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야, 준수야. 그래서 너는 내일 어느 학교로 갈거야?"
"글쎄... 생각 안해봤는데..."
내일은 학교 수업을 쉬는 대신 자신이 희망하는, 혹은 한번쯤 구경해보고 싶은 대학을 방문해서 구경하는 날이다. 고등학교 3학년, 즉 수험생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자신의 목표를 확실히 정하라는 의미에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미리미리 대학을 방문해서 캠퍼스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였다. 준수의 친구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보고 싶었던 학교를 정한다거나, 아니면 자신이 친한 친구와 같이 가기위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준수네 반 몇몇 여학생들도 준수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정작 준수는 자신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듯 그들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어디로 가야되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준수는 학교 수업이 끝날때까지도 자신이 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못했다.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향하는 곳이 정해지면 내일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는 일찍 귀가를 했다. 내일 일도 있고 해서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던 것이였다.
"대학인가..."
준수의 성적이 아무리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준수에게도 입시라는 것은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물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별로 고민거리가 아니였다. 그가 고민하는것은 오로지 자신의 진로 문제, 능력이 뛰어나다보니 하고싶은 것도 많고, 그 중에서 뭘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일지에 대해서 준수는 항상 고민이였다.
"에이... 고민한다고 달라지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바람을 쐬며 준수는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그의 집 앞 벤치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평범한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장래에 대한 고민은 덜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의 여자들... 물론 다른 사람이 그걸 들으면 행복한 고민에 배가 불렀다며 부러움의 시선을 던질게 분명했지만, 어쨋든 언젠가는 한 여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준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여자들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불행을 최대한 줄이며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참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해지기에 앞서 그 선택에 걸림돌이 없는 것도 아니였고... 그가 그 장애물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어머, 주인님... 집에 안들어가시고 여기서 뭐하세요?"
"!! 선생님이야말로 왜 여기에... 그나저나 밖에서는 좀 그 호칭은 좀..."
"후훗... 아무도 없는걸요 뭘... 바람쐬고 계셨나봐요."
".... 조금 고민좀..."
"잠깐 옆에 앉아도 되죠?"
준수에게 말을 건 것은 세진이였다. 세진은 준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옆에 앉았다. 예전같았으면 준수의 의사를 묻기도 전에 그의 팔짱을 낀다거나 했겠지만 최근 여러 일들이 그녀를 바꾼것인지, 그녀는 준수의 옆에 조신히 앉아있을뿐이였다. 준수는 자신이 생각에 잠긴 것을 세진이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알아챈듯 그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을 하려고 해도, 막상 자신의 옆에 세진이 있다는 사실때문에 그는 더 이상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왜 세진이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진과 이렇게 자신이 앉아있는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상한 오해를 할것만 같았다.
"... 어쨋든 저희 집에 오려고 여기에 온거죠? 들어가요."
"후훗... 주인님. 어떤 생각 하신거에요?"
"그냥 앞으로에 대해...서 랄까나."
"에이... 혹시라도 주인님이 제 생각을 하셨던거였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럴리가 없잖아요."
세진도 물론 기대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였지만, 딱잘라 말하는 준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준수도 무심코 자신이 너무 강하게 세진의 말에 부정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고, 그렇다고 사과를 하기에도 애매해서 머리를 긁적일 뿐이였다. 하지만 준수는 자신이 세진과 함께 있으면서 머리를 긁적인다거나, 세진이 뭔기 삐친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을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 아파트에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몇 있는걸로 알고있기에, 혹시라도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게되면 이상한 오해를 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해가 아니라 진실에 가깝겠지만 어쨋든 준수나 세진, 두 사람에게 모두 그런 소문이 퍼져서 좋을게 없다는 것이 사실이니까. 게다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세진과 아예 연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였으니...
"그나저나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면 아마 선생님... 이모한테 한 소리 들을수도 있을텐데..."
"아, 그거요? 후훗...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주인님의 몸종으로써 온게 아니라 말 그대로 주인님의 담임선생님으로써 온거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세진은 준수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금새 기분이 풀린듯했다. 세진은 준수의 집 안에 들어갈때까지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말할 생각이 없는듯했고, 그에 준수 또한 세진에게 묻기를 포기하고는 그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할 뿐이였다.
"왔어 준수야? 어머... 선생님도... 오늘은 어쩐일로..."
"오늘은 준수의 담임선생님으로써 말씀드릴게 있어서 왔어요.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네... 일단 들어오세요."
다른때같으면 세진이 영희의 집을 들어올때면, 집에서 할 일을 생각하며 잔뜩 상기된채로 들어왔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 특유의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일때의 세진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교사, 지적이면서도 어른스러운, 그리고 보는것만으로도 저절로 존경심이 들게끔 하는 오라를 풍겼다. 아마 세진을 대하는 다른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은 이러한 세진의 모습이 익숙하겠지만, 준수에게는 이러한 세진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준수는 세진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영희는 그런 세진에게서 아무런 이상한 것도 느끼지 않는다는듯,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지, 아니면 영희와 준수의 연륜의 차이때문에 그런건지 준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어쨋든 준수는 세진의 옆에 굉장히 어색하게 앉아있었고, 그 옆에서 세진은 영희를 마주보며 영희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그녀에게 진지한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준수도 이제 2학년이고 내년이면 3학년이잖아요. 제가보기에 준수 성적이나, 여태까지 준수의 시험 결과나, 준수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부분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봤을때..."
