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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20 869회 0건
1부 4장 접근1

작년 가을.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날에 가을 소풍을 갔다. 2학년 문과반 1~3반을 하나로 묶어서 시내에 있는 oo산 공원으로 향했다.

나는 2반, 이혜영 선생은 3반 담임이었다. 아이들은 시험에서 해방되어, 그리고 오랜만에 교복에서 해방되어 저마다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왔다.

“쌤! 같이 사진 찍어요~”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젊은 남교사인 나는 언제나 여기저기 사진 모델로 초청받곤 한다. 싱그러운 학생들 틈에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학생들 중에 예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가 대체로 내 양 옆에 팔짱을 끼고 선다. 이제 제법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느껴질 때면 설레다가도 움찔 놀란다.

첫해. 나는 은희와의 일 이후로 아이들과 가능하면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두 번 다시 실수하지는 않으리라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 시계탑과 주변 꽃밭은 인기 있는 사진 촬영 장소였다. 벌써 가을 국화가 한창이었고 그 사이에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내 뒤편에서 이혜영 선생도 자기 반 아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이 웃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나도 덩달아 같이 숙였다.

“쌤, 우리 외모 몰아주기 해요.”

우리 반 학생 중 몇몇이 내게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잡은 학생이 이혜영 선생을 보더니,

“혜영 쌤~ 와서 같이 사진 찍어요.” 하고 말했다.

이혜영 선생은 얼굴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지만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밀고 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세우고는

“와~ 두 분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쌤 팔짱 한 번 껴 보세요.”

“에이 쌤, 남자가 좀 강단이 있어야죠.”

여기저기서 뭐가 재밌는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멋쩍어서 이혜영 선생에게

“아이들이 장난치는 겁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혜영 선생은 갑자기 나를 보면서

“아니오, 강 선생님. 우리도 사진 한 번 찍어요.” 하고 말하며 살며시 내 팔에 매달려 왔다. 그녀의 말캉한 가슴이 느껴졌다.

“우와~~~”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함성소리, 그리고 은근한 야유소리가 섞여 튀어나왔다. 멋쩍어하는 나와 달리 이혜영 선생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 정도로 여유를 보였다.

“이거 이거, 청춘남녀가 너무 잘 어울리는데 그래?”

“어머, 주임 선생님. 같이 찍어요.”

우리 뒤편에서 언제 왔는지 1반 주임 선생인 서경준 선생님이 계셨다. 나이가 이제 50이 조금 넘은, 학교 안에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제법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셨다.

“아이고 무슨... 다 늙은 영감이 젊은이들 틈에 끼면 남들이 주책이라고 해.”

서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서 이혜영 선생의 팔을 슬쩍 빼고는 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서 선생님, 우리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

“아,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강 선생, 이 선생에게 온 건데 말야... ”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내가 아무래도 점심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아서 말야...”

그러면서 그는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은근슬쩍 말했다. 나는 키가 작은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박 부장이 한 게임 하자고 해서 말야...”

살짝 말했지만 나는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과반 부장 교사인 박봉달 선생님과 골프 약속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 살짝 빠지겠다는 말이겠지.

“네, 제가 이후 일은 알아서 잘 정리하겠습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에게 말했다. 그는 유쾌한 듯 미소를 짓고는 내 등을 한 두 차례 쓰다듬없다.

“그럼 그럼... 내가 강 선생을 얼마나 믿고 있는데 하하...”


나는 학생들을 모아서 점심 이후는 자유 시간이라며 해산시켰다. 관례상 고등학생의 소풍이란 점심 먹기 전까지기 때문에 아이들도 은근히 교사의 해산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끼리끼리 모여 흩어졌다. 아마도 이후에 자기들끼리 계획이 있겠지... 사고만 치지 말기를 바라는 수밖에.

“저기... 강 선생님. 점심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혜영 선생이 흩어지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사실 오래간만에 사우나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말에 허기를 느꼈다.

“아... 글쎄요... 어떻게 하나?”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이 요 밑에 식당에 가서 드시겠어요? 제가 아까 오다가 보니까 괜찮은 한정식 집을 봤는데.”

“아 네, 뭐 저야 괜찮습니다.”

“강 선생님은 뭘 좋아하시나요? 제가 일방적으로 메뉴를 정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니오. 저도 한정식 좋아합니다. 자취를 오래했더니 집밥만큼 좋은 건 없더군요.”

“네, 그럼 그리로 가죠.”

우리는 아이들이 모두 흩어진 것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려 이혜영 선생이 안내해주는 식당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학교 아이들을 만났지만 아이들이 특별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우리는 작지만 깔금한 인테리어의 한정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혜영 선생과의 점심 식사는 즐거웠다. 물론 그녀와 밥을 먹은 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단 둘이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 보여주던 차갑고 딱딱한 인상과 다르게 의외로 적극적이고 쾌활하다는 점이었다. 겉보기에는 도시적인 이미지의 그녀가 어째보면 푼수 기질도 다분했다.

그녀는 밥을 먹는 내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 시간 내내 그녀와의 대화 덕분에 나는 서먹하다는 느낌이 사라진, 아니 오히려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어머, 그럼 강 선생님은 탁구장에서 살았겠네요?”

“뭐, 아버지 덕분이죠. 그런데 이 선생님도 여자 치고는 실력이 상당하던데요.”

“호호호. 사실 고등학교 때 탁구부 활동을 했어요. 공부만 한다고 동아리 활동은 관심이 없어서 아무 부서나 들어갔는데 그게 탁구부였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어쩌다 이야기가 탁구에까지 흘렀는지,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그녀의 집이 내가 자취하고 있는 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녀의 집 근처에 탁구장이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지금 탁구를 한 게임 쳤다.

그녀는 운동 후 열기 때문인지 볼이 약간 붉어졌다. 나는 그녀의 볼이 불그스레하게 달아 오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끌렸다. 그녀가 목이 마른지 음료를 한 잔 들이켰다.

붉은 입술을 따라 흘러가는 음료, 그리고 아래위로 움직이는 그녀의 목젖이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음료를 마시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혜영 선생은 음료를 입에 머금은 채 싱긋이 웃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녀의 눈이 커다란 반달모양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 우리 둘 사이에 침묵과 웃음만 있었다. 그녀가 음료를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우리 집에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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