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휴일이니까 <납치감금조교>를 하란말야!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3일 간의 연휴의 첫 날 오후, 무척이나 무거운 소포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발신인은 쿠닝와(駒忍和), 중국인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극단 관계자가 배역 상의 이름으로 발송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취인에는 분명 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
“누가 장난친 건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귀찮은데”
가능하다면 오늘 하루는 마코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를 불러내서 데이트와 같은 걸 해 보고 싶었다. 그녀와의 줄어들 것 같으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데이트를 통해서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어제까지 약속을 잡았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을 계속하다가 오늘을 맞이한 것이다. 혹시 직접적으로 전화를 걸어 권유를 해본다면,
‘데이트 따윈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거잖아. 하다못해 목줄이라도 걸고 산책을 데려가 주겠다는 거면 몰라도, 아직도 우리들의 관계를 이해 못했어?’
와 같은 대답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부모님들은 두분 다 아침부터 지방 공연으로 나가 계시고, 집에는 켄지 혼자 밖에는 없다. 자신 앞으로 보내온 소포를 직접 받고 나서, 대체 뭐가 온 건지 고민했다. 그 크기만 보더라도 어린 애 한명 정도는 들어갈 정도의 박스여서, 손발을 접으면 어른이라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정도였다.
시험 삼아 박스 옆을 발로 차봤다. 내용물이 부서지는 것도 걱정되었기에, 표면이 찌그러지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일격이었다.
“으……아……앗”
안에서 들린 것은 흐릿한 신음소리였다.
귀를 기울여보니, 신음소리는 그쳤어도, 어렴풋이 공기가 새는 듯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억눌려 있다고는 해도 결코 모를 수 없는 숨 소리였다.
설마, 뭔가, 안에 있는 건가.
모르타르처럼 시커먼 예감이 심장을 압박해 온다.
“……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작은 동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말이 통하는 생물이라도 안에 들어있다면, 그거야 말로 큰일이다. 말이 안 통하는 맹수가 있는 것도 다른 의미로 큰 일이다.
경찰을 부르는 게 좋을 지도 모르지만, 만약 박스 안에 누군가 들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꺼내 주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커터 칼이나 가위를 쓰면 안쪽에 있는 물건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박스테이프를 손톱으로 찢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그 가장 위에는 상자 사이즈에 딱 맞는 골판지 판이 끼워져 있었다. 그것을 꺼내 보니, 물건을 덮고 있는 것은 핑크색 대형 타월이었다. 타월을 벗겨내니, 이번에야 말로 진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 두갈래가 덮개가 열리는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짐승의 털이 아닌, 부드러운 인간의 머리카락이었다. 그 아래엔 검은색 가죽 띠와 탁구공에 구멍을 뚫어 끈을 끼워 넣은 물건이 보인다.
가죽 띠가 가리고 있는 것은 시야, 눈을 덮고 있다.
탁구공을 물고 있는 것은 입. 입술 사이로 쉴 새없이 달콤한 향의 침이 흐르고 있따.
“으아아앗! 마, 마코오!”
한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만, 주저앉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름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야와 입이 막혀 있는 마코가 켄지의 비명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우, 우웁”
살아있는 건 다행이지만,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소리가 그 처참함을 일깨웠다.
“아아, 마코,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손발은, 손발은 괜찮아!”
이런 시츄에이션을 만화에서 본 적이 있다. 주인공에게 보내진 소포를 열어 보자, 안에는 양손과 양발이 절단당한 연인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찌만, 마코의 사지는 멀쩡했고, 수갑이 채워진 채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은 채로 골판지 박스에 쑤셔 넣어져 있을 뿐이었다.
목 주위가 깊게 파인 검은 색 스웨터와 붉은 색 체크무늬의 미니스커트, 허벅지까지 닿는 검은색 양말을 신은 귀여운 옷차림도 강제로 찢겨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무릎 아래까지 닿는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에서 유추 해보면, 외출을 했다가 납치를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켄지는 떨리는 손으로 눈가리개를 벗기면서 마음 속에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납치한 마코를 켄지 앞으로 보낸 것일까.
자신에게 보냈다는 것은 켄지와 마코의 접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마코, 괜찮아?”
그럭저럭 눈가리개를 벗기자 커다란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음에도, 날카롭게 치켜뜨고 있었다.
“입도 풀어줄게. 잠깐만 기다려.”
탁구공으로 된 부속물을 벗기고, 입에서 끄집어 내자, 타액으로 미끈한 실이 늘어졌다. 음란한 선을 그리는 점액의 움직임에 눈을 빼앗기고 있을 여유는 없다. 마코가 목이 메어하는 것을 보고, 냉장고로 달려가 병에 담긴 미네랄워터를 컵에 따라 가져왔다.
“침을 못 삼켜서 입 안이 바싹 말랐지. 기침이 멈추면 마셔.”
마코가 순순히 물을 마시는 걸 보면서, 그녀의 옆구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언제까지고 가엽게 비좁은 박스 안에 들어가 있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으윽, 하고 작은 신음이 들렸다. 이를 갈면서, 노기(怒氣)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은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만큼 더욱 가련해보였다. 그녀를 들어 올리면서 안 것은 그녀의 몸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볍다는 것이다. 가슴은 커다란데도, 어린 아이처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현관 마루에 내려놓을 생각이었지만, 이 가볍고 작은 몸으로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상상한 순간 켄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마코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온기에 팔이 녹아드는 듯 하다. 욕정과는 다른 뜨거움으로 솟구치는 충동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내가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변태라고 해도, 음란해도, 마조히스트여도── 역시 와시오 마코를 좋아하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 내가 여기 있으니까.”
“아, 으응”
아직 쇼크상태에 있는 건지, 마코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 싶더니, 갑작스럽게 집 안 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큰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이! 진짜 바보!”
머리를 서로의 어깨에 교차해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켄지의 귓가에 직격했다. 켄지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떼어냈다.
마코는 콧김을 거칠게 내쉬며 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소녀의 전신에서 불타오르는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애써서 밥상까지 다 차려놨는데,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납치감금을 하란말야!”
아아── 켄지는 탄식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켄지도 역시,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순애(純愛)로 발전할 듯한 시추에이션을 기대하고, 훨씬 있을 법한 가능성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발신인 駒忍和는 무리해서 읽자면 ‘코마오시와’라고 읽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읽으면 범인은 일목요연하다.