세진은 말 그대로 준수의 담임선생으로써 영희에게 준수의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 따지고보면 왜 많은 학생들중에 하필이면 준수의 집에 가정방문을 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세진에게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쨋든 지금의 세진은 진지했고, 그런 세진을 대하는 영희 또한 진지해서 준수가 뭐라고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세진이 준수에 대해 이것저것 짚어대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 날카로웠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남을 평가하는데에는 익숙하지만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데에는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준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형제도 없고 가장 친구인 수혁도 없는 요즘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없는 것이 사실이였다. 주변 친구들이래봤자 친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친한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해서 은혜를 포함한 또래 여자들이 자신을 평가해주는 것도 아니였다. 그리고 영희나 수정, 세진 또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준수는 신기한 기분으로 세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여자도 아니고, 평상시에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세진에게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들어서 더 신기한 것일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을, 세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것 같은 영희가 중간중간에 말을 하는 것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준수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내도 있었다는 것이였다. 준수의 학교생활을 알리가 없었던 영희가 그런 것들을 예측하다니... 준수는 겉으로는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여자들이 놀라운 것을 넘어서, 거의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세진이 방문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옆집의 수정과 은혜 또한 들이닥쳐서 여자들끼리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준수는 예전에도 가끔가다가 이런 광경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의 여자들... 영희, 수정, 세진, 은혜가 모여있는 장면... 물론 그 상상속에서의 준수는 여자들을 마음껏 부리는 그런 왕같은 존재였다. 아니, 여자들에게 왕처럼 모셔지는 것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던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실제로 모이니 그 상상과는 정반대... 준수는 감히 여자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굉장히 진지하게, 그러나 빠르게 변해가는 대화주제에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었고, 그리고 가끔가다가는 끼어들지 않는것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준수의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럽게도 그녀들의 대화주제는 다시 세진이 방문을 한 목적으로 돌아왔다. 이 얘기는 은혜에게도 아주 무관한 얘기만은 아닌지라 그녀들은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것 같았다. 그러던 중.. 대화 내내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던 세진의 입에서 드디어 진짜 계획에 관련된듯한 말이 나왔다.
"어쨋든 그래서말인데... 내일 날도 날이니까 저희 다같이 외출이라도 하는게 어떨지 하는데..."
"내일....이요...?"
"음... 그렇네... 암코양이. 너 치고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선생님. 진짜진짜 괜찮은 생각인거같아요!"
세진의 제안에 나머지 여자들은 준수와 외출을 한다는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설레이고 있었다. 저번에 영희가 준수와의 관계를 계속하고싶으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라고 말한 이후로 그녀들이 준수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날은 거의 주말밖에 없다시피했다. 그것도 영희의 집에서... 뭐 아무리 준수를 만나는데에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였다. 네 여자들 모두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뿐, 준수와 밖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 그걸 바라는 것은 그녀들 모두 같은 생각이였다. 하지만 모두들 상상속에서 들떠있었을때, 냉정히 그녀들이 나들이를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 것은 영희였다.
"잠깐... 나도 자기들이랑 같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긴 하지만 그게 내일은 아닌거같아."
"왜요 언니!"
"잘 들어봐. 어쨋든 내일은 준수가 가고싶은 대학을 먼저 가본다는거에 의미가 있는거잖아. 놀러가는게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잘 들어봐. 먼저 선생님... 내일 준수 친구들도 대학교에 많이 갈텐데, 만약 친구들이 준수랑 선생님이 같이 있는거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좋아보이진 않을거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그건 잘 숨어서 다니면..."
"억지잖아요 그건. 아무튼 선생님은 안되요. 그리고 은혜... 너도 안되. 저저번주에 나랑 약속한거 아직까지도 안했지? 우리 전에 열심히 안하면 어떻게 하기로 했더라..."
"아... 아줌마! 그건 그거고 이건..."
"응? 그거랑 이거랑 뭐가 다른데? 어쨋든 안! 되!"
"아줌마! 아줌마 치사해요. 아줌마는 매일매일 밤에 준수랑 이것저것 다 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그러는거에요! 내일도 또 아줌마만 준수랑 같이 나가서 데이트하려고 그러는거죠?"
"그렇게보이니? ... 아니야... 내일은 나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러니까... 수정씨. 부탁해. 어쨋든 수정씨는 대학생이고... 수정씨정도면 준수랑 같이 다녀도 쓸데없는 오해사는 일은 없을거고..."
"호호호... 걱정하지마세요 언니. 내일 준수 견학은 확실히 시켜드릴테니까요. 아~~ 이게 얼마만의 준수랑 단 둘이 데이트인지~"
수정만 굉장히 즐거운 표정으로 내일을 준비해야겠다며 먼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세진, 그리고 특히 은혜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였지만 영희도 스스로 내일 준수와의 데이트를 포기해버린 시점에서 그녀들이 불만을 표해봤자 별로 효과가 없을것 같았다. 더 속상한것은 영희의 말이 아예 억지인거도 아니였다는 점이였다. 그녀들의 속마음이라도 알아차린듯 영희는 세진과 은혜를 끌어안으며 다음 기회에는 꼭 네 사람이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말을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을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준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저... 저기요...?"
"자, 두사람... 내일 수정씨만 좋은일 시키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지?"
"후훗... 그럼요 언니."
