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르던 숲이 점점 오색으로 갈아입는 가을, 인천 대화방조제를 향하는 오이도 주변은 바다와 야트막한 산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었다. 처음으로 역사적인 서울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고 국내외로 관심과 열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낮이면 공원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야산 주변은 짙은 안개와 칠흑 같은 어둠으로 주위를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숲길 속에는 주인이 찾지 않는 별장들이 검은 그림자로 들어나 보였다.
숲속 안쪽의 산기슭에 외진 곳에 있는 별장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별장의 주인은 저명한 사업가 송 민욱이었다. 서울에 주택을 갖고 있는 그는 가족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인천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홀로 남은 노모를 모시고 이틀째 별장에 묶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던 노모가 방에 들어가고, 민욱의 아내 진숙은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늦게 결혼한 그녀는 네 살 되는 아들, 그리고 두 살의 어리 딸을 낳게 되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는 딸의 얼굴에 귀를 가까이 하고 잠든 것을 확인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그녀는 딸의 머리를 쓸어 올려주고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잠옷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서 신문을 펴들고 있었다.
“당신 안주무시고......!?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기는. 여기 내려와 있으니 편하네.”
“어서 주무세요. 내일 올라가려면 일찍 주무셔야지요.”
“음.......! 이제 자야지.”
민욱은 양팔을 벌려 크게 기지개를 하면서 일어섰다. 진숙은 남편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잠옷으로 갈아입는 그녀는 침대위에 누워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을 의식했다. 화장대 거울을 들여다 본 그녀는 침대로 들어가 남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어제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을 거부했기에 그녀는 아무래도 그냥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민욱이 아내를 향해 누웠다. 그리고 슬그머니 껴안았다. 항상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의 애정에 그녀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부관계를 해도 남편은 그녀의 감정을 배려하는 섬세함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두 아이를 낳고나니 민감했던 성감이 둔해지는 것만 같아서 이따금 남편의 요구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보~! 아직 아이들이 깊은 잠이 안 들었어요.”
“애들은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데 뭘.”
“그래도요. 요즘 어머니가 귀가 밝아지셔서, 신경이 쓰여요.”
“오늘은 당신 사랑하고 싶은데.”
진숙은 젖가슴을 주무르는 남편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마지못해 그녀는 입술을 찾는 남편의 가슴에 안겼다. 입술이 포개지고 키스를 하면서 혀와 혀가 엉키니 그녀의 육체는 의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젖꼭지가 남편의 손가락 사이에 휘말리고 그녀는 남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며 저절로 옅은 신음을 흘렸다.
“여보~! 음.......”
어느새 발가벗은 남편이 그녀의 잠옷 가운을 벗겨내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이 되어 부둥켜안았다. 아릿한 쾌감에 젖어드는 그녀는 젖가슴을 파고드는 남편의 머리를 보듬어 안았다. 젖꼭지가 남편의 입속에 빨려 들어가고 그녀는 허벅지를 벌렸다. 호흡이 거칠어진 남편의 남성이 몸속으로 치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허리를 들어올렸다.
“사, 사랑해요.........!”
“음~!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야.......!”
진숙은 몸속깊이 들어오는 불덩이에 온 몸의 신경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민욱은 아내의 몸속을 헤집는 페니스를 규칙적으로 진퇴시켰다. 그의 손길에 길들여진 아내의 육체가 허우적거릴수록 그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엑스터시를 느끼는 아내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허리를 들썩거렸다.
“읍, 읍, 여보~!”
“하 아.........!”
그때였다. 벼락같이 침실 방문이 왈칵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창 절정을 향해 치솟던 민욱은 기겁을 하고 행위를 멈추었다. 침실 문으로 두 그림자가 튀어 들어왔다. 그의 가슴아래 갇혀 숨을 몰아쉬던 진숙은 돌연한 상황에 온 몸이 오싹해지는 동시에 허벅지를 조였다. 몸속을 채우고 남성이 긴장하여 꿈틀거림을 의식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헉~!”
“하 앗~! 여, 여보........!”
“어이쿠~!”
진숙은 자신의 알몸위에 체중을 실고 있던 남편이 방구석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스크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두 명의 괴한이 침실로 뛰어든 것이었다. 점퍼를 걸친 사내의 발길에 걷어 채인 남편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또 다른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서더니 대뜸 머리채를 잡고 내동댕이쳤다.
“이것들이 초저녁부터 벌거벗고........!”
“하 윽~! 왜, 왜이래요. 누, 누구........?”
“조용해!”
명령하듯이 들리는 괴한의 목소리! 발가벗은 알몸으로 방바닥에 쓰러진 진숙은 정신이 아득했다. 화장대에 부딪친 그녀의 입술이 터져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공포에 휘말린 그녀는 열려있는 침실 문밖으로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그러나 이내 등산복 차림의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그녀는 거실에 피를 흘리고 쓸어져 있는 시어머니를 발견하고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등을 파고드는 아픔과 함께 그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 윽~!”
등산복 남자는 단발마의 비명소리를 흘리며 쓰러진 진숙을 내려다봤다. 의식을 잃고 쓸어져 있는 그녀의 등에서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농익은 둔부를 들어내 놓은 채 엎드려 있는 그녀를 등산화를 신은 발로 밀어 똑바로 눕혔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들썩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는 그녀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점퍼 차림의 사내가 민욱의 목을 구둣발로 밟고 있었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민욱의 얼굴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핏줄이 돋아난 눈동자로 등산복 사내가 들어오는 침실 밖을 쳐다봤다. 선혈이 낭자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내의 모습에 그의 눈빛이 번쩍였다.
“누구야! 네 놈들......! 누, 누구냐고?”
“조용해! 그걸 물을 시간이 없어. 계약서 어디 있어?”
“무, 무슨 계약.....!?”
“말할 시간 없다니까. 잘 알 텐데!?”
“무, 무슨 말이야? 개만도 못한 놈들.......”
“계약서 내놓으면 조용히 사라질게.”
민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마트 체인점을 경영하는 그는 프로모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외국의 프로선수들을 불러 들여 여러 번 흥행에 성공했었다. 그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체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여파를 이용하는 획기적인 계획을 마련했다,
그가 막대한 예산을 지출한 사업이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세계정상의 프로선수들을 불러들이고 유명 연예인들까지 출연하는 대대적인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대기업에서도 공연 주체를 탐내고 있는 사업이었다. 그들이 찾는 것이 프로선수들과 계약한 서류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결코 넘겨줄 수는 없었다.
“뭔 말인지 모르지만, 나한테 그런 건 없어. 잘못알고 온 거야.”
