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어이없는 파리의 고집녀
우리는 벗은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나는 똑바로 누워있고, 엠마는 나를 향하여 몸을 옆으로 세운다. 엠마는 벼개를 베고 그녀의 목 아래로 내 팔을 지나게 하여 팔벼게를 벤다. 엠마의 손이 내 얼굴과 어깨 그리고 가슴을 천천히 쓸고 지나간다.
"상수. 피곤하지?"
"아직은 괜찮아."
엠마는 내가 매일 밤 엠마의 목, 어깨, 등 그리고 팔다리를 마사지 해주던 그 시절을 이야기했다.
언젠가 나는 서울에 있는 내노라하는 어느 대학에서 모 교수라는 분이 "파리 대학의 낭만"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학생들이 저런 세미나에 가서 잘못 배우면, 파리 대학생들은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밤마다 쎈느 강변이나, 몽마르뜨 언덕에서 와인을 마시는 줄로 오해할까봐 걱정된다.
내가 본 바로는 공부하는 학생들은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이다. 물론 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들에게는 [도서관]-[강의실]-[집]의 삼각형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오고 가는 것이 판에 박힌 일상이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오면,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즐기며 낭만에 대하여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들에게 낭만을 즐길 기회는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이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술로 지내다가 파리 대학의 낭만과 비교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대학가에 있는 술집 골목들은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에서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엠마와 나는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낭만과는 철벽을 쌓고 정말 우울하게 보냈다. 그 때 나도 실험실에서 실험 장비들과 씨름을 하느라고 지쳐서 밤 10시 전후로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엠마는 거의 매일 나보다 늦게, 자정이 넘어서 집에 온다. 가냘픈 엠마는 지쳐서 침대로 쓰러진다. 나는 할 줄도 모르는 마사지를 해준다면서 엠마의 몸을 주무른다. 그러면 처음에 엠마는 내 손이 닿는 곳마다 아프다고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조용해지고, 곧 잠들어버린다. 나도 잠든 엠마의 몸을 안고 잔다.
엠마는 아침이 되면 9시 이전에 집을 나가고, 나는 점심때가 돼서 학교로 갔다. 우리는 2년이 넘도록 이렇게 살았다. 일요일이면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잠이 보약이었다. 쉬는 날이라고 해도 늦잠, 세탁, 청소, 장보기를 하고 나면 벌써 자정이 훌쩍 넘는다.
"그 시절은 정말 애니멀 트레이닝이었어."
"엠마. 그래도 나는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상수. 너는 끔찍한 생각을 하는구나. 지겹지도 않아?"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 때는 매일 밤 엠마를 만날 수 있었거든.
그 때 엠마가 내 곁에 없었으면, 나는 그 시절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버렸을 거야."
나도 계속해서 박사 과정을 하고는 싶었으나,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이 지겨워서 때려치우고 귀국해버렸다. 이 때 내가 귀국하는 것을 엠마가 막으려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 내가 파리를 떠나는 것이 나에게는 Exodus (영광의 탈출)이었다.
그렇지만 귀국 후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나는 뼈저린 후회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능력이 아니라 학벌의 계급이 높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공부했으면서 박사 학위를 한 개도 소지하지 못한 나는 유학 실패자 내지는 외계인 취급을 받았으니까.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내가 엠마를 잊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힘든 시절을 서로 도우면서 같이 헤쳐 나왔기 때문이다. 또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엠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엠마는 독서를 폭넓게 많이 해서인지 아는 것도 정말 많다. 나는 엠마와 이야기하면서 불어 실력도 키울 수 있었지만, 프랑스의 정치, 역사, 미술, 음악 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한마디로 엠마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엠마 비노쉬야 말로 나에게 부족한 여러 가지를 채워준 교육가이고, 고집스러운 여인이다. 우리는 지금도 만나면 식탁에서나 침대에서나 할 얘기가 정말 많다. 물론 내가 하는 말에는 내 불만이 많이 섞여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를 했으나 우리의 결론은 항상 같았다. 그렇지만 나도 내 불만을 토로했다.
"엠마. 이제는 내가 너 없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상수.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이렇게 미치도록 너를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는데..
혹시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야.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수 너의 욕심일 뿐이야.
네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면 언제든지 파리로 오세요.
여기 네가 쓰던 방이 아직 그대로 너를 기다리고 있잖아."
"나는 엠마를 사랑하고 또 필요로 한다고 믿어."
"끝없이,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한, 사랑은 있을 수 없어.
자기 희생이 없는 사랑은 거짓말 사랑이고, 사랑을 흉내 내는 것 뿐이야.
상수나 나나, 우리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야.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잖아?"
"너나 나나, 우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인데?"
