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원의 주인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2부
“윤호, 지금 바빠?”
“샐리……? 어쩐 일이에요?”
관리실에 누군가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것은 사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어지간하면 평소에 자리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내 건물은 기본적으로 가구 수가 적은데다 신축답게 시설상의 문제도 지금까지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끔 예외적인 경우가 몇몇 있긴 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서 언성을 높이고 사라지는 지연 씨처럼 말이다……. 그리고 눈앞의 이 여인도 아마 그 예외 중 하나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 봐. 내가 뭘 좀 만들었어.”
“잡채? 잡채인가요?”
샐리는 종종 이렇게 직접 만든 음식을 내게 조금씩 나누어주곤 했다. 매끄러운 유리접시 조심스럽게 얹어진 그 음식은…… 아마도 형상만으로 추정하자면 잡채에 가까워보였다. 내가 그 음식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 샐리는 무척 흡족했는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뿌듯해. 이제 무슨 요리인지 정도는 쉽게 알아보는구나. 한국말로 이걸…… 뭐라고 하더라? 음…… 장족의 발전?”
“하하…… 그러네요. 샐리 솜씨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하긴 처음에 그녀가 만들어온 그 시루떡 비슷해 보이는 음식을 보고 조심스럽게 케이크냐고 물었다가 그녀에게 꽤 상처를 줬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만두였다고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녀가 그 때의 일을 끄집어내는걸 보면 아마 그녀로서는 퍽 굴욕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걸 만회하려고 이렇게 내게 자꾸 음식을 가져다주는 걸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 어서 먹어봐.”
“지금요?”
“Of course."
눈빛을 빛내며 내 시식을 기다리고 있는 표정을 보니, 세세한 감상을 들려주지 않으면 아마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하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니까. 나는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젓가락을 집어 그녀의 요리를 한입 맛보았다.
‘하, 하하…… 간 맞추는 건 여전히 서툴구나.’
솔직한 감상은 너무 짜다는 것이었지만, 굳이 그걸 지적해 줄 필요는 없으리라.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이게 어디인가? 나는 만면 가득히 빙긋 웃는 표정을 하고는 그 웃음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애썼다.
“맛있어요.”
“히히. 정말?”
어머니는 살아계실 적에 살다보면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종종 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건 분명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난 아무래도 그거 인가봐, 그거. 그…… 뭐라고 하더라? 한국말로?”
“네?”
“아, 그래. 현모양처! 난 현모양처의 소질이 있는 것 같아. 호주에 있을 땐 몰랐거든.”
“그, 그래요……? 호주에서는 어땠는데요?”
“글쎄, 어째서인지 마미(mommy)랑 대디(daddy)는 내가 주방에 들어가는 걸 항상 말리곤 했거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아주 사소한 실수를 한 적은 가끔 있지만……”
호주 출신인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유학생임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서구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뚜렷한 인상의 이목구비를 포함해서 늘씬하게 쭉 뻗은 키와 상아색으로 반질반질 빛나는 살결, 바스트와 힙의 구분이 뚜렷한 균형 잡힌 몸매 등은 알게 모르게 나를 종종 자극하곤 했다.
게다가 그녀는 늘 외출했다가 원룸에 돌아오고 나면 편한 복장이랍시고 짤막한 탱크탑이나 핫팬츠 차림으로 건물을 활보하기 일쑤였는데, 그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이 건물에 살고 있는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본인은 그걸 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또 괜스레 민망해지는 것을 느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샐리는 교환학생이라고 했죠? 그럼 보통은 교내 기숙사에서 지내거나 하지 않나요? 굳이 따로 원룸을 구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아, 그건 말이지.”
그러고 보니 처음에 그녀와 계약을 할 때도 그녀의 사정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 역시 나를 건물주의 대리인으로만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굳이 방을 구하려는 이유를 내게 설명하진 않았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흠, 다음에 얘기해줄게.”
“왜요?”
“그냥. 여자는 비밀이 있는 편이 매력 있잖아?”
뭐든 서슴없이 얘기할 것만 같은 그녀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 또한 화제를 바꾸고 싶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윤호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나중에 현모양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만 현모양처라는 건 사실 가부장제의 산물이나 다름없지 않나요? 샐리처럼 진보적인 이미지의 여성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걸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가부장제? 그게 뭐야?”
“쉽게 말하면…… 남편에게 헌신하고 내조하는 여자가 되기보단, 좀 더 능동적인 삶을 사는 편이 샐리에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거죠.”
“아하! Independence!”
아무래도 그녀에겐 조금 생소한 표현이었을까? 풀어서 이야기를 해주니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윤호는 친절한걸.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거지?”
“뭐, 그렇죠.”
“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모양처’라는 건 조금 달라. 남편에게 구속되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고, 뭐랄까……”
그녀는 적당한 우리말 표현을 찾기 위해 무척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 문제가 그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일까?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아.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요리든 뭐든 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 말이야. 그러면 그건 헌신이라기보다는 애정이 되겠지? 너무너무 사랑해서 아낌없이 뭐든 해주고 싶은, 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그런 사람이랑 함께 살 거야!”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내심 조금 놀랐다. 그녀가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갑자기 늘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그녀가 그런 순정적인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 점도 의외였다.
“그러니까 윤호가 생각하는 현모양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수 있어.”
“멋진걸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줄은 몰랐어요. 샐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로맨틱한 사람인 것 같네요.”
“헷, 몰랐어? 난 사랑을 꿈꾸는 소녀야. 비록 10대는 아니지만.”
단어를 고르기 힘들어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표현하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보였다. 내가 알아듣자 스스로 설명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지 뿌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그래요. 샐리는 매력 있으니까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결혼에 대해선 신중해야하니까 우선은 남자친구부터 사귀고 차근차근 알아가야겠죠. 안 그래요?”
“흠, 보이프렌드라……”
뭐, 사실 이 질문은 그녀에게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한 내 얕은 꼼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명확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대놓고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애인이 없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니…….
“그러는 윤호는 왜 걸프렌드가 없어?”
“네?”
“여자친구 말이야. 윤호 나이 정도 되면 보통 연애하고 싶어 하잖아.”
“그게…… 연애가 하고 싶다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일단 마음이 통하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남자에게 호감 가질 여자가 그리 많을 것 같지도 않고.”
“흠, 그런가? 내가 보기엔 윤호, 캥거루처럼 생기긴 했어도 그리 못나진 않은 것 같은데.”
캥거루는 또 뭐람. 그렇게 실컷 이모저모 내 얼굴을 뜯어 살피는 시늉을 하던 샐리는, 그녀가 만들어 온 음식을 내가 싹 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의 맛은 뭐랄까…… 솔직히 잡채라고 부르기는 힘든 맛이었지만 그래도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먹으니 의외로 먹을 만 했다. 맛도 중요하지만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도 중요한 거니까…… 아무렴.
“흐뭇한걸. 다 먹을 줄은 몰랐는데.”
“하, 하하…….”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먹을 수밖에 없는 거지만, 어쨌든 그녀는 흡족한 얼굴이 되어 빈 접시를 챙겼다.
“다음엔 더 제대로 만들어 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뭐 저야 고마운 일이지만…… 샐리는 왜 매번 나에게 요리를 해주는 거예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내가 허구한 날 관리실을 지키며 앉아있는 모습이 그녀로서는 무료해보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질문을 하면서 솔직히 내심으로는 뭔가 그녀에게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나 그것은 망상에서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거야 뭐, 윤호는 내 맛없는 요리를 매번 불평 없이 잘 먹어주잖아? 헤헤.”