“이 양반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정말, 모르는구먼.”
민욱은 그들이 어떤 경쟁 업체의 하수인인지 모르지만, 계약서를 절대로 넘겨줄 수는 없었다. 다만 식구들이 걱정되어 두려웠다. 점퍼의 사내가 그의 목을 밟은 구둣발에 힘을 주고 눌렀다. 고통스러운 그는 숨을 쉴 수조차 없어 컥컥거렸다. 점퍼의 사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의미 있는 눈빛으로 등산복 차림의 사내를 바라봤다. 등산복 차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형님! 계약서 필요 없잖아요? 그냥 처리해버리면 우리에게 넘어 올 것을.......”
“그런가.......!?”
등산복 사내가 대답도 안하고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비수로 지체 없이 민욱의 가슴을 찔렀다.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힌 민욱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비수를 뽑아든 사내는 고개를 떨어트리는 민욱을 발로 걷어차고 돌아섰다. 그들은 곧 바로 현관문을 나섰다.
어둠속에는 그들이 몰고 온 트럭이 괴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이 트럭에서 통을 꺼내들고 집 주위에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했다. 등산복 사내가 휘발유 통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민욱이 쓰러져 있는 침실과 거실에 휘발유를 뿌렸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진숙과 노모를 밟고 지나간 그가 돌아서다가 놀라서 멈추어 섰다. 빠끔히 열린 건넌방 문 사이에 하얀 물체가 들어나 보였다.
“헉~! 뭐야.......!?”
“왜, 그래!?”
점퍼 사내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둠속에 하얀 잠옷을 걸친 남자아이가 포대기에 담긴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유령처럼 서있었다. 등산복 사내가 한발 다가서자, 남자아이가 뒷걸음쳐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들의 출연에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등산복 차림이 말했다.
“어떡할 가요? 애들을........!”
“.....음! 시간도 없고 애들이 뭘 알겠어. 어차피 불태울 거고,......”
그들은 부리나케 집안을 돌아다니며 휘발유를 뿌렸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켜서 집어 던졌다. 휘발유에 젖은 바닥이 삽시간에 불꽃을 일으켰다. 불길에 창문 커튼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씨발.........."
서둘러 나가던 등산복 사내가 쓰러져 있는 진숙의 시신에 걸려 넘어졌다. 밖으로 뛰쳐나간 그들은 트럭에 올라탔다.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그들의 트럭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어린 소년이 포대기를 안고 집밖으로 나왔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타오르는 불길에 들어난 어린 소년의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음소리도 없이 흐느끼는 소년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내려다봤다. 그들이 떨어트린 손목시계였다.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진 마을 쪽에서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목소리! 치솟는 불길을 보고 몰려오는 마을사람들이었다. 어둠속의 별장 밖으로 나온 소년의 눈동자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대기에 쌓여 어린 소년의 가슴에 안겨있는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소년은 아기를 토닥거리지만 울음소리가 밤공기 속에 펴졌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전소되어 버린 사건 현장에서 사건의 단서나 범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올림픽으로 인해 인력도 부족한 경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어린 소년과 아기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인근 고아원에 맡겨졌다.
소년은 언어를 잃어버린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소년은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에게 입양되어 고아원을 떠났고, 혼자 남았던 아기는 젊은 부부에게 국내 입양되었다. 비참했던 별장은 화재로 전소되어 흔적만 남았고, 마을 사람들이 애틋하게 생각했던 어린아이들도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시간은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람들이지 시간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강을 배로 건널 때, 움직이는 것은 물이며, 우리가 탄 배는 아닌듯하다.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시간은 모든 욕망을 잠식하고 정복한다. 시간은 소중히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포착하는 자의 벗이며, 때가 아닌데 너무 서두르는 자에겐 최대의 적이라고 한다.
서울 아시안 게임이 지나고 이 년 후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이십여 년이 지나고 올림픽에 대한 열광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처참했던 사건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없다.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한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처리해 버리면 그것으로서 우리는 미래도 포기해 버리는 것이 된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의 취임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서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 했다는 수행원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국제적인 망신이라면서 사실 규명으로 처벌해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피해자인 여직원을 비난하며 수행원을 두둔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푸르게 변하고 여인네들은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침저녁 날씨와 태양이 떠오른 낮과 온도 차이가 많은 계절이었다. 인천 논현동에는 넓은 평수의 정원에 둘러싸인 고급 저택들로 주택가를 이루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사치를 들어내 보이는 전원주택의 건축 양식도 다양하고 화려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태양이 사라지면 어김없이 밤이 찾아온다. 가로등만 졸고 있는 도로변에 유럽풍의 대리석 저택이 가로등 불빛에 그림처럼 들어나 보였다. 저택 이층의 넓은 방은 별다른 인테리어도 없었다. 어둠속에 놓인 침대위에는 상체를 벗은 젊은 청년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근육이 들어나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듯이 어깨를 흠칫하였다.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참한 비명소리, 거실 바닥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가족들! 치솟는 불길! 악마 같은 괴한의 눈빛! 아기가 잠들어 있는 포대기를 안고 어둠속으로 나온 어린 소년은 절규한다.
“안 돼~~!”
부들부들 떨던 그는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적막과 어둠만이 깃든 방이었다. 수시로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처참함이었다. 연결 고리도 없는 토막 난 시간속의 악몽들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베어났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힘없이 쓰러져 눈을 감았다. 옅은 신음을 흘리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둠속으로 또 다른 영상이 떠오른 것이었다.
파도를 가르고 항해하는 여객선! 청년은 선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뛰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여객선 선주이며 신화 그룹의 총수를 은밀하게 뒤쫓고 있었다. 신화는 서울 올림픽 이후에 해운업과 해외 건설사업 등 방계회사를 거닌 그룹으로 급성장한 기업이었다.
커피숍 안에서 주위를 살피던 청년은 당황했다. 그가 추적하고 있는 인물이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선상으로 오른 그는 네 명의 가족들을 발견하고 얼핏 몸을 숨겼다. 간편한 여행복을 걸친 남자와 여자 각각 두 명이었다. 주위를 살핀 청년이 슬그머니 그들 곁으로 다가가서 등을 돌리고 섰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희. 아니.....! 형수는 왜 안 왔어요?”
“진 이사가 요양원에 들어가고, 기분이 안 좋은 게지.”
“형수한테 물류센터 부지 양도계약서 도장은 받았어요?”
“아니,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군. 너도 알잖아. 형수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갖고 있는 진 이사에게 받은 양도 각서, 그것만으로도 되지 않아요?”
“안 돼. 두 사람 공동 소유로 돼 있어.”
