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를 돌려줘
2부
짹짹-
맑은 하늘이 아름답다.
비가 개인 후라서 한점 티없이 맑고 깨끗한 날씨..
약간 스산한 기운은 있지만,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발코니 창문을 열어두고 말리고 있다.
달콤한 비프 스튜 끓이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음~ 맛있겠다..
주연은 남편이 출근한 뒤,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널고 있는 중이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귀여운 앞치마를 둘렀다.
따스한 햇살이 쨍쨍-
약간 눈이 부실 정도로 시야를 가린다.
손등을 이마에 마주 대고 손바닥으로 자외선을 가리는 모습이다.
깟똑~!
톡이 오는 소리에, 에이프런 앞주머니에 넣어둔 폰을 금새 꺼낸다.
아앗..
모처럼 반가운 친동생 주희의 메시지였다.
[언니! 뭐해~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통 연락도 업꼬~ 사람이 모 그르냐?]
쿡쿡.. 귀여운 것.
슬그머니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또닥 또닥~
주연도 바로 답장을 보내준다.
[빨래 넌다~ 바뻐~
근데 너야말로 머하고 사는데.. 올만이네]
하나 보내두고 소리를 무음으로 해버린다.
지금은 빨래 마저 널고 어서 식사준비를 해야하니까.
한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잘 못쓰는 편이라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저녁에 돌아올 남편을 위해 맛있게 음식을 준비한다.
항상 부지런히 집안일에 열심이다.
성실하고 한눈 팔지 않는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깜빡 잊다가,
두시간 반쯤 뒤에야 혹시 톡이 또 왔나.. 확인해본다.
쿡쿡.
기집애, 오랜만에 언니랑 얘기하고 싶은데 뾰루퉁 삐졌나보다.
[어머, 이 언니봐~ 웃긴당..
칫 누가 울 언니 아니랄까봐 냉랭하기는~ㅎㅎ
맨날 내가 연락하는데~ 치~]
[이봐욧?~~]
[모하길래 바쁜가...ㅠㅠ 나 심심하다고 오늘 언냐]
[아띠..=.= 놀아줘 빨랑.. 나 버려두면 삐질건데..]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액정만 보는 주연.
푸하하-
귀여운 동생의 애교에 환하게 웃는다.
짜식~ 전화를 하면 되지..
꼭 카톡으로만 보내놓고 답장 없다고 투정 부리더라~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사랑하는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바빴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처럼 한가하게 노는줄 아니?
형부 곧 오시니까 밥 준비해놔야해.
너는 뭐하고 살길래? 니 근황이나 먼저 말해봐 ㅋ]
주연은 본래 성격이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학창시절에는 몸가짐을 늘 단정히 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본인도 늘 여성스럽고 조신하자는 마음으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또한 얌전한 행실도 몸에 잘 맞는 옷이었다.
타고난 천성이 참하지 못한 사람이 억지로 행한다해서 잘 되겠는가.
여하튼 그런 학생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많은 부분에서 시야가 트이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한결 성숙해졌다.
사고방식은 여전히 조금 고루한 면이 있지만..
어릴적부터 말수가 적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성적인 성향은-
대학교 4년을 보내는 사이 상당부분 나아진 것 같다.
남편과의 사이도 그렇다.
한참 나이차가 나서 대하기 불편한 대선배인데,
인물은 비록 썩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늘 자상하게 자신을 처음부터 챙겼다.
주변 선배들의 들리는 소문으로는 학교 다닐 때 꽤 놀았단다.
현서에 대한 소식이 그렇게 좋은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주연은 어릴적부터의 신념대로 생각했다.
사람을 먼저 겪어보고 내가 직접 판단해야지,
주변에서 누가 뭐라한다고 휘둘리지 말자-
여전히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신랑 현서와 같이 있을 때만은, 본인도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말수가 많아진다.
자신이 생각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애교도 늘었고~
워낙 현서가 주연을 이뻐하고 잘 대해주다보니..
그녀의 철옹성과도 같았던 마음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후릅-
집안일을 착실히 다 마무리 지어놓고,
부엌 탁자에 앉아 여유롭게 허브티를 마시고 있다.
찌이잉~~
때마침 동생의 전화가 울린다.
“응~ 그래...”
“언닛!!”
“아휴... 귀청 떨어져, 조용히 말해~”
“왜 답을 빨리 빨리 안주는 거얏~~ 감질나게~ 엉?
착한 동생 데꼬 밀당하는 고야~? 우히힝힝~”
“풋~ 밀당같은 소리하네..
너는 한가하지~ 집안일하는 주부가 너랑 같은줄 아니”
“히잉... 그래두.. 나는 언니랑 얘기못하면 마음이 허전하고 섭섭해..”
“호호호~ 오늘 왜 또 기분이 센치해?
남자친구가 잘 안놀아줘서 우리 동생 삐졌어?”
“치잇 언니는.. 그럴 남자라도 있으면 좋겠다”
“어머, 얘봐~?
니가 마음만 먹으면 남친 만드는거야 식은죽 먹기잖아.
맨날 외롭다고 말만 늘어놓고 사귀지도 않으면서 ㅎㅎ”
“내, 내가 언제? 히잉~
언제 누구라도 소개시켜주고 그런 말해 언냐는~!”
“쿡쿡.. 웃기고 있어”
주연은 주희가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그저 귀여웠다.
어릴 적부터 매일 붙어살면서 언니 말이라면 꺼뻑 죽는 착한 동생.
주희는 나이가 25세로 언니보다 두 살 어리다.
171cm의 키에 60kg의 늘씬한 체형이며
가슴둘레가 언니만큼 제법 탐스러운 글래머다.
주연은 객관적으로 봐도 풍만하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편이고
주희는 그것보다는 작지만, 평균적인 한국인의 가슴 사이즈에 비교하면
탐스럽고 예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허리는 언니보다 동생쪽이 조금 더 잘록하고 늘씬한 것 같다.
히프는 언니나 동생이나 적당하게 살이 올라 도톰하니 예뻤다.
풋~ 그러면 뭘하냐고..
보이는 겉모습은 도도하고 냉랭해보여도, 내 앞에선 철부지고 어린애인걸..
그 누구보다도 친동생의 실체를 익히 아는 언니는
자꾸만 앵앵거리면서 언니에게 애교 떠는 동생의 말에 웃었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현서가 돌아온다.
현서가 친구 성민과 몇 년만에 전화를 주고 받은 바로 그날이다.
뭔가 수심이 가득해보이는 얼굴...
주연은 얼른 다가가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여보,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아니.. 특별히 별 일은.. 왜 그래?”
“힘들어 보여서요.. 근심어린 뭐가 있는 거 같고..”
“핫핫~ 그런거 아니야~ 오늘 일이 많아서 그러지”
좌우지간 내가 뭘 숨길 수가 없다니까..
아무일 없는 척 태연한 얼굴로 위장한 그였기에
아내가 건네는 말은 흔한 인사말이니, 티를 내지 말자고 생각한다.
대충 저녁을 먹은 후, 홀로 쓰는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
혼자 사용하는 데스크탑 pc와 큰 대형 모니터.
서재라고 부르기엔 과분할 정도로
책장들과 어울려 한 쪽 구석에는 작은 홈시어터를 구현해 놓았다.
예전부터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설치해놓곤 했었는데..
지금 이사온 아파트는 평수가 썩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대로 작은 자기만의 영화감상 공간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푹신한 사무용 검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빙글~ 빙글~
뭔가 생각에 몰두하다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의자를 정신없게 돌린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진지한 고민에 빠질 때..
현서가 가지는 버릇이다.
하아.. 어찌하면 좋냐고..
자신만만한 척, 성민에게 큰소리치던 것은 좋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녀석에게는 늘 강한 모습만 보이고 싶으니까.
그런 이미지 연출이야 괜찮았는데, 그 다음 풀어갈 일이 태산이다.
당장에 저기 거실에 앉아 있을 이쁜 와이프한테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정말 앞이 캄캄했다.
나도 참 배짱 좋구나..
대책없이 경훈에게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일을 추진해버렸는데,
아니야. 약한 모습, 이런 차원이 아니잖아 이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위험한 제안 따위를 수락하지 않겠지..
그냥 지금에라도 없던 일로 물리고, 다시 성민에게 전화를 할까?
주연이에게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했는데..
그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괴로웠다.
똑똑~
책상에 붙어 앉아 두 팔꿈치로 기댄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노크가 들렸다.
달칵...
“여보, 뭐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니야.. 아무 일도”
“에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지금 막 문열어보니까 머리 싸매고 있는거 딱 보였는데요 호호”
“하핫.. 그런가? 딱 그 타이밍에 들킨거야?”
“키킥, 그래요, 참~ 요거 드세요”
살살 기분 좋게 남편을 달래주는 아내의 편안한 미소.
그 온화한 얼굴에 현서도 순간적으로 피로를 잊었다.
주연은 후식으로 제철 과일인 단감과 배를 깎아서 접시에 담아왔다.
감도 좋지만 시원한 배는 현서가 정말 좋아한다.
키야...
머리도 띵했던 판에 차갑게 입안에 베이는 배 맛이 일품이었다.
“후후..”
“흐흣, 왜 웃냐”
“아니예요. 배 먹으면서 짓는 표정이 웃겨서”
“하하 그랬어? 너무 맛있어서”
“귀여워요, 그런 얼굴이.. 가끔 장난꾸러기 아이 같을 때가 있어요”
“ㅎㅎ 좋은 의미야~ 뭐야~”
“글쎄요.. 딱히 좋은 의미만을 담고 있진 않을 지도요? 호호호~”
“뭐야앗~? 요 명랑한 녀석~”
주연이 앙탈부리는게 귀여워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아프다고 칭얼댄다.
