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제네바에서 : 샤네끄 박사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방송을 듣고 비행기에 탔다. 강대리는 창가에 앉았지만, 비행기가 완전히 이륙하자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불빛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강대리가 실망한다.
"제네바에서는 어느 나라 말을 써?"
"불어. 영어도 통해. 걱정하지 마."
"왜 한국말은 안통하냐고."
"하하하."
"셀린이 테스트하겠다는 것이 있다는데 알아듣지 못했거든. 그게 뭐래?"
"매년 20 가지 종류의 식물을 직접 재배해서 테스트한다고.
내년에 하는 테스트에는 엠마도 껴들어갈 눈치야."
"왜? 걔는 부인과 의사라며?
부인과랑 무슨 상관이 있나?"
"임신부가 아기를 낳고 나서 바로 모유가 나오지 않을 때 사용하는 약초가 있거든.
가슴을 마사지하거나, 아니면 끓여서 차처럼 마시기도 한대.
산모에 대한 것은 민간요법이 많으니까, 엠마도 그런 족으로 관심이 있었대."
"우리도 직접 생산하게 되면 테스트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거야 선미가 나중에 셀린에게 가서 직접 그 기술을 배우면 간단한데."
"앓느니 죽는다. 도대체 말이 통해야 뭘 해먹지.
나보다는 .. 차라리 효원이가 낫지 않을까?"
"셀린이 우리한테 올 수도 있다고 했어."
"그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어?"
"글쎄.. 대우를 좋게 해주면 올 것도 같은데?
아직은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야."
"그 말 받아낸다고 오빠가 작업을 얼마나 했어?"
"그게 아니야. 셀린도 우리 나라 민간 요법이나 약초에 관심이 많아.
예를 들면 인삼 같은 것은 여기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
우리한테는 쑥이나 칡, 호박 같은 것들도 있고 .."
"걔가 그런 것들을 수입해서 뭘 어쩌려고?"
"우리가 직접 재배를 해서 상품화를 시킨다고 가정해보자.
셀린이 와서 일하면서 우리한테 기술을 전수해준다고 말은 그럴 듯 하게 하거든.
그렇지만 셀린 측에서도 자기가 전혀 모르던 것을 배울 수 있는 거지.
너 같으면 이런 기회를 접수하겠니? 아니면 내몰라라 하겠니?"
"그럼 오빠가 셀린한테 확실하게 무슨 제안을 했어?"
"무슨 재주로 내가 그런 짓을 하니?
상무님이나 회장님이 한다, 안한다 방침을 정해야 그 다음에 뭘 해도 하는 거지."
"회장님은 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하실 것 같아."
"내일 여기 본사에서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보자."
"어렵네."
"이런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니야.
내가 무엇을 주고,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얻느냐는 비지니스의 기본이 아닌가?"
"출장 와서 놀기만 하고 빈 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글쎄? 나는 잘 놀기는 했지. 하하."
"여자가 있는데, 오빠가 못놀겠어?"
"야아아. 그래도 나는 낮에는 내가 할 일을 다 했거든요.
상품을 얻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얻었잖아?"
"셀린이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같이 잤어?"
"지금 뭐라는거니?"
"잠자리에 가지도 않았는데, 겨우 며칠 있으면서 그런 얘기까지 오고 갔다고?"
"그게 잠자리랑 무슨 상관인데?
이런 일은 미인계를 써야 할 정도로 규모가 큰 것도 아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단 말이야."
"수상하면 신고해. 하하."
"아오오. .. 썰렁."
"나는 선미가 이번에 왜 따라왔는지가 훨씬 더 궁금하고 수상하거든요."
"시끄러워."
파리 제네바 노선은 비행 시간이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우리 둘이 이야기 몇 마디를 주고받았는데, 벌써 착륙한단다. 그런데 엠마의 말이 맞았다. 파리는 모르겠고, 창 밖으로 보이는 제네바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야만 했다. 하루만 묵을 예정이었으므로 나는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
우리는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청사를 나와서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몽블랑 다리 (Pont du Mont-Blanc)를 건너기 직전에 왼쪽으로 de la Paix 라는 호텔이 있는데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로 모실까요?"
