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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남긴 흔적 - 단편3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21 721회 0건








31. 셀린이 흘려준 정보




셀린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중국 음식점인데, 셀린이 자주 오는 곳이라고 했다. 그녀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종업원에게 아침을 걸렀으니까 맵지 않은 음식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셀린이 선미에게 물었다.



"선미. 파리 야경은 어떻게 됐어?"
"이 남자가 또 새벽에 들어오는 바람에."

"그래? 이상하다. 내가 상수와 헤어질 때에는 분명히 자정쯤이었거든?"
"그 때 들어왔다가 또 나갔어."

"뭐야? 하루 밤에 차례로 두 여자를 만났다고?"
"나까지 포함하면 세 여자거든. 물론 나와는 15분 정도 걸렸지만."

"그럼 이대로는 안되겠다.
파리 야경은 오늘 저녁에 나랑 같이 보러 가자."

"나에게도 문제가 있어.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잠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낮에는 약간 멍청하게 있거든.
그러다가 해만 지면,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살아나서 움직이나 봐."

"선미가 서울과 파리의 시차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럼 선미 너는 야경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어.
관광 와서 밤 늦게까지 무리하다가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이 꽤 되거든"



나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그녀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그런데 셀린이 한 말은 약간 이상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시차를 잠으로 극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차라리 하루 밤을 무리해서 늦게까지 놀고 나면, 다음날부터는 적응이 더 잘 된다. 몇 시간 더 놀았다고 젊은 나이에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셀린이 병원까지 들먹이자 강대리는 겁을 먹는 것 같다.

음식이 나오면서 나와 강대리에게는 젓가락이 나왔지만, 셀린에게는 포크만 준다. 셀린은 자기에게도 젓가락을 달라고 했다. 강대리와 셀린은 젓가락질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강대리가 셀린에게 보여주고, 셀린은 열심히 따라서 한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강대리도 젓가락질을 어색하게 한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이 광경을 보면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셀린은 걱정스러운 말을 햇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엄청 중요한 정보였다.




"나중에 너희에게 소식이 가겠지만, .."
"소식이라니? 무슨 소식?"

"샤또이에가 내년 하반기부터는 서울로 수출을 하지 못하게 될꺼야."
"뭐야? 왜?"

"지금 벌써 유럽에 공급할 물량이 빠듯해지기 시작하거든."
"생산을 확대할 계획은 없나?"

"그러려면 농장을 더 늘여야 해요.
그것은 2년이나 3년 후에라면 몰라도, 빠른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

"우리가 자체 개발을 해서 상품화 시킬 때까지 2년이나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텐데 .."

"유감이지만, 너희가 그 시간을 앞당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셀린이 방금 한 이 말이 경인그룹에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샤또이에라는 이 회사는 유럽의 수요를 충당하고 남는 물량만 수출한다는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은 내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경인그룹의 권상무가 지난 해에 갑자기 방향제 사업을 시작하자고 했다. 이 방향제는 이미 우리나라 제품들도 시장에 나와있다. 그런데 권상무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샤또이에사의 제품을 수입하자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방향제가 악취제거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경계에 작용하여 "새 집 증후군"을 억제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피부병, 기관지의 질병들, 우울증 등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이미 입증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FDA (미국 식품 의약국)로부터 인증서도 받아놓은 상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식약청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과 캐나다에까지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제품의 수입을 위해서 샤또이에사와 접촉을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가 직접 스위스로 날아와서 협상도 했다. 권상무는 아파트나 주택 건설업자들에게 홍보하여 판매망도 구축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샤또이에가 경인그룹에게 수출하는 양이 너무 적은 것이다. 경인그룹은 소비자들에게 공급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고객들이 등을 돌리는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내가 이번에 파리와 제네바에 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권상무의 요구사항은 샤또이에가 수출하는 양을 늘여줄 것과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것이다. 권상무는 샤또이에사가 경인그룹을 매출 부진으로 오해하고 양을 줄이는 것으로 오해하고있었던 것이다. 권상무는 정 안되면 우리에게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우리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셀린으로부터 농장에서 야생식물들을 직접 재배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는 궁금증이 풀렸다. 나는 이번에 권상무가 모르고 있던 문제를 알아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셀린이 말하는 대로 수출을 중단한다면 경인 그룹의 권상무에게는 사업의 중단을 의미한다. 정보의 부족으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룹의 브랜드에 치명타를 입힌 것 때문에 이사직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다.

