅋㅋ..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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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우와의 첫 키스
[1]
영철이가 해외로 도피한다는 말을 하고 난 후에, 내 마음은 끝없이 허탈하고 공허해진다. 너무 외롭고 고독함을 느낀다. 아마도 오래 사귄 커플이 깨지면 이런 마음일까? 도대체 내가 학교를 휴학하기까지 하면서 웰빙 라이프에 이토록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허무해진다. 의욕을 잃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마약에 손을 대기라도 해야 할 입장이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직원들 때문이다. 특히 아줌마 부대.
그녀들은 아침에 나타날 때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해맑은 모습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들은 수다를 떨면서 제일 먼저 자기 남편들의 잘못을 들고 나온다. 처음에는 험담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꼭 칭찬으로 끝난다.
애들 얘기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40대인 아줌마들은 애들이 중2병에 걸렸다고 엄청 속상해 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누구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걸그룹 흉내만 낸단다.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라고 학원을 보내면, 차라리 실용음악 학원에 가겠다고 떼를 쓴단다. 그렇게 속 썩이는 자식 얘기를 하면서도, 나중에는 무슨 예쁜 짓을 했다는 둥 하면서 꼭 칭찬으로 끝낸다.
욕먹을 짓을 백 가지를 했어도 칭찬 받을 일 한두 가지만 하면 그것으로 다 용서가 되고, 끓어올랐던 자기 마음도 치유가 되는 모양이다. 저것이 사람 사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살이에서 백 번을 속고 억울해하고 답답해 하면서도, 어쩌다 한번 웃으면 다 잊어버리는 .. 나도 황영철로부터 받은 충격을 떨치고, 일에 열중해보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녀들과 대화를 하면서 웃기도 한다.
나는 그녀들과 잠시 커피 타임을 갖고, 그녀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를 다스리려는 노력을 한다. 내가 내 일을 소홀하게 해서 저 아줌마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이 될까? 아줌마 한명 한명을 만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는다.
[2]
영철이는 그 몸을 하고도 동분서주 하면서 배추를 구하러 다닌다. 그는 해리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해리는 나에게 더 이상은 혼인 신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해리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하다. 다음에는 해리가 또 어떤 카드를 들이 밀을까?
황영철은 내 말에 따르기로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황영철의 문제에 대하여 이메일을 썼다. 아버지께 해리의 오빠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해리는 지난 번에 미국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지만, 황영철은 아직 아버지를 모른다. 아버지는 내게 승낙을 하셨다.
아버지는 한국에 있는 현화그룹의 이사이고, 미국에 있는 미주 지사의 지사장이다. 황영철을 먼저 한국에 있는 현화그룹에 특채로 입사를 시키고, 그룹에서는 그 직원을 미주 지사로 파견 보내는 형식으로 해서 체류 허가를 받도록 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이 일로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내가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고 회사에 매달려 있다는 말을 해버렸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엄청 화를 내셨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망가진다면서, 추석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신 엄마를 당장 귀국하라고 하셨다.
원래 아버지는 나에게 미국에서 공부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싫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국에 있는 중이다. 내가 이 약속을 어기면 아버지는 언제든지 나를 미국으로 불러가도록 되어있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진짜 죽기보다 더 싫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께서는 부랴부랴 귀국하셨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나와 만나자마자 나를 나무라셨다.
"오피스텔 정리하고 당장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 정말 죄송한데요. 저기에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20억이거든요?"
"아니. 대학생 주제에 그 큰 돈을 어디서 끌어다가 그 난리를 부려? 너 진짜 정신 안 차릴래?"
"앞으로 1년만요. 내년 연말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아버지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일이 이렇게 돼 버린 것을 어쩌겠어? 그건 알았으니까, 당장 집으로 들어와."
"내년에 그렇게 할게요. 당장은 말고."
"에휴. 내가 너를 무슨 재주로 이기겠니."
