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음란곰탱(퓨어곰탱)입니다.
올만에 오니 소라가 좀 낯설어요~
추천수보다 조회수가 높아 기분이 좋습니다~
추운데 다들 건강유의 하세요.
그리고 3부이후 부터는 집필실에 올릴 예정입니다^^,.
트윗 : @eroticbear88
2부
***
핸드폰에서 알람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전역 후 가장 좋은 점은 잠을 늦게까지 잘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복학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침부터 팬티 안에선 발기한 물건이 좁은 구역을 탈출하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음에도 나도 남자라고..어제 한 번더 부탁할 껄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지어 졌다.
씻고 자취방을 나와 학교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채 돌리기도 전에 상큼한 향이 코를 찔러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모자를 쓴 여자였다. 청바지에 백팩을 둘러맨 그녀는..
한연지...였다.
- 좋은 아침이에요.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기도 했고, 방값도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로 일부러 학교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주택가에 방을 얻었던 터라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누군가 날 불러 세운 것에 조금 놀랐다. 그게 한연지라서 더욱 그랬다.
- 네..아...근데..어쩐..
당황한 나머지 말마저 꼬여버렸고 그런 날보고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뭘 그렇게 놀라요? 덩치도 큰 남자가...쌈 할줄 몰라요? 내가 좀 가르쳐 줄까요? 나 호신술 좀 하는데..
- 네?
이 여잔 언제 봤다고 보자마자 농담인지..
- 농담이에요~학교 가는 거 맞죠?
- 네.
- "네"밖에 할 줄 몰라요?
- 아뇨.
- "아니요"도 할 줄 아네요. 가요~ 버스시간 늦겠어요.
자연스럽게 그녀가 내 팔을 잡아끌며 압장서 나갔고 엉겁결에 나도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모자 뒤로 빠져나온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상큼한 그 향기가 다시 나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 거봐요~ 내가 데리고 안 서둘렀으면 버스 놓쳤겠죠?
버스에 타서 한자리 남은 자석을 차지하고 앉으며 그녀가 한 말이었다. 난 자리가 없으니 그냥 그녀의 앞에 서서 가야했다.
- 나 혼자 오면 훨씬 빨리 뛰어왔을 거란 생각은 안 해요?
- 그런가?
어제보고 오늘 처음 본 이 여자는 왜 나를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지만 버스 안이라 물어보긴 힘들었고 학교 앞에 내리자마자 내가 말을 꺼냈다.
- 혹시 원래 이렇게 아무한테나 막 말 걸고 그러는 스타일이에요?
- 나요?
- 그럼 누구겠어요?
- 기껏 한다는 질문이 그거에요? 실망인데요. 옛날엔 낯 많이~가렸죠.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 보여요. 저희 단대는 이쪽으로 가야해서 전 이만..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섰고 나도 서둘러야 했다.
- 인문대는 이쪽이라...저도 그럼..서강준 맞죠? 전 한연지에요.
- 알아요.
- 그럼 담에 봐요~곧 연락할께요~
- 네?
- 조별과제 하려면 당연히 연락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놀란 토끼처럼 눈 크게 뜰 필요 없잖아요. 그럼 안녕~
그렇게 말을 마치고 그녀가 인문대 건물로 뛰어갔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치며 뛰어가고 있었다. 이 넓은 도로에서 부딪혀 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그는 인문대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뭐야 저 자식.. 어지간히 급한가 보네.
