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부재 : 남편이 돌아왔다!
1989년 7월 27일, 김포국제공항에서 리비아로 향하는 대한항공 803편이 이륙을 준비하며 힘찬 엔진을 가동하고 있었죠. 공항은 떠나는 사람을 마중 나오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그 가운데 그이와 나도 있었답니다.
“여보,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지긋지긋하네, 나도 이번만 출장가고 다음부터는 없었으면 좋겠어.”
“피, 그래도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는 보기 좋아.”
“사장님도 너무 하시지 나는 결혼한지 6개월 밖에 안 된 신혼인데...”
“호호호. 여보, 파이팅!”
“그래, 내가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하면 집으로 전화할게.”
“기다리고 있을게.”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이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서운함과 섭섭함이 교차했고 이대로 그냥 떠나보낼 수 없었어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잊고 돌아서는 그이를 큰 소리로 불러 돌아 세웠는데...
“아, 미안... 내가 깜빡했네.”
“정말?”
그이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배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한 쪽 귀를 배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나에게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말을 했죠.
“아기야, 아빠 다녀올게. 보고 싶어도 참고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라.”
“애가 뭐라고 해?”
“알겠다는데? 이 녀석... 벌써 말을 하는 것 같아.”
“설마...”
“하하하! 그럼 다녀올게! 쪽!”
“사랑해!”
“나도, 미칠 만큼! 죽을 만큼! 평생~ 사랑해!”
“호호호.”
닭살 돋는 그이의 고백은 결혼한지 6개월이 지난 그때도 제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어요. 그이가 한 고백... 그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나에게는 곧 법이었고 진리라고 생각했었죠. 그만큼 저는 그이에게 제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보증으로 말이죠.
저를 두고 떠나는 그이를 향해 있는 힘 것 팔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고 내 시아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저도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섰죠. 그런데 그때 제 뒤에서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어요. 저를 보고 공항 기둥 뒤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 누군지 바로 알겠더군요.
“정권 씨?”
“가연 씨... 아, 제수씨.”
“정권 씨가 여기는 어쩐 일로...?”
“......”
그이의 대학 동창이자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정권 씨가 그 공항에 있었어요. 저는 정권 씨도 해외출장을 위해 이곳에 왔거나 아니면 우리 그이의 마중을 위해 왔다고만 생각했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거기 까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권 씨는 내 물음에 대답을 못하며 바닥만 바라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요.
“제수씨... 인공이는 잘 떠났나요?”
“네, 지금 방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에요. 우리 남편 마중 나오신 건가요?”
“그... 그게...”
“?”
망설이며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이며 말을 하지 못하는 지 도저히 알지 못했죠. 답답한 마음에 제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권 씨와 눈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정권 씨가 놀라며 대답을 하더군요.
“제수씨! 임신 상태에서 그렇게 허리를 숙이시면 안 되잖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 그렇군요.”
“저에게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다름이 아니라... 집에 가실 때 힘드실 것 같아서... 제가...”
“정권 씨가?”
정권 씨가 나를 인도해 공항 밖으로 나서자 새 자동차가 한 대 서 있다.
“이건... 무슨 차죠?”
“이번에 한 대 구입했어요, 제가...”
“어머, 축하드려요! 자동차 정말 예쁘네요.”
“르망이에요.”
“로망이요?”
“아... 아니요, 자동차 이름이 르망이라고요.”
“아~ 그렇구나.”
“저기...”
“네?”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여고...”
“저를요? 정권 씨가? 정말요?”
“가능하다면... 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정권 씨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에 굉장히 감사했죠. 뱃속에 애가 있어 버스를 타고 가기에 굉장히 불편했던 게 사실인데...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집에 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에 너무 감사할 뿐이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면 어서 다시죠!”
“네!”
“하하하.”
“집으로 출발~!!”
“안전벨트 하시고... 자, 출발합니다.”
굉장히 예의 있고 매너 있는 모습이 정권 씨의 매력 중에 으뜸이었어요. 그렇게 정권 씨의 새 자동차로 집까지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고 집으로 오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그이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도했습니다.