태닝을 전에 했다더니 피부가 여전히 하얗고 곱다.
현서가 장난스럽게 꼬집은 뺨이 슬쩍, 발갛게 부풀어오른다.
히잉~
아내 주연은 남편의 얼굴을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겼다.
“아프잖아요오~... 미m”
“킥킥. 미안.. 너무 세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봐, 장난치려던 건데..”
“쿡~ 못 믿겠어,
아까 손에 감정 제대로 실린 것 같은데요?”
“에이.. 그건 아니야, 쪼금~ 오버하긴 했지만..”
“거봐요~ 좀 아프라고 힘준 거 맞네 뭐..”
“하하하, 미안해~ 아이구 귀여워라”
주연도 장난으로 한 얘기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슬쩍 빨개진 뺨을 톡톡- 어루만져주자
괜찮다고 팔을 슥- 밀어내며 웃었다.
“여보, 저기..”
“응”
“주희가 오늘 전화가 왔어요”
“처제가? 오랜만에 통화했나보네?”
“네~ 한동안 마니 바쁘다던 애가 오늘 한가했나봐요”
“응.. 그런데?”
말 그대로 오랜만에 듣는 처제의 이름이다.
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가운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저런 고민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이 많더라구요 요즘”
“진로에 대해서라..
처제가 최근까지 했던게 어떤 쪽 일이었었지?”
“일이라기보다~ 음..
무슨 게임방송이었나~? VJ.. 그걸 잠깐 파트타임으로 한다고 했었어요”
“게임방송 브이제이?
그런걸 알바삼아 할 수도 있나.. 그건 그런 직종이 아닐텐데 말야”
“.... 그래요? 몰라~ 걔는 그렇게 말하던데..”
“음 암튼 그래서~ 지금은 하다가 그만둔거야?”
“아뇨, 아직 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계속 그 일을 할 자신이 없대요”
현서는 처제 주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흥미가 동했다.
잠깐이나마 머릿속에 심각하게 자리한 성민을 잊은 상태다.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 아내의 동생답게,
한 핏줄로 이어진 주희 역시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두 살 터울의 여성이지만
형부인 현서가 볼 때, 언니와는 많이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꿀꺽..
이야길 하면서 자연스럽게 처제의 외모를 떠올려본다.
본지도 오래됐는데.. 한번 봤으면 싶네..
언니 주연도 장신인데 그보다 더 훤칠한 주희.
키보다도 형부인 현서의 마음을 때로 설레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연과 대비되는 주희만의 독특한 매력이었다.
살색은 주연이 주희보다 더 하얀 편이다.
다만 지금은 앞서도 말했지만 살을 태워서 오히려 주희가 하얗게 보일 정도.
자매가 공통으로 찰랑 찰랑~ 좋은 머릿결을 가졌는데
언니 주연이 날 때부터 약간 부드러운 갈색의 화사한 머리카락이라면
동생 주희는 칠흙처럼 검고 윤기나는 머릿결이 특징이었다.
이런 저런 두 자매간의 특징을,
아내 몰래 가만히 떠올리며.. 조금 야릇한 상상을 해보는 현서다.
아마도 주연이 그걸 안다면 퍽 기분 나빠할 지도.
어쨌든 현서는 본의 아니게 처제의 이목구비와 몸매를 잠시 떠올리며
슬며시 가슴이 두근~ 설레고 있었다.
“쇼호스트..?”
“네. 자기는 원래 어릴 적부터 그쪽이 꿈이었다고..”
“쇼호스트면 홈쇼핑에서 상품 홍보하는 MC 말하는 거네”
“그렇죠~”
“흐음..”
“우습죠? 본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대담한 꿈을 꾸고.. 풋~”
“하하. 너무 하잖아 주연아..”
“아뇨.. 사실이예요.. 히힛, 얘도 그렇게 말하는걸요”
“처제도 그렇게 말은? 하고 싶긴 한데 목표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나?”
“으응~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도전할 각오는 되어있는데,
단지.. 지금의 익숙해진 패턴을 접고,
멋모르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려 하니까.. 그게 겁이 난다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현서는 알아서 술술 설명해주는 주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골랐는지 말도 막힘없이 잘하고 머리좋은 아내다.
주연은 싱긋~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남편을 응시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잉~ 대뜸 나한테 뭘~?
이미 여보가 상황에 대해서 파악도 잘 하고 있고,
나같은 구경꾼.. 보다는 훨 그 입장에 대해 잘 코치해줄 것 같은데, 동생한테..”
“호호호~ 그건 걔를 몰라서 하는 말씀이예요..”
“무슨 말이야?”
“흠~~ 주희는요~ 뭐라고 할까..
제가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곧이 곧대로 잘 받아들이는 걸 좀 어려워해요”
“으잉~? 좀 더 쉽게.. 주연아..”
“키득~ 별것 아니예요..
음, 뭐 딱히 제가 자매라서, 객관적으로 하는 말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다..? 형제라서 좀 우습게 여기나?”
“아뇨, 말을 끝까지 여보.. 호호~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아니고.. 음~
같은 여자끼리고 하니까.. 기왕이면 남자에게 조언 받는걸 원하는 것 같아요”
“에이~ 그건 넘 지나친 자기 생각 아니야?”
“맞아요! 얘는 못되 먹은 팥쥐 마인드가 있어서..”
“하하하하”
“호호, 정말이예요. 같은 동성보다 이성이 더 믿음직하다고.. 막 그래요”
그래서 주연이 말하려는 결론은,
형부된 입장에서 간만에 처제를 한번 둘이 만나서
진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고 밥도 한번 먹으란 이야기였다.
아니.. 그럼 나야 좋지..
오랜만에 이쁜 처제 얼굴도 보고.
아무튼 간에, 동생에 관한 일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고 싶어하는..
그런 자상한 언니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현서도 보기 좋았다.
-
주연과 주희 이야기를 했던 그 날은 결국, 아내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못했다.
후~ 아직은 일러.. 아직은..
성민이놈에게 선전포고를 뱉은 당일인데 너무 이르기도 하고,
처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티없이 맑은 아이한테..
대뜸 충격적인 말을 꺼내기도 타이밍이 애매했다.
쳇, 그런 식이면..
1년 365일중에 어떤 날도 타이밍 잡기가 어렵겠네..
후~ 그래도 오늘은 일단 넘기자.
일단 경훈에게는 카톡으로-
간략하게 일정을 잡아놨다...는 이야기만 보내놓았다.
주말이 가기 전에는 주연에게 어떻게든, 이야길 꺼내야한다.
그런 중압감이 토요일 저녁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를 넘기는 시각.
같이 거실에 편히 앉아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 웃으면서도,
현서는 옆에 앉아 즐거이 웃는 주연을 계속 힐끔거렸다.
어떻게 한다?
오늘은 꼭 말해야해...
잠자리에 들 시간.
침대에 드러누워 아내 주연의 젖가슴을 깨문다.
아얏-
아파하는 주연이 눈을 찡그리며 현서를 노려보는데..
그 눈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쪽...”
부드럽게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쫍... 쫍.. 우음... 여보..”
“하아.. 하아.. 주연아..”
“응... 입술 기분 좋아요.. 오늘 되게 달달해..”
“쫍... 그런가? 흐흐..”
“호호.. 오늘 자기 좀 섹시한 것 같아요, 여보..”
“무슨~ 평소랑 다를바 없는데~? ㅎㅎ”
“아닐껄요~? 평상시랑 달라요.. 오늘의 분위기가”
“... 그래.. 내가?”
“응~ 뭐라고 해야하나.. 우수와 근심에 차 있는 눈빛..
고독한 분위기가 왠지 다르다구요.. 무슨 의민지 알아요?”
아~ 이것 참..
내가 이래서 우리 마누라 속이고 어떻게 사나..
휴...
그래, 눈치 챘을 때~ 보따리 지금 풀어버리자.
“사실은 말야, 주연아..
오늘이 가기전에 꼭 할 얘기가 있었어..”
“쿳... 그랬어요?
그렇게 떠듬 떠듬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뭔데요”
“그게 쉽게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 뭐냐면..”
멍석이 깔린 마당에 풀어야했다.
꿀꺽~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떨리고 부끄럽지만,
현서는 아까 자리에 들기전 마신 소줏잔의 힘을 빌어
주연에게 힘겹게, 성민과의 이야기를 천천히 얘기했다.
...............
이야기를 들은 주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현서는 이야기를 힘들게 다 해놓고, 술이 비로소 깬 상태였다.
콩닥 콩닥.....
가만히 아무 말이 없는 아내의 작은 입술만 쳐다본다.
주연은 알 듯 말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고요한 미소만 지었다.
현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으로 숨을 뱉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일을 저질러놓은 현서 입장에서는,
아내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고.. 파악하기도 두려웠다.
그저 눈치만 보고 있는다.
주연은 그런 남편을 힐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마침내 천천히.. 앵두빛 입술이 열린다.
“..........
그래서, 당신은 무어라 했어요?”
“응...?”
“그 친구한테, 뭐라고 답변을 하셨냐구요..”
차분하게 말하는 어조에 현서가 오히려 놀란다.
10분 정도를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주연.
담담하게 입을 열고 말하는 모습은 의외였다.
현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침착한 아내의 모습에..
막연한 이질감과 함께 약간의 오한을 느꼈다.
이런 모습도 가지고 있었나..?
“꿀꺽... 그게..
일단 고려는 해보겠다고.. 말을 했지..”
“생각을 해보겠다고요..?”
“으응, 전적으로 결정은 너한테 달려있어, 주연아..”
“...... 그래요..”
“어, 어떻게.. 좀 생각을 해봐야겠지..?