어깨가 고생인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지금은 4학년이 된 여자 동기들과 예비역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이 6시가 다 되 가고 있었다. 몇 몇은 과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간다고 했고 나는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오늘로써 개강 첫 주가 지났다. 내일이면 드디어 좀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이었다. 그걸 노리기라도 하는 듯, 첫 주에는 개강파티와 각종행사들이 몰려 있었다. 물론 대부분 신입생들은 모두 참석해야 하지만 나이든 예비역들은 굳이 참석할 필요도 없었고, 잘 부르지도 않았고 가도 환영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기껏 가면 술값이나 왕창 뜯길 판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제안들을 다 물리치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신입생들이랑 같이 수업들을 일도 없었고 신입생들과 친해지면 돈 쓸 일 만 늘어나는 길 이었다. 물론 파릇파릇 하고 예쁜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고 그들과 무언가를 꿈꿔 볼 수도 있겠지만 복학한 나에게 그 정도의 여유는 아직 사치인 것 같았다. 부모님이 넉넉하게 용돈을 주시는 편이고, 학자금을 고민할 필요도 없지만 빨리 부모님 도움에서 벗어나 혼자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남은 학교생활을 잘 하는 게 나에겐 중요했다.
- 선배님~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나일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직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가 가던 길을 가려는데 또 다시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서강준! 선배님~
그제 서야 그 대상이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도 한연지였다. 아침에 쓰고 있던 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검은 생머리를 흩날리며 그녀가 내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 아니 왜 부르는데 그냥 가요?
- 나를 부를거라곤 생각 안했죠.
- 왜요?
- 그렇게 부를 사람이 없으니까요. 선배님이란 호칭으로는..더더욱..
- 아~ 복학하고 혼자 다니시는구나~
- 그 정도는 아니고..
그녀가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따라 붙었고 어느새 우린 나란히 걷고 있었다.
- 그런데 난 왜 불렀어요?
- 말놔요~ 선배님이신데..
- 뭐 아직..초면이고 우리 과 후배도 아닌데, 바로 말 놓기는 좀..
- 남자가 좀 대범해져 봐요. 선배답게 말도 좀 놓고, 말도 좀 붙이고! 그래야 신입생들이 다가오지 선배랍시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누가 다가오겠어요?
내가 다가오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 여자는 언제 봤다고 조잘대는 건지 모르겠다.
- 그것보다 나 왜 불렀냐고요..
- 은근히 까칠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집에 가는 길이에요?
- 네. 그런데 무슨 일로..
- 또 단답형.
- 미안해요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라..
- 괜찮아요 남자가 너무 말이 많아도 별로니까.. 집이 그 동네에요?
- 자취방을 거기 얻었어요.
- 학교 앞에 자취방 두고, 왜 굳이 거기다 얻었대요? 암튼 뭐~나도 그 동네 사니까 앞으로 오다가다 자주 볼 거 같은데 친하게 지내자구요. 오빠!
- 네..네?
- 뭘 그렇게 깜짝 놀라요? 오빠 소리 첨 들어요 오빠?
- 아니 그게 아니라..
모든 게 갑작스러운 여자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우리는, 말할 때 주어가 없는 대상이었다. 굳이 주어를 붙이려고 해도 "그 쪽" 아니면 "거기" 정도였을 텐데..10분전 선배를 시작으로 어느새 나는 오빠가 되어 버렸다. 내 옆에서 걷다가 어느새 내 앞으로 와 개구진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녀였다.
- 아니 얼굴은 왜 빨개져요?
- 아니..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요?
- 방금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 그러니까 왜요.
내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도 뒷걸음질을 멈췄다.
- 같은 동네 같은 학교면 친하게 지내도 되잖아요? 안 그래요? 내가 같이 다니기 부끄러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 동네에 살고, 같은 학교, 같은 수업도 듣고 있고 친하게 지내도 안 될건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인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기에 그녀는..너무..
예쁘고...
예뻤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게 전부다.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예쁜 이 여자 곁에 내가 있는 그림은 왠지 납득이 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녀의 성격에 자연스레 내가 벽을 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내가 오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 분명 이건 나의 오버였다.
나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뿐이지, 여자 동기들 이랑도 잘 지내는 편이었고 딱히 여자를 어려워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왠지 살갑게 대하기가 어렵고 뭔가 불편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이유는 너무 예쁘고 완벽에 가까운 여자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싶었다. 연지는 길을 가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만 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러니까 광고 모델로 발탁된 거겠지만..
