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
[허! 어제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건 또 무슨 변덕이래? 잘 들어갔나 걱정돼서 전화했는데!]
“누..누가!! 너 같은 변태새끼랑 엮인 내 잘못이다. 이 누나가 두 번까지는 그냥 넘어가 줄게. 요즘 내가 미쳤었거든! 다시는 연락하지 마!”
전화를 끊어버린 신이는 한숨도 못 자 피곤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클럽에서의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신이었다. 분위기란 것의 무서움과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자신의 육체에 자괴감까지 느끼며 신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 했다.
“일어나셨어요?”
“어제는 몇 시에 들어왔니?”
“네?.. 친구들하고 얘기가 길어져서..”
“넌 정신이 있는 애니? 지금 집안 분위기도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 이혼을 했으면 남들 시선도 생각해야지. 아빠 입장이 뭐가 돼? 아무 일도 없지만 철없이 행동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야.”
“죄송해요. 엄마.”
“알았으면 좀 조심해.”
“그런데 아빠는요?”
“.... 일 가셨어.”
“벌써요? 아직 7시 반 밖에 안 됐는데..”
“요즘 바쁘셔...”
“....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집안의 분위기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 신이다. 어머니의 가시 같은 ‘이혼녀’란 단어는 몇 번이나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단어였다. 그러나 현실인 것만 확실했기에 우울한 기분에도 부모님 앞에서만은 애써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려 애를 쓰게 된 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이상해진 집안에서 신이는 그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고만 생각했기에 더 그렇게 행동했고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계속해서 푸념과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의 모습을 감수하고 더 아무렇지 않는 밝은 모습으로 대하려 애를 썼다.
“진서방은? 아니. 그 놈은 잘 먹고 잘 산다던?”
“네?.. 태규씨 얘기는 그만 해요...”
“뭐가 태규씨야! 그 놈은 병신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니!?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란 마당에... 몇 번 찾아와서 고개 숙인 게 다야? 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엄마!.... 태규씨도.. 많이 힘들었어요..”
“힘들어야지! 씨 없는 수박이면 힘들어 해야지!”
“......”
“넌 빨리 다른 남자부터 만나! 그저께 갖다 준 프로필들 봤어?”
“.....아뇨.”
“이것아! 너라도 정시차려야지! 언제까지 방구석에 처박혀서 혼자 찔끔거릴 거야! 거기다가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하더니 외박이나 하고.. 정신 차려 이것아!”
“.......네.”
안식처야 할 집은 신이에겐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미 예견된 상황처럼 이혼 한 순간부터 신이는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인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너무나 가혹했고 냉정했다. 처음부터 반대하던 결혼을 한 신이었기에 더 죄스러워했고 자신의 입장을 어필할 수 없는 불임의 몸이란 사실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신이는 자신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빨리 주제를 돌리려 했고 항상 웃으려 애를 썼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 했던 신이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한참이나 더 듣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침실로 향할 수 있었다.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과.. 어제에 일에 대해 태규에게 느껴지는 죄스러움을 애써 감기지 않는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고 잊으려 한다.
잠을 자면..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을 자가 최면처럼 몇 번이고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요즘 뭐하고 돌아다녀?”
“..네? 그냥.. 일자리 좀 알아보려고요.”
“일자리는 무슨! 집에서 신부수업이나 더 하면서 엄마가 소개시켜주는 남자랑 빨리 결혼이나 생각해!”
“...”
“여자가 이혼을 했으면 조신할 줄 알아야지! 에휴..쯧쯧쯧...”
“...”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인 저녁식사자리였지만 신이에겐 오늘도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아버지란 분은 신이 때문인지 많이 마르기까지 했고 예전보다 훨씬 더 수척해졌기에 일방적인 나무람에도 신이는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밥을 깨작거리게 된다.
“허허.. 여자가 밥을 깨작거리니까 남자가 떠나지...”
“이 양반이.. 왜 남자가 떠난 거예요! 말은 똑바로 해요. 진 서방.. 그 놈이 능력도 없고 씨도 없어서 이혼한 거지! 왜 우리 신이가 쫓겨난 거라고 얘길 하냐고요!”
“누가 쫓겨났데!! 남자가 떠났다고 말했지!”
“그게 그거죠!”
“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 몰라! 어디 재수 없게 밥상머리에서 큰소리야!”
“또! 암탉 얘기 하시네..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잘나서 경찰 조사까지 받아요!?”
“어허!!!”
“경찰...조사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엄마?”
“...넌 몰라도 돼.”
“몰라도 되다뇨.. 아빠.. 경찰 조사를 받다니 무슨 소리에요?”
“이러니까 내가 집에 들어오고 싶겠냐고..”
숟가락을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놓은 신이의 아버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신이에겐 꼭 도망치듯 들어간 아버지의 모습처럼 보였기에 당황하며 어머니에게 다시 묻게 된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엄마?”
“별거 아니야.”
“혹시 저 때문에 그래요? 제가 이혼 한 것 때문에..”
“이혼을 했는데 왜 조사를 받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별거 아니니까.. 넌 딴 생각하지 말고 가져다 준 프로필 사진에서 남편감이나 빨리 골라. 더 늦기 전에 새시집이라도 가야지.. 너 지금 몇 살인 줄 알아!? 지금 낳아도 애가 대학 들어갈 땐 할머니야 너!”
“정말 별거 아니에요?”
“그럼!? 넌 아빠 일이 별게 아니길 바라니?”
“누가 그렇데요.. 그냥 걱정이 되니까...”
“부모가 걱정이 되는 애가 이혼을 해?”
“.........”
“넌 너 앞가림이나 잘 해!”
축처진 어깨로 다시 젓가락을 들어 밥알을 깨작거리는 신이의 행동에 그래도 안 돼보였는지 어머니가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신이를 달랜다.
“동료 비리 때문에 의례하는 조사야. 아빠 진급 때문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니까. 넌 걱정할 필요 없어.”
“....네.”
“넌.. 다시 결혼해서 떡두꺼비 같은 손주나 아빠한테 빨리 안겨드려.. 그게 효도고 효녀란 소리 듣는 거야. 외동딸이잖아 너. 아빠가 힘들어 하실 때 뭘 보고 힘을 내시겠니..”
“....”
어머니의 말에 차마 대답을 못 하는 신이였다.
몇 번이나 부모님에게 자신이 불임이라고 고백하려 던 신이였지만 한 번 시작 된 거짓말은 더더욱 부풀려져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신이조차도 그 거짓이 사실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신을 보호하려던 태규의 무정자증이라는 거짓을 차라리 사실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신이는 이내 몸서리를 치듯 고개를 젓고는 식탁에서 일어난다.
“잘 먹었습니다.”
“다 먹은 거니?”
“...네.”
“그래.. 들어가서 프로필 사진 좀 자세히 봐.”
“.............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 신이는 그제야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검은색 파일을 열어본다.
어머니가 집안 내력까지 꼼꼼하게 적어놓은 프로필 사진을 보던 신이는 또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아무리 거짓을 현실처럼 받아드리려 악의적인 생각을 해본들 현실은 현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어느 남자가 애를 낳지 못하는 자신을 기쁘게 신부로 맞이하겠냐는, 거짓으로 결혼을 한다 해도 언젠가는 밝혀질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뒤늦게라도 실망하실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자 소름까지 돋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태규란 남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왜 그런 거짓말로 자신을 위로해서.. 왜 그런 보호를 자청해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는지.
만약 처음부터 진실을 고백했다면 그때 힘들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당당....할 수 있을 텐데.. 그나마 당당하게 부모에게 다시는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말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원망한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엎드려 누운 채 신이는 귀찮다는 듯 울리는 핸드폰을 베개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핸드폰 벨소리는 계속해서 울렸고 끊어지길 반복하며 다시 울렸다.
강한상이란 남자의 번호가 아니었다.
“누구지... 여보세요?”
[.....]
“장난 전화면 신고할 거예요.”
[와.. 진짜 더럽네.. 내 번호가 아니니까 전화를 받냐?]
“......”
[뭐 해?]
“장난 칠 기분 아니다. 전화 끊..”
[야야야!! 나 매독이래.]
“.......뭐?”
[병원 가봤어?]
거의 삼일 만에 전화를 걸어온 한상은 어처구니없게 자신이 성병에 걸렸다며 포문을 열고 예고 없이 발사를 한다.
“무...무슨 말이야?”
[병원에서 관계한 사람하고 같이 오라는데.. 넌 괜찮냐?]
“이.. 미친.... 지금 뭐라고 했어? 매..매독?”
[하하하하.. 걱정 마! 주사 맞고 며칠 안정하면 낫는 게 매독이야. 뭘 쫄아서 말까지 더듬냐.]
“야!!!!!!!!!!!!!!!!!!!!!!!”
[그래도 같이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혼자가면 쪽팔리잖아. 그나마 내가 아는 병원은 신분보장도 철저한데.. 20분 후에 나와. 집 앞으로 갈게.]
“이..이 미친...”
[겁먹지 말라니까. 그냥 성병일 뿐이야. 간다.]
무섭기보단 기가 찼다. 아니! 이 미친놈의 말투와 행동에 신이는 크게 놀란 두 눈으로 몸서리까지 치며 분노를 표현해 베개 아래에 얼굴을 묻고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분하고, 서럽기까지 한 감정에 몇 분이나 소리를 지르며 울기까지 한다.