어머니는 나에게 져주신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귀국하셨다는 말에 해리가 엄청 좋아한다. 해리는 당장 그 날 저녁에 우리 엄마에게 왔다. 우리 엄마도 해리를 고딩때부터 알기 때문에, 또 우리 집에 딸이 없어서, 마치 친딸처럼 엄청 귀여워하신다. 해리가 어머니 앞에서 애교를 부리면, 어머니는 그냥 녹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어머니와 해리는 주방에서 설거지 한다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는 과일을 들고 소파로 왔다. 그 때 나는 내 방에서 데스크탑 컴퓨터로 사이트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방 문을 열어놓고 있어서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훤히 다 들린다.
"어머니. 윤하오빠는 왜 혼인 신고를 안 하려고 할까요?"
"해리야. 혼인신고는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하거든.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혼인 신고를 해? 혹시 나 없는 사이에 윤하가 비밀 결혼이라도 했니?"
"그게 아니라 순서를 바꿀 수도 있잖아요? 결혼식을 나중에 올리고, 그 대신 혼인 신고는 먼저 하고 .."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도 해. 그렇지만 그 것은 이혼이라는 문제가 있어서 별로 좋지는 않거든. 그런데 윤하가 왜 혼인신고를 한다는 거야? 누구랑?"
"어머니. 아직 모르세요? 나랑 윤하오빠랑 결혼할건데요."
"뭐야? 해리 너도 참. 사람 놀라게 하기는."
"어머니. 진짜거든요. 우리 집에서는 윤하오빠한테 완전 사위 대접을 하는데요?"
"해리야. 결혼이라는 것은 말이지. 그러니까 남자나 여자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 ."
"나보고 졸업을 안 했다고, 결혼 안 한다는 것은 핑계죠? 아직 사랑이 없나?"
"졸업은 윤하도 안 했거든? 결혼 하는데 졸업이 무슨 상관이야? 학교에도 졸업할 때쯤 되면 결혼한 부부 학생들 있잖아? 우리 때는 꼭 있었는데, 요새는 없나?"
"왜 없어요? 지금 우리 과에도 3학년이 결혼해서 임신한 여자도 있는데요."
"그럼 해리 너도 순서를 바꿔봐. 먼저 결혼부터 생각하지 말고, 사랑을 먼저 생각해봐."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빠가 나를 고딩 때부터 알았잖아요. 지금도 내가 아직 그 때처럼 어려 보이나 봐요. 도대체 나한테는 기회를 안 주는 거예요. 다른 여자들이랑은 할 짓, 안 할 짓 다 하고 다니면서. 이번에 내가 나가서 한 3년 있다 들어오면 어떻겠어요? 아마 아들 딸 몇은 거느리고 있을걸요?"
"아니. 해리 너 지금 뭐라는 거야? 윤하가 여자랑 이상한 짓거리 하고 다닌다고?"
"어머머. 모르셨어요?"
"그럼 쟤가 여자랑 자러 다니고 그러니?"
"어머니. 그게 한두 명이랑 그러면 내가 이런 말을 왜 하겠어요? 젊고 한참때니까 잠시 객기 부리나 보다 하고 넘어가죠."
"여자랑 어디 가서 자는데? 모텔?"
"모텔에도 물론 가겠죠. 그런데 지금 오피스텔에서도 잘 것 같은데요."
"아니. 학교에서 밤샘하는 날이 많다고, 학교 가까이에 있는 오피스텔을 사달라고 워낙 졸라대서 사줬더니, 거기로 여자를 끌어들여서 살림을 차렸다고?"
"오빠가 그러는데, 요새는 실기가 없고, 이론 수업이 많아서 학교에서 밤샘하는 일이 없대요. 더군다나 지금은 휴학하고 사업하는데, 굳이 학교 가까이에서 살아야 할 필요도 없거든요?"
"뭐라고? 내 이 녀석을 그냥. 야! 최윤하! 너 당장 짐 싸서 집에 들어와. 그 오피스텔 팔아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내 말 안 들으면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 할거야."