“끼이익.”
“다 왔네요.”
“고마워요, 정권 씨 아니었으면 버스를 얼마나 타고 와야 했던지...”
“아닙니다, 제수씨를 편하게 모실 수 있어서 저도 좋았어요.”
“어머... 어쩜 말씀도 이렇게 예쁘게 하세요.”
“아...”
정권 씨는 나의 칭찬에 금세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을 들지 못하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게 보이던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집에서 차 한 잔을 주려고 들어갔다 가라고 했더니 정권 씨는 바쁘다며 극구 사양하길래 정권 씨의 팔짱을 끼고 억지로 집으로 끌고 들어갔어요.
“인공이도 없는데...”
“뭐 어때요. 제가 고마워서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그럼,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우리 집에 들어온 정권 씨가 벽과 거실에 걸린 나와 그이의 다정한 사진을 둘러보며 부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죠. 그런 정권 씨가 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해야 했는데 아쉽기만 했어요. 나는 주방에서 물을 끓이기 위해 가스 불을 켜고 있었는데 내 뒤에 앉아 있던 정권 씨는 사진들을 둘러보다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제수씨, 제가 할까요?”
“아니에요, 그래도 손님인데... 제가 할게요.”
“위험할 것 같아서요.”
“훗... 이 정도야!”
이리저리 싱크대 앞에서 움직이는 제 뒷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정권 씨를 위해 빨리 차를 내어 주어야 할 것 같아 행동을 좀 서둘렀습니다. 정권 씨는 제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어요.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느낌에 약간의 부담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에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이쿠, 감사합니다.”
“커피를 드려야 하는데 제가 임신을 해서 집에 커피가 없네요.”
“아... 아닙니다. 녹차도 좋은 걸요.”
“다행이네요, 저는 오렌지 쥬스!”
“네...”
“정권 씨.”
“네?!”
그냥 간단한 불음에도 화들짝 놀라는 정권 씨는 평소보다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았어요. 왜 그랬던지는 저도 잘 몰랐었죠.
“그럼 우리 그이는 한 달 후에 오는 건가요?”
“아, 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리비아 쪽에서 제시한 거래금이 저희랑 맞지를 않아서...”
“다른 직원들 많을 건데... 왜 꼭 우리 남편이죠?”
“그... 그건... 실력이 제일 뛰어나니까... 저도 인공이를 믿고요.”
“사장님, 서운해요! 우리 그이 자꾸 해외로 돌리시고.”
“죄... 죄송합니다.”
그랬어요. 정권 씨는 우리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었고 이번 출장을 지시한 사람도 바로 정권 씨였어요. 하지만 그런 정권 씨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어요. 장난으로 한 나의 말에 정권 씨가 많이 긴장을 했는지 식은땀을 줄줄 흐르고 안경 너머로 김이 가득 채우고 있었죠. 저는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아주며 말했어요.
“어디가 아프신가 봐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리세요? 지금 그렇게 덥지는 않은데...”
“긴... 긴장해서...”
“긴장? 정권 씨가? 호호호.”
“꿀꺽...”
“우리가 몇 년을 봤는데 왜 긴장을 해요?”
“그... 그러게요.”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 정권 씨가 허리에 차고 있는 삐삐가 울리기 시작했어요.
“어머, 그게 뭐에요?”
“아, 이건 삐삐라고 하는 건데요... 전화번호가 호출이 오면 호출된 번호로 전화를 하면 되요.”
“우와~ 그런 게 있구나.”
“인공이도 이번에 출장 다녀오면 회사에서 한 대 지급할 계획이에요.”
“멋있다!”
“저기... 죄송한데 전화 한 통만 해도 될까요?”
“그럼요, 사용하세요.”
“고맙습니다.”
우리 집 전화기로 자리를 옮겨 삐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더니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대화를 하더군요. 그리고 전화를 끊더니...
“제수씨, 저는 일 때문에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바쁘시니까.”