"부탁합니다."
"웬놈의 비가 이렇게 .."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내리고 있다. 택시는 천천히 달렸고, 또 자주 멈춘다. 그렇지만 가까운 거리여서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레만호가 보인다는 것 때문인지, 이 호텔은 약간 비싸기는 하다. 그래도 하루를 머무르기에는 괜찮은 편이다. 제네바라는 도시에서 가격이 낮은 호텔은 방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방은 또 두 개 얻을꺼야?"
"그럼 어떻게 같은 방에서 자냐?"
"뭐.. 방이야 아무렴 어때?"
나와 강대리는 3층에 있는 방을 받았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에 집중했다. 권상무의 비서나 회장의 비서에게는 내일 일을 하기 전에 아직은 답장을 쓸 말이 없다. 그들의 급한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자금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효원이의 이메일은 팀에서 하고 있는 일을 주욱 적은 것이다. 성대리나 조과장이 보낸 다른 메일들도 그렇고 그렇다. 조과장은 좀 딱딱한 내용이고, 성대리는 애교를 섞어서 쓴 것이 다르다.
오미현에게서 온 메일을 여는데, 강대리가 내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메일을 읽었다. 조상훈에 대해서 투덜거리는 내용이지만, 결국 오미현의 결론은 그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에 대한 칭찬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유아영과 유해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 오미현이 이 것을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
강대리가 계속해서 내 눈앞을 오고 가는데도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내게 백허그를 한다.
"오빠. 저녁 먹으러 안나갈래?"
"벌써 배고파?"
"배도 고프지만, 날은 어두운데 비까지 오니까 무섭잖아."
"무섭다고? 지은 죄가 많은가? 하하."
"내가 죄를? 무슨 죄?
"그걸 내가 아나? 지은 사람이 알지."
"그런 것 하나도 없거든요.
더 늦으면 먹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한 소리 고만 하고, 어서 나가기나 해요."
"식당이 어디에 있는 줄 알기는 해?"
"알면 오빠가 알아야지.
난생 처음 와본 곳에 식당이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제네바에는 처음이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택시 기사랑은 꼭 와 본 사람처럼 얘기하던데?"
"제네바에 대해서는 관광 안내 지도를 본 것이 전부야."
강대리의 말이 맞다. 더 늦으면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버릴 지도 모른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일어섰다. 우리는 호텔 프론트로 내려갔다. 대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남자 직원에게 나는 식당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나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창 밖을 보여주며 이야기해주었다.
"호텔 식당은 아직 문 열었나요?"
"지금이 9시 반이니까, 거의 마지막 시간이라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처음이라서 모르는데요."
"식당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이 작은 사각형 모양의 공원이 Square du Mont-Blanc 입니다. 이 공원의 외곽을 따라서 있는 이 길을 한 바퀴 돌으면서 보시면, 식당이 10개는 넘어요. 중국 음식점도 두 개 있어요. 혹시 중국에서 오셨어요?"
"아니오. 한국에서 왔어요. 그런데 밖에는 비가 오는데, 우산은 어떻게 하지요?"
"찾아보고 있으면 드릴께요."
그는 다른 여직원을 불러서 낮은 소리로 이야기 한다.
"레비. 창고에, 뒤쪽 창문 쪽에 있는 선반에 보면 우산이 있을꺼야.
두 개만 가져와."
그 남자는 정말 친절했다. 그는 우리에게 우산 두 개를 내주었다. 우리는 고맙다고 하고 호텔을 나섰다. 가까운 곳에 벌써 식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람까지 불어서, 우산을 썼는데도 젖는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스뜨로 식당이다. 그런데 메뉴에는 벨기에 요리라고 적혀있다. 강대리는 고개를 젓는다. 우리는 그 다음 식당을 찾아냈다. 아르헨티나 식당이다.
강대리는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우물에서 숭늉을 구할 수는 없는 일. 우리는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나는 역시 외국 체질이 아닌가봐."
"전에 호주에서는 어떻게 살았어?"