“……먼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그야 뭐, 어깨 같은 데가 참 뻐근했어. 맛사지 좀 해줘, 채찍으로 찰싹찰싹”
뭐, 그럼 그렇지. 체념이 배어든 한숨이 새어나올 것 같았지만, 꿀꺽 들이 삼켰다.
S다. 지금은 진성 S가 되는 거다. 이 여자는 진성 S가 아니면 제대로 상대할 수가 없다.
오로지 괴롭히고 괴롭혀서, 마코가 히익히익 기뻐하면서 스스로 “연인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할 때까지 만족시켜 주는 것 말고는 지금의 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S라기 보다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켄지는 마코마코단의 감시에 대한 대책으로 집 안 전체의 커튼을 닫았다.
요즘은 마코의 주변뿐만 아니라, 켄지의 주변에도 단원이 잠복해 있는 기색이 있다. 어젯밤, 자신의 방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집 앞 도로에 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를 한 여자 아이가 경찰에 불심 검문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밖으로의 시선을 모두 차단한 켄지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마코가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돌아왔다. 박스 한쪽 구석에 성인용품이 담긴 가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예전 첫경험때도 썼던 목걸이와 사슬을 꺼내, 마코에게 걸었다.
“흐, 흐흥, 약간은 이해했구나. 암캐를 다루는 방법을.”
짐짓 허세가 섞인 웃음이 부르르 떨린 것은 환희로 전신이 저려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짝 목줄을 당긴 것만으로 숨이 막혀하면서 묶여있는 팔다리로 기어서 뒤를 따라 온다.
주방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거실로 들어온 켄지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이 집 한 채를 지은 부모님들께 마음 속으로 사죄하면서, 잘난 척 하듯 소파에 거만스럽게 몸을 뒤로 젖히면서 앉았다.
“그래서, 암캐. 넌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한건데?”
“당연하잖아.”
마코는 마루에 네발로 엎드린 채, 자랑하듯이 콧날을 씰룩거렸다.
“모처럼의 휴일이잖아. 주인님에게 마음껏 당할 생각으로 큰 결심을 하고 온 거야.”
주인님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문장의 표면적 의미만 생각하니까 복잡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럴 때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고, 그녀 나름대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해석하고 마음을 바로 잡는 거다.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마코는 부모님께서 오페라를 보러가자고 권하셨지만,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면서 억지로 거절한 모양이었다. 부모님들은 연휴 마지막까지 돌아오시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비우고 있어도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골판지 박스는…… 혼자서 닫을 수 없었을텐데, 어떻게 한거야?”
“그냥 협력자가 생겼어. 아, 절대로 주인님에게 강간당했던가, 기쁘게 조교를 당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폭로하지 않았어. 단지, 츠루가 같은 애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는 없다면서 부탁했지.”
“수갑을 봤다면 변명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당연히 박스 안에 갇힌 다음에 채운 거지. 다리나 손이 저려서 힘들었단 말야. 주인님 때문에 정말 아팠어. 진짜 흥분했어. 어떻게 책임 져 줄거야?”
“동정할 여지가 없잖아. 자업자득인데.”
목줄을 잡아 당겨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한 볼을 꼬집었다. 이건 칭찬이다. 일부러 고통(이라고 생각해두자)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집을 찾아와 준 기특한 암노예에 대한. 물론 마코는 만족스럽게 눈 웃음을 지었다.
상자 속에 담겨 우편으로 배송되어 오는 작전은 확실히 마코마코단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최적의 시도였다. 만약 평범하게 집을 나섰다가 들켰다면, 도중에 따돌린다고 하더라도 집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남는다. 처음부터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걸로 한다면, 의심받을 가능성도 적다.
다른 문제가 산처럼 쌓여있는 듯 한 기분도 들지만, 본인도 만족한 것 같으니 이론은 접어두자.
(우리 집에서 단 둘이 있다는 것도 꽤 좋구나. 약 오르겠지, 츠루가)
사복 차림의 마코를 지그시 보고 있으니, 일종의 신선한 느낌까지 느껴졌다. 스웨터에 미니 스커트와 무릎까지 오는 양말, 검정과 빨강으로 교복보다 심플한 차림이기 때문인지, 마코의 작은 몸이 얼마나 밸런스가 좋은 몸매인지 잘 알 수 있다. 균형 잡힌 모델체형은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한눈에 반해버릴 것 같은 가련한 몸매다.
검은색 스웨터는 얇은 울 재질이라 그녀의 몸에서 유일하게 밸런스를 깨고 있는 풍만한 가슴의 굴곡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푹 파인 가슴팍에 엿보이는 하얀 쇄골이 여자다운 살집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 소녀가 치켜 올라간 눈매로 올려다보고 있으니 껴안고 마구 주물러대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디까지나 귀여워하고 싶다는 것이지, 괴롭히고 싶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오차범위 내라고 간주하자.
“일부러 이렇게까지 했으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일부러 차가운 말투로 내려 보는 듯한 말을 하면서 가는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윽, 주인님, 설마 마음이 내켰어? 흐~응, 평소엔 이러니저러니 잔소리만 해대더니, 자기 집이라고 갑자기 거드름을 피우다니, 참나, 하긴 똥개도 자기집에서는 절반은 먹고간다더니.”
경멸스러운 말투도 체벌을 기대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눈초리를 치켜올려봤자 소용없는 일이나 평정을 유지한 채, 그녀의 턱을 잡고 손가락으로 뺨을 눌렀다. 입가가 일그러지는 모습에 정열적인 구음(口淫)이 떠올라 약간 사타구니가 뜨거워진다.
“노예라면 노예다운 말투를 써야지.” “오, 오오, 뭐, 뭐야 그건, 뭐야 그 거만한 말은. 완전 잘난 척, 자기 집이라고 기세등등한데, 우와, 무서워~”
“잘난 척 하는 건 너잖아”
그녀의 머리를 아래로 짖눌러, 카페트에 얼굴이 닿을락 말락할 정도에서 멈추었다.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부딪히더라도 상관없다는 각오---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을 크게 환영하는 마음가짐때문일 것이다.
“발을 핥아, 양말도 벗기고.”
진성 M인 마코에 대해서 이 정도의 명령은 인사 대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이든지 인사는 중요한 것이다.
