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이와 녀석들이 숙소로 돌아온 것은 저녘이 되면서였다.
들어오자마자 4명은 옆방에 앉아 즐겁게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아영이는 그렇게 햇볕에 있었는데 별로 타지가 않았네. 흰 피부 그대로야"
"난 충분히 선크림 바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아까보다는 조금 탔는걸. 그런데 너네는 엄청 탔네. 특히 우진이"
"나? 난 원래 피부가 검해. 하지만 오늘은 그래도 유난히 탄듯하네. 수영복 입고 있는 곳이랑 이렇게 다르다.봐봐"
"와아.. 정말이네. 그런데 남자는 좀 햇볕에 좀 타는게 건강하고 보기 좋아보여."
"그렇구나. 그런데 아영이 너는? 조금만 보여줘. 나도 보여줬잖아."
"어? 으응.."
"오! 선택 자국 확실히 있네. 아영이 피부 진짜 하얗다. 좀만 더 내려서 보여줘봐."
"더 이상은 안되~"
"에이~ 조금만 더 보여주지"
"훗, 짓궂다.너네.아. 맞다. 진수 좀 보고 올게."
녀석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가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왔다.
이때의 나는 당연히 질투하고 있었다.
녀석들과 노는것에 열중해서 나 같은 건 잊은 모양이군. 어차피 아영이는 여자친구로서의 의무감에서 나의 모습을 보러온거겠지.
"진수야, 몸 상태 어때? 좋아졌어?"
나는 아영이에게 말을 하지 않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는 척을 했다.
유치한 행위라고 자각하면서도, 지금의 나에게는 질투를 감추기 위해 그 정도의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녀석들과 즐겁게 보내고 기분이 업 되 있는 아영이와 대화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진수야 자?"
"......."
눈을 감았다. 아영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 보는게 느껴진다.
아영이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자고 있는것 같애."
"그래? 그대로 자게 내비둬. 푹 자야지 낫지."
"응"
"그나저나 아영아 저녘은 어떻게 할거야? 식사라던지. 진수랑 어디간 갈 예정 있었어?"
그랬다. 오늘도 레스토랑의 예약은 있었다.
눈앞에서 스테이크를 구워주는 가게.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평판을 인터넷에서 보고 아영이와 먹기로 했었다.
"아.. 응. 일단은. 어떻게 할까.. 진수는 지금 소화가 잘 안되서 고기는 먹지 못할테고."
그렇다. 만약 내가 가서 스테이크를 먹고 소화 불량을 일으켜서 가게에서 쓰러지면 또 아영이와 녀석들에게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
"그럼 말이야. 그 가게는 오늘 그냥 가지마. 아영아. 우리들 펜션으로와. 우린 오늘 케이터링서비스 예약되어있거든. 일인분정도는 말하면 더 늘릴수 있어"
"케이터링? 와~ 좋겠다."
"요리사가 와서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주방에서 만들어 주는거야. 너도 와."
"어떻게 할까..흠.."
"언제 그런걸 먹어 보겠어. 먹으러 와"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아영이는 분명하게 그렇게 말했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런 말을 하면 난 이제 멈출 수 없다.어제도 말했듯이 아영이는 여행을 즐길 권리가 있다.
아영이가 여행경비의 절반을 냈으니까. 내가 "가지 마"라고 말 할수 없다.
"그럼 진수에게 물어보고 올게"
가버리면 되잖아. 내 일은 신경쓰지 말고.
"진수야.."
다시 방에 들어온 아영이가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한다.
나는 방금 일어난듯이."응? 왜"라고 연기를 했다.
"몸 상태는 어때?"
"조금 괜찮아졌어.그렇지만 아직 더 쉬어야 될 것 같애. 내일 또 악화 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더 자. 저기.. 근데.. 오늘 밤에 레스토랑 예약있는데 배 아픈건 어때?"
"레스토랑? 아~ 그렇구나. 스테이크였지? 무리일것같애. 미안"
"으응, 난 괜찮은데 취소해버리니까 좀 그렇다."
나는 아영이가 다음에 무엇을 말할건지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대화를 진행했다.