"내가 팔을 걷고, 김치를 직접 담아먹고 살았지. 헤헤."
"선미가 김치를 담글 줄 알기는 해?"
"나, 이래 보여도, 김장도 담글 줄 아는데?"
식사 후에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서 우산을 반납했다. 우리는 방으로 왔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노트북을 켜고, 계속 이메일을 열어서 읽었다. 그런데 강대리가 또 들어온다.
"이제 자야지? 그런데 오빠는 아까부터 뭐해?"
"이메일 때문에."
"한꺼번에 몰아서 본다고?
그래봤자 회사에 할 말은 아직 없을텐데.
그러지 말고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하자. 응?"
"고기 먹은 지 아직 삼십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자자고?"
"자려고 침대에 눕자는 말이지.
그치만 한 시간 정도는 걸려야 잘 수 있을껄. 하하."
오늘따라 강대리의 말에는 틀린 데가 단 한 군데도 없다. 우리는 바로 침대에 들어갔지만, 강대리가 한 말대로 우리는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나는 잠에 빠져들고, 강대리는 투덜거렸다.
"도대체 오늘은 왜 이렇게 아프게 하는데?
똥파리들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해도 너무해.
가슴도 전부 멍 투성이이고.
이렇게 만들어놓고 코골고 자?
아오. 비기싫어 죽겠다니까."
다음날 아침에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맑은 날씨에 해가 밝게 떠있다. 나는 샤또이에 본사로 전화를 하고, 호텔을 나갈 준비를 했다. 강대리도 따라 나오려고 한다.
"피곤할텐데, 여기서 쉬고 있지 그래?"
"따라갈꺼야. 나 없는데서 무슨 짓을 하려고?"
"있어도 할 짓, 안 할 짓 다 하거든요."
"이제야 이실직고를 하시누만?"
"아직 며칠 더 남았는데, 무리하면 어쩌려고 그래?
알아서 해.
중간에 아프다고 하면 난 그냥 놔두고 도망쳐버린다."
"엄마 말이 완전 맞다니까. 완전 나쁜 남자야."
"엄마 아니고 엠마라니까."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는 짐을 모두 들고 택시에 탔다. 우리는 샤또이에 본사에 도착해서 수위실에 등록을 하고 기다렸다. 한참 후에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큰 남자가 우리에게 왔다.
"한국에서 오신 성준 남씨?"
"예."
"가시죠."
우리가 도착한 방문 옆에는 뤼디빈 샤네끄 (Ludovine Chanec) 박사 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붙어있다. 내가 만나야 할 이 여자가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이사이다. 우리는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리에서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나와서 인사를 나누고, 사과를 했다. 다시 그 여자에게 가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녀의 여비서인 듯한 여자가 나와 강대리에게 커피를 가져왔고,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샤네끄 박사는 40은 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 제법 빠르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강대리는 지루해하는 표정이다.
"오지 말라니까."
"이럴 줄 몰랐거든요."
우리에게 커피가 두번째 잔이 나오는데, 샤네끄 박사가 우리에게로 왔다. 나는 휴대전화기를 꺼내서 보이스 레코더의 기능을 켰다. 그녀가 자리에 앉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파리에서 주말은 잘 보내셨어요?"
"잘 쉬고 왔습니다."
"아침에 셀린에게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셀린이 이미 많은 것을 이야기 했다고 하니까,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낼 수 있겠네요."
셀린이 나보다 한발 빠르게 뭐라고 했을까? 혹시 우리가 자체개발을 계획한다는 말을 했을까? 우리가 자체 개발을 하더라도 그 때까지는 물량을 여기서 공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찔끔거리는 방식은 안된다. 그런데 이들이 그러는 이유는 이들이 농장을 확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농장을 늘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샤네끄 박사는 사람을 포근하게 하는 마스크이다. 그런데 그녀와의 대화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샤또이에사가 우리에게 수출하는 물량을 더 많이 책정해달라는 것이 제가 온 이유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실무자인 셀린에게서 들으셨지요?"
"그렇습니다.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유럽에 온 것은 아닌데. .."