"준수야, 내일 수정언니한테 허튼짓 못하게 해줄게~"
준수가 뒷걸음질쳐봤자 그가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알몸의 그녀들에게 준수는 쓰러진채 그녀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곧 그 형세는 역전되서 그녀들이 선공을 취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지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호호호. 잘 다녀올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언니. 그럼 암코양이, 은혜야. 나 다녀올게~~"
나가는 순간까지도 수정은 그녀들을 잔뜩 약올리듯했다. 아무리 어제 깊은 밤까지 준수와 황홀한 시간을 보낸 그녀들이라고는 하지만, 준수와의 단 둘이서 하는 데이트와는 또다른 것이였고, 그렇기에 그녀들은 수정이 준수의 손을 잡고 멀어지는 것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였다.
수정에게 준수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꿈만같은 것이였다.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학교를 등교하는 것... 준수를 만나기 전까지만해도 남성혐오증에 가까웠던 수정이라고 할지라도 연인에 대한 어떠한 로망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오늘은 그것이 실현된 바로 그 날이였다. 잔뜩 신나있는 수정과 달리 준수는 수정이 왜 그렇게까지 기분이 좋은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 하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고 그저 덤덤하게 수정의 옆에 서있을 뿐이였다.
"준수야. 어제 말했지? 오늘 우리 학교 축제기간이야."
"아... 기억나요. 근데 대학교 축제라고 뭐 별거 있어요? 고등학교도 축제 해서 별거 없을거같은데..."
"푸훗... 고등학교때랑 차원이 다르다고 차원이. 고딩들이 노는거랑 대학생들이 노는거랑 같을리가 없잖아~"
"... 뭐가 다른데요...?"
"그걸 말로 콕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 직접 보고 확인해보면 될거야. 후훗... 아마 재미있는 하루가 될거야."
그 말을 하며 수정은 팔짱을 끼고 있던 준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향기로운 샴푸냄새에 준수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될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그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에 준수는 최대한 수정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신경쓰며 수정의 학교의 축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우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어때? 고등학교 축제랑 차원이 다르지?"
"네... 정말 차원이 다르네요..."
"후훗... 가자~ 준수야."
준수는 대학교 축제가 대단하다고 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규모에 기가 질려버릴 지경이였다. 이게 다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邦?정도로 많은 사람에 준수는 그저 감탄을 할 뿐이였다. 게다가 축제기간이라고 다들 잔뜩 멋을 부리고 와서인지, 남자든 여자든간에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준수와 수정은 다른 사람의 눈요기 대상이 되느라 많은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후훗... 준수야. 남자들이 널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에...? 왜요?"
"당연하지. 나같은 미인의 남자친구가 너라고 생각하니까 부러워할 수 밖에 없지. 안그래?"
"...... 그런걸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시다니... 진짜 누나 답네요..."
준수는 어이없다는듯, 하지만 그런 수정 특유의 당찬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매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학교에 들어서자 입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원체 사람이 많은데다가 준수는 수정의 학교에 온 것이 처음이였기 때문에 마치 미아가 된 기분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였다. 준수의 학교도 고등학교치고는 꽤 좋고 큰 건물이였지만 대학의 건물과는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였다. 수정은 그런 준수를 보면서 준수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였다. 아마 여성의 본능 중 가장 강력한 본능은 모성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성본능은 꼭 누군가의 엄마가 되진 않더라도, 아이를 가질 나이가 되지 않을지라도 여성이라면 느끼는 본능이다.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수정의 모성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수정은 준수와 팔짱을 끼고 있었던 것에서 더 나아가서 아예 준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수정이 의도했는지 준수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골로 빨려들어가는듯한 모양새였다. 준수는 자신과 수정의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있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녀에게서 빠져나가려고했지만, 수정은 준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듯했다. 아마 그 때 주변 사람들이 준수를 바라보는 시선을 봤다면... 준수는 정말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였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언니~~ 오랫만이에요. 옆에분은 남자친구에요? 우와~ 잘생겼다."
"후후후. 오랫만이네. 너희도 빨리 남자 사귀고 해야지~"
"남자가 없어요 언니 휴우... 아아 그나저나 사진찍으러 오셨죠? 남자친구분이랑 이쪽에 서시고..."
준수는 수정과 함께 그녀가 아는 후배가 축제때 운영하는 사진관 부스에 와있었다. 수정과 수정의 지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서로 꽤나 친한 사이인듯 했기에 오히려 준수만 더 뻘쭘해지는 상황이였다. 게다가 준수가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부터 이미 그녀는 수정과 자신을 연인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준수는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아닌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준수는 수정을 위해 최대한 공손히 수정의 후배로 보이는 여자에게 인사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를 ㎢?
"남자친구분 너무 부끄러워하시는거 아니에요? 호호호..."
"자기야~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나랑 정말 친한 동생이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
"... 으... 응...."