“처, 천만에요. 맛없지 않아요.”
“아하하하.”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그녀는 까르르 웃어댔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나는 놀려먹기 좋은 남자로 보이는 걸까? 문득 선미 씨 생각이 났다.
“윤호는 항상 매너를 지키는 남자인 것 같아.”
“고, 고마워요.”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좀 수상하달까?”
“네?”
미심쩍은 한마디에 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인 것 같긴 했다.
“무슨 뜻이에요?”
“원래 지나치게 젠틀하거나 매너 있는 사람들이 속은 시커먼 경우가 더 많다고 하잖아? 뭐, 윤호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도 윤호는 가끔 보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비유하자면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이려나? 그래, 그런 느낌이야.”
“가면……?”
어떤 의도를 지니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녀는 제법 구체적인 표현을 했다. 딱히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그녀는 한번 빙긋 웃고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남기고서 그녀는 그렇게 관리실을 나갔다.
“가면…….”
혼자 남은 나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뱉어보았다.
*
‘윤호 나이 정도 되면 보통 연애하고 싶어 하잖아.’
그녀는 본의 아니게 내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 셈이었다. 한 때는 내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엔 분명 그 여자도 나를 사랑했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그 이별의 순간은 나로서는 몹시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기억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목소리 하나가 다시 귀에 아른거렸다. 우리가 언제, 어느 장소에서 이별을 했는지는 이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녀가 이별을 고하던 순간 내게 했던 말들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난 널 이해할 수 없어.’
그리고 또 다른 말도 했었다.
‘난 네가 무서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저 담담하게 그 말을 들으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마음먹었던가? 아니면 일방적인 통보에 화를 내며 반박했었나? 테이프가 드문드문 끊어진 것처럼 그 부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너와는 계속 만날 수 없어.’
다만,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
“담배 하나만.”
“네?”
무척 느닷없는 만남이었다. 잠시 바깥바람을 쐬러 건물 앞 벤치에 나왔을 뿐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얼굴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얼굴은 먼저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지연 씨?”
“담배 하나만 달라구요.”
“아직도 펴요? 그, 그 때 끊는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적 얘긴데.”
“그럼 금연은……?”
“당연히 실패했죠.”
늘 그랬듯이 지연 씨의 그 틱틱거리는 말투는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탁을 할 때조차 이런 까칠함이라니…….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것이겠지만 너무도 당당히 손바닥을 내밀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얼이 빠졌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지연 씨, 매번 말하지만 나는 담배를 안 피는데요…….”
“재미없긴.”
쌀쌀맞게 쏘아붙인 그녀는 벤치에 걸터앉아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자, 자기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달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구태여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간 괜히 한소리 더 들을 것 같아서 잠자코 있기만 했다. 그녀는 연기를 한 모금 뱉고는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오늘부터 피기 시작한 줄 알았죠.”
“어, 어째서요?”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선 앉아있는 꼴이, 꼭 담배가 필요한 사람처럼 보여서요.”
“……우울할 때 니코틴이 정말 도움이 되긴 할까요?”
“몰라요.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니.”
건물을 드나들다보면 가끔 이렇게 그녀가 홀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녀가 연기를 허공에 뱉는 그 모습에서는 제법 시니컬함이 물씬 느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날티가 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우울한 이유가 뭔데요?”
“네?”
두 번 말하게 하는 것이 퍽 짜증났는지 그녀는 눈썹을 모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목구비 자체가 이미 워낙 기가 센 인상이라, 표정을 찡그리니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좀 어울려보였다. 내색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뭐 때문에 우울한 거냐구요.”
“그, 그냥…… 생각할게 좀 있었어요. 별거 아니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걱정한 적 없는데요.”
“…….”
괜히 멋쩍어진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녀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204호 부부에게는 한마디 했나요?”
“네?”
잊고 있었던 화제가 갑자기 튀어나오니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일까?
“아, 아아, 해,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그게…… 이웃에 피해가 가니까, 조금만 주의해달라고……”
“점잖게도 얘기하셨네요. 뭐 그래봤자 또 건물이 떠나가라 그 짓거리 하겠지만.”
그 소란의 범인이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연 씨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선미 씨가 무척 궁금해 했었지. 지연 씨를 눈앞에 두고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심히 곤혹스러웠다. 얼굴이 화끈대며 달아올랐지만 다행히도 이미 해가 저물어 그녀는 내 당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 집 남편은 요즘 들어 잘 보이지도 않던데, 밤만 되면 그렇게 지지고 볶고 난리를 쳐대니……”
“하, 하하…… 낮에는 업무 때문에 바쁠 테니 잘 볼 수가 없겠죠.”
아무래도 난 거짓말에 재능이 없나보다. 태연한 기색을 더는 유지하기가 힘들어 나는 조금 억지로 말머리를 돌렸다.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화제를 돌릴 만한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와 주었다.
“그런데, 저건 뭔가요?”
“이거요?”
지연 씨는 벤치 옆에 내려두었던 물건들 가운데, 내가 가리킨 것을 집어 들었다. 부피로 보아하니 여자가 들기에는 꽤 무거울 법도 한데 그녀는 마트에서부터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블라인드 나사가 빠져서 새로 좀 설치하려구요. 적당한 게 보여서 사왔어요.”
“그, 그랬어요? 관리실로 와서 말하지 그랬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블라인드는 기본 옵션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요.”
물론 집주인 입장에서는 지연 씨처럼 자기 손으로 어지간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세입자가 편하고 좋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속으로는 괜히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여자 손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데.”
“이래봬도 일 잘해요.”
그 미묘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서슴없이 내 도움을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배 한 개비가 어느새 꽁초가 되어있었다.
“들어갈게요.”
“네…… 수고해요.”
자기 몸집만 한 블라인드 부품을 힘겹게 들쳐 메고 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아쉬움에 그 자리에서 한동안 서성댔다.
관리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또다시 선미 씨 생각이 났다. 지연 씨와는 다르게 선미 씨는 걸핏하면 문제가 생겼다며 나를 호출해댔지. 물론 진짜로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어서였지만……
샐리가 했던 말 때문일까? 문득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넘어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공허한 감각이 마음속을 가득 메웠다. 이런 생각은 썩 좋지 않겠지만, 누구라도 좋으니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선미 씨 생각이 난 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먼저 그녀의 방으로 찾아가도 괜찮으려나…….
“저기요, 아저씨.”
“네, 네?”
그 순간 나는 놀라서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갈 뻔 했다가, 간신히 그 꼴을 모면했다. 방으로 올라가버렸던 지연 씨가 관리실로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지나치게 놀라는 나를 보며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놀라요? 내가 함부로 들어온 건가요?”
“아, 아니에요. 그냥 놀라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그게, 딱히 도와 달라는 뜻은 아닌데요. 집에 드라이버가 없어서요. 좀 빌려주실래요?”
“…….”
대답을 듣는 순간엔 얼이 빠졌고, 다시 생각해보니 실없이 웃음이 터졌다.
“왜 웃으세요?”
“아니, 일 잘한다는 사람이 드라이버도 없이 블라인드를 설치할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평소에 쓸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던 것뿐이거든요!”
자존심을 긁자 발끈하며 성을 내는 그 모습은, 담배 연기를 뱉을 때보다도 훨씬 더 그 나이에 어울려보였다. 나는 서랍을 뒤져 전동 드라이버를 꺼내고는, 여전히 고집스런 표정으로 서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가요. 내가 해줄 테니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빌려만 줘요.”
