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습니다. 맡겨주시죠.”
남자는 자신만만하게 짧은 대답을 하며 먼저 일어섰다.
무척이나 오랜 망설임 끝에 내린 결론 치고는 너무 쉽고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네에...그래도 좀...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시는게 어떠....”
“하하. 충분히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불안해하시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대부분 처음 이런시도를 하시는 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요.”
이런시도라...
그렇다. 나는 지금 이 느끼하리만치 거만한 남자에게 나의 아내를 꼬셔달라는 ‘이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몇년간 고민했던것과는 달리 너무나 쉽게 결론을 내리고 수락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 남자를 오늘 만난 순간 나의 선택에 의문을 품지않을수 없었다.
남자의 나이는 얼추 봐도 40대후반은 돼 보였다. 살짝 벗겨진 이마에 출렁일듯한 뱃살...대체 이런 사내에게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꽃다운 아내가 넘어간다는게 말이될까. 아내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내가 그런 모욕적인 상황에 처해진다면? 하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서 치고 올라왔다.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이 남자에게 아내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넘겼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물론 강간은 제외하고)을 통해 아내를 능욕해도 좋다는 사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실시간적인 접근을 요구 했다. 남자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길상"이라는 남자는 나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아내의 사진을 요구했다. 지난번 메일로 보낸적이 있긴 했지만, 그보다 좀 더 자세한 사진 몇장을 준비한 나는 그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전송했다.
“흐흐. 역시 미인이시군요. 가슴사이즈 비컵에 키는 165, 몸무게는 46 맞습니까?”
“네에..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마..맞습니다.”
그의 거침없고 능글거리는 말투에 나는 은근히 위축됐다.
“알겠습니다. 맏겨주시죠.”
남자가 일어서자 나도 모르게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남자는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건. 부담갖지않으셔도 됩니다.”
“네? 이게 뭡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분을 제게 넘겨주셨는데, 제가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흐흐. 작은 성의표시이니 받아두시죠.”
백만원짜리 수표 두장. 기분이묘했다.
보잘것 없어보이는 중년의 남자에게 무시당한 기분. 하지만 아내를 팔아 화대를 챙기는 한심한 미물이 되어버린 듯한 감정은 나쁘다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많이 복잡했다.
“말씀하신대로, 아내분은 앞으로 6개월간 제 방식대로 길들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강제적인 방식은 없도록 하고 님께서 거부하신다면 언제는 중단하도록 하지요. 이제 정리됐습니까?”
“아..네..네 그러시죠. 그렇게 하세요.”
채 한시간도 안되는 만남 이후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지난 4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그녀의 가치관에 헤어스타일 하나 바꿀 수 없었던 나는 과연 그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녀를 길들일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니, 길을 들이기는커녕 그녀에게 접근이나 할 수 있을까?
“오빠. 왔어? 밥먹자. 씻고와요.”
그녀는 오늘도 여느 밝은 목소리로 퇴근하는 나를 반긴다.
잘록한 허리와 생머리. 서른 둘의 아내는 이제 막 만개하는 꽃처럼 그 어느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꽃을 따기 위해서는 그녀만의 규칙대로 움직여줘야 했다.
일주일에 단 한번. 불꺼진 침실에서만 가능한 섹스. 그것도 정상위로 십분을 넘길 수 없는 그녀만의 방식. 그리고 사정할 후에는 바로 일어나 반드시 깨끗이 씻고 자리에 누워 손을 잡고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그녀와 동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몇년동안은 황홀한 그녀의 육체를 그렇게 탐닉한다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순간이 너무 짜릿하고 행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호기심에 그녀의 음부를 자세히 보려하면 정색을 하며 변태라고 쏘아붙이는 그녀 때문에 나의 잠자리는 멎적게 끝나기도 했고, 서서히 차오르는 사정의 순간을 즐기기위해 시간을 끌다보면, 힘들다는 이유로 그녀의 몸에서 식지않은 나의 남근을 빼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아름다운 아내이지만,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그 또한 욕구불만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정말 우연히도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꿈이었지만, 나는 그날 아침에 오랜만의 몽정을 했고 꿈속에서의 충격을 잊을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아내의 모습과 단아하고 조신한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몇날 몇일을 그 상상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차에, 인터넷 카페에서 ‘길상"이라는 남자를 만나 하소연을 하던 나는 그의 안정적이고 차분한 말투에 이끌려 오늘 이 만남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역시 채팅과 만남은 다르다는걸 다시 한 번 느꼈지만...... .