“문제군요. 물류창고와 화물주차장 건립 부지가 마땅치 않은데........”
그들 중 나이든 남자가 청년이 은밀히 뒤쫓고 있는 신화 그룹의 권 태호 회장이었다.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남자가 그의 동생이고 대표이사 권 종호였다. 그들의 시선이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여자들을 향했다. 그들을 따라 청년이 그녀들을 힐끔 곁눈질했다. 그들의 가족이었다. 그들에 비해 여자들은 무척 나이가 어려 보였다. 동생을 못마땅하다는 빤히 쳐다보는 권 회장의 눈빛!
“넌 여자들도 많은데, 지아와 꼭 결혼을 했어야 했니? 하필이면 내가 딸처럼 키운 애를.........”
“하하~! 나도 후회해요.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벙어리처럼 말도 안하고........”
“그러기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나이 차이도 많고......”
“형님과 형수님은 더 나이 차이가 많으면서.........”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진 이사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니까. 반대하던 진 이사도 욕심이 많아서 결국 내 요구를 받아 들였고.........”
“그나저나 민경이는 시집 안 보내요?”
“모르겠다. 활량처럼 제 멋대로 이니. 아버님은 뒤늦게 뭣 하러 제를 집안으로 들였는지 몰라. 어머니도 반대하던 첩의 자식을........”
대화를 중단한 권 회장이 여동생 민경을 주시했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그녀를 손짓해서 불렀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객실을 향하는 입구로 갔다. 머뭇거리던 종호가 자신의 아내, 지아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청년은 어느 쪽을 선택해서 쫓아갈지 망설였다. 종호가 불쑥 아내의 허리를 감쌌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미간을 찌푸리는 종호가 화를 벌컥 냈다.
“이게~! 여기까지 와서도 쌀쌀 맞게 굴어! 넌, 내 아내가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돼. 평생 고아로 천대 받고 살 것이!”
“더러운 손 치워. 난, 아버지, 아니 권 회장님 딸로 만족했어.”
“정말 살기 싫어!? 너, 따위 하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도 있어.”
포악스럽게 변하는 권 종호의 표정! 그가 그녀의 허리를 다시 안으려고 했다. 여전히 그녀가 남편의 손을 야무지게 뿌리쳤다. 동시에 그가 손을 휘둘렀다. 뺨을 얻어맞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우악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객실로 향하는 계단 입구로 향했다.
마지못해 끌려가는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바라보고 있던 청년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혈색이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감정이 드러나 보이는 것만 같았다.
청년은 여객선 안에서 그녀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담한 체구에 잡티하나 없이 백옥같이 하얀 피부, 그리고 이마가 튀어나온 그녀는 마치 혼혈아 같았다. 짧은 커트 머리에 보조개가 드리운 그녀는 인형처럼 매혹적이었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혀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잠시 그녀의 간절한 표정을 떠 올리던 청년은 부리나케 권 종호가 사라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객실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객실 복도를 가고 있는 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객실로 끌려 들어가는 그녀를 더 이상 쫓을 수 없었다.
“아! 안되는데.......”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청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벽을 치면서 눈을 떴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눈을 감은 그는 또 다른 토막의 악몽 속에 빠져들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청년의 시야에 권 회장과 그의 여동생 민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미간을 찌푸린 권 회장이 여동생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지아를 끌고 선실로 들어가는 권 종호를 바라본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권 회장과 민경이 사라지고 권 종호를 뒤쫓던 청년은 얼어붙은 듯이 서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발길을 돌리려다가 다시 몸을 숨겼다. 종호가 들어갔던 객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머리와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종호의 아내 지아가 뛰쳐나왔다.
복도 모서리를 돌아가던 그녀가 청년을 힐끔 쳐다보면서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동시에 열린 객실 출입문 입구에 상체를 벗은 종호가 나와서 고함을 질렀다.
“거기 안 서!? 여기서 어디로 도망치려고......!”
“..........”
순간 청년은 권 종호가 그녀를 난폭하게 다루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부리나케 그녀가 사라진 선상으로 올라갔다. 몇 분 사이에 선상이 어둡게 변해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힌 어둠속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높은 파도가 일어나 갑판 위까지 바닷물을 튕기고 있었다. 그런데 구석구석 찾아봐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당혹스러웠다. 선상 한쪽의 로프에 감겨있는 구명 보트위에 있는 그녀가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그녀의 위태로운 모습! 아무래도 그녀가 바다로 뛰어내릴 자세이기에 청년은 몸을 날렸다.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로 여객선이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뒤뚱거리며 다가간 그는 균형을 잃고 상체를 숙이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짧게 커트한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청년은 좌절감에 젖은 그녀의 행동을 눈빛으로 제지한 것이었다. 그는 빤히 쳐다보는 그녀를 당겨 끌어 내렸다. 그리고 어떤 위험한 행동을 할지 염려되는 그녀를 벽에 등지게 하고 어깨를 붙잡았다.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절망감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는 갑자기 그녀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감 같은 감정이 솟구쳤다. 그 감정은 동정이 아니라 악몽 속에 자신과 같다는 동질감이었다.
이슬을 머금은 그녀의 까만 눈망울과 시선을 마주한 청년의 눈빛이 정지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앞에 있는 그녀의 입술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잇닿고 당황한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러나 그녀는 청년을 거부하지 않고 천천히 짙고 긴 속눈썹을 내리감았다. 키스를 하던 그들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
“..........!?”
벼락 치는 굉음과 함께 여객선이 몹시 흔들린 것이었다. 당황한 그들은 서로를 마주 쳐다보며 뒤뚱거리다가 화물칸 벽에 부딪쳐 뒹굴었다. 파도가 여객선 보다 높이 몰아쳐서 삽시간에 선상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다시 굉음이 들리고 여객선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선상에 있던 사람들이 짐짝처럼 뒹굴었다. 청년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순식간에 청년과 그녀는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온 몸이 물에 젖은 상태가 되었다. 무엇인가 우지끈하며 부러지는 소리들이 들리고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잇달았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청년은 황급히 그녀를 구명보트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 믿을 수 있어요?”
“..........!”
“그럼 여기서 기다리세요. 식구들 데리고 올 때까지. 내 말, 알겠어요?”
“..........!”
머리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자신의 목표물인 그들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전쟁터 같은 객실로 뛰어간 청년은 사색이 되어 있는 권 회장과 종호, 그리고 민경을 발견했다. 구내방송은 모두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방송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긴박한 위험을 느낀 청년은 다른 말이 필요 없이 그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다.