"더 가까이 붙으시고~ 자,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하고 싶은 포즈 잡으시면 되요. 아시겠죠~? 자, 하나~ 둘~ 셋~"
카메라가 찰칵이는 순간, 수정은 준수의 볼에 수줍은 키스를 했다. 그에 준수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그저 준수와 수정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움의 시선을 날릴 뿐이였고, 사진을 확인한 수정은 뭔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면서 몇번이고 사진을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진 준수가 아예 화끈하게 볼에 키스를 하는 것이 아닌, 입술끼리의 찐한 마주침을 카메라속에 담고 나서야 수정은 만족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준수는 바로 밖으로 나오기에는 얼굴에 립스틱자국이 너무 많이 묻어있어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의 세면대에서 얼굴을 한번 씻어야했다. 수정은 어차피 축제인데 뭐 얼굴이 그래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준수는 차마 그 얼굴도 돌아다닐 수 없었던 것이였다. 사실 화장실에 들어갈때만해도 준수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었기 때문에 수정은 준수가 혹시라도 화가 난 것은 아닌지 하고 불안했었지만, 화장실에서 나온 준수는 생각보다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누나... 입술로 키스하고싶었으면 차라리 다음부터는 말을 해주세요..."
"헉... 들켰나보네. 헤헤... 준수야. 이거 사진봐봐. 잘나왔지?"
"... 솔직히 이거 폰으로 사진찍어달라고 하는거랑 별로 차이 못느끼겠는데 저렇게 돈을 받아가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저는..."
"축제니까 그런거지 뭐. 다 알면서도 넘어가주는거. 어차피 저걸로 돈 벌어서 다른데에 쓰는것도 아니고 자기들 즐기는데 쓰는건데 뭐. 축제때 온 사람들이 여기 와서 즐긴만큼 여기 학생들도 즐겨야되는거잖아. 안그래?"
"... 애시당초에 서로 돈 안쓰고 그 돈을 나중에 더 의미있게 쓰는게..."
"아직 어리구나~? 꼭 돈을 의미있게 쓴다고해서 그 돈을 의미있게 쓰는건 아니야. 음... 조금 더 지나면 무슨 말인지 알려나~? 그나저나, 준수야. 여기저가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내가 비밀의 장소 하나 데려가줄까?"
"...... 불안한데... 혹시 이상한 장소 아니죠?"
수정은 준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채 준수의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꽤 오랫동안 걸었을까, 확실히 외부에서 놀러온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학생들 몇몇만이 보일 뿐이였다. 지나가는 몇명은 수정을 알아보고 짧은 인사를 나눴지만, 수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학생들이 아무도 없는것같은 건물에 들어가고난 후 수정은 준수를 그 건물의 옥상으로 이끌었다. 그곳이 비밀의 장소인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수정의 말로는 이 학교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기 때문에 학교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바람부니까 좋다~~ 그치?"
"네... 그나저나 여기에 이상하게 사람이 안오네요."
"당연하지. 호호호... 이 건물은 동아리에서 쓰는 건물들이거든. 지금쯤 동아리들은 저기에서 각자의 행사를 진행하느라 바쁠게 뻔하니 여기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 쉽게 말하자면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느낌일까?"
"... 비유가 이상한데요..."
"뭐~ 어쨌든. 오늘 어땠어? 그래도 여기저기 다녔었잖아. 뭐... 크게 신경 안써도 되긴 하지만 어쨋든 도강도 했었고..."
"음... 생각보다 대학이란게 별거 아닌거같으면서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뭐 확실히 고등학교랑 다른거같아요. 뭐랄까... 대학교가 좀 더 능동적인 느낌이랄까?"
"그렇지... 그 차이가 커. 어쨋든 고등학교는 선생님들이 시키는거 위주로 하는거라면 대학생들은 자기가 알아서 하고 싶은것 찾아가면서 하는거니까. 어쨋든 우리학교도 괜찮지 않아?"
"네... 뭐 학교 건물도 예쁘고 괜찮은거같아요."
"내년이면 준수도 수험생이네... 시간 참 빠르다... 준수랑 처음 만난지 벌써... 1년이 넘었어... 그거 알아?"
"..... 그렇게 되네요..."
"솔직히 너를 처음 봤을때만해도 내가 널 이렇게까지 좋아하게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풋..."
"저도 그때까지만해도 제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렇지... 그건 아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거야..."
"........"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상상 못하겠지...?"
"누나...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렇게 말하면 왠지 불안해지잖아요."
"호호... 미안미안... 내가 조금 말실수를 했어..."
수정의 마지막 말이 뭘 의미하는지 준수는 알지 못했지만, 준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면 그녀의 말에 불안감을 느끼기에는 수정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았기 때문이였다. 축제라서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해서인지, 오늘따라 가을바람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준수와 수정 모두, 서로 말은 안했지만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채로 있었다. 한참을 그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에 몰두하던 수정은 준수의 손을 잡고는 우수에 잠긴 눈빛을 준수에게 던졌고, 마치 갈증을 느끼는듯한 말투로 준수에게 말을 했다.
"... 나... 오늘 이대로 들어가기 싫은데..."
".... 누나..."
분위기에 취해서일까, 아니면 오늘은 수정의 기분에 맞춰주기로 작정을 해서일까... 오늘따라 수정의 손을 잡는 준수의 손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준수의 동의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손을 잡고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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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것보다 이번 화가 너무 밋밋하게 흘러갔네요.
이게 저만 느끼는거일수도 있는데
글을 쓰면서도 뭔가 기분이 업되있고, 뭔가 신나면 재미있는 글이 써지는 기분이고
반대로 뭔가 집중도 안되고 산만하면, 그 때 쓴 글은 뭔가 재미가 없는듯한 느낌이...
이게 다 프로정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프로를 하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게 사실이니 당연한거려나~~
아무튼 다음화는 영희와 은혜의 이야기.