하지만 이런 아이가 왜 나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내 오버 일테지만 그녀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느낌이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딱딱하게 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말처럼 그건 단순히 같은 동네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이에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었을 뿐일 텐데 말이다.
- 누가.. 이상한 사람이래요?
- 그럼 왜 그래요?
- 뭘요?
- 아니~ 사람이 다가가면, 좋은 마음으로 다가와 주면 좋잖아요. 튕기긴!
- 누..누가 튕겼다고 그래요?
- 푸흣.. 발끈 하지마요 농담 이니까~ 아직 저녁 안 먹었죠?
- 안..먹긴 했는데..
- 그럼 가요 내가 밥 살께요.
- 이것 좀 놓고 가요.
오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내 팔을 잡아끄는 건지 팔짱을 낀 건지 애매한 모양새로 그녀는 나를 끌고 갔다. 얼마간을 걸어 우리는 곧 학교 정문 앞에 도착 했고, 연지가 날 이끌고 간 곳은 평소에는 술과 밥을 같이 파는 곳이었다. 신입생 때는 나도 곧잘 왔던 곳이기도 했다.
- 여기 돈까스 맛있대요.
- 여기 처음 와 봐요?
나를 끌고 온 사람이 한 번도 안 먹어본 것처럼 이야기하기에 내가 물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 사실 나도 이 학교에 별로 친구 없어요. 그래서 학교 앞에 있는 많은 술집이나 식당 이런데 많이 못 가봤어요.
- 2학년이라면서요? 지금이 제일 친구들과 어울리고 생각 없이 놀 때 아닌가..
- 그렇긴 한데 내가 또 누구한테 막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죠?
- 그건 비밀. 그런데 정말 말 좀 놓으면 안돼요? 서로 존댓말 하니까 서로 나이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잖아요.
- 그런 말 놓는 걸로 하고, 하나 물어 보면 정말 사실대로 대답해 줄 거예요?
- 그래요~그럼. 물어볼게 뭔데요?
- 좀 전에 한 말이요. 사람한테 잘 안 다가가고 친구 별로 없다는 말..
- 그게 궁금했어요?
배시시 웃고 있던 그녀가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짓는 듯 하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
- 맞아요. 친구 별로 없어요. 중학교 때 친구도, 고등학교 때 친구도, 대학교 친구도 거의 없죠. 사실..
- 왜요?
- 말했잖아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 아니라고~
- 오늘 나한테 한 행동이랑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 안해요?
- 말 놓기로 하지 않았어요?
- 아~! 미안.
- 오빠가 보기엔 조금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편해서 먼저 다가간 건데..
- 다른 사람은 불편한데 나는 편하다는 뜻인가?
- 그럴지도..
잠시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그녀가 내놓은 답이었다.
- 왜? 날 언제 봤다고? 내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 뭐 인상이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푸흣.
- 나..원참.. 정말 종잡을 수 없는 타입이네.
그때 식사가 나왔고 그녀는 나 보다 테이블 위의 음식에 눈길을 주며 돈까스를 잘라 입에 넣고 있었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씹으며 맛있게 먹는 연지였다. 정말 내숭이 라고는 눈꼽만큼도 느낄 수 없을 만큼 편하게 음식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보며 정말 나를 편하게 느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렇다고 하니 그냥 나도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나도 편하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 가게 안으로 들어왔을 때, 넓은 가게 한쪽 벽면에 테이블들이 다 붙여져 있는 걸 보고 오늘 여기서 과 행사 같은 걸 하기 위한 예약석이 있구나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우리 과 일 줄은 몰랐다. 그 중에 상원이 녀석도 끼어 있었고 예비역 친구들과 동기들도 끼어있었다.
내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 과 애들은 벽 쪽에 배치된 자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벽과 창문 쪽 사이의 가운데도 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하기만 하면 안 들킬 것 같기도 했지만 이미 집에 간다고 하고 참석을 안했던 터라 왠지 모양새가 빠질 것 같아 들키지 않고 싶었다. 그 모습을 본 연지가 나를 이상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 왜 그래요? 갑자기 죄지은 사람처럼..