"어머니께서 또 미국으로 가시면, 여기라고 괜찮겠어요?"
"아니야. 나 이번에는 미국에 바로 안 들어가. 한참 있을 거야. 그럼 되겠니?"
"어머니께서 그렇게만 해 주시면 훨씬 안심이죠."
"어이구우.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저 아들녀석이 어쩜 저렇게 아버지를 빼다 박았는지 .."
"예에? 아니 그럼 아버님께서도 바람둥이? 앗! 어머니 죄송해요. 말이 잘못 나갔어요. 갑자기 저한테 유체이탈이 .. 이러면 안 되는데. .."
"뭐. 다 알아버렸는데, 이제 숨겨서 뭐하겠니? 내가 우리 해리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저 녀석이 속을 썩이면, 혼자 속 상해 하지 말고,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알았지?"
"예에. 어머니. 제 편에 서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어머니께서도 우리 결혼에 찬성하시죠?"
"윤하랑 네가 서로 좋고 사랑해서 하는 결혼인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니? 이렇게 예쁘고 착한 우리 해리가 며느리로 와준다면 나야 고맙지. 하늘이 두 쪽 나도, 나는 항상 우리 해리편이거든. 하하."
해리 때문에 진짜 돌겠다.
그렇다고 해리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
이제 보니까 여우는 해리가 진짜 완전 여우다.
그것도 꼬리 아홉개짜리 여우.
해리가 어머니에게 아홉개의 꼬리로 애교를 부리면서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나는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동숭동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오게 된다. 그 대신에 어머니는 내가 웰빙을 하는 것을 아버지께는 비밀로 해주시기로 약속을 하신다.
그래도 나는 박혜주의 아파트, 윤은경의 아파트, 신예진의 원룸, 또 김하늘과는 모텔에 간다. 그 대신 외박은 절대 하지 않고, 늦더라도 집에는 꼭 돌아온다.
[3]
우리는 방문자들을 끌기 위하여 엄청 노력을 해야 했다. 일일 방문자 수가 우리는 10만을 넘은 상태이지만, 여우네는 20만에 가깝다.
어느 날 박혜주가 아이디어를 냈다. 웰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웰빙 식품에 대해서 머리를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직접 농작물을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유기농 식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를 찾는다.
그런데 이런 가게들은 주로 길거리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다. 그들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얼마 안 되는 농작물이나, 또는 그 농작물로 조리한 식품들을 소량으로 판매한다. 또 이런 가게들은 주로 단골 거래처들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먼저 아줌마들이 입소문을 찾아서 이런 가게들을 찾아내고, 직접 방문을 한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 사이트를 소개하고, 그들의 식품을 우리가 대신 판매를 해 주는 것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여 판매 대행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수량도 한정되어 있기 대문에 입점을 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에 우리는 수량을 정하여 공동 구매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이트의 방문자 수가 10만을 넘었기 때문에 효과가 엄청 좋다.
그런데 우리는 판매를 대신 하면서 중간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그러면 그 가게에서는 엄청 고마워 하면서 자기네 단골 거래처에 우리 사이트를 꾸준히 홍보해준다. 이 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4]
그러니까 우리가 사이트를 개편하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서이다. 이 일주일 동안은 오픈 세일 기간이었다. 우리가 오픈 세일용으로 들여온 상품은 3일만에 다 팔렸다.
우리는 할인용은 더 이상 재고가 없으므로 판매 중지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사과하는 공지를 내야 했다. 그런데 고객들은 우리 입장을 알아주지 않는다. 할인 판매 기간이 지나기 전에 주문한다면서 빨리 상품을 올리라고 성화다. 게시판에 벼라별 글이 올라온다.
심지어 어떤 고객은 할인판매에서는 이윤이 낮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인 판매를 할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냐는 항의도 들어있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고객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그래서 일부는 할인 상품이 아닌데도, 할인 판매를 계속 해야 했다. 또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할인판매를 하려고 계획했던 상품들도 미리 올려야 했다. 결과는 완전 적자였다.