정확히 20분 후에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곤 받지도 않았는데 끊어졌다.
그때까지도 베게와 이불속에서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던 신이는 그 뻔뻔한 놈의 얼굴에 따귀라도 날려줘야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아 화장도 하지 않고 추리닝차림에 숄만 걸친 채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무슨 운동복에 한 맺힌 여자냐?”
“....”
‘휙~~~~턱!!’
“내가 저번에 말했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너 미쳤니! 뭐? 매..독!??”
“기운이 넘치는 거 보니까 아직 발작은 안했나보네.”
“뭐!?”
“매독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르지? 하긴 남편만 알던 여자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이 동네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매독매독! 거려도 괜찮나?”
“.......이 나쁜..”
“타! 예약시간 얼마 안 남았어. 아니면 혼자 동네 병원에 갈래? 쪽팔려서 괜찮으면 나 혼자 가고..”
“...”
어쩔 수 없이 고급 외제 승용차에 몸을 싣는 신이다.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아니 때려서 피라도 묻으면 혹시나 걸리지 않았을지 모를 매독이란 것에 전염될까봐 더러워서 참는 신이였다. 그리고 강한상이의 말대로 이혼녀란 꼬리표까지 달고 있는 자신이 동네 병원에서 성병이 걸렸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한편으로는 엉뚱한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건 아닌 지라는 두려움을 뒤늦게 느끼게 되지만,, 다행이 한상의 차는 신이도 잘 알고 있는 서울에서도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종합병원의 입구를 통과했고, 오히려 두려움이 다른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매독이라는 성병에 자신이 걸렸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자 조수석에 앉아 안절부절 못한 채 조수석을 열어주는 한상의 행동에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다.
“뭐해?”
“진짜야?”
“뭐가?? 아! 그럼 내가 거짓말 했겠냐?”
“너..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 있어?”
“한두 번 걸린 것도 아닌데... 걱정 마라. 주사 맞고 약만 먹으면 다 낫는다.”
“.....”
“뭐해 시간 늦었어!”
닦달하는 한신의 손에 이끌려 막상 차에서 내린 신이였지만 병원 건물의 웅장함을 고개 올려 쳐다보던 신이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처음도 아닌 이 병원에 이런 위압감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하게 된 신이였다.
한상의 손에 이끌려 신이는 병원의 접수처가 아닌 엘리베이터로 곧바로 걸어가게 된다.
“저..접수는?”
“예약 해 놨다니까. 3층이던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듯 한상은 얼떨떨해하는 신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망설임 없이 복도를 걸어가 산부인과 김철희 과장실이라 적인 방으로 노크도 없이 들어간다.
“안녕하십니까!”
“....왔나.”
“하하하..”
“들어올 때 노크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 했잖나. 매너도 모르나?”
“매너가 필요한가요?”
“....흠.”
“부탁드렸던 아줌만데요. 좀 봐주십쇼.”
“여기 앉으시죠.”
“네?...네..네..”
보통 성병이라면 비뇨기과로 가는 게 정설일 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신이였지만 강한상이란 남자가 특별히 아는 지인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의사가 앉으라는 책상 옆 동그란 의자에 앉게 된다.
“음.. 상의 올리세요.”
“네? 사..상의요?”
“네. 위로 올리세요.”
“...”
강한상이 뒤에 있다는 것도 잊게 만드는 의사의 빠른 말과 냉랭한 말투에 신이가 잔뜩 겁을 먹고 시키는 대로 상의를 끌어 올려 브래지어에 담긴 작고 아담한 가슴을 드러낸다.
“그냥 다 벗으세요.”
“네?? 지..지금요?”
“그럼? 내일 벗을래요?”
“....”
의사다. 어차피 나 같은 환자를 하루에도 수십 수백을 보는 보고 검진을 하는 의사다.. 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신이가 옷을 벗는데.. 벗다 말고 강한상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 채고서야 벗던 옷을 내리며 강한상을 노려본다.
“안 나가!?”
“나? 왜?”
“나가라고! 지금 진찰 받는 거 안보여?!”
“누가 뭐래? 받으라고.”
“야!!!!”
“어허!!! 지금 진찰 받기 싫으세요? 개인진찰이 얼만 줄 알고... 쯧쯧~”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남..”
“시간 없어요. 빨리 벗던가. 아니면 그냥 돌아가시던가.. 바빠 죽겠구만..”
의사의 행동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신이였지만 이 개인진찰이라는 말을 쉽게 흘려듣지 못하고 결국 상의를 완전히 벗게 된 신이였다. 남은 브래지어도 벗으라는 의사의 명령에 가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돌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게 된다.
“오~~ 밝은데서 보니까 훨씬 좋네~~”
“이씨....”
“야야.. 그만 노려봐!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장난 그만하고 똑바로 앉아요.”
“....네.”
의사의 짜증 섞인 말에 강한상을 무시하고 결국 다소곳하게 앉은 신이였다.
“음... 몇 Kg이시죠?”
“50..이요.”
“50kg이요?”
“....4요.”
“54kg에..키는?”
“168cm요..”
“몸매는 이상적인데.. 흉골 노취하고 유두거리가.. 흉골 거리도 그러고 250cc는 충분히 넣을 수 있겠네요. 유방상부의 두께도 이상적이고.. 수술하면 예쁘게 나오겠네.”
“네?..수..수술이라뇨? 매...독이 수술도 해야 되요?”
“매독이라뇨?”
“풋~..큭큭...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상씨.. 매독은 또 무슨 말입니까?”
얼굴이 새빨개진 채 그제야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꼭 가린 신이는 매섭게 강한상을 노려보지만,, 배까지 잡고 땅바닥에 엎드려 웃기 바쁜 한상이였다. 그리고 이 이상한 상황이 뭔지를 겨우 깨닫게 된 신이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에 대해서 후회를 하며 벗어놓은 옷부터 챙겨 입는다.
신이만큼이나 화를 내던 의사선생이었지만 정작 강한상에겐 무안만 줄 뿐 화를 내진 않았고 과장실을 나오는 끝까지 강한상은 눈물까지 빼며 신이를 보고 웃고 또 웃었다.
‘휙~~~~ 턱’
“내가 두 번은 안 된..억!!!”
‘퍽!!!’
신이의 운동화가 강한상의 쪼인트를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빡!!!!’
“으억!.. 이.. 이게...”
그리고 엎드린 강한상의 뒤통수를 냅다 손바닥으로 후려갈긴 신이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 지 계속 씩씩대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넌 이게 장난 같니! 내가 우습게 보여!? 여기 병원이 장난칠 곳이야! 정신이 있어! 없어!? 아무리 못 배우고 막돼먹었어도 장난칠게 따로 있지! 지금 웃음이 나와!”
“아...진짜..아프네.. 야! 뭘 그렇게 힘들 게 살어.”
“무..뭐!?”
“장난 좀 친걸 가지고 뭘 그렇게 정색을 하냐고.”
“참나... 넌 정말 인성이 덜 됐다. 꺼져! 내 앞에서 다시 얼굴보이면.. 강간범에 협박, 인격모독 성추행으로 다 신고할 테니까!”
“에이~~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그런 섭섭한 말을 하냐. 아~~ 실컷 웃었더니 배고프다. 점심 먹었냐?”
“야!!!!!!”
“큭큭.. 가자. 진짜로 밥 사줄게. 아!! 그런데 언제 할래?”
“.....뭐!?”
“수술! 크큭..”
“이 나쁜..”
“크크큭.. 사람들 다 쳐다본다. 안 쪽팔리냐? 난 먼저 간다~ 크크큭큭큭~”
말을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강한상의 모습에 정말 화가 난 신이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어리숙함이 모든 근원이라는 것을 떨쳐버릴 수 없던 신이는 비상계단의 철로 된 문고리를 거칠게 비틀며 힘을 줘 확 열어보는데.. 안전 바로 인해 문조차 쉽게 열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 신이였다.
“내가 미쳤지.. 저런 새끼랑 왜 엮여서.. 지금 이걸 장난이라고... 미쳤어.. 아니 돌았어!! 제정신이 아니야 저 놈은!!”
“크큭.. 비 맞은 강아지처럼 뭘 혼자 중얼대면서 걷냐?”
“......누구세요? 갈 길 가세요!”
“진짜 매력적이란 말이야.. 정말 너 내거 해라.”
“이게 미쳤나! 야!! 내가 애만 일찍 낳았어도 너만 한 아들이 있어! 진짜 오냐오냐 해주니까..”
“그러셨어요? 그럼 아들하고 붕가를 한 엄마네...허~~”
“이...이........”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신이의 모습에도 계속된 비아냥과 조롱 섞인 농담으로 대응하는 강한상의 모습에 도저히 말로는 이 남자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얼마나 분했으면 신이는 꽉 쥔 주먹과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도 모를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된다.
“크크....어.. 울어?”
“.....”
“야!”
“이거 놔!”
“아나.. 그렇다고 또 우냐.. 사람 무안하게..”
“넌 이게 장난 같지!”
“알았어.. 미안하다고.. 미안해.”
“됐어..”
잡은 한상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신이는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듯 걸어 내려간다.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한상이란 놈에게 보이는 것 자체가 굴욕적이란 생각에 한상이 앞에선 눈물조차 훔치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데... 얼마 내려가지도 못하고 다시 한상의 손에 잡히게 된다.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데? 내가 장난감 갔니?”