역시 쉽게 바로 말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겠..”
“아뇨, 저 할게요”
“.......?! 뭐...??”
현서는 아내의 주저함 없는 결연한 태도에, 아연실색했다.
저 표정은..
내가 아는 주연이가 맞는거야..?
“........ 하겠어요..
물론 쉽지는 않은 결정이지만..
당신이 궁지에 몰려서.. 난처할 만큼 괴로운 상황이니까..”
“주연아...”
“.... 근데 있잖아요 여보, 저..”
“응.. 편하게 말해..”
주연은 처음에 애써 담담하게 말하더니,
조금씩 말할수록 덜덜 떨고 있었다.
“당신이, 앞으로 생각을 더 해볼 수도 있다고 하니까..
일단 동의하는.. 거구요.. 알죠?
그리고.. 나라고.. 이런 결론을 내기가 결코.. 쉬운 건 아니예요..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 알아, 내가 왜 모르겠니”
떠듬 떠듬.. 한구절 한구절을 어렵게 말하는 주연이 안쓰러웠다.
거기까지만 말하게 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현서는 주연을 와락, 끌어안았다.
됐구나.
걱정 근심이 짧은 한 순간이지만,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
신기하게도 짜릿한 기분.
그리고 현서의 가슴을 그간 콱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어리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착각을 느꼈다.
-
한낮의 사무실.
아직 가을이지만 오늘은 좀 쌀쌀하다.
많은 남녀직원들은 알아서 가벼운 가디건과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아래 직원들을 살피며 현서는 조용히 혀를 찬다.
짜식들, 아직 젊은데 뭐가 춥다고 몸살들이야..
문득 커피가 땡겨서, 탕비실 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직원을 부른다.
“저기~ 미스 김~ 커피타러 가?”
“네..? 그런데요”
“미안한데~ 나도 커피 한잔만 부탁할게”
“아~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 연아로~ 아니면 태희 언니루요?”
짐작하기 쉬운 멘트지만, 김연아와 김태희가 각각 광고하는 커피를 말했다.
현서도 씨익~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연아가 먹고 싶다고.
언뜻 들으면 성희롱이 명백한데, 그런 뉘앙스를 주지 않으려했다는 듯
말하는 어감과 속도를 조절해서 천연덕스레 얘기한다.
그러자 여직원도 피식~ 웃으며 걸어간다.
“아, 고마워”
“뭘요, 오랜만에 시키신 커피 심부름인데”
“ㅎㅎ 미스김은 예전에 만난다던 사람은 어떻게 됐어?”
“저요~? 제가 저번에.. 아, 맞아..”
“김인애씨~ 여기 이것좀 와서 도와줘요~”
“.... 아, 네! 지금 갈게요. 잠시만요.”
“뭐야.. 저 멍청한게 저보다 상사가 얘기하는 중인데..”
“키득~ 그러지 마세요 과장님, 차대리님도 못봤나봐요.
저 그럼 일단 가볼테니까, 또 천천히 얘기 나눠요?”
“.... 그래 뭐~ 기대할게~”
김인애라는 이름의 경리 아가씨가 사라지고 난뒤,
현서는 손깍지를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아, 어디까지 아까 생각하다 말았었더라..
성민이 자식...
생각해볼수록 골치가 아파 이마에 손을 짚고 살살 문질렀다.
어떻게 용케 주연이한테 얘기는 했는데..
이제 내일 모레 이틀 뒤면 올 녀석에게 따로 준비해올 것을 말해줘야했다.
그런데 카톡 창을 유심히 바라보는 순간~
때마침 성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 이 자식이... 톡보내라니까 전화하고 있네..
목을 가다듬으며 긴장한 톤으로 받는다.
“어.. 나 지금 일하는데 성민아..”
“잠깐만 얘기할게, 방해해서 미안해”
“그래 얘기해봐 그럼”
“응.. 너 있잖아, 오늘.. 저녁에 나좀 볼수 있어?”
“오늘...?”
왠일이지..
오늘은 아직 수요일.
녀석이 집에 오기로 한 것은 이틀이 남았다.
지난주에 통보한 뒤, 성민이 이렇게 불쑥~ 보자는 것도 처음이다.
이 짜식이~ 무슨 생각으로 이제 와서..
“안되는 건 아닌데.. 무슨 일로?”
“그게 저.. 큰 일이 있는거는 아니고 말야..
내가.. 아무래도 너희 집에 그냥 찾아가려고 하니까 너무 떨리고..”
“아아~ 그런 얘기라면 됐어, 걱정말고 그냥 와”
“아니 그래도 만나서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됐다니까.. 내가 너한테 톡으로 보내준 것만 잘 지키면 돼.
정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보자..
금요일날 좀 일찍 와. 밤 말고 저녁 여덟시 쯤 해서”
대강 톡으로 일러줬던 내용을 재확인해주면서, 전화를 끊었다.
짜식이.. 장난치나?
존나 새가슴인거는 알고 있지만, 뭘 또 따로 보자고 지랄이야..
그냥 그날 안 늦게 좀 일찍 와서, 따로 나랑 얘기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초조하게 생각중이던 현서는
덜덜 떨고 있는 성민의 모습을 상상하며 화가 치솟았다.
에이.. 병신같은 새끼..
이쪽은 그렇지 않아도 한창 예민해져 있을 아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등받이에 머리를 턱~ 기대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후아.....
생각에 잠겨본다.
어제도 아내가, 침대에서 조용히 어깨를 기대며 말했다.
“금요일이.. 아주 빨리 다가오네요, 여보..”
“..... 이제 3일 남았지..”
“녜..”
“잠이 안와? 심호흡 한번 가볍게 하고..
내가 어깨 좀 주물러줄게”
“아,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런 것보다..”
“응..”
“꿀꺽..
당신이 며칠전에 직접 이야기했잖아요..
그 뒤로도 저,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고민에 빠졌었어요”
“그랬던 거 알아 나도.. 옆에서 모르는 척 했지만,
여러번 네가 뒤척거리는게 보이더라..”
꿈틀 꿈틀, 떨리는 몸으로 조용히 속삭이는 아내가..
정말 짠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떨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 당신 친구분, 성민씨..
몸도 거의 병 때문에 회복될 가망도 없다하시고,
여보야도 전에 친구에게 했던 못된 행동...”
“그냥 얘기해, 편안하게”
“...... 나쁜 행실들도 있었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을거라 이해는 해요..”
그 얘기는 지난 밤에, 다 부둥켜 안고 했던 이야기잖아..
현서는 아내가 뭐라 말하려는지.. 이어서 가만히 들었다.
“........
그래도, 그래도.. 당신 기억하고 있는 거죠..?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현서 씨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기꺼이,
힘이 될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하던 이야기를 말이예요”
“알고 있어, 주연아... 그래서 내가 더욱 미안해..”
“저.. 그리고 앞으로도..
몸가짐이 헤픈 여자라고.. 생각지도 마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헤픈 여자라는 생각을 내가 감히 어떻게..”
“....... 알아요.. 그렇지만..
사람 앞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지금 생각과.. 나중 생각은 또 다를 수가 있어요..
어쨌든 여보, 제가 드리고픈 결론은..
사정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저를.. 변치말고, 이해해주세요..”
“그래.. 알겠어.. 고맙다..”
-
그리고 남은 이틀도 빠르게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D 데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온다.
때마침 궂은 날씨도..
현서 주연 부부의 걱정스럽고 한편 또 설레이는 마음을
대신 읊어주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이번주 내내 손에 일이 제대로 잡히지 않을때가 많았지만
특히나 당일이 되니, 아침부터 앉아 있는 내내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긴장을 하지 않으려 심호흡도 해보고
릴렉스~ 릴렉스~를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키고 몸을 이완시켜본다.
그래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꿀꺽...
정말 잘하는 짓일까, 이거..
이제 불과 몇시간 남지 않았다.
성민에게는 어제도 카톡으로 집까지 찾아오는 길을 상세히 알려줬다.
딱히 별다른 유의사항은 없었다.
몸이 안좋은 환자고 하니까 특히 청결에 신경쓰고 와라.
혹시나 아내가 불편함을 느낄 만한 요소들을 시시콜콜 잔소리한다.
수염은 단정하게, 양치후 구강청결제, 몸도 깨끗이 샤워하고 등등.
일은 하지 않고 따다닥- 따다닥-
책상을 여러번 두드리면서, 성민에게 카톡을 또 보내고 있다.
그리고 저녁.
밥은 알아서 챙겨먹고 오도록 시켰다.
따라서 시간은 자연히 저녁 8시 정각으로 정해졌고,
두근 두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굉장히 초조해지는 현서와 주연은
떨리는 마음과 긴장을 견디기 위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
“응, 주연아”
“오빠,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 뭐 이제와서..
시간 다 임박했는데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아니.. 그런건 아닌데...
나 정말, 이래도 괜찮나..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이 아니지..
분명 아내 주연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게 분명했다.
협조해달라고 간청하니까,
말도 안되는 남편의 황당한 부탁에 마지못해 응해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감이 점점 커졌고
지금 순간이 다가오자 심장이 더 무서울 정도로 쿵쾅쿵쾅-
거칠게 뛰는 것이다.
빌어먹을...
정말 이런 짓거리를 해도 괜찮은 걸까..
나, 오늘을 넘기고 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을까?
현서는 욕지거리를 나지막히 내뱉으며,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성민을 그냥 돌아가라고 말할까..
오만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간을 보니 7시 30분이다.
깊게 한숨을 쉬며, 거실 유리 찬장에 넣어두었던 발렌타인을 꺼내었다.
술이 약한 아내를 위해, 그리고 본인도 긴장을 풀려고 유리잔에 나눠 마신다.
띵-
잔과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마시고..
