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네가 서 있기를-
-제1부:듄-
‘그런 얼굴로 질문 씩이나 하려구?’
난 그녀의 능력을 별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질문은 차근차근, 한번에 하나씩...
그리고 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경우,
들을 생각은 접는 게 좋아, 알지? 내 성질...’
‘이게 질문 받을 자세니?’
그녀는 나의 방문과는 무관하게 불러들인 놈팽이들과 열심히 몸을 굴리는 중인게다.
‘이게 뭐 어때서? 어차피 얘들... 혼빠진 아그들이라, 기냥 들이대기나 하는 거이지, 자네랑 나의 고고한 만남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알아서 하시게나.’
그녀의 자세는 도저히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자세 였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몸을 꿈틀댔다. 한 녀석은 바로 누워 그녀를 자신의 위에 올려 놓고서, 심폐소생술 받는 환자가 심장쇼크로 털럭대듯이, 간간이 하체를 들썩이며 경련하고 있었으며, 또 한 녀석은 이미 아랫 놈이 차지 하고 있는 그녀의 보지 대신, 놀고 있는 애널에 좇이 박힌채로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눈깔이 휘번덕 돌아가 있었다. 난 그런 그녀의 옆으로 돌아가, 의자를 끌어다 천천히 앉았다.
‘여전히 영양보충은 하시는 가 보네.’
‘얘들은 몰라. 이렇게 넋이 빠져서 한참 놀다가 집에 돌아가고 나면, 3,4일이 지나서야 모든 진기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챌 테니...즈그들이야 눈깔 뒤집어지는 섹스겠지만, 나에게는 링거라는 것을 알 리가 없쥐....’
남자들은 애초에 그녀와의 난교에 있어서 사정이 거부 당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눈 앞의 상대가 중년의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것이고, 사정도 하지 못한 채, 좇대가리가 꺼멓게 타들어 가듯이 충혈되면서, 진기가 시시각각 누수되는 것도 느끼지 못할테니 말이다.
‘하여간 문제는 문제야, 나처럼 늙어빠진 년 한테도 남자들이 애타게 달겨들고 있는데, 왜 젊은 년들이 가랭이를 안 벌려주고 지랄들인지...쯧쯧 다들 지만 잘났대지...나 원...’
그러나, 그것은 남자들의 문제가 아니긴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도 안보고 다니는지, 나 같이 수준 있는 여자를 어딜 넘보고 지랄이냐는 듯한, 보통 여자들의 태도와 180도 다른 눈매와 기술로 남자들을 향해, 어서 와서 쑤셔달라는 듯한 염력을 날리는 그녀의 의도가 문제라면 문제 였으니까. 그게 수렁인지, 함정인지도 모르고, 여신님 어쩌구 덤벼들고, 제발 한번만 빨게 해달라, 박게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빌붙어대는 지경은 이미, 그들의 혼백이 스미싱을 뚜드려 맞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요즘 애들은 예전보다 영양상태가 차암 좋아...지들이 알아서 프로테인 쥬스랑 닭가슴살, 빡빡 쳐먹어 주지, 근육도 지대로 키워놔서 그립감도 그만이고...이러다 내버려도 곰방 회복되서 죄책감도 없고...’
‘죄책감이라도 있었나?’
‘왜 없어? 예전에야, 문지방 나서기도 전에 코피 팡팡 쏟으며, 과로사랍시고 길바닥에서 골로 가는 애들 투성이 였는데, 나도 맘이 아프긴 했다우...’
‘전화를 그렇게 했는데, 왜 대꾸가 없나 했드만....’
‘요즘 것들은 문명의 이기에 너무 기댄단 말이쥐. 몸도 비대해지지 말라고 다이어트 씩이나 해대는데, 어째 문명의 이기에 중독되어서, 금단증상에 허덕대면서두, 살뺄 생각을 못해. 좋잖아? 연락두절되니, 이렇게 아나로그 미팅도 불사하며 달려오고...우리 같은 양손들은 이런 맛에 지나간 옛시절의 향수를 그리워 한다는 거지 뭐....깔깔깔’
양손.....우린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어차피 그녀나 나나, 양손에 저울질 이라는 옛말처럼, 서로의 견지에서 양손에 올려진 저울감을 달아보고 판단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요즘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냐?’
난 본격적으로 그녀를 보러 온 목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쌈박질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고상하잖수?’
‘쌈박질은? 어린애두 아니고설랑....그냥 묻는 거이지..사람들이 예전만큼 어리숙하질 않아. 인터넷이고 뭐고 간에, 이제는 소문만 가지고 을러대는 시절은 아니라는 거지.’
‘누가 뭐라 했어? 내가 자기더러 나랑 손 잡자고 한 일 없다, 알쥐? 이게 다 대세의 흐름이야. 그러게 일찌감치 내 밑에 와 있었으면 좀 좋아?’
‘양손이라고 다 같은 양손 인가? 자네랑 나는 서로간에 목줄 죄는 뿌리들인데, 엉켜봐야 서로 좋을 게 없지, 안그래?’
‘허긴....누가 이런 호시절이 올 줄 알았나? 기냥 놔 둬도 지절로 굴러가는 폼새가 박수를 따불로 쳐 드려야 할 심산이야....에그그...얘 봐라...또 휘딱 간다.....안되겠다. 기분도 그렇고...이쯤에서 얘들 돌려 보내야지, 안그러면 좇터지겄다, 좇대가 무신 가지빛으로 썩어설랑은....쯧쯧...’
인간이 한계를 이겨내는 법은 없었다. 인간이기에 섹스에 눈이 멀었고, 인간이기에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신체에 독을 품게 되는 묘한 메커니즘....그 안에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어리석은 진실을, 아직도 사람들은 섹스의 쾌락속에서 간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마호타수(磨呼打手) 이관재(移棺災).....’
그녀의 주문이 이어지고 상대남들의 이마에 양손가락을 얹어, 주술을 그리는 그녀의 진지한 모습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손가락의 휘돌림을 보아하니, 신체의 기혈이 제멋대로 뭉쳐서 터지는 것은 막아줄 요량으로 보였다. 이내 그치들은 짚단처럼 스러져 침대에 쳐박혔고, 그녀는 나에게 눈짓을 하며 나가자는 시늉과 함께 옷을 갈아입었다.
‘요즘은 끝장을 보시지는 않는 모냥인데?’
‘시대가 어느 땐데, 목숨을 경시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이 판국에, 섹질하다 지쳐 뒤진다고 하면, 자손 삼대가 욕해요, 이 냥반아...’
"여전하시우...하긴, 세간의 입과 눈에 오르내려 봐야 좋을거 없긴 하지…"
"됐고, 이렇게 법을 깨고 만나자고 했을 때에는 다 이유가 있을텐데…"
양손끼리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면 조우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법 이었다. 그녀는 이른바, 죄 지으려는 자들의 줄을 세우는 것이 임무이고, 난 선한 일을 할 사람들이 세파에 휩쓸려 그녀의 호객행위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 할 일 이었기에,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에게 으르렁 대기 바쁜 치들 이었다. 이른바 사람들의 앞에 놓여진 빨갛고 파란 두개의 알약을, 어떻게 선택하느냐 종용하는 바람잡이가 바로 양손의 할일 이었다.
그녀는 악한 길로 들어서더라도 죄의식이 없도록 용기를 북돋우며, 난 그 꼬임에 빠져서 인생 좇되지 말라고 팔짱을 잡아끄는 그런 상황...그녀의 말처럼 그녀에게 호시절은 호시절 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선과 악이 쌈박질을 하는 것도 이젠 옛말 일뿐, 대개는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잡는 것에 저어함이 없었고, 난 언제나 먼 산 보며,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기에….
"우리의 존재가 양손이기는 해도,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한 두개 쯤은 있을 것인데…"
"있기야 있지. 우리 같은 양손들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피도 눈물도 없는 회령(廻靈)들에게 선과 죄악의 치부책 적립을 맡겼다면, 이 세상에서 옳게 숨쉬고 있는 자들이 없긴 할게야. 행동대가 살수보다 쬐끔, 아주 쬐끔 인정이란 게 있긴 해, 안그래?"
이른바, 저승사자라고 하는 살수를 우리들끼리는 회령이라고 부른다. 정해진 수순대로 자석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를 돌고 다니며, 그 사람의 아우라가 희미해져가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서 뒤따라 붙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인데, 간혹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떼죽음을 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지 할일이 졸나 깝쳐서, 스스로의 형태를 위장시켜주는 주술을 까쳐먹고 사람들의 시선속에 버젓이 실체를 드러내는 일도 있곤 했다. 그 옛날이야 회령의 형태를 본 사람들은 귀신, 도깨비, 저승사자, 괴물등등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표현했지만, 요즘은 핸폰에다 카메라들이 워낙 발달해서 가끔 찍히는 경우도 있어서 우리들 끼리는 키득대며, 꼴 좋다하며 느물대는 일들이 허다했다.
"이젠 점점 내 할 일이 줄어드는 감도 없진 않아."
"치부책이 있음 뭘하나? 먹고 살기 힘들어 지는 이 판국에, 선하면 뭐할거고, 더 악하다면 또 어쩔건데? 난 가끔 내 밑에서 지분대는 아가들이 불쌍하게 보일때도 있긴 하지."
그녀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남자들을 끌어 들이고, 섹스라는 매개를 통해 그들의 통증을 경감시키는 짓을 하긴해도, 양손의 입장으로서 그 죄지음에 동참했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는 없던 모양 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공수로 돌아가시게는 할 수 없고...어쩐다? 뭐가 그리도 갈급하시어 이런 죄 많은 양손에게 팔을 벌리 셨을까나?"
"뭐, 자네가 내 원을 들어줘야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사는 데에 필요한 건 나도 자네에게 줄 수가 있다는 거 아닌가?"
적대적 양립관계에 있는 양손들 끼리는, 이미 정해진 법 아래에서 은밀하게 서로 필요한 부분을 나누어 쓰는 경향이 있었기에, 거래는 언제나 성사되고도 남음이 있어왔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가리켜 듣도 보도 못한 은하계에서 이 행성을 관심깊게 지켜 보면서 보살피다 이 지경이 되었다는 썰을 풀어 대기도 하는데, 깔깔깔....아니, 보고도 모르남? 다 자기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 어떤 지경인지 말이야."
"우린 알지...양손이 가진 특권이야 그런 거 아닌가?"
되도 않는 음모론에 인종 찬양론까지 더해져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외계인의 후손일 거라는 둥, 지구가 외계인의 예술혼이 담긴 유전자 작품들을 가일층 승화시킨 각축장이라는 둥, 헷소리들을 빵빵 해댔지만, 기실 이 세상이 우주에서 떠도는 흉폭한 원령(怨靈)들을 혼내기 위해 만든, 일종의 감옥 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대개의 영혼들은 그 차원을 달리 하면서 자유로이 우주의 곳곳에서 태생을 달리하여 태어날 수 있는 반면, 이 지구라는 곳에 갇혀버린 영혼들은 윤회라는 족쇄를 짊어지고, 다시는 다른 우주와 차원에서 태어날 수 없도록 가둬버린 곳임을, 현자들은 이미 예전에 깨우쳤건만, 그들의 입에도 자물쇠가 법으로 채워져, 쓸데없는 선문답만 디리 쏟아내고 뒈지게 만들어 놓은 곳이 세상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돌아가는 꼬라지들은 모두 그들이 이 세상에 발 묶이기 전, 화려하고 평안하면서도 상상할 수 없을만큼 럭셔리하게 지내온 기억의 조각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떠올려 만들어 가는 조각 퍼즐일 따름 이었다. 살아지는 이 세상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혹독한 형벌이자, 생지옥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내일은 뭔가 좋아지겠지, 내일은 뭔가 희망이 있을겁네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정작 다가올 미래를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치 앞이라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끼리 서로 등치고 간 빼먹으면서도, 결국 목숨줄을 놓는 순간, 다시금 그 생지옥 같은 감옥으로 도돌이표처럼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로 인해, 절망의 심정으로 살아온 생의 기억이 강제로 지워지는 출생과정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불쌍한 군상들.... 양손들은 그 중에서도 극악한 혼들로서 인간도, 혼령도 아닌 중간자의 존재로 만들어져, 선과 악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중간에서 저울질을 해야하는 임무를 띄고 있는 일종의 간수장인 셈이었다.
"다 자기네들이 당하고 치받쳐온 흔적을 이 세상에서 쏟아내고 사는 것을 왜 모르냔 말이지...지들이 좋은 세상에서 쫓겨 나와 등 붙이고 사는 마당에, 감옥을 만들어 지들끼리 또 편을 갈라, 누구를 심판하네 마네 어쩌질 않나...암튼 다 이게 자신들이 겪어온 과거와 흔적들로 인해 갇혀버린 감옥의 한 가운데에서 살자고 짓까부는 꼴들이니...지들이 만들어 놓은 감옥 안을 잘 살펴보라지, 그게 지금 자기들이 살아재끼고 있는 세상의 축소판 인걸...이 너르면 넓고, 좁으면 좁다할 이 곳이 영원히 빠져 나갈 수 없는 감옥인 것을…"
그랬다. 윤회라는 것을 축복처럼 알고 있는 것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어떤 양손은 혀를 차며 얘기한 바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안고 사는 경우도 많았다. 악을 통솔하는 양손들에게는 원인모를 고통이 24시간 끊임없이 엄습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진기를 습득해야만 그 고통을 제어하며 살아갈 수 있었고, 선을 짊어지는 우리 같은 양손들은 원하는 이들의 작은 소망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주어지지 않은 상황을 스스로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착하고 선한 일을 한다해도 우리에게는 치부책에 기록되는 법이 없었고, 생에 몇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회춘력의 비기도 다른 존재나 양손, 혹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본인은 처절하게 늙어버려, 다시는 그 나이를 유지할 수 없는 약점을 지니고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양손은 늙을 일도, 이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죽음이란 것도 맨 처음에는 주어지지 않지만,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회춘력을 사용할 때, 불행한 경우, 죽지도 못하면서 호호백발 노인으로 영원히 고통받으며 노동을 해야 하는 결점도 있긴 했다.
