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선미 잠옷이 왜 네 방에 있었지?
셀린은 파리 순환도로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다시 일반 도로로 내려왔다. 그녀는 룸미러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레이디 & 젠틀맨. 아직 시간이 충분하니까 이제 우리는 볼로뉴숲(Bois de Boulogne)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셀린. 정말 고마워. 탁월한 선택이야."
나는 셀린을 칭찬하는 말을 했다. 볼로뉴 숲은 조용하고, 크기나 길이가 제법 된다. 천천히 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좌우에는 나무가 빽빽하게 많아서, 가로등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밝지는 않다. 강대리가 무섭다고 했다.
숲이 끝나면 좌회전을 해서 조금 가다가 다리를 건너서 파리를 벗어나면 바로 꾸브브와이다. 거기서 쎈느 강변 도로를 따라 올라가서 꾸브브와를 벗어나면 한적한 곳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바로 거기에 식당이 있다. 꾸브브와가 시골은 아니지만, 파리 건너편 강 건너에 있고, 이 식당도 도심 밖에 있으므로 셀린은 시골이라는 말을 썼다.
과거에 나와 엠마는 주말에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 자주는 오지 못했지만, 어쩌다 한번 오후에 볼로뉴숲에 와서 산책을 했다. 숲속을 걸을 때에는 도시로 부터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숲이 너무 울창하기 때문이다. 산책이 끝나고, 배가 고프면, 우리도 꾸브브와에 있는 이 식당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셀린에게 "탁월한 선택"이라는 말을 한 이유는 바로 이 추억 때문이다. 그렇지만 셀린은 이 말의 뜻을 알 리가 없을 것이다.
오늘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나는 생선까스를 주문했는데, 이 곳의 생선까스는 빵가루를 입히지 않고 그냥 생선덩어리를 익혀서 매우 진한 소스를 얹은 것이다. 셀린과 강대리는 스파게띠를 먹었다.
식사하면서 셀린은 음료수로 "아폴리나리스" 라는 상표가 붙어있는 물(Table Water)을 마셨지만, 나와 강대리는 와인을 마셨다. 셀린이 나에게 말했다.
“이 식당은 다 좋은데, 너무 비싸.”
“셀린에게 부담되면, 이 저녁 식사는 내가 계산할까?”
“아냐. 법인카드 있어. 갖고 나오길 잘했네.
그런데 너희는 파리를 언제 떠날 생각이야?"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가려고. 내일 예약할꺼야."
"그러면 우리가 일요일에 또 만나야 하겠구나."
"왜?"
"너희 둘은 나에게 휴대전화기를 반납해야 하거든."
"그럼 오늘 돌려줄까?"
"아니야. 일요일까지는 너희가 사용해야지.
일요일 저녁 비행기 시간을 말해주면 내가 공항으로 태워다줄께."
“일요일 인데도? 너 정말 너무 친절해서 진심으로 고맙다.”
“내가 다음에 서울에 갈 생각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정말 서울에 올래?”
“그럴 것 같다.”
나는 셀린과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강대리는 조용히 음식을 먹으면서 와인을 마신다. 나는 아직 첫번째 잔을 마시고 있지만, 강대리는 벌써 세번째 잔이다. 그녀가 너무 빨리 마시는 것 같아서 나에게 좋지않은 예감이 든다. 강대리는 이미 내 앞에서 술에 취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식사가 끝났다. 이 정도면 이야기 할 분위기는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와인을 마시면서 셀린에게 물었다.
"방향제 생산하는데 필요한 식물은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 알고 있니?"
"그 식물을 일일이 검사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인데, 나야 당연히 알지."
"어디서 구해? 유럽 전역에서 수입하니?"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이 들국화거든. 들국화를 어디서 수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글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옛날에는 수입했었는가 몰라도 요새는 농장에서 직접 키워."
"뭐라고? 들국화는 야생화인데, 농장에서 키운다고?"
"그렇다니까.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는 표정을 하니?
요새는 원양 어업에서 잡히던 생선들도 연안에 있는 양식장에서 키운대잖아?"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그럴 것 같다. 셀린은 야생 식물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직접 재배하며, 자기는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그 농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식물을 기르는 것이 다른 일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고 했다.
"농부로 일하니까 훨씬 더 보람을 느껴."
"셀린. 너 혹시 대학에 다녔어?"
"난 약사야.
여기 이 회사에 오기 전에는 망뜨농 (Maintenon) 제약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어."
"그래? 그럼 그리츠만씨는?"
"그 분은 분자생물학에서 박사학위를 했어."
"그 남자 나이는 젊어보이던데."
"그는 아마 너보다 두 살 많을꺼야."
"셀린 너는?"
"너보다 한 살 젊어."
"너 이상하다. 내 나이는 어떻게 알았는데?"
"거래처에서 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미리 그 사람의 인적사항이 나와."
"그런데 왜 내가 유부남이라는 거짓말에 속았어?"
"그런 내용은 정보에 포함되어있지 않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름, 나이, 대학, 전공, 경력 뭐 이런 정도야."