김영숙은 화가 나서 부랴부랴 다시 주문을 한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거의 세 배가 많은 양을 수입했다.
그런데 할인 행사가 끝나도 판매량은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신촌의 대학가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도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나는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그 때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나야 정상이다. 오픈 세일이 끝나면 주문량이 일단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처음에는 판매량이 낮다가 서서히 증가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이렇게 높다가 언젠가는 갑자기 추락할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나는 일주일 동안 이 불안한 현상을 지켜보다가 김팀장과 토요일 저녁에 만났다. 원래는 다음 주 수요일 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계획보다 며칠 앞당겼다. 우리는 저녁으로 초밥을 먹고 나서, 택시를 타고, 이태원의 칵테일 집으로 갔다. 황영철과 갔었던 그 집이다. 우리는 낮은 도수로 6잔짜리 한 판을 주문했다.
첫잔을 들고 건배한 후에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내 문제를 이야기 했다.
"까칠이 너 진짜 웃긴다. 소심한거니? 너무 잘 팔려도 걱정이야?"
"이렇게 잘 팔리는 일이 얼마나 오래 갈까가 걱정이야. 이러다가 갑자기 매출이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일을 또 어떻게 감당해?"
"그러니까 대표님께서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실 시간이 있으시면, 차라리 잘 팔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어차피 문제는 "처음부터 왜 이렇게 잘 팔리나?" 아니니?"
"그거야 우리 상품 기획이 워낙 좋았으니까 .."
"다른 데는 상품 기획을 잘 못해서 그만큼 안 팔리냐? 그 사람들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거든요. 다들 경험이나 경력 진짜 빵빵하다고."
"그럼 왜 잘 팔리는 거지? 내가 잘 생긴 것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
"하하하. 으이구우 이 자뻑아. 너는 김영숙이랑 이런 얘기 안 하니?"
"그 누나는 얘기는 고사하고, 매장 다니느라고, 얼굴 볼 시간도 별로 없어."
"김영숙이 책정한 판매가격이 다를 쇼핑몰들보다 10% ~ 15% 정도가 싸다는 것이 먹혀 들어간 거야. 원래 인터넷 판매는 반품이나 환불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비해서 이윤을 30% 정도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거든. 그런데 김영숙은 소비자 가격을 책정하면서 이윤을 과감하게 낮게 잡았단 말이야. 그런 것은 서로 이야기를 좀 해라."
"그럼 우리가 질 낮은 싸구려 상품을 파는 곳으로 알려지는 것은 아닐까?"
"그건 간단하지. 다른 사이트에서 파는 비싼 상품도 올려봐."
"커피는 사타박스가 제일 비싸도 제일 잘 팔린다던데?"
"에이. 그런 된장들이랑 비교가 안되지. 지난 번 너네 김치 공동 구매 때 5천개를 올렸을 때 영숙이가 깜짝 놀라더라."
"너무 많아서?"
"공동구매에서 할인한 것은 겨우 10% 였거든. 그러면 할인 폭이 겨우 2천원 3천원이거든요. 그래도 아줌마들이 그렇게 많이 몰리잖아."
"그만큼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짠순이라고?"
"이유없이 짠순이겠어? 생각해봐. 대학생들이야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싼 상품을 찾겠지? 대졸자들도 취직이 안되니까, 알바 하면서 어렵게 사는데, 비싼 상품을 찾겠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야. 소득은 늘지 않는데, 지출은 많아지거든."
"전 국민이 알뜰하게 산다고?"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는 가난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앞으로는 가격이 싼 상품이 대세로 갈 것 같아. 슬픈 일이지. 상류층이야 언제나 고가의 명품들을 찾겠지만, 그러는 사람들이 얼마 되기나 해?"
"으으음. ..."