"그렇다고 내가 모른 체 하기에는 너무 가슴 아파서 말이야."
"아직도 그런 연약한 심성으로 살아가셔? 하긴 내가 그 쪽 양손이 아니니 알 리가 없쥐.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감옥이긴 매한가지 인데, 뭘 더 아름답게 가꾸고, 뭔 희망을 그리도 심으려고 발버둥 치시나?"
"사람들의 인생이 그리도 척박한 것은 자신의 죗값을 깨닫기에도, 착하고 선한 이력을 쌓기에도, 이 세월이란 것이 너무 짧지 않나 말이야."
"그건 그렇지...우리 같은 양손 들이야, 시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형벌 속에 사니, 죽음의 위협을, 시간의 촉박함을 느낄 수는 없지...그래서, 뭘 도와 드리면 되겠수?"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원하는 것을 내가 이미 눈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면서도, 저리 둘러대며 묻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알고 있잖소?"
"그게 선물이라고 해도 받기 껄끄러워서리…"
그녀에게 부탁의 댓가로 제시하는 나의 회춘비기는 아주 훌륭한 미끼이긴 했지만, 내가 순식간에 늙어가는 모습을 목도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그녀에게도 부담이 되기는 한 것일게다. 양 진영의 양손들은 표면적으로는 법을 거스르는 일이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암암리에 지들끼리 똥꾸멍을 맞추는 일들마저 일일이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선한 용기로 들쳐나선 자들이, 도리어 사악한 힘에 사로잡혀 무작위적인 살인을 저지를 때에도, 반드시 뒷짐지고 향방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 이건만, 선과 악의 행동대로서 양손이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사건을 조기에 종결시켜 그 밸런스를 단번에 중립화시키는 경우도 왕왕 있기에,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그게 그리 나쁜 그림은 아닌 모양 이었다.
"이번만은...거울 쫌 보시게나. 아참..그 쪽은 거울을 볼 수 없지…"
양손들은 성별의 구분도 없었으며, 평소 자신의 물질적인 외형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술로서 감싸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사람들 틈에 끼어 다닐 때에는, 신체를 드러나게 꾸밀 수도 있어놔서, 그녀의 경우, 거울로 자신의 의도적인 외형을 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본 적이 없다. 내 손과 몸뚱이도 내 의지로는 다 인식 되건만, 결코 반사되는 어떤 물체라 할지라도 난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악하다는 사실은 거울을 바라본다 하여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건만, 선함은 오히려 그런 자신을 돌아볼 때에 거만이라는 후유증을 낳게 된다는 법으로 인해, 거울을 볼 수 없는 것은, 우리 같은 부류들에게 내려진 전자발찌 같은 것이기도 했다.
"누가 우릴 봤다면 호호백발 할아버지랑 손녀딸 인 줄 알겠수…호호... 그러니 내가 그걸 또 받아서야 같은 양손끼리 체면이 안 선다는 거이지…….깔깔깔…내가 항상, 누누히, 뼈아프도록 말해 왔잖수? 양손의 입신(身)이 어째서 24살 인지...사람들이 얘기하는 딱 좋을 때란 거...그런데, 나나 당신이나 지금 꼬라지를 보면 그게 아니거덩...양손은 늙지도 않는다고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당신은 이미 영감님이 다 되셨고, 나도 40대 아줌마가 되었으니, 그건 무슨 연유일까 이거요...아니, 다 아는 사실이지...서로가 서로의 본분을 망각했을 때, 그 딱 좋은 때가 지나가 버린다는 진리...그걸 위에서 모를 리 없고...내가 당신의 선물을 받고 싶질 않아서가 아니라, 바보같은 양손을 하나 더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이 있어서겠어? 선함도 우리 측과 마찬가지로, 두 세력의 균등한 평형이 이루어져야 공존이 가능하잖수? 글고 우리에게 시간이 멈추어져 있을 따름이지, 죽음이 아예 없다는 건 거짓말 이란 거 다 아실 양반이...쯧쯧…"
그건 맞는 말이었다. 우리에게도 죽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나 나나 계속해서 자신이 속한 세력의 의지와 상반되는 똥플레이를 계속할 경우, 결국에는 이 세상, 그러니까 물질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간에, 그 어떤 차원과 시공속에서도 발 붙일 수 없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는 지독한 형벌, 소실(消失)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다.
"어찌보면, 인간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우. 우리야 모든 것을 목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삶의 한계가 있기는 해도, 다음 생을 기약할 수도 있고...여기가 감옥이라는 생각만 않한다면, 그게 그리 나쁘진 않거덩...깔깔...감옥도 살다보면 다 살아지게 마련이잖수?"
우리 같은 양손들은 세상을 그저 감옥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질 않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안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목적을 갖기도 하고, 터무니 없어 보이기는 해도, 꿈을 갖기도 하는 인간 군상들 이야말로, 그냥 두고 보기에는 남 주기 아까운 장면들 천지 였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하지."
"그 여자는 찾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텐데…."
그녀는 이미 나의 심중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 남자가 그렇게 살아가기엔 너무 안타깝기도 해서…."
"만일에 그 여자의 령을 찾았다 칩시다. 윤회의 반열에 들어가 버린지 오래라면 어쩔거유? 이미 다른 나라, 다른 민족으로 응애하고 태어나서 지 살기 바쁜 와중이라면 어쩔거냐고요...니이미... 그 할일 뒤지게도 없는 양손 나부랭이가, 누군가의 대가리에 번쩍하는 영감이랍시고 꽂아준 대로 영화인가 뭔가로 만들어져서 돈푼깨나 만졌다는 그 스토리...그거 우리 쪽 양손 얘기라우...쪽 팔리지만서도...살거죽 옷깝데기 바꿔입고,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령으로 만나서 뭐 할건데? 한쪽은 응애에다, 다른 한쪽은 좇털 빵빵한 아쟈씨? 근데 응애로 태어난 아그가 이번 생에서는 남자? 이거 해도 너무 하는 좇거튼 결말 이잖수? 근데도 찾아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이 말이쥐, 내 말은…."
"내가 아는 바로는 아직 그 남자 주변을 맴돌고 있다니깐……."
"알아요...그러니 하는 말이우. 만일에 이 일이 법을 어기는 걸로 판명되면, 나나 자기나 간에 소실(消失)되는 건 알고 계시지?"
그건 그랬다. 인간의 일에 항상 뒷짐지고 있으면서, 각자 양손이 추구하는대로 인간을 내면적으로 설득 시킬 수는 있어도, 나서서 앞장 섰다가는 바로 양손들에게 가장 큰 형벌인 소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 이기도 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또 그 놈의 수작질...아니 착하게 산다는 양반이 허구헌날 뭔 놈의 상황극은 저리도 좋아할까? 아예 개그맨으로 나서지, 양손질은 왜 하고 앉았다니...내 참...어이가 없어서리…"
그녀도 항상 나의 제안에 솔깃해 하는 걸 보면, 꼭 악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눈매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서로가 으르렁 대면서도, 선과 악의 경계는 어쩌면 양손인 우리들처럼 대충 모호한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제2부:바람이 분다-
"이 분을 만나서 어떤 것을 취재해야 하죠?"
"아니, 아까 회의 시간에 뭘 들었어? 우리 자매님, 오늘 왜 이러시나? 허구헌날 노랠 불러서리 귀에 사리가 찼어도 찼겠구만, IoT(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하는 단어, 지겹지두 않남? 그 분을 찾아가서 IoT에 대해서 서문 정도라도 따와야 가오가 있지, 그럼 아무나 글빨 지린다고 앞세울까봐? 외부 인사들 안만나주기로 소문난 또라이 라니까 어떻게든 잘 구슬러서 특집에 써 넣을 꺼리, 찝어 오시게나. 아니, 요즘 신입한테는 취재 대상 섭외도 이 짠밥에 내가 해 줘야 하는 거야? 도대처 OJT(실무적응교육훈련)때는 쎄쎄쎄만 하다 오는 거삼?...얼릉 튀어 나가지 뭐하나? 놀아줘?"
사실 신입이 할 수 있는 구석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주필의 특권상 저렇게 악다구니를 쳐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주섬주섬 위에서 시키는 대로 물어다 온 개퍼즐 같은 쪽글들이 오바로꾸 쳐진 후에는, 처음 예상과 다르게 빼어난 문장과 활자로 바뀐다는 것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여자의 몸으로 공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이 면접시에 신선한 충격이 될거라는 나만의 인터뷰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에 희희낙락하던 것도 잠깐, 부서내에서 나에게 쏟아지던 그 수 많은 부담스런 시선과 요구는 가히 돌아버릴 지경이 되고 있었다.
#과학 어쩌구 관련껀은 화영씨에게 물어보면 되요...#
@화영씨가 홍일점으로 공대를 살이 문드러지도록 주물렀대자나, 뭘 모르겠어?@
%컴터가 맛이 또 갔넹..화영씨 어디갔니?..%
&이 꼬부랑 글씨, 약자가 무슨 의미래?&
요즈음 뜨는 앱은 뭐가 있을까아요?
다들 죄다 미친 것 같았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나의 무식한 구석을 발본색원하려는 것처럼 쪼사대는 통에, 어떨 때는 취재를 빌미삼아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편할 때가 많았으니까 말이다.
&..띵동..띵동...띵동&
연구소를 들러 받아온 주소대로 찾아간 곳은, 재건축이나 해야 될법한 허름한 아파트 였다. 내심 속으로는, 한 분야의 대가다운 박사급이라면, 요즘 핫한 지역의 전망 좋은 럭셔리 콘도를 예상했건만, 이건 첨부터 꽝 이었다. 게다가 초인종 소리도 촌시럽기 그지 없었고, 안에서는 기척조차 없으니, 하루 일진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버라이어티 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고 진행 중이었다.
&딸깍...&
그 흔한 보안키도 없는 아파트 문고리를 무심코 돌린 순간, 그냥 스르륵 열리는 서슬에, 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 댔다. 이러다 누구라도 볼라치면, 바로 고발깜인데 라는 생각에 한발 물러섰지만, 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이 없었어도 스르르 열렸다.
"계세요? 저...연구실에서 연락받으셨나요?…00일보 과학부의 이화영 기잡니다. 취재때문에 들렀는데요...계세요?"
그러나, 안에서는 대꾸가 없었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요즈음 신문 방송에서 툭하면 다루는 호딩(현실의 경제적 위기감을 보상받기 위해 쓰레기를 모으는 일종의 집착증) 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와락 들고 있었다. 사실 여기 오기전에 연구소에서부터 나는 예감이 별로 좋질 않았었다.
#그게.....만나셔도 별로 말씀이 없으실 거에요...집전화, 핸드폰 다 먹통인데다…하시던 프로젝트, 산학연계 연구과정들 모두 작파 하시고, 집에 들어 앉으신지가 한 삼개월 되나?…저러다 돌아가시질 않나 걱정도 되는데...저희로서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남겨 놓고 가신 과제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지도 방향도 스킵하시고 저렇게 두문불출 하시니...음식이나 제대로 드시나 모르겠네...연구원들이 돌아가며 가 보기는 하는데,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정말 아까운 분이에요. 그렇게 사실 분이 아닌데….#
인터뷰는 고사하고 제대로 명함이라도 전달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는 했어도, 이 지경 인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곡예 하듯이 집안의 너저분한 물건들을 발끝으로 헤치면서 현관을 지나자, 더더욱 가관인 거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집안은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로 오만상 표정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건만, 어디에다 틀어 놓았는지, 공포스런 분위기를 획까닥 능가하는 백뮤직까지 교교하게 흐르고 있었고.....
&...챠카탁...&
그건 내 기억의 저편에 자리잡고 있던 익숙한 기계음 이었다. 분명 그것은 테잎이 자동으로 되돌아가면서 반대편 사이드로 음악이 전환되는 테잎 플레이어의 소리가 분명했다. 아무리 취향이 독특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구닥다리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자세부텀 맘에 않들고 있었기에, 난 기가 턱하니 막힐 따름 이었고...
"…아무리 그래도 IEEE802.15.8은 너무 초기 도입단계야. 에너지의 사용량이 커...이래가지고는...FHSS같은 보안 나부랭이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다구...Wi-Fi나 Modbus조차도... HART, Fieldbus 같은 상호호환성도 나한텐 필요없어......스마트...스마트...스마트...개뿔...왠통 스마트라도 내가 원하는 에너지를 잡아줄 스마트 플러그 나 센서가 이리도 없나?....아냐...아냐...센서들 간의 융합 이나 매쉬업 (mashup)을 통해 새로운 가상 센서를 만든다면?...그래도 그걸 돌려야 할 머쉰이 있어야 하니...첨부터 다시 해야 되는 건 마찬가지고...."
"저....연구소에서 소개로 온, 00일보 과학부의 이화영 기잡니다. 취재때문에 들렀는데요..."
들어도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만을 되풀이 하면서, 책상 위에 토해 놓은 것처럼 너저분한 종이 뭉치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미친듯이 적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오늘 취재를 해야 할 그 박사라는 인간이었다.
"….DSSS와 FSK의 물리계층을 기반으로 해서 DSME 와 ALOHA 등의 MAC 으로 구성을 하는 것 까지는 봐 주겠는데....DODAG를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오브젝트에게 성공적으로 라우팅 시키느냐....저전력...소전력...미세전력....극미세....초미세..."
"오늘 초미세 먼지 경보가 있기는 했는데요. 그리 날씨가 나쁜 것 같진 않네요..."
그러나, 그 박사란 사람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으로 레이져 프린터 위에 출력된 종이뭉치를 가리키기만 했다. 먼지가 풀풀 쌓인 그 출력물은 다름 아닌, 보도자료 였다. 그 어떤 잡지사나 신문에서도 항상 다루었던 그런 얘기들로만 적혀 있는 그런 내용들...아마도 수 없이 드나드는 기자들을 향해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식으로 이런 배포물을 출력해서, 갖고 가던 말던 신경끄고 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도 이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나온 이상, 더 물러설 곳은 없다는 생각에 그 보도자료를 큰 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소음 테러였다.