취기로 뺨과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주연을 보았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조금 취하게 하려했는데
오히려 수줍게 물드는 그녀의 살결을 보자, 불끈- 욕정이 치밀어오른다.
아... 제길...
이제 곧 있으면 녀석이 오는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끌어안고 싶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현서는 질끈, 눈을 감고 머리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리고는 땀에 젖어 떨리는 손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매만져주었다.
“... 주연아, 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무엇보다도, 진행하는 동안...
너 혼자가 아니잖아. 내가 계속 옆에 붙어 있을 거니까.. 알고 있지?”
주연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조금 마셨다고 와인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극도의 수줍음과 불안함에 긴장한 건지..
찬찬히 달래주며 어깨를 만져주어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7시 50분.
10분 남은 시계를 보고, 현서는 아내를 바삐 안방으로 들여보낸다.
후흡....
깊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곧이어 7시 58분을 가리킬 때..
띵~동... 조심스럽게 벨소리가 울렸다.
“........
어.. 들어와..”
“오랜만이야...”
“그래, 일단 어서 들어와서..”
“...... 잘 지냈어, 현서야?”
성민은 마치 여성스러운 고양이를 연상시킬 만큼,
무척 조심스럽게 발걸음 소리를 안 내며 조용히 집으로 들어왔다.
현서는 그런 행동을 하나 하나 보며 딱딱히 굳은 표정이다.
꿀꺽......
소파에 성민이 눈치를 보며 앉을 때까지,
현서가 잔뜩 긴장해서 경직된 표정은 이어졌다.
“..... 어려운 걸음했지.. 비오는 날인데, 오느라 대단히 수고 많았어..”
“뭘.. 아니야.. 나야말로.. 이렇게 좋은 집에 오는데..”
“오는데 막히지 않고.. 금방 왔어?”
“어.. 버스 타고 오니까 25분 정도 걸리더라..”
“그래...”
몇 년만에 전화통화만 며칠 하고 본 것인데도,
반갑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극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당연한 현상이리라.
현서는 꿀꺽, 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다.
성민도 눈치를 보아하니 마찬가지다.
간단한 안부를 서로 묻고 근황에 대해서 얘기가 이어졌다.
초대받은 손님보다 초대한 주인이 훨씬 긴장해서 어쩔줄 몰랐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현서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대화하는 내내..
성민의 일거수일투족과 입고 온 복장을 유심히 살폈다.
이야기하는 내내 현서가 자신을 기웃거리자
성민도 눈치를 채고는, 스스로의 몸에 뭐 묻은 것이 있나 하고 살핀다.
현서가 성민을 바라보는 이유는 아픈 환자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암 환자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하고 깨끗한 그의 두발과 복장, 그리고 용모 때문이었다.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이 녀석, 정말로...
폐암 말기가.. 맞는 건가?
뒷통수를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게 왠지 불길한 예감이다.
생각이 지나친 거겠지..
의심이 너무 많은 것도 탈이다.
휴우.. 한숨을 쉬며, 자세를 다잡는 현서.
거두절미하고~
지금부터 있을 시간을 대비해, 주의사항을 꼼꼼히 일러주기 시작한다.
그 주의사항이라는 것이...
들여다보면 화악~ 낯이 뜨거워지는 내용이었다.
현서는 이미 와인을 어느 정도 마셔서 취기가 돌고 있었다.
성민에게도 술을 권하자, 환자라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머뭇거린다.
억지로 마시게 했다.
마셔 임마, 너도 안마시면 얘기가 안돼.
그래놓고...
꿀꺽, 큰 침을 삼키며 떨리는 입으로 말한다.
“어때, 대강 알겠냐.....”
“...........응... 이해했어..”
“그럼 읊어봐”
“음...”
현서가 말한 내용을 다시 이야기하려니, 성민의 얼굴도 빨개진다.
그 입을 바라보는 현서도 조마조마- 떨리는 가슴이다.
“...........
콘돔은.. 아내의 의사를 먼저 묻고..
사용할지,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지.. 결정할 것..”
“그렇지..”
“......저, 그렇다는 얘기는, 현서야”
“어.. 말해..”
“혹시, 내가.. 질내사정을 해도.. 된다는.. 말이야..?”
질끈- 눈을 감으며 현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내는 틀림없이 안전한 날이다.
혹시 몰라 어제부터 미리 피임약은 복용하도록 주문했다.
그래도, 대답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 씨발........
잠시 망설이다가 힘겹게 입을 연다.
“...... 그래.. 단.. 주연이만 괜찮다고 허락하면...”
“...... 알겠어..”
“그리고 또?”
“음...”
"아내의 안에 싸도 좋다..."는 말에,
그때까지만 해도 경직되어 있던 성민의 얼굴이,
갑자기 활짝~ 피는 것이다.
너무 티를 내면 현서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서둘러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현서는 짧게 한숨을 쉬며 와인잔을 보고 있느라,
성민의 그 좋아하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성민을 바라보며 현서가 입을 열었다.
조금씩 말하면서 술의 힘을 빌었기 때문인지,
듣는 현서도 말하는 성민도 많이 침착해져 있다.
“키스는 기본적으로 허용되지 않음..”
“..... 그래, 안되고..”
“그리고.. 또 뭐 있더라..”
“입으로 하는것도 안돼..”
“아.. 그래.. 그런 것은 생각도 안했어..”
그 다음부터는 현서가 이어서 말했다.
“좋아. 뭐 특별한 것은 없어..
체위는 가급적이면 정상위..로만 하고..
항상 주연이에게 의사를 먼저 묻도록 해, 알겠지?”
“어.. 물론이지, 그거야..”
“억지로 뭐하려 하거든.. 당장 내쫓을거야.. 그러니까..”
“알겠어, 알겠다고, 시키는 대로만 할게..
저, 그리고.. 현서야”
“응”
“이거 우스운 질문이지만.. 애무는..
키스는 안돼도.. 애무는.. 해도..?”
“쿡.. 하하~ 야.. 미치겠군..
임마, 애무는 베이스인데 당연히 해도 되지..”
“가, 가슴이나 엉덩이 같은 곳 모두.. 다..?”
한숨을 안 쉴래야 안 쉴수가 없다.
이건 뭐 어린애한테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피식~
성민 녀석의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알 수 없는 어리석음을 보며 현서가 웃어버린다.
“참나.. 멍청한 거여 뭐여..
얌마, 키스만 안되고 다 하라고.. 알간..?
내가 안방에서 주연이 들을까봐 소리 안지르는 것만 알어, 응?”
“아, 알았어.. 미, 미안해.. 눈치없이.. 미안해”
“답답하다 증말~ 진성민 너...”
“........”
“키스는 내가 기분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제외고..
나머지는 전부 주연이가 하라는 대로.. 허락받고 하면 된다..”
“.... 알겠어..
그리고 현서야.. 마지막 하나..”
“또 뭔데?”
“고맙다구...
이런 감사한 기회를 나한테 만들어줘서..
고마워.. 정말이야”
“쳇.. 개소리하네 이제와서..
고마워하지 마라. 나도 지금 기분이 뭣같고 이상하니까..
무슨 생각으로 이짓을 하는지..
나도 정상은 아니야 지금,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아무 말 마라”
“그래... 알겠어..”
“들어가자”
알수없는 불안감으로 머리가 어질어질 메스꺼운 와중에서도,
현서는 스윽- 성민의 작은 등을 밀고 안방으로 들어가며..
순간이지만, 알 수 없는 짜릿한..
카타르시스와도 같은 설레임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주연아.
떨리고 무섭지만, 그래도 내가 계속 곁에 붙어 있을 거니까.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는 양 손바닥을 몰래 닦는다.
=
힘들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부끄러운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회는 조금만 생색좀 낼게요 ㅎㅎ
영애-현준, 수경-지우, 승호-수희, 민규-하연의 첫경험(이쪽은 좀 편했죠)을 적을 때보다,
제가 적은 어떤 남녀주인공의 베드씬보다도 긴장이 됩니다.
아직 본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죠.
이제 드디어 3회에서는 성민과 주연의 정사씬이 이어집니다.
독자분들도 지금 저만큼 긴장을 하고 계실런지요? ... 어떨까요.
10부 안팎으로 이야기를 끝내겠다고 공언한 만큼-
제가 현재 연재중인 소설중에서, 등장인물간 관계가 가장 빨리 나옵니다.
어제 저녁에 1부의 적은 댓글 때문에 약간 과격하게(?) 독려글을 남겼습니다.
지난밤 바로 많은 분께서 응원해주시는 걸 보고 놀랐죠.
그래서 오늘 일요일인데도, 기분 좋아져서 예정보다 빨리 올립니다.
-
19일 늦은 밤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솔직히 조금 반응이 미지근하지만, 그래도 열렬한 응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형사취수의 8부에도 적었는데요..
앞으로 제가 적는 모든 글은 최소 추천수 600~650 (그리고 댓글 100) 이 나와야 차회를 올립니다.
무리한 숫자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조회수를 생각하면 육백은 오히려 적은 수치라고 봅니다.
그런 이야기까지 세세히 드리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결론만 드리죠.
아직 초반부이니까 조금 더 핫~해질 유예기간도 두어야하고,
이번편은 600 아래만 밑돌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생각이 많습니다. 2년전부터 저를 아껴주신 감사한 분들과 최근에 열성적으로 댓글로 도와주셨던 분들,
한분 한분들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로는 먼저 50분 정도의 진성 팬분들만 추려서 까페에서 따로 공개를 할까 합니다만,
아직은 조금 더 "유령독자" 분들의 참여를 유도해보려 합니다.
어차피 다음회는.. 추천수 1000 에 도전합니다. 그럴만한 성격의 회니까요.