"그건 그렇고. 나도 너네 웰빙으로 갈 생각이니까, 나도 받아달라고."
"그럼 우리 완전 폭삭 망하거든요. 우리 방문자가 20만이 될 때까지 누나는 거기 절대로 떠나면 안돼."
"20만? 그거만 넘으면 나 받아줄거지?"
"그렇다고 치사하게 알바생들 풀어서 클릭 시키지 말고. 하하."
"이제 나가자."
"드디어 따러 가나? 하하."
"요게 요새 은근히 밝힌단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누나. 미안해. 방금 그 말 취소야."
"누가 취소하래?"
"어?"
"빨랑 가서 계산이나 해."
[5]
나는 여우팀장과 함께 칵테일 집을 나섰다. 11월 하순의 밤 기온이 쌀쌀하다. 나는 그녀를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여우가 내게 팔짱을 낀다. 게다가 젖가슴까지 밀어붙인다. 지금까지 몇달을 만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술도 500 딱 한잔인데. 뭔가가 전과는 다르다. 그녀가 입을 내 귀 가까이에 대고 내게 말했다.
"까칠아. 이제 겨우 10시잖아? 우리 조금만 걷자."
"그럴까? 누나. 혹시 어디가 안 좋은 것은 아니지?"
"어? 그런 것 없거든? 너무 많이 먹었나? 배가 쫌 더부룩한 정도?"
"그럼 소화제 필요해? 저 앞에 편의점 있네."
"참나. 무슨 말을 못해요. 쓸데없이 잘생긴 남자가 매너까지 있으면 나보고 어쩌라구요? 하하."
"따라고. 하하."
"요게? 진짜로 확!"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야. 하하"
"너 거기 동업하는 여자애랑 사귄다며?"
"사귄다고? 그게 어때서? 나한테는 다다익선이거든요? 하하."
"말 진짜 처음으로 말하는 것이 완전 개싸가지네."
"누나. 겨우 그 말로 기분 나빴어? 김수연 팀장이 그 정도로 삐질 누나가 아닌데?"
"누가 삐졌대? 그런 말로 삐질거면 이 바닥에서 일 못하지. 나 김수연은 간도, 쓸개도 다 빼서 한강물에 던졌고,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고 .."
그런데, 내 귀에 들리는 여우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은 느낌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매가 젖어있다. 그녀가 애처로와 보이고, 내 마음이 너무 안타깝다.
"어라? 누나 지금 울어? 누나가 요새 많이 힘들구나?"
"표나니?"
"이러언. .. 나, 누나 안아도 돼?"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니? "
"길거리인데 괜찮을까?"
"뭐 어때? 사람도 별로 없는데. 약간 길 안쪽으로 .."
나는 가로수에 기대고 섰다. 여우의 등으로 두 팔을 둘러서 그녀를 당겨 안았다. 여우도 내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서 내 등을 감싸 안는다. 그녀의 젖가슴이 내 가슴을 밀고, 그녀의 얼굴이 내 어께로 얹힌다.
나는 내 얼굴을 그녀의 머리로 묻는다. 그리고 숨을 내쉬고 또 들이마신다. 그녀가 몸을 움찔한다. 그녀의 머리에서 아직도 샴푸인지 린스인지 냄새가 난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하아. 윤하. .."
"누나. .. 무엇이 누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꼬옥 안아줄래?"
"왜 그래? 남친이랑 싸웠어?"
"분위기 깨지 말고, 입 닫아."
나는 그녀의 등을 감고 있는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따뜻한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을 뭉클하고 짓누른다. 그녀도 힘껏 나를 당긴다. 우리의 두 몸이 빈틈없이 밀착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 달려있는 볼륨에 있는 굴곡이 워낙 심해서 실패한다.
그녀는 이제 나의 가슴과 배를 내리누르고, 나는 떠받치는 자세이다. 이렇게 되면 잠자는 사자의 코털 뽑기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번 달아 오르기 시작하면, 나 스스로 포기하거나 절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은 진짜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다.