"야, 준수야. 그래서 너는 내일 어느 학교로 갈거야?"
"글쎄... 생각 안해봤는데..."
내일은 학교 수업을 쉬는 대신 자신이 희망하는, 혹은 한번쯤 구경해보고 싶은 대학을 방문해서 구경하는 날이다. 고등학교 3학년, 즉 수험생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자신의 목표를 확실히 정하라는 의미에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미리미리 대학을 방문해서 캠퍼스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였다. 준수의 친구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보고 싶었던 학교를 정한다거나, 아니면 자신이 친한 친구와 같이 가기위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준수네 반 몇몇 여학생들도 준수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정작 준수는 자신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듯 그들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어디로 가야되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준수는 학교 수업이 끝날때까지도 자신이 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못했다.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향하는 곳이 정해지면 내일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는 일찍 귀가를 했다. 내일 일도 있고 해서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던 것이였다.
"대학인가..."
준수의 성적이 아무리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준수에게도 입시라는 것은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물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별로 고민거리가 아니였다. 그가 고민하는것은 오로지 자신의 진로 문제, 능력이 뛰어나다보니 하고싶은 것도 많고, 그 중에서 뭘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일지에 대해서 준수는 항상 고민이였다.
"에이... 고민한다고 달라지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바람을 쐬며 준수는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그의 집 앞 벤치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평범한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장래에 대한 고민은 덜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의 여자들... 물론 다른 사람이 그걸 들으면 행복한 고민에 배가 불렀다며 부러움의 시선을 던질게 분명했지만, 어쨋든 언젠가는 한 여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준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여자들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불행을 최대한 줄이며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참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해지기에 앞서 그 선택에 걸림돌이 없는 것도 아니였고... 그가 그 장애물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어머, 주인님... 집에 안들어가시고 여기서 뭐하세요?"
"!! 선생님이야말로 왜 여기에... 그나저나 밖에서는 좀 그 호칭은 좀..."
"후훗... 아무도 없는걸요 뭘... 바람쐬고 계셨나봐요."
".... 조금 고민좀..."
"잠깐 옆에 앉아도 되죠?"
준수에게 말을 건 것은 세진이였다. 세진은 준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옆에 앉았다. 예전같았으면 준수의 의사를 묻기도 전에 그의 팔짱을 낀다거나 했겠지만 최근 여러 일들이 그녀를 바꾼것인지, 그녀는 준수의 옆에 조신히 앉아있을뿐이였다. 준수는 자신이 생각에 잠긴 것을 세진이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알아챈듯 그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을 하려고 해도, 막상 자신의 옆에 세진이 있다는 사실때문에 그는 더 이상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왜 세진이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진과 이렇게 자신이 앉아있는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상한 오해를 할것만 같았다.
"... 어쨋든 저희 집에 오려고 여기에 온거죠? 들어가요."
"후훗... 주인님. 어떤 생각 하신거에요?"
"그냥 앞으로에 대해...서 랄까나."
"에이... 혹시라도 주인님이 제 생각을 하셨던거였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럴리가 없잖아요."
세진도 물론 기대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였지만, 딱잘라 말하는 준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준수도 무심코 자신이 너무 강하게 세진의 말에 부정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고, 그렇다고 사과를 하기에도 애매해서 머리를 긁적일 뿐이였다. 하지만 준수는 자신이 세진과 함께 있으면서 머리를 긁적인다거나, 세진이 뭔기 삐친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을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 아파트에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몇 있는걸로 알고있기에, 혹시라도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게되면 이상한 오해를 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해가 아니라 진실에 가깝겠지만 어쨋든 준수나 세진, 두 사람에게 모두 그런 소문이 퍼져서 좋을게 없다는 것이 사실이니까. 게다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세진과 아예 연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였으니...
"그나저나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면 아마 선생님... 이모한테 한 소리 들을수도 있을텐데..."
"아, 그거요? 후훗...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주인님의 몸종으로써 온게 아니라 말 그대로 주인님의 담임선생님으로써 온거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세진은 준수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금새 기분이 풀린듯했다. 세진은 준수의 집 안에 들어갈때까지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말할 생각이 없는듯했고, 그에 준수 또한 세진에게 묻기를 포기하고는 그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할 뿐이였다.
"왔어 준수야? 어머... 선생님도... 오늘은 어쩐일로..."
"오늘은 준수의 담임선생님으로써 말씀드릴게 있어서 왔어요.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네... 일단 들어오세요."
다른때같으면 세진이 영희의 집을 들어올때면, 집에서 할 일을 생각하며 잔뜩 상기된채로 들어왔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 특유의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일때의 세진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교사, 지적이면서도 어른스러운, 그리고 보는것만으로도 저절로 존경심이 들게끔 하는 오라를 풍겼다. 아마 세진을 대하는 다른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은 이러한 세진의 모습이 익숙하겠지만, 준수에게는 이러한 세진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준수는 세진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영희는 그런 세진에게서 아무런 이상한 것도 느끼지 않는다는듯,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지, 아니면 영희와 준수의 연륜의 차이때문에 그런건지 준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어쨋든 준수는 세진의 옆에 굉장히 어색하게 앉아있었고, 그 옆에서 세진은 영희를 마주보며 영희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그녀에게 진지한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준수도 이제 2학년이고 내년이면 3학년이잖아요. 제가보기에 준수 성적이나, 여태까지 준수의 시험 결과나, 준수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부분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봤을때..."