"……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지능화된 사물들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물, 현실 또는 가상,
더하여 사물과 사물간에 상호 소통하고 상황인식 기반의 지식이 결합되어
지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인프라이며,
스마트 디바이스,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술 등과 융합하여
개방과 공유를 지향하는 초연결사회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도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2020 년에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의 수는
약 260 억 개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현재 여러분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PC, 타블렛,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도
약 3,000 억 달러의 시장창출과 1.9 조 달러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되고...."
"그만, 그만...그만..."
난 열나 고갯짓을 하며, 허공을 향해 소리치는 그 인간을 향해, 이제야 약발이 먹히는 구나 하면서 쾌재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쫌 조용히 하시지? 음악이 안 들리질 않나 말이야..."
엥? 이건 또 무쉰 망발....그러고 보니 방 안에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노래 비스무그리 한 것이 흘러 나오고 있기는 했다.
"뭐라도 건지려면 노동이 필요하지 않을까마는....."
난 평소와 다르게, 단번에 그 박사의 말귀를 알아듣는 비범함을 보이고 있었다. 난 가방을 내려놓고 팔을 걷어 부쳤다. 쫑알대면서도 나는 가까운 슈퍼로 가서 종량제 봉투를 한 무데기 사들고 들어와서, 집안의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니미럴...내가 내 방도 안치우고 사는 년이, 이게 왠 개고생?@
하지만, 언제나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저 잘난 인간의 아가리에서 보도자료와는 다른 인터뷰를 꼭 따내고 말거라는 오기 뿐이었다. 암막커튼을 제치고 나자, 집안으로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먼지들이 군무를 추기 시작했고, 밖이야 미세 먼지가 개지랄을 떨던 말던, 이 집안 공기보다야 낫겠다는 심정으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창문을 화알짝 열어 제꼈다. 이제 집안의 살림은 오래전부터 내 것 이었던 것처럼, 찾으면 찾는대로 내 손에 들리워지고, 청소기 마저도 오랜만에 주인을 맞이하여 qq 거리면서 추임새를 넣었다.
@어쭈? 이 인간 쫌 보지?@
그 잘난 박사란 인간의 의자 밑을 청소기로 쑤셔대려 하니 달랑 발을 드는 치사한 액션까지....그러나, 그게 욕을 퍼부을 상황은 아닌 게 분명했다. 어차피 사전에 설정된 갑과 을의 세력 싸움에서 난 이미 승리를 포기하고 무릎으로 기어야 하는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3시간이 넘도록 지지고 볶는 사이, 집안은 얼추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커피나 한잔 타 먹고, 목에 낀 먼지나 씻어내야지 하는 심정으로 물을 끓였지만, 생수도 없는 이 판국에 수돗물로 끓여대는 커피물이 찝찝한 것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슈퍼에서 이럴 줄 이미 알았다는 듯이, 그것도 내 돈 주고 사온 믹스커피와 컵라면을 내려다 보면서, 나의 조잡한 예지력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기에는, 처량함이 스멀대면서 내 뒤꼭지를 뒤뚱거리게 하고 있었고...
"아!...맛나다..."
점심때면 직딩들의 과시물처럼 커피를 손에 들고 직장 주변을 배회하는 것도 모자라, 이 집 커피는 죽이네, 저 집 커피는 닝기리네 하면서, 타박을 일삼던 나였건만, 그저 유명 여배우가 찍혀 있을 뿐인 믹스커피 한잔에 이토록 감동을 받을 줄은 나 스스로도 놀랄 판이었다. 혼자 먹기에는 그래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 관계로, 난 똑같이 보이는 잔에 커피를 한 잔 더 타서 슬그머니 박사의 책상 구석에 밀어 넣었다.
"한잔 더...."
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고맙다는 답례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덜렁 다 비운 컵을 들어내는 저 몰염치...하여간 가방 끈 길고, 먹물 진한 쇄끼들 치고 버르장머리 지대루 벡힌 인간 없다드만...그게 꼭 이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 틀림 없었다.
"쨍그랑..."
박사가 버르장머리 없이 내민 컵이 분명 내 손으로 전달되었다고 느낀 순간, 미끄러지듯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따스한 커피를 떠 먹여 주던 그 컵이란 물건이 그토록 쉽사리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을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세상의 물질이란 것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는 그 단순한 이치가 더욱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깝네....컵이 쎄트 였나봐..."
그제서야 그 잘난 박사란 인간이 의자를 빙 돌려 바닥에 널부러져 버린 파편 조각을 내려다 보았다. 깡마른 옆모습에 헝클어진 머리 였어도 이목구비가 그렇게 꽝은 아니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예상하진 못하지..."
"네?"
"애초에 저 컵이란 물건은 만든 사람의 의지가 현존하는 지식을 이용했고, 그것으로 물질을 형태로 변형 시켰지만, 딱 그만큼 만의 쓸모를 위한 것일 뿐, 의미는 없어진지 오래라...."
"그 컵조각에 여자분 사진이 프린팅 되어 있던 것 같던데...."
"알아요....아직까진 그런 식으로라도 내게 표현할 수 있으니...."
"무슨 말씀 이신지?"
난 그 박사를 인터뷰하라고 지시한 인간의 코꾸녕을 엄지 발가락으로 디리 쑤셔주고 싶은 맘 뿐이었다. 장갑을 끼고 바닥에 깨진 컵조각을 치우면서도 별일 없는 양, 또다시 책상에 파묻히는 그 사람의 무심함에 불현듯 화가 치미는 것을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으며,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건만, 그건 그저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것이었다.
"저...제가 할 만큼은 한 것 같은데...이제 인터뷰를..."
"나에게 인터뷰를 하는 게 중요한가요, 아님 다른 얘기를 듣고 싶은 건가?"
"저 보도자료야 누구나 갖고 가는 거고, 이번에 저희 특집기사에 박사님의 새로운 의견이나, 전공하시는 사물인터넷에 대한...."
"사실 제 전공에 대해서 정확히 아시는 건 뭐죠?"
"대학에서는 전자기학과 광통신학을 복수 전공하셨고...설라무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네?"
"바람이 불고...빛이 생겨나고...나뭇잎이 솟아나고...꽃이 피고, 물이 흘러 바다로 가고..."
난 오늘 완전히 시간 낭비의 막가파와 맞짱을 뜨러 온 느낌 뿐이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어요. 있는 현실을 설명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 낸 경험치의 최적화 일뿐...사물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죠?"
"그거야 인간에게 주어질 편리하고 에너지 절약적인 친환경,...아닌가요?"
"아뇨...사물 인터넷은 사람과 기계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일 뿐이에요. 결론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극소화 시키면서 이제까지 힘을 들여 해야 했던, 머리를 뒤지게 굴려야 했던 일들을 기계가, 앱이, 도구가 대신하도록 도와 주면서 그게 어디선가 인간을 돕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일종의 인간 노동력에 대한 무능화 체제죠."
"박사님의 연구결과에 이렇게 정면으로 디스 하셔도 되나요?"
"난 지금 시간이 없어요. 기자 양반이랑 씨름할 새가 없단 말...이해 않가요?"
"모두 마찬가지 잖아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제가 지식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을 편리하게 하고 시간을 절약하게 하면서, 과학적 소비를 지향하는 모토로 연구된 것이 사물 인터넷 아닌가요?"
"어떤 소비요?"
"뭐 전기, 돈, 시간...뭐 그런거요."
"그래요...내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사물인터넷도 전기 없이는,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가설을 깨고 싶은 거에요. 인간만이 전기...아니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물을, 도구를, 환경을 움직이죠...맞아요. 그런데, 어째서 자연은 그런 것이 없이도 서로 교통하고, 움직이고, 변화하며 제 할 일을 해나가죠? 하느님이? 자연 스스로가? 아님, 외계인이?"
난 박사의 질문에 당황하고 있었다. 과학자 인줄 알고 덤볐던 인터뷰가 묘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차츰 느끼고 있었기에...
"그건 불가능 하다고 알려진 무한동력에 대한 것들 아닌가요? 이미 가설이 허구라는 게 증명 된 거......"
"그 말이 아니에요. 인간이 죽으면....모든 활동이 멈추고...그런데, 엄마의 몸속에서 난자가 수정되고 나면 어떻게 되죠? 스스로 분화됩니다. 이건 누구의 에너지죠? 엄마? 정자? 난자 스스로의 자생력? 그런데, 그 사이에 누가 전기를 썼나요? 내가 지금 매달리고 있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늘을 움직이고, 바람을 불게 하고, 나뭇잎들을 번성하게 하며, 벌레와 새와 식물들을 움직이는 힘...그것들을 알아내야 하는 게...."
"그게 사물 인터넷과 무슨 연관이..."
"우리의 과학은 전기...아니 에너지에 기초해서 디자인되죠. 세상이 있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에너지를 알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 에너지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센서와 하베스트 머쉰이 있을 수 있다면, 세상의 그 어떤 물질에도 라우팅 시킬 수 있고, 통신이 가능하죠. 방송국이 있고 아무리 특정 주파수로 음악을 송출해도 그것을 수신하는 라디오가 없다면 그건 허공에 뿌려지는 의미없는 것들이 되고....공중을 관통하는 주파수를 해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듯이...."
"그건 유전자처럼 신의 영역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이건 제 무식한 가정 인데요. 만일에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물인터넷을 구현하면 어떻게 되죠?"
"메트릭스란 영환가요? 자신이 맞서 싸우던 실체가 데이터의 복합체란 것을 깨닫는 순간, 어찌 되었는지...자연을 움직이는, 안보이는 허공을 움직이는 자연의 극미량 부유 에너지를 내가 볼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스마트 리더가 가능해 지면....난 여기 앉아서 우리 집 앞의 나뭇잎과 부산 앞바다의 파도를 거쳐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앞 잔디잎까지 단번에 라우팅을 할 수 있게 되고....인터넷이 없이도 미국대통령의 연설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겠죠. 아주 가깝게는 우리 집 앞 은행나무에 앉아 있는 참새의 눈을 겨냥해서 라우팅을 하면 참새가 바라다 보는 세상을 CCTV처럼 볼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
"그게 가능한가요?"
"그건 저나 기자분이 살아있는 것과 같아요. 우린 전기 없이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느끼잖아요? 내 몸에는 극미세전류가 흘러 뉴우런을 움직이고 있고, 뇌는 그것을 기반으로 제 몸을 살리고 있으며, 영혼의 요구대로 욕구를 창출하면서, 삶을 이어나가죠. 저와 기자양반처럼...단지 그 에너지를 끌어다 쓸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그 중심에 있는 영혼의 힘과 아이피 주소를 읽을 수 없다는..."
"한계라뇨?"
"그 에너지는 기자양반 말처럼 신의 영역 안에 있죠. 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영혼의 에너지를 읽는 스마트 센서에 있으니까요. 만일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역으로 허공을 떠도는, 에너지를 아직은 갖고 있는 영혼이라면.... 그 사물인터넷의 스마트 센서에 라우팅 할 수 있고...나에게 할 말을 할 수도 있게 되겠죠...그렇게만 된다면...."
난 심오하면서도 허무맹랑한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 스스로 평소와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해져 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제3부:너무 다른 널 보며-
"그런데, 청력에 문제 있으신 건 아니죠?"
난 질문을 던져 놓고도 아차 싶은 후회 뿐이었다.
"왜요?"
"저 창가에 틀어 놓으신 테이프 플레이어....음악이라고 보기에는 영...."
"듣기 싫어요? 난 멜로디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읽고 있는건데...."
입밖으로 되도 않는 잡소리만 뇌까릴 줄 알았던 박사에게서, 왠지 씁슬하고 암울한 대답이 툭 튀어나와,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테잎이 늘어지고.....그러다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 붙이다 보면, CD를 살 생각도, 핸폰이나 PC로 들어야 한다는 욕구도 사라지죠. 그 음악은 누가 들어봐도 공포영화의 백뮤직처럼 들릴진 몰라도, 나에게는 아니에요. 그 음악속에서 내가 행복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나 나의 머리를 흔들고, 온 에너지가 피부로 뿜어져 나가는 느낌이니까....이해할 수 있겠어요?"
"아뇨..."
난 아닌 건 아니었다.
"잠깐만 계셔 보세요."
난 쓰잘데기 없는 보도자료를 메가폰처럼 말아서 밑둥을 찢은 후에, 바지춤 안의 핸폰을 꺼내 앱을 열고서, 그 메거폰 밑에 핸폰을 밀어 넣었다. 언젠가 TV선전에서 본 기능이 썰은 아닐까 의심했었기에 속는 셈치고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온 집안에는 맑고 청아한 음색으로,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그 여가수의 청승맞은 노래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박사는 표정이 굳어 있었고, 보다 진보된 문명의 이기로부터 흘러나오는 보정된 노래가 그닥 감동적이진 않은 얼굴 이었다.
#띵띠리리리링...#
노래는 걸려온 전화로 인해 멈춰 버렸다. 팀장이었다.
"네....이화영 입니다.....네....뵙기는 했는데...인터뷰 중이고요....네.....다른 학설을 늘어 놓으셔서....네....네...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아니면, 정리되는대로....보내겠습니다....네...네...."
박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앱에서 흘러 나오고 있던 음악을 정확하게 멈춘 기자 양반의 전화는, 과연 얼마만한 확률로 걸려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런 개고랑말코 같은 통계학은 생각해 본 역사가 없었다.
"박사님, 개인 적인 것을 좀 여쭈어 봐도 실례가 되질 않을런지요?"
"커피 한잔 더 타 줄 수 있어요?"
"네."