나와 셀린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강대리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셀린은 어서 파리로 가서 강대리를 호텔에 눕히자고 했다. 나는 강대리를 일으켜 세웠으나, 그녀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나와 셀린은 그녀를 양쪽에서 부축했다. 강대리는 술에 약간 취한 것 같다. 와인 한 병을, 나는 한 잔도 채 못 마셨는데, 강대리 혼자 비웠다.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강대리는 계속 졸고 있고, 셀린은 투덜거렸다.
"진짜 유감이네. 아까 거기서 파리를 건너다보며 쎈느 강변을 산책하는 것도 아름다웠을텐데."
"산책하고싶어?"
"응. 먹은 것을 소화시키려면 .. 또 아직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잖아?"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몽마르뜨가 가까우니까 거기로 갈래?"
"거기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지.
하긴 네가 외국인이니까 너는 가고싶구나. 하하."
"나도 거기 별로야. 젊고 다이나믹 한 것은 좋은데, 너무 혼잡하고, 정신이 없어.
차라리 남동쪽 끝에 있는 조용한 마을 꾸어 쌍-에밀리옹이 어때?"
"거기가 좋기는 한데, ... 그럼 선미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선미는 이제부터 아침까지 계속 자야 할껄."
"그럼 너랑, 나랑, 우리 둘이만 간다고?"
"왜? 싫어? 내가 무섭니?"
"하하. 웃겨. 너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귀여워.
그런데 너 유부남이라며?"
"나 확실한 미혼남이야."
"어머. 어쩌지? 난 유부녀인데, 그래도 나랑 가고 싶어?"
"이러언. 진짜야? 벌써? 뭐가 그렇게 급했는데?"
"하하. 당황스럽지? 농담이야."
"너무 슬프고, 엄청 긴장했어. 왜 그런 농담을 했지?"
"다른 생각은 없었어. 선미가 먼저 상수를 유부남이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 둘 사이에는 농담도 오고갔다. 셀린이 결혼했다는 말에 내가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가정이 있는 여자와는 업무 이외의 사적인 사건에는 절대로 엮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 철칙이기 때문이다.
셀린은 농장에서 식물들과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자기들이 생산하는 이 방향제는 생약성분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치료하는 기능보다는 질병을 억제시킴으로써 환자의 고통을 줄여준다고 한다. 생약으로 쓰이는 이 식물들은 농장에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데, 많은 양을 재배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자기들이 연구 개발한 이 방향제가 유럽의 각 나라에서 환자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 셀린으로부터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당장이라도 셀린과 헤어져서 엠마에게로 가고싶은 마음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산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으므로, 말을 꺼낸 나는 책임을 져야한다. 또 회사에서 있을 나중 일을 위하여 그리이츠만씨나 엠마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호텔앞에 차를 세우고, 나는 강대리를 깨워서 차에서 내리게 했다. 오늘 강대리는 유난히 인사불성이다시피하여 잠에 취해있는 것 같다. 강대리의 말로는 어제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했고, 또 낮에 호텔을 나서기 전에 침대에서 너무 무리를 한 탓일까? 나도 지금 아차하면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피곤하다. 다만 셀린이 이런 나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셀린과 함께 강대리를 부축하여 2층으로 올라갔다. 강대리의 방 203호실 문을 열고 강대리를 침대에 눕게 했다. 그런데 강대리의 잠옷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옆방으로 가서 내 침대에 있는 강대리의 잠옷을 가져와서 강대리의 머리맡에 놓아주고 조명을 어둡게 했다. 셀린은 강대리의 이마에 키스했다. 진짜인지, 아니면 연극인지 모르겠지만, 강대리는 숨을 깊이 내쉬며 자고 있다.
셀린과 나는 방을 나서서 계단으로 내려왔다. 시간은 거의 10시가 되어간다. 셀린이 내게 팔짱을 껴오면서 말했다.
"상수. 이상하다. 선미 잠옷이 왜 네 방에 있었지?"
"나도 모르겠어."
나는 차마 사실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셀린의 차 앞에 섰다. 그런데 셀린이 내 손을 잡으며 고민하는 투로 말했다.
"나도 와인을 마시고 싶은데 .."
"그럼 지하철로 가면 되지."
"한번 갈아타야 하거든. 너무 시간이 오래걸려.
차라리 택시타고 빠른 길로 가자."
"와아아. 택시비가 엄청 많이 나올텐데."
"모나무(Mon amour, 내 사랑). 부담갖지 말아요.
박사님이 준 카드가 아직 내 손에 있어.
너희 둘은 일요일까지는 우리 손님이거든. 하하."