“장난감이었으면 이런 수고도 하지 않지..”
“그럼?”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괜히 네 암울한 얼굴만 보면 장난이 치고 싶어진다는 생각만 드네..”
“.......”
“이혼을 한 게 자랑은 아니지만,,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항상 왜 죽을상을 하고 다니냐고?”
“내가 언...”
“아직도 태규란 남자를 못 잊겠냐?”
“....”
“합의이혼 아니었어? 알아보니까 합의이혼이던데. 그럼 서로 정나미가 떨어져서 합의를 한 거고, 이혼까지 한 거 아니야?”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럼 알려줘.”
“...뭐?”
“솔직히 까놓고 말할게. 나... 이 세상에서 사랑이란 거 안 믿는 현실주의자에 개인주의까지 있는 놈이고 그래서 지금 막 살고 있거든.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아! 친구라고 떠벌이는 놈들하고 같이 여자들과 뒹굴기도 하고, 술에 쩔어 살면서 약도 하고.. 돈?? 그래 돈 많은 놈이 나야. 그런데 나한테 안기면서 딴 새끼 이름 부르는 년은 절대로! 절대로 눈뜨고 못 보는 성격이거든!”
“잘 났네.. 그럼 그런 년들하고 놀아. 왜 나한테 이러냐고!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러냐고...내가,,흑..내가 뭘 잘 못 했다고...흑..자꾸.. 나한테만.. 엉..어엉엉엉”
결국 신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혼을 결심한 후 태규 앞에서 일부러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신이는 이혼 후에도 부모님들의 눈치를 봐야했기에 제대로 울어 본적이 없었다. 자신의 몸을 원망하며 흐느끼듯 눈물을 훔친 적은 많았지만.. 아이를 갖기 위해 몇 번이나 찾았던 이 장소에서 자신을 장난감취급하며 내는 화도 계속 장난으로 맞받아치는 강한상이란 남자에게 분해서, 그리고 서러워서 크게 울게 된다.
그런 신이의 모습에 강한상은 잠시 동안 침묵으로 바라만 보며 신이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는데.. 신이가 강한상의 팔을 계속 뿌리치며 울어댔기에 한 걸음 떨어져 그런 신이의 눈물을 바라보게만 된다. 한참동안이나 울던 신이가 겨우 진정이 됐는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다.
오랜만에 마음껏 울고 나니 한결 가벼워져 시원해진 속을 뒤로하고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행동을 또 후회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흐트러진 정신으로 만난 남자였고 한 번의 실수라고 넘기리라 다짐했던 사건이라고 해도 엄연한 강간범일 수 있는 이 남자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쎈 신이에겐 엄청난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도록 했고 그건 이 남자의 찾아올 다음 행동에 더 경계를 하게 된다.
계속 된 장난과 성적 행동으로만 자신을 대하는 이 남자란 인간에 대해 이미 박혀버린 인상이란 게 너무 더럽기까지 했기에 더 그렇게 느끼게 된 신이였다.
“다 울었냐?”
“됐으니까....꺼져.”
“일어나. 따뜻한 연일차 먹으러 가자.”
“연일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중저음의 목소리로 난생 처음 듣게 된 ‘차’ 이름에 훌쩍이던 신이가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게 된다.
“응. 일어나. 요 앞 찻집으로 가자.”
“....”
“그리고.. 이걸로 닦아.. 서른도 넘었으면서 더럽게 콧물까지 흘리냐.”
강한상이 건넨 손수건을 보며 의외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신이였다.
철없고 망나니로까지 보이던 강한상의 모습에선 볼 수 없었던, 차분하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건넨 손수건이란 물건이 신기하게 보였다. 명품 손수건인 게 문제가 아니었다. 강한상이란 남자가 손수건이란 물건 자체를 지니고 다녔다는 게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진 신이였고 지금까지 자신을 놀려주려고만 행동하며 항상 쳐다보던 시선이 아닌, 조용히 먼저 한걸음 앞서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의 등에 묘한 흥미를 느끼기까지 한다.
꼭 자신만큼이나 고독과 고통을 알고 있는 듯한 힘없이 약간 처진 강한상의 어깨와 등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지만.. 신이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섰다.
강한상이 주문한 연일차라는 건 색다른 맛이었다.
향내가 은은한 국화 내음과 상쾌한 박하 내음이 조화롭게 번져 코를 평안하게 했고 씁쓰레한 칡의 맛은 오히려 심신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듯 느껴졌다. 신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살짝 감고 향과 맛을 천천히 즐기며 따뜻한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좀 괜찮아?”
“.........응.”
“다행이네..”
“.... 안 놀려?”
“..뭐?”
“울었다고.. 놀릴 거잖아.”
“놀렸으면 좋겠어?”
“아니!.. 그건 아닌데.. 정색하는 네 모습이 너무 어색해.”
“풋~... 이건 뭐...넌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웃냐.”
“...”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아니야. 이제 괜찮아.”
“정말?”
“응.. 나 집에 갈래. 데려다 줘.”
“왜?”
“....응?”
“아까만 해도 혼자 간다고 소리 지르고 날뛰더만.. 내가 데려다줘도 돼?”
“근데 너.. 왜 꼬박꼬박 반말이냐? 너 스물여섯이라고 했지?”
“응.”
“으응?? 내가 몇 살 인줄 알아!?”
“나이 많은 게 자랑이냐?”
“이게 끝까지... 에휴... 이 누나가 참는다. 집에나 데려다 줘!”
“그러지 말고.. 우리 쇼핑이나 할까?”
“야! 내가 왜 너랑 쇼핑을 해!!”
“그러지 말고 응!? 너무 미안해서 그러니까.. 백화점 가서 내가 명품으로 한 세트 맞춰줄게. 가자.”
“너 돈이면 세상이 다 되는 줄 알지?”
“아니야? 돈으로 사람도 사는데, 다가 아닌가?”
“사람을 사?”
“응!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통화로 못 살게 있나? 돈이 최고야. 이 세상엔 화력과 권력, 인력을 다 동원할 수 있는 게 돈이라고. 서른둘이나 먹었으면서 그걸 아직 모르나?”
“그래서? 지금 날 매수하겠다고? 아니.. 회유인가?”
“아무러면 어때? 사준다는 데 안 받으면 바보지.”
“그럼 영화처럼 ‘어머~ 오빠 정말 고마워~! 난 오빠밖에 없어~’. 이러던가, 아니면! ‘그래 너 한 번 된통 당해봐라! 내가 오늘 아주 뽕을 뽑아주마!!’ 라고 해야 되는 거니?”
“크크크~ 참 재밌어. 그건 마음대로 하고.. 그래 보상이라고 해두자고. 좀 미안하기도 하니까 이걸로 퉁치면 되겠네.”
“.....”
“왜 그렇게 노려보냐?”
“넌 부모도 없니? 아니.. 부모님들한테 뭘 배우고 자라면 너 같은 애가...”
“없어...”
“..뭐?”
“우리 쩔고 위~~대하신 아부지는 몇 년 전에 죽었고, 지 잘난 줄만 알고 살던 엄마란 여자는 혼자 자살했어. 그래서 부모가 없다고.”
“...”
“사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지만.. 하여튼 네 말대로 그런 걸 가르쳐 줄 부모가 없다고.”
“.....미안.”
“왜? 왜 네가 미안해?”
“...몰라! 너랑 얘기하고 있으면 내가 미치거나... 하여튼.. 집에 갈래!”
“나 같으면 후자로 택하겠다.”
“뭐가?”
“너 성격 보니까 오빵~하면서 달려들 것 같진 않고.. 그래 너 된통 당해봐라! 가 어울리겠다고.”
“......”
“가자.”
“또 제멋대로... 싫어! 집에 갈 거야!”
“그래도 다 받아주네. 이왕 받아주는 김에 쇼핑까진 같이 가자고.”
“좋은 말 할 때 이거 놔라.. 진짜...아! 아프다고 갈 테니까 이거 놓으라고!!”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의 막무가내적인 행동에 신이도 결국 항복하듯 따라가게 된다. 괜히 눈물을 흘렸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따라가게 된 쇼핑은.. 그 쇼핑마저도 전적으로 강한상의 취향에 결정돼버렸다.
오히려 신이를 이끌고 돌아다니며 높은 하이힐과 화려한 스타킹, 섹시한 드레스원피스와 작지만 엄청난 가격의 가방까지.. 절대 신이의 취향도 스타일도 아닌 옷들만을 골라 몸에 대봤고 입어보라고 강요까지 했지만.. 당연히 신이는 어느 하나도 입어볼 생각이 없어보였다.
평범한 연인이라면 지친 남자친구가 투정을 부리며 결국엔 벤치에 앉아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형태의 쇼핑이 대다수일 텐데, 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백화점을 누비게 된다. 터프하게 걸어가던 강한상은 눈에 띄는 옷들과 구두, 액세서리들을 대뜸 신이에게 대보는 행동을 했고, 놔주질 않는 강한상의 손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이 백화점이란 곳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여자의 기분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가는 곳곳마다 하게 된 신이였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여자라면 이런 쇼핑하나에도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돌아다니고 싶어 한다는 걸 너무나 모른다고 속으로 욕을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끌려 다니던 신이의 눈에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카디건이 들어왔다.
옅은 분홍색에 원단추로 아무 장식 없는 단조로움이 특색인.. 색깔만으로도 포근하게 보이는 카디건을 신이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강한상의 손이 느슨해졌을 때 가격표를 확인한다.