난 이 집에 들어서고 부터 어째서 저 엉뚱한 소리만 늘어 놓는 박사의 부탁을 한치도 거절할 수 없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입바른 소리, 돌직구, 맞짱뜨기 같은 설전에서 져 본 일이 없는 나 였음에도, 어찌하여 고작 인터뷰라는 미명하에 이리도 비굴해 질 수 있는가가 이해되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희처럼 참 커피를 맛나게 타네...."
"프로필에는 미혼으로 되어 계시던데, 혹여 결혼하실 사이인가 보죠?"
"하려했죠...이미 고인이 되서 그게 어렵지만...."
"미안합니다. 제가 모르고 여쭤봐서...."
"아뇨...죽은 건 죽은 거죠...피할 수 없는 결말이고,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제가 머뭇거려야 할 이유도 없고, 기자 양반이 미안해 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연구소에서 지금 진행하시던 프로젝트들을 모두 물리셨다고 하던데, 그게 그 이유랑..."
"한국 사람들은 그게 겸양이자, 배려라고 생각하나봐요. 질문도 어떤 때는 흐지부지, 밑도 끝도 없이 흐리멍텅...그냥 그 여친 때문에 연구 때려 치셨냐 이렇게 물으셔야죠, 안 그래요?"
"그렇긴 해도, 그게 실례라서....다른 기자들에게는 그럼 이런 얘기들을 하신 적이 없으신가 해서요..."
"집 청소랑 커피도 타다주신 분은 기자양반이 처음이네요....생각해 보니, 윤희도 그랬죠. 내가 하는 그 보잘 것 없는 연구에 방해 된다며, 정작 해야될 얘기는 웃음으로 떼우고, 고갯짓으로 감추고...그러다, 그녀가 떠나고 보니... 나만 나쁜 놈이 되있습디다...사는 꼬라지를 좀 보세요. 이게 결혼할 사람이랑 같이 살던 곳인데, 살만해 보입디까?"
박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벌려놓은 프로젝트들은 끝까지 어떻게 하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버린 그녀를 위한 연구를 위해 자금을 모아보려는 발버둥 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모자라는 살림에, 결혼식은 아예 꿈도 꾸어보지도 못하고서, 돌이킬 수 없는 병이 깊어갔음에도 내색 한 번이 없었고, 자신을 마중나오는 길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에도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비닐우산도 다음에 써야 한다며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그녀...
"아까 테잎으로 들었던 음악은 윤희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내가 그 노래를 계속해서 틀어 놓는 이유는, 윤희의 아우라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기 위해서죠."
"아우라라뇨? 뭐 종교적인 신념이락두...."
"인간이 죽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서 살아 온 기억이 완전히 탈색되기 전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주위에서 머물다 간다고 누군가 얘기했죠. 그게 영혼이든, 아우라든, 무엇이든 간에 전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그 에너지가 사라져서 다음 생애에서 나를 전혀 모르고 태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전에 그녀에게 꼭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제가 매달리고 있는 숙제에요."
이건 뭐 정신이 뺑글 돌다 못해, 상미친갱이랑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죽은 자와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 사물 인터넷이랑 뭔 관련이 있길래..."
"사물의 범주를 나 나름대로 해석한 거죠. 광범위한 사용자들을 대상으로한 것이 아니라, 사그라져 가는 윤희만을 위한 사물 인터넷을 구현해보고 싶은 것...그래서 맨 첨부터 기자 양반에게 시간이 촉박하다고 얘기한 거죠..."
"그게 이 방안에서...가능 하다고 여기신다는 거죠?"
난 컴터 이외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주위를 빙 둘러보며, 에라이 꿈깨셔라는 투로 내깔겼다.
"그 핸폰 좀 줘 봐요....사람들은 와이다이라고도 하고 미러캐스트네, 어쩌네 하지만 모두 무선통신의 기법아래 뭔가 볼거리만을 찾는 사람들에게 된통 빠져 보라고 함정처럼 개발한 거에요. 자, 여기 핸폰에서 제 컴터를 향해 와이다이로 연결해 볼께요....그리고 이렇게 내가 코딩한 앱을 중간에 실행 시키면...."
"분명히 제 핸폰의 다시보기 드라마가 박사님 모니터로 튀어 나와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나타나쟈나요?...뻥이죠?"
"아니에요... 제 목적은 와이다이의 기능을 일부 이용하는 것이지, 뭘 보여주려고 연결하는 게 아닙니다. 그 핸폰을 사방으로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아참...내가 소리를 줄여 놨네..."
내가 손전등을 비추듯이 허공을 향해 핸폰을 이동시키고, 박사의 컴터에 소리를 높이자,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미세한 주파수 소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핸폰을 더욱 천천히 이동시켜 어느 지점에 이르자, 그 소리는 짜여진 악기소리처럼 정교한 음색처럼 들렸고, 그 위치를 벗어나자, 그 소리는 점차 작아지면서 사라졌다.
"들으셨어요?"
"네....근데 이건 뭐죠? 잡음? 제 핸폰을 해킹하는 개또라이? 이거 최신형 인뎅...."
"이번에는 소리가 나던 그 위치로 핸폰을 다시 움직여 보세요..."
그러나, 이번에는 소리가 전혀 들리질 않았다.
"아마, 움직였을 테죠."
"뭐가요?"
"….음...기자 양반.... 가방 쪽을 향해 봐요. 아마 관심 있는 게 그 쪽일텐데....."
난 등골이 서늘해지고는 있었지만, 박사의 말처럼 조그만 식탁 위에 널부러져 있는 내 가방을 향해 핸폰을 이동시켰다. 아까처럼 점점 커져가는 그 묘한 소리의 복합체....
"별거 아니에요. 우린 전기와 기계의 힘을 빌어 무지막지한 량의 데이터를 공중으로 날려대고 있죠. 동영상을 무선으로 다른 기기에 복제해서 보내는 그 스트리밍을 가로채고, 주변에 이 스트리밍을 방해하는 극미세전류가 있다라는 가정하에서 제가 만들어낸 스마트리더 앱이죠. 분명 윤희는 에너지를 지닌 채, 제 주위에 있지만, 매일, 매 시각 그 힘이 약해져 가고 있고, 저와 그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는 한계와 구조가 다름으로 해서, 난 그것을 뚫어야 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 뿜어내는 아우라라는 증거가 없잖아여? 아무리 후진 아파트라고 할지라도, 윗층과 아랫층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와이파이 신호의 일종 일 수도..."
"그럴 수 있겠죠, 그럼 제 모니터를 보실래요?"
모니터에는 박사가 깔아놓은 프로그램을 통해 거미줄처럼 얽혀서 이 방을 돌쳐들고 있는 와이파이의 아이피 주소들이 깨알같이 표시되고 있었고, 그 중에서 한가지 만이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와이파이는 자신의 안테나 주사방향을 레이더처럼 회전시키거나 바꾸지 않는 한은 지향성이 변동되는 법은 없어요. 그런데, 이 물음표의 아이피는 어떻죠?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 세기가 시시각각 변합니다. 이 아우라가 존재한다 해도 서로가 방법을 모르는 겁니다. 제가 속한 이 세계의 기기에 스마트하게 접근하는 방법도, 제가 이 아우라와 교통할 방법도...보이긴 해도, 느낄 수는 있어도, 언어가 달라 할 말을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난 박사의 그 이론에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물인터넷을 취재하러 왔다가 된통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난 내 의지가 아닌 듯, 돌발적으로 박사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살펴본 모니터....과연 내 추측은 옳았다.
"그래...분노....그것도 아우라를 자극하는 요소 일 수 있지."
박사도 깨달은 모양 이었다. 애절한 느낌만으로 서서히 주눅이 들어가던 그 신호의 세기가 돌변한 것은 나의 작은 손짓으로 인해, 아우라라고 이름 붙여진 그 여인의 에너지에 무언가를 전달하고 변형시킨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그래요. 그 아우라에도 우리가 원한다면 증폭의 과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내가 몰랐지? 기자 양반 대단하네, 이름이 뭐라고...."
"네 이화영 입니다."
"화영씨...그 의자를 갖고 이리 와서 가까이 앉아 봐요."
이제까지 버르장머리 없던 박사의 까끌스러움은 온데간데 없고, 갑작스레 친절을 떨어대는 통에 난 정신이 하나도 없긴 했다. 난 그제서야 내가 인터뷰를 하러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박사의 충실한 모르모트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찝찝함이 앞서고 있었다.
"제가 알기로는 죽고나면 성별이 없다고 하던데...."
"그건 에너지가 사라지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중간 과정에 있을 때의 이야기죠.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들 증언하지만, 사실 그곳은 휴식처 같은 곳이에요. 삶도 죽음도 없고, ...다만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행한 만큼의 과정을 회상하는 영화관 같은 곳이랄까요? 선한 일을 많이 했다면, 감동적이고 가슴벅찬 느낌으로 그 기간을 지냈을 터이니, 천국이라 불러질 테고, 후회막급으로 막 살아온 나 같은 인물은, 가슴을 치며 절규하는 스토리의 연속일테니, 괴로운 영화 한편의 징한 감상문 쓰기이려니 한다면, 그 심정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런데, 박사님은 죽어본 일도 없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확신하세요? 글고 그런 것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일이니, 박사님의 연구범위와도 맞지 않는 불모지 인데,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닌가 해서요."
"윤희가 병원에 실려가고나서야 연구실에서 그 소식을 들었죠. 아무런 유언도, 외마디 비명도 없이 그냥 나를 바라보듯이 눈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뜬 윤희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죠. 그래도 혼인신고는 되어 있었기에 보호자랍시고, 윤희의 시신을 보여주는데, 그만 정신줄을 놓고....만 이틀을 혼수상태에서 앓다가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요?"
"꿈인지, 생시인지는 모르지만, 윤희가 나에게 다가와 무슨 말을 하기도 하고, 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계속 소리만 쳐대면서 뭐라구, 뭐라 했냐구 하면서 쫓아 다녀도 그녀는 점차 멀어지기만 했고....그러던 저의 팔을 누군가 잡아챘죠. 그건 잔뜩 술에 취해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또렷한 느낌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진 않겠지만...."
박사는 일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을 갖고 있었다. 보통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듯 허망하게 보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을 이야기 들을, 다큐처럼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는 다는 것이 별나게 보였으니 말이다.
"형체도 분명하지 않고, 촛점도 정확하게 맞출 수 없었지만, 분명히 사람같은 형상으로 다가와 나에게 또렷한 음성으로 말을 전했던 겁니다. 누군가 깨어난 후에 되새겨 보라고 한다면 꿈에서 절대자를 직접 대면했느니 어쩌고 횡설수설 하겠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그 어떤 종교적인 색채도 없었을 뿐더러, 저의 본능....그러니까 모든 것들을 증명하고 구현하려는 과학적인 욕구에 대해서 호소하는 태도 였으니까요."
"뭘 요구했는데요?"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준 것 뿐이었어요. 세상은 어떤 존재이고, 내가 속한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의 허망함에 대해서도...삶과 죽음의 경계는 인간이 만들어 이해하고 지식처럼 받아 들인 관습에 의한 것일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진리....난 그 자와 많은 시간을 얘기하며, 분노하고, 다그쳐 봤어요. 그 자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나처럼 대답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지식의 고갈도, 의견의 편협함도 아예 없었죠. 그저 거대한 산을 눈 앞에서 맞서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정신이 들자마자, 매달려 온 게 지금까지 에요. 윤희의 장례식 도중에 눈물도 없이,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한다고 다들 욕합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사물, 사물 어쩌구 하더니 사물놀이 하다 대가리나 꺾어져서 뒈져버리라더군요...머릿속은 윤희의 아우라를 쫓을 생각에 정신도 없었고....그 자의 얘기 때문인지,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컫는 삶과 죽음의 정의와 경계에 대해서도 많이 모호해진 터라, 슬프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 이에요.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다해서 윤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 며칠 전이에요. 하지만, 겨우 아우라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앱만 만들었지, 도무지 진전도 없고, 이러다 이도 저도 안되면 나도 윤희를 따라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 뿐이었고...."
"그렇다면 저렇게 신호가 증폭된다고 하더라도, 뭘 어떻게 증명하실 건데요? 아무리 방송국에서 전파를 쏴대도, 지금 박사님의 꼬라...아니, 박사님의 상황은 안테나만 덜렁 붙들고 방송을 듣고 싶다고 세상에 외치고 계신거 아닌가요? 적어도 라디오나 갖고 계시면서 안테나의 감도불량을 탓하신다면 몰라도..."
난 하마트면 꼬라지라고 외칠뻔 했다.
"이런 말이 있죠. 강전(强電)은 미전(微電)을 보진 못해도, 미전은 강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거..."
공대를 다니면서 언젠가는 들어 본 말이었다.
"그럼 박사님은 무얼 기대하시는 거죠?"
"내가 윤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헷지랄을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제자는 내가 돌아도 아주 완전 빡돌았다고 중얼대며 가기도 했고...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 원하는 것은 윤희의 아우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 자가 말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이 세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나의 사물인터넷 연구속에서 반드시 윤희와 손이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손이 닿아서 어쩌실 건데요? 그저 흔적도 없고, 미세먼지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 허뭉탱이를 존재인 양 붙들고, 이 후진 구석에서 헤헤거리시며, 굶어 뒈지실려구요?"
난 그래도 뒈진다는 표현은 평소의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이미 뱉어놓은 가래침이었고, 싸놓은 똥덩어리 였다.
"죽는다는 거, 이젠 두렵지 않아요.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을 싫어해요. 왜 그렇죠? 죽는 것은 무서워하고, 늙는 것은 안타까와 하면서 그걸 막을 방법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과학과 의학이라는 구실아래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거 아세요?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개발되고 세상에 선보여도, 안티에이징, 네버다잉 라이프는 입에 발린 프로파갠더들의 뻔한 사기빨일뿐, 절대 불가능했었고요...오히려 옛날 사람들이 더 철학적으로 살았으면 살았지....죽은 후에 그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면 이 세상으로 빨리 돌아온다는 믿음....죽음은 재탄생을 위한 과정일 뿐인데, 역사와 관습속에서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들이 죽음을 끝내기 피날레로 땡처리
-제1부:듄-
‘그런 얼굴로 질문 씩이나 하려구?’