“후, 흐흥, 평소랑은 태도가 너무 달라서 잠깐 당황했지만, 좋아. 내가 정진정명의 마조히스트 개(犬)라는 증거를 보여 줄게. 놀라서 뒤로 자빠질 정도로 혹독하고 철저하게 조교해줘!”
마코는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켄지의 오른 발을 조심스레 잡아 들고, 양말을 벗겨갔다. 겨울철이라 그다지 땀을 많이 흘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결코 좋은 냄새가 나는 부분은 아닌데도 그녀의 눈은 달콤한 향기라도 맡은 듯이 녹아내려간다.
“츄읍, 응……짭짤해……슈룹, 쪼옥”
타액으로 끈적한 물소리를 내면서 사쿠란보의 과육처럼 선명한 색의 혀가 발가락 끝을 미끄러져 간다. 냄새나는 때가 낀 발가락 사이까지 핥아지니 켄지는 등골이 오싹한 쾌감에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렇게 맛있냐?”
“맛없는 게 당연하잖아…… 맛없으니까 괜히 두근두근해지는 게 메조 노예라고.”
단지 발을 핥고 있는 것만으로 마코의 허리는 색기를 품고 작게 흔들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혀를 내밀어 핥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발가락을 입 안에 머금고 빨기 시작했다. 발가락과 입술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빨간 점막을 보고 있으니, 거부할 수 없는 음탕한 기분이 켄지의 안에서 점점 ?어져 간다. 간지러움이 쾌감으로 변하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눈 앞에 보이는 마코의 모습이 평소보다 작아 보인다. 그야말로 토끼나 다람쥐처럼.
(너무 괴롭혔다간, 정말로 망가져버릴 것 같아.)
두려움과도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여느때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뜨거운 충동과 같은 생각이 정수리를 찌른다.
(울 때까지 사정없이, 울더라도 멈추지 않고 엉망으로 괴롭히고 싶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 한 순간, 시야가 좁아지며,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 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바래버린 것 같더니 "자지가 청바지를 뚫을 듯 꼴여 있어서 아파"하고, 현실도피를 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거냐?
자문자답과 함께 천천히 시야가 회복되었다.
눈 아래에는 마코가 아까보다 더욱 엎드려 있었다. 바닥에 뺨을 문질리며, 위로 든 엉덩이를 부들부들 경련시킨다. 그녀의 머리를 밟아 바닥에 누르고 있는 것이 자신의 발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횡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의 발이 맛없다니, 지가 퍽이나 잘난 줄 아네. 차라리 개새끼가 더 예의가 바르겠다. 더 더러운 건 네 침이잖아. 냄새라도 배면 어쩔 거야.”
“하앗, 아아아……! 자, 잘못했어요, 주인니임”
“사죄한다고 해서 용서해 줄 수는 없지”
머리를 짖밟은 채로 쇠사슬을 끌어당기자, 움직일 수 없는 목에 개목걸이가 파고 들어 마코의 입에서 헛구역질과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신음이 기침으로 바뀐 뒤에도 켄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때, 괴롭냐?”
“괴, 괴로, 콜록, 크헉, 머, 멋진 학대엣, 쿨럭”
“더 괴롭혀 줬으면 좋겠냐?”
“크헉, 왜, 왠지 너, 오늘은 진짜 이상해졌, 쿨럭, 허억, 자, 잠깐만 기다악”
“못 기다려.”
발을 머리에서 떼고 그 대로 사슬을 당겨 머리를 들어 올렸다. 기침을 삼킨 마코의 얼굴을 부풀어 오른 사타구니로 잡아당겨, 청바지 너머의 열원을 입가에 문질렀다.
“요놈도 암퇘지의 구멍에 찔러 넣는 바람에 더러워졌어. 너 때문이라고. 너는 암퇘지니까, 나한테 수간을 시킨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그, 그런 식의 말투는 심하게 제 취향이기는 하지만,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 암컷 노예 와시오 마코는 당황을 숨길 수 없습니다……”
“시끄럽게 꿀꿀대지마, 진짜!”
있는 대로 따귀를 날렸다.
따귀를 맞이한 것은 두려움과 희열이 섞인 채로 올려다보고 있는 눈빛이었다.
(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이성적인 사고와 미쳐 날뛰는 욕망이 부딪혀 불꽃을 흩뿌린다.
여자 애를 상대로 있는 힘껏 뺨을 때린 행위는, 아무리 뭐라도 심했다. 엉덩이에 스팽킹을 하는 것은 플레이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얼굴에 따귀를 때리는 것은 장난으로 끝내기는 어렵다는 느낌이다.
혼신을 다해 폭주하는 오른 손을 멈추게 했다. 그와 함께, 말투도 표정도 비디오를 되감는 것처럼 켄지의 제어 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 타임!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켄지는 목걸이에 걸린 사슬을 던져 놓고 도망 나왔다. 복도로 맹렬하게 뛰쳐 나와 계단을 올랐다.
“에엣, 아 저기, 방치가 너무 갑작스럽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약올리는 건 SM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
마코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듯하더니, 무언가 장렬하게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지만, 지금은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된다. 연기가, 연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아마도 손발이 수갑에 채여 있는 상태에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있는 대로 넘어져 구른 모양이다. 꽤나 아프기는 하겠지만 괜찮다. 그녀는 마조히스트니까.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가자,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는데도, 무거운 물건을 끄는 듯한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더니, 방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호러 영화에 이런 식의 시추에이션이 있었지, 하고 냉정함을 가장한 사고를 표층의식에 떠올렸다.
“이, 이 주인님 자식! 방치플레이에도 무드라는 게 있잖아!”
“마코한테 무드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약간 충격이야.”
“뭐야, 딱 아슬아슬 할 때까지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헤타레S! ED! 하여튼 머리를 짓밟혔을 때는 가볍게 가버렸는데! 그런 분위기로 플레이를 계속해줄 것을 희망합니다!”
문 너머에서 밀어부쳐오는 압력이 느껴졌다. 마코가 문짝 바로 너머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깨닫자, 아무래도 초조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방금 전까지 하던 것을 계속하고 싶다는 악마와도 같은 충동이 가슴에 파고들고 있으니, 괜한 조바심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로 잠깐만 진정하자. 마코도 약간 겁먹었잖아.”