"그래서.. 진수야. 찬영이네가.."
"다녀와"
"응?"
"나는 더 자고 싶어. 걔네들이 아영이 너랑 같이 식사하면 아영이 너도 맛있는거 먹을 수 있잖아. 안그래? 다녀와"
나는 자포자기 했다.
어차피 아영이는 나와 있는 것보다 녀석들과 떠들썩하게 노는 것이 즐거운걸까?
"그래도 좋아..?"
"좋기보다는 아까 먹은 약 때문에 계속 졸려."
"아, 미안.. 그럼 다녀 올게."
아영이는 내 기분이 나빴다고 인식했을것이다.
아영이가"왜 화난 표정이야?"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영이는 그 이유를 듣지 않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진수가 뭐래?"
"진수가 가도 된대."
"좋아. 바로 갈까"
"너네들 펜션이 여기서 가깝지?"
"어, 가까워, 여기 창문에서도 보여.저기 하얀 건물이니까."
"헤에, 가까웠구나. 와아 멋진 건물이네."
"여기서 걸어서 5분 정도 되나. 아영아 빨리 준비하고 나와."
"응, 빨리 샤워하고 옷 갈아 입고 나갈게"
아영이는 이제 나를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대화를 하고 있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즉시 녀석들에게로 갔다.
....이제 우린 끝인 걸까....
나는 얕은 잠 속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는 꿈이었다.
"김진수, 너에게 줄거 있다."
"어? 뭐야 이거?"
"아영씨가 가고 싶어하던 콘서트 티켓. 자 2장."
"이걸 왜 나한테?"
"바보냐, 아영씨랑 둘이서 다녀 오라는 뜻이잖아. 임마"
친구에게 받은 콘서트 티켓. 이 친구는 내가 아영이를 좋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계속 응원 해주고 있었다.
만약 이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영이랑 사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도 슬슬 아영씨에게 고백하지 않으면 아영씨, 딴 놈에게 간다. 여기 콘서트장에서 고백해. 지금 분위기 좋은 것 같으니까 말이야."
"고맙다."
"참고로 말해두는데, 그거 표 얻기 개어려웠다. 내가 개고생한거 헛수고로 만들지 마."
아영이가 좋아하던 유명한 해외 가수의 무대. 마침 딱 내한공연을 하는데 좌석수가 적어서 구하기 힘든 티켓이었다.
당일 날 팬인 아영이도 표를 구하지 못했을 정도니까.
아영이와 나는 같이 아르바이트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나이도 같애서 서로 편하게 이름부르는 사이였지만 큰 접촉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나를 위해 어렵게 마련해주었다.
친구가 기회를 준 것은 고맙지만 나름대로 압박감도 느꼈다.
나에게 있어서 고백은 처음이었으니까.
"어! 그 티켓 진수가 구한거야?"
"응,.. 나랑 같이 갈래?"
"응,좋아."
"정말?"
아영이는 나의 권유에 OK해주었다.
고맙다. 친구야.
"몰랐었어. 진수 너도 팬이었다니."
"어..그렇네."
"우리 취미도 맞네. 헷"
말을 마칠 때 혀를 살짝 내미는 아영이. 귀엽다...
실은 나는 팬은 커녕 그 해외가수 이름도 잘 몰랐다.
하지만 왠지 아영이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했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콘서트에 가기 전에 몇장 앨범을 사서 그 가수의 정보를 숙지해서 아영이와 대화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해?"
라고 물으면, 나는 앨범에 있던 노래를 아무거나 하나 말하고, 아영이가 "아, 그 노래 나도 좋아." 라고 맞장구 치는 형식의 그런 대화.
나는 계속해서 아는 척을 했고 콘서트에 들어갈때까지 우리 둘의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당일날, 우리는 역에서 만나고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그날의 아영이를 나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뭐니 뭐니해도 그날 아영이는 귀여웠다.
복장도 아르바이트에 올 때와는 달리 예쁘게 하고 머리도 꾸미고 하여튼 인형 같았다.