난 그녀의 능력을 별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질문은 차근차근, 한번에 하나씩...
그리고 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경우,
들을 생각은 접는 게 좋아, 알지? 내 성질...’
‘이게 질문 받을 자세니?’
그녀는 나의 방문과는 무관하게 불러들인 놈팽이들과 열심히 몸을 굴리는 중인게다.
‘이게 뭐 어때서? 어차피 얘들... 혼빠진 아그들이라, 기냥 들이대기나 하는 거이지, 자네랑 나의 고고한 만남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알아서 하시게나.’
그녀의 자세는 도저히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자세 였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몸을 꿈틀댔다. 한 녀석은 바로 누워 그녀를 자신의 위에 올려 놓고서, 심폐소생술 받는 환자가 심장쇼크로 털럭대듯이, 간간이 하체를 들썩이며 경련하고 있었으며, 또 한 녀석은 이미 아랫 놈이 차지 하고 있는 그녀의 보지 대신, 놀고 있는 애널에 좇이 박힌채로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눈깔이 휘번덕 돌아가 있었다. 난 그런 그녀의 옆으로 돌아가, 의자를 끌어다 천천히 앉았다.
‘여전히 영양보충은 하시는 가 보네.’
‘얘들은 몰라. 이렇게 넋이 빠져서 한참 놀다가 집에 돌아가고 나면, 3,4일이 지나서야 모든 진기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챌 테니...즈그들이야 눈깔 뒤집어지는 섹스겠지만, 나에게는 링거라는 것을 알 리가 없쥐....’
남자들은 애초에 그녀와의 난교에 있어서 사정이 거부 당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눈 앞의 상대가 중년의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것이고, 사정도 하지 못한 채, 좇대가리가 꺼멓게 타들어 가듯이 충혈되면서, 진기가 시시각각 누수되는 것도 느끼지 못할테니 말이다.
‘하여간 문제는 문제야, 나처럼 늙어빠진 년 한테도 남자들이 애타게 달겨들고 있는데, 왜 젊은 년들이 가랭이를 안 벌려주고 지랄들인지...쯧쯧 다들 지만 잘났대지...나 원...’
그러나, 그것은 남자들의 문제가 아니긴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도 안보고 다니는지, 나 같이 수준 있는 여자를 어딜 넘보고 지랄이냐는 듯한, 보통 여자들의 태도와 180도 다른 눈매와 기술로 남자들을 향해, 어서 와서 쑤셔달라는 듯한 염력을 날리는 그녀의 의도가 문제라면 문제 였으니까. 그게 수렁인지, 함정인지도 모르고, 여신님 어쩌구 덤벼들고, 제발 한번만 빨게 해달라, 박게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빌붙어대는 지경은 이미, 그들의 혼백이 스미싱을 뚜드려 맞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요즘 애들은 예전보다 영양상태가 차암 좋아...지들이 알아서 프로테인 쥬스랑 닭가슴살, 빡빡 쳐먹어 주지, 근육도 지대로 키워놔서 그립감도 그만이고...이러다 내버려도 곰방 회복되서 죄책감도 없고...’
‘죄책감이라도 있었나?’
‘왜 없어? 예전에야, 문지방 나서기도 전에 코피 팡팡 쏟으며, 과로사랍시고 길바닥에서 골로 가는 애들 투성이 였는데, 나도 맘이 아프긴 했다우...’
‘전화를 그렇게 했는데, 왜 대꾸가 없나 했드만....’
‘요즘 것들은 문명의 이기에 너무 기댄단 말이쥐. 몸도 비대해지지 말라고 다이어트 씩이나 해대는데, 어째 문명의 이기에 중독되어서, 금단증상에 허덕대면서두, 살뺄 생각을 못해. 좋잖아? 연락두절되니, 이렇게 아나로그 미팅도 불사하며 달려오고...우리 같은 양손들은 이런 맛에 지나간 옛시절의 향수를 그리워 한다는 거지 뭐....깔깔깔’
양손.....우린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어차피 그녀나 나나, 양손에 저울질 이라는 옛말처럼, 서로의 견지에서 양손에 올려진 저울감을 달아보고 판단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요즘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냐?’
난 본격적으로 그녀를 보러 온 목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쌈박질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고상하잖수?’
‘쌈박질은? 어린애두 아니고설랑....그냥 묻는 거이지..사람들이 예전만큼 어리숙하질 않아. 인터넷이고 뭐고 간에, 이제는 소문만 가지고 을러대는 시절은 아니라는 거지.’
‘누가 뭐라 했어? 내가 자기더러 나랑 손 잡자고 한 일 없다, 알쥐? 이게 다 대세의 흐름이야. 그러게 일찌감치 내 밑에 와 있었으면 좀 좋아?’
‘양손이라고 다 같은 양손 인가? 자네랑 나는 서로간에 목줄 죄는 뿌리들인데, 엉켜봐야 서로 좋을 게 없지, 안그래?’
‘허긴....누가 이런 호시절이 올 줄 알았나? 기냥 놔 둬도 지절로 굴러가는 폼새가 박수를 따불로 쳐 드려야 할 심산이야....에그그...얘 봐라...또 휘딱 간다.....안되겠다. 기분도 그렇고...이쯤에서 얘들 돌려 보내야지, 안그러면 좇터지겄다, 좇대가 무신 가지빛으로 썩어설랑은....쯧쯧...’
인간이 한계를 이겨내는 법은 없었다. 인간이기에 섹스에 눈이 멀었고, 인간이기에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신체에 독을 품게 되는 묘한 메커니즘....그 안에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어리석은 진실을, 아직도 사람들은 섹스의 쾌락속에서 간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마호타수(磨呼打手) 이관재(移棺災).....’
그녀의 주문이 이어지고 상대남들의 이마에 양손가락을 얹어, 주술을 그리는 그녀의 진지한 모습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손가락의 휘돌림을 보아하니, 신체의 기혈이 제멋대로 뭉쳐서 터지는 것은 막아줄 요량으로 보였다. 이내 그치들은 짚단처럼 스러져 침대에 쳐박혔고, 그녀는 나에게 눈짓을 하며 나가자는 시늉과 함께 옷을 갈아입었다.
‘요즘은 끝장을 보시지는 않는 모냥인데?’
‘시대가 어느 땐데, 목숨을 경시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이 판국에, 섹질하다 지쳐 뒤진다고 하면, 자손 삼대가 욕해요, 이 냥반아...’
"여전하시우...하긴, 세간의 입과 눈에 오르내려 봐야 좋을거 없긴 하지…"
"됐고, 이렇게 법을 깨고 만나자고 했을 때에는 다 이유가 있을텐데…"
양손끼리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면 조우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법 이었다. 그녀는 이른바, 죄 지으려는 자들의 줄을 세우는 것이 임무이고, 난 선한 일을 할 사람들이 세파에 휩쓸려 그녀의 호객행위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 할 일 이었기에,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에게 으르렁 대기 바쁜 치들 이었다. 이른바 사람들의 앞에 놓여진 빨갛고 파란 두개의 알약을, 어떻게 선택하느냐 종용하는 바람잡이가 바로 양손의 할일 이었다.
그녀는 악한 길로 들어서더라도 죄의식이 없도록 용기를 북돋우며, 난 그 꼬임에 빠져서 인생 좇되지 말라고 팔짱을 잡아끄는 그런 상황...그녀의 말처럼 그녀에게 호시절은 호시절 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선과 악이 쌈박질을 하는 것도 이젠 옛말 일뿐, 대개는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잡는 것에 저어함이 없었고, 난 언제나 먼 산 보며,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기에….
"우리의 존재가 양손이기는 해도,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한 두개 쯤은 있을 것인데…"
"있기야 있지. 우리 같은 양손들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피도 눈물도 없는 회령(廻靈)들에게 선과 죄악의 치부책 적립을 맡겼다면, 이 세상에서 옳게 숨쉬고 있는 자들이 없긴 할게야. 행동대가 살수보다 쬐끔, 아주 쬐끔 인정이란 게 있긴 해, 안그래?"
이른바, 저승사자라고 하는 살수를 우리들끼리는 회령이라고 부른다. 정해진 수순대로 자석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를 돌고 다니며, 그 사람의 아우라가 희미해져가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서 뒤따라 붙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인데, 간혹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떼죽음을 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지 할일이 졸나 깝쳐서, 스스로의 형태를 위장시켜주는 주술을 까쳐먹고 사람들의 시선속에 버젓이 실체를 드러내는 일도 있곤 했다. 그 옛날이야 회령의 형태를 본 사람들은 귀신, 도깨비, 저승사자, 괴물등등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표현했지만, 요즘은 핸폰에다 카메라들이 워낙 발달해서 가끔 찍히는 경우도 있어서 우리들 끼리는 키득대며, 꼴 좋다하며 느물대는 일들이 허다했다.
"이젠 점점 내 할 일이 줄어드는 감도 없진 않아."
"치부책이 있음 뭘하나? 먹고 살기 힘들어 지는 이 판국에, 선하면 뭐할거고, 더 악하다면 또 어쩔건데? 난 가끔 내 밑에서 지분대는 아가들이 불쌍하게 보일때도 있긴 하지."
그녀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남자들을 끌어 들이고, 섹스라는 매개를 통해 그들의 통증을 경감시키는 짓을 하긴해도, 양손의 입장으로서 그 죄지음에 동참했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는 없던 모양 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공수로 돌아가시게는 할 수 없고...어쩐다? 뭐가 그리도 갈급하시어 이런 죄 많은 양손에게 팔을 벌리 셨을까나?"
"뭐, 자네가 내 원을 들어줘야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사는 데에 필요한 건 나도 자네에게 줄 수가 있다는 거 아닌가?"
적대적 양립관계에 있는 양손들 끼리는, 이미 정해진 법 아래에서 은밀하게 서로 필요한 부분을 나누어 쓰는 경향이 있었기에, 거래는 언제나 성사되고도 남음이 있어왔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가리켜 듣도 보도 못한 은하계에서 이 행성을 관심깊게 지켜 보면서 보살피다 이 지경이 되었다는 썰을 풀어 대기도 하는데, 깔깔깔....아니, 보고도 모르남? 다 자기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 어떤 지경인지 말이야."
"우린 알지...양손이 가진 특권이야 그런 거 아닌가?"
되도 않는 음모론에 인종 찬양론까지 더해져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외계인의 후손일 거라는 둥, 지구가 외계인의 예술혼이 담긴 유전자 작품들을 가일층 승화시킨 각축장이라는 둥, 헷소리들을 빵빵 해댔지만, 기실 이 세상이 우주에서 떠도는 흉폭한 원령(怨靈)들을 혼내기 위해 만든, 일종의 감옥 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대개의 영혼들은 그 차원을 달리 하면서 자유로이 우주의 곳곳에서 태생을 달리하여 태어날 수 있는 반면, 이 지구라는 곳에 갇혀버린 영혼들은 윤회라는 족쇄를 짊어지고, 다시는 다른 우주와 차원에서 태어날 수 없도록 가둬버린 곳임을, 현자들은 이미 예전에 깨우쳤건만, 그들의 입에도 자물쇠가 법으로 채워져, 쓸데없는 선문답만 디리 쏟아내고 뒈지게 만들어 놓은 곳이 세상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돌아가는 꼬라지들은 모두 그들이 이 세상에 발 묶이기 전, 화려하고 평안하면서도 상상할 수 없을만큼 럭셔리하게 지내온 기억의 조각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떠올려 만들어 가는 조각 퍼즐일 따름 이었다. 살아지는 이 세상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혹독한 형벌이자, 생지옥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내일은 뭔가 좋아지겠지, 내일은 뭔가 희망이 있을겁네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정작 다가올 미래를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치 앞이라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끼리 서로 등치고 간 빼먹으면서도, 결국 목숨줄을 놓는 순간, 다시금 그 생지옥 같은 감옥으로 도돌이표처럼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로 인해, 절망의 심정으로 살아온 생의 기억이 강제로 지워지는 출생과정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불쌍한 군상들.... 양손들은 그 중에서도 극악한 혼들로서 인간도, 혼령도 아닌 중간자의 존재로 만들어져, 선과 악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중간에서 저울질을 해야하는 임무를 띄고 있는 일종의 간수장인 셈이었다.
"다 자기네들이 당하고 치받쳐온 흔적을 이 세상에서 쏟아내고 사는 것을 왜 모르냔 말이지...지들이 좋은 세상에서 쫓겨 나와 등 붙이고 사는 마당에, 감옥을 만들어 지들끼리 또 편을 갈라, 누구를 심판하네 마네 어쩌질 않나...암튼 다 이게 자신들이 겪어온 과거와 흔적들로 인해 갇혀버린 감옥의 한 가운데에서 살자고 짓까부는 꼴들이니...지들이 만들어 놓은 감옥 안을 잘 살펴보라지, 그게 지금 자기들이 살아재끼고 있는 세상의 축소판 인걸...이 너르면 넓고, 좁으면 좁다할 이 곳이 영원히 빠져 나갈 수 없는 감옥인 것을…"
그랬다. 윤회라는 것을 축복처럼 알고 있는 것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어떤 양손은 혀를 차며 얘기한 바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안고 사는 경우도 많았다. 악을 통솔하는 양손들에게는 원인모를 고통이 24시간 끊임없이 엄습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진기를 습득해야만 그 고통을 제어하며 살아갈 수 있었고, 선을 짊어지는 우리 같은 양손들은 원하는 이들의 작은 소망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주어지지 않은 상황을 스스로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착하고 선한 일을 한다해도 우리에게는 치부책에 기록되는 법이 없었고, 생에 몇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회춘력의 비기도 다른 존재나 양손, 혹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본인은 처절하게 늙어버려, 다시는 그 나이를 유지할 수 없는 약점을 지니고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양손은 늙을 일도, 이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죽음이란 것도 맨 처음에는 주어지지 않지만,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회춘력을 사용할 때, 불행한 경우, 죽지도 못하면서 호호백발 노인으로 영원히 고통받으며 노동을 해야 하는 결점도 있긴 했다.