2부
짹짹-
맑은 하늘이 아름답다.
비가 개인 후라서 한점 티없이 맑고 깨끗한 날씨..
약간 스산한 기운은 있지만,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발코니 창문을 열어두고 말리고 있다.
달콤한 비프 스튜 끓이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음~ 맛있겠다..
주연은 남편이 출근한 뒤,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널고 있는 중이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귀여운 앞치마를 둘렀다.
따스한 햇살이 쨍쨍-
약간 눈이 부실 정도로 시야를 가린다.
손등을 이마에 마주 대고 손바닥으로 자외선을 가리는 모습이다.
깟똑~!
톡이 오는 소리에, 에이프런 앞주머니에 넣어둔 폰을 금새 꺼낸다.
아앗..
모처럼 반가운 친동생 주희의 메시지였다.
[언니! 뭐해~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통 연락도 업꼬~ 사람이 모 그르냐?]
쿡쿡.. 귀여운 것.
슬그머니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또닥 또닥~
주연도 바로 답장을 보내준다.
[빨래 넌다~ 바뻐~
근데 너야말로 머하고 사는데.. 올만이네]
하나 보내두고 소리를 무음으로 해버린다.
지금은 빨래 마저 널고 어서 식사준비를 해야하니까.
한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잘 못쓰는 편이라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저녁에 돌아올 남편을 위해 맛있게 음식을 준비한다.
항상 부지런히 집안일에 열심이다.
성실하고 한눈 팔지 않는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깜빡 잊다가,
두시간 반쯤 뒤에야 혹시 톡이 또 왔나.. 확인해본다.
쿡쿡.
기집애, 오랜만에 언니랑 얘기하고 싶은데 뾰루퉁 삐졌나보다.
[어머, 이 언니봐~ 웃긴당..
칫 누가 울 언니 아니랄까봐 냉랭하기는~ㅎㅎ
맨날 내가 연락하는데~ 치~]
[이봐욧?~~]
[모하길래 바쁜가...ㅠㅠ 나 심심하다고 오늘 언냐]
[아띠..=.= 놀아줘 빨랑.. 나 버려두면 삐질건데..]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액정만 보는 주연.
푸하하-
귀여운 동생의 애교에 환하게 웃는다.
짜식~ 전화를 하면 되지..
꼭 카톡으로만 보내놓고 답장 없다고 투정 부리더라~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사랑하는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바빴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처럼 한가하게 노는줄 아니?
형부 곧 오시니까 밥 준비해놔야해.
너는 뭐하고 살길래? 니 근황이나 먼저 말해봐 ㅋ]
주연은 본래 성격이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학창시절에는 몸가짐을 늘 단정히 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본인도 늘 여성스럽고 조신하자는 마음으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또한 얌전한 행실도 몸에 잘 맞는 옷이었다.
타고난 천성이 참하지 못한 사람이 억지로 행한다해서 잘 되겠는가.
여하튼 그런 학생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많은 부분에서 시야가 트이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한결 성숙해졌다.
사고방식은 여전히 조금 고루한 면이 있지만..
어릴적부터 말수가 적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성적인 성향은-
대학교 4년을 보내는 사이 상당부분 나아진 것 같다.
남편과의 사이도 그렇다.
한참 나이차가 나서 대하기 불편한 대선배인데,
인물은 비록 썩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늘 자상하게 자신을 처음부터 챙겼다.
주변 선배들의 들리는 소문으로는 학교 다닐 때 꽤 놀았단다.
현서에 대한 소식이 그렇게 좋은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주연은 어릴적부터의 신념대로 생각했다.
사람을 먼저 겪어보고 내가 직접 판단해야지,
주변에서 누가 뭐라한다고 휘둘리지 말자-
여전히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신랑 현서와 같이 있을 때만은, 본인도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말수가 많아진다.
자신이 생각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애교도 늘었고~
워낙 현서가 주연을 이뻐하고 잘 대해주다보니..
그녀의 철옹성과도 같았던 마음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후릅-
집안일을 착실히 다 마무리 지어놓고,
부엌 탁자에 앉아 여유롭게 허브티를 마시고 있다.
찌이잉~~
때마침 동생의 전화가 울린다.
“응~ 그래...”
“언닛!!”
“아휴... 귀청 떨어져, 조용히 말해~”
“왜 답을 빨리 빨리 안주는 거얏~~ 감질나게~ 엉?
착한 동생 데꼬 밀당하는 고야~? 우히힝힝~”
“풋~ 밀당같은 소리하네..
너는 한가하지~ 집안일하는 주부가 너랑 같은줄 아니”
“히잉... 그래두.. 나는 언니랑 얘기못하면 마음이 허전하고 섭섭해..”
“호호호~ 오늘 왜 또 기분이 센치해?
남자친구가 잘 안놀아줘서 우리 동생 삐졌어?”
“치잇 언니는.. 그럴 남자라도 있으면 좋겠다”
“어머, 얘봐~?
니가 마음만 먹으면 남친 만드는거야 식은죽 먹기잖아.
맨날 외롭다고 말만 늘어놓고 사귀지도 않으면서 ㅎㅎ”
“내, 내가 언제? 히잉~
언제 누구라도 소개시켜주고 그런 말해 언냐는~!”
“쿡쿡.. 웃기고 있어”
주연은 주희가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그저 귀여웠다.
어릴 적부터 매일 붙어살면서 언니 말이라면 꺼뻑 죽는 착한 동생.
주희는 나이가 25세로 언니보다 두 살 어리다.
171cm의 키에 60kg의 늘씬한 체형이며
가슴둘레가 언니만큼 제법 탐스러운 글래머다.
주연은 객관적으로 봐도 풍만하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편이고
주희는 그것보다는 작지만, 평균적인 한국인의 가슴 사이즈에 비교하면
탐스럽고 예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허리는 언니보다 동생쪽이 조금 더 잘록하고 늘씬한 것 같다.
히프는 언니나 동생이나 적당하게 살이 올라 도톰하니 예뻤다.
풋~ 그러면 뭘하냐고..
보이는 겉모습은 도도하고 냉랭해보여도, 내 앞에선 철부지고 어린애인걸..
그 누구보다도 친동생의 실체를 익히 아는 언니는
자꾸만 앵앵거리면서 언니에게 애교 떠는 동생의 말에 웃었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현서가 돌아온다.
현서가 친구 성민과 몇 년만에 전화를 주고 받은 바로 그날이다.
뭔가 수심이 가득해보이는 얼굴...
주연은 얼른 다가가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여보,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아니.. 특별히 별 일은.. 왜 그래?”
“힘들어 보여서요.. 근심어린 뭐가 있는 거 같고..”
“핫핫~ 그런거 아니야~ 오늘 일이 많아서 그러지”
좌우지간 내가 뭘 숨길 수가 없다니까..
아무일 없는 척 태연한 얼굴로 위장한 그였기에
아내가 건네는 말은 흔한 인사말이니, 티를 내지 말자고 생각한다.
대충 저녁을 먹은 후, 홀로 쓰는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
혼자 사용하는 데스크탑 pc와 큰 대형 모니터.
서재라고 부르기엔 과분할 정도로
책장들과 어울려 한 쪽 구석에는 작은 홈시어터를 구현해 놓았다.
예전부터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설치해놓곤 했었는데..
지금 이사온 아파트는 평수가 썩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대로 작은 자기만의 영화감상 공간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푹신한 사무용 검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빙글~ 빙글~
뭔가 생각에 몰두하다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의자를 정신없게 돌린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진지한 고민에 빠질 때..
현서가 가지는 버릇이다.
하아.. 어찌하면 좋냐고..
자신만만한 척, 성민에게 큰소리치던 것은 좋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녀석에게는 늘 강한 모습만 보이고 싶으니까.
그런 이미지 연출이야 괜찮았는데, 그 다음 풀어갈 일이 태산이다.
당장에 저기 거실에 앉아 있을 이쁜 와이프한테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정말 앞이 캄캄했다.
나도 참 배짱 좋구나..
대책없이 경훈에게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일을 추진해버렸는데,
아니야. 약한 모습, 이런 차원이 아니잖아 이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위험한 제안 따위를 수락하지 않겠지..
그냥 지금에라도 없던 일로 물리고, 다시 성민에게 전화를 할까?
주연이에게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했는데..
그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괴로웠다.
똑똑~
책상에 붙어 앉아 두 팔꿈치로 기댄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노크가 들렸다.
달칵...
“여보, 뭐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니야.. 아무 일도”
“에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지금 막 문열어보니까 머리 싸매고 있는거 딱 보였는데요 호호”
“하핫.. 그런가? 딱 그 타이밍에 들킨거야?”
“키킥, 그래요, 참~ 요거 드세요”
살살 기분 좋게 남편을 달래주는 아내의 편안한 미소.
그 온화한 얼굴에 현서도 순간적으로 피로를 잊었다.
주연은 후식으로 제철 과일인 단감과 배를 깎아서 접시에 담아왔다.
감도 좋지만 시원한 배는 현서가 정말 좋아한다.
키야...
머리도 띵했던 판에 차갑게 입안에 베이는 배 맛이 일품이었다.
“후후..”
“흐흣, 왜 웃냐”
“아니예요. 배 먹으면서 짓는 표정이 웃겨서”
“하하 그랬어? 너무 맛있어서”
“귀여워요, 그런 얼굴이.. 가끔 장난꾸러기 아이 같을 때가 있어요”
“ㅎㅎ 좋은 의미야~ 뭐야~”
“글쎄요.. 딱히 좋은 의미만을 담고 있진 않을 지도요? 호호호~”
“뭐야앗~? 요 명랑한 녀석~”
주연이 앙탈부리는게 귀여워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아프다고 칭얼댄다.