“겁주기 위한 플레이 아니었어?”
진심이었습니다. 라고 고백 할 수 있을 만큼 켄지가 좀 전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퍼졌다.
“……설마, 질려버린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거짓말.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알고는 있어. 네가 나를 위해서 연기해주고 있다는 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을 우물거리고 말았다.
그저 순간적인, 두 번째 침묵.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는 침묵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켄지가 알아챈 것은 마코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우으으으…… 역시 연기였구나.”
키타노 켄지는 지극히 일반적인 소년이다. 일반적이라는 개념에도 범위는 있지만, 인기가 있고 없고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인기가 없는 인종이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울린 경험 따위는 없다. 코를 훌쩍거리고 울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게 되었으니, 동요하지 않을 리 없다.
“알고는 있어…… 내 취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그래도, 할 수 없잖아. 어쩔 수가 없단 말야. 이제 와서 고칠 방법이 없는 데.”
대답을 해줄 수가 없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연기로 냉정함을 가장하고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애드립을 풀어놓는 것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뭐야? 여자 애가 마조이면 안되는 거야? 내가…… 켄지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는 거냐고!”
약간 공격적인 말투가 되어 있었지만, 울먹이는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거야 말로 오히려 괴롭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할 말을 고를 수 없었기 때문에 켄지는 마침내 포기했다.
“안 될 리가 없잖아!”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히자, 마코가 애벌레처럼 대꿀대꿀 굴러 들어왔다. 켄지는 차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목사슬을 주워 억지로 잡아당겨 그녀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눈물에 젖은 마코의 얼굴을 코앞으로 끌어당겨 마주본 채 노려보았다.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맡긴 것이다. 지금은 본능에 따라 자신을 내보이는 것 말고는 마코와 마주 대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익숙하지 못할 뿐이야! 그런 거에 일일이 울지마! 오히려 마조라면 기뻐해야지!”
“뭐, 뭐야! 갑자기 텐션을 높여도 곤란하잖아!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주인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스럽잖아!”
“다루는 건 주인님이 할 일이야! 이젠 진짜로 용서해주지 않을 거야! 나도 그다지 S 기질이 제로인 건 아니란 말야!”
마코를 끌어 당겨 계단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양손과 양발이 묶여있는 채로 그녀를 내려가는 계단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무서웠기에, 있는 힘껏 끌어안아 올렸다.
“꺄앗, 자, 잠깐! 뭐야! 이 자세는!”
“공주님 안기잖아!‘
마코가 로맨틱한 자세를 좋아할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울상인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오르는 것은 예상대로였지만, 거만한 주인님이 노예의 불만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발버둥치던 그녀도, 1층에 도착했을 때에는 얼굴을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말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지간히 부끄러웠던 모양이지만, 켄지의 팔 역시 마찬가지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체구에 가볍다고는 해도 수십킬로는 나가는 몸이니까 힘든게 당연하다.
“아우우…… 이런 건 주인님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야……”
라고 하는 가는 속삭임에, 켄지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약간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순간, 품 안에서 버둥거리던 마코를 놓아버렸다.
“흐갸악”
마코가 엉덩이부터 떨어지면서 새끼고양이처럼 비명을 질렀다. 수갑 때문에 엉덩이를 쓰다듬지도 못하고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건방진 눈초리를 하다니! 이렇게 된 이상,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내 S력을 보여주겠어!”
“어차피 연기면서! 알고 있다니까!”
뭔가 형세가 이상해진 것 같았지만, 켄지는 억지로 자신을 세우려는 듯 마코의 목줄을 잡아당겼다.
*
아마노 린이 기르는 고양이는 바로 집에서 없어져버렸다.
배트라는 명칭이 잘못된 건지 메이저리그의 홈런보다 먼 곳까지 달아나서 며칠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지가 야구공도 아니면서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처럼 3일 간의 연휴가 고양이를 찾는 일로 보내게 된 것도 부모님에게 억지를 써서 야생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한 린의 자업자득이었다. 린은 초등학생치고는 책임감이 강한 소녀였다.
두꺼운 파카에 레깅스라는 가벼운 차림으로 집에서 나오자 옆집의 키타노 켄지가 정원에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울타리 사이로 보였다.
“안녕, 켄 오빠”
정원 구석에서 조립식 창고와 안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켄지에게 담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 켄지는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린은 켄지가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이 좋았기에,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로 응답했다. 고양이 탐색은 급한 것도 아니었고, 가정교사가 올 때까지만 끝내면 괜찮았다.
“켄 오빠, 또 소품 만드는 일을 돕는 거야?”
“응 조금”
아버지의 극단에서 소품을 만드는 것을 돕는 켄지의 모습은 휴일에 자주 볼 수 있었다. 키타노 가의 인간은 손재주가 좋아서 린네 집 정원에 나무 탁자를 만들 때도 가족 전부가 도와주었다. 여담이지만, 못 박는 법을 가르쳐 줄 때의 켄지가 묘하게 멋져 보였던 것이, 린의 첫 사랑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린쨩. 고양이는 찾았어?”
“찾아도 금방 없어져. 근처에 누구랑 친해진 걸까.”
“나 아직 그 고양이 본 적이 없으니까, 잡으면 보여줘.”
으차, 하고 기합을 넣으면서 켄지는 커다란 푸대를 안채로 들고 간다. 아오, 하고 기묘한 울음소리가 안채 쪽에서 들려왔다. 사랑하는 사육주가 그리워하는 개가 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켄 오빠, 언제 개를 키웠어?”
정원 쪽으로 뚫려 있는 환기창 그늘에 가려져 있는 건지, 그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좀 아는 사람한테, 부탁받았어. 어이 마코, 린쨩한테 인사해!“
햐우응, 하고 배라도 차인 듯 한심한 소리를 지른다. 어지간히 소심한 개 같다. 강아지일지도 모른다.
“보고 갈래?”
“으응, 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됐어.”
“그게 좋아. 방심하면 문다니까, 이 녀석”
“나도 바로 되물어 버릴 거야. 앙 하고.”
린은 귀엽게 이를 드러내며 장난을 치곤 다시 손을 흔들고 고양이 탐색을 재개했다.