“하하, 어설프게 구멍 뚫어서 건물 무너뜨릴까봐 무서워서 그래요.”
“누, 누가 어설프다는 거죠?”
앞장서서 걷는 나를, 그녀는 끝까지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며 따라왔다.
*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그래요. 의자나 좀 주세요.”
지연 씨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작은 의자를 가져왔다. 그 의자는 내가 밟고 올라서기엔 조금 좁고 불안했으나, 나는 아랑곳 않고 윗면에다 대고 나사를 조절했다. 하지만 대범한 척 하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사실은 속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기왕 자신 있게 돕겠다고 나섰으니 제대로 일을 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부분에서 곤혹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괜히 들어왔나……?’
문제의 발단은 방에 첫걸음을 딛으면서부터 일어났다. 아무리 관리인 명목으로 잡일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가는 것은 익숙해질 수가 없는 일이었다. 선미 씨 때도 그랬는데 하물며 지연 씨야……
이런 생각이 들까봐 들어오기 전부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고 들어왔는데도, 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미 후각을 건드리는 여성 특유의 향기가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선미 씨의 집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괜찮겠어요? 좀 위태로워 보이는데.”
“괜찮아요.”
“흥. 나더러 어설프다고 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죠.”
내색하지 않으려 태연한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시선은 나도 모르게 자꾸만 방 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선미 씨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곳은 오직 여대생 한 명만 지내는 방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물건들은 모조리 그녀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쓰는 물건이나 그녀가 입던 옷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은 내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댔다.
세탁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보이는 바구니가 수건으로 덮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보다 먼저 방에 들어온 그녀가 다급히 그곳부터 가렸던 것으로 봐서는, 입었던 속옷이나 옷가지들이 안에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외간남자에게 속옷을 보일 수는 없었을 테지…….
“방이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아까 올라갔을 때 급하게 정리하고 내려온 거 아니에요?”
“그건 왜 물어요?”
“내가 들어올 걸 미리 생각하고 치워둔 건가 해서요.”
“어이가 없네요, 그런 착각을 하시다니. 그보다 ‘생각보다’라는 말은 대체 뭐죠?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했기에?”
“글쎄요…… 목청 좋은 아가씨 정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들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농담을 해댔다. 왠지 아까부터 그녀의 얼굴이 선미 씨와 겹치는 것만 같았다. 둘만 있는 방 안에서 나에게 핑계 삼아 일거리를 시키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즐기던 선미 씨……. 그렇게 일이 끝나고 나면 보답이라며 항상 무언가를 해주었지. 물론 그 농염한 몸뚱이를 이용해서……
“읏.”
딴생각이 너무 지나쳤는지 가뜩이나 좁은 의자 위에서 발을 헛디딜 뻔 하고 말았다. 그러자 지켜보던 지연 씨도 깜짝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의자가 기울어지지 않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의자를 붙잡고는 내 다리 부근에 서게 되자, 하필 공교롭게도 잡아도 뒤에서 잡은 게 아니라 앞에서 잡아버렸기 때문인지 내 가랑이 사이가 그녀의 얼굴과 꽤 가까워졌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선미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사탕이라도 먹듯이 오물거리며 빨아대던 그녀. 게다가 예전에 그녀는 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내 바지를 벗겨서 애무를 해줬던 적이 있었다……. 싫어도 그 때의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방 안에 단 둘뿐이었으니.
“뭐, 뭐에요. 조심해요! 큰일 날 뻔 했잖아요. 하여간 남자들은 이래서…… 큰소리 쳐놓고선 덜렁대기나 하고…….”
“…….”
그녀가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말소리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그저 가랑이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뻔 했던 그녀의 입술만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저 입에 내 물건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선미 씨처럼 적극적으로 빨아줄까? 아니면……’
바지 안쪽에서 기둥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빳빳해지는 게 느껴졌다.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미 씨야 눈치를 채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연 씨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흉측하게 바지 앞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채로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발기 하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본능 하나가 똬리를 틀며 스멀스멀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 잘 참고 억눌러왔던 그것이, 기이한 형태로 자극을 받으니 또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달아오를수록 뇌에서는 적색경보를 울려대는 게 느껴졌다. 이성이 내게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지, 지연 씨가 자꾸 보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잠깐 다른 데로 가 계시면 안 될까요?”
“칫, 핑계는!”
그녀는 비록 나를 쏘아붙이긴 했지만 다행히 내 말대로 주방 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주었다. 덕분에 나는 적어도 한껏 불룩해진 바지 앞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하아…….”
입에서 새어나오는 숨결마저 뜨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게 마구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나를 놓아버리게 될 것 같은 이 느낌…… 나는 이 느낌을 이전에도 몇 차례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곤’ 했다. 대개의 경우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성을 잃는다면 결과가 좋을 리는 없었다.
서둘렀기 때문일까, 몇 번이고 위태로웠던 순간이 있었지만 별 사고 없이 작업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 기본 틀을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몇 가지 부품만 교체하면 되는 것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지연 씨는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지 그동안 가까이 오지 않았다.
“지, 지연 씨, 다 됐어요. 그럼 전 이만 갈게요!”
“어? 벌써 끝났어요? 저기요, 아저씨!”
지연 씨가 뭐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도망치듯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곳에 더 있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우선은 이성을 완전히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그래도 그나마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저씨! 이봐요, 아저씨!”
하지만 지연 씨는 내 속도 모르고 쫄래쫄래 복도까지 나를 쫓아 나왔다.
“아니,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면 어떡해요?”
“지, 지연 씨…… 그게……”
“자기 할 것만 다하고 쏙 나가버리고 그래요? 황당하게.”
“어차피 내가 멋대로 돕겠다고 한 거라서…… 빨리 끝내고 가려고……”
“내가 무슨 고마움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보여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받아보니 비닐 랩으로 포장된 과일이었다.
“가져가서 드세요.”
“고, 고마워요.”
나는 희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앞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매하게 등을 돌린 채로, 주는 것만 조심스럽게 받아드는 내 모습을 그녀가 수상쩍게 여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다행히 그녀는 별다른 트집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이름이 뭐에요?”
“윤호…… 김윤호에요.”
“생각해보니 아저씨한텐 저를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는데, 나는 그동안 아저씨 이름도 몰랐네요. 그럼 나도 앞으론 윤호 씨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그, 그래요…… 편하실 대로 하세요.”
그녀는 미소를 짓거나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저 할 말이 끝나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녀가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격렬한 한숨이 뭉텅이로 튀어나왔다.
*
“어머, 윤호 씨. 어쩐 일이야?”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누르자, 선미 씨가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집은 204호……. 지연 씨의 바로 옆집이었기에 나는 행여나 지연 씨가 들을까 싶어 그녀의 입을 막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왜? 무슨 일…… 꺄악!”
선미 씨가 채 비명을 다 지르기도 전에 나는 그녀를 바닥에 넘어뜨려 깔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주방 서랍을 뒤져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지난 경험으로 그녀의 집 곳곳에 물건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유리 테이프를 다급히 뜯어낸 나는 사정없이 그녀의 손목을 칭칭 둘렀다. 순식간에 손목이 결박된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입마저 테이프로 틀어막아버렸다.
입과 손목이 구속된 모습의 그녀를 우악스럽게 잡아 일으키고는 그대로 침대를 향해 던졌다. 남편과 그녀가 껴안고 뒹굴었을 침대 위에 그녀의 결박된 몸뚱이가 나동그라지자 나는 그 위로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거의 찢어발기다시피 벗겨내기 시작했다. 꽤나 값비싸 보이는 옷가지들이 천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걸레쪼가리로 변했다.