태닝을 전에 했다더니 피부가 여전히 하얗고 곱다.
현서가 장난스럽게 꼬집은 뺨이 슬쩍, 발갛게 부풀어오른다.
히잉~
아내 주연은 남편의 얼굴을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겼다.
“아프잖아요오~... 미m”
“킥킥. 미안.. 너무 세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봐, 장난치려던 건데..”
“쿡~ 못 믿겠어,
아까 손에 감정 제대로 실린 것 같은데요?”
“에이.. 그건 아니야, 쪼금~ 오버하긴 했지만..”
“거봐요~ 좀 아프라고 힘준 거 맞네 뭐..”
“하하하, 미안해~ 아이구 귀여워라”
주연도 장난으로 한 얘기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슬쩍 빨개진 뺨을 톡톡- 어루만져주자
괜찮다고 팔을 슥- 밀어내며 웃었다.
“여보, 저기..”
“응”
“주희가 오늘 전화가 왔어요”
“처제가? 오랜만에 통화했나보네?”
“네~ 한동안 마니 바쁘다던 애가 오늘 한가했나봐요”
“응.. 그런데?”
말 그대로 오랜만에 듣는 처제의 이름이다.
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가운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저런 고민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이 많더라구요 요즘”
“진로에 대해서라..
처제가 최근까지 했던게 어떤 쪽 일이었었지?”
“일이라기보다~ 음..
무슨 게임방송이었나~? VJ.. 그걸 잠깐 파트타임으로 한다고 했었어요”
“게임방송 브이제이?
그런걸 알바삼아 할 수도 있나.. 그건 그런 직종이 아닐텐데 말야”
“.... 그래요? 몰라~ 걔는 그렇게 말하던데..”
“음 암튼 그래서~ 지금은 하다가 그만둔거야?”
“아뇨, 아직 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계속 그 일을 할 자신이 없대요”
현서는 처제 주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흥미가 동했다.
잠깐이나마 머릿속에 심각하게 자리한 성민을 잊은 상태다.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 아내의 동생답게,
한 핏줄로 이어진 주희 역시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두 살 터울의 여성이지만
형부인 현서가 볼 때, 언니와는 많이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꿀꺽..
이야길 하면서 자연스럽게 처제의 외모를 떠올려본다.
본지도 오래됐는데.. 한번 봤으면 싶네..
언니 주연도 장신인데 그보다 더 훤칠한 주희.
키보다도 형부인 현서의 마음을 때로 설레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연과 대비되는 주희만의 독특한 매력이었다.
살색은 주연이 주희보다 더 하얀 편이다.
다만 지금은 앞서도 말했지만 살을 태워서 오히려 주희가 하얗게 보일 정도.
자매가 공통으로 찰랑 찰랑~ 좋은 머릿결을 가졌는데
언니 주연이 날 때부터 약간 부드러운 갈색의 화사한 머리카락이라면
동생 주희는 칠흙처럼 검고 윤기나는 머릿결이 특징이었다.
이런 저런 두 자매간의 특징을,
아내 몰래 가만히 떠올리며.. 조금 야릇한 상상을 해보는 현서다.
아마도 주연이 그걸 안다면 퍽 기분 나빠할 지도.
어쨌든 현서는 본의 아니게 처제의 이목구비와 몸매를 잠시 떠올리며
슬며시 가슴이 두근~ 설레고 있었다.
“쇼호스트..?”
“네. 자기는 원래 어릴 적부터 그쪽이 꿈이었다고..”
“쇼호스트면 홈쇼핑에서 상품 홍보하는 MC 말하는 거네”
“그렇죠~”
“흐음..”
“우습죠? 본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대담한 꿈을 꾸고.. 풋~”
“하하. 너무 하잖아 주연아..”
“아뇨.. 사실이예요.. 히힛, 얘도 그렇게 말하는걸요”
“처제도 그렇게 말은? 하고 싶긴 한데 목표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나?”
“으응~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도전할 각오는 되어있는데,
단지.. 지금의 익숙해진 패턴을 접고,
멋모르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려 하니까.. 그게 겁이 난다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현서는 알아서 술술 설명해주는 주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골랐는지 말도 막힘없이 잘하고 머리좋은 아내다.
주연은 싱긋~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남편을 응시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잉~ 대뜸 나한테 뭘~?
이미 여보가 상황에 대해서 파악도 잘 하고 있고,
나같은 구경꾼.. 보다는 훨 그 입장에 대해 잘 코치해줄 것 같은데, 동생한테..”
“호호호~ 그건 걔를 몰라서 하는 말씀이예요..”
“무슨 말이야?”
“흠~~ 주희는요~ 뭐라고 할까..
제가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곧이 곧대로 잘 받아들이는 걸 좀 어려워해요”
“으잉~? 좀 더 쉽게.. 주연아..”
“키득~ 별것 아니예요..
음, 뭐 딱히 제가 자매라서, 객관적으로 하는 말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다..? 형제라서 좀 우습게 여기나?”
“아뇨, 말을 끝까지 여보.. 호호~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아니고.. 음~
같은 여자끼리고 하니까.. 기왕이면 남자에게 조언 받는걸 원하는 것 같아요”
“에이~ 그건 넘 지나친 자기 생각 아니야?”
“맞아요! 얘는 못되 먹은 팥쥐 마인드가 있어서..”
“하하하하”
“호호, 정말이예요. 같은 동성보다 이성이 더 믿음직하다고.. 막 그래요”
그래서 주연이 말하려는 결론은,
형부된 입장에서 간만에 처제를 한번 둘이 만나서
진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고 밥도 한번 먹으란 이야기였다.
아니.. 그럼 나야 좋지..
오랜만에 이쁜 처제 얼굴도 보고.
아무튼 간에, 동생에 관한 일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고 싶어하는..
그런 자상한 언니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현서도 보기 좋았다.
-
주연과 주희 이야기를 했던 그 날은 결국, 아내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못했다.
후~ 아직은 일러.. 아직은..
성민이놈에게 선전포고를 뱉은 당일인데 너무 이르기도 하고,
처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티없이 맑은 아이한테..
대뜸 충격적인 말을 꺼내기도 타이밍이 애매했다.
쳇, 그런 식이면..
1년 365일중에 어떤 날도 타이밍 잡기가 어렵겠네..
후~ 그래도 오늘은 일단 넘기자.
일단 경훈에게는 카톡으로-
간략하게 일정을 잡아놨다...는 이야기만 보내놓았다.
주말이 가기 전에는 주연에게 어떻게든, 이야길 꺼내야한다.
그런 중압감이 토요일 저녁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를 넘기는 시각.
같이 거실에 편히 앉아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 웃으면서도,
현서는 옆에 앉아 즐거이 웃는 주연을 계속 힐끔거렸다.
어떻게 한다?
오늘은 꼭 말해야해...
잠자리에 들 시간.
침대에 드러누워 아내 주연의 젖가슴을 깨문다.
아얏-
아파하는 주연이 눈을 찡그리며 현서를 노려보는데..
그 눈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쪽...”
부드럽게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쫍... 쫍.. 우음... 여보..”
“하아.. 하아.. 주연아..”
“응... 입술 기분 좋아요.. 오늘 되게 달달해..”
“쫍... 그런가? 흐흐..”
“호호.. 오늘 자기 좀 섹시한 것 같아요, 여보..”
“무슨~ 평소랑 다를바 없는데~? ㅎㅎ”
“아닐껄요~? 평상시랑 달라요.. 오늘의 분위기가”
“... 그래.. 내가?”
“응~ 뭐라고 해야하나.. 우수와 근심에 차 있는 눈빛..
고독한 분위기가 왠지 다르다구요.. 무슨 의민지 알아요?”
아~ 이것 참..
내가 이래서 우리 마누라 속이고 어떻게 사나..
휴...
그래, 눈치 챘을 때~ 보따리 지금 풀어버리자.
“사실은 말야, 주연아..
오늘이 가기전에 꼭 할 얘기가 있었어..”
“쿳... 그랬어요?
그렇게 떠듬 떠듬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뭔데요”
“그게 쉽게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 뭐냐면..”
멍석이 깔린 마당에 풀어야했다.
꿀꺽~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떨리고 부끄럽지만,
현서는 아까 자리에 들기전 마신 소줏잔의 힘을 빌어
주연에게 힘겹게, 성민과의 이야기를 천천히 얘기했다.
...............
이야기를 들은 주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현서는 이야기를 힘들게 다 해놓고, 술이 비로소 깬 상태였다.
콩닥 콩닥.....
가만히 아무 말이 없는 아내의 작은 입술만 쳐다본다.
주연은 알 듯 말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고요한 미소만 지었다.
현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으로 숨을 뱉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일을 저질러놓은 현서 입장에서는,
아내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고.. 파악하기도 두려웠다.
그저 눈치만 보고 있는다.
주연은 그런 남편을 힐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마침내 천천히.. 앵두빛 입술이 열린다.
“..........
그래서, 당신은 무어라 했어요?”
“응...?”
“그 친구한테, 뭐라고 답변을 하셨냐구요..”
차분하게 말하는 어조에 현서가 오히려 놀란다.
10분 정도를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주연.
담담하게 입을 열고 말하는 모습은 의외였다.
현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침착한 아내의 모습에..
막연한 이질감과 함께 약간의 오한을 느꼈다.
이런 모습도 가지고 있었나..?
“꿀꺽... 그게..
일단 고려는 해보겠다고.. 말을 했지..”
“생각을 해보겠다고요..?”
“으응, 전적으로 결정은 너한테 달려있어, 주연아..”
“...... 그래요..”
“어, 어떻게.. 좀 생각을 해봐야겠지..?
역시 쉽게 바로 말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겠..”