"저도 그 말씀 말고는 다른 말씀을 드릴 수 없어서 유감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길을 열어주십시오."
"이시는 것처럼 직접적인 방법은 안됩니다."
뭐가 직접적이라는 말인가? 그럼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면 가능성은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귀가 번적 뜨인다. 이들이 스스로 농장 문제를 거론하려는 것일까?
"그럼 간접적인 방법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가능한 간접적인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혹시 투자에 대한 생각을 해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투자?"
"셀린이 재배하는 농장에서 가까운 곳에 당신들의 농장을 마련하십시오.
그러면 셀린은 재배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고, 또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자기들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 위험을 우리가 감수하면 자기들이 약간 돕겠다는 말 같다. 도대체 우리를 뭘로 알고 ..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그 농장을 서울에 마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그 대신에 샤또이에사는 우리가 제품화시키는 과정에서 기술 지원을 하시고. .."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불황을 모르고, 팔 상품이 없어서 고민중인 얘네들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에게 기술지원을 하겠느냐는 말이다. 나라도 그런 일은 함부로 덤벼들지 않을 것 같다. 무엇으로 미끼를 던져야 하나? 얘네들은 생산자이니까, 가장 좋은 미끼는 시장이 아닐까?
"샤또이에사가 중국과 일본에 진출한다면 우리가 돕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유럽과 아메리카 시장도 벅찬데. .."
"2년 또는 3년 후에는요?"
"그 때라고 많이 달라질까요?"
"만일 샤또이에사가 그 거대한 시장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진출하는 수 밖에 없네요."
"시장이 있어도 식물이 없으면 .."
이것은 셀린과 이야기 한 내용이다. 이 정도면 이 아줌마가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식물이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로 되돌아갔다. 도대체 진전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셀린과 한 이야기를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중국에는 중국의 식물이, 또 일본에는 일본의 식물이 있거든요."
"흐으음. .."
"이번에 우리가 한국의 식물로 자체 개발에 성공하면 어떨까요?
내 생각으로는 우리의 경험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매우 소중하게 활용될 수 있을텐데요."
"맞는 말이기는 해요."
"샤네끄 박사님, 긍정적인 검토를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시간이 필요한데요."
"얼마나?"
"시장 조사와 사업의 타당성을 위한 .."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우리와 같이 하면 되는데."
이것은 뻥이다. 우리가 중국 아파트 건축현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런 정도의 뻥 쯤이야. ..
"우리 회사가 당신 말 한 마디에 방침을 바꿔서 정할 수 있을까요?"
"내가 당신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요?"
"해마다 새로 건축되는 아파트의 양을 비교해보십시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건축되는 아파트 전부를 합해도 중국 시장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정도면 눈에 보이지 않나요?"
"유럽에는 얼마나 머무르십니까?"
이건 뭐지? 내가 내만 손을 뿌리치지 않겠다는 말이다. 중국의 판매 시장에 대하여 샤네끄 박사가 조사를 시작한다고 해도, 이 일은 일주일 이내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더 만날 수 있다. 이제는 내 차례이다. 내가 어느 정도는 까칠해도 될 것 같다.
"독일에서 3일 정도?
늦어도 이번 주말에는 귀국할 생각입니다."
"귀국 하시기 전에 한번 더 뵐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난다면 가능합니다."
"요구 사항이 간단하지만, 이행하기가 까다롭군요."
"한양그룹이 샤또이에사를 우리의 파트너로 믿어도 좋을지 시험해보는 기회도 될테니까요."
내가 너희들을 시험대에 세우겠다는 이 말을 나도 모르게 해버렸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온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전혀 아니다. 지금까지 이들이 우리에게 주문량의 30퍼센트 정도를 공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떨어지려면 떨어지고, 붙어있으려면 조용히 입다물고 있으라는 말이 아닌가? 이들이 과연 미국에도 이렇게 몰상식하게 할까? 나는 입이 말라서 커피를 마시려고 했으나, 잔이 이미 비어있다. 강대리가 내게 자기 잔을 밀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커피를 마셨다.