“읍…… 으흡……”
뭐라고 그녀가 웅얼대는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실크로 된 자주색 팬티를 뚜둑, 소리가 날 만큼 힘껏 아래로 젖히고는 뽀얀 엉덩이에 그대로 힘껏 손바닥으로 매질을 가했다. 장난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학적인 폭력성을 담아 때린 것이었기에 엉덩이가 뭉개질 때마다 그녀가 고통으로 흐느끼는 소릴 내었다.
“허억…… 헉……”
숨이 가빠질 만큼 마음껏 갈겨대고 나서 그녀의 엉덩이를 찢어버릴 듯이 좌우로 힘껏 벌렸다. 그렇게 우악스레 억지로 열어젖히니 항문이 일자로 가늘게 벌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바지춤을 끌어내려, 아까부터 잔뜩 발기해 있었던 기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뻑뻑한 애널에다 대고, 있는 힘껏 마구잡이로 귀두를 쑤셔 넣었다. 질 안에 생으로 삽입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일진대 항문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무작정 괄약근을 찢어발기는 그 폭력적인 삽입 앞에 그녀가 흰자위를 드러낸 채로 고통스러워했다.
“으흐으으……! 으으으으읍!”
테이프로 가로막힌 입이 절규를 뱉었지만 나는 힘으로 더더욱 귀두를 쑤셔 넣었다. 구멍이 억지로 열리면서, 진공의 막을 뚫어버리는 것 같은 억센 느낌이 뒤따라왔다. 이토록 뻑뻑한 구멍에 삽입을 한다는 것은 여자에게도 고통스런 일이지만 나에게도 무척 힘겨운 일이었다. 기둥을 끊어먹을 것만 같은 조임이 느껴졌다.
“엉덩이 더 높이 들어, 똥갈보 씹창년아.”
내가 귓가에 으르렁대자, 그녀는 항문이 찢기는 아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부들거리며 천장을 향해 엉덩이를 더욱 치켜들었다. 나는 여전히 항문에 성기를 꽂은 채로 마치 짐승이 교미를 하듯이 두 발로 침대 시트를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그 뇌쇄적인 궁둥짝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온힘을 다해 위에서 아래로 꽂아 내렸다.
푸욱……! 하는 느낌과 함께 기둥이 그녀의 애널 안쪽으로 틀어박혔다. 느낌만으로 생각하면 뿌리까지 전부 틀어박혔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절반 정도밖에 삽입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실신할 것 같은 고통이었는지 그녀는 엉덩이를 퍼덕거리며 몸부림쳤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어엉엉……”
입이 틀어 막혀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니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의 뒷구멍을 억지로 따먹는 맛은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이 좋은걸 왜 평소에는 거리끼게 되는 것일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쓸 데 없는 소리다. 결국 남을 위해서 내 본능을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주둥이 열어줄 테니 소리 지르지 마. 소리 지르면 이대로 네 뒷구녕을 완전히 찢어버릴 거야. 입 닫고 시키는 대로만 똑바로 해. 알았어?”
“흑……”
선미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그녀의 항문에서 물건을 뽑고는 입을 막았던 테이프를 떼어주었다. 너무도 무식하게 애널을 유린당한 후유증 때문인지, 그녀는 신음을 감추지 못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용케 내가 명령한 대로 큰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었다.
“이리 와.”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쥐다시피 하여, 식탁 의자 앞까지 억지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나는 의자 위에 성큼 발을 딛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일으켜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도록 자세를 만들었다. 아까 지연 씨에게서 떠올렸던 그 이미지 그대로 말이다…….
“빨아.”
“…….”
“빨아, 씨발년아! 당장!”
방금 전까지 자신의 항문 깊숙이 꽂혀있었던 물건을 입에 물으라고 명령을 받으니, 그녀는 도대체 무슨 기분이 들까. 하지만 나는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주둥이이 대고 귀두를 내밀었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더니 자신의 입속에 결국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으으……!”
방금 전까지 뻑뻑한 구멍 속에서 극도의 조임을 맛보던 물건이, 이번에는 입속에 파묻혀 부드러운 혀놀림의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냉탕에서 온탕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것처럼 자극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버리자 어마어마하게 아찔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더 세게 빨아, 더 세게……! 불알 주름 하나하나까지 빨아먹으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항문에 들어갔던 것을 적극적으로 빨기는 힘든지 그녀는 괴로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그녀의 머리통을 단단히 움켜쥔 채 놔주지 않았다. 목젖까지 닿을 정도로 깊숙이 쑤셔 박고는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아까의 장면을 상상했다.
이제 내 상상의 힘을 빌어, 눈앞의 선미 씨는 어느새 지연 씨가 되어있었다. 나는 아까의 그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내 물건을 입에 받아든 지연 씨가 그것을 빨고 있었다. 아아, 상상으로만 끝내버리기엔 너무 황홀하지 않은가. 현실로 이루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만큼…….
“크흑……”
내가 이렇게 모진 학대를 해대고, 심지어 다른 여자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음에도 선미 씨는 그 와중에 참으로 정성스럽게 애무를 해나갔다. 구역질을 몇 번이나 삼키면서도 그녀는 힘껏 기둥을 빨아댔고,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간질간질한 신호가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사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나는 그녀의 입속에서 물건을 뽑았다.
“식탁 잡고 엎드려.”
그녀가 엉거주춤 식탁에 두 손을 얹고는 엉덩이를 내밀었다. 아마도 내가 다시 항문을 유린할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야 재미가 없지 않은가? 세 구멍을 돌아가면서 모두 맛보는 편이 훨씬 자극적이겠지. 나는 그녀의 질 입구에 대고 귀두를 몇 번 문지르다가, 이내 힘주어 푸욱 하고 꽂아버렸다.
“흐읍……!”
그녀가 기묘한 신음성을 흘렸지만 마냥 괴로워하는 신음만은 아니었다. 아까처럼 괴롭게 찢어발기는 무식한 삽입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별다른 전희도 하지 않았는데 이토록 쉽게 물건이 쑥 꽂혀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내 기둥이 그녀의 침으로 번들거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질 안쪽이 이미 꽤나 축축하게 젖어있었던 것이다.
“하하, 남편도 아닌 놈에게 후장을 따먹히기나 하는 주제에 이 와중에도 흥분이 되는 모양이지? 아예 벌름대면서 씹물을 줄줄 쏟아내는걸. 대단해. 넌 정말 대단한 암캐 년이야.”
“아학…… 아아악…… 하아아앙……!”
어차피 사정에 임박해 있었으니 템포를 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물건을 꽂아 넣자마자 피스톤질의 속도를 최고봉으로 높였다. 단숨에 최고속도로 힘껏 쑤셔 박으니, 그녀 또한 내가 사정까지 치달아 오르는 그 짧은 순간동안 짐승처럼 격정에 몸을 떨었다.
“아흑! 어흐윽! 하아앙! 아아아아!”
뽑을 생각도 않고 나는 그대로 유부녀의 질 속에 세차게 사정했다. 뜨거운 정액을 몸 안에 쏟아내는 동안에도 여전히 교성을 지르고 있는 선미 씨…… 그녀는 또 이렇게 내 본능의 희생양이 되었다.
쿵쿵!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가 절정에 오르는 그 순간, 옆방에서 지연 씨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언짢음에 가득 찬 소리였다.
- 다음 화에 계속 -
새로이 쓰기 시작한 글이라 많은 분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하네요
내일은 주말입니다 다들 불금 되시길~ ^^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2부
“윤호, 지금 바빠?”