- 그게.. 저녁에 보이는 애들이 우리 과 애들이야. 집에 간다고 하고 온건 데 여기서 너랑 만나는 거 보면 뭐라고 하겠어? 아놔..하필 여기로 오냐고..
- 그게 뭔 상관이에요..내가 뭐 범죄자도 아니구..집에 가다 만나서 밥 먹는 거라고 말하면 되는 걸 뭘 그렇게까지..
- 그렇긴 한데 그냥 빨리 먹고 나가면 안될까? 응?
난 여전히 난처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 난 천천히 다~먹고 갈거에요.
- 그럼..나 먼저...
- 어어? 이 오빠봐~의리 없이 나 혼자 두고 가겠단 거에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새가슴 이에요?
- 그냥 빨리 먹고...
그 순간 연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어두운 조명이었지만 누군가 그녀를 알아 본다면 분명히 알아차릴 것 같았다. 그게 상원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 엇..안녕하세요~
고개를 살짝 돌려 연지가 인사를 건넨 사람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원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다시 테이블 쪽으로 숙이고 말았다.
"저 자식은 하필 왜 또 이럴 때 와서"
- 안녕..하세요~아니~ 연지씨 여긴 어쩐 일로 그리고 황송하게 저한테 먼저 인사를...어..라..
연지가 인사를 건네자 영문도 모르고 앞으로 다가오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던 상원이가 나를 보고 멈추고 말았다.
- 너...이 U...아..너
- 어..왔냐?
- 왔냐라니 너 이 시키...너..
나를 쥐잡을 듯 노려보고 있는 상원이를 보며 연지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고 있었다.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 그냥 밥 먹으러 왔어..
- 그러니까!! 니가 왜 여기에서 밥을 먹고 있냐고!! 그것도 연지씨랑!
호통을 치는 듯 했지만 곧 내 엉덩이를 옆으로 밀어 붙이고 내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 아니 연지씨..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저도 좀 끼워주시지~
- 오늘은 그렇게 됐어요~담엔 제가 꼭 술 살게요.
- 정말이죠? 근데 둘이 언제부터 이렇게 지냈어요? 어제 만난 사이 아닌가?
- 맞아요. 근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또 같은 동네 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동네 오빠 하기로 했어요. 그 기념으로 밥 먹으러 온거구요.
- 아..그랬구나..이 운도 좋은 놈..
상원이는 내 뒷통수를 약간의 감정이 실린 손으로 때리며 나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그 눈빛은 왜 자신에게 이런 연락을 하지 않았냐는 듯 보였다. 아무튼 담에 만나면 엄청 시달림을 당해야 할 것 같았다.
- 그럼 기왕 이렇게 된거 오늘은 둘이 식사하는 자리로 하고 담에 꼭 같이 함께해요~하하하
- 네~
- 그리고 오늘 저희 과 행사 인데..이놈 잠깐 빌려 갔다가 데려다 놔도 될까요? 명색이 과 선밴데 신입생들이 얼굴이라도 알아야 지나가다가 인사라도 할 거 아닙니까..잠깐만 데려갖다 데려올게요~
- 아~또 왜?
- 잔말 말고 따라와라! 저기서 다 너만 쳐다보고 있는 거 안보이냐?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우리 과 애들이 다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물론 나랑 상원이를 보는 게 아니라 연지를 보고 있는 거겠지만..
- 네~그럼 빨리 데려다 주세요~
어쩔 수 없이 상원이의 손에 이끌려 우리 과 애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 인사를 건네게 됐고 몇몇 장난끼 있는 녀석들은 어떻게 저런 미녀랑 같이 밥 먹을 수 있는지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것도 연지가 들으라는 듯 아주 큰 목소리로.