"하아 .. 윤하야."
"어?"
"윤하가 안아주니까, 너무 좋다."
"왜 그래?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상무한테 까였어?"
"나도 여자거든. 이런 밤에는 남자한테 안기고 싶기도 하단 말이야. 그런데 내 옆에 우리 까칠이가 턱하니 있네. 나 너한테 안기고 싶다고. 나 이상하니? 이러면 내가 밝히는 건가?"
"에이이. 너무 오바하네. 무슨 소리야? 우리가 뭐 안지도 못할 사이는 아니잖아?"
"그렇지? .. 하아아아."
"그럼 수위를 쪼끔 높입니다. 누나를 위한 특별 서비스."
"뭔데? 뭐 하려고?"
나는 사전 경고를 하여 내 매너를 발휘한 후에 내 뺨을 여우의 뺨에 가볍게 얹었다. 여우의 뺨이 차갑다. 밤 공기 때문이겠지. 내 뺨도 이 정도는 차가울 거다. 우리는 서로를 안은 채로, 뺨을 맞대고 한동안 서있었다.
나는 내 입술이 그녀의 귀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게 했다. 그녀가 몸을 움찔한다.
그녀의 고개가 조금씩 돌아간다. 내 입술에서 자기 귀를 멀리 하려는 것일까? 여우의 귀와 내 입술은 조금씩 천천히 멀어지지만, 이제는 여우의 입술이 내 귀를 향하여 다가온다.
여우의 입술이 내 귀에 닿는 순간 재빨리 떨어진다. 여우가 깜짝 놀랐나보다. 잠시 후에 여우의 입술이 또 내 귀로 다가와서 닿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부드러운 입술과 접촉 하는 것만으로도 내 몸에는 전율이 흐른다. 내 가슴에서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여우의 입술이 가만히 닿고 있다가, 그녀의 닫혀있던 입술이 조금 열린다. 그녀의 입술이 내 귓볼의 끝부분을 조금 살짝 물었다가 재빨리 놓는다. 아마 엄청 용기를 내는 것 같다. 또 한번을 문다. 그런데 이번에는 놓지 않는다. 그녀의 따뜻한 혀 끝이 가볍게 쓸고 지나간다. 그녀의 입술에 힘이 살짝 들어간다.
이제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에는 내 차례이다.
그런데 나는 고민하고, 망설인다. 지금까지 우리 둘은 일에 있어서는 천상의 궁합이었다. 우리는 진짜 좋은 사이였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러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색한 사이로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 일은 어떻게 되지?
고민이다.
고민과 망설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어쨌든 그녀는 벌써 내 귓볼을 물고 가볍게 살짝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낮은 소리로 여우를 불렀다.
"누나."
"어?"
마치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깜짝 놀라서 대답한다. 여우가 깨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너무 귀엽다.
나는 일부러 약간 뜸을 들인다. 그녀의 숨결은 내 귀로 쏟아진다. 이렇게 여우는 지금 나를 지독하게 자극한다. 어느새 야구방망이로 변해버렸다. 나는 가로수 때문에 엉덩이를 뒤로 뺄 수도 없다. 야구방망이는 그녀의 배에 눌리고 있다. 몸을 옆으로 빼서 피할 수도 없다. 여우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이 길면 포기하고 체념해버리는 법. 그렇지만 다혈질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되묻는다. 혹시 여우가 다혈질은 아닐까? 맞다. 그녀가 내게 말한다. 나는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었다. 그녀가 낚인 거다.
"뭐야아. 불러놓고 왜 말을 안해?"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또 가늘었다. 끊어질 듯 하다가 다시 이어졌다. 마치 내 귓볼을 입술로 물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우선 숨을 깊이 내쉬었다.
"하아아. ..."
"말 안할 거니?"