오늘로 벌써 석달째 섹스리스.
그렇다고 이혼을 하거나 아예 담을 쌓고 각자 즐기며 살 생각은 없다.
나는 초초하게 길상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만만했던 그의 목소리에 의심을 품었던 때가 며칠 전인데, 시간이 갈 수록 견디기 힘든 이런 무미건조한 생활에 지치다보니 이제 유일하다시피한 그의 시도가 언제쯤 될지 애가 타는 심정이었다.
점심식사 후 나른함을 이기기 위한 졸음과의 사투가 시작될 무렵 경쾌한 문자음이 울렸다.
[오늘부터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경과는 진도가 확실해질때까지 일주일 단위로 알려드리죠.]
길상이었다. 오랜만의 연락임에도 형식적인 안부 한 줄 없이 용건만 깔끔했다.
‘오늘부터라......’
나는 ‘오늘부터" 아내에게 있을 어떤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늘어졌던 모든 신경이 바짝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그의 작업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필요도 없는 야근을 하고 회사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늦었네? 일이 많았어?”
“아....어..응..조금 일이 있어서... 밥은 먹었지?”
아내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시선을 다시 티비로 향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아내옆 소파에 앉아 그녀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끝날때까지 함께 티비를 보는 척했다.
그녀는 정말 아무일이 없었던 것 처럼 보였다. 길상의 ‘오늘"이라는 말에 괜한 기대를 품었던 내가 바보같기도 했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참, 오빠. 나 내일 저녁에 민영이 만나기로 했어.”
“민영이? …..아 그 직장 곧 그만둔다는 친구?”
“응. 안그래도 아예 일이 적성에 안맞아서 고민인가봐. 내일 좀 보자더라구.”
민영이라는 친구라면......잠시 팽팽했었던 긴장의 끈이 맥없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 별다를게 없는 약속이었다.
“응 그래 알았어. 내일도 먹고 들어올테니까 걱정하지말고 잘 만나고 와.”
다음날이 되었다.
길상의 문자에 잠시 흥분했던 나의 기대는 작은 실망으로 변했고, 난 다시 일에 열중했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잠시 가졌었지만, 어차피 오늘은 아내도 약속이 있다고 했었다. 역시 그도 잠깐의 호기심으로 내게 접근했던게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허탈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들어왔다. 아직 아내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평소 전업주부인 아내를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그녀가 외출을 하면 가급적 연락을 하지않고 편히 놀다 들어오게 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아닌 원칙이었다. 오늘도 아마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네 마네 하는 친구의 지루한 하소연을 들어주며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 같았다. TV에서는 드라마가 끝나고 예능이 시사프로그램으로 이어져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계는 이미 열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서야 아내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민영이랑 있어? 너무 늦지말고 좀 있다 들어와~]
평소 애교는 없어도 문자 답장은 늦지않는 아내였다. 하지만 오늘은 시사프로그램의 결론없는 토론이 끝나고 재방송 다큐멘터리가 시작되는 시간에도 답장이 오질 않았다. 이상한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두번의 시도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길상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분명 그는 아닐것이다.
단순한 아내의 무응답에 불안해지기 시작한 나는 삼십분을 겨우 참고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미안. 전화했었어?”
다행이 아내는 전화를 받았다.
우울해하는 민영이를 위로해주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노래방에 다녀왔다고..... 그리고 지금 막 출발해서 오고 있는 길이라고 했다.
‘가만....민영이만 만나는게 아니었던가?..?’
이십분 후, 아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술은 그다지 많이 마시지는 않은 듯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안방 침대까지 들어와 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민영이가 보자고 했는데, 보는김에 학교 선배들하고 같이 보는게 좋을것 같다고 하길래 민영이하고 친했던 동아리 선배 두명하고 같이 만났어.”
“아 그래? 그럼 넷이서 민영이 고민들어주고 온거야?”
“응. 그리고 나중에 그 선배 아는 형이라는 사람이 물건 전해주러 온다고 했다가 같이 보게 됐거든. 다섯명이서 노래방에 갔다가 왔지. 늦어서 미안해.”
“선배들은 학교 동아리 선배니까 너도 다 아는 사람들이지?”
“응 민영이 통해서 어느정도 아는 사이였는데 오늘 같이 보게된거지. 그 길상이라는 사람은 오늘 처음 봤어.”
“어..그래..... . 뭐..뭐? 길상??”
“응. 그 선배 아는 형. 왜 그래. 오빠?”