청년은 그들을 데리고 선상으로 올라가 구명보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공포에 휩싸인 지아의 눈동자가 그를 향해있었다. 그때 멀리서 해경 경비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객선은 이미 반쯤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여객선에 오른 해경들은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며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청년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귄 회장 가족들을 구명보트에 태웠다. 뒤늦게 구조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청년이 뒤돌아보니 침수되는 여객선의 선미만 몰아치는 파도위에 보였다. 귄 회장 가족을 구조선에 태운 청년은 갑자기 꼼짝할 수 없어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허벅지 근육이 뭉쳐서 경련이 일어난 것이었다.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구조선에 오르던 청년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추락하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는 죽음의 공포에 휘말렸다.
“아 악~!”
외마디를 지르며 눈을 뜬 청년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그의 시야에는 온통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는 비로소 반복되는 과거의 고통을 떨쳐 버릴 수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따금 또 다른 악몽 속에서 삶과 죽음의 공간을 넘나들고 있었다.
대리석 이층저택의 정원 한쪽 차고에는 검은색 외제 차량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렸다. 저택 앞 테라스 그늘의 흔들리는 해먹위에는 민소매의 티셔츠와 허벅지가 들어나는 짧은 핫팬츠를 걸친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들고 있는 주스를 빨대로 빨아 먹으면서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은 정원 한구석의 차고 앞이었다.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청년이 세차를 하고 있었다. 균형 잡힌 체격의 그가 움직일 때마다 햇볕에 그을린 팔뚝의 근육이 들어나 보였다. 그녀는 요즘 왠지 서구적인 분위기와 카리스마를 느끼는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을 향한 그녀의 시선을 모르는지 호스를 집어 들었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간 물줄기가 퍼져 무지개를 떠올리며 승용차의 거품을 씻어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주먹으로 문지른 그는 걸치고 있던 민소매 러닝셔츠를 벗었다. 보기 좋은 근육이 들어나고 그의 등줄기에 맺힌 땀방울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는 별로 힘든 기색이 없이 승용차의 물기를 닦아내고 광택 약을 문질렀다.
청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여인이 해먹위에서 벗어났다. 들고 있던 주스 캔을 던지고 그녀는 마치 런웨이의 모델처럼 걸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빤히 보고 있어도 그는 무표정하게 세차에만 열중했다. 한손으로 턱을 받쳐 든 그녀는 유혹하는 몸짓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스터 서! 내가 안보여?”
“.........”
“내가 안보이냐고!?”
“.........”
그녀는 무시당하는 것만 같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스물여섯의 한창 젊은 나이인 그녀는 모델로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권 민경이었다. 많은 남자들의 관심도 무시하던 그녀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녀가 관심을 보이지만 그는 항상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녀는 그럴수록 반응이 없는 그에게서 신비로운 남성미를 느꼈다. 그는 마치 들판을 질주할 사자가 포효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민경의 관심과는 다르게 그는 시선도 주지 않으려했다. 어느 남자에게도 무시를 당해보지 않은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에게 무관심한 그를 굴복시키고 싶었다. 스케줄이 없어 집안에 머무는 날이면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실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그녀는 다른 남자와 다른 그의 남성미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 그녀가 그에게 집착하는 이유였다.
“내 말 안 들려? 귀먹은 것도 아니고.”
“.........!”
“미스터 서! 벙어리도 아니고......?”
“.........!”
민경이 한발자국 다가서면서 엎드려 있는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꾹 찔렀다. 그녀는 흠칫했다. 손가락에 느끼는 그의 근육이 반사적으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젊은 남자의 혈기였다. 왠지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함에 그녀는 다시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때서야 그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그녀를 돌아봤다.
“..........!”
청년의 이름은 서 진우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스터 서라고 불렀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다. 다만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민경은 햇살을 등지고 있는 그의 눈빛에서 야성미 넘치는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리고 그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가 반짝였다.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본 그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가 필요한데.......?”
“그냥, 나, 심심하잖아. 호호~! 내가 두려운거야?”
그는 표정 변화도 없이 돌부처처럼 묵묵히 서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민경이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땀방울이 배어 있는 남자의 건장한 가슴! 그녀는 그의 가슴에 늘어트리고 있는 목걸이 팬던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려다봤다. 날개달린 천사가 조각된 작은 팬던트였다. 그녀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
진우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재미교포에게 입양되어 자랐다, 일 년 전에 고국을 찾아 온 그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무슨 연유로 사망했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그녀가 쳐다보고 있는 목걸이로 부모의 체취를 느낄 뿐이었다. 지금까지 목걸이를 몸에서 떼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없었던 그의 양부모는 미국 정보부 직원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다가 그를 양자로 입양시켰다. 그의 양부는 가라데 와 합기도의 정통 무술을 섭렵한 교관이기도 했다. 그는 양부에게 무술을 전수받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항상 혼자라는 고독함에 젖었다.
그는 언제나 악몽에 시달렸다. 치솟는 불길, 피투성이로 죽어가던 부모의 처참한 모습, 불길에 휩싸인 바닥에서 집어 들었던 손목시계, 그가 안고 있던 포대기속의 아기 울음소리가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양부에게 허락을 받고 시달렸던 악몽의 흔적을 찾아 귀국한 것이다.
미국을 떠나기 전, 그는 양부로부터 생부가 남겼다는 재산 목록을 받았다. 양부가 그동안 관리하고 있던 은행예금과 증권, 그리고 부동산들이었다. 그는 서울 주택과 인천 별장들을 찾아 다녔으나 부모가 사망한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목걸이와 함께 간직하고 있었던 손목시계뿐이었다. 손목시계는 스위스 제품으로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었다. 시계 뚜껑에는 ‘신화 창립 기념’ 이라는 문구만이 아로새겨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의 새겨진 단서만 갖고 신화라는 명칭의 기업을 찾아 다녔다. 그가 수소문해서 찾아 낸 회사는 신화그룹으로 변신한 기업이었다. 신화는 사업초기에 운영하던 프로모터 사업을 모토로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 브랜드의 의상 제조업, 마트체인사업, 해외 건설사업, 그리고 해운업 등 폭넓은 자회사 등을 운영하는 그룹이 되어 있었다. 그는 신화의 회장이 권 태호이고 그의 동생 권 종호가 대표이사로서 형제간인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밀착하여 그들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들이 가는 곳을 항상 그림자처럼 쫓아 다녔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을 가는 그들 가족을 쫓아 여객선에 올랐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좌초되고 말았다. 그는 지금까지 노력을 헛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사망한 부모에 대한 원인을 파헤치는 것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진우는 자신의 생명보다 그들 가족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파도에 휩쓸리는 악전고투 끝에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그들 가족을 구출하여 구조선에 태울 수가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그를 신화의 직원으로 채용했다. 불의의 사고로 그는 신화 그룹에 침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그는 그들이 해운업과 화물운송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마약을 밀수해서 국내에 유포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숲속 안쪽의 산기슭에 외진 곳에 있는 별장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별장의 주인은 저명한 사업가 송 민욱이었다. 서울에 주택을 갖고 있는 그는 가족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인천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홀로 남은 노모를 모시고 이틀째 별장에 묶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던 노모가 방에 들어가고, 민욱의 아내 진숙은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늦게 결혼한 그녀는 네 살 되는 아들, 그리고 두 살의 어리 딸을 낳게 되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는 딸의 얼굴에 귀를 가까이 하고 잠든 것을 확인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그녀는 딸의 머리를 쓸어 올려주고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잠옷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서 신문을 펴들고 있었다.