그러면서도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 들린 울음소리가 예전에도 들어본적이 었는 것 같은 느낌은 정말 기분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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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입니다.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3일 간의 연휴의 첫 날 오후, 무척이나 무거운 소포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발신인은 쿠닝와(駒忍和), 중국인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극단 관계자가 배역 상의 이름으로 발송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취인에는 분명 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
“누가 장난친 건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귀찮은데”
가능하다면 오늘 하루는 마코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를 불러내서 데이트와 같은 걸 해 보고 싶었다. 그녀와의 줄어들 것 같으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데이트를 통해서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어제까지 약속을 잡았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을 계속하다가 오늘을 맞이한 것이다. 혹시 직접적으로 전화를 걸어 권유를 해본다면,
‘데이트 따윈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거잖아. 하다못해 목줄이라도 걸고 산책을 데려가 주겠다는 거면 몰라도, 아직도 우리들의 관계를 이해 못했어?’
와 같은 대답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부모님들은 두분 다 아침부터 지방 공연으로 나가 계시고, 집에는 켄지 혼자 밖에는 없다. 자신 앞으로 보내온 소포를 직접 받고 나서, 대체 뭐가 온 건지 고민했다. 그 크기만 보더라도 어린 애 한명 정도는 들어갈 정도의 박스여서, 손발을 접으면 어른이라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정도였다.
시험 삼아 박스 옆을 발로 차봤다. 내용물이 부서지는 것도 걱정되었기에, 표면이 찌그러지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일격이었다.
“으……아……앗”
안에서 들린 것은 흐릿한 신음소리였다.
귀를 기울여보니, 신음소리는 그쳤어도, 어렴풋이 공기가 새는 듯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억눌려 있다고는 해도 결코 모를 수 없는 숨 소리였다.
설마, 뭔가, 안에 있는 건가.
모르타르처럼 시커먼 예감이 심장을 압박해 온다.
“……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작은 동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말이 통하는 생물이라도 안에 들어있다면, 그거야 말로 큰일이다. 말이 안 통하는 맹수가 있는 것도 다른 의미로 큰 일이다.
경찰을 부르는 게 좋을 지도 모르지만, 만약 박스 안에 누군가 들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꺼내 주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커터 칼이나 가위를 쓰면 안쪽에 있는 물건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박스테이프를 손톱으로 찢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그 가장 위에는 상자 사이즈에 딱 맞는 골판지 판이 끼워져 있었다. 그것을 꺼내 보니, 물건을 덮고 있는 것은 핑크색 대형 타월이었다. 타월을 벗겨내니, 이번에야 말로 진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 두갈래가 덮개가 열리는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짐승의 털이 아닌, 부드러운 인간의 머리카락이었다. 그 아래엔 검은색 가죽 띠와 탁구공에 구멍을 뚫어 끈을 끼워 넣은 물건이 보인다.
가죽 띠가 가리고 있는 것은 시야, 눈을 덮고 있다.
탁구공을 물고 있는 것은 입. 입술 사이로 쉴 새없이 달콤한 향의 침이 흐르고 있따.
“으아아앗! 마, 마코오!”
한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만, 주저앉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름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야와 입이 막혀 있는 마코가 켄지의 비명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우, 우웁”
살아있는 건 다행이지만,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소리가 그 처참함을 일깨웠다.
“아아, 마코,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손발은, 손발은 괜찮아!”
이런 시츄에이션을 만화에서 본 적이 있다. 주인공에게 보내진 소포를 열어 보자, 안에는 양손과 양발이 절단당한 연인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찌만, 마코의 사지는 멀쩡했고, 수갑이 채워진 채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은 채로 골판지 박스에 쑤셔 넣어져 있을 뿐이었다.
목 주위가 깊게 파인 검은 색 스웨터와 붉은 색 체크무늬의 미니스커트, 허벅지까지 닿는 검은색 양말을 신은 귀여운 옷차림도 강제로 찢겨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무릎 아래까지 닿는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에서 유추 해보면, 외출을 했다가 납치를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켄지는 떨리는 손으로 눈가리개를 벗기면서 마음 속에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납치한 마코를 켄지 앞으로 보낸 것일까.
자신에게 보냈다는 것은 켄지와 마코의 접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마코, 괜찮아?”
그럭저럭 눈가리개를 벗기자 커다란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음에도, 날카롭게 치켜뜨고 있었다.
“입도 풀어줄게. 잠깐만 기다려.”
탁구공으로 된 부속물을 벗기고, 입에서 끄집어 내자, 타액으로 미끈한 실이 늘어졌다. 음란한 선을 그리는 점액의 움직임에 눈을 빼앗기고 있을 여유는 없다. 마코가 목이 메어하는 것을 보고, 냉장고로 달려가 병에 담긴 미네랄워터를 컵에 따라 가져왔다.
“침을 못 삼켜서 입 안이 바싹 말랐지. 기침이 멈추면 마셔.”
마코가 순순히 물을 마시는 걸 보면서, 그녀의 옆구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언제까지고 가엽게 비좁은 박스 안에 들어가 있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으윽, 하고 작은 신음이 들렸다. 이를 갈면서, 노기(怒氣)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은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만큼 더욱 가련해보였다. 그녀를 들어 올리면서 안 것은 그녀의 몸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볍다는 것이다. 가슴은 커다란데도, 어린 아이처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현관 마루에 내려놓을 생각이었지만, 이 가볍고 작은 몸으로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상상한 순간 켄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마코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온기에 팔이 녹아드는 듯 하다. 욕정과는 다른 뜨거움으로 솟구치는 충동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내가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변태라고 해도, 음란해도, 마조히스트여도── 역시 와시오 마코를 좋아하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 내가 여기 있으니까.”
“아, 으응”
아직 쇼크상태에 있는 건지, 마코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 싶더니, 갑작스럽게 집 안 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큰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이! 진짜 바보!”
머리를 서로의 어깨에 교차해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켄지의 귓가에 직격했다. 켄지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떼어냈다.
마코는 콧김을 거칠게 내쉬며 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소녀의 전신에서 불타오르는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애써서 밥상까지 다 차려놨는데,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납치감금을 하란말야!”
아아── 켄지는 탄식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켄지도 역시,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순애(純愛)로 발전할 듯한 시추에이션을 기대하고, 훨씬 있을 법한 가능성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발신인 駒忍和는 무리해서 읽자면 ‘코마오시와’라고 읽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읽으면 범인은 일목요연하다.