세진은 말 그대로 준수의 담임선생으로써 영희에게 준수의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 따지고보면 왜 많은 학생들중에 하필이면 준수의 집에 가정방문을 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세진에게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쨋든 지금의 세진은 진지했고, 그런 세진을 대하는 영희 또한 진지해서 준수가 뭐라고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세진이 준수에 대해 이것저것 짚어대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 날카로웠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남을 평가하는데에는 익숙하지만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데에는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준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형제도 없고 가장 친구인 수혁도 없는 요즘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없는 것이 사실이였다. 주변 친구들이래봤자 친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친한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해서 은혜를 포함한 또래 여자들이 자신을 평가해주는 것도 아니였다. 그리고 영희나 수정, 세진 또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준수는 신기한 기분으로 세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여자도 아니고, 평상시에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세진에게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들어서 더 신기한 것일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을, 세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것 같은 영희가 중간중간에 말을 하는 것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준수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내도 있었다는 것이였다. 준수의 학교생활을 알리가 없었던 영희가 그런 것들을 예측하다니... 준수는 겉으로는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여자들이 놀라운 것을 넘어서, 거의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세진이 방문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옆집의 수정과 은혜 또한 들이닥쳐서 여자들끼리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준수는 예전에도 가끔가다가 이런 광경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의 여자들... 영희, 수정, 세진, 은혜가 모여있는 장면... 물론 그 상상속에서의 준수는 여자들을 마음껏 부리는 그런 왕같은 존재였다. 아니, 여자들에게 왕처럼 모셔지는 것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던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실제로 모이니 그 상상과는 정반대... 준수는 감히 여자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굉장히 진지하게, 그러나 빠르게 변해가는 대화주제에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었고, 그리고 가끔가다가는 끼어들지 않는것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준수의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럽게도 그녀들의 대화주제는 다시 세진이 방문을 한 목적으로 돌아왔다. 이 얘기는 은혜에게도 아주 무관한 얘기만은 아닌지라 그녀들은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것 같았다. 그러던 중.. 대화 내내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던 세진의 입에서 드디어 진짜 계획에 관련된듯한 말이 나왔다.
"어쨋든 그래서말인데... 내일 날도 날이니까 저희 다같이 외출이라도 하는게 어떨지 하는데..."
"내일....이요...?"
"음... 그렇네... 암코양이. 너 치고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선생님. 진짜진짜 괜찮은 생각인거같아요!"
세진의 제안에 나머지 여자들은 준수와 외출을 한다는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설레이고 있었다. 저번에 영희가 준수와의 관계를 계속하고싶으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라고 말한 이후로 그녀들이 준수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날은 거의 주말밖에 없다시피했다. 그것도 영희의 집에서... 뭐 아무리 준수를 만나는데에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였다. 네 여자들 모두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뿐, 준수와 밖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 그걸 바라는 것은 그녀들 모두 같은 생각이였다. 하지만 모두들 상상속에서 들떠있었을때, 냉정히 그녀들이 나들이를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 것은 영희였다.
"잠깐... 나도 자기들이랑 같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긴 하지만 그게 내일은 아닌거같아."
"왜요 언니!"
"잘 들어봐. 어쨋든 내일은 준수가 가고싶은 대학을 먼저 가본다는거에 의미가 있는거잖아. 놀러가는게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잘 들어봐. 먼저 선생님... 내일 준수 친구들도 대학교에 많이 갈텐데, 만약 친구들이 준수랑 선생님이 같이 있는거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좋아보이진 않을거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그건 잘 숨어서 다니면..."
"억지잖아요 그건. 아무튼 선생님은 안되요. 그리고 은혜... 너도 안되. 저저번주에 나랑 약속한거 아직까지도 안했지? 우리 전에 열심히 안하면 어떻게 하기로 했더라..."
"아... 아줌마! 그건 그거고 이건..."
"응? 그거랑 이거랑 뭐가 다른데? 어쨋든 안! 되!"
"아줌마! 아줌마 치사해요. 아줌마는 매일매일 밤에 준수랑 이것저것 다 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그러는거에요! 내일도 또 아줌마만 준수랑 같이 나가서 데이트하려고 그러는거죠?"
"그렇게보이니? ... 아니야... 내일은 나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러니까... 수정씨. 부탁해. 어쨋든 수정씨는 대학생이고... 수정씨정도면 준수랑 같이 다녀도 쓸데없는 오해사는 일은 없을거고..."
"호호호... 걱정하지마세요 언니. 내일 준수 견학은 확실히 시켜드릴테니까요. 아~~ 이게 얼마만의 준수랑 단 둘이 데이트인지~"
수정만 굉장히 즐거운 표정으로 내일을 준비해야겠다며 먼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세진, 그리고 특히 은혜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였지만 영희도 스스로 내일 준수와의 데이트를 포기해버린 시점에서 그녀들이 불만을 표해봤자 별로 효과가 없을것 같았다. 더 속상한것은 영희의 말이 아예 억지인거도 아니였다는 점이였다. 그녀들의 속마음이라도 알아차린듯 영희는 세진과 은혜를 끌어안으며 다음 기회에는 꼭 네 사람이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말을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을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준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저... 저기요...?"
"자, 두사람... 내일 수정씨만 좋은일 시키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지?"
"후훗... 그럼요 언니."