"그렇다고 내가 모른 체 하기에는 너무 가슴 아파서 말이야."
"아직도 그런 연약한 심성으로 살아가셔? 하긴 내가 그 쪽 양손이 아니니 알 리가 없쥐.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감옥이긴 매한가지 인데, 뭘 더 아름답게 가꾸고, 뭔 희망을 그리도 심으려고 발버둥 치시나?"
"사람들의 인생이 그리도 척박한 것은 자신의 죗값을 깨닫기에도, 착하고 선한 이력을 쌓기에도, 이 세월이란 것이 너무 짧지 않나 말이야."
"그건 그렇지...우리 같은 양손 들이야, 시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형벌 속에 사니, 죽음의 위협을, 시간의 촉박함을 느낄 수는 없지...그래서, 뭘 도와 드리면 되겠수?"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원하는 것을 내가 이미 눈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면서도, 저리 둘러대며 묻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알고 있잖소?"
"그게 선물이라고 해도 받기 껄끄러워서리…"
그녀에게 부탁의 댓가로 제시하는 나의 회춘비기는 아주 훌륭한 미끼이긴 했지만, 내가 순식간에 늙어가는 모습을 목도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그녀에게도 부담이 되기는 한 것일게다. 양 진영의 양손들은 표면적으로는 법을 거스르는 일이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암암리에 지들끼리 똥꾸멍을 맞추는 일들마저 일일이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선한 용기로 들쳐나선 자들이, 도리어 사악한 힘에 사로잡혀 무작위적인 살인을 저지를 때에도, 반드시 뒷짐지고 향방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 이건만, 선과 악의 행동대로서 양손이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사건을 조기에 종결시켜 그 밸런스를 단번에 중립화시키는 경우도 왕왕 있기에,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그게 그리 나쁜 그림은 아닌 모양 이었다.
"이번만은...거울 쫌 보시게나. 아참..그 쪽은 거울을 볼 수 없지…"
양손들은 성별의 구분도 없었으며, 평소 자신의 물질적인 외형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술로서 감싸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사람들 틈에 끼어 다닐 때에는, 신체를 드러나게 꾸밀 수도 있어놔서, 그녀의 경우, 거울로 자신의 의도적인 외형을 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본 적이 없다. 내 손과 몸뚱이도 내 의지로는 다 인식 되건만, 결코 반사되는 어떤 물체라 할지라도 난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악하다는 사실은 거울을 바라본다 하여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건만, 선함은 오히려 그런 자신을 돌아볼 때에 거만이라는 후유증을 낳게 된다는 법으로 인해, 거울을 볼 수 없는 것은, 우리 같은 부류들에게 내려진 전자발찌 같은 것이기도 했다.
"누가 우릴 봤다면 호호백발 할아버지랑 손녀딸 인 줄 알겠수…호호... 그러니 내가 그걸 또 받아서야 같은 양손끼리 체면이 안 선다는 거이지…….깔깔깔…내가 항상, 누누히, 뼈아프도록 말해 왔잖수? 양손의 입신(身)이 어째서 24살 인지...사람들이 얘기하는 딱 좋을 때란 거...그런데, 나나 당신이나 지금 꼬라지를 보면 그게 아니거덩...양손은 늙지도 않는다고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당신은 이미 영감님이 다 되셨고, 나도 40대 아줌마가 되었으니, 그건 무슨 연유일까 이거요...아니, 다 아는 사실이지...서로가 서로의 본분을 망각했을 때, 그 딱 좋은 때가 지나가 버린다는 진리...그걸 위에서 모를 리 없고...내가 당신의 선물을 받고 싶질 않아서가 아니라, 바보같은 양손을 하나 더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이 있어서겠어? 선함도 우리 측과 마찬가지로, 두 세력의 균등한 평형이 이루어져야 공존이 가능하잖수? 글고 우리에게 시간이 멈추어져 있을 따름이지, 죽음이 아예 없다는 건 거짓말 이란 거 다 아실 양반이...쯧쯧…"
그건 맞는 말이었다. 우리에게도 죽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나 나나 계속해서 자신이 속한 세력의 의지와 상반되는 똥플레이를 계속할 경우, 결국에는 이 세상, 그러니까 물질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간에, 그 어떤 차원과 시공속에서도 발 붙일 수 없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는 지독한 형벌, 소실(消失)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다.
"어찌보면, 인간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우. 우리야 모든 것을 목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삶의 한계가 있기는 해도, 다음 생을 기약할 수도 있고...여기가 감옥이라는 생각만 않한다면, 그게 그리 나쁘진 않거덩...깔깔...감옥도 살다보면 다 살아지게 마련이잖수?"
우리 같은 양손들은 세상을 그저 감옥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질 않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안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목적을 갖기도 하고, 터무니 없어 보이기는 해도, 꿈을 갖기도 하는 인간 군상들 이야말로, 그냥 두고 보기에는 남 주기 아까운 장면들 천지 였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하지."
"그 여자는 찾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텐데…."
그녀는 이미 나의 심중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 남자가 그렇게 살아가기엔 너무 안타깝기도 해서…."
"만일에 그 여자의 령을 찾았다 칩시다. 윤회의 반열에 들어가 버린지 오래라면 어쩔거유? 이미 다른 나라, 다른 민족으로 응애하고 태어나서 지 살기 바쁜 와중이라면 어쩔거냐고요...니이미... 그 할일 뒤지게도 없는 양손 나부랭이가, 누군가의 대가리에 번쩍하는 영감이랍시고 꽂아준 대로 영화인가 뭔가로 만들어져서 돈푼깨나 만졌다는 그 스토리...그거 우리 쪽 양손 얘기라우...쪽 팔리지만서도...살거죽 옷깝데기 바꿔입고,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령으로 만나서 뭐 할건데? 한쪽은 응애에다, 다른 한쪽은 좇털 빵빵한 아쟈씨? 근데 응애로 태어난 아그가 이번 생에서는 남자? 이거 해도 너무 하는 좇거튼 결말 이잖수? 근데도 찾아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이 말이쥐, 내 말은…."
"내가 아는 바로는 아직 그 남자 주변을 맴돌고 있다니깐……."
"알아요...그러니 하는 말이우. 만일에 이 일이 법을 어기는 걸로 판명되면, 나나 자기나 간에 소실(消失)되는 건 알고 계시지?"
그건 그랬다. 인간의 일에 항상 뒷짐지고 있으면서, 각자 양손이 추구하는대로 인간을 내면적으로 설득 시킬 수는 있어도, 나서서 앞장 섰다가는 바로 양손들에게 가장 큰 형벌인 소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 이기도 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또 그 놈의 수작질...아니 착하게 산다는 양반이 허구헌날 뭔 놈의 상황극은 저리도 좋아할까? 아예 개그맨으로 나서지, 양손질은 왜 하고 앉았다니...내 참...어이가 없어서리…"
그녀도 항상 나의 제안에 솔깃해 하는 걸 보면, 꼭 악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눈매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서로가 으르렁 대면서도, 선과 악의 경계는 어쩌면 양손인 우리들처럼 대충 모호한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제2부:바람이 분다-
"이 분을 만나서 어떤 것을 취재해야 하죠?"
"아니, 아까 회의 시간에 뭘 들었어? 우리 자매님, 오늘 왜 이러시나? 허구헌날 노랠 불러서리 귀에 사리가 찼어도 찼겠구만, IoT(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하는 단어, 지겹지두 않남? 그 분을 찾아가서 IoT에 대해서 서문 정도라도 따와야 가오가 있지, 그럼 아무나 글빨 지린다고 앞세울까봐? 외부 인사들 안만나주기로 소문난 또라이 라니까 어떻게든 잘 구슬러서 특집에 써 넣을 꺼리, 찝어 오시게나. 아니, 요즘 신입한테는 취재 대상 섭외도 이 짠밥에 내가 해 줘야 하는 거야? 도대처 OJT(실무적응교육훈련)때는 쎄쎄쎄만 하다 오는 거삼?...얼릉 튀어 나가지 뭐하나? 놀아줘?"
사실 신입이 할 수 있는 구석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주필의 특권상 저렇게 악다구니를 쳐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주섬주섬 위에서 시키는 대로 물어다 온 개퍼즐 같은 쪽글들이 오바로꾸 쳐진 후에는, 처음 예상과 다르게 빼어난 문장과 활자로 바뀐다는 것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여자의 몸으로 공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이 면접시에 신선한 충격이 될거라는 나만의 인터뷰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에 희희낙락하던 것도 잠깐, 부서내에서 나에게 쏟아지던 그 수 많은 부담스런 시선과 요구는 가히 돌아버릴 지경이 되고 있었다.
#과학 어쩌구 관련껀은 화영씨에게 물어보면 되요...#
@화영씨가 홍일점으로 공대를 살이 문드러지도록 주물렀대자나, 뭘 모르겠어?@
%컴터가 맛이 또 갔넹..화영씨 어디갔니?..%
&이 꼬부랑 글씨, 약자가 무슨 의미래?&
요즈음 뜨는 앱은 뭐가 있을까아요?
다들 죄다 미친 것 같았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나의 무식한 구석을 발본색원하려는 것처럼 쪼사대는 통에, 어떨 때는 취재를 빌미삼아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편할 때가 많았으니까 말이다.
&..띵동..띵동...띵동&
연구소를 들러 받아온 주소대로 찾아간 곳은, 재건축이나 해야 될법한 허름한 아파트 였다. 내심 속으로는, 한 분야의 대가다운 박사급이라면, 요즘 핫한 지역의 전망 좋은 럭셔리 콘도를 예상했건만, 이건 첨부터 꽝 이었다. 게다가 초인종 소리도 촌시럽기 그지 없었고, 안에서는 기척조차 없으니, 하루 일진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버라이어티 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고 진행 중이었다.
&딸깍...&
그 흔한 보안키도 없는 아파트 문고리를 무심코 돌린 순간, 그냥 스르륵 열리는 서슬에, 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 댔다. 이러다 누구라도 볼라치면, 바로 고발깜인데 라는 생각에 한발 물러섰지만, 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이 없었어도 스르르 열렸다.
"계세요? 저...연구실에서 연락받으셨나요?…00일보 과학부의 이화영 기잡니다. 취재때문에 들렀는데요...계세요?"
그러나, 안에서는 대꾸가 없었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요즈음 신문 방송에서 툭하면 다루는 호딩(현실의 경제적 위기감을 보상받기 위해 쓰레기를 모으는 일종의 집착증) 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와락 들고 있었다. 사실 여기 오기전에 연구소에서부터 나는 예감이 별로 좋질 않았었다.
#그게.....만나셔도 별로 말씀이 없으실 거에요...집전화, 핸드폰 다 먹통인데다…하시던 프로젝트, 산학연계 연구과정들 모두 작파 하시고, 집에 들어 앉으신지가 한 삼개월 되나?…저러다 돌아가시질 않나 걱정도 되는데...저희로서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남겨 놓고 가신 과제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지도 방향도 스킵하시고 저렇게 두문불출 하시니...음식이나 제대로 드시나 모르겠네...연구원들이 돌아가며 가 보기는 하는데,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정말 아까운 분이에요. 그렇게 사실 분이 아닌데….#
인터뷰는 고사하고 제대로 명함이라도 전달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는 했어도, 이 지경 인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곡예 하듯이 집안의 너저분한 물건들을 발끝으로 헤치면서 현관을 지나자, 더더욱 가관인 거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집안은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로 오만상 표정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건만, 어디에다 틀어 놓았는지, 공포스런 분위기를 획까닥 능가하는 백뮤직까지 교교하게 흐르고 있었고.....
&...챠카탁...&
그건 내 기억의 저편에 자리잡고 있던 익숙한 기계음 이었다. 분명 그것은 테잎이 자동으로 되돌아가면서 반대편 사이드로 음악이 전환되는 테잎 플레이어의 소리가 분명했다. 아무리 취향이 독특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구닥다리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자세부텀 맘에 않들고 있었기에, 난 기가 턱하니 막힐 따름 이었고...
"…아무리 그래도 IEEE802.15.8은 너무 초기 도입단계야. 에너지의 사용량이 커...이래가지고는...FHSS같은 보안 나부랭이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다구...Wi-Fi나 Modbus조차도... HART, Fieldbus 같은 상호호환성도 나한텐 필요없어......스마트...스마트...스마트...개뿔...왠통 스마트라도 내가 원하는 에너지를 잡아줄 스마트 플러그 나 센서가 이리도 없나?....아냐...아냐...센서들 간의 융합 이나 매쉬업 (mashup)을 통해 새로운 가상 센서를 만든다면?...그래도 그걸 돌려야 할 머쉰이 있어야 하니...첨부터 다시 해야 되는 건 마찬가지고...."
"저....연구소에서 소개로 온, 00일보 과학부의 이화영 기잡니다. 취재때문에 들렀는데요..."
들어도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만을 되풀이 하면서, 책상 위에 토해 놓은 것처럼 너저분한 종이 뭉치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미친듯이 적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오늘 취재를 해야 할 그 박사라는 인간이었다.
"….DSSS와 FSK의 물리계층을 기반으로 해서 DSME 와 ALOHA 등의 MAC 으로 구성을 하는 것 까지는 봐 주겠는데....DODAG를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오브젝트에게 성공적으로 라우팅 시키느냐....저전력...소전력...미세전력....극미세....초미세..."
"오늘 초미세 먼지 경보가 있기는 했는데요. 그리 날씨가 나쁜 것 같진 않네요..."
그러나, 그 박사란 사람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으로 레이져 프린터 위에 출력된 종이뭉치를 가리키기만 했다. 먼지가 풀풀 쌓인 그 출력물은 다름 아닌, 보도자료 였다. 그 어떤 잡지사나 신문에서도 항상 다루었던 그런 얘기들로만 적혀 있는 그런 내용들...아마도 수 없이 드나드는 기자들을 향해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식으로 이런 배포물을 출력해서, 갖고 가던 말던 신경끄고 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도 이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나온 이상, 더 물러설 곳은 없다는 생각에 그 보도자료를 큰 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소음 테러였다.