“아뇨, 저 할게요”
“.......?! 뭐...??”
현서는 아내의 주저함 없는 결연한 태도에, 아연실색했다.
저 표정은..
내가 아는 주연이가 맞는거야..?
“........ 하겠어요..
물론 쉽지는 않은 결정이지만..
당신이 궁지에 몰려서.. 난처할 만큼 괴로운 상황이니까..”
“주연아...”
“.... 근데 있잖아요 여보, 저..”
“응.. 편하게 말해..”
주연은 처음에 애써 담담하게 말하더니,
조금씩 말할수록 덜덜 떨고 있었다.
“당신이, 앞으로 생각을 더 해볼 수도 있다고 하니까..
일단 동의하는.. 거구요.. 알죠?
그리고.. 나라고.. 이런 결론을 내기가 결코.. 쉬운 건 아니예요..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 알아, 내가 왜 모르겠니”
떠듬 떠듬.. 한구절 한구절을 어렵게 말하는 주연이 안쓰러웠다.
거기까지만 말하게 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현서는 주연을 와락, 끌어안았다.
됐구나.
걱정 근심이 짧은 한 순간이지만,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
신기하게도 짜릿한 기분.
그리고 현서의 가슴을 그간 콱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어리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착각을 느꼈다.
-
한낮의 사무실.
아직 가을이지만 오늘은 좀 쌀쌀하다.
많은 남녀직원들은 알아서 가벼운 가디건과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아래 직원들을 살피며 현서는 조용히 혀를 찬다.
짜식들, 아직 젊은데 뭐가 춥다고 몸살들이야..
문득 커피가 땡겨서, 탕비실 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직원을 부른다.
“저기~ 미스 김~ 커피타러 가?”
“네..? 그런데요”
“미안한데~ 나도 커피 한잔만 부탁할게”
“아~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 연아로~ 아니면 태희 언니루요?”
짐작하기 쉬운 멘트지만, 김연아와 김태희가 각각 광고하는 커피를 말했다.
현서도 씨익~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연아가 먹고 싶다고.
언뜻 들으면 성희롱이 명백한데, 그런 뉘앙스를 주지 않으려했다는 듯
말하는 어감과 속도를 조절해서 천연덕스레 얘기한다.
그러자 여직원도 피식~ 웃으며 걸어간다.
“아, 고마워”
“뭘요, 오랜만에 시키신 커피 심부름인데”
“ㅎㅎ 미스김은 예전에 만난다던 사람은 어떻게 됐어?”
“저요~? 제가 저번에.. 아, 맞아..”
“김인애씨~ 여기 이것좀 와서 도와줘요~”
“.... 아, 네! 지금 갈게요. 잠시만요.”
“뭐야.. 저 멍청한게 저보다 상사가 얘기하는 중인데..”
“키득~ 그러지 마세요 과장님, 차대리님도 못봤나봐요.
저 그럼 일단 가볼테니까, 또 천천히 얘기 나눠요?”
“.... 그래 뭐~ 기대할게~”
김인애라는 이름의 경리 아가씨가 사라지고 난뒤,
현서는 손깍지를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아, 어디까지 아까 생각하다 말았었더라..
성민이 자식...
생각해볼수록 골치가 아파 이마에 손을 짚고 살살 문질렀다.
어떻게 용케 주연이한테 얘기는 했는데..
이제 내일 모레 이틀 뒤면 올 녀석에게 따로 준비해올 것을 말해줘야했다.
그런데 카톡 창을 유심히 바라보는 순간~
때마침 성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 이 자식이... 톡보내라니까 전화하고 있네..
목을 가다듬으며 긴장한 톤으로 받는다.
“어.. 나 지금 일하는데 성민아..”
“잠깐만 얘기할게, 방해해서 미안해”
“그래 얘기해봐 그럼”
“응.. 너 있잖아, 오늘.. 저녁에 나좀 볼수 있어?”
“오늘...?”
왠일이지..
오늘은 아직 수요일.
녀석이 집에 오기로 한 것은 이틀이 남았다.
지난주에 통보한 뒤, 성민이 이렇게 불쑥~ 보자는 것도 처음이다.
이 짜식이~ 무슨 생각으로 이제 와서..
“안되는 건 아닌데.. 무슨 일로?”
“그게 저.. 큰 일이 있는거는 아니고 말야..
내가.. 아무래도 너희 집에 그냥 찾아가려고 하니까 너무 떨리고..”
“아아~ 그런 얘기라면 됐어, 걱정말고 그냥 와”
“아니 그래도 만나서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됐다니까.. 내가 너한테 톡으로 보내준 것만 잘 지키면 돼.
정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보자..
금요일날 좀 일찍 와. 밤 말고 저녁 여덟시 쯤 해서”
대강 톡으로 일러줬던 내용을 재확인해주면서, 전화를 끊었다.
짜식이.. 장난치나?
존나 새가슴인거는 알고 있지만, 뭘 또 따로 보자고 지랄이야..
그냥 그날 안 늦게 좀 일찍 와서, 따로 나랑 얘기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초조하게 생각중이던 현서는
덜덜 떨고 있는 성민의 모습을 상상하며 화가 치솟았다.
에이.. 병신같은 새끼..
이쪽은 그렇지 않아도 한창 예민해져 있을 아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등받이에 머리를 턱~ 기대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후아.....
생각에 잠겨본다.
어제도 아내가, 침대에서 조용히 어깨를 기대며 말했다.
“금요일이.. 아주 빨리 다가오네요, 여보..”
“..... 이제 3일 남았지..”
“녜..”
“잠이 안와? 심호흡 한번 가볍게 하고..
내가 어깨 좀 주물러줄게”
“아,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런 것보다..”
“응..”
“꿀꺽..
당신이 며칠전에 직접 이야기했잖아요..
그 뒤로도 저,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고민에 빠졌었어요”
“그랬던 거 알아 나도.. 옆에서 모르는 척 했지만,
여러번 네가 뒤척거리는게 보이더라..”
꿈틀 꿈틀, 떨리는 몸으로 조용히 속삭이는 아내가..
정말 짠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떨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 당신 친구분, 성민씨..
몸도 거의 병 때문에 회복될 가망도 없다하시고,
여보야도 전에 친구에게 했던 못된 행동...”
“그냥 얘기해, 편안하게”
“...... 나쁜 행실들도 있었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을거라 이해는 해요..”
그 얘기는 지난 밤에, 다 부둥켜 안고 했던 이야기잖아..
현서는 아내가 뭐라 말하려는지.. 이어서 가만히 들었다.
“........
그래도, 그래도.. 당신 기억하고 있는 거죠..?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현서 씨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기꺼이,
힘이 될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하던 이야기를 말이예요”
“알고 있어, 주연아... 그래서 내가 더욱 미안해..”
“저.. 그리고 앞으로도..
몸가짐이 헤픈 여자라고.. 생각지도 마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헤픈 여자라는 생각을 내가 감히 어떻게..”
“....... 알아요.. 그렇지만..
사람 앞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지금 생각과.. 나중 생각은 또 다를 수가 있어요..
어쨌든 여보, 제가 드리고픈 결론은..
사정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저를.. 변치말고, 이해해주세요..”
“그래.. 알겠어.. 고맙다..”
-
그리고 남은 이틀도 빠르게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D 데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온다.
때마침 궂은 날씨도..
현서 주연 부부의 걱정스럽고 한편 또 설레이는 마음을
대신 읊어주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이번주 내내 손에 일이 제대로 잡히지 않을때가 많았지만
특히나 당일이 되니, 아침부터 앉아 있는 내내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긴장을 하지 않으려 심호흡도 해보고
릴렉스~ 릴렉스~를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키고 몸을 이완시켜본다.
그래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꿀꺽...
정말 잘하는 짓일까, 이거..
이제 불과 몇시간 남지 않았다.
성민에게는 어제도 카톡으로 집까지 찾아오는 길을 상세히 알려줬다.
딱히 별다른 유의사항은 없었다.
몸이 안좋은 환자고 하니까 특히 청결에 신경쓰고 와라.
혹시나 아내가 불편함을 느낄 만한 요소들을 시시콜콜 잔소리한다.
수염은 단정하게, 양치후 구강청결제, 몸도 깨끗이 샤워하고 등등.
일은 하지 않고 따다닥- 따다닥-
책상을 여러번 두드리면서, 성민에게 카톡을 또 보내고 있다.
그리고 저녁.
밥은 알아서 챙겨먹고 오도록 시켰다.
따라서 시간은 자연히 저녁 8시 정각으로 정해졌고,
두근 두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굉장히 초조해지는 현서와 주연은
떨리는 마음과 긴장을 견디기 위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
“응, 주연아”
“오빠,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 뭐 이제와서..
시간 다 임박했는데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아니.. 그런건 아닌데...
나 정말, 이래도 괜찮나..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이 아니지..
분명 아내 주연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게 분명했다.
협조해달라고 간청하니까,
말도 안되는 남편의 황당한 부탁에 마지못해 응해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감이 점점 커졌고
지금 순간이 다가오자 심장이 더 무서울 정도로 쿵쾅쿵쾅-
거칠게 뛰는 것이다.
빌어먹을...
정말 이런 짓거리를 해도 괜찮은 걸까..
나, 오늘을 넘기고 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을까?
현서는 욕지거리를 나지막히 내뱉으며,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성민을 그냥 돌아가라고 말할까..
오만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간을 보니 7시 30분이다.
깊게 한숨을 쉬며, 거실 유리 찬장에 넣어두었던 발렌타인을 꺼내었다.
술이 약한 아내를 위해, 그리고 본인도 긴장을 풀려고 유리잔에 나눠 마신다.
띵-
잔과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마시고..