“샐리……? 어쩐 일이에요?”
관리실에 누군가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것은 사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어지간하면 평소에 자리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내 건물은 기본적으로 가구 수가 적은데다 신축답게 시설상의 문제도 지금까지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끔 예외적인 경우가 몇몇 있긴 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서 언성을 높이고 사라지는 지연 씨처럼 말이다……. 그리고 눈앞의 이 여인도 아마 그 예외 중 하나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 봐. 내가 뭘 좀 만들었어.”
“잡채? 잡채인가요?”
샐리는 종종 이렇게 직접 만든 음식을 내게 조금씩 나누어주곤 했다. 매끄러운 유리접시 조심스럽게 얹어진 그 음식은…… 아마도 형상만으로 추정하자면 잡채에 가까워보였다. 내가 그 음식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 샐리는 무척 흡족했는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뿌듯해. 이제 무슨 요리인지 정도는 쉽게 알아보는구나. 한국말로 이걸…… 뭐라고 하더라? 음…… 장족의 발전?”
“하하…… 그러네요. 샐리 솜씨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하긴 처음에 그녀가 만들어온 그 시루떡 비슷해 보이는 음식을 보고 조심스럽게 케이크냐고 물었다가 그녀에게 꽤 상처를 줬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만두였다고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녀가 그 때의 일을 끄집어내는걸 보면 아마 그녀로서는 퍽 굴욕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걸 만회하려고 이렇게 내게 자꾸 음식을 가져다주는 걸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 어서 먹어봐.”
“지금요?”
“Of course."
눈빛을 빛내며 내 시식을 기다리고 있는 표정을 보니, 세세한 감상을 들려주지 않으면 아마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하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니까. 나는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젓가락을 집어 그녀의 요리를 한입 맛보았다.
‘하, 하하…… 간 맞추는 건 여전히 서툴구나.’
솔직한 감상은 너무 짜다는 것이었지만, 굳이 그걸 지적해 줄 필요는 없으리라.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이게 어디인가? 나는 만면 가득히 빙긋 웃는 표정을 하고는 그 웃음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애썼다.
“맛있어요.”
“히히. 정말?”
어머니는 살아계실 적에 살다보면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종종 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건 분명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난 아무래도 그거 인가봐, 그거. 그…… 뭐라고 하더라? 한국말로?”
“네?”
“아, 그래. 현모양처! 난 현모양처의 소질이 있는 것 같아. 호주에 있을 땐 몰랐거든.”
“그, 그래요……? 호주에서는 어땠는데요?”
“글쎄, 어째서인지 마미(mommy)랑 대디(daddy)는 내가 주방에 들어가는 걸 항상 말리곤 했거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아주 사소한 실수를 한 적은 가끔 있지만……”
호주 출신인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유학생임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서구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뚜렷한 인상의 이목구비를 포함해서 늘씬하게 쭉 뻗은 키와 상아색으로 반질반질 빛나는 살결, 바스트와 힙의 구분이 뚜렷한 균형 잡힌 몸매 등은 알게 모르게 나를 종종 자극하곤 했다.
게다가 그녀는 늘 외출했다가 원룸에 돌아오고 나면 편한 복장이랍시고 짤막한 탱크탑이나 핫팬츠 차림으로 건물을 활보하기 일쑤였는데, 그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이 건물에 살고 있는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본인은 그걸 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또 괜스레 민망해지는 것을 느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샐리는 교환학생이라고 했죠? 그럼 보통은 교내 기숙사에서 지내거나 하지 않나요? 굳이 따로 원룸을 구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아, 그건 말이지.”
그러고 보니 처음에 그녀와 계약을 할 때도 그녀의 사정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 역시 나를 건물주의 대리인으로만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굳이 방을 구하려는 이유를 내게 설명하진 않았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흠, 다음에 얘기해줄게.”
“왜요?”
“그냥. 여자는 비밀이 있는 편이 매력 있잖아?”
뭐든 서슴없이 얘기할 것만 같은 그녀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 또한 화제를 바꾸고 싶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윤호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나중에 현모양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만 현모양처라는 건 사실 가부장제의 산물이나 다름없지 않나요? 샐리처럼 진보적인 이미지의 여성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걸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가부장제? 그게 뭐야?”
“쉽게 말하면…… 남편에게 헌신하고 내조하는 여자가 되기보단, 좀 더 능동적인 삶을 사는 편이 샐리에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거죠.”
“아하! Independence!”
아무래도 그녀에겐 조금 생소한 표현이었을까? 풀어서 이야기를 해주니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윤호는 친절한걸.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거지?”
“뭐, 그렇죠.”
“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모양처’라는 건 조금 달라. 남편에게 구속되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고, 뭐랄까……”
그녀는 적당한 우리말 표현을 찾기 위해 무척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 문제가 그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일까?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아.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요리든 뭐든 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 말이야. 그러면 그건 헌신이라기보다는 애정이 되겠지? 너무너무 사랑해서 아낌없이 뭐든 해주고 싶은, 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그런 사람이랑 함께 살 거야!”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내심 조금 놀랐다. 그녀가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갑자기 늘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그녀가 그런 순정적인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 점도 의외였다.
“그러니까 윤호가 생각하는 현모양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수 있어.”
“멋진걸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줄은 몰랐어요. 샐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로맨틱한 사람인 것 같네요.”
“헷, 몰랐어? 난 사랑을 꿈꾸는 소녀야. 비록 10대는 아니지만.”
단어를 고르기 힘들어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표현하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보였다. 내가 알아듣자 스스로 설명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지 뿌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그래요. 샐리는 매력 있으니까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결혼에 대해선 신중해야하니까 우선은 남자친구부터 사귀고 차근차근 알아가야겠죠. 안 그래요?”
“흠, 보이프렌드라……”
뭐, 사실 이 질문은 그녀에게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한 내 얕은 꼼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명확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대놓고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애인이 없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니…….
“그러는 윤호는 왜 걸프렌드가 없어?”
“네?”
“여자친구 말이야. 윤호 나이 정도 되면 보통 연애하고 싶어 하잖아.”
“그게…… 연애가 하고 싶다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일단 마음이 통하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남자에게 호감 가질 여자가 그리 많을 것 같지도 않고.”
“흠, 그런가? 내가 보기엔 윤호, 캥거루처럼 생기긴 했어도 그리 못나진 않은 것 같은데.”
캥거루는 또 뭐람. 그렇게 실컷 이모저모 내 얼굴을 뜯어 살피는 시늉을 하던 샐리는, 그녀가 만들어 온 음식을 내가 싹 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의 맛은 뭐랄까…… 솔직히 잡채라고 부르기는 힘든 맛이었지만 그래도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먹으니 의외로 먹을 만 했다. 맛도 중요하지만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도 중요한 거니까…… 아무렴.
“흐뭇한걸. 다 먹을 줄은 몰랐는데.”
“하, 하하…….”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먹을 수밖에 없는 거지만, 어쨌든 그녀는 흡족한 얼굴이 되어 빈 접시를 챙겼다.
“다음엔 더 제대로 만들어 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뭐 저야 고마운 일이지만…… 샐리는 왜 매번 나에게 요리를 해주는 거예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내가 허구한 날 관리실을 지키며 앉아있는 모습이 그녀로서는 무료해보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질문을 하면서 솔직히 내심으로는 뭔가 그녀에게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나 그것은 망상에서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거야 뭐, 윤호는 내 맛없는 요리를 매번 불평 없이 잘 먹어주잖아? 헤헤.”