원래 좋아했던 아영이에게 한번 더 반해 버렸다.
나는 전철에 타고 있는 동안에도 아영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응?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이런 일을 여러번 반복했다.
내가 아영이와 데이트를 하다니 꿈만 같군. 콘서트장은 광분의 현장이었다. 나느 솔직히 이런 콘서트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분위기에 몰입되지않았다.
하지만 좋다. 옆에 있는 아영이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 만족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무대를 보고 있는 아영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오늘 꼭 아영이에게 고백하는거야. 실패란 없다.
나는 아영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넘칠 것 같은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내 몸 속에 가두지 못하겠어.
돌아오는 길.
우리는 콘서트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아영아, 콘서트 좋았지?"
"응,대만족이야. 진수야, 오늘 고마워, 정말 즐거웠어."
"나도 즐거웠어. 역시 집에서 듣는거랑 확연히 차이나네. 소리가 몸 전체에 울리는 것 같애"
내가 그렇게 말하니 웃는 아영이.
"풉, 진수, 너 진짜 즐거웠어?"
"어? 진짜야. 즐거웠어."
아영이는 갑자기 멈춰서서 내 앞에 다가와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뭔가를 의심하는 표정.
"진수, 너 사실 팬 아니지?"
"뭐?"
"사실 노래 같은거 전혀 모르고 대부분 들어본적도 없지?"
"그렇지 않아.. 나는..."
아영이에게 정곡을 찔려 바로 변명할 거리를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도중에 포기했다.
"...미안"
"역시 그랬구나. 그럼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것도 거짓말이었다는거지?"
약간 화가난 표정으로 말하는 아영이.
"....."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아영이에게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던 내 자신이 그저 부끄러웠다.
게다가 전부 간파당하고 있었다니.
그때 갑자기 아영이가 킥킥 웃기 시작했다.
나는 아영이가 왜 웃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아영이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배를 부여잡고 계속 웃었다.
"왜.. 그러는데?"
"음.. 왠지 거짓말인데 거짓말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어."
"..귀엽다고?"
"응"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는 보도블럭의 가장자리 단 위로 올라가서 양손을 좌우로 벌려서 평행자세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거짓말 따위 할 필요 없었는데.."
"응?"
"사실 콘서트 이런거 상관없이 진수 너랑 둘이서 간다고 해서 좋았어."
아영이는 다시 멈춰 서서 내 쪽으로 돌아 보았다.
"그러니까 거짓말 할 필요 없었다고."
이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어쨋든 다시 한번 아영이의 얼굴을 본 순간 부터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이 두근 두근 크게 울렸다.
그리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얘기 해야돼.
"아영아.. 나는.."
거기까지 말하자 나머지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간신히 말했다.
"난.. 아영이 너가 좋아."
그때 우리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주변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기에 왠지 그 순간 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그러니까 너만 좋다면 나랑 사귀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아영이었지만 내가 고백하니 입을 다물었다.
아마 5초에서 10초정도 그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거절하려고 할지 고민하고 있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몇초의 침묵 후 아영이가 입을 열어 한 말은 나와 같았다.
"나도.. 진수 너가 좋아."
고개를 든 아영이의 표정은 웃는 얼굴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믿을 수 없었다. 아영이의 대답에 나는 놀랐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몰라서 다시 한번 물었다.
"저..정말?"
"응, 사실이야. 난 거짓말쟁이 아니야. 진수 너야말로 나 진짜 좋아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해오는 아영이. 나는 기쁘고 아영이의 그 미소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무심코 아영이의 몸을 꽉 끌어 안았다.
"아!"
"아, 미안 아팠어?"
"으응, 조금 놀래서 그래. 그 상태로 있어줘. 남자에게 안긴거 처음이야."
"나도 처음이야"
"그렇구나. 우리 둘다 처음이네."
"응"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정말 좋아."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마 5분정도 이대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후, 우리는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아~ 왠지 믿을 수 없어. 너가 내 여자친구가 되다니."
"나도 너가 남자친구가 되다니 꿈 같아. 나 오늘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가 처음이라서 옷 고르는 데도 시간 오래 걸렸다니까"
"그랬구나."