“당신 안주무시고......!?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기는. 여기 내려와 있으니 편하네.”
“어서 주무세요. 내일 올라가려면 일찍 주무셔야지요.”
“음.......! 이제 자야지.”
민욱은 양팔을 벌려 크게 기지개를 하면서 일어섰다. 진숙은 남편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잠옷으로 갈아입는 그녀는 침대위에 누워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을 의식했다. 화장대 거울을 들여다 본 그녀는 침대로 들어가 남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어제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을 거부했기에 그녀는 아무래도 그냥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민욱이 아내를 향해 누웠다. 그리고 슬그머니 껴안았다. 항상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의 애정에 그녀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부관계를 해도 남편은 그녀의 감정을 배려하는 섬세함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두 아이를 낳고나니 민감했던 성감이 둔해지는 것만 같아서 이따금 남편의 요구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보~! 아직 아이들이 깊은 잠이 안 들었어요.”
“애들은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데 뭘.”
“그래도요. 요즘 어머니가 귀가 밝아지셔서, 신경이 쓰여요.”
“오늘은 당신 사랑하고 싶은데.”
진숙은 젖가슴을 주무르는 남편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마지못해 그녀는 입술을 찾는 남편의 가슴에 안겼다. 입술이 포개지고 키스를 하면서 혀와 혀가 엉키니 그녀의 육체는 의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젖꼭지가 남편의 손가락 사이에 휘말리고 그녀는 남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며 저절로 옅은 신음을 흘렸다.
“여보~! 음.......”
어느새 발가벗은 남편이 그녀의 잠옷 가운을 벗겨내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이 되어 부둥켜안았다. 아릿한 쾌감에 젖어드는 그녀는 젖가슴을 파고드는 남편의 머리를 보듬어 안았다. 젖꼭지가 남편의 입속에 빨려 들어가고 그녀는 허벅지를 벌렸다. 호흡이 거칠어진 남편의 남성이 몸속으로 치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허리를 들어올렸다.
“사, 사랑해요.........!”
“음~!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야.......!”
진숙은 몸속깊이 들어오는 불덩이에 온 몸의 신경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민욱은 아내의 몸속을 헤집는 페니스를 규칙적으로 진퇴시켰다. 그의 손길에 길들여진 아내의 육체가 허우적거릴수록 그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엑스터시를 느끼는 아내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허리를 들썩거렸다.
“읍, 읍, 여보~!”
“하 아.........!”
그때였다. 벼락같이 침실 방문이 왈칵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창 절정을 향해 치솟던 민욱은 기겁을 하고 행위를 멈추었다. 침실 문으로 두 그림자가 튀어 들어왔다. 그의 가슴아래 갇혀 숨을 몰아쉬던 진숙은 돌연한 상황에 온 몸이 오싹해지는 동시에 허벅지를 조였다. 몸속을 채우고 남성이 긴장하여 꿈틀거림을 의식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헉~!”
“하 앗~! 여, 여보........!”
“어이쿠~!”
진숙은 자신의 알몸위에 체중을 실고 있던 남편이 방구석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스크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두 명의 괴한이 침실로 뛰어든 것이었다. 점퍼를 걸친 사내의 발길에 걷어 채인 남편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또 다른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서더니 대뜸 머리채를 잡고 내동댕이쳤다.
“이것들이 초저녁부터 벌거벗고........!”
“하 윽~! 왜, 왜이래요. 누, 누구........?”
“조용해!”
명령하듯이 들리는 괴한의 목소리! 발가벗은 알몸으로 방바닥에 쓰러진 진숙은 정신이 아득했다. 화장대에 부딪친 그녀의 입술이 터져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공포에 휘말린 그녀는 열려있는 침실 문밖으로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그러나 이내 등산복 차림의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그녀는 거실에 피를 흘리고 쓸어져 있는 시어머니를 발견하고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등을 파고드는 아픔과 함께 그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 윽~!”
등산복 남자는 단발마의 비명소리를 흘리며 쓰러진 진숙을 내려다봤다. 의식을 잃고 쓸어져 있는 그녀의 등에서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농익은 둔부를 들어내 놓은 채 엎드려 있는 그녀를 등산화를 신은 발로 밀어 똑바로 눕혔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들썩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는 그녀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점퍼 차림의 사내가 민욱의 목을 구둣발로 밟고 있었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민욱의 얼굴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핏줄이 돋아난 눈동자로 등산복 사내가 들어오는 침실 밖을 쳐다봤다. 선혈이 낭자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내의 모습에 그의 눈빛이 번쩍였다.
“누구야! 네 놈들......! 누, 누구냐고?”
“조용해! 그걸 물을 시간이 없어. 계약서 어디 있어?”
“무, 무슨 계약.....!?”
“말할 시간 없다니까. 잘 알 텐데!?”
“무, 무슨 말이야? 개만도 못한 놈들.......”
“계약서 내놓으면 조용히 사라질게.”
민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마트 체인점을 경영하는 그는 프로모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외국의 프로선수들을 불러 들여 여러 번 흥행에 성공했었다. 그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체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여파를 이용하는 획기적인 계획을 마련했다,
그가 막대한 예산을 지출한 사업이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세계정상의 프로선수들을 불러들이고 유명 연예인들까지 출연하는 대대적인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대기업에서도 공연 주체를 탐내고 있는 사업이었다. 그들이 찾는 것이 프로선수들과 계약한 서류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결코 넘겨줄 수는 없었다.
“뭔 말인지 모르지만, 나한테 그런 건 없어. 잘못알고 온 거야.”
“이 양반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정말, 모르는구먼.”