“처, 천만에요. 맛없지 않아요.”
“아하하하.”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그녀는 까르르 웃어댔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나는 놀려먹기 좋은 남자로 보이는 걸까? 문득 선미 씨 생각이 났다.
“윤호는 항상 매너를 지키는 남자인 것 같아.”
“고, 고마워요.”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좀 수상하달까?”
“네?”
미심쩍은 한마디에 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인 것 같긴 했다.
“무슨 뜻이에요?”
“원래 지나치게 젠틀하거나 매너 있는 사람들이 속은 시커먼 경우가 더 많다고 하잖아? 뭐, 윤호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도 윤호는 가끔 보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비유하자면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이려나? 그래, 그런 느낌이야.”
“가면……?”
어떤 의도를 지니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녀는 제법 구체적인 표현을 했다. 딱히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그녀는 한번 빙긋 웃고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남기고서 그녀는 그렇게 관리실을 나갔다.
“가면…….”
혼자 남은 나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뱉어보았다.
*
‘윤호 나이 정도 되면 보통 연애하고 싶어 하잖아.’
그녀는 본의 아니게 내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 셈이었다. 한 때는 내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엔 분명 그 여자도 나를 사랑했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그 이별의 순간은 나로서는 몹시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기억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목소리 하나가 다시 귀에 아른거렸다. 우리가 언제, 어느 장소에서 이별을 했는지는 이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녀가 이별을 고하던 순간 내게 했던 말들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난 널 이해할 수 없어.’
그리고 또 다른 말도 했었다.
‘난 네가 무서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저 담담하게 그 말을 들으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마음먹었던가? 아니면 일방적인 통보에 화를 내며 반박했었나? 테이프가 드문드문 끊어진 것처럼 그 부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너와는 계속 만날 수 없어.’
다만,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
“담배 하나만.”
“네?”
무척 느닷없는 만남이었다. 잠시 바깥바람을 쐬러 건물 앞 벤치에 나왔을 뿐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얼굴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얼굴은 먼저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지연 씨?”
“담배 하나만 달라구요.”
“아직도 펴요? 그, 그 때 끊는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적 얘긴데.”
“그럼 금연은……?”
“당연히 실패했죠.”
늘 그랬듯이 지연 씨의 그 틱틱거리는 말투는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탁을 할 때조차 이런 까칠함이라니…….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것이겠지만 너무도 당당히 손바닥을 내밀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얼이 빠졌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지연 씨, 매번 말하지만 나는 담배를 안 피는데요…….”
“재미없긴.”
쌀쌀맞게 쏘아붙인 그녀는 벤치에 걸터앉아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자, 자기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달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구태여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간 괜히 한소리 더 들을 것 같아서 잠자코 있기만 했다. 그녀는 연기를 한 모금 뱉고는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오늘부터 피기 시작한 줄 알았죠.”
“어, 어째서요?”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선 앉아있는 꼴이, 꼭 담배가 필요한 사람처럼 보여서요.”
“……우울할 때 니코틴이 정말 도움이 되긴 할까요?”
“몰라요.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니.”
건물을 드나들다보면 가끔 이렇게 그녀가 홀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녀가 연기를 허공에 뱉는 그 모습에서는 제법 시니컬함이 물씬 느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날티가 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우울한 이유가 뭔데요?”
“네?”
두 번 말하게 하는 것이 퍽 짜증났는지 그녀는 눈썹을 모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목구비 자체가 이미 워낙 기가 센 인상이라, 표정을 찡그리니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좀 어울려보였다. 내색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뭐 때문에 우울한 거냐구요.”
“그, 그냥…… 생각할게 좀 있었어요. 별거 아니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걱정한 적 없는데요.”
“…….”
괜히 멋쩍어진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녀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204호 부부에게는 한마디 했나요?”
“네?”
잊고 있었던 화제가 갑자기 튀어나오니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일까?
“아, 아아, 해,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그게…… 이웃에 피해가 가니까, 조금만 주의해달라고……”
“점잖게도 얘기하셨네요. 뭐 그래봤자 또 건물이 떠나가라 그 짓거리 하겠지만.”
그 소란의 범인이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연 씨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선미 씨가 무척 궁금해 했었지. 지연 씨를 눈앞에 두고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심히 곤혹스러웠다. 얼굴이 화끈대며 달아올랐지만 다행히도 이미 해가 저물어 그녀는 내 당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 집 남편은 요즘 들어 잘 보이지도 않던데, 밤만 되면 그렇게 지지고 볶고 난리를 쳐대니……”
“하, 하하…… 낮에는 업무 때문에 바쁠 테니 잘 볼 수가 없겠죠.”
아무래도 난 거짓말에 재능이 없나보다. 태연한 기색을 더는 유지하기가 힘들어 나는 조금 억지로 말머리를 돌렸다.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화제를 돌릴 만한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와 주었다.
“그런데, 저건 뭔가요?”
“이거요?”
지연 씨는 벤치 옆에 내려두었던 물건들 가운데, 내가 가리킨 것을 집어 들었다. 부피로 보아하니 여자가 들기에는 꽤 무거울 법도 한데 그녀는 마트에서부터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블라인드 나사가 빠져서 새로 좀 설치하려구요. 적당한 게 보여서 사왔어요.”
“그, 그랬어요? 관리실로 와서 말하지 그랬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블라인드는 기본 옵션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요.”
물론 집주인 입장에서는 지연 씨처럼 자기 손으로 어지간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세입자가 편하고 좋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속으로는 괜히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여자 손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데.”
“이래봬도 일 잘해요.”
그 미묘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서슴없이 내 도움을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배 한 개비가 어느새 꽁초가 되어있었다.
“들어갈게요.”
“네…… 수고해요.”
자기 몸집만 한 블라인드 부품을 힘겹게 들쳐 메고 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아쉬움에 그 자리에서 한동안 서성댔다.
관리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또다시 선미 씨 생각이 났다. 지연 씨와는 다르게 선미 씨는 걸핏하면 문제가 생겼다며 나를 호출해댔지. 물론 진짜로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어서였지만……
샐리가 했던 말 때문일까? 문득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넘어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공허한 감각이 마음속을 가득 메웠다. 이런 생각은 썩 좋지 않겠지만, 누구라도 좋으니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선미 씨 생각이 난 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먼저 그녀의 방으로 찾아가도 괜찮으려나…….
“저기요, 아저씨.”
“네, 네?”
그 순간 나는 놀라서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갈 뻔 했다가, 간신히 그 꼴을 모면했다. 방으로 올라가버렸던 지연 씨가 관리실로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지나치게 놀라는 나를 보며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놀라요? 내가 함부로 들어온 건가요?”
“아, 아니에요. 그냥 놀라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그게, 딱히 도와 달라는 뜻은 아닌데요. 집에 드라이버가 없어서요. 좀 빌려주실래요?”
“…….”
대답을 듣는 순간엔 얼이 빠졌고, 다시 생각해보니 실없이 웃음이 터졌다.
“왜 웃으세요?”
“아니, 일 잘한다는 사람이 드라이버도 없이 블라인드를 설치할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평소에 쓸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던 것뿐이거든요!”
자존심을 긁자 발끈하며 성을 내는 그 모습은, 담배 연기를 뱉을 때보다도 훨씬 더 그 나이에 어울려보였다. 나는 서랍을 뒤져 전동 드라이버를 꺼내고는, 여전히 고집스런 표정으로 서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가요. 내가 해줄 테니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빌려만 줘요.”