이 말을 하는 셀린은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셀린의 손을 잡고있는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셀린은 아직 술을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입에서는 이미 사랑이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얘네들은 사이가 조금만 가까워지면 사랑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해버리기 때문에,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셀린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지만 나는 셀린의 손을 힘주어 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셀린의 입술을 보고있으면 키스하고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셀린은 손을 빼서 다시 내 팔에 팔짱을 낀다. 나도 다른 손으로 내 팔을 감은 셀린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밤 공기 때문인지 셀린의 손도 손가락도 모두 차갑다. 나는 셀린의 손등을 문지르기도 하고, 꼬옥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다. 셀린의 몸이 내 몸에 가까이 닿으며 셀린의 가슴이 내 팔을 몇번 스쳤다. 처음에는 접촉하는 시간이 짧았으나 갈수록 길어지고 또 강도도 세어진다. 나중에는 셀린이 가슴을 내 팔에 붙이고 떼지 않는다. 걸을 때마다 내 팔은 셀린의 가슴에 눌린다. 내 머리 속에서는 음란한 생각이 날개짓을 시작하려고 한다. 셀린의 가슴과 접촉한다는 것 때문에 내 가슴에서는 부채질이 시작된다. 그런데 셀린이 나를 부른다.
"상수."
"응?"
"너 아시아 남자 맞아?"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계속 살고있어."
"파리에는 몇년 있었어?"
"4년 조금 안돼."
"아시아 남자는 네가 처음인데, 너는 나를 잡아당기는 매력이 너무 강해."
"셀린같은 아름다운 여자를 어느 남자가 감히 밀어내려고 하겠어?"
"야아아. 너 그렇게 말하는 것 어디서 배웠어?"
"배우다니?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 뿐인데?"
"너 밤거리로 나가지 마.
너랑 얘기한 여자들은 너를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을꺼야."
"셀린. 어차피 네가 없는 밤거리라면 나갈 필요도 없어."
"하아. .. 이 남자."
셀린은 갑자기 입술을 내 뺨에 대고 지긋이 누르며 키스했다.
"미안해. 그렇지만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너야."
"셀린. 미안해 하지마.
네가 하는 키스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나도 너에게 키스해도 돼?"
"평등해야 하니까."
셀린은 내게 뺨을 내밀었다. 그렇지만 나는 셀린의 뺨이 아니라 입술에 키스했다. 나는 셀린의 아랫입술을 몇번 빨아당겼다. 마음 같아서는 폭풍키스를 하고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상수, 나쁘다."
"왜?"
"평등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럼 키스를 볼에 해야지 왜 입술에 하는데?"
"나는 볼에 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셀린의 입술이 내 입술을 잡아끌었어."
"거짓말."
"그럼 내 입술이 방향을 잘 못 정했군. 이 나쁜 입술."
나는 손으로 내 입술을 때리는 것처럼 몇번 가볍게 쳤다. 셀린이 보고 웃으며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셀린의 입술이 내 입술을 빨았다. 셀린은 내 입술을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셀린의 입이 열리고 혀가 나와서 내 입술을 핥는다. 나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나도 셀린의 입술과 혀를 부드럽게 빨아들였다.
한참 후에 셀린은 입을 들어냈다.
"키스 매너도 좋네."
"나? 왜?"
"대부분 이럴 때 몸을 더듬는데, 너는 조용히 키스만 부드럽게 했거든."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참았어."
"하아. .. 상수. 참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
그 때 빈 택시가 오는 것을 보고 나는 그 택시를 세웠다. 우리는 택시의 뒷좌석에 탔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꾸어 쌍-에밀리옹 입구로 가자고 말했다. 택시가 출발하고, 셀린은 내게 몸을 밀착시키며 기대온다. 셀린의 얼굴이 내 어깨에 얹힌다. 셀린이 색색거리며 숨쉬는 소리가 내 귀에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나는 셀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의 등으로 팔을 둘렀다. 다른 손으로는 셀린의 얼굴로 흘러내린 머릿결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셀린의 귀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셀린이 손을 들어올려 내 손목을 꼬옥 잡는다. 그녀가 내 귀에 속삭였다.
"숙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미안해. 나는 그냥 너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야."
"너는 거짓말을 정말 잘하는구나."
"거짓말이 아니고 진심이었는데?"
셀린은 내 손을 입술로 당겨가서 내 손가락에 키스를 했다. 그 다음에는 그 손을 자기 입에서 치우고 내 뺨에 키스한다. 그녀의 등을 지나서 옆구리로 가있는 내 손에 힘을 주어 셀린의 몸을 내쪽으로 당겼다.
그런데 내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기에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는 알림음이 난다. 강대리에게서 왔다.
"그새 도망을 쳐?
또 내일 아침에 올꺼야?"
내가 지금 셀린과 같이 있는 것을 강대리가 알고 있을까?
=*=*=*=*=*=*=*=*=*=*=*=*=
지난 얘기(27장)에서 남주가 어설프게 작업 걸다가 선수님들에게 딱 걸렸네요.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
먹어봐야님, 흰트라제4님, 카스카야님, 해오름22님 .. 이 분들은 아무래도 작업의 고수같아요. ㅋㅋ
11월이 되니까 몸도 마음도 확실히 춥습니다.
감기몸살에 걸리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그래야 제 글을 읽으시고, 추천도 하시고, 댓글도 써주실테니까요. ㅋㅋ
- Ja"dore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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