"……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지능화된 사물들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물, 현실 또는 가상,
더하여 사물과 사물간에 상호 소통하고 상황인식 기반의 지식이 결합되어
지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인프라이며,
스마트 디바이스,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술 등과 융합하여
개방과 공유를 지향하는 초연결사회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도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2020 년에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의 수는
약 260 억 개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현재 여러분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PC, 타블렛,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도
약 3,000 억 달러의 시장창출과 1.9 조 달러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되고...."
"그만, 그만...그만..."
난 열나 고갯짓을 하며, 허공을 향해 소리치는 그 인간을 향해, 이제야 약발이 먹히는 구나 하면서 쾌재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쫌 조용히 하시지? 음악이 안 들리질 않나 말이야..."
엥? 이건 또 무쉰 망발....그러고 보니 방 안에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노래 비스무그리 한 것이 흘러 나오고 있기는 했다.
"뭐라도 건지려면 노동이 필요하지 않을까마는....."
난 평소와 다르게, 단번에 그 박사의 말귀를 알아듣는 비범함을 보이고 있었다. 난 가방을 내려놓고 팔을 걷어 부쳤다. 쫑알대면서도 나는 가까운 슈퍼로 가서 종량제 봉투를 한 무데기 사들고 들어와서, 집안의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니미럴...내가 내 방도 안치우고 사는 년이, 이게 왠 개고생?@
하지만, 언제나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저 잘난 인간의 아가리에서 보도자료와는 다른 인터뷰를 꼭 따내고 말거라는 오기 뿐이었다. 암막커튼을 제치고 나자, 집안으로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먼지들이 군무를 추기 시작했고, 밖이야 미세 먼지가 개지랄을 떨던 말던, 이 집안 공기보다야 낫겠다는 심정으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창문을 화알짝 열어 제꼈다. 이제 집안의 살림은 오래전부터 내 것 이었던 것처럼, 찾으면 찾는대로 내 손에 들리워지고, 청소기 마저도 오랜만에 주인을 맞이하여 qq 거리면서 추임새를 넣었다.
@어쭈? 이 인간 쫌 보지?@
그 잘난 박사란 인간의 의자 밑을 청소기로 쑤셔대려 하니 달랑 발을 드는 치사한 액션까지....그러나, 그게 욕을 퍼부을 상황은 아닌 게 분명했다. 어차피 사전에 설정된 갑과 을의 세력 싸움에서 난 이미 승리를 포기하고 무릎으로 기어야 하는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3시간이 넘도록 지지고 볶는 사이, 집안은 얼추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커피나 한잔 타 먹고, 목에 낀 먼지나 씻어내야지 하는 심정으로 물을 끓였지만, 생수도 없는 이 판국에 수돗물로 끓여대는 커피물이 찝찝한 것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슈퍼에서 이럴 줄 이미 알았다는 듯이, 그것도 내 돈 주고 사온 믹스커피와 컵라면을 내려다 보면서, 나의 조잡한 예지력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기에는, 처량함이 스멀대면서 내 뒤꼭지를 뒤뚱거리게 하고 있었고...
"아!...맛나다..."
점심때면 직딩들의 과시물처럼 커피를 손에 들고 직장 주변을 배회하는 것도 모자라, 이 집 커피는 죽이네, 저 집 커피는 닝기리네 하면서, 타박을 일삼던 나였건만, 그저 유명 여배우가 찍혀 있을 뿐인 믹스커피 한잔에 이토록 감동을 받을 줄은 나 스스로도 놀랄 판이었다. 혼자 먹기에는 그래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 관계로, 난 똑같이 보이는 잔에 커피를 한 잔 더 타서 슬그머니 박사의 책상 구석에 밀어 넣었다.
"한잔 더...."
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고맙다는 답례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덜렁 다 비운 컵을 들어내는 저 몰염치...하여간 가방 끈 길고, 먹물 진한 쇄끼들 치고 버르장머리 지대루 벡힌 인간 없다드만...그게 꼭 이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 틀림 없었다.
"쨍그랑..."
박사가 버르장머리 없이 내민 컵이 분명 내 손으로 전달되었다고 느낀 순간, 미끄러지듯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따스한 커피를 떠 먹여 주던 그 컵이란 물건이 그토록 쉽사리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을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세상의 물질이란 것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는 그 단순한 이치가 더욱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깝네....컵이 쎄트 였나봐..."
그제서야 그 잘난 박사란 인간이 의자를 빙 돌려 바닥에 널부러져 버린 파편 조각을 내려다 보았다. 깡마른 옆모습에 헝클어진 머리 였어도 이목구비가 그렇게 꽝은 아니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예상하진 못하지..."
"네?"
"애초에 저 컵이란 물건은 만든 사람의 의지가 현존하는 지식을 이용했고, 그것으로 물질을 형태로 변형 시켰지만, 딱 그만큼 만의 쓸모를 위한 것일 뿐, 의미는 없어진지 오래라...."
"그 컵조각에 여자분 사진이 프린팅 되어 있던 것 같던데...."
"알아요....아직까진 그런 식으로라도 내게 표현할 수 있으니...."
"무슨 말씀 이신지?"
난 그 박사를 인터뷰하라고 지시한 인간의 코꾸녕을 엄지 발가락으로 디리 쑤셔주고 싶은 맘 뿐이었다. 장갑을 끼고 바닥에 깨진 컵조각을 치우면서도 별일 없는 양, 또다시 책상에 파묻히는 그 사람의 무심함에 불현듯 화가 치미는 것을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으며,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건만, 그건 그저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것이었다.
"저...제가 할 만큼은 한 것 같은데...이제 인터뷰를..."
"나에게 인터뷰를 하는 게 중요한가요, 아님 다른 얘기를 듣고 싶은 건가?"
"저 보도자료야 누구나 갖고 가는 거고, 이번에 저희 특집기사에 박사님의 새로운 의견이나, 전공하시는 사물인터넷에 대한...."
"사실 제 전공에 대해서 정확히 아시는 건 뭐죠?"
"대학에서는 전자기학과 광통신학을 복수 전공하셨고...설라무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네?"
"바람이 불고...빛이 생겨나고...나뭇잎이 솟아나고...꽃이 피고, 물이 흘러 바다로 가고..."
난 오늘 완전히 시간 낭비의 막가파와 맞짱을 뜨러 온 느낌 뿐이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어요. 있는 현실을 설명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 낸 경험치의 최적화 일뿐...사물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죠?"
"그거야 인간에게 주어질 편리하고 에너지 절약적인 친환경,...아닌가요?"
"아뇨...사물 인터넷은 사람과 기계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일 뿐이에요. 결론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극소화 시키면서 이제까지 힘을 들여 해야 했던, 머리를 뒤지게 굴려야 했던 일들을 기계가, 앱이, 도구가 대신하도록 도와 주면서 그게 어디선가 인간을 돕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일종의 인간 노동력에 대한 무능화 체제죠."
"박사님의 연구결과에 이렇게 정면으로 디스 하셔도 되나요?"
"난 지금 시간이 없어요. 기자 양반이랑 씨름할 새가 없단 말...이해 않가요?"
"모두 마찬가지 잖아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제가 지식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을 편리하게 하고 시간을 절약하게 하면서, 과학적 소비를 지향하는 모토로 연구된 것이 사물 인터넷 아닌가요?"
"어떤 소비요?"
"뭐 전기, 돈, 시간...뭐 그런거요."
"그래요...내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사물인터넷도 전기 없이는,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가설을 깨고 싶은 거에요. 인간만이 전기...아니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물을, 도구를, 환경을 움직이죠...맞아요. 그런데, 어째서 자연은 그런 것이 없이도 서로 교통하고, 움직이고, 변화하며 제 할 일을 해나가죠? 하느님이? 자연 스스로가? 아님, 외계인이?"
난 박사의 질문에 당황하고 있었다. 과학자 인줄 알고 덤볐던 인터뷰가 묘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차츰 느끼고 있었기에...
"그건 불가능 하다고 알려진 무한동력에 대한 것들 아닌가요? 이미 가설이 허구라는 게 증명 된 거......"
"그 말이 아니에요. 인간이 죽으면....모든 활동이 멈추고...그런데, 엄마의 몸속에서 난자가 수정되고 나면 어떻게 되죠? 스스로 분화됩니다. 이건 누구의 에너지죠? 엄마? 정자? 난자 스스로의 자생력? 그런데, 그 사이에 누가 전기를 썼나요? 내가 지금 매달리고 있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늘을 움직이고, 바람을 불게 하고, 나뭇잎들을 번성하게 하며, 벌레와 새와 식물들을 움직이는 힘...그것들을 알아내야 하는 게...."
"그게 사물 인터넷과 무슨 연관이..."
"우리의 과학은 전기...아니 에너지에 기초해서 디자인되죠. 세상이 있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에너지를 알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 에너지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센서와 하베스트 머쉰이 있을 수 있다면, 세상의 그 어떤 물질에도 라우팅 시킬 수 있고, 통신이 가능하죠. 방송국이 있고 아무리 특정 주파수로 음악을 송출해도 그것을 수신하는 라디오가 없다면 그건 허공에 뿌려지는 의미없는 것들이 되고....공중을 관통하는 주파수를 해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듯이...."
"그건 유전자처럼 신의 영역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이건 제 무식한 가정 인데요. 만일에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물인터넷을 구현하면 어떻게 되죠?"
"메트릭스란 영환가요? 자신이 맞서 싸우던 실체가 데이터의 복합체란 것을 깨닫는 순간, 어찌 되었는지...자연을 움직이는, 안보이는 허공을 움직이는 자연의 극미량 부유 에너지를 내가 볼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스마트 리더가 가능해 지면....난 여기 앉아서 우리 집 앞의 나뭇잎과 부산 앞바다의 파도를 거쳐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앞 잔디잎까지 단번에 라우팅을 할 수 있게 되고....인터넷이 없이도 미국대통령의 연설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겠죠. 아주 가깝게는 우리 집 앞 은행나무에 앉아 있는 참새의 눈을 겨냥해서 라우팅을 하면 참새가 바라다 보는 세상을 CCTV처럼 볼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
"그게 가능한가요?"
"그건 저나 기자분이 살아있는 것과 같아요. 우린 전기 없이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느끼잖아요? 내 몸에는 극미세전류가 흘러 뉴우런을 움직이고 있고, 뇌는 그것을 기반으로 제 몸을 살리고 있으며, 영혼의 요구대로 욕구를 창출하면서, 삶을 이어나가죠. 저와 기자양반처럼...단지 그 에너지를 끌어다 쓸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그 중심에 있는 영혼의 힘과 아이피 주소를 읽을 수 없다는..."
"한계라뇨?"
"그 에너지는 기자양반 말처럼 신의 영역 안에 있죠. 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영혼의 에너지를 읽는 스마트 센서에 있으니까요. 만일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역으로 허공을 떠도는, 에너지를 아직은 갖고 있는 영혼이라면.... 그 사물인터넷의 스마트 센서에 라우팅 할 수 있고...나에게 할 말을 할 수도 있게 되겠죠...그렇게만 된다면...."
난 심오하면서도 허무맹랑한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 스스로 평소와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해져 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제3부:너무 다른 널 보며-
"그런데, 청력에 문제 있으신 건 아니죠?"
난 질문을 던져 놓고도 아차 싶은 후회 뿐이었다.
"왜요?"
"저 창가에 틀어 놓으신 테이프 플레이어....음악이라고 보기에는 영...."
"듣기 싫어요? 난 멜로디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읽고 있는건데...."
입밖으로 되도 않는 잡소리만 뇌까릴 줄 알았던 박사에게서, 왠지 씁슬하고 암울한 대답이 툭 튀어나와,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테잎이 늘어지고.....그러다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 붙이다 보면, CD를 살 생각도, 핸폰이나 PC로 들어야 한다는 욕구도 사라지죠. 그 음악은 누가 들어봐도 공포영화의 백뮤직처럼 들릴진 몰라도, 나에게는 아니에요. 그 음악속에서 내가 행복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나 나의 머리를 흔들고, 온 에너지가 피부로 뿜어져 나가는 느낌이니까....이해할 수 있겠어요?"
"아뇨..."
난 아닌 건 아니었다.
"잠깐만 계셔 보세요."
난 쓰잘데기 없는 보도자료를 메가폰처럼 말아서 밑둥을 찢은 후에, 바지춤 안의 핸폰을 꺼내 앱을 열고서, 그 메거폰 밑에 핸폰을 밀어 넣었다. 언젠가 TV선전에서 본 기능이 썰은 아닐까 의심했었기에 속는 셈치고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온 집안에는 맑고 청아한 음색으로,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그 여가수의 청승맞은 노래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박사는 표정이 굳어 있었고, 보다 진보된 문명의 이기로부터 흘러나오는 보정된 노래가 그닥 감동적이진 않은 얼굴 이었다.
#띵띠리리리링...#
노래는 걸려온 전화로 인해 멈춰 버렸다. 팀장이었다.
"네....이화영 입니다.....네....뵙기는 했는데...인터뷰 중이고요....네.....다른 학설을 늘어 놓으셔서....네....네...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아니면, 정리되는대로....보내겠습니다....네...네...."
박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앱에서 흘러 나오고 있던 음악을 정확하게 멈춘 기자 양반의 전화는, 과연 얼마만한 확률로 걸려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런 개고랑말코 같은 통계학은 생각해 본 역사가 없었다.
"박사님, 개인 적인 것을 좀 여쭈어 봐도 실례가 되질 않을런지요?"
"커피 한잔 더 타 줄 수 있어요?"
"네."
난 이 집에 들어서고 부터 어째서 저 엉뚱한 소리만 늘어 놓는 박사의 부탁을 한치도 거절할 수 없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입바른 소리, 돌직구, 맞짱뜨기 같은 설전에서 져 본 일이 없는 나 였음에도, 어찌하여 고작 인터뷰라는 미명하에 이리도 비굴해 질 수 있는가가 이해되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희처럼 참 커피를 맛나게 타네...."