"너 아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같은거 물어볼 때 얘기 맞추는라 힘들었지?"
"하하, 그렇지. 언제 알았어? 내 거짓말."
"첨부터 좀 뭔가 느낌은 있었는데 콘서트장에서 너가 스테이지는 잘 안보길래, 그래서 아,별로인가보구나.라고 생각했지."
"그럼 모르고 있었어? 내가 어디 보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어. 내가 진수 니 시선이 신경쓰여서 집중을 못했다니까."
"그래, 미안. 그럼 나중에 또 내한공연하면 그때 보러갈까?"
"응. 근데 다음은 언제 올지 몰라. 이제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구나.. 그럼 어쩌지."
"상관없어, 난 오늘 즐겁고 진수 너랑 있으니까 행복해."
"나도 너랑 있으니까 좋다."
"아~왠지 행복해, 애인이 있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우리들은 그날 밤 대화를 나누며 긴 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둘이 손을 잡고 "우리 계속 함께 있자"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방안.. 아영이는?..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 지금 아영이의 상황을 생각해 낸 순간 나는 불안해졌다.
아영이가 녀석들에게. 나는 자고 있던 모습 그대로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앞으로도 계속 아영이와 함께 있고 싶어. 아영이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달렸다.
"하아. 하아.. 아영아.."
밖은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두워 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잤던 거 같다.
나는 필사적으로 녀석들의 펜션을 찾아다녔다.
근처에 있는 흰색 건물. 그러다 몇 분 안에 흰색의 작고 멋진 건물을 발견했다.
여기인가...?
여기까지 힘차게 왔지만 이제 어떻게하지? 아영이를 부르고 돌아가면 되는건가.
나는 남자친구니까 그럴 자격이 있어.
나는 건물의 문 앞에서 잠시 생각했다. 그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의 목소리다. 역시 여기였다.
귀를 기울이니 아영이의 목소리도 들린다.
"자..잠깐. 우진아. 갑자기 왜 옷 벗는거야? 빨리 다시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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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화부터 이제 시작되는군요.
들어오자마자 4명은 옆방에 앉아 즐겁게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아영이는 그렇게 햇볕에 있었는데 별로 타지가 않았네. 흰 피부 그대로야"
"난 충분히 선크림 바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아까보다는 조금 탔는걸. 그런데 너네는 엄청 탔네. 특히 우진이"
"나? 난 원래 피부가 검해. 하지만 오늘은 그래도 유난히 탄듯하네. 수영복 입고 있는 곳이랑 이렇게 다르다.봐봐"
"와아.. 정말이네. 그런데 남자는 좀 햇볕에 좀 타는게 건강하고 보기 좋아보여."
"그렇구나. 그런데 아영이 너는? 조금만 보여줘. 나도 보여줬잖아."
"어? 으응.."
"오! 선택 자국 확실히 있네. 아영이 피부 진짜 하얗다. 좀만 더 내려서 보여줘봐."
"더 이상은 안되~"
"에이~ 조금만 더 보여주지"
"훗, 짓궂다.너네.아. 맞다. 진수 좀 보고 올게."
녀석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가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왔다.
이때의 나는 당연히 질투하고 있었다.
녀석들과 노는것에 열중해서 나 같은 건 잊은 모양이군. 어차피 아영이는 여자친구로서의 의무감에서 나의 모습을 보러온거겠지.
"진수야, 몸 상태 어때? 좋아졌어?"
나는 아영이에게 말을 하지 않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는 척을 했다.
유치한 행위라고 자각하면서도, 지금의 나에게는 질투를 감추기 위해 그 정도의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녀석들과 즐겁게 보내고 기분이 업 되 있는 아영이와 대화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진수야 자?"
"......."
눈을 감았다. 아영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 보는게 느껴진다.
아영이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자고 있는것 같애."
"그래? 그대로 자게 내비둬. 푹 자야지 낫지."
"응"
"그나저나 아영아 저녘은 어떻게 할거야? 식사라던지. 진수랑 어디간 갈 예정 있었어?"