민욱은 그들이 어떤 경쟁 업체의 하수인인지 모르지만, 계약서를 절대로 넘겨줄 수는 없었다. 다만 식구들이 걱정되어 두려웠다. 점퍼의 사내가 그의 목을 밟은 구둣발에 힘을 주고 눌렀다. 고통스러운 그는 숨을 쉴 수조차 없어 컥컥거렸다. 점퍼의 사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의미 있는 눈빛으로 등산복 차림의 사내를 바라봤다. 등산복 차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형님! 계약서 필요 없잖아요? 그냥 처리해버리면 우리에게 넘어 올 것을.......”
“그런가.......!?”
등산복 사내가 대답도 안하고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비수로 지체 없이 민욱의 가슴을 찔렀다.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힌 민욱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비수를 뽑아든 사내는 고개를 떨어트리는 민욱을 발로 걷어차고 돌아섰다. 그들은 곧 바로 현관문을 나섰다.
어둠속에는 그들이 몰고 온 트럭이 괴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이 트럭에서 통을 꺼내들고 집 주위에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했다. 등산복 사내가 휘발유 통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민욱이 쓰러져 있는 침실과 거실에 휘발유를 뿌렸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진숙과 노모를 밟고 지나간 그가 돌아서다가 놀라서 멈추어 섰다. 빠끔히 열린 건넌방 문 사이에 하얀 물체가 들어나 보였다.
“헉~! 뭐야.......!?”
“왜, 그래!?”
점퍼 사내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둠속에 하얀 잠옷을 걸친 남자아이가 포대기에 담긴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유령처럼 서있었다. 등산복 사내가 한발 다가서자, 남자아이가 뒷걸음쳐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들의 출연에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등산복 차림이 말했다.
“어떡할 가요? 애들을........!”
“.....음! 시간도 없고 애들이 뭘 알겠어. 어차피 불태울 거고,......”
그들은 부리나케 집안을 돌아다니며 휘발유를 뿌렸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켜서 집어 던졌다. 휘발유에 젖은 바닥이 삽시간에 불꽃을 일으켰다. 불길에 창문 커튼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씨발.........."
서둘러 나가던 등산복 사내가 쓰러져 있는 진숙의 시신에 걸려 넘어졌다. 밖으로 뛰쳐나간 그들은 트럭에 올라탔다.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그들의 트럭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어린 소년이 포대기를 안고 집밖으로 나왔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타오르는 불길에 들어난 어린 소년의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음소리도 없이 흐느끼는 소년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내려다봤다. 그들이 떨어트린 손목시계였다.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진 마을 쪽에서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목소리! 치솟는 불길을 보고 몰려오는 마을사람들이었다. 어둠속의 별장 밖으로 나온 소년의 눈동자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대기에 쌓여 어린 소년의 가슴에 안겨있는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소년은 아기를 토닥거리지만 울음소리가 밤공기 속에 펴졌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전소되어 버린 사건 현장에서 사건의 단서나 범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올림픽으로 인해 인력도 부족한 경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어린 소년과 아기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인근 고아원에 맡겨졌다.
소년은 언어를 잃어버린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소년은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에게 입양되어 고아원을 떠났고, 혼자 남았던 아기는 젊은 부부에게 국내 입양되었다. 비참했던 별장은 화재로 전소되어 흔적만 남았고, 마을 사람들이 애틋하게 생각했던 어린아이들도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시간은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람들이지 시간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강을 배로 건널 때, 움직이는 것은 물이며, 우리가 탄 배는 아닌듯하다.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시간은 모든 욕망을 잠식하고 정복한다. 시간은 소중히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포착하는 자의 벗이며, 때가 아닌데 너무 서두르는 자에겐 최대의 적이라고 한다.
서울 아시안 게임이 지나고 이 년 후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이십여 년이 지나고 올림픽에 대한 열광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처참했던 사건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없다.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한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처리해 버리면 그것으로서 우리는 미래도 포기해 버리는 것이 된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의 취임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서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 했다는 수행원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국제적인 망신이라면서 사실 규명으로 처벌해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피해자인 여직원을 비난하며 수행원을 두둔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푸르게 변하고 여인네들은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침저녁 날씨와 태양이 떠오른 낮과 온도 차이가 많은 계절이었다. 인천 논현동에는 넓은 평수의 정원에 둘러싸인 고급 저택들로 주택가를 이루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사치를 들어내 보이는 전원주택의 건축 양식도 다양하고 화려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태양이 사라지면 어김없이 밤이 찾아온다. 가로등만 졸고 있는 도로변에 유럽풍의 대리석 저택이 가로등 불빛에 그림처럼 들어나 보였다. 저택 이층의 넓은 방은 별다른 인테리어도 없었다. 어둠속에 놓인 침대위에는 상체를 벗은 젊은 청년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근육이 들어나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듯이 어깨를 흠칫하였다.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참한 비명소리, 거실 바닥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가족들! 치솟는 불길! 악마 같은 괴한의 눈빛! 아기가 잠들어 있는 포대기를 안고 어둠속으로 나온 어린 소년은 절규한다.
“안 돼~~!”
부들부들 떨던 그는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적막과 어둠만이 깃든 방이었다. 수시로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처참함이었다. 연결 고리도 없는 토막 난 시간속의 악몽들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베어났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힘없이 쓰러져 눈을 감았다. 옅은 신음을 흘리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둠속으로 또 다른 영상이 떠오른 것이었다.
파도를 가르고 항해하는 여객선! 청년은 선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뛰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여객선 선주이며 신화 그룹의 총수를 은밀하게 뒤쫓고 있었다. 신화는 서울 올림픽 이후에 해운업과 해외 건설사업 등 방계회사를 거닌 그룹으로 급성장한 기업이었다.
커피숍 안에서 주위를 살피던 청년은 당황했다. 그가 추적하고 있는 인물이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선상으로 오른 그는 네 명의 가족들을 발견하고 얼핏 몸을 숨겼다. 간편한 여행복을 걸친 남자와 여자 각각 두 명이었다. 주위를 살핀 청년이 슬그머니 그들 곁으로 다가가서 등을 돌리고 섰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희. 아니.....! 형수는 왜 안 왔어요?”
“진 이사가 요양원에 들어가고, 기분이 안 좋은 게지.”
“형수한테 물류센터 부지 양도계약서 도장은 받았어요?”
“아니,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군. 너도 알잖아. 형수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갖고 있는 진 이사에게 받은 양도 각서, 그것만으로도 되지 않아요?”
“안 돼. 두 사람 공동 소유로 돼 있어.”
“문제군요. 물류창고와 화물주차장 건립 부지가 마땅치 않은데........”