“하하, 어설프게 구멍 뚫어서 건물 무너뜨릴까봐 무서워서 그래요.”
“누, 누가 어설프다는 거죠?”
앞장서서 걷는 나를, 그녀는 끝까지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며 따라왔다.
*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그래요. 의자나 좀 주세요.”
지연 씨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작은 의자를 가져왔다. 그 의자는 내가 밟고 올라서기엔 조금 좁고 불안했으나, 나는 아랑곳 않고 윗면에다 대고 나사를 조절했다. 하지만 대범한 척 하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사실은 속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기왕 자신 있게 돕겠다고 나섰으니 제대로 일을 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부분에서 곤혹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괜히 들어왔나……?’
문제의 발단은 방에 첫걸음을 딛으면서부터 일어났다. 아무리 관리인 명목으로 잡일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가는 것은 익숙해질 수가 없는 일이었다. 선미 씨 때도 그랬는데 하물며 지연 씨야……
이런 생각이 들까봐 들어오기 전부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고 들어왔는데도, 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미 후각을 건드리는 여성 특유의 향기가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선미 씨의 집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괜찮겠어요? 좀 위태로워 보이는데.”
“괜찮아요.”
“흥. 나더러 어설프다고 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죠.”
내색하지 않으려 태연한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시선은 나도 모르게 자꾸만 방 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선미 씨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곳은 오직 여대생 한 명만 지내는 방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물건들은 모조리 그녀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쓰는 물건이나 그녀가 입던 옷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은 내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댔다.
세탁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보이는 바구니가 수건으로 덮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보다 먼저 방에 들어온 그녀가 다급히 그곳부터 가렸던 것으로 봐서는, 입었던 속옷이나 옷가지들이 안에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외간남자에게 속옷을 보일 수는 없었을 테지…….
“방이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아까 올라갔을 때 급하게 정리하고 내려온 거 아니에요?”
“그건 왜 물어요?”
“내가 들어올 걸 미리 생각하고 치워둔 건가 해서요.”
“어이가 없네요, 그런 착각을 하시다니. 그보다 ‘생각보다’라는 말은 대체 뭐죠?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했기에?”
“글쎄요…… 목청 좋은 아가씨 정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들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농담을 해댔다. 왠지 아까부터 그녀의 얼굴이 선미 씨와 겹치는 것만 같았다. 둘만 있는 방 안에서 나에게 핑계 삼아 일거리를 시키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즐기던 선미 씨……. 그렇게 일이 끝나고 나면 보답이라며 항상 무언가를 해주었지. 물론 그 농염한 몸뚱이를 이용해서……
“읏.”
딴생각이 너무 지나쳤는지 가뜩이나 좁은 의자 위에서 발을 헛디딜 뻔 하고 말았다. 그러자 지켜보던 지연 씨도 깜짝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의자가 기울어지지 않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의자를 붙잡고는 내 다리 부근에 서게 되자, 하필 공교롭게도 잡아도 뒤에서 잡은 게 아니라 앞에서 잡아버렸기 때문인지 내 가랑이 사이가 그녀의 얼굴과 꽤 가까워졌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선미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사탕이라도 먹듯이 오물거리며 빨아대던 그녀. 게다가 예전에 그녀는 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내 바지를 벗겨서 애무를 해줬던 적이 있었다……. 싫어도 그 때의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방 안에 단 둘뿐이었으니.
“뭐, 뭐에요. 조심해요! 큰일 날 뻔 했잖아요. 하여간 남자들은 이래서…… 큰소리 쳐놓고선 덜렁대기나 하고…….”
“…….”
그녀가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말소리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그저 가랑이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뻔 했던 그녀의 입술만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저 입에 내 물건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선미 씨처럼 적극적으로 빨아줄까? 아니면……’
바지 안쪽에서 기둥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빳빳해지는 게 느껴졌다.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미 씨야 눈치를 채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연 씨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흉측하게 바지 앞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채로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발기 하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본능 하나가 똬리를 틀며 스멀스멀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 잘 참고 억눌러왔던 그것이, 기이한 형태로 자극을 받으니 또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달아오를수록 뇌에서는 적색경보를 울려대는 게 느껴졌다. 이성이 내게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지, 지연 씨가 자꾸 보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잠깐 다른 데로 가 계시면 안 될까요?”
“칫, 핑계는!”
그녀는 비록 나를 쏘아붙이긴 했지만 다행히 내 말대로 주방 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주었다. 덕분에 나는 적어도 한껏 불룩해진 바지 앞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하아…….”
입에서 새어나오는 숨결마저 뜨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게 마구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나를 놓아버리게 될 것 같은 이 느낌…… 나는 이 느낌을 이전에도 몇 차례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곤’ 했다. 대개의 경우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성을 잃는다면 결과가 좋을 리는 없었다.
서둘렀기 때문일까, 몇 번이고 위태로웠던 순간이 있었지만 별 사고 없이 작업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 기본 틀을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몇 가지 부품만 교체하면 되는 것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지연 씨는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지 그동안 가까이 오지 않았다.
“지, 지연 씨, 다 됐어요. 그럼 전 이만 갈게요!”
“어? 벌써 끝났어요? 저기요, 아저씨!”
지연 씨가 뭐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도망치듯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곳에 더 있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우선은 이성을 완전히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그래도 그나마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저씨! 이봐요, 아저씨!”
하지만 지연 씨는 내 속도 모르고 쫄래쫄래 복도까지 나를 쫓아 나왔다.
“아니,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면 어떡해요?”
“지, 지연 씨…… 그게……”
“자기 할 것만 다하고 쏙 나가버리고 그래요? 황당하게.”
“어차피 내가 멋대로 돕겠다고 한 거라서…… 빨리 끝내고 가려고……”
“내가 무슨 고마움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보여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받아보니 비닐 랩으로 포장된 과일이었다.
“가져가서 드세요.”
“고, 고마워요.”
나는 희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앞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매하게 등을 돌린 채로, 주는 것만 조심스럽게 받아드는 내 모습을 그녀가 수상쩍게 여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다행히 그녀는 별다른 트집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이름이 뭐에요?”
“윤호…… 김윤호에요.”
“생각해보니 아저씨한텐 저를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는데, 나는 그동안 아저씨 이름도 몰랐네요. 그럼 나도 앞으론 윤호 씨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그, 그래요…… 편하실 대로 하세요.”
그녀는 미소를 짓거나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저 할 말이 끝나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녀가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격렬한 한숨이 뭉텅이로 튀어나왔다.
*
“어머, 윤호 씨. 어쩐 일이야?”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누르자, 선미 씨가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집은 204호……. 지연 씨의 바로 옆집이었기에 나는 행여나 지연 씨가 들을까 싶어 그녀의 입을 막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왜? 무슨 일…… 꺄악!”
선미 씨가 채 비명을 다 지르기도 전에 나는 그녀를 바닥에 넘어뜨려 깔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주방 서랍을 뒤져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지난 경험으로 그녀의 집 곳곳에 물건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유리 테이프를 다급히 뜯어낸 나는 사정없이 그녀의 손목을 칭칭 둘렀다. 순식간에 손목이 결박된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입마저 테이프로 틀어막아버렸다.
입과 손목이 구속된 모습의 그녀를 우악스럽게 잡아 일으키고는 그대로 침대를 향해 던졌다. 남편과 그녀가 껴안고 뒹굴었을 침대 위에 그녀의 결박된 몸뚱이가 나동그라지자 나는 그 위로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거의 찢어발기다시피 벗겨내기 시작했다. 꽤나 값비싸 보이는 옷가지들이 천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걸레쪼가리로 변했다.