“……먼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그야 뭐, 어깨 같은 데가 참 뻐근했어. 맛사지 좀 해줘, 채찍으로 찰싹찰싹”
뭐, 그럼 그렇지. 체념이 배어든 한숨이 새어나올 것 같았지만, 꿀꺽 들이 삼켰다.
S다. 지금은 진성 S가 되는 거다. 이 여자는 진성 S가 아니면 제대로 상대할 수가 없다.
오로지 괴롭히고 괴롭혀서, 마코가 히익히익 기뻐하면서 스스로 “연인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할 때까지 만족시켜 주는 것 말고는 지금의 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S라기 보다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켄지는 마코마코단의 감시에 대한 대책으로 집 안 전체의 커튼을 닫았다.
요즘은 마코의 주변뿐만 아니라, 켄지의 주변에도 단원이 잠복해 있는 기색이 있다. 어젯밤, 자신의 방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집 앞 도로에 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를 한 여자 아이가 경찰에 불심 검문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밖으로의 시선을 모두 차단한 켄지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마코가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돌아왔다. 박스 한쪽 구석에 성인용품이 담긴 가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예전 첫경험때도 썼던 목걸이와 사슬을 꺼내, 마코에게 걸었다.
“흐, 흐흥, 약간은 이해했구나. 암캐를 다루는 방법을.”
짐짓 허세가 섞인 웃음이 부르르 떨린 것은 환희로 전신이 저려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짝 목줄을 당긴 것만으로 숨이 막혀하면서 묶여있는 팔다리로 기어서 뒤를 따라 온다.
주방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거실로 들어온 켄지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이 집 한 채를 지은 부모님들께 마음 속으로 사죄하면서, 잘난 척 하듯 소파에 거만스럽게 몸을 뒤로 젖히면서 앉았다.
“그래서, 암캐. 넌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한건데?”
“당연하잖아.”
마코는 마루에 네발로 엎드린 채, 자랑하듯이 콧날을 씰룩거렸다.
“모처럼의 휴일이잖아. 주인님에게 마음껏 당할 생각으로 큰 결심을 하고 온 거야.”
주인님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문장의 표면적 의미만 생각하니까 복잡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럴 때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고, 그녀 나름대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해석하고 마음을 바로 잡는 거다.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마코는 부모님께서 오페라를 보러가자고 권하셨지만,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면서 억지로 거절한 모양이었다. 부모님들은 연휴 마지막까지 돌아오시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비우고 있어도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골판지 박스는…… 혼자서 닫을 수 없었을텐데, 어떻게 한거야?”
“그냥 협력자가 생겼어. 아, 절대로 주인님에게 강간당했던가, 기쁘게 조교를 당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폭로하지 않았어. 단지, 츠루가 같은 애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는 없다면서 부탁했지.”
“수갑을 봤다면 변명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당연히 박스 안에 갇힌 다음에 채운 거지. 다리나 손이 저려서 힘들었단 말야. 주인님 때문에 정말 아팠어. 진짜 흥분했어. 어떻게 책임 져 줄거야?”
“동정할 여지가 없잖아. 자업자득인데.”
목줄을 잡아 당겨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한 볼을 꼬집었다. 이건 칭찬이다. 일부러 고통(이라고 생각해두자)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집을 찾아와 준 기특한 암노예에 대한. 물론 마코는 만족스럽게 눈 웃음을 지었다.
상자 속에 담겨 우편으로 배송되어 오는 작전은 확실히 마코마코단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최적의 시도였다. 만약 평범하게 집을 나섰다가 들켰다면, 도중에 따돌린다고 하더라도 집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남는다. 처음부터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걸로 한다면, 의심받을 가능성도 적다.
다른 문제가 산처럼 쌓여있는 듯 한 기분도 들지만, 본인도 만족한 것 같으니 이론은 접어두자.
(우리 집에서 단 둘이 있다는 것도 꽤 좋구나. 약 오르겠지, 츠루가)
사복 차림의 마코를 지그시 보고 있으니, 일종의 신선한 느낌까지 느껴졌다. 스웨터에 미니 스커트와 무릎까지 오는 양말, 검정과 빨강으로 교복보다 심플한 차림이기 때문인지, 마코의 작은 몸이 얼마나 밸런스가 좋은 몸매인지 잘 알 수 있다. 균형 잡힌 모델체형은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한눈에 반해버릴 것 같은 가련한 몸매다.
검은색 스웨터는 얇은 울 재질이라 그녀의 몸에서 유일하게 밸런스를 깨고 있는 풍만한 가슴의 굴곡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푹 파인 가슴팍에 엿보이는 하얀 쇄골이 여자다운 살집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 소녀가 치켜 올라간 눈매로 올려다보고 있으니 껴안고 마구 주물러대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디까지나 귀여워하고 싶다는 것이지, 괴롭히고 싶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오차범위 내라고 간주하자.
“일부러 이렇게까지 했으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일부러 차가운 말투로 내려 보는 듯한 말을 하면서 가는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윽, 주인님, 설마 마음이 내켰어? 흐~응, 평소엔 이러니저러니 잔소리만 해대더니, 자기 집이라고 갑자기 거드름을 피우다니, 참나, 하긴 똥개도 자기집에서는 절반은 먹고간다더니.”
경멸스러운 말투도 체벌을 기대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눈초리를 치켜올려봤자 소용없는 일이나 평정을 유지한 채, 그녀의 턱을 잡고 손가락으로 뺨을 눌렀다. 입가가 일그러지는 모습에 정열적인 구음(口淫)이 떠올라 약간 사타구니가 뜨거워진다.
“노예라면 노예다운 말투를 써야지.” “오, 오오, 뭐, 뭐야 그건, 뭐야 그 거만한 말은. 완전 잘난 척, 자기 집이라고 기세등등한데, 우와, 무서워~”
“잘난 척 하는 건 너잖아”
그녀의 머리를 아래로 짖눌러, 카페트에 얼굴이 닿을락 말락할 정도에서 멈추었다.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부딪히더라도 상관없다는 각오---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을 크게 환영하는 마음가짐때문일 것이다.
“발을 핥아, 양말도 벗기고.”
진성 M인 마코에 대해서 이 정도의 명령은 인사 대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이든지 인사는 중요한 것이다.