아무래도 여우가 눈치를 채버린 것 같다. 벌써 그녀의 얼굴이 내 코 앞에 와있다. 오히려 잘 된 것이다. 내가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가 먼저 왔으니까 내 죄질은 그리 불량하지 않게 된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서 옅은 화장품 냄새가 내 코에 느껴진다. 갸름한 얼굴. 커다란 두 눈, 오똑 솟은 콧날, 얄팍한 윗입술, 약건 도톰한 아랫입술.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너무 또렷한 이목구비이다.
나는 말 대신에 내 입술을 그녀의 이마에 대고 입맞춤을 했다.
한번.
그리고 또 한번, 그런데 지긋이 누르면서 약간 길게.
그런데 두번 째는 그녀의 두 눈이 이미 감겨있었다. 나는 양쪽 눈에도 번갈아가며 가볍게 스치듯이 내 입술을 댔다. 그녀의 눈꺼풀과 속눈썹이 파르르 떠는 것이 내 입술에 그대로 느껴진다. 야구 방망이가 들썩거린다. 그녀의 배에도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의 콧날의 왼쪽과 오른 쪽에 그리고 콧날의 끝에 입술을 잠시 댔다. 그녀의 턱이 올라간다. 그녀의 숨이 멎어있다. 그녀의 뺨에 내 입술을 대고 지긋이 누른다. 이 쪽 그리고 저 쪽에. 볼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움이 내 입술을 자극한다. 나도 숨을 멈추었다.
이제 여우는 남은 곳이 입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입술을 그녀의 턱으로 가져가서 지긋이 누른다. 그리고 숨을 내쉰다. 내 콧바람은 그녀의 목으로 향하게 했다.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녀가 나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면서 고갯짓을 좌우로 절레절레 한다.
그녀는 다혈질이다. 그녀는 오래 기다리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가 먼저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개고 가볍게 입맞춤을 한다.
한번.
또 한번.
그리고 계속.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지 않았다. 내 입술에 먼저 키스한 것은 여우이다. 입술키스에 관한 한 나는 무죄이다. 어딘가에 CCTV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몇번을 계속해서 입술을 내 입술에 붙이고 떼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힘이 드는지, 아예 입술로 내 입술을 누르고 가만히 있다.
나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들였다. 그래도 그녀는 입을 들어내지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빨아당겼다.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내 입 안으로 그녀의 입술이 점점 더 많이 빨려 들어온다. 내 윗입술도 그녀의 두 입술 사이로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간다. 드디어 그녀도 내 윗입술을 빨아당기기 시작한다. 나는 내 혀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좌우로 핥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살짝 밀어 넣었다. 그녀가 입술로 내 혀끝을 물어버린다. 나는 더 깊이 밀어 넣는다. 그녀의 혀가 나와서 내 혀를 짓누른다. 그리고 입 안으로 빨아당긴다. 빠는 힘이 점점 세어진다. 내 혀는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혀와 내 혀가 그녀의 입안에서 뒤엉킨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혀가 내 혀를 밀어내고 내 입 안으로 쑤욱 밀고 들어와버린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혀를 빨아당겼다.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아음. .. 아앙. .. 하음. .."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힐끗거린다. 나나 여우에게는 그런 것이 이미 안중에도 없다. 우리의 키스는 상당히 뜨거워져 있었다.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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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월 1일입니다. 새 해 시작하고 벌써 한달이 후닥딱 가버렸네요. 이 글을 1월중에 매듭짓는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아직 못 끝냈습니다. 이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진짜 빨리 끝내고 알바로 갈겁니다. 말로만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글의 내용에 대하여 드리는 안내 말씀 :
이번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연장해서, "다음에는 분명 어떨 것이다"라고 미리 상상하거나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내용이 완전 다르면 저한테 욕을 진짜 엄청 퍼부으실거잖아요? 물론 제가 여러 사람들한테서 욕을 많이 얻어 먹고, 오래 오래 사는 거야 좋기는 한데,.. 그래도 여엉 찝찝이가 있어서요. ㅋㅋ - Ja"dore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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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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