그들 중 나이든 남자가 청년이 은밀히 뒤쫓고 있는 신화 그룹의 권 태호 회장이었다.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남자가 그의 동생이고 대표이사 권 종호였다. 그들의 시선이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여자들을 향했다. 그들을 따라 청년이 그녀들을 힐끔 곁눈질했다. 그들의 가족이었다. 그들에 비해 여자들은 무척 나이가 어려 보였다. 동생을 못마땅하다는 빤히 쳐다보는 권 회장의 눈빛!
“넌 여자들도 많은데, 지아와 꼭 결혼을 했어야 했니? 하필이면 내가 딸처럼 키운 애를.........”
“하하~! 나도 후회해요.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벙어리처럼 말도 안하고........”
“그러기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나이 차이도 많고......”
“형님과 형수님은 더 나이 차이가 많으면서.........”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진 이사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니까. 반대하던 진 이사도 욕심이 많아서 결국 내 요구를 받아 들였고.........”
“그나저나 민경이는 시집 안 보내요?”
“모르겠다. 활량처럼 제 멋대로 이니. 아버님은 뒤늦게 뭣 하러 제를 집안으로 들였는지 몰라. 어머니도 반대하던 첩의 자식을........”
대화를 중단한 권 회장이 여동생 민경을 주시했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그녀를 손짓해서 불렀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객실을 향하는 입구로 갔다. 머뭇거리던 종호가 자신의 아내, 지아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청년은 어느 쪽을 선택해서 쫓아갈지 망설였다. 종호가 불쑥 아내의 허리를 감쌌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미간을 찌푸리는 종호가 화를 벌컥 냈다.
“이게~! 여기까지 와서도 쌀쌀 맞게 굴어! 넌, 내 아내가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돼. 평생 고아로 천대 받고 살 것이!”
“더러운 손 치워. 난, 아버지, 아니 권 회장님 딸로 만족했어.”
“정말 살기 싫어!? 너, 따위 하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도 있어.”
포악스럽게 변하는 권 종호의 표정! 그가 그녀의 허리를 다시 안으려고 했다. 여전히 그녀가 남편의 손을 야무지게 뿌리쳤다. 동시에 그가 손을 휘둘렀다. 뺨을 얻어맞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우악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객실로 향하는 계단 입구로 향했다.
마지못해 끌려가는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바라보고 있던 청년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혈색이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감정이 드러나 보이는 것만 같았다.
청년은 여객선 안에서 그녀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담한 체구에 잡티하나 없이 백옥같이 하얀 피부, 그리고 이마가 튀어나온 그녀는 마치 혼혈아 같았다. 짧은 커트 머리에 보조개가 드리운 그녀는 인형처럼 매혹적이었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혀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잠시 그녀의 간절한 표정을 떠 올리던 청년은 부리나케 권 종호가 사라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객실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객실 복도를 가고 있는 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객실로 끌려 들어가는 그녀를 더 이상 쫓을 수 없었다.
“아! 안되는데.......”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청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벽을 치면서 눈을 떴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눈을 감은 그는 또 다른 토막의 악몽 속에 빠져들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청년의 시야에 권 회장과 그의 여동생 민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미간을 찌푸린 권 회장이 여동생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지아를 끌고 선실로 들어가는 권 종호를 바라본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권 회장과 민경이 사라지고 권 종호를 뒤쫓던 청년은 얼어붙은 듯이 서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발길을 돌리려다가 다시 몸을 숨겼다. 종호가 들어갔던 객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머리와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종호의 아내 지아가 뛰쳐나왔다.
복도 모서리를 돌아가던 그녀가 청년을 힐끔 쳐다보면서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동시에 열린 객실 출입문 입구에 상체를 벗은 종호가 나와서 고함을 질렀다.
“거기 안 서!? 여기서 어디로 도망치려고......!”
“..........”
순간 청년은 권 종호가 그녀를 난폭하게 다루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부리나케 그녀가 사라진 선상으로 올라갔다. 몇 분 사이에 선상이 어둡게 변해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힌 어둠속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높은 파도가 일어나 갑판 위까지 바닷물을 튕기고 있었다. 그런데 구석구석 찾아봐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당혹스러웠다. 선상 한쪽의 로프에 감겨있는 구명 보트위에 있는 그녀가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그녀의 위태로운 모습! 아무래도 그녀가 바다로 뛰어내릴 자세이기에 청년은 몸을 날렸다.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로 여객선이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뒤뚱거리며 다가간 그는 균형을 잃고 상체를 숙이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짧게 커트한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청년은 좌절감에 젖은 그녀의 행동을 눈빛으로 제지한 것이었다. 그는 빤히 쳐다보는 그녀를 당겨 끌어 내렸다. 그리고 어떤 위험한 행동을 할지 염려되는 그녀를 벽에 등지게 하고 어깨를 붙잡았다.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절망감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는 갑자기 그녀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감 같은 감정이 솟구쳤다. 그 감정은 동정이 아니라 악몽 속에 자신과 같다는 동질감이었다.
이슬을 머금은 그녀의 까만 눈망울과 시선을 마주한 청년의 눈빛이 정지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앞에 있는 그녀의 입술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잇닿고 당황한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러나 그녀는 청년을 거부하지 않고 천천히 짙고 긴 속눈썹을 내리감았다. 키스를 하던 그들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
“..........!?”
벼락 치는 굉음과 함께 여객선이 몹시 흔들린 것이었다. 당황한 그들은 서로를 마주 쳐다보며 뒤뚱거리다가 화물칸 벽에 부딪쳐 뒹굴었다. 파도가 여객선 보다 높이 몰아쳐서 삽시간에 선상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다시 굉음이 들리고 여객선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선상에 있던 사람들이 짐짝처럼 뒹굴었다. 청년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순식간에 청년과 그녀는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온 몸이 물에 젖은 상태가 되었다. 무엇인가 우지끈하며 부러지는 소리들이 들리고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잇달았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청년은 황급히 그녀를 구명보트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 믿을 수 있어요?”
“..........!”
“그럼 여기서 기다리세요. 식구들 데리고 올 때까지. 내 말, 알겠어요?”
“..........!”
머리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자신의 목표물인 그들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전쟁터 같은 객실로 뛰어간 청년은 사색이 되어 있는 권 회장과 종호, 그리고 민경을 발견했다. 구내방송은 모두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방송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긴박한 위험을 느낀 청년은 다른 말이 필요 없이 그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다.