버릇처럼 가격표부터 확인하며 원단의 재질과 세탁기로 돌려도 되는 물품인지, 잘 늘어나는 건 아닌지..등등을 확인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몇 번이고 꺼내보길 반복했다.
“뭐해? 그것도 사줘?”
“됐어.. 돈이 어딨다고... 태규씨 바지나 하나....”
“......”
너무 생각에 잠겨 있었던 신이는 자신도 모르게 버릇처럼 태규를 찾게 된다.
얼떨결에 말부터 뱉은 신이는 ‘아차!’라는 탄성을 속으로 되삼키며 한상을 향해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한상의 얼굴엔 표정조차 없었다. 차라리 일그러지거나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면 당황할 신이가 아니었는데.. 냉소적이기까지 한 강한상의 얼굴에 잠시 머뭇거리며 미안하다 사과를 하게 된다.
“미..미안.. 나도 모르게..”
“...”
“아니지! 내가 왜 너한테 미안해야 돼? 내가 오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네가 내 앤이라도 돼?”
“전 남편이 아직도 보고 싶냐?”
“뭐?....아니.”
“그런데 왜 중요한 타이밍마다 태규 이름이 나오냐?”
“내가 언제..”
“그런데 말이야.. 왜 헤어졌냐?”
“그걸 내가 왜 말을 해야 되니?”
“말 안 해주면 나 홀로 망상모드로 변하거든, 내 머릿속이 얼마나 추잡한 줄 너도 알잖아. 음~~ 보자.. 그래! 속궁합이 잼병이였구나! 남편이 좆도 못했지? 혼자 끼고 몇 번 흔들다가 싸기만 했지? 아니면? 나한테는 꽤 괜찮은 크기라고 거짓말 한 거야? 혹시 새끼손가락 만 한 거 아니..”
“내가 언제 너한테.. 에휴.. 됐으니까.. 이제 쇼핑 다 끝났지! 그럼 난 간다.”
“우리 첫 관계 때 기억 안나? 정말 기억 하나도 안 나냐고!?”
“네가 약...을 먹였잖아. 다시 생각나게 하지 말라고! 그나마 인간으로 보이려다가 당장 신고하고 싶어지니까!!”
“약은 개뿔...자기도 좋다고 좀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참나~”
“내가? 기억 안 난다고 막 지어내지 마! 진짜 확!! 신고해버릴지 모르니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 증인이구만.. 그리고 언니야! 신고하면 언니야도 같이 콩밥이야. 약물관리법 몰라? 그 공간에서 언니야가 나한테 달라고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건 내가 술에 취해서... 그게 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잖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신이가 목소리를 줄인다.
“참나~ 그렇게 좋다고 내 위에서 방방 뛰던 게 누군데..”
“....그만 하자. 내가 무슨 생각으로 여길 쫓아 홨냐. 내가 바보다. 내가 바보야!”
“못 믿어? 진짠데! 동영상도 찍어놨다니까!”
“무..뭐!? 사..진만 있다고.. 그거 지우라고 분명히 얘기 했고,, 너도 지운다고 했잖아!”
“사진은 다 지웠지.. 나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놈이걸랑. 그런데 동영상에 대한 건 약속 안했잖아.”
“.....”
“잠깐 볼래? 음~.. 저쪽에 가서 보여줄게. 따라 와.”
“미..미친놈.. ”
“아니면 여기서.. 어!!”
핸드폰을 손에 쥐고 흔드는 강한상의 빈틈을 단번에 노린 신이였다. 흔들고 있던 핸드폰을 단숨에 가로채 후다닥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석으로 달려가선 사진 파일들을 열어본다. 다행히 클럽에서 봤던 정말 간단한 패턴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이었고 열린 파일들 중 가장 위에 있는 걸 눌러본다.
[아하~~~~~]
‘다다다다다...’
엄청난 신음소리에 깜짝 놀란 신이가 다급히 핸드폰 왼쪽 아래 버튼을 찾아 소리를 줄이기 위해 연타하듯 누르게 되는데..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핸드폰에서 크게 울려 퍼진 신음소리에 깜짝 놀라 신이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그곳을 빠져나오려 발걸음을 움직이는데 바로 앞에 강한상이 서서 지키고 있었다.
“봤지? 난 죄 없다고..”
“후~.. 애도 아니고.. 아직도 이런 야동을 핸드폰에 넣어다니냐? 이게 나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참나~”
“진짠데.. 넌 흥분하면 네 자신이 얼마나 음란하게 변하는지 모르는구나....”
“무..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못 믿겠냐?~~~ 차로 가자. 거기에 블루투스 있으니까 끼고 들어 봐.”
“....”
차에 올라 한상의 말대로 귀에 꽂은 블루투스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얘기소리에 얼음처럼 몸이 굳어진 신이는 도저히 반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보게 된다.
천천히 허리를 흔들고 있는 뒷모습은 억지로 부정할 순 있었지만.. 강한상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여자의 그 목소리와 내용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정신 줄을 놨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곧 시작된 정상위 체위에선 신이 자신의 얼굴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아프다며 계속 울먹이다 다시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여잔 부정하려해도 자신이었다. 커다란 자지가 들어갈 때마다 고통스러움에 울먹이길 반복하면서도 탁한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혀가 잔뜩 꼬여 발음조차 부정확한 혀 짧은 소리로 연신 강한상의 말에 대답하는..
[죽이지? 아줌마 오늘 제대로 호강하는 거야.]
[아앙~..앙~ 너..넘 넘 조아효~ 아..아파..아팡...아팡..흑흑..넘 아파효..하악~~..조하요~]
[크크크.. 졸라 크지? 내가 별명이 말 자지야. 여자들이 한 번 맛보면 다른 놈 건 손가락으로 쑤시는 거 같다고 하던데.]
[하앙~..너..넘 켜~...커효.. 너무 커요.. 허아악.. 아..아파...아팡..아~~]
분명 혀 짧은 목소리와 고통과 쾌감에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의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밖에 모르겠지? 크크.. 너도 다른 년들하고 똑같이 먹다가 싫증나면 버려줄게.]
[하아~~..아앙.... 아...아파~~..아팡~.. 아~]
[네가 누구 거라고?]
[항~~ 앙~.. 태규씽~.. 태..태규씨꺼~~~ 하앙~...아앙~~ 너..넘 좋아효.. 여보.. 나.. 나 미틸...아항~~]
거기서 동영상이 끊겼다.
흔들리는 떨림으로 핸드폰으로 찍은 듯 한 동영상은 갑자기 배경과 신이와 한상의 모습이 회전하듯 어지럽게 돌아가더니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순간 정지해 버렸다. 화를 못 이기고 핸드폰을 박살내게 분명했다.
“잠깐.. 신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고? 그게 언제...”
“정확히는 형님한테 보여드린 그 첫 동영상 이후였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저와 신이가 처음 클럽에서 만나 술에 잔뜩 취해 제 친구 놈하고 그냥 따먹으려던 그 날이었죠. 저번에 말씀드렸던 클럽 이전입니다.”
“그럼.. 첫날 내게 보여준 그 동영상 말인가? 그걸.. 신이가 처음 본 건가?”
“친구 놈하고 같이 몸을 빨던 건 물론 안 보여줬죠. 그 이후에 저 혼자 찍은 동영상만 봤습니다.”
“그럼 그런 강간을 하고 다시 뻔뻔하게 다시 신이를 꼬셨다는 말이네..?”
“강간이라뇨. 남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술에 취했다는 것뿐이지 분명히 쓰리섬에도 응한 게 신이였습니다. 물론 그 쓰리섬이란 게 뭔지 모르게 응했겠지만 요. 크크크~”
“왜 그렇게 복잡하게... 흔해빠진 로맨스도 아니고 그렇게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나?”
“허~ 형님은 제가 개새끼처럼 보입니까? 제대로 연애를 하는데 동네 개새끼처럼 냄새 맡고 곧바로 빠구리부터 뜰까요? 처음이야 속궁합을 확인한 거고, 최고의 여자를 만났으니 최고의 대우로 유혹을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최고의 대우?”
“계속 말 끊으시면 얘기 그만 합니다..”
“아..알았어.. 그래서?”
“식겁하던데요. 크크크크. 그 동영상이 합성이라고 우기는데. 빵~ 터졌습니다. 그래서 말 했죠. 지금까지 여자 안으면서 다른 새끼 이름 연발한 건 네가 처음이라고요. 그 이름이 언제까지 나오는 지 두고 보자고요.”
“.....”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자고 했습니다. 맨 정신으로 날 느껴보라고. 좆만한 자지로 만족도 제대로 못 시켰던 전 남편 이름이 언제까지 나오는 질 확인해보자고 했습니다.”
“.................”
---계속---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내일부터 연휴내요.
즐건 불목들 보내시길 바라옵고 휴일은 가족과 함께 해야죠.(^^;).
여기서 한가지 과연 누가 네토리고 누가 네토라레, 혹은 네토라세 일까요? 몇몇분들의 날카로운 스포와 의견들에 쾌제의 탄성을 조용히 지르며 댓글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정해진 게임이 왜 타락게임 일까요(^^)?.
보내주신 쪽지들도 감상하고 있는데. 보내주신 내용들을 읽고나니 한편의 야설들을 만들정도의 내용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
[허! 어제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건 또 무슨 변덕이래? 잘 들어갔나 걱정돼서 전화했는데!]