연지가 그걸 듣고 이쪽을 바라보며 씽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남자애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여자애들은 그런 남자들을 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인사를 건네고 나는 연지 앞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아까는 이 자리가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여기가 가장 편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인사 잘하고 왔어요? 나 때문에 놀고 싶은데 못 노는 거 아니구?
- 아냐. 신입생들하고 놀아봐야 어차피 과방에서 안 만나면 기억도 못할 텐데 뭐. 내가 사람을 또 잘 기억 못하는 편이라..
- 그런거 같네요. 대충 먹었으니까 나가요. 밥은 오빠가 사요. 술은 내가 살께요.
- 술까지 먹자고?
- 얻어 먹고는 맘이 불편해서 안 되겠어요. 일어나요~
그렇게 우리는 지켜보는 눈들을 피해 조금 더 떨어진 조그만 호프집으로 이동했다. 여긴 테이블이 몇 개 안되는 곳이라 단체 손님은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덜 북적이고 덜 시끄러운 곳이었다.
맥주 피쳐 하나와 안주를 시켰고 맥주잔에 술이 가득 담겨졌다. 어제 처음 만난 여자.. 그것도 꽤 유명한 여자랑 밥을 먹고 술자리 까지..마치 뭔가에 홀린것 같은 전개였다.
- 건배해요.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삼켰다. 시원한 목넘김을 느끼며 함께 그녀가 술 마시는걸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혹시라도 주량도 얼마 안 되는데 과하게 마실까봐 걱정이 돼서 였다.
- 어지간히 마실줄 아니까 그렇게 안 쳐다봐도 돼요.
- 어..
- 오빠는 여자랑 술 처음 먹어요? 말 좀 해요~
- 서로 아는 게 없는데 무슨 말을 해?
- 아는 게 없으니까 더 대화를 해야죠.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해야, 알아갈 거 아니에요...
그렇게 술 한잔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깊어져 갔다. 술의 힘인지 이야기가 고팠던지 연지는 조잘대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방송국에 처음 가서 배우를 처음 봤는데 너무 잘생겨서 숨이 멎는줄 알았다는등의 이야기 부터해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할 만한 평범한 이야기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편해졌다.
- 오빠 이야기도 좀 해봐요.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 연지의 얼굴이 한층 예뻐 보였다. 연지가 머리를 쓸어 넘길 때 마다 근처의 테이블의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훔쳐보는 게 느껴졌다.
- 나야 뭐 별로 할 애기가 있나 뭐..군대 다녀왔고..
- 전공이 뭐에요?
- 행정학. 재미 없겠지? 넌?
- 엄청 지루하겠네. 난 책이 좋아서 국문과 들어온건데. 마찬가지로 재미는 없어요.
- 그렇구나.
- 혹시 여친 있어요?
- 어? 아니..
- ??..역시 그래보였어~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또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 여태 여친도 안사귀고 뭐했어요? 그럼 군대 가기 전에 사귀고 그 이후로 아직 솔로?
- 아니..가기 전에도 없었어. 그 이전에도..
- 에이 설마~! 설마 모쏠..뭐 그런 건 아니죠?
- 맞을걸?
- 진짜?? 어떻게 해~푸하핫..미안해요.
그녀는 뭐가 재미난 건지 또 웃고 있었다.
- 뭐 어디 몸에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면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 아냐!! 무슨 소릴..몰라..그냥..이상하게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들도 많았고 맘이 가는 여자한테는 대쉬도 여러 번 했는데.. 이상하게 잘 안되더라고..
- 어디 차인 여자가 저주라도 걸었나 보다~
- 한번 차여라도 봤음 좋겠다.
- 그럼 첫사랑은..오빤 첫사랑도 없어요?
- 첫사랑..?
첫사랑이라...순수하게 좋아하고 아껴주고 싶었던 게 첫사랑이라면 아마도 나한텐 그 아이가 첫 사랑이었을 것 같다.
물론 철없던 꼬맹이 시절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 첫사랑은 있을 거 아니에요...
- 그게 첫사랑인가..
- 누군데요?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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