취기로 뺨과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주연을 보았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조금 취하게 하려했는데
오히려 수줍게 물드는 그녀의 살결을 보자, 불끈- 욕정이 치밀어오른다.
아... 제길...
이제 곧 있으면 녀석이 오는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끌어안고 싶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현서는 질끈, 눈을 감고 머리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리고는 땀에 젖어 떨리는 손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매만져주었다.
“... 주연아, 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무엇보다도, 진행하는 동안...
너 혼자가 아니잖아. 내가 계속 옆에 붙어 있을 거니까.. 알고 있지?”
주연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조금 마셨다고 와인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극도의 수줍음과 불안함에 긴장한 건지..
찬찬히 달래주며 어깨를 만져주어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7시 50분.
10분 남은 시계를 보고, 현서는 아내를 바삐 안방으로 들여보낸다.
후흡....
깊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곧이어 7시 58분을 가리킬 때..
띵~동... 조심스럽게 벨소리가 울렸다.
“........
어.. 들어와..”
“오랜만이야...”
“그래, 일단 어서 들어와서..”
“...... 잘 지냈어, 현서야?”
성민은 마치 여성스러운 고양이를 연상시킬 만큼,
무척 조심스럽게 발걸음 소리를 안 내며 조용히 집으로 들어왔다.
현서는 그런 행동을 하나 하나 보며 딱딱히 굳은 표정이다.
꿀꺽......
소파에 성민이 눈치를 보며 앉을 때까지,
현서가 잔뜩 긴장해서 경직된 표정은 이어졌다.
“..... 어려운 걸음했지.. 비오는 날인데, 오느라 대단히 수고 많았어..”
“뭘.. 아니야.. 나야말로.. 이렇게 좋은 집에 오는데..”
“오는데 막히지 않고.. 금방 왔어?”
“어.. 버스 타고 오니까 25분 정도 걸리더라..”
“그래...”
몇 년만에 전화통화만 며칠 하고 본 것인데도,
반갑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극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당연한 현상이리라.
현서는 꿀꺽, 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다.
성민도 눈치를 보아하니 마찬가지다.
간단한 안부를 서로 묻고 근황에 대해서 얘기가 이어졌다.
초대받은 손님보다 초대한 주인이 훨씬 긴장해서 어쩔줄 몰랐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현서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대화하는 내내..
성민의 일거수일투족과 입고 온 복장을 유심히 살폈다.
이야기하는 내내 현서가 자신을 기웃거리자
성민도 눈치를 채고는, 스스로의 몸에 뭐 묻은 것이 있나 하고 살핀다.
현서가 성민을 바라보는 이유는 아픈 환자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암 환자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하고 깨끗한 그의 두발과 복장, 그리고 용모 때문이었다.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이 녀석, 정말로...
폐암 말기가.. 맞는 건가?
뒷통수를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게 왠지 불길한 예감이다.
생각이 지나친 거겠지..
의심이 너무 많은 것도 탈이다.
휴우.. 한숨을 쉬며, 자세를 다잡는 현서.
거두절미하고~
지금부터 있을 시간을 대비해, 주의사항을 꼼꼼히 일러주기 시작한다.
그 주의사항이라는 것이...
들여다보면 화악~ 낯이 뜨거워지는 내용이었다.
현서는 이미 와인을 어느 정도 마셔서 취기가 돌고 있었다.
성민에게도 술을 권하자, 환자라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머뭇거린다.
억지로 마시게 했다.
마셔 임마, 너도 안마시면 얘기가 안돼.
그래놓고...
꿀꺽, 큰 침을 삼키며 떨리는 입으로 말한다.
“어때, 대강 알겠냐.....”
“...........응... 이해했어..”
“그럼 읊어봐”
“음...”
현서가 말한 내용을 다시 이야기하려니, 성민의 얼굴도 빨개진다.
그 입을 바라보는 현서도 조마조마- 떨리는 가슴이다.
“...........
콘돔은.. 아내의 의사를 먼저 묻고..
사용할지,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지.. 결정할 것..”
“그렇지..”
“......저, 그렇다는 얘기는, 현서야”
“어.. 말해..”
“혹시, 내가.. 질내사정을 해도.. 된다는.. 말이야..?”
질끈- 눈을 감으며 현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내는 틀림없이 안전한 날이다.
혹시 몰라 어제부터 미리 피임약은 복용하도록 주문했다.
그래도, 대답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 씨발........
잠시 망설이다가 힘겹게 입을 연다.
“...... 그래.. 단.. 주연이만 괜찮다고 허락하면...”
“...... 알겠어..”
“그리고 또?”
“음...”
"아내의 안에 싸도 좋다..."는 말에,
그때까지만 해도 경직되어 있던 성민의 얼굴이,
갑자기 활짝~ 피는 것이다.
너무 티를 내면 현서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서둘러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현서는 짧게 한숨을 쉬며 와인잔을 보고 있느라,
성민의 그 좋아하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성민을 바라보며 현서가 입을 열었다.
조금씩 말하면서 술의 힘을 빌었기 때문인지,
듣는 현서도 말하는 성민도 많이 침착해져 있다.
“키스는 기본적으로 허용되지 않음..”
“..... 그래, 안되고..”
“그리고.. 또 뭐 있더라..”
“입으로 하는것도 안돼..”
“아.. 그래.. 그런 것은 생각도 안했어..”
그 다음부터는 현서가 이어서 말했다.
“좋아. 뭐 특별한 것은 없어..
체위는 가급적이면 정상위..로만 하고..
항상 주연이에게 의사를 먼저 묻도록 해, 알겠지?”
“어.. 물론이지, 그거야..”
“억지로 뭐하려 하거든.. 당장 내쫓을거야.. 그러니까..”
“알겠어, 알겠다고, 시키는 대로만 할게..
저, 그리고.. 현서야”
“응”
“이거 우스운 질문이지만.. 애무는..
키스는 안돼도.. 애무는.. 해도..?”
“쿡.. 하하~ 야.. 미치겠군..
임마, 애무는 베이스인데 당연히 해도 되지..”
“가, 가슴이나 엉덩이 같은 곳 모두.. 다..?”
한숨을 안 쉴래야 안 쉴수가 없다.
이건 뭐 어린애한테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피식~
성민 녀석의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알 수 없는 어리석음을 보며 현서가 웃어버린다.
“참나.. 멍청한 거여 뭐여..
얌마, 키스만 안되고 다 하라고.. 알간..?
내가 안방에서 주연이 들을까봐 소리 안지르는 것만 알어, 응?”
“아, 알았어.. 미, 미안해.. 눈치없이.. 미안해”
“답답하다 증말~ 진성민 너...”
“........”
“키스는 내가 기분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제외고..
나머지는 전부 주연이가 하라는 대로.. 허락받고 하면 된다..”
“.... 알겠어..
그리고 현서야.. 마지막 하나..”
“또 뭔데?”
“고맙다구...
이런 감사한 기회를 나한테 만들어줘서..
고마워.. 정말이야”
“쳇.. 개소리하네 이제와서..
고마워하지 마라. 나도 지금 기분이 뭣같고 이상하니까..
무슨 생각으로 이짓을 하는지..
나도 정상은 아니야 지금,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아무 말 마라”
“그래... 알겠어..”
“들어가자”
알수없는 불안감으로 머리가 어질어질 메스꺼운 와중에서도,
현서는 스윽- 성민의 작은 등을 밀고 안방으로 들어가며..
순간이지만, 알 수 없는 짜릿한..
카타르시스와도 같은 설레임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주연아.
떨리고 무섭지만, 그래도 내가 계속 곁에 붙어 있을 거니까.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는 양 손바닥을 몰래 닦는다.
=
힘들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부끄러운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회는 조금만 생색좀 낼게요 ㅎㅎ
영애-현준, 수경-지우, 승호-수희, 민규-하연의 첫경험(이쪽은 좀 편했죠)을 적을 때보다,
제가 적은 어떤 남녀주인공의 베드씬보다도 긴장이 됩니다.
아직 본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죠.
이제 드디어 3회에서는 성민과 주연의 정사씬이 이어집니다.
독자분들도 지금 저만큼 긴장을 하고 계실런지요? ... 어떨까요.
10부 안팎으로 이야기를 끝내겠다고 공언한 만큼-
제가 현재 연재중인 소설중에서, 등장인물간 관계가 가장 빨리 나옵니다.
어제 저녁에 1부의 적은 댓글 때문에 약간 과격하게(?) 독려글을 남겼습니다.
지난밤 바로 많은 분께서 응원해주시는 걸 보고 놀랐죠.
그래서 오늘 일요일인데도, 기분 좋아져서 예정보다 빨리 올립니다.
-
19일 늦은 밤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솔직히 조금 반응이 미지근하지만, 그래도 열렬한 응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형사취수의 8부에도 적었는데요..
앞으로 제가 적는 모든 글은 최소 추천수 600~650 (그리고 댓글 100) 이 나와야 차회를 올립니다.
무리한 숫자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조회수를 생각하면 육백은 오히려 적은 수치라고 봅니다.
그런 이야기까지 세세히 드리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결론만 드리죠.
아직 초반부이니까 조금 더 핫~해질 유예기간도 두어야하고,
이번편은 600 아래만 밑돌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생각이 많습니다. 2년전부터 저를 아껴주신 감사한 분들과 최근에 열성적으로 댓글로 도와주셨던 분들,
한분 한분들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로는 먼저 50분 정도의 진성 팬분들만 추려서 까페에서 따로 공개를 할까 합니다만,
아직은 조금 더 "유령독자" 분들의 참여를 유도해보려 합니다.
어차피 다음회는.. 추천수 1000 에 도전합니다. 그럴만한 성격의 회니까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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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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