“누..누가!! 너 같은 변태새끼랑 엮인 내 잘못이다. 이 누나가 두 번까지는 그냥 넘어가 줄게. 요즘 내가 미쳤었거든! 다시는 연락하지 마!”
전화를 끊어버린 신이는 한숨도 못 자 피곤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클럽에서의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신이었다. 분위기란 것의 무서움과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자신의 육체에 자괴감까지 느끼며 신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 했다.
“일어나셨어요?”
“어제는 몇 시에 들어왔니?”
“네?.. 친구들하고 얘기가 길어져서..”
“넌 정신이 있는 애니? 지금 집안 분위기도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 이혼을 했으면 남들 시선도 생각해야지. 아빠 입장이 뭐가 돼? 아무 일도 없지만 철없이 행동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야.”
“죄송해요. 엄마.”
“알았으면 좀 조심해.”
“그런데 아빠는요?”
“.... 일 가셨어.”
“벌써요? 아직 7시 반 밖에 안 됐는데..”
“요즘 바쁘셔...”
“....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집안의 분위기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 신이다. 어머니의 가시 같은 ‘이혼녀’란 단어는 몇 번이나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단어였다. 그러나 현실인 것만 확실했기에 우울한 기분에도 부모님 앞에서만은 애써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려 애를 쓰게 된 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이상해진 집안에서 신이는 그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고만 생각했기에 더 그렇게 행동했고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계속해서 푸념과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의 모습을 감수하고 더 아무렇지 않는 밝은 모습으로 대하려 애를 썼다.
“진서방은? 아니. 그 놈은 잘 먹고 잘 산다던?”
“네?.. 태규씨 얘기는 그만 해요...”
“뭐가 태규씨야! 그 놈은 병신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니!?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란 마당에... 몇 번 찾아와서 고개 숙인 게 다야? 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엄마!.... 태규씨도.. 많이 힘들었어요..”
“힘들어야지! 씨 없는 수박이면 힘들어 해야지!”
“......”
“넌 빨리 다른 남자부터 만나! 그저께 갖다 준 프로필들 봤어?”
“.....아뇨.”
“이것아! 너라도 정시차려야지! 언제까지 방구석에 처박혀서 혼자 찔끔거릴 거야! 거기다가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하더니 외박이나 하고.. 정신 차려 이것아!”
“.......네.”
안식처야 할 집은 신이에겐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미 예견된 상황처럼 이혼 한 순간부터 신이는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인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너무나 가혹했고 냉정했다. 처음부터 반대하던 결혼을 한 신이었기에 더 죄스러워했고 자신의 입장을 어필할 수 없는 불임의 몸이란 사실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신이는 자신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빨리 주제를 돌리려 했고 항상 웃으려 애를 썼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 했던 신이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한참이나 더 듣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침실로 향할 수 있었다.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과.. 어제에 일에 대해 태규에게 느껴지는 죄스러움을 애써 감기지 않는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고 잊으려 한다.
잠을 자면..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을 자가 최면처럼 몇 번이고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요즘 뭐하고 돌아다녀?”
“..네? 그냥.. 일자리 좀 알아보려고요.”
“일자리는 무슨! 집에서 신부수업이나 더 하면서 엄마가 소개시켜주는 남자랑 빨리 결혼이나 생각해!”
“...”
“여자가 이혼을 했으면 조신할 줄 알아야지! 에휴..쯧쯧쯧...”
“...”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인 저녁식사자리였지만 신이에겐 오늘도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아버지란 분은 신이 때문인지 많이 마르기까지 했고 예전보다 훨씬 더 수척해졌기에 일방적인 나무람에도 신이는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밥을 깨작거리게 된다.
“허허.. 여자가 밥을 깨작거리니까 남자가 떠나지...”
“이 양반이.. 왜 남자가 떠난 거예요! 말은 똑바로 해요. 진 서방.. 그 놈이 능력도 없고 씨도 없어서 이혼한 거지! 왜 우리 신이가 쫓겨난 거라고 얘길 하냐고요!”
“누가 쫓겨났데!! 남자가 떠났다고 말했지!”
“그게 그거죠!”
“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 몰라! 어디 재수 없게 밥상머리에서 큰소리야!”
“또! 암탉 얘기 하시네..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잘나서 경찰 조사까지 받아요!?”
“어허!!!”
“경찰...조사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엄마?”
“...넌 몰라도 돼.”
“몰라도 되다뇨.. 아빠.. 경찰 조사를 받다니 무슨 소리에요?”
“이러니까 내가 집에 들어오고 싶겠냐고..”
숟가락을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놓은 신이의 아버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신이에겐 꼭 도망치듯 들어간 아버지의 모습처럼 보였기에 당황하며 어머니에게 다시 묻게 된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엄마?”
“별거 아니야.”
“혹시 저 때문에 그래요? 제가 이혼 한 것 때문에..”
“이혼을 했는데 왜 조사를 받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별거 아니니까.. 넌 딴 생각하지 말고 가져다 준 프로필 사진에서 남편감이나 빨리 골라. 더 늦기 전에 새시집이라도 가야지.. 너 지금 몇 살인 줄 알아!? 지금 낳아도 애가 대학 들어갈 땐 할머니야 너!”
“정말 별거 아니에요?”
“그럼!? 넌 아빠 일이 별게 아니길 바라니?”
“누가 그렇데요.. 그냥 걱정이 되니까...”
“부모가 걱정이 되는 애가 이혼을 해?”
“.........”
“넌 너 앞가림이나 잘 해!”
축처진 어깨로 다시 젓가락을 들어 밥알을 깨작거리는 신이의 행동에 그래도 안 돼보였는지 어머니가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신이를 달랜다.
“동료 비리 때문에 의례하는 조사야. 아빠 진급 때문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니까. 넌 걱정할 필요 없어.”
“....네.”
“넌.. 다시 결혼해서 떡두꺼비 같은 손주나 아빠한테 빨리 안겨드려.. 그게 효도고 효녀란 소리 듣는 거야. 외동딸이잖아 너. 아빠가 힘들어 하실 때 뭘 보고 힘을 내시겠니..”
“....”
어머니의 말에 차마 대답을 못 하는 신이였다.
몇 번이나 부모님에게 자신이 불임이라고 고백하려 던 신이였지만 한 번 시작 된 거짓말은 더더욱 부풀려져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신이조차도 그 거짓이 사실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신을 보호하려던 태규의 무정자증이라는 거짓을 차라리 사실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신이는 이내 몸서리를 치듯 고개를 젓고는 식탁에서 일어난다.
“잘 먹었습니다.”
“다 먹은 거니?”
“...네.”
“그래.. 들어가서 프로필 사진 좀 자세히 봐.”
“.............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 신이는 그제야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검은색 파일을 열어본다.
어머니가 집안 내력까지 꼼꼼하게 적어놓은 프로필 사진을 보던 신이는 또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아무리 거짓을 현실처럼 받아드리려 악의적인 생각을 해본들 현실은 현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어느 남자가 애를 낳지 못하는 자신을 기쁘게 신부로 맞이하겠냐는, 거짓으로 결혼을 한다 해도 언젠가는 밝혀질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뒤늦게라도 실망하실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자 소름까지 돋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태규란 남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왜 그런 거짓말로 자신을 위로해서.. 왜 그런 보호를 자청해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는지.
만약 처음부터 진실을 고백했다면 그때 힘들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당당....할 수 있을 텐데.. 그나마 당당하게 부모에게 다시는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말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원망한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엎드려 누운 채 신이는 귀찮다는 듯 울리는 핸드폰을 베개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핸드폰 벨소리는 계속해서 울렸고 끊어지길 반복하며 다시 울렸다.
강한상이란 남자의 번호가 아니었다.
“누구지... 여보세요?”
[.....]
“장난 전화면 신고할 거예요.”
[와.. 진짜 더럽네.. 내 번호가 아니니까 전화를 받냐?]
“......”
[뭐 해?]
“장난 칠 기분 아니다. 전화 끊..”
[야야야!! 나 매독이래.]
“.......뭐?”
[병원 가봤어?]
거의 삼일 만에 전화를 걸어온 한상은 어처구니없게 자신이 성병에 걸렸다며 포문을 열고 예고 없이 발사를 한다.
“무...무슨 말이야?”
[병원에서 관계한 사람하고 같이 오라는데.. 넌 괜찮냐?]
“이.. 미친.... 지금 뭐라고 했어? 매..매독?”
[하하하하.. 걱정 마! 주사 맞고 며칠 안정하면 낫는 게 매독이야. 뭘 쫄아서 말까지 더듬냐.]
“야!!!!!!!!!!!!!!!!!!!!!!!”
[그래도 같이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혼자가면 쪽팔리잖아. 그나마 내가 아는 병원은 신분보장도 철저한데.. 20분 후에 나와. 집 앞으로 갈게.]
“이..이 미친...”
[겁먹지 말라니까. 그냥 성병일 뿐이야. 간다.]
무섭기보단 기가 찼다. 아니! 이 미친놈의 말투와 행동에 신이는 크게 놀란 두 눈으로 몸서리까지 치며 분노를 표현해 베개 아래에 얼굴을 묻고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분하고, 서럽기까지 한 감정에 몇 분이나 소리를 지르며 울기까지 한다.