"우리 .. 주말에 파리에서 다시 만날까요?"
"나는 독일에 있을 예정인데, 왜 파리에서 만나죠?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 또는 베를린이 어때요?"
"으음. .. 그럼 이메일과 전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나도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내 휴대폰 번호와 개인 이메일 주소가 적힌 명함을 주었고, 그녀도 나에게 자기 명함을 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대리도 따라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그녀의 방을 나섰다. 그녀도 우리를 따라 나선다.
샤네끄 박사가 나에게 물었다.
"아침 식사 안하셨죠?"
"박사님처럼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는 한끼 정도는 굶어야죠."
"내가 날씬해요? 하하.
지금 독일로 가십니까? 몇시 비행기죠?"
"오후 3시쯤."
"차는 있으세요?"
"저는 해외에 나오면 택시를 탑니다. 직접 운전하지 않습니다."
"아아. 셀린도 그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나요."
이것도 뻥이다. 나는 독일 비행기는 아직 예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가야 하는 곳이 뮌헨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내가 이 사실을 말하면 샤네끄 박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정도 성과면 와서 만난 보람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느낌일 뿐, 나는 아직 아무 것도 듣지 못해서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아무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화였다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는 다시 인사를 했다.
"주말에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려면, 내가 이제부터 일을 엄청 열심히 해야 하겠네요."
"저도 기대가 큽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나와 강대리는 1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그제서야 휴대전화기를 꺼내서 보이스레코더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아마도 45분 정도의 시간이 간 것 같은데, 이 시간 동안에 오고간 내용이 모두 녹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택시에 타고, 나는 기사에게 여행사 앞에서 세워달라고 했다. 강대리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안해줄꺼야?"
"벌써 다 까먹었어. 주말에 다시 만나기로 한 것만 기억나."
"또 작업 걸은 거야?"
"작업? 작업이었지. 그것도 엄청 심각한 작업."
우리는 여행사 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이 심각한 와중에 권상무가 독일 일정을 끼워 넣어준 것이 괘심하다. 안그랬더라면 강대리와 함께 알프스를 여행하는 것도 괜찮았을텐데 ..
안산에 있는 영신 전자의 부탁으로 독일에 있는 회사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 회사는 뮌헨과 베를린 두 곳에 있다. 도대체 어디로 가서 누구와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어차피 두 군데 모두 들러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일단 베를린으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대로 목적지를 베를린으로 결정하고, 여행사에 예약을 부탁했다. 다행히도 암스테르담을 거쳐서 가는 노선이 오늘 오후 3시 쯤에 가능하다고 한다. 예약을 마치고 우리는 Il Lago 라는 간판이 있는 레스또랑에서 아침겸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 식당은 바로 앞에 정원이 내다보이고, 그 정원은 로잔호에 붙어있다. 정원과 호수를 내다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 것 같았다. 우리는 파스타와 생선요리를 먹었는데, 그런데 음식 맛은 내 입맛에는 별로다. 그렇지만 강대리는 맛있다고 먹는다. 강대리가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니면 강대리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엄청 먹어댄다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
제네바는 레만 호수에 붙어있어서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그냥 떠나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서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강대리가 내게 물었다.
"오빠. 혹시 베를린에 가면 한국인이 하는 식당에 갈 수 있겠지?"
"그렇다고 들었어. 속이 많이 불편해?"
"메슥거려."
"입덧?"
"임신했냐고?"
"아니야. 뭘 그런 걸로 버럭질이냐? 하하."
강대리가 귀엽다.
우리는 밤 늦게 베를린 테겔 공항(Flughafen Tegel)에 도착했다. 날씨는 또 비가 내린다. 우리는 택시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택시는 모두 벤츠(Benz)이다. 다이믈러 벤츠사가 있는 곳이라는 표시가 난다.
나는 택시에 타면서 기사에게 물었다.
"쿠담(Ku"damm) 에 "호텔 쪼 베를린(HOTEL ZOO BERLIN)" 이라는 호텔 아십니까?"
그런데 그는 영어가 짧다. 나는 천천히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택시는 시내를 향하여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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