“후, 흐흥, 평소랑은 태도가 너무 달라서 잠깐 당황했지만, 좋아. 내가 정진정명의 마조히스트 개(犬)라는 증거를 보여 줄게. 놀라서 뒤로 자빠질 정도로 혹독하고 철저하게 조교해줘!”
마코는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켄지의 오른 발을 조심스레 잡아 들고, 양말을 벗겨갔다. 겨울철이라 그다지 땀을 많이 흘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결코 좋은 냄새가 나는 부분은 아닌데도 그녀의 눈은 달콤한 향기라도 맡은 듯이 녹아내려간다.
“츄읍, 응……짭짤해……슈룹, 쪼옥”
타액으로 끈적한 물소리를 내면서 사쿠란보의 과육처럼 선명한 색의 혀가 발가락 끝을 미끄러져 간다. 냄새나는 때가 낀 발가락 사이까지 핥아지니 켄지는 등골이 오싹한 쾌감에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렇게 맛있냐?”
“맛없는 게 당연하잖아…… 맛없으니까 괜히 두근두근해지는 게 메조 노예라고.”
단지 발을 핥고 있는 것만으로 마코의 허리는 색기를 품고 작게 흔들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혀를 내밀어 핥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발가락을 입 안에 머금고 빨기 시작했다. 발가락과 입술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빨간 점막을 보고 있으니, 거부할 수 없는 음탕한 기분이 켄지의 안에서 점점 ?어져 간다. 간지러움이 쾌감으로 변하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눈 앞에 보이는 마코의 모습이 평소보다 작아 보인다. 그야말로 토끼나 다람쥐처럼.
(너무 괴롭혔다간, 정말로 망가져버릴 것 같아.)
두려움과도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여느때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뜨거운 충동과 같은 생각이 정수리를 찌른다.
(울 때까지 사정없이, 울더라도 멈추지 않고 엉망으로 괴롭히고 싶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 한 순간, 시야가 좁아지며,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 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바래버린 것 같더니 "자지가 청바지를 뚫을 듯 꼴여 있어서 아파"하고, 현실도피를 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거냐?
자문자답과 함께 천천히 시야가 회복되었다.
눈 아래에는 마코가 아까보다 더욱 엎드려 있었다. 바닥에 뺨을 문질리며, 위로 든 엉덩이를 부들부들 경련시킨다. 그녀의 머리를 밟아 바닥에 누르고 있는 것이 자신의 발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횡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의 발이 맛없다니, 지가 퍽이나 잘난 줄 아네. 차라리 개새끼가 더 예의가 바르겠다. 더 더러운 건 네 침이잖아. 냄새라도 배면 어쩔 거야.”
“하앗, 아아아……! 자, 잘못했어요, 주인니임”
“사죄한다고 해서 용서해 줄 수는 없지”
머리를 짖밟은 채로 쇠사슬을 끌어당기자, 움직일 수 없는 목에 개목걸이가 파고 들어 마코의 입에서 헛구역질과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신음이 기침으로 바뀐 뒤에도 켄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때, 괴롭냐?”
“괴, 괴로, 콜록, 크헉, 머, 멋진 학대엣, 쿨럭”
“더 괴롭혀 줬으면 좋겠냐?”
“크헉, 왜, 왠지 너, 오늘은 진짜 이상해졌, 쿨럭, 허억, 자, 잠깐만 기다악”
“못 기다려.”
발을 머리에서 떼고 그 대로 사슬을 당겨 머리를 들어 올렸다. 기침을 삼킨 마코의 얼굴을 부풀어 오른 사타구니로 잡아당겨, 청바지 너머의 열원을 입가에 문질렀다.
“요놈도 암퇘지의 구멍에 찔러 넣는 바람에 더러워졌어. 너 때문이라고. 너는 암퇘지니까, 나한테 수간을 시킨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그, 그런 식의 말투는 심하게 제 취향이기는 하지만,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 암컷 노예 와시오 마코는 당황을 숨길 수 없습니다……”
“시끄럽게 꿀꿀대지마, 진짜!”
있는 대로 따귀를 날렸다.
따귀를 맞이한 것은 두려움과 희열이 섞인 채로 올려다보고 있는 눈빛이었다.
(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이성적인 사고와 미쳐 날뛰는 욕망이 부딪혀 불꽃을 흩뿌린다.
여자 애를 상대로 있는 힘껏 뺨을 때린 행위는, 아무리 뭐라도 심했다. 엉덩이에 스팽킹을 하는 것은 플레이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얼굴에 따귀를 때리는 것은 장난으로 끝내기는 어렵다는 느낌이다.
혼신을 다해 폭주하는 오른 손을 멈추게 했다. 그와 함께, 말투도 표정도 비디오를 되감는 것처럼 켄지의 제어 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 타임!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켄지는 목걸이에 걸린 사슬을 던져 놓고 도망 나왔다. 복도로 맹렬하게 뛰쳐 나와 계단을 올랐다.
“에엣, 아 저기, 방치가 너무 갑작스럽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약올리는 건 SM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
마코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듯하더니, 무언가 장렬하게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지만, 지금은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된다. 연기가, 연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아마도 손발이 수갑에 채여 있는 상태에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있는 대로 넘어져 구른 모양이다. 꽤나 아프기는 하겠지만 괜찮다. 그녀는 마조히스트니까.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가자,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는데도, 무거운 물건을 끄는 듯한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더니, 방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호러 영화에 이런 식의 시추에이션이 있었지, 하고 냉정함을 가장한 사고를 표층의식에 떠올렸다.
“이, 이 주인님 자식! 방치플레이에도 무드라는 게 있잖아!”
“마코한테 무드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약간 충격이야.”
“뭐야, 딱 아슬아슬 할 때까지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헤타레S! ED! 하여튼 머리를 짓밟혔을 때는 가볍게 가버렸는데! 그런 분위기로 플레이를 계속해줄 것을 희망합니다!”
문 너머에서 밀어부쳐오는 압력이 느껴졌다. 마코가 문짝 바로 너머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깨닫자, 아무래도 초조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방금 전까지 하던 것을 계속하고 싶다는 악마와도 같은 충동이 가슴에 파고들고 있으니, 괜한 조바심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로 잠깐만 진정하자. 마코도 약간 겁먹었잖아.”