“읍…… 으흡……”
뭐라고 그녀가 웅얼대는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실크로 된 자주색 팬티를 뚜둑, 소리가 날 만큼 힘껏 아래로 젖히고는 뽀얀 엉덩이에 그대로 힘껏 손바닥으로 매질을 가했다. 장난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학적인 폭력성을 담아 때린 것이었기에 엉덩이가 뭉개질 때마다 그녀가 고통으로 흐느끼는 소릴 내었다.
“허억…… 헉……”
숨이 가빠질 만큼 마음껏 갈겨대고 나서 그녀의 엉덩이를 찢어버릴 듯이 좌우로 힘껏 벌렸다. 그렇게 우악스레 억지로 열어젖히니 항문이 일자로 가늘게 벌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바지춤을 끌어내려, 아까부터 잔뜩 발기해 있었던 기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뻑뻑한 애널에다 대고, 있는 힘껏 마구잡이로 귀두를 쑤셔 넣었다. 질 안에 생으로 삽입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일진대 항문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무작정 괄약근을 찢어발기는 그 폭력적인 삽입 앞에 그녀가 흰자위를 드러낸 채로 고통스러워했다.
“으흐으으……! 으으으으읍!”
테이프로 가로막힌 입이 절규를 뱉었지만 나는 힘으로 더더욱 귀두를 쑤셔 넣었다. 구멍이 억지로 열리면서, 진공의 막을 뚫어버리는 것 같은 억센 느낌이 뒤따라왔다. 이토록 뻑뻑한 구멍에 삽입을 한다는 것은 여자에게도 고통스런 일이지만 나에게도 무척 힘겨운 일이었다. 기둥을 끊어먹을 것만 같은 조임이 느껴졌다.
“엉덩이 더 높이 들어, 똥갈보 씹창년아.”
내가 귓가에 으르렁대자, 그녀는 항문이 찢기는 아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부들거리며 천장을 향해 엉덩이를 더욱 치켜들었다. 나는 여전히 항문에 성기를 꽂은 채로 마치 짐승이 교미를 하듯이 두 발로 침대 시트를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그 뇌쇄적인 궁둥짝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온힘을 다해 위에서 아래로 꽂아 내렸다.
푸욱……! 하는 느낌과 함께 기둥이 그녀의 애널 안쪽으로 틀어박혔다. 느낌만으로 생각하면 뿌리까지 전부 틀어박혔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절반 정도밖에 삽입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실신할 것 같은 고통이었는지 그녀는 엉덩이를 퍼덕거리며 몸부림쳤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어엉엉……”
입이 틀어 막혀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니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의 뒷구멍을 억지로 따먹는 맛은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이 좋은걸 왜 평소에는 거리끼게 되는 것일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쓸 데 없는 소리다. 결국 남을 위해서 내 본능을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주둥이 열어줄 테니 소리 지르지 마. 소리 지르면 이대로 네 뒷구녕을 완전히 찢어버릴 거야. 입 닫고 시키는 대로만 똑바로 해. 알았어?”
“흑……”
선미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그녀의 항문에서 물건을 뽑고는 입을 막았던 테이프를 떼어주었다. 너무도 무식하게 애널을 유린당한 후유증 때문인지, 그녀는 신음을 감추지 못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용케 내가 명령한 대로 큰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었다.
“이리 와.”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쥐다시피 하여, 식탁 의자 앞까지 억지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나는 의자 위에 성큼 발을 딛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일으켜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도록 자세를 만들었다. 아까 지연 씨에게서 떠올렸던 그 이미지 그대로 말이다…….
“빨아.”
“…….”
“빨아, 씨발년아! 당장!”
방금 전까지 자신의 항문 깊숙이 꽂혀있었던 물건을 입에 물으라고 명령을 받으니, 그녀는 도대체 무슨 기분이 들까. 하지만 나는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주둥이이 대고 귀두를 내밀었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더니 자신의 입속에 결국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으으……!”
방금 전까지 뻑뻑한 구멍 속에서 극도의 조임을 맛보던 물건이, 이번에는 입속에 파묻혀 부드러운 혀놀림의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냉탕에서 온탕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것처럼 자극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버리자 어마어마하게 아찔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더 세게 빨아, 더 세게……! 불알 주름 하나하나까지 빨아먹으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항문에 들어갔던 것을 적극적으로 빨기는 힘든지 그녀는 괴로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그녀의 머리통을 단단히 움켜쥔 채 놔주지 않았다. 목젖까지 닿을 정도로 깊숙이 쑤셔 박고는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아까의 장면을 상상했다.
이제 내 상상의 힘을 빌어, 눈앞의 선미 씨는 어느새 지연 씨가 되어있었다. 나는 아까의 그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내 물건을 입에 받아든 지연 씨가 그것을 빨고 있었다. 아아, 상상으로만 끝내버리기엔 너무 황홀하지 않은가. 현실로 이루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만큼…….
“크흑……”
내가 이렇게 모진 학대를 해대고, 심지어 다른 여자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음에도 선미 씨는 그 와중에 참으로 정성스럽게 애무를 해나갔다. 구역질을 몇 번이나 삼키면서도 그녀는 힘껏 기둥을 빨아댔고,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간질간질한 신호가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사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나는 그녀의 입속에서 물건을 뽑았다.
“식탁 잡고 엎드려.”
그녀가 엉거주춤 식탁에 두 손을 얹고는 엉덩이를 내밀었다. 아마도 내가 다시 항문을 유린할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야 재미가 없지 않은가? 세 구멍을 돌아가면서 모두 맛보는 편이 훨씬 자극적이겠지. 나는 그녀의 질 입구에 대고 귀두를 몇 번 문지르다가, 이내 힘주어 푸욱 하고 꽂아버렸다.
“흐읍……!”
그녀가 기묘한 신음성을 흘렸지만 마냥 괴로워하는 신음만은 아니었다. 아까처럼 괴롭게 찢어발기는 무식한 삽입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별다른 전희도 하지 않았는데 이토록 쉽게 물건이 쑥 꽂혀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내 기둥이 그녀의 침으로 번들거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질 안쪽이 이미 꽤나 축축하게 젖어있었던 것이다.
“하하, 남편도 아닌 놈에게 후장을 따먹히기나 하는 주제에 이 와중에도 흥분이 되는 모양이지? 아예 벌름대면서 씹물을 줄줄 쏟아내는걸. 대단해. 넌 정말 대단한 암캐 년이야.”
“아학…… 아아악…… 하아아앙……!”
어차피 사정에 임박해 있었으니 템포를 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물건을 꽂아 넣자마자 피스톤질의 속도를 최고봉으로 높였다. 단숨에 최고속도로 힘껏 쑤셔 박으니, 그녀 또한 내가 사정까지 치달아 오르는 그 짧은 순간동안 짐승처럼 격정에 몸을 떨었다.
“아흑! 어흐윽! 하아앙! 아아아아!”
뽑을 생각도 않고 나는 그대로 유부녀의 질 속에 세차게 사정했다. 뜨거운 정액을 몸 안에 쏟아내는 동안에도 여전히 교성을 지르고 있는 선미 씨…… 그녀는 또 이렇게 내 본능의 희생양이 되었다.
쿵쿵!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가 절정에 오르는 그 순간, 옆방에서 지연 씨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언짢음에 가득 찬 소리였다.
- 다음 화에 계속 -
새로이 쓰기 시작한 글이라 많은 분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하네요
내일은 주말입니다 다들 불금 되시길~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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