그랬다. 오늘도 레스토랑의 예약은 있었다.
눈앞에서 스테이크를 구워주는 가게.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평판을 인터넷에서 보고 아영이와 먹기로 했었다.
"아.. 응. 일단은. 어떻게 할까.. 진수는 지금 소화가 잘 안되서 고기는 먹지 못할테고."
그렇다. 만약 내가 가서 스테이크를 먹고 소화 불량을 일으켜서 가게에서 쓰러지면 또 아영이와 녀석들에게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
"그럼 말이야. 그 가게는 오늘 그냥 가지마. 아영아. 우리들 펜션으로와. 우린 오늘 케이터링서비스 예약되어있거든. 일인분정도는 말하면 더 늘릴수 있어"
"케이터링? 와~ 좋겠다."
"요리사가 와서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주방에서 만들어 주는거야. 너도 와."
"어떻게 할까..흠.."
"언제 그런걸 먹어 보겠어. 먹으러 와"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아영이는 분명하게 그렇게 말했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런 말을 하면 난 이제 멈출 수 없다.어제도 말했듯이 아영이는 여행을 즐길 권리가 있다.
아영이가 여행경비의 절반을 냈으니까. 내가 "가지 마"라고 말 할수 없다.
"그럼 진수에게 물어보고 올게"
가버리면 되잖아. 내 일은 신경쓰지 말고.
"진수야.."
다시 방에 들어온 아영이가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한다.
나는 방금 일어난듯이."응? 왜"라고 연기를 했다.
"몸 상태는 어때?"
"조금 괜찮아졌어.그렇지만 아직 더 쉬어야 될 것 같애. 내일 또 악화 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더 자. 저기.. 근데.. 오늘 밤에 레스토랑 예약있는데 배 아픈건 어때?"
"레스토랑? 아~ 그렇구나. 스테이크였지? 무리일것같애. 미안"
"으응, 난 괜찮은데 취소해버리니까 좀 그렇다."
나는 아영이가 다음에 무엇을 말할건지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대화를 진행했다.
"그래서.. 진수야. 찬영이네가.."
"다녀와"
"응?"
"나는 더 자고 싶어. 걔네들이 아영이 너랑 같이 식사하면 아영이 너도 맛있는거 먹을 수 있잖아. 안그래? 다녀와"
나는 자포자기 했다.
어차피 아영이는 나와 있는 것보다 녀석들과 떠들썩하게 노는 것이 즐거운걸까?
"그래도 좋아..?"
"좋기보다는 아까 먹은 약 때문에 계속 졸려."
"아, 미안.. 그럼 다녀 올게."
아영이는 내 기분이 나빴다고 인식했을것이다.
아영이가"왜 화난 표정이야?"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영이는 그 이유를 듣지 않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진수가 뭐래?"
"진수가 가도 된대."
"좋아. 바로 갈까"
"너네들 펜션이 여기서 가깝지?"
"어, 가까워, 여기 창문에서도 보여.저기 하얀 건물이니까."
"헤에, 가까웠구나. 와아 멋진 건물이네."
"여기서 걸어서 5분 정도 되나. 아영아 빨리 준비하고 나와."
"응, 빨리 샤워하고 옷 갈아 입고 나갈게"
아영이는 이제 나를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대화를 하고 있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즉시 녀석들에게로 갔다.
....이제 우린 끝인 걸까....
나는 얕은 잠 속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는 꿈이었다.
"김진수, 너에게 줄거 있다."
"어? 뭐야 이거?"
"아영씨가 가고 싶어하던 콘서트 티켓. 자 2장."
"이걸 왜 나한테?"
"바보냐, 아영씨랑 둘이서 다녀 오라는 뜻이잖아. 임마"
친구에게 받은 콘서트 티켓. 이 친구는 내가 아영이를 좋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계속 응원 해주고 있었다.
만약 이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영이랑 사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도 슬슬 아영씨에게 고백하지 않으면 아영씨, 딴 놈에게 간다. 여기 콘서트장에서 고백해. 지금 분위기 좋은 것 같으니까 말이야."