정확히 20분 후에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곤 받지도 않았는데 끊어졌다.
그때까지도 베게와 이불속에서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던 신이는 그 뻔뻔한 놈의 얼굴에 따귀라도 날려줘야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아 화장도 하지 않고 추리닝차림에 숄만 걸친 채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무슨 운동복에 한 맺힌 여자냐?”
“....”
‘휙~~~~턱!!’
“내가 저번에 말했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너 미쳤니! 뭐? 매..독!??”
“기운이 넘치는 거 보니까 아직 발작은 안했나보네.”
“뭐!?”
“매독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르지? 하긴 남편만 알던 여자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이 동네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매독매독! 거려도 괜찮나?”
“.......이 나쁜..”
“타! 예약시간 얼마 안 남았어. 아니면 혼자 동네 병원에 갈래? 쪽팔려서 괜찮으면 나 혼자 가고..”
“...”
어쩔 수 없이 고급 외제 승용차에 몸을 싣는 신이다.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아니 때려서 피라도 묻으면 혹시나 걸리지 않았을지 모를 매독이란 것에 전염될까봐 더러워서 참는 신이였다. 그리고 강한상이의 말대로 이혼녀란 꼬리표까지 달고 있는 자신이 동네 병원에서 성병이 걸렸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한편으로는 엉뚱한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건 아닌 지라는 두려움을 뒤늦게 느끼게 되지만,, 다행이 한상의 차는 신이도 잘 알고 있는 서울에서도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종합병원의 입구를 통과했고, 오히려 두려움이 다른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매독이라는 성병에 자신이 걸렸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자 조수석에 앉아 안절부절 못한 채 조수석을 열어주는 한상의 행동에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다.
“뭐해?”
“진짜야?”
“뭐가?? 아! 그럼 내가 거짓말 했겠냐?”
“너..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 있어?”
“한두 번 걸린 것도 아닌데... 걱정 마라. 주사 맞고 약만 먹으면 다 낫는다.”
“.....”
“뭐해 시간 늦었어!”
닦달하는 한신의 손에 이끌려 막상 차에서 내린 신이였지만 병원 건물의 웅장함을 고개 올려 쳐다보던 신이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처음도 아닌 이 병원에 이런 위압감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하게 된 신이였다.
한상의 손에 이끌려 신이는 병원의 접수처가 아닌 엘리베이터로 곧바로 걸어가게 된다.
“저..접수는?”
“예약 해 놨다니까. 3층이던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듯 한상은 얼떨떨해하는 신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망설임 없이 복도를 걸어가 산부인과 김철희 과장실이라 적인 방으로 노크도 없이 들어간다.
“안녕하십니까!”
“....왔나.”
“하하하..”
“들어올 때 노크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 했잖나. 매너도 모르나?”
“매너가 필요한가요?”
“....흠.”
“부탁드렸던 아줌만데요. 좀 봐주십쇼.”
“여기 앉으시죠.”
“네?...네..네..”
보통 성병이라면 비뇨기과로 가는 게 정설일 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신이였지만 강한상이란 남자가 특별히 아는 지인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의사가 앉으라는 책상 옆 동그란 의자에 앉게 된다.
“음.. 상의 올리세요.”
“네? 사..상의요?”
“네. 위로 올리세요.”
“...”
강한상이 뒤에 있다는 것도 잊게 만드는 의사의 빠른 말과 냉랭한 말투에 신이가 잔뜩 겁을 먹고 시키는 대로 상의를 끌어 올려 브래지어에 담긴 작고 아담한 가슴을 드러낸다.
“그냥 다 벗으세요.”
“네?? 지..지금요?”
“그럼? 내일 벗을래요?”
“....”
의사다. 어차피 나 같은 환자를 하루에도 수십 수백을 보는 보고 검진을 하는 의사다.. 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신이가 옷을 벗는데.. 벗다 말고 강한상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 채고서야 벗던 옷을 내리며 강한상을 노려본다.
“안 나가!?”
“나? 왜?”
“나가라고! 지금 진찰 받는 거 안보여?!”
“누가 뭐래? 받으라고.”
“야!!!!”
“어허!!! 지금 진찰 받기 싫으세요? 개인진찰이 얼만 줄 알고... 쯧쯧~”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남..”
“시간 없어요. 빨리 벗던가. 아니면 그냥 돌아가시던가.. 바빠 죽겠구만..”
의사의 행동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신이였지만 이 개인진찰이라는 말을 쉽게 흘려듣지 못하고 결국 상의를 완전히 벗게 된 신이였다. 남은 브래지어도 벗으라는 의사의 명령에 가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돌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게 된다.
“오~~ 밝은데서 보니까 훨씬 좋네~~”
“이씨....”
“야야.. 그만 노려봐!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장난 그만하고 똑바로 앉아요.”
“....네.”
의사의 짜증 섞인 말에 강한상을 무시하고 결국 다소곳하게 앉은 신이였다.
“음... 몇 Kg이시죠?”
“50..이요.”
“50kg이요?”
“....4요.”
“54kg에..키는?”
“168cm요..”
“몸매는 이상적인데.. 흉골 노취하고 유두거리가.. 흉골 거리도 그러고 250cc는 충분히 넣을 수 있겠네요. 유방상부의 두께도 이상적이고.. 수술하면 예쁘게 나오겠네.”
“네?..수..수술이라뇨? 매...독이 수술도 해야 되요?”
“매독이라뇨?”
“풋~..큭큭...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상씨.. 매독은 또 무슨 말입니까?”
얼굴이 새빨개진 채 그제야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꼭 가린 신이는 매섭게 강한상을 노려보지만,, 배까지 잡고 땅바닥에 엎드려 웃기 바쁜 한상이였다. 그리고 이 이상한 상황이 뭔지를 겨우 깨닫게 된 신이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에 대해서 후회를 하며 벗어놓은 옷부터 챙겨 입는다.
신이만큼이나 화를 내던 의사선생이었지만 정작 강한상에겐 무안만 줄 뿐 화를 내진 않았고 과장실을 나오는 끝까지 강한상은 눈물까지 빼며 신이를 보고 웃고 또 웃었다.
‘휙~~~~ 턱’
“내가 두 번은 안 된..억!!!”
‘퍽!!!’
신이의 운동화가 강한상의 쪼인트를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빡!!!!’
“으억!.. 이.. 이게...”
그리고 엎드린 강한상의 뒤통수를 냅다 손바닥으로 후려갈긴 신이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 지 계속 씩씩대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넌 이게 장난 같니! 내가 우습게 보여!? 여기 병원이 장난칠 곳이야! 정신이 있어! 없어!? 아무리 못 배우고 막돼먹었어도 장난칠게 따로 있지! 지금 웃음이 나와!”
“아...진짜..아프네.. 야! 뭘 그렇게 힘들 게 살어.”
“무..뭐!?”
“장난 좀 친걸 가지고 뭘 그렇게 정색을 하냐고.”
“참나... 넌 정말 인성이 덜 됐다. 꺼져! 내 앞에서 다시 얼굴보이면.. 강간범에 협박, 인격모독 성추행으로 다 신고할 테니까!”
“에이~~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그런 섭섭한 말을 하냐. 아~~ 실컷 웃었더니 배고프다. 점심 먹었냐?”
“야!!!!!!”
“큭큭.. 가자. 진짜로 밥 사줄게. 아!! 그런데 언제 할래?”
“.....뭐!?”
“수술! 크큭..”
“이 나쁜..”
“크크큭.. 사람들 다 쳐다본다. 안 쪽팔리냐? 난 먼저 간다~ 크크큭큭큭~”
말을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강한상의 모습에 정말 화가 난 신이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어리숙함이 모든 근원이라는 것을 떨쳐버릴 수 없던 신이는 비상계단의 철로 된 문고리를 거칠게 비틀며 힘을 줘 확 열어보는데.. 안전 바로 인해 문조차 쉽게 열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 신이였다.
“내가 미쳤지.. 저런 새끼랑 왜 엮여서.. 지금 이걸 장난이라고... 미쳤어.. 아니 돌았어!! 제정신이 아니야 저 놈은!!”
“크큭.. 비 맞은 강아지처럼 뭘 혼자 중얼대면서 걷냐?”
“......누구세요? 갈 길 가세요!”
“진짜 매력적이란 말이야.. 정말 너 내거 해라.”
“이게 미쳤나! 야!! 내가 애만 일찍 낳았어도 너만 한 아들이 있어! 진짜 오냐오냐 해주니까..”
“그러셨어요? 그럼 아들하고 붕가를 한 엄마네...허~~”
“이...이........”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신이의 모습에도 계속된 비아냥과 조롱 섞인 농담으로 대응하는 강한상의 모습에 도저히 말로는 이 남자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얼마나 분했으면 신이는 꽉 쥔 주먹과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도 모를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된다.
“크크....어.. 울어?”
“.....”
“야!”
“이거 놔!”
“아나.. 그렇다고 또 우냐.. 사람 무안하게..”
“넌 이게 장난 같지!”
“알았어.. 미안하다고.. 미안해.”
“됐어..”
잡은 한상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신이는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듯 걸어 내려간다.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한상이란 놈에게 보이는 것 자체가 굴욕적이란 생각에 한상이 앞에선 눈물조차 훔치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데... 얼마 내려가지도 못하고 다시 한상의 손에 잡히게 된다.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데? 내가 장난감 갔니?”