“녹차 맛있게 마셨습니다.”
“오늘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아... 네. 그리고... 무슨 일 있으시면 이 번호로 호출해 주세요. 제 삐삐 번호에요.”
“알겠어요.”
“그럼, 쉬세요. 제수씨...”
“네! 안녕히 가세요~”
정권 씨가 건넨 번호를 손에 쥐고 미소를 띠고 있었고 집에 혼자 남은 저는 그이의 전화를 기다리며 뱃속의 아이와 작은 사랑의 대화를 속삭이고 있었어요. 나와 아이와 떨어져 멀리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그이 생각에 몸도 노근해졌고... 잠시 머리를 바닥에 기대고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오후 2시가 넘어 자리에서 일어났지요.
“바닥에 그냥 누워서 잤더니... 배가 살짝 당기는 기분이네.”
자리에서 일어나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한 번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향해 걸었고 혼자 있던 집안에는 텔레비전 소리만 유유히 들려왔답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이 들어있는 물병을 꺼내 유리로 되어 있는 물 컵을 잡는 순간...
“쨍그랑~!”
“아앗!”
잠이 아직 덜 깼던지 손잡이 부분이 미끄러지며 들고 있던 물 컵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때문에 엄지손가락에서 살짝 피가 흘렀어요. 기분 나쁜 피...
“아얏! 아이고... 내 정신 좀... 어떻게 하지...”
그리고 내 뒤에 들리는 뉴스 소리...
“뉴스 특보입니다! 오늘 김포국제공항을 이륙, 타이의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를 거쳐 리비아의 트리폴리에 도착할 예정이던 대한항공의 803편이 악천후와 시야 미확보, 안개 등의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하였습니다!”
깨진 물 컵을 줍다 들린 뉴스 소리에 피가 흐르는 엄지손가락이 날카로운 조각을 잡았고 그 상태로 얼어붙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드는 생각은 오로지...
“여보!”
////////////////////////////////
므훗♡ 늪에 빠진 여인 후 연재 시작합니다! ...............그전에 잠시 쉬고...ㅎㅎㅎ
1989년 7월 27일, 김포국제공항에서 리비아로 향하는 대한항공 803편이 이륙을 준비하며 힘찬 엔진을 가동하고 있었죠. 공항은 떠나는 사람을 마중 나오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그 가운데 그이와 나도 있었답니다.
“여보,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지긋지긋하네, 나도 이번만 출장가고 다음부터는 없었으면 좋겠어.”
“피, 그래도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는 보기 좋아.”
“사장님도 너무 하시지 나는 결혼한지 6개월 밖에 안 된 신혼인데...”
“호호호. 여보, 파이팅!”
“그래, 내가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하면 집으로 전화할게.”
“기다리고 있을게.”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이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서운함과 섭섭함이 교차했고 이대로 그냥 떠나보낼 수 없었어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잊고 돌아서는 그이를 큰 소리로 불러 돌아 세웠는데...
“아, 미안... 내가 깜빡했네.”
“정말?”
그이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배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한 쪽 귀를 배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나에게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말을 했죠.
“아기야, 아빠 다녀올게. 보고 싶어도 참고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라.”
“애가 뭐라고 해?”
“알겠다는데? 이 녀석... 벌써 말을 하는 것 같아.”
“설마...”
“하하하! 그럼 다녀올게! 쪽!”
“사랑해!”
“나도, 미칠 만큼! 죽을 만큼! 평생~ 사랑해!”
“호호호.”
닭살 돋는 그이의 고백은 결혼한지 6개월이 지난 그때도 제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어요. 그이가 한 고백... 그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나에게는 곧 법이었고 진리라고 생각했었죠. 그만큼 저는 그이에게 제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보증으로 말이죠.
저를 두고 떠나는 그이를 향해 있는 힘 것 팔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고 내 시아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저도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섰죠. 그런데 그때 제 뒤에서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어요. 저를 보고 공항 기둥 뒤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 누군지 바로 알겠더군요.