도대체 이런 문제가 왜 생겼을까? 정말 어이없다. 내게는 갑자기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나는 무심코 셀린에게 한마디 던졌다.



"셀린. 내 생각에는 네가 서울로 와야겠다."
"내가? 내가 서울에는 왜?"



별 생각없이 던진 내 말 한마디에 셀린의 얼굴은 갑자기 호기심으로 가득해진다. 셀린의 커다란 두 눈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있다. 강대리도 긴장하는 표정이다. 그런데 막상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떠오르는 대로 그냥 말을 뱉다시피했다.

나와 셀린은 제법 심각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셀린의 부탁으로 우리는 불어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상품까지 개발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
그러니까 네가 와서 우리를 도와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너희를 도와?
나는 너네 나라 식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식물을 선택해서 조달하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야.
그렇지만 식물에서부터 제품까지 만드는 일은 네가 돕는 것이 좋겠어.
그래야 우리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내가 지금 일하는 샤또이에는 어떻게 하라고?"
"또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면 되지."

"하아. .. 그럼 날더러 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너희 회사로 입사를 하라는 말이니?"
"사표는 좀 그렇고, 2년이나 3년 정도만 휴직을 신청해도 되잖아?"

"네가 나를 고용할 수 있니? 네가 인사 문제를 결정해도 되는 직책에 있어?"
"나에게 권한은 없지만 내가 사업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으니까 문제 없어."


"네가 제안하는 것은 나에게 진짜 너무 매력적이야.
나는 오래 전부터 일본이나, 중국에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 가고 있었거든.
내가 몇년 동안을 서울에 가서 일하면서 산다는 것은 꿈만 같아."

"그럼 너는 아직 일본이나 중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농장과 공장을 오고 가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잖아.
휴가라고 해도 아직까지 유럽을 떠나본 적이 없어.
그런 낯선 나라에 나 혼자 갈 수도 없고. .."

"서울에서 중국이나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은 정말 쉽고 간단해.
셀린이 필요하다면 내가 가이드로 동반해 줄 수도 있고."

"상수가 하는 제안이 점점 더 나를 끌어당기네. 하하."

"내가 서울에 가서 계획을 세우고 나서 너에게 도움을 요청할께."

"그런데 나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직장과 거주지를 바꾸는데, 지구의 이쪽에서 반대쪽으로 가는 거라면 ..
물론 생각 한다고 많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

"알았어. 네가 나를 도와준다는 것이 확실하면 내가 서두르지는 않을께."

"식물을 재배하는 농장이나 공장을 건축하는 일은 내가 확실하게 도와줄께.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한다.
그 정도라면 내가 직장을 바꾸지 않고도 가능해.
잠시 휴가를 내고 너희에게 가서 자문을 하는 형식으로 해도 되거든."

"나는 너의 경험도 필요하지만, 너의 이렇게 아름답고 착한 마음이 더 필요해."

"하아. ..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거야.
네가 아직은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입장은 아니잖아?
아무튼 기분은 좋네. 하하."

"사랑? 그런 것은 나랑 맞지 않아.
그런 얘기는 빼자."

"나에게는 요즈음 사랑이 필요해. 너무 절실하게 필요해.
앞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여행 그리고 사랑이야."

"행운을 빌을께."
"하아. .. 역시 너는 아닌가?"

"나? 뭐가 아니라는거야?"
"아니야. 나 혼자 해 본 소리야."



나는 셀린과의 대화가 한 단계씩 진행되는 동안에 마치 살얼음을 딛고 서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셀린은 내가 제안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호기심도 갖고, 후원하는 입장으로 나를 밀어준다. 셀린도 자기 나름대로 계산하는 바가 따로 있겠지만, 나는 일단 셀린의 마음씨가 착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내 마음을 사랑으로 연결하려고 하다니. 설마 나를 사랑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정도라면 몰라도, 굳이 사랑으로 엮이기에는 아직 말이 안된다.