“장난감이었으면 이런 수고도 하지 않지..”
“그럼?”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괜히 네 암울한 얼굴만 보면 장난이 치고 싶어진다는 생각만 드네..”
“.......”
“이혼을 한 게 자랑은 아니지만,,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항상 왜 죽을상을 하고 다니냐고?”
“내가 언...”
“아직도 태규란 남자를 못 잊겠냐?”
“....”
“합의이혼 아니었어? 알아보니까 합의이혼이던데. 그럼 서로 정나미가 떨어져서 합의를 한 거고, 이혼까지 한 거 아니야?”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럼 알려줘.”
“...뭐?”
“솔직히 까놓고 말할게. 나... 이 세상에서 사랑이란 거 안 믿는 현실주의자에 개인주의까지 있는 놈이고 그래서 지금 막 살고 있거든.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아! 친구라고 떠벌이는 놈들하고 같이 여자들과 뒹굴기도 하고, 술에 쩔어 살면서 약도 하고.. 돈?? 그래 돈 많은 놈이 나야. 그런데 나한테 안기면서 딴 새끼 이름 부르는 년은 절대로! 절대로 눈뜨고 못 보는 성격이거든!”
“잘 났네.. 그럼 그런 년들하고 놀아. 왜 나한테 이러냐고!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러냐고...내가,,흑..내가 뭘 잘 못 했다고...흑..자꾸.. 나한테만.. 엉..어엉엉엉”
결국 신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혼을 결심한 후 태규 앞에서 일부러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신이는 이혼 후에도 부모님들의 눈치를 봐야했기에 제대로 울어 본적이 없었다. 자신의 몸을 원망하며 흐느끼듯 눈물을 훔친 적은 많았지만.. 아이를 갖기 위해 몇 번이나 찾았던 이 장소에서 자신을 장난감취급하며 내는 화도 계속 장난으로 맞받아치는 강한상이란 남자에게 분해서, 그리고 서러워서 크게 울게 된다.
그런 신이의 모습에 강한상은 잠시 동안 침묵으로 바라만 보며 신이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는데.. 신이가 강한상의 팔을 계속 뿌리치며 울어댔기에 한 걸음 떨어져 그런 신이의 눈물을 바라보게만 된다. 한참동안이나 울던 신이가 겨우 진정이 됐는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다.
오랜만에 마음껏 울고 나니 한결 가벼워져 시원해진 속을 뒤로하고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행동을 또 후회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흐트러진 정신으로 만난 남자였고 한 번의 실수라고 넘기리라 다짐했던 사건이라고 해도 엄연한 강간범일 수 있는 이 남자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쎈 신이에겐 엄청난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도록 했고 그건 이 남자의 찾아올 다음 행동에 더 경계를 하게 된다.
계속 된 장난과 성적 행동으로만 자신을 대하는 이 남자란 인간에 대해 이미 박혀버린 인상이란 게 너무 더럽기까지 했기에 더 그렇게 느끼게 된 신이였다.
“다 울었냐?”
“됐으니까....꺼져.”
“일어나. 따뜻한 연일차 먹으러 가자.”
“연일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중저음의 목소리로 난생 처음 듣게 된 ‘차’ 이름에 훌쩍이던 신이가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게 된다.
“응. 일어나. 요 앞 찻집으로 가자.”
“....”
“그리고.. 이걸로 닦아.. 서른도 넘었으면서 더럽게 콧물까지 흘리냐.”
강한상이 건넨 손수건을 보며 의외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신이였다.
철없고 망나니로까지 보이던 강한상의 모습에선 볼 수 없었던, 차분하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건넨 손수건이란 물건이 신기하게 보였다. 명품 손수건인 게 문제가 아니었다. 강한상이란 남자가 손수건이란 물건 자체를 지니고 다녔다는 게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진 신이였고 지금까지 자신을 놀려주려고만 행동하며 항상 쳐다보던 시선이 아닌, 조용히 먼저 한걸음 앞서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의 등에 묘한 흥미를 느끼기까지 한다.
꼭 자신만큼이나 고독과 고통을 알고 있는 듯한 힘없이 약간 처진 강한상의 어깨와 등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지만.. 신이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섰다.
강한상이 주문한 연일차라는 건 색다른 맛이었다.
향내가 은은한 국화 내음과 상쾌한 박하 내음이 조화롭게 번져 코를 평안하게 했고 씁쓰레한 칡의 맛은 오히려 심신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듯 느껴졌다. 신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살짝 감고 향과 맛을 천천히 즐기며 따뜻한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좀 괜찮아?”
“.........응.”
“다행이네..”
“.... 안 놀려?”
“..뭐?”
“울었다고.. 놀릴 거잖아.”
“놀렸으면 좋겠어?”
“아니!.. 그건 아닌데.. 정색하는 네 모습이 너무 어색해.”
“풋~... 이건 뭐...넌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웃냐.”
“...”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아니야. 이제 괜찮아.”
“정말?”
“응.. 나 집에 갈래. 데려다 줘.”
“왜?”
“....응?”
“아까만 해도 혼자 간다고 소리 지르고 날뛰더만.. 내가 데려다줘도 돼?”
“근데 너.. 왜 꼬박꼬박 반말이냐? 너 스물여섯이라고 했지?”
“응.”
“으응?? 내가 몇 살 인줄 알아!?”
“나이 많은 게 자랑이냐?”
“이게 끝까지... 에휴... 이 누나가 참는다. 집에나 데려다 줘!”
“그러지 말고.. 우리 쇼핑이나 할까?”
“야! 내가 왜 너랑 쇼핑을 해!!”
“그러지 말고 응!? 너무 미안해서 그러니까.. 백화점 가서 내가 명품으로 한 세트 맞춰줄게. 가자.”
“너 돈이면 세상이 다 되는 줄 알지?”
“아니야? 돈으로 사람도 사는데, 다가 아닌가?”
“사람을 사?”
“응!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통화로 못 살게 있나? 돈이 최고야. 이 세상엔 화력과 권력, 인력을 다 동원할 수 있는 게 돈이라고. 서른둘이나 먹었으면서 그걸 아직 모르나?”
“그래서? 지금 날 매수하겠다고? 아니.. 회유인가?”
“아무러면 어때? 사준다는 데 안 받으면 바보지.”
“그럼 영화처럼 ‘어머~ 오빠 정말 고마워~! 난 오빠밖에 없어~’. 이러던가, 아니면! ‘그래 너 한 번 된통 당해봐라! 내가 오늘 아주 뽕을 뽑아주마!!’ 라고 해야 되는 거니?”
“크크크~ 참 재밌어. 그건 마음대로 하고.. 그래 보상이라고 해두자고. 좀 미안하기도 하니까 이걸로 퉁치면 되겠네.”
“.....”
“왜 그렇게 노려보냐?”
“넌 부모도 없니? 아니.. 부모님들한테 뭘 배우고 자라면 너 같은 애가...”
“없어...”
“..뭐?”
“우리 쩔고 위~~대하신 아부지는 몇 년 전에 죽었고, 지 잘난 줄만 알고 살던 엄마란 여자는 혼자 자살했어. 그래서 부모가 없다고.”
“...”
“사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지만.. 하여튼 네 말대로 그런 걸 가르쳐 줄 부모가 없다고.”
“.....미안.”
“왜? 왜 네가 미안해?”
“...몰라! 너랑 얘기하고 있으면 내가 미치거나... 하여튼.. 집에 갈래!”
“나 같으면 후자로 택하겠다.”
“뭐가?”
“너 성격 보니까 오빵~하면서 달려들 것 같진 않고.. 그래 너 된통 당해봐라! 가 어울리겠다고.”
“......”
“가자.”
“또 제멋대로... 싫어! 집에 갈 거야!”
“그래도 다 받아주네. 이왕 받아주는 김에 쇼핑까진 같이 가자고.”
“좋은 말 할 때 이거 놔라.. 진짜...아! 아프다고 갈 테니까 이거 놓으라고!!”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의 막무가내적인 행동에 신이도 결국 항복하듯 따라가게 된다. 괜히 눈물을 흘렸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따라가게 된 쇼핑은.. 그 쇼핑마저도 전적으로 강한상의 취향에 결정돼버렸다.
오히려 신이를 이끌고 돌아다니며 높은 하이힐과 화려한 스타킹, 섹시한 드레스원피스와 작지만 엄청난 가격의 가방까지.. 절대 신이의 취향도 스타일도 아닌 옷들만을 골라 몸에 대봤고 입어보라고 강요까지 했지만.. 당연히 신이는 어느 하나도 입어볼 생각이 없어보였다.
평범한 연인이라면 지친 남자친구가 투정을 부리며 결국엔 벤치에 앉아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형태의 쇼핑이 대다수일 텐데, 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백화점을 누비게 된다. 터프하게 걸어가던 강한상은 눈에 띄는 옷들과 구두, 액세서리들을 대뜸 신이에게 대보는 행동을 했고, 놔주질 않는 강한상의 손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이 백화점이란 곳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여자의 기분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가는 곳곳마다 하게 된 신이였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여자라면 이런 쇼핑하나에도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돌아다니고 싶어 한다는 걸 너무나 모른다고 속으로 욕을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끌려 다니던 신이의 눈에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카디건이 들어왔다.
옅은 분홍색에 원단추로 아무 장식 없는 단조로움이 특색인.. 색깔만으로도 포근하게 보이는 카디건을 신이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강한상의 손이 느슨해졌을 때 가격표를 확인한다.