“정권 씨?”
“가연 씨... 아, 제수씨.”
“정권 씨가 여기는 어쩐 일로...?”
“......”
그이의 대학 동창이자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정권 씨가 그 공항에 있었어요. 저는 정권 씨도 해외출장을 위해 이곳에 왔거나 아니면 우리 그이의 마중을 위해 왔다고만 생각했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거기 까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권 씨는 내 물음에 대답을 못하며 바닥만 바라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요.
“제수씨... 인공이는 잘 떠났나요?”
“네, 지금 방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에요. 우리 남편 마중 나오신 건가요?”
“그... 그게...”
“?”
망설이며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이며 말을 하지 못하는 지 도저히 알지 못했죠. 답답한 마음에 제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권 씨와 눈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정권 씨가 놀라며 대답을 하더군요.
“제수씨! 임신 상태에서 그렇게 허리를 숙이시면 안 되잖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 그렇군요.”
“저에게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다름이 아니라... 집에 가실 때 힘드실 것 같아서... 제가...”
“정권 씨가?”
정권 씨가 나를 인도해 공항 밖으로 나서자 새 자동차가 한 대 서 있다.
“이건... 무슨 차죠?”
“이번에 한 대 구입했어요, 제가...”
“어머, 축하드려요! 자동차 정말 예쁘네요.”
“르망이에요.”
“로망이요?”
“아... 아니요, 자동차 이름이 르망이라고요.”
“아~ 그렇구나.”
“저기...”
“네?”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여고...”
“저를요? 정권 씨가? 정말요?”
“가능하다면... 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정권 씨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에 굉장히 감사했죠. 뱃속에 애가 있어 버스를 타고 가기에 굉장히 불편했던 게 사실인데...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집에 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에 너무 감사할 뿐이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면 어서 다시죠!”
“네!”
“하하하.”
“집으로 출발~!!”
“안전벨트 하시고... 자, 출발합니다.”
굉장히 예의 있고 매너 있는 모습이 정권 씨의 매력 중에 으뜸이었어요. 그렇게 정권 씨의 새 자동차로 집까지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고 집으로 오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그이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도했습니다.
“끼이익.”
“다 왔네요.”
“고마워요, 정권 씨 아니었으면 버스를 얼마나 타고 와야 했던지...”
“아닙니다, 제수씨를 편하게 모실 수 있어서 저도 좋았어요.”
“어머... 어쩜 말씀도 이렇게 예쁘게 하세요.”
“아...”
정권 씨는 나의 칭찬에 금세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을 들지 못하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게 보이던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집에서 차 한 잔을 주려고 들어갔다 가라고 했더니 정권 씨는 바쁘다며 극구 사양하길래 정권 씨의 팔짱을 끼고 억지로 집으로 끌고 들어갔어요.
“인공이도 없는데...”
“뭐 어때요. 제가 고마워서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그럼,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우리 집에 들어온 정권 씨가 벽과 거실에 걸린 나와 그이의 다정한 사진을 둘러보며 부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죠. 그런 정권 씨가 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해야 했는데 아쉽기만 했어요. 나는 주방에서 물을 끓이기 위해 가스 불을 켜고 있었는데 내 뒤에 앉아 있던 정권 씨는 사진들을 둘러보다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제수씨, 제가 할까요?”
“아니에요, 그래도 손님인데... 제가 할게요.”
“위험할 것 같아서요.”
“훗... 이 정도야!”
이리저리 싱크대 앞에서 움직이는 제 뒷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정권 씨를 위해 빨리 차를 내어 주어야 할 것 같아 행동을 좀 서둘렀습니다. 정권 씨는 제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어요.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느낌에 약간의 부담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에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이쿠, 감사합니다.”
“커피를 드려야 하는데 제가 임신을 해서 집에 커피가 없네요.”
“아... 아닙니다. 녹차도 좋은 걸요.”
“다행이네요, 저는 오렌지 쥬스!”
“네...”
“정권 씨.”