"준수야, 내일 수정언니한테 허튼짓 못하게 해줄게~"
준수가 뒷걸음질쳐봤자 그가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알몸의 그녀들에게 준수는 쓰러진채 그녀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곧 그 형세는 역전되서 그녀들이 선공을 취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지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호호호. 잘 다녀올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언니. 그럼 암코양이, 은혜야. 나 다녀올게~~"
나가는 순간까지도 수정은 그녀들을 잔뜩 약올리듯했다. 아무리 어제 깊은 밤까지 준수와 황홀한 시간을 보낸 그녀들이라고는 하지만, 준수와의 단 둘이서 하는 데이트와는 또다른 것이였고, 그렇기에 그녀들은 수정이 준수의 손을 잡고 멀어지는 것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였다.
수정에게 준수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꿈만같은 것이였다.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학교를 등교하는 것... 준수를 만나기 전까지만해도 남성혐오증에 가까웠던 수정이라고 할지라도 연인에 대한 어떠한 로망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오늘은 그것이 실현된 바로 그 날이였다. 잔뜩 신나있는 수정과 달리 준수는 수정이 왜 그렇게까지 기분이 좋은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 하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고 그저 덤덤하게 수정의 옆에 서있을 뿐이였다.
"준수야. 어제 말했지? 오늘 우리 학교 축제기간이야."
"아... 기억나요. 근데 대학교 축제라고 뭐 별거 있어요? 고등학교도 축제 해서 별거 없을거같은데..."
"푸훗... 고등학교때랑 차원이 다르다고 차원이. 고딩들이 노는거랑 대학생들이 노는거랑 같을리가 없잖아~"
"... 뭐가 다른데요...?"
"그걸 말로 콕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 직접 보고 확인해보면 될거야. 후훗... 아마 재미있는 하루가 될거야."
그 말을 하며 수정은 팔짱을 끼고 있던 준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향기로운 샴푸냄새에 준수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될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그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에 준수는 최대한 수정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신경쓰며 수정의 학교의 축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우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어때? 고등학교 축제랑 차원이 다르지?"
"네... 정말 차원이 다르네요..."
"후훗... 가자~ 준수야."
준수는 대학교 축제가 대단하다고 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규모에 기가 질려버릴 지경이였다. 이게 다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邦?정도로 많은 사람에 준수는 그저 감탄을 할 뿐이였다. 게다가 축제기간이라고 다들 잔뜩 멋을 부리고 와서인지, 남자든 여자든간에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준수와 수정은 다른 사람의 눈요기 대상이 되느라 많은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후훗... 준수야. 남자들이 널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에...? 왜요?"
"당연하지. 나같은 미인의 남자친구가 너라고 생각하니까 부러워할 수 밖에 없지. 안그래?"
"...... 그런걸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시다니... 진짜 누나 답네요..."
준수는 어이없다는듯, 하지만 그런 수정 특유의 당찬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매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학교에 들어서자 입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원체 사람이 많은데다가 준수는 수정의 학교에 온 것이 처음이였기 때문에 마치 미아가 된 기분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였다. 준수의 학교도 고등학교치고는 꽤 좋고 큰 건물이였지만 대학의 건물과는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였다. 수정은 그런 준수를 보면서 준수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였다. 아마 여성의 본능 중 가장 강력한 본능은 모성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성본능은 꼭 누군가의 엄마가 되진 않더라도, 아이를 가질 나이가 되지 않을지라도 여성이라면 느끼는 본능이다.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수정의 모성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수정은 준수와 팔짱을 끼고 있었던 것에서 더 나아가서 아예 준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수정이 의도했는지 준수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골로 빨려들어가는듯한 모양새였다. 준수는 자신과 수정의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있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녀에게서 빠져나가려고했지만, 수정은 준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듯했다. 아마 그 때 주변 사람들이 준수를 바라보는 시선을 봤다면... 준수는 정말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였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언니~~ 오랫만이에요. 옆에분은 남자친구에요? 우와~ 잘생겼다."
"후후후. 오랫만이네. 너희도 빨리 남자 사귀고 해야지~"
"남자가 없어요 언니 휴우... 아아 그나저나 사진찍으러 오셨죠? 남자친구분이랑 이쪽에 서시고..."
준수는 수정과 함께 그녀가 아는 후배가 축제때 운영하는 사진관 부스에 와있었다. 수정과 수정의 지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서로 꽤나 친한 사이인듯 했기에 오히려 준수만 더 뻘쭘해지는 상황이였다. 게다가 준수가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부터 이미 그녀는 수정과 자신을 연인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준수는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아닌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준수는 수정을 위해 최대한 공손히 수정의 후배로 보이는 여자에게 인사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를 ㎢?
"남자친구분 너무 부끄러워하시는거 아니에요? 호호호..."
"자기야~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나랑 정말 친한 동생이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
"... 으... 응...."