"고맙다."
"참고로 말해두는데, 그거 표 얻기 개어려웠다. 내가 개고생한거 헛수고로 만들지 마."
아영이가 좋아하던 유명한 해외 가수의 무대. 마침 딱 내한공연을 하는데 좌석수가 적어서 구하기 힘든 티켓이었다.
당일 날 팬인 아영이도 표를 구하지 못했을 정도니까.
아영이와 나는 같이 아르바이트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나이도 같애서 서로 편하게 이름부르는 사이였지만 큰 접촉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나를 위해 어렵게 마련해주었다.
친구가 기회를 준 것은 고맙지만 나름대로 압박감도 느꼈다.
나에게 있어서 고백은 처음이었으니까.
"어! 그 티켓 진수가 구한거야?"
"응,.. 나랑 같이 갈래?"
"응,좋아."
"정말?"
아영이는 나의 권유에 OK해주었다.
고맙다. 친구야.
"몰랐었어. 진수 너도 팬이었다니."
"어..그렇네."
"우리 취미도 맞네. 헷"
말을 마칠 때 혀를 살짝 내미는 아영이. 귀엽다...
실은 나는 팬은 커녕 그 해외가수 이름도 잘 몰랐다.
하지만 왠지 아영이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했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콘서트에 가기 전에 몇장 앨범을 사서 그 가수의 정보를 숙지해서 아영이와 대화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해?"
라고 물으면, 나는 앨범에 있던 노래를 아무거나 하나 말하고, 아영이가 "아, 그 노래 나도 좋아." 라고 맞장구 치는 형식의 그런 대화.
나는 계속해서 아는 척을 했고 콘서트에 들어갈때까지 우리 둘의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당일날, 우리는 역에서 만나고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그날의 아영이를 나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뭐니 뭐니해도 그날 아영이는 귀여웠다.
복장도 아르바이트에 올 때와는 달리 예쁘게 하고 머리도 꾸미고 하여튼 인형 같았다.
원래 좋아했던 아영이에게 한번 더 반해 버렸다.
나는 전철에 타고 있는 동안에도 아영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응?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이런 일을 여러번 반복했다.
내가 아영이와 데이트를 하다니 꿈만 같군. 콘서트장은 광분의 현장이었다. 나느 솔직히 이런 콘서트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분위기에 몰입되지않았다.
하지만 좋다. 옆에 있는 아영이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 만족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무대를 보고 있는 아영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오늘 꼭 아영이에게 고백하는거야. 실패란 없다.
나는 아영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넘칠 것 같은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내 몸 속에 가두지 못하겠어.
돌아오는 길.
우리는 콘서트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아영아, 콘서트 좋았지?"
"응,대만족이야. 진수야, 오늘 고마워, 정말 즐거웠어."
"나도 즐거웠어. 역시 집에서 듣는거랑 확연히 차이나네. 소리가 몸 전체에 울리는 것 같애"
내가 그렇게 말하니 웃는 아영이.
"풉, 진수, 너 진짜 즐거웠어?"
"어? 진짜야. 즐거웠어."
아영이는 갑자기 멈춰서서 내 앞에 다가와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뭔가를 의심하는 표정.
"진수, 너 사실 팬 아니지?"
"뭐?"
"사실 노래 같은거 전혀 모르고 대부분 들어본적도 없지?"
"그렇지 않아.. 나는..."
아영이에게 정곡을 찔려 바로 변명할 거리를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도중에 포기했다.
"...미안"
"역시 그랬구나. 그럼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것도 거짓말이었다는거지?"
약간 화가난 표정으로 말하는 아영이.
"....."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아영이에게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던 내 자신이 그저 부끄러웠다.
게다가 전부 간파당하고 있었다니.
그때 갑자기 아영이가 킥킥 웃기 시작했다.
나는 아영이가 왜 웃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아영이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배를 부여잡고 계속 웃었다.
"왜.. 그러는데?"
"음.. 왠지 거짓말인데 거짓말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어."
"..귀엽다고?"