이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권상무와 회장이 문제이다. 그들은 방향제 사업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계속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중단한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그렇지만 계속하려면 그들은 내가 기획하는 것을 반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강대리는 한동안 우리를 쳐다보고 있더니, 결국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왜 나만 왕따 시키는데? 내가 아예 빠져줄까?"
"그런 것이 아니야."

"뭐가 아닌데?"
"나중에 설명해줄께. 지금 엄청 심각하거든?"

"오빠 없이 도저히 못살겠대?"
"아휴. .. 조용히 좀 있어봐."




우리는 일단 헤어지고, 내일 오후 4시에 셀린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공항으로 태우고 가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가 6시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이 이 지경이면 사실 제네바에 가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미 정해진 약속을 미루기까지 한 상황이므로 일단 가는 것으로 했다. 한국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파리로 와서 뜻하지 않게 셀린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제네바에서는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나와 강대리는 호텔 앞에서 셀린의 차에서 내렸다. 셀린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가버렸다. 우리는 방으로 올라왔다. 강대리는 나에게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다.



"끝끝내 말 안해줄꺼야?"
"뭘 알고 싶은데?"

"몰라서 물어? 셀린이랑 둘이 한참 동안 뭘 그렇게 심각하게 얘기했느냐고."
"아하. 그거? 별 것 아닌데 뭘 그렇게 알고 싶어하지?"



나는 강대리에게 셀린에게 들은 얘기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강대리는 하나씩 이해하면서 굳어있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이게 별 것 아니라고?"
"보나마나 답은 빤한 것 아닌가?"

"공장이랑 농장이랑 짓고, 셀린을 빼간다는 것이 왜 별것이 아닌데?"
"일은 시작만 하면 별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은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럼 우리가 빨리 상무님께 이 사실을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나요?"
"잘못되면 오해가 생기니까, 들어가서 우리가 직접 말씀 드리자."

"상무님도 상무님이지만 회장님께서 걱정이 많으실텐데."
"회장님도 회장님이지만, 지금 회사가 공장 짓고, 농장 사들이고 할 여력이 있는가 모르겠네."

"이 일은 지금 여력을 따질 문제가 아니잖아?
정 안되면 회장님 개인 주머니라도 열어야지 별 수 없겠구만."

"강대리가 회장님 개인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알아?"

"지난 번에 오성전자를 인수할 때 이사회에서 반대했거든.
그러니까 회장님이 정 그러면 자기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한다고 우겼대.
그 노인네 돈은 좀 있나봐."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그건 다 아는 얘기야. 오빠가 외국으로 돌으니까 모르고 있나?"



강대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사람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약재로 쓰이는 식물들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것은 동의보감을 외운다고 될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강대리가 나한테 따지듯이 물었다.



"그런데 셀린도 이상하다.
그런 중요한 얘기를 왜 회사에서 안하고 사석에서 하는데?"

"우리가 회사에서 만난 것은 일이 있어서였고, 우리는 그 일을 해냈어.
그런데 아까 그 얘기는, 셀린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한테 꼭 지금 해줘야 하는 얘기는 아니야.
이전 정보를 일찍 알아서 미리 손을 써야 하는 쪽은 우리거든?"

"그럼 셀린이 사석에서나마 이런 얘기를 흘려준 것을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네?"

"이제 감이 잡혀?"

"그럼 오빠는 나중에 셀린이 한국에 오면, 셀린이랑 아예 살림을 차리셔야겠네."

"내가? 나는 이제 조용히 결혼이나 하고 가정을 꾸릴 생각이야.
선미가 그런다면 몰라도, 왜 내가 셀린이랑 살림을 차리는데?"

"어라? 내 말을 우습게 아시겠다?
내 말이 과연 헛소리인지 어디 함 두고 보셔."

"알았으니까,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자세요."

"이제 4시도 안됐어요. 아직 해도 안졌거든요."

"해가 어찌 됐건, 나는 잘꺼야."

"흥! 지금 미리 자두고 이따가 밤에 또 사라지시겠다?
내가 서울에 가면 상무님이나 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점점 많아지네."

"겨우 고자질 하는 정도로 나를 협박해?"



나는 씻고 잠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 한참 있어도 머리 속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강대리가 내 옆으로 파고든다.



"오빠, 잠이 와?"
"아직 .."

"내가 없어서 잠도 안오지? 헤헤."




강대리는 내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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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6
서명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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