"더 가까이 붙으시고~ 자,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하고 싶은 포즈 잡으시면 되요. 아시겠죠~? 자, 하나~ 둘~ 셋~"
카메라가 찰칵이는 순간, 수정은 준수의 볼에 수줍은 키스를 했다. 그에 준수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그저 준수와 수정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움의 시선을 날릴 뿐이였고, 사진을 확인한 수정은 뭔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면서 몇번이고 사진을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진 준수가 아예 화끈하게 볼에 키스를 하는 것이 아닌, 입술끼리의 찐한 마주침을 카메라속에 담고 나서야 수정은 만족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준수는 바로 밖으로 나오기에는 얼굴에 립스틱자국이 너무 많이 묻어있어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의 세면대에서 얼굴을 한번 씻어야했다. 수정은 어차피 축제인데 뭐 얼굴이 그래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준수는 차마 그 얼굴도 돌아다닐 수 없었던 것이였다. 사실 화장실에 들어갈때만해도 준수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었기 때문에 수정은 준수가 혹시라도 화가 난 것은 아닌지 하고 불안했었지만, 화장실에서 나온 준수는 생각보다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누나... 입술로 키스하고싶었으면 차라리 다음부터는 말을 해주세요..."
"헉... 들켰나보네. 헤헤... 준수야. 이거 사진봐봐. 잘나왔지?"
"... 솔직히 이거 폰으로 사진찍어달라고 하는거랑 별로 차이 못느끼겠는데 저렇게 돈을 받아가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저는..."
"축제니까 그런거지 뭐. 다 알면서도 넘어가주는거. 어차피 저걸로 돈 벌어서 다른데에 쓰는것도 아니고 자기들 즐기는데 쓰는건데 뭐. 축제때 온 사람들이 여기 와서 즐긴만큼 여기 학생들도 즐겨야되는거잖아. 안그래?"
"... 애시당초에 서로 돈 안쓰고 그 돈을 나중에 더 의미있게 쓰는게..."
"아직 어리구나~? 꼭 돈을 의미있게 쓴다고해서 그 돈을 의미있게 쓰는건 아니야. 음... 조금 더 지나면 무슨 말인지 알려나~? 그나저나, 준수야. 여기저가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내가 비밀의 장소 하나 데려가줄까?"
"...... 불안한데... 혹시 이상한 장소 아니죠?"
수정은 준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채 준수의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꽤 오랫동안 걸었을까, 확실히 외부에서 놀러온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학생들 몇몇만이 보일 뿐이였다. 지나가는 몇명은 수정을 알아보고 짧은 인사를 나눴지만, 수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학생들이 아무도 없는것같은 건물에 들어가고난 후 수정은 준수를 그 건물의 옥상으로 이끌었다. 그곳이 비밀의 장소인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수정의 말로는 이 학교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기 때문에 학교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바람부니까 좋다~~ 그치?"
"네... 그나저나 여기에 이상하게 사람이 안오네요."
"당연하지. 호호호... 이 건물은 동아리에서 쓰는 건물들이거든. 지금쯤 동아리들은 저기에서 각자의 행사를 진행하느라 바쁠게 뻔하니 여기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 쉽게 말하자면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느낌일까?"
"... 비유가 이상한데요..."
"뭐~ 어쨌든. 오늘 어땠어? 그래도 여기저기 다녔었잖아. 뭐... 크게 신경 안써도 되긴 하지만 어쨋든 도강도 했었고..."
"음... 생각보다 대학이란게 별거 아닌거같으면서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뭐 확실히 고등학교랑 다른거같아요. 뭐랄까... 대학교가 좀 더 능동적인 느낌이랄까?"
"그렇지... 그 차이가 커. 어쨋든 고등학교는 선생님들이 시키는거 위주로 하는거라면 대학생들은 자기가 알아서 하고 싶은것 찾아가면서 하는거니까. 어쨋든 우리학교도 괜찮지 않아?"
"네... 뭐 학교 건물도 예쁘고 괜찮은거같아요."
"내년이면 준수도 수험생이네... 시간 참 빠르다... 준수랑 처음 만난지 벌써... 1년이 넘었어... 그거 알아?"
"..... 그렇게 되네요..."
"솔직히 너를 처음 봤을때만해도 내가 널 이렇게까지 좋아하게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풋..."
"저도 그때까지만해도 제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렇지... 그건 아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거야..."
"........"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상상 못하겠지...?"
"누나...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렇게 말하면 왠지 불안해지잖아요."
"호호... 미안미안... 내가 조금 말실수를 했어..."
수정의 마지막 말이 뭘 의미하는지 준수는 알지 못했지만, 준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면 그녀의 말에 불안감을 느끼기에는 수정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았기 때문이였다. 축제라서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해서인지, 오늘따라 가을바람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준수와 수정 모두, 서로 말은 안했지만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채로 있었다. 한참을 그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에 몰두하던 수정은 준수의 손을 잡고는 우수에 잠긴 눈빛을 준수에게 던졌고, 마치 갈증을 느끼는듯한 말투로 준수에게 말을 했다.
"... 나... 오늘 이대로 들어가기 싫은데..."
".... 누나..."
분위기에 취해서일까, 아니면 오늘은 수정의 기분에 맞춰주기로 작정을 해서일까... 오늘따라 수정의 손을 잡는 준수의 손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준수의 동의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손을 잡고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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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것보다 이번 화가 너무 밋밋하게 흘러갔네요.
이게 저만 느끼는거일수도 있는데
글을 쓰면서도 뭔가 기분이 업되있고, 뭔가 신나면 재미있는 글이 써지는 기분이고
반대로 뭔가 집중도 안되고 산만하면, 그 때 쓴 글은 뭔가 재미가 없는듯한 느낌이...
이게 다 프로정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프로를 하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게 사실이니 당연한거려나~~
아무튼 다음화는 영희와 은혜의 이야기.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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