“네?!”
그냥 간단한 불음에도 화들짝 놀라는 정권 씨는 평소보다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았어요. 왜 그랬던지는 저도 잘 몰랐었죠.
“그럼 우리 그이는 한 달 후에 오는 건가요?”
“아, 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리비아 쪽에서 제시한 거래금이 저희랑 맞지를 않아서...”
“다른 직원들 많을 건데... 왜 꼭 우리 남편이죠?”
“그... 그건... 실력이 제일 뛰어나니까... 저도 인공이를 믿고요.”
“사장님, 서운해요! 우리 그이 자꾸 해외로 돌리시고.”
“죄... 죄송합니다.”
그랬어요. 정권 씨는 우리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었고 이번 출장을 지시한 사람도 바로 정권 씨였어요. 하지만 그런 정권 씨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어요. 장난으로 한 나의 말에 정권 씨가 많이 긴장을 했는지 식은땀을 줄줄 흐르고 안경 너머로 김이 가득 채우고 있었죠. 저는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아주며 말했어요.
“어디가 아프신가 봐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리세요? 지금 그렇게 덥지는 않은데...”
“긴... 긴장해서...”
“긴장? 정권 씨가? 호호호.”
“꿀꺽...”
“우리가 몇 년을 봤는데 왜 긴장을 해요?”
“그... 그러게요.”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 정권 씨가 허리에 차고 있는 삐삐가 울리기 시작했어요.
“어머, 그게 뭐에요?”
“아, 이건 삐삐라고 하는 건데요... 전화번호가 호출이 오면 호출된 번호로 전화를 하면 되요.”
“우와~ 그런 게 있구나.”
“인공이도 이번에 출장 다녀오면 회사에서 한 대 지급할 계획이에요.”
“멋있다!”
“저기... 죄송한데 전화 한 통만 해도 될까요?”
“그럼요, 사용하세요.”
“고맙습니다.”
우리 집 전화기로 자리를 옮겨 삐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더니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대화를 하더군요. 그리고 전화를 끊더니...
“제수씨, 저는 일 때문에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바쁘시니까.”
“녹차 맛있게 마셨습니다.”
“오늘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아... 네. 그리고... 무슨 일 있으시면 이 번호로 호출해 주세요. 제 삐삐 번호에요.”
“알겠어요.”
“그럼, 쉬세요. 제수씨...”
“네! 안녕히 가세요~”
정권 씨가 건넨 번호를 손에 쥐고 미소를 띠고 있었고 집에 혼자 남은 저는 그이의 전화를 기다리며 뱃속의 아이와 작은 사랑의 대화를 속삭이고 있었어요. 나와 아이와 떨어져 멀리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그이 생각에 몸도 노근해졌고... 잠시 머리를 바닥에 기대고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오후 2시가 넘어 자리에서 일어났지요.
“바닥에 그냥 누워서 잤더니... 배가 살짝 당기는 기분이네.”
자리에서 일어나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한 번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향해 걸었고 혼자 있던 집안에는 텔레비전 소리만 유유히 들려왔답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이 들어있는 물병을 꺼내 유리로 되어 있는 물 컵을 잡는 순간...
“쨍그랑~!”
“아앗!”
잠이 아직 덜 깼던지 손잡이 부분이 미끄러지며 들고 있던 물 컵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때문에 엄지손가락에서 살짝 피가 흘렀어요. 기분 나쁜 피...
“아얏! 아이고... 내 정신 좀... 어떻게 하지...”
그리고 내 뒤에 들리는 뉴스 소리...
“뉴스 특보입니다! 오늘 김포국제공항을 이륙, 타이의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를 거쳐 리비아의 트리폴리에 도착할 예정이던 대한항공의 803편이 악천후와 시야 미확보, 안개 등의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하였습니다!”
깨진 물 컵을 줍다 들린 뉴스 소리에 피가 흐르는 엄지손가락이 날카로운 조각을 잡았고 그 상태로 얼어붙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드는 생각은 오로지...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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