"응"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는 보도블럭의 가장자리 단 위로 올라가서 양손을 좌우로 벌려서 평행자세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거짓말 따위 할 필요 없었는데.."
"응?"
"사실 콘서트 이런거 상관없이 진수 너랑 둘이서 간다고 해서 좋았어."
아영이는 다시 멈춰 서서 내 쪽으로 돌아 보았다.
"그러니까 거짓말 할 필요 없었다고."
이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어쨋든 다시 한번 아영이의 얼굴을 본 순간 부터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이 두근 두근 크게 울렸다.
그리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얘기 해야돼.
"아영아.. 나는.."
거기까지 말하자 나머지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간신히 말했다.
"난.. 아영이 너가 좋아."
그때 우리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주변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기에 왠지 그 순간 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그러니까 너만 좋다면 나랑 사귀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아영이었지만 내가 고백하니 입을 다물었다.
아마 5초에서 10초정도 그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거절하려고 할지 고민하고 있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몇초의 침묵 후 아영이가 입을 열어 한 말은 나와 같았다.
"나도.. 진수 너가 좋아."
고개를 든 아영이의 표정은 웃는 얼굴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믿을 수 없었다. 아영이의 대답에 나는 놀랐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몰라서 다시 한번 물었다.
"저..정말?"
"응, 사실이야. 난 거짓말쟁이 아니야. 진수 너야말로 나 진짜 좋아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해오는 아영이. 나는 기쁘고 아영이의 그 미소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무심코 아영이의 몸을 꽉 끌어 안았다.
"아!"
"아, 미안 아팠어?"
"으응, 조금 놀래서 그래. 그 상태로 있어줘. 남자에게 안긴거 처음이야."
"나도 처음이야"
"그렇구나. 우리 둘다 처음이네."
"응"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정말 좋아."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마 5분정도 이대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후, 우리는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아~ 왠지 믿을 수 없어. 너가 내 여자친구가 되다니."
"나도 너가 남자친구가 되다니 꿈 같아. 나 오늘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가 처음이라서 옷 고르는 데도 시간 오래 걸렸다니까"
"그랬구나."
"너 아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같은거 물어볼 때 얘기 맞추는라 힘들었지?"
"하하, 그렇지. 언제 알았어? 내 거짓말."
"첨부터 좀 뭔가 느낌은 있었는데 콘서트장에서 너가 스테이지는 잘 안보길래, 그래서 아,별로인가보구나.라고 생각했지."
"그럼 모르고 있었어? 내가 어디 보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어. 내가 진수 니 시선이 신경쓰여서 집중을 못했다니까."
"그래, 미안. 그럼 나중에 또 내한공연하면 그때 보러갈까?"
"응. 근데 다음은 언제 올지 몰라. 이제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구나.. 그럼 어쩌지."
"상관없어, 난 오늘 즐겁고 진수 너랑 있으니까 행복해."
"나도 너랑 있으니까 좋다."
"아~왠지 행복해, 애인이 있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우리들은 그날 밤 대화를 나누며 긴 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둘이 손을 잡고 "우리 계속 함께 있자"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방안.. 아영이는?..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 지금 아영이의 상황을 생각해 낸 순간 나는 불안해졌다.
아영이가 녀석들에게. 나는 자고 있던 모습 그대로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앞으로도 계속 아영이와 함께 있고 싶어. 아영이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달렸다.
"하아. 하아.. 아영아.."
밖은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두워 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잤던 거 같다.
나는 필사적으로 녀석들의 펜션을 찾아다녔다.
근처에 있는 흰색 건물. 그러다 몇 분 안에 흰색의 작고 멋진 건물을 발견했다.
여기인가...?
여기까지 힘차게 왔지만 이제 어떻게하지? 아영이를 부르고 돌아가면 되는건가.
나는 남자친구니까 그럴 자격이 있어.
나는 건물의 문 앞에서 잠시 생각했다. 그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의 목소리다. 역시 여기였다.
귀를 기울이니 아영이의 목소리도 들린다.
"자..잠깐. 우진아. 갑자기 왜 옷 벗는거야? 빨리 다시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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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화부터 이제 시작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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