"프로필에는 미혼으로 되어 계시던데, 혹여 결혼하실 사이인가 보죠?"
"하려했죠...이미 고인이 되서 그게 어렵지만...."
"미안합니다. 제가 모르고 여쭤봐서...."
"아뇨...죽은 건 죽은 거죠...피할 수 없는 결말이고,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제가 머뭇거려야 할 이유도 없고, 기자 양반이 미안해 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연구소에서 지금 진행하시던 프로젝트들을 모두 물리셨다고 하던데, 그게 그 이유랑..."
"한국 사람들은 그게 겸양이자, 배려라고 생각하나봐요. 질문도 어떤 때는 흐지부지, 밑도 끝도 없이 흐리멍텅...그냥 그 여친 때문에 연구 때려 치셨냐 이렇게 물으셔야죠, 안 그래요?"
"그렇긴 해도, 그게 실례라서....다른 기자들에게는 그럼 이런 얘기들을 하신 적이 없으신가 해서요..."
"집 청소랑 커피도 타다주신 분은 기자양반이 처음이네요....생각해 보니, 윤희도 그랬죠. 내가 하는 그 보잘 것 없는 연구에 방해 된다며, 정작 해야될 얘기는 웃음으로 떼우고, 고갯짓으로 감추고...그러다, 그녀가 떠나고 보니... 나만 나쁜 놈이 되있습디다...사는 꼬라지를 좀 보세요. 이게 결혼할 사람이랑 같이 살던 곳인데, 살만해 보입디까?"
박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벌려놓은 프로젝트들은 끝까지 어떻게 하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버린 그녀를 위한 연구를 위해 자금을 모아보려는 발버둥 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모자라는 살림에, 결혼식은 아예 꿈도 꾸어보지도 못하고서, 돌이킬 수 없는 병이 깊어갔음에도 내색 한 번이 없었고, 자신을 마중나오는 길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에도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비닐우산도 다음에 써야 한다며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그녀...
"아까 테잎으로 들었던 음악은 윤희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내가 그 노래를 계속해서 틀어 놓는 이유는, 윤희의 아우라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기 위해서죠."
"아우라라뇨? 뭐 종교적인 신념이락두...."
"인간이 죽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서 살아 온 기억이 완전히 탈색되기 전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주위에서 머물다 간다고 누군가 얘기했죠. 그게 영혼이든, 아우라든, 무엇이든 간에 전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그 에너지가 사라져서 다음 생애에서 나를 전혀 모르고 태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전에 그녀에게 꼭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제가 매달리고 있는 숙제에요."
이건 뭐 정신이 뺑글 돌다 못해, 상미친갱이랑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죽은 자와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 사물 인터넷이랑 뭔 관련이 있길래..."
"사물의 범주를 나 나름대로 해석한 거죠. 광범위한 사용자들을 대상으로한 것이 아니라, 사그라져 가는 윤희만을 위한 사물 인터넷을 구현해보고 싶은 것...그래서 맨 첨부터 기자 양반에게 시간이 촉박하다고 얘기한 거죠..."
"그게 이 방안에서...가능 하다고 여기신다는 거죠?"
난 컴터 이외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주위를 빙 둘러보며, 에라이 꿈깨셔라는 투로 내깔겼다.
"그 핸폰 좀 줘 봐요....사람들은 와이다이라고도 하고 미러캐스트네, 어쩌네 하지만 모두 무선통신의 기법아래 뭔가 볼거리만을 찾는 사람들에게 된통 빠져 보라고 함정처럼 개발한 거에요. 자, 여기 핸폰에서 제 컴터를 향해 와이다이로 연결해 볼께요....그리고 이렇게 내가 코딩한 앱을 중간에 실행 시키면...."
"분명히 제 핸폰의 다시보기 드라마가 박사님 모니터로 튀어 나와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나타나쟈나요?...뻥이죠?"
"아니에요... 제 목적은 와이다이의 기능을 일부 이용하는 것이지, 뭘 보여주려고 연결하는 게 아닙니다. 그 핸폰을 사방으로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아참...내가 소리를 줄여 놨네..."
내가 손전등을 비추듯이 허공을 향해 핸폰을 이동시키고, 박사의 컴터에 소리를 높이자,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미세한 주파수 소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핸폰을 더욱 천천히 이동시켜 어느 지점에 이르자, 그 소리는 짜여진 악기소리처럼 정교한 음색처럼 들렸고, 그 위치를 벗어나자, 그 소리는 점차 작아지면서 사라졌다.
"들으셨어요?"
"네....근데 이건 뭐죠? 잡음? 제 핸폰을 해킹하는 개또라이? 이거 최신형 인뎅...."
"이번에는 소리가 나던 그 위치로 핸폰을 다시 움직여 보세요..."
그러나, 이번에는 소리가 전혀 들리질 않았다.
"아마, 움직였을 테죠."
"뭐가요?"
"….음...기자 양반.... 가방 쪽을 향해 봐요. 아마 관심 있는 게 그 쪽일텐데....."
난 등골이 서늘해지고는 있었지만, 박사의 말처럼 조그만 식탁 위에 널부러져 있는 내 가방을 향해 핸폰을 이동시켰다. 아까처럼 점점 커져가는 그 묘한 소리의 복합체....
"별거 아니에요. 우린 전기와 기계의 힘을 빌어 무지막지한 량의 데이터를 공중으로 날려대고 있죠. 동영상을 무선으로 다른 기기에 복제해서 보내는 그 스트리밍을 가로채고, 주변에 이 스트리밍을 방해하는 극미세전류가 있다라는 가정하에서 제가 만들어낸 스마트리더 앱이죠. 분명 윤희는 에너지를 지닌 채, 제 주위에 있지만, 매일, 매 시각 그 힘이 약해져 가고 있고, 저와 그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는 한계와 구조가 다름으로 해서, 난 그것을 뚫어야 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 뿜어내는 아우라라는 증거가 없잖아여? 아무리 후진 아파트라고 할지라도, 윗층과 아랫층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와이파이 신호의 일종 일 수도..."
"그럴 수 있겠죠, 그럼 제 모니터를 보실래요?"
모니터에는 박사가 깔아놓은 프로그램을 통해 거미줄처럼 얽혀서 이 방을 돌쳐들고 있는 와이파이의 아이피 주소들이 깨알같이 표시되고 있었고, 그 중에서 한가지 만이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와이파이는 자신의 안테나 주사방향을 레이더처럼 회전시키거나 바꾸지 않는 한은 지향성이 변동되는 법은 없어요. 그런데, 이 물음표의 아이피는 어떻죠?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 세기가 시시각각 변합니다. 이 아우라가 존재한다 해도 서로가 방법을 모르는 겁니다. 제가 속한 이 세계의 기기에 스마트하게 접근하는 방법도, 제가 이 아우라와 교통할 방법도...보이긴 해도, 느낄 수는 있어도, 언어가 달라 할 말을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난 박사의 그 이론에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물인터넷을 취재하러 왔다가 된통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난 내 의지가 아닌 듯, 돌발적으로 박사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살펴본 모니터....과연 내 추측은 옳았다.
"그래...분노....그것도 아우라를 자극하는 요소 일 수 있지."
박사도 깨달은 모양 이었다. 애절한 느낌만으로 서서히 주눅이 들어가던 그 신호의 세기가 돌변한 것은 나의 작은 손짓으로 인해, 아우라라고 이름 붙여진 그 여인의 에너지에 무언가를 전달하고 변형시킨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그래요. 그 아우라에도 우리가 원한다면 증폭의 과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내가 몰랐지? 기자 양반 대단하네, 이름이 뭐라고...."
"네 이화영 입니다."
"화영씨...그 의자를 갖고 이리 와서 가까이 앉아 봐요."
이제까지 버르장머리 없던 박사의 까끌스러움은 온데간데 없고, 갑작스레 친절을 떨어대는 통에 난 정신이 하나도 없긴 했다. 난 그제서야 내가 인터뷰를 하러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박사의 충실한 모르모트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찝찝함이 앞서고 있었다.
"제가 알기로는 죽고나면 성별이 없다고 하던데...."
"그건 에너지가 사라지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중간 과정에 있을 때의 이야기죠.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들 증언하지만, 사실 그곳은 휴식처 같은 곳이에요. 삶도 죽음도 없고, ...다만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행한 만큼의 과정을 회상하는 영화관 같은 곳이랄까요? 선한 일을 많이 했다면, 감동적이고 가슴벅찬 느낌으로 그 기간을 지냈을 터이니, 천국이라 불러질 테고, 후회막급으로 막 살아온 나 같은 인물은, 가슴을 치며 절규하는 스토리의 연속일테니, 괴로운 영화 한편의 징한 감상문 쓰기이려니 한다면, 그 심정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런데, 박사님은 죽어본 일도 없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확신하세요? 글고 그런 것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일이니, 박사님의 연구범위와도 맞지 않는 불모지 인데,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닌가 해서요."
"윤희가 병원에 실려가고나서야 연구실에서 그 소식을 들었죠. 아무런 유언도, 외마디 비명도 없이 그냥 나를 바라보듯이 눈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뜬 윤희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죠. 그래도 혼인신고는 되어 있었기에 보호자랍시고, 윤희의 시신을 보여주는데, 그만 정신줄을 놓고....만 이틀을 혼수상태에서 앓다가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요?"
"꿈인지, 생시인지는 모르지만, 윤희가 나에게 다가와 무슨 말을 하기도 하고, 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계속 소리만 쳐대면서 뭐라구, 뭐라 했냐구 하면서 쫓아 다녀도 그녀는 점차 멀어지기만 했고....그러던 저의 팔을 누군가 잡아챘죠. 그건 잔뜩 술에 취해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또렷한 느낌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진 않겠지만...."
박사는 일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을 갖고 있었다. 보통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듯 허망하게 보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을 이야기 들을, 다큐처럼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는 다는 것이 별나게 보였으니 말이다.
"형체도 분명하지 않고, 촛점도 정확하게 맞출 수 없었지만, 분명히 사람같은 형상으로 다가와 나에게 또렷한 음성으로 말을 전했던 겁니다. 누군가 깨어난 후에 되새겨 보라고 한다면 꿈에서 절대자를 직접 대면했느니 어쩌고 횡설수설 하겠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그 어떤 종교적인 색채도 없었을 뿐더러, 저의 본능....그러니까 모든 것들을 증명하고 구현하려는 과학적인 욕구에 대해서 호소하는 태도 였으니까요."
"뭘 요구했는데요?"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준 것 뿐이었어요. 세상은 어떤 존재이고, 내가 속한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의 허망함에 대해서도...삶과 죽음의 경계는 인간이 만들어 이해하고 지식처럼 받아 들인 관습에 의한 것일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진리....난 그 자와 많은 시간을 얘기하며, 분노하고, 다그쳐 봤어요. 그 자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나처럼 대답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지식의 고갈도, 의견의 편협함도 아예 없었죠. 그저 거대한 산을 눈 앞에서 맞서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정신이 들자마자, 매달려 온 게 지금까지 에요. 윤희의 장례식 도중에 눈물도 없이,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한다고 다들 욕합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사물, 사물 어쩌구 하더니 사물놀이 하다 대가리나 꺾어져서 뒈져버리라더군요...머릿속은 윤희의 아우라를 쫓을 생각에 정신도 없었고....그 자의 얘기 때문인지,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컫는 삶과 죽음의 정의와 경계에 대해서도 많이 모호해진 터라, 슬프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 이에요.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다해서 윤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 며칠 전이에요. 하지만, 겨우 아우라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앱만 만들었지, 도무지 진전도 없고, 이러다 이도 저도 안되면 나도 윤희를 따라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 뿐이었고...."
"그렇다면 저렇게 신호가 증폭된다고 하더라도, 뭘 어떻게 증명하실 건데요? 아무리 방송국에서 전파를 쏴대도, 지금 박사님의 꼬라...아니, 박사님의 상황은 안테나만 덜렁 붙들고 방송을 듣고 싶다고 세상에 외치고 계신거 아닌가요? 적어도 라디오나 갖고 계시면서 안테나의 감도불량을 탓하신다면 몰라도..."
난 하마트면 꼬라지라고 외칠뻔 했다.
"이런 말이 있죠. 강전(强電)은 미전(微電)을 보진 못해도, 미전은 강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거..."
공대를 다니면서 언젠가는 들어 본 말이었다.
"그럼 박사님은 무얼 기대하시는 거죠?"
"내가 윤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헷지랄을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제자는 내가 돌아도 아주 완전 빡돌았다고 중얼대며 가기도 했고...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 원하는 것은 윤희의 아우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 자가 말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이 세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나의 사물인터넷 연구속에서 반드시 윤희와 손이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손이 닿아서 어쩌실 건데요? 그저 흔적도 없고, 미세먼지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 허뭉탱이를 존재인 양 붙들고, 이 후진 구석에서 헤헤거리시며, 굶어 뒈지실려구요?"
난 그래도 뒈진다는 표현은 평소의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이미 뱉어놓은 가래침이었고, 싸놓은 똥덩어리 였다.
"죽는다는 거, 이젠 두렵지 않아요.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을 싫어해요. 왜 그렇죠? 죽는 것은 무서워하고, 늙는 것은 안타까와 하면서 그걸 막을 방법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과학과 의학이라는 구실아래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거 아세요?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개발되고 세상에 선보여도, 안티에이징, 네버다잉 라이프는 입에 발린 프로파갠더들의 뻔한 사기빨일뿐, 절대 불가능했었고요...오히려 옛날 사람들이 더 철학적으로 살았으면 살았지....죽은 후에 그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면 이 세상으로 빨리 돌아온다는 믿음....죽음은 재탄생을 위한 과정일 뿐인데, 역사와 관습속에서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들이 죽음을 끝내기 피날레로 땡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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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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