"짝퉁 사랑은 싫어.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우리는 절대로 그런 사랑은 하지 말자."
"엠마. 그럼 너는 나와 사랑을 흉내기라도 하자."
"기껏 말하니까 또 엉뚱한 소리를 하네.
하면 하고, 말면 말지, 비슷하게 흉내를 낸다는 것은 속임수야.
사랑을 앞세워서 사랑이 아닌 것을 하는 것이 좋으니?"
"의사는 몸의 병 뿐이 아니라 마음의 병도 고쳐야 하거든.
지금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내 마음에 병이 왔어."
"욕심 때문에 생긴 병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약이야."
"엠마. 너무 잔인하게 말할꺼니?"
"내가 돈을 벌 생각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아니야.
모든 인간은 누구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어.
만일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의사들은 그들이 아파하지 않고 살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어.
그래서 나는 "국경 없는 의사"라는 단체에 가입했어.
그러니까 세계 곳곳에 있는 재난 지역을 찾아 다니며, 아파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의무야.
지금 내가 이 일도 바쁜데, 한 남자와 거짓말 사랑이나 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싫어."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엠마가 서울로 가서 병원에서 의사로 일해도 되잖아?"
"서울에서는 언어 때문에 안 된다고 했거든요.
나는 멍청해서 서울 말을 모르잖아요.
상수 너는 영리해서 프랑스 말을 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파리로 오라고."
"당장 오고 싶다.
아니, 이번에 가지 말고 눌러 앉고 싶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상수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누가 말리니?
나는 프랑스를 벗어나더라도 영어나 불어를 사용하는 곳이 아니면 불가능해."
"나도 의사가 될 껄 그랬나?"
"아니야. 상수 너는 의사가 되지 않은 것이 현명한 일이야.
아름다워야 할 여인들이 아파하는 것은 정말 너무 슬픈 일이야.
그래서 나는 부인과를 택했어.
그런데 의사가 되고 보니까, 의사가 인간의 아픔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더라.
알아도 손을 쓸 수 없을 때도 많고.
나도 바보 같은 그들 중의 하나거든."
"자연과학자들이 자연과학에 대해서 가장 많이 모르고 있는 것이랑 똑같네."
"자연과학은 하지 않아도 사람 사는 데 지장은 없잖아?
그렇지만 인간의 아픔은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야.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의사이기 때문에 청진기를 들고 환자에게 덤벼들어야 하는 의사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니?"
오늘도 엠마는 지진, 또 가뭄과 흉년 때문에 사람들이 극한상황에서 살고 있는 곳에서 자기가 일한 이야기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 듣고 보면 모두 딱하고 답답한 얘기들이다. 이런 일을 하는 엠마에게 보고 싶다, 그립다는 말이 도대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상수 생각이 자꾸 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엠마. 내가 그렇다니까. 그럼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잖아?"
"하하하. 또 상수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니까, 상수가 미워지더라."
"엠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니까, 엠마가 더 예쁘게 생각되던데."
"하아.. 상수. .. 너 .."
"엠마."
"이제 나에게 키스해줄 수 있어?"
나는 대답 대신에 엠마의 얼굴을 당겨와서 엠마의 입술과 뺨, 그리고 목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엠마는 입술을 내밀고 키스를 기다렸지만, 나는 가슴으로 내려가서 엠마의 가슴에서 나는 향긋한 살냄새도 맡았다.
엠마는 내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엠마의 젖꼭지를 입술로 물고 빨아당겼다. 다단한 젖꼭지가 조금씩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나는 내 입안에서 젖꼭지를 밀어내고 두 손가락으로 잡아고 비틀면서, 반대쪽 젖꼭지를 입안을 빨아들였다. 엠마는 고개를 숙여 내 귀를 혀로 핥는다. 내 어깨와 목덜미를 엠마의 입술과 혀가 스치고 지나간다. 엠마가 입을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아. .. 상수. .. 거짓말이라도 좋아.
나는 상수 너를 사랑해."
엠마의 거짓말 사랑, 짝퉁 사랑, 그리고 사랑 흉내내기.
어이없는 파리의 고집녀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어야말로 사랑을 고백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언어로, 그야말로 신이 내린 언어인 것 같다. 엠마가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정말 아름다운 엠마이다. 나는 엠마의 가슴을 움켜쥐고 반대쪽 가슴을 빨았다. 엠마의 허리가 들썩이고, 엠마의 몸이 비틀린다. 내 머리를 잡은 엠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엠마의 다리가 들려 올라가서 넓게 열리고 엠마는 내 몸을 받아들인다. 엠마의 호수 같은 눈이 질끈 감기고, 입이 열린다. 내가 박을 때마다 엠마의 입에서는 뜨거운 신음이 섞인 거친 숨이 쏟아진다. 나는 엠마의 몸 위에서 몸부림을 치고, 엠마는 안타까워하면서 내 등을 당기며, 내 몸부림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상수. 너는 왜 내 것이 될 수 없는데? .. 하아아."