“아..아니야. 그냥 이름이 좀 특이해서.”
길상의 접근이었다.
“응 아무튼 민영이가 오랜만에 선배들하고 만나서 그런지 기분이 좋길래 나도 좀 편해졌어.
그리고 모레 민영이 휴가쓴다길래 낮에 만나기로 했는데 오빠는 그날 별일없지?”
“낮에? 응 난 출근하지.....그날은 민영이랑 둘만 보기로 한거야?”
“다들 일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민영이하고만 봐야지. 아무튼 오늘 늦고 전화 못받아서 미안해.”
이틀이 지났다. 아내에게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입에서 ‘길상"아라는 이름이 나온 후로 온 몸의 신경이 촉수를 뻗어 아내와 그 주변의 모든 정황들을 감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오늘 예정된 민영이와의 만남을 위해 내가 출근하자마자 바로 외출 준비를 했는지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자가 날아왔다.
‘오빠. 나지금 나가. 오늘은 일찍 들어올께. 이따봐~’
오늘 아내는 민영이와 만나 뭘 할까. 하긴 여자들만의 만남이니 내가 기대하는 그런 일은 있을리가 없었다. 난 단지 길상이 다시 아내에게 어떻게 접근을 할지 그 점만을 집중할 뿐이었다.
퇴근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들어오지않았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경아 나 퇴근했는데 지금 어디야?”
다행이도 바로 문자가 왔다.
“오빠. 나지금 민영이랑 한잔하고 있는데 오늘도 늦을것 같은데 어쩌지?”
말 그대로 어쩌란 말인가.
나는 아내에게 이왕 늦은거 편히 놀다 오라는 답장을 보내고 TV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길상이라는 사람에게 아내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알려주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외모와 이름을 비롯해 살던지역, 출신학교....그리고 그녀와 연애를 하며 하나씩 알아온 그녀의 취미와 취향들...무엇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성감대까지...내가 알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다 알려준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그가 아내의 대학 동문을 통해 접근한 점이 이해가 갔다.
수경은 밤 한시가 되어서야 들어왔다. 오늘은 제법 취한듯 했다.
“오빠아~. 미안 미안...오늘은 이래저래 술을 좀마셨어엉.”
“그래. 얼른 씻고 자자. 내일 나 일찍 가봐야 하거든.”
“아하~ 우리오빠 돈 열심히 벌어오느라 고생이 많구낭. 직장인들 참 일하기 싫은데 힘들게 일하는거보면 민영이나 오빠나 다 짠해. 고마워 오빠아~.”
“민영이도 내일 출근할텐데 둘이 왜이리 많이 마셨어?”
“응~ 그게 오늘 민영이랑 만나서 가로수길 갔다가 홍대에 공연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말야. 길상이 아저씨가 뮤지컬 티켓이 있는데 와서 가져가라고 해서 민영이랑 셋이 보고왔지~.”
“뭐? 길상....이..아저...씨?”
“그때 만났던 성주선배 아는 형 있잖아. 그 아저씨가 갑자기 민영이한테 연락을 했더라구. 그래서 마침 시간도 있길래 뮤지컬보고 한잔하고 왔어. 아~함 졸리다.”
순간 예상치 못한 한방을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길상은 와이프와의 첫 만남에서는 와이프 친구 민영이의 선배와의 인연을 살려 접근을 했고, 이번에도 역시 직접적으로 연락한 것이 아니라 첫 만남에서 둘의 스케줄을 파악한 후 민영이를 통해 와이프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두번 성공시켰다. 그리고 술을 이정도로 마셨다는 건...그리고 ‘아저씨"라는 호칭을 저렇게 편하게 쓴다는 것은 이미 어느정도 친분을 쌓고 자연스러운 인연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역시 전문가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든와이프의 곳곳을 몰래 확인해봤지만, 이상한 징후는 없었다. 그래도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에 대해 묘한 질투심과 함께 일어난 흥분때문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 아내분이 역시 참 보수적이시군요. 좋습니다. 사냥할 맛이 나는군요. 솔직히 말씀드려 아직 많은 진도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제3자를 포함시켜서 네번...열흘이 걸렸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아내분의 매력에 저도 흥분이 되더군요. 스킨십은 커녕 손을 잡을 틈도 주지않고 있지만 기대가 큽니다. 잡기 힘든 사냥감일수록 손에서 놓기도 어려운 법이거든요. 하하...끝으로 한가지 알려드릴게 있군요. 님께서 아내분의 두번째 남자라고 알고 계신가요? 정정합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세번째가 맞는것 같군요. 아마 강간당하다시피해서 몇달 사겼던 첫 직장 상사의 이야기는 아내분이 차마 말씀을 못하신것 같습니다만. 그럼 다시 연락드리죠.