버릇처럼 가격표부터 확인하며 원단의 재질과 세탁기로 돌려도 되는 물품인지, 잘 늘어나는 건 아닌지..등등을 확인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몇 번이고 꺼내보길 반복했다.
“뭐해? 그것도 사줘?”
“됐어.. 돈이 어딨다고... 태규씨 바지나 하나....”
“......”
너무 생각에 잠겨 있었던 신이는 자신도 모르게 버릇처럼 태규를 찾게 된다.
얼떨결에 말부터 뱉은 신이는 ‘아차!’라는 탄성을 속으로 되삼키며 한상을 향해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한상의 얼굴엔 표정조차 없었다. 차라리 일그러지거나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면 당황할 신이가 아니었는데.. 냉소적이기까지 한 강한상의 얼굴에 잠시 머뭇거리며 미안하다 사과를 하게 된다.
“미..미안.. 나도 모르게..”
“...”
“아니지! 내가 왜 너한테 미안해야 돼? 내가 오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네가 내 앤이라도 돼?”
“전 남편이 아직도 보고 싶냐?”
“뭐?....아니.”
“그런데 왜 중요한 타이밍마다 태규 이름이 나오냐?”
“내가 언제..”
“그런데 말이야.. 왜 헤어졌냐?”
“그걸 내가 왜 말을 해야 되니?”
“말 안 해주면 나 홀로 망상모드로 변하거든, 내 머릿속이 얼마나 추잡한 줄 너도 알잖아. 음~~ 보자.. 그래! 속궁합이 잼병이였구나! 남편이 좆도 못했지? 혼자 끼고 몇 번 흔들다가 싸기만 했지? 아니면? 나한테는 꽤 괜찮은 크기라고 거짓말 한 거야? 혹시 새끼손가락 만 한 거 아니..”
“내가 언제 너한테.. 에휴.. 됐으니까.. 이제 쇼핑 다 끝났지! 그럼 난 간다.”
“우리 첫 관계 때 기억 안나? 정말 기억 하나도 안 나냐고!?”
“네가 약...을 먹였잖아. 다시 생각나게 하지 말라고! 그나마 인간으로 보이려다가 당장 신고하고 싶어지니까!!”
“약은 개뿔...자기도 좋다고 좀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참나~”
“내가? 기억 안 난다고 막 지어내지 마! 진짜 확!! 신고해버릴지 모르니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 증인이구만.. 그리고 언니야! 신고하면 언니야도 같이 콩밥이야. 약물관리법 몰라? 그 공간에서 언니야가 나한테 달라고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건 내가 술에 취해서... 그게 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잖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신이가 목소리를 줄인다.
“참나~ 그렇게 좋다고 내 위에서 방방 뛰던 게 누군데..”
“....그만 하자. 내가 무슨 생각으로 여길 쫓아 홨냐. 내가 바보다. 내가 바보야!”
“못 믿어? 진짠데! 동영상도 찍어놨다니까!”
“무..뭐!? 사..진만 있다고.. 그거 지우라고 분명히 얘기 했고,, 너도 지운다고 했잖아!”
“사진은 다 지웠지.. 나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놈이걸랑. 그런데 동영상에 대한 건 약속 안했잖아.”
“.....”
“잠깐 볼래? 음~.. 저쪽에 가서 보여줄게. 따라 와.”
“미..미친놈.. ”
“아니면 여기서.. 어!!”
핸드폰을 손에 쥐고 흔드는 강한상의 빈틈을 단번에 노린 신이였다. 흔들고 있던 핸드폰을 단숨에 가로채 후다닥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석으로 달려가선 사진 파일들을 열어본다. 다행히 클럽에서 봤던 정말 간단한 패턴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이었고 열린 파일들 중 가장 위에 있는 걸 눌러본다.
[아하~~~~~]
‘다다다다다...’
엄청난 신음소리에 깜짝 놀란 신이가 다급히 핸드폰 왼쪽 아래 버튼을 찾아 소리를 줄이기 위해 연타하듯 누르게 되는데..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핸드폰에서 크게 울려 퍼진 신음소리에 깜짝 놀라 신이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그곳을 빠져나오려 발걸음을 움직이는데 바로 앞에 강한상이 서서 지키고 있었다.
“봤지? 난 죄 없다고..”
“후~.. 애도 아니고.. 아직도 이런 야동을 핸드폰에 넣어다니냐? 이게 나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참나~”
“진짠데.. 넌 흥분하면 네 자신이 얼마나 음란하게 변하는지 모르는구나....”
“무..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못 믿겠냐?~~~ 차로 가자. 거기에 블루투스 있으니까 끼고 들어 봐.”
“....”
차에 올라 한상의 말대로 귀에 꽂은 블루투스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얘기소리에 얼음처럼 몸이 굳어진 신이는 도저히 반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보게 된다.
천천히 허리를 흔들고 있는 뒷모습은 억지로 부정할 순 있었지만.. 강한상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여자의 그 목소리와 내용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정신 줄을 놨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곧 시작된 정상위 체위에선 신이 자신의 얼굴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아프다며 계속 울먹이다 다시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여잔 부정하려해도 자신이었다. 커다란 자지가 들어갈 때마다 고통스러움에 울먹이길 반복하면서도 탁한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혀가 잔뜩 꼬여 발음조차 부정확한 혀 짧은 소리로 연신 강한상의 말에 대답하는..
[죽이지? 아줌마 오늘 제대로 호강하는 거야.]
[아앙~..앙~ 너..넘 넘 조아효~ 아..아파..아팡...아팡..흑흑..넘 아파효..하악~~..조하요~]
[크크크.. 졸라 크지? 내가 별명이 말 자지야. 여자들이 한 번 맛보면 다른 놈 건 손가락으로 쑤시는 거 같다고 하던데.]
[하앙~..너..넘 켜~...커효.. 너무 커요.. 허아악.. 아..아파...아팡..아~~]
분명 혀 짧은 목소리와 고통과 쾌감에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의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밖에 모르겠지? 크크.. 너도 다른 년들하고 똑같이 먹다가 싫증나면 버려줄게.]
[하아~~..아앙.... 아...아파~~..아팡~.. 아~]
[네가 누구 거라고?]
[항~~ 앙~.. 태규씽~.. 태..태규씨꺼~~~ 하앙~...아앙~~ 너..넘 좋아효.. 여보.. 나.. 나 미틸...아항~~]
거기서 동영상이 끊겼다.
흔들리는 떨림으로 핸드폰으로 찍은 듯 한 동영상은 갑자기 배경과 신이와 한상의 모습이 회전하듯 어지럽게 돌아가더니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순간 정지해 버렸다. 화를 못 이기고 핸드폰을 박살내게 분명했다.
“잠깐.. 신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고? 그게 언제...”
“정확히는 형님한테 보여드린 그 첫 동영상 이후였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저와 신이가 처음 클럽에서 만나 술에 잔뜩 취해 제 친구 놈하고 그냥 따먹으려던 그 날이었죠. 저번에 말씀드렸던 클럽 이전입니다.”
“그럼.. 첫날 내게 보여준 그 동영상 말인가? 그걸.. 신이가 처음 본 건가?”
“친구 놈하고 같이 몸을 빨던 건 물론 안 보여줬죠. 그 이후에 저 혼자 찍은 동영상만 봤습니다.”
“그럼 그런 강간을 하고 다시 뻔뻔하게 다시 신이를 꼬셨다는 말이네..?”
“강간이라뇨. 남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술에 취했다는 것뿐이지 분명히 쓰리섬에도 응한 게 신이였습니다. 물론 그 쓰리섬이란 게 뭔지 모르게 응했겠지만 요. 크크크~”
“왜 그렇게 복잡하게... 흔해빠진 로맨스도 아니고 그렇게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나?”
“허~ 형님은 제가 개새끼처럼 보입니까? 제대로 연애를 하는데 동네 개새끼처럼 냄새 맡고 곧바로 빠구리부터 뜰까요? 처음이야 속궁합을 확인한 거고, 최고의 여자를 만났으니 최고의 대우로 유혹을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최고의 대우?”
“계속 말 끊으시면 얘기 그만 합니다..”
“아..알았어.. 그래서?”
“식겁하던데요. 크크크크. 그 동영상이 합성이라고 우기는데. 빵~ 터졌습니다. 그래서 말 했죠. 지금까지 여자 안으면서 다른 새끼 이름 연발한 건 네가 처음이라고요. 그 이름이 언제까지 나오는 지 두고 보자고요.”
“.....”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자고 했습니다. 맨 정신으로 날 느껴보라고. 좆만한 자지로 만족도 제대로 못 시켰던 전 남편 이름이 언제까지 나오는 질 확인해보자고 했습니다.”
“.................”
---계속---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내일부터 연휴내요.
즐건 불목들 보내시길 바라옵고 휴일은 가족과 함께 해야죠.(^^;).
여기서 한가지 과연 누가 네토리고 누가 네토라레, 혹은 네토라세 일까요? 몇몇분들의 날카로운 스포와 의견들에 쾌제의 탄성을 조용히 지르며 댓글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정해진 게임이 왜 타락게임 일까요(^^)?.
보내주신 쪽지들도 감상하고 있는데. 보내주신 내용들을 읽고나니 한편의 야설들을 만들정도의 내용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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