"엠마. 너의 고집 때문이야."
"하악. .. 아무래도 좋아. 거칠게는 박지 마.
어제 무리를 했기 때문인지 아직 조금 아파."
홍수가 나서 강물이 흐를 때의 성난 물결처럼, 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엠마의 침대에서 우리의 욕망도 서로의 몸으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불태우려는 듯이 부딪쳤다. 엠마가 내 아래에 깔려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내게 하소연했다.
"하악. .. 상수. .. 우리 이제 더 이상 헤어지지 말자. 응?"
"엠마. 나는 너에게서 멀리 떨어져도 절대로 너와 헤어지지 않아."
"하아아. .. 나도 의사 하지 말고 결혼해서 가정을 가질까?"
"그 말은 이따가 샤워하고 나면 잊어버릴텐데 .."
"잊지 않아. 다만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러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젊지 않니?"
"엠마 말이 맞아. 엠마는 아직 젊고 아름다워."
"하아아. 일고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고, 둘 다는 능력이 안되고 ..
아파. 살살 박으라니까."
우리의 몸은 우리의 욕망을 진실되게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 없는, 공허한 언어들을 뱉어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언어들로부터 마음에 위로를 느낀다.
바람 앞의 불꽃처럼 가냘픈 인간의 영혼에게는 공허한 언어마저도 소중하게 쓰인다. 이 모든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의 흉내를 내야 하는 몸부림이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얼굴을 가릴 가면이라도 필요한 것일까?
엠마라는 한 여인이 위선을 벗고, 영혼의 진실한 언어로 뱉는 말에서 엠마가 고민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 같다. 엠마의 아름다운 몸은 욕망에 불타오르면서 더욱 솔직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쾌락과 희열의 물결이 우리의 몸을 진동시킨다.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고 신음하며 온 몸을 떨었다. 이제 침대에는 폭풍이 지난 바다처럼 고요와 평화가 찾아 든다. 엠마의 붉은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엠마는 촉촉한 입술로 내 입술을 빨아당긴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키스했다. 나는 엠마를 침대에 두고 샤워를 하고 왔다. 옷을 입는데, 엠마가 물었다.
"상수. 언제 파리를 떠날꺼니?"
"일요일 밤."
"그럼 내일 저녁에 또 올래?"
"같이 온 동료가 파리 야경을 보여달라는데."
"끝나고 와도 돼. 오늘처럼 늦어도 나한테는 괜찮아."
"엠마가 같이 가지 않을래?"
"미안. 같이 가고 싶은데, 보고서 쓸 것이 아직 몇 개 남아있어.
파리 밤거리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면서 .."
나는 엠마에게 키스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강대리가 자다가 깨어나서 또 잔소리를 했다. 나는 강대리를 안고 잠들었다. 잠결에 강대리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랑 할 짓, 안 할 짓 다하고 들어와서 어쩌자고 나를 안고 자는데?"
"이렇게 해야 잠이 온다며?"
그 다음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모른다.
다음날 아침에 전화가 왔다며 강대리가 나를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셀린이다. 차를 가지러 오겠단다. 나는 강대리에게 셀린과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내일 제네바로 갈 비행기를 예약하고, 강대리와 함께 호텔 밖으로 나왔다. 셀린도 지하철역에서 우리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다. 강대리가 손을 흔들며 셀린에게 인사했다.
"하이. 셀린."
"하이. 선미, 상수."
우리는 셀린의 차로 식사하러 가기로 하고 차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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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테레 (Christa Theret) 라는 프랑스의 여배우가 있습니다. 이 여배우가 외모나 얼굴 표정이 엠마 비노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머리는 엠마가 훨씬 짧거든요. 웹사이트 http://www.zimbio.com/ChristaTheret/pictures/pro 에 보시면 위에서 두 번째 사진과 네 번째 사진이 엠마와 매우 닮았네요.
셀린 보델은 여배우 에바 그린 (Eva Green) 과 비슷합니다. 셀린의 얼굴은 웹사이트 http://www.thisisgame.com/mh4/tboard/?n=235238&board=33 에서 위에서 세 번째 사진이 가장 비슷하네요.
이 산부인과 의사와 약사인 두 여자는 실제의 인물입니다. 다만 남주가 제가 아닌 것이 정말 유감입니다.
이 글의 내용은 제 경험담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 Ja"dore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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