청년은 그들을 데리고 선상으로 올라가 구명보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공포에 휩싸인 지아의 눈동자가 그를 향해있었다. 그때 멀리서 해경 경비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객선은 이미 반쯤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여객선에 오른 해경들은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며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청년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귄 회장 가족들을 구명보트에 태웠다. 뒤늦게 구조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청년이 뒤돌아보니 침수되는 여객선의 선미만 몰아치는 파도위에 보였다. 귄 회장 가족을 구조선에 태운 청년은 갑자기 꼼짝할 수 없어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허벅지 근육이 뭉쳐서 경련이 일어난 것이었다.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구조선에 오르던 청년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추락하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는 죽음의 공포에 휘말렸다.
“아 악~!”
외마디를 지르며 눈을 뜬 청년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그의 시야에는 온통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는 비로소 반복되는 과거의 고통을 떨쳐 버릴 수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따금 또 다른 악몽 속에서 삶과 죽음의 공간을 넘나들고 있었다.
대리석 이층저택의 정원 한쪽 차고에는 검은색 외제 차량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렸다. 저택 앞 테라스 그늘의 흔들리는 해먹위에는 민소매의 티셔츠와 허벅지가 들어나는 짧은 핫팬츠를 걸친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들고 있는 주스를 빨대로 빨아 먹으면서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은 정원 한구석의 차고 앞이었다.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청년이 세차를 하고 있었다. 균형 잡힌 체격의 그가 움직일 때마다 햇볕에 그을린 팔뚝의 근육이 들어나 보였다. 그녀는 요즘 왠지 서구적인 분위기와 카리스마를 느끼는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을 향한 그녀의 시선을 모르는지 호스를 집어 들었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간 물줄기가 퍼져 무지개를 떠올리며 승용차의 거품을 씻어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주먹으로 문지른 그는 걸치고 있던 민소매 러닝셔츠를 벗었다. 보기 좋은 근육이 들어나고 그의 등줄기에 맺힌 땀방울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는 별로 힘든 기색이 없이 승용차의 물기를 닦아내고 광택 약을 문질렀다.
청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여인이 해먹위에서 벗어났다. 들고 있던 주스 캔을 던지고 그녀는 마치 런웨이의 모델처럼 걸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빤히 보고 있어도 그는 무표정하게 세차에만 열중했다. 한손으로 턱을 받쳐 든 그녀는 유혹하는 몸짓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스터 서! 내가 안보여?”
“.........”
“내가 안보이냐고!?”
“.........”
그녀는 무시당하는 것만 같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스물여섯의 한창 젊은 나이인 그녀는 모델로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권 민경이었다. 많은 남자들의 관심도 무시하던 그녀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녀가 관심을 보이지만 그는 항상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녀는 그럴수록 반응이 없는 그에게서 신비로운 남성미를 느꼈다. 그는 마치 들판을 질주할 사자가 포효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민경의 관심과는 다르게 그는 시선도 주지 않으려했다. 어느 남자에게도 무시를 당해보지 않은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에게 무관심한 그를 굴복시키고 싶었다. 스케줄이 없어 집안에 머무는 날이면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실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그녀는 다른 남자와 다른 그의 남성미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 그녀가 그에게 집착하는 이유였다.
“내 말 안 들려? 귀먹은 것도 아니고.”
“.........!”
“미스터 서! 벙어리도 아니고......?”
“.........!”
민경이 한발자국 다가서면서 엎드려 있는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꾹 찔렀다. 그녀는 흠칫했다. 손가락에 느끼는 그의 근육이 반사적으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젊은 남자의 혈기였다. 왠지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함에 그녀는 다시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때서야 그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그녀를 돌아봤다.
“..........!”
청년의 이름은 서 진우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스터 서라고 불렀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다. 다만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민경은 햇살을 등지고 있는 그의 눈빛에서 야성미 넘치는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리고 그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가 반짝였다.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본 그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가 필요한데.......?”
“그냥, 나, 심심하잖아. 호호~! 내가 두려운거야?”
그는 표정 변화도 없이 돌부처처럼 묵묵히 서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민경이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땀방울이 배어 있는 남자의 건장한 가슴! 그녀는 그의 가슴에 늘어트리고 있는 목걸이 팬던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려다봤다. 날개달린 천사가 조각된 작은 팬던트였다. 그녀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
진우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재미교포에게 입양되어 자랐다, 일 년 전에 고국을 찾아 온 그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무슨 연유로 사망했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그녀가 쳐다보고 있는 목걸이로 부모의 체취를 느낄 뿐이었다. 지금까지 목걸이를 몸에서 떼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없었던 그의 양부모는 미국 정보부 직원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다가 그를 양자로 입양시켰다. 그의 양부는 가라데 와 합기도의 정통 무술을 섭렵한 교관이기도 했다. 그는 양부에게 무술을 전수받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항상 혼자라는 고독함에 젖었다.
그는 언제나 악몽에 시달렸다. 치솟는 불길, 피투성이로 죽어가던 부모의 처참한 모습, 불길에 휩싸인 바닥에서 집어 들었던 손목시계, 그가 안고 있던 포대기속의 아기 울음소리가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양부에게 허락을 받고 시달렸던 악몽의 흔적을 찾아 귀국한 것이다.
미국을 떠나기 전, 그는 양부로부터 생부가 남겼다는 재산 목록을 받았다. 양부가 그동안 관리하고 있던 은행예금과 증권, 그리고 부동산들이었다. 그는 서울 주택과 인천 별장들을 찾아 다녔으나 부모가 사망한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목걸이와 함께 간직하고 있었던 손목시계뿐이었다. 손목시계는 스위스 제품으로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었다. 시계 뚜껑에는 ‘신화 창립 기념’ 이라는 문구만이 아로새겨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의 새겨진 단서만 갖고 신화라는 명칭의 기업을 찾아 다녔다. 그가 수소문해서 찾아 낸 회사는 신화그룹으로 변신한 기업이었다. 신화는 사업초기에 운영하던 프로모터 사업을 모토로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 브랜드의 의상 제조업, 마트체인사업, 해외 건설사업, 그리고 해운업 등 폭넓은 자회사 등을 운영하는 그룹이 되어 있었다. 그는 신화의 회장이 권 태호이고 그의 동생 권 종호가 대표이사로서 형제간인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밀착하여 그들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들이 가는 곳을 항상 그림자처럼 쫓아 다녔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을 가는 그들 가족을 쫓아 여객선에 올랐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좌초되고 말았다. 그는 지금까지 노력을 헛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사망한 부모에 대한 원인을 파헤치는 것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진우는 자신의 생명보다 그들 가족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파도에 휩쓸리는 악전고투 끝에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그들 가족을 구출하여 구조선에 태울 수가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그를 신화의 직원으로 채용했다. 불의의 사고로 그는 신화 그룹에 침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그는 그들이 해운업과 화물운송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마약을 밀수해서 국내에 유포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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