“겁주기 위한 플레이 아니었어?”
진심이었습니다. 라고 고백 할 수 있을 만큼 켄지가 좀 전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퍼졌다.
“……설마, 질려버린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거짓말.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알고는 있어. 네가 나를 위해서 연기해주고 있다는 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을 우물거리고 말았다.
그저 순간적인, 두 번째 침묵.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는 침묵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켄지가 알아챈 것은 마코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우으으으…… 역시 연기였구나.”
키타노 켄지는 지극히 일반적인 소년이다. 일반적이라는 개념에도 범위는 있지만, 인기가 있고 없고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인기가 없는 인종이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울린 경험 따위는 없다. 코를 훌쩍거리고 울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게 되었으니, 동요하지 않을 리 없다.
“알고는 있어…… 내 취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그래도, 할 수 없잖아. 어쩔 수가 없단 말야. 이제 와서 고칠 방법이 없는 데.”
대답을 해줄 수가 없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연기로 냉정함을 가장하고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애드립을 풀어놓는 것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뭐야? 여자 애가 마조이면 안되는 거야? 내가…… 켄지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는 거냐고!”
약간 공격적인 말투가 되어 있었지만, 울먹이는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거야 말로 오히려 괴롭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할 말을 고를 수 없었기 때문에 켄지는 마침내 포기했다.
“안 될 리가 없잖아!”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히자, 마코가 애벌레처럼 대꿀대꿀 굴러 들어왔다. 켄지는 차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목사슬을 주워 억지로 잡아당겨 그녀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눈물에 젖은 마코의 얼굴을 코앞으로 끌어당겨 마주본 채 노려보았다.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맡긴 것이다. 지금은 본능에 따라 자신을 내보이는 것 말고는 마코와 마주 대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익숙하지 못할 뿐이야! 그런 거에 일일이 울지마! 오히려 마조라면 기뻐해야지!”
“뭐, 뭐야! 갑자기 텐션을 높여도 곤란하잖아!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주인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스럽잖아!”
“다루는 건 주인님이 할 일이야! 이젠 진짜로 용서해주지 않을 거야! 나도 그다지 S 기질이 제로인 건 아니란 말야!”
마코를 끌어 당겨 계단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양손과 양발이 묶여있는 채로 그녀를 내려가는 계단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무서웠기에, 있는 힘껏 끌어안아 올렸다.
“꺄앗, 자, 잠깐! 뭐야! 이 자세는!”
“공주님 안기잖아!‘
마코가 로맨틱한 자세를 좋아할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울상인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오르는 것은 예상대로였지만, 거만한 주인님이 노예의 불만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발버둥치던 그녀도, 1층에 도착했을 때에는 얼굴을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말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지간히 부끄러웠던 모양이지만, 켄지의 팔 역시 마찬가지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체구에 가볍다고는 해도 수십킬로는 나가는 몸이니까 힘든게 당연하다.
“아우우…… 이런 건 주인님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야……”
라고 하는 가는 속삭임에, 켄지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약간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순간, 품 안에서 버둥거리던 마코를 놓아버렸다.
“흐갸악”
마코가 엉덩이부터 떨어지면서 새끼고양이처럼 비명을 질렀다. 수갑 때문에 엉덩이를 쓰다듬지도 못하고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건방진 눈초리를 하다니! 이렇게 된 이상,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내 S력을 보여주겠어!”
“어차피 연기면서! 알고 있다니까!”
뭔가 형세가 이상해진 것 같았지만, 켄지는 억지로 자신을 세우려는 듯 마코의 목줄을 잡아당겼다.
*
아마노 린이 기르는 고양이는 바로 집에서 없어져버렸다.
배트라는 명칭이 잘못된 건지 메이저리그의 홈런보다 먼 곳까지 달아나서 며칠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지가 야구공도 아니면서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처럼 3일 간의 연휴가 고양이를 찾는 일로 보내게 된 것도 부모님에게 억지를 써서 야생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한 린의 자업자득이었다. 린은 초등학생치고는 책임감이 강한 소녀였다.
두꺼운 파카에 레깅스라는 가벼운 차림으로 집에서 나오자 옆집의 키타노 켄지가 정원에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울타리 사이로 보였다.
“안녕, 켄 오빠”
정원 구석에서 조립식 창고와 안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켄지에게 담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 켄지는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린은 켄지가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이 좋았기에,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로 응답했다. 고양이 탐색은 급한 것도 아니었고, 가정교사가 올 때까지만 끝내면 괜찮았다.
“켄 오빠, 또 소품 만드는 일을 돕는 거야?”
“응 조금”
아버지의 극단에서 소품을 만드는 것을 돕는 켄지의 모습은 휴일에 자주 볼 수 있었다. 키타노 가의 인간은 손재주가 좋아서 린네 집 정원에 나무 탁자를 만들 때도 가족 전부가 도와주었다. 여담이지만, 못 박는 법을 가르쳐 줄 때의 켄지가 묘하게 멋져 보였던 것이, 린의 첫 사랑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린쨩. 고양이는 찾았어?”
“찾아도 금방 없어져. 근처에 누구랑 친해진 걸까.”
“나 아직 그 고양이 본 적이 없으니까, 잡으면 보여줘.”
으차, 하고 기합을 넣으면서 켄지는 커다란 푸대를 안채로 들고 간다. 아오, 하고 기묘한 울음소리가 안채 쪽에서 들려왔다. 사랑하는 사육주가 그리워하는 개가 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켄 오빠, 언제 개를 키웠어?”
정원 쪽으로 뚫려 있는 환기창 그늘에 가려져 있는 건지, 그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좀 아는 사람한테, 부탁받았어. 어이 마코, 린쨩한테 인사해!“
햐우응, 하고 배라도 차인 듯 한심한 소리를 지른다. 어지간히 소심한 개 같다. 강아지일지도 모른다.
“보고 갈래?”
“으응, 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됐어.”
“그게 좋아. 방심하면 문다니까, 이 녀석”
“나도 바로 되물어 버릴 거야. 앙 하고.”
린은 귀엽게 이를 드러내며 장난을 치곤 다시 손을 흔들고 고양이 탐색을 재개했다.
그러면서도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 들린 울음소리가 예전에도 들어본적이 었는 것 같은 느낌은 정말 기분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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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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