기다렸던 길상의 이메일이었다.
스킨십은 전혀 없었다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아내가 숨긴 그 남자를 떠올리며 몇 일간 매일같이 혼자 자위를 했다. 아내를 통해 해소를 할 수도 있었지만, 절정의 순간 그 말이 입밖으로 나올까봐 차마 아내와는 할 수가 없었다. 아내 또한 욕구를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는지라 그간의 시간들을 무덤덤하게 버터가고 있는 듯 했다. 아니 관심이 없어보이기도 했다.
몇일 뒤 길상에게서 짧은 메일이 도착했다.
아내와 작은 다툼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몇 줄 되지않는 메일의 내용은, 아내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남편이 갑자기 무신경해지면 여자의 촉감은 뭔가 있지않나 하는 의심부터 하기때문에, 당분간 아내와 소원해질 수 있는 작은 단서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그 말뜻은 이제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아내와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이고, 아내가 그걸 남편에게 들킨다는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부부가 얘기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이었다.
그날 나는 사소한 처갓집 식구의 일로 아내에게 시비를 걸었고, 아내또한 그다지 큰 일이 아님에도 시비를 거는 내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푼다고 생각했는지 몇번 툭탁 하더니 말을 접었다. 자연스럽게 나와 아내는 그 날 이후로 서로에 대해 말 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녀가 낮에 무얼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녀또한 나에 대해 많은것을 알려고 하질 않았다. 그 점이 그녀에게도 자신의 일상에 대해 말하지 않기위해서는 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외출이 빈번해졌다.
하지만 아내는 외출에 대해 누구를 만나는지 무얼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 알려줄 뿐, 자세히 대답하지도..나도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매주 전송되는 길상의 이메일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또 흘렀다. 그동안 길상에게서는 총 네통의 메일이 수신됐다.
* 이번주는 두번 아내분을 만났습니다. 편하게 수경이라고 하지요. 처음 만나기 위해 연결했던 귀찮은 다리들을 다 치우고 둘만 만나기는 이번주가 처음이군요. 다들 하는 것 처럼 영화따위를 보자고 하면 의심많은 수경이가 저를 멀리할까봐 그런 식의 작업은 하지않았습니다. 지난번 뮤지컬과 비슷한 상황으로, 님의 집과 가까운 곳에서 하는 공연이 있으니 친구와 둘이서 보라고 지나가는길에 연락해서 티켓을 두장 건넸습니다. 당연히 수경이도 급하게 받다보니 같이 갈 친구가 없었죠. 그래서 못이기는척 같이 갔습니다. 이제 편한 오빠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더군요. 제 외모상 오빠라고는 하지않았는데 이번 만남에서는 오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습니다. 공연을 본 후 님께서 알려주신 수경이가 즐겨마시는 커피를 골라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들여보냈습니다. 알려주신 덕분에 수경이가 좋아하는 취향과 영화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녀도 경계심이 많이 풀어졌더군요. 이제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제 앞에서 활짝 웃곤 합니다.
두 번째 만남은 어제 있었습니다. 두번이나 신세를 졌다면서 밥을 사겠다더군요. 역시 방어적이고 빚지는거 싫어하는 여자들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싶었습니다. 이런 여자가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본인도 만족할 수 있도록 스스로 헌신(?)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제 회사 앞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식집으로 가서, 사준 사람도 뿌듯할 만큼의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맛있는 음식에는 여자의 경계심도 느슨해지는 법. 일단 술을 한병 시켜서 편하게 나눠마셨습니다. 음식맛에 끌려서 또 한 병을 더 마셨습니다. 저야 술이 워낙 적응이되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경이는 좀 취한 것 같더군요. 취한여자를 마음대로 하는거야 저도 재미있어 하지만...지금 그랬다가는 다시보기는 힘들어질테니 그녀도 적당히 기억할 만큼만의 추억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두명 뿐이지만, 분위기가 흥겹고 좋아서 함께 노래방에 갔습니다. 원래 저같은 아저씨와는 이런데 가는걸 싫어하는 여자 같은데, 술의 힘이 좋긴 하더군요. 절 아주 친한 오빠처럼 생각하면서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면서 노래방에 들어갔습니다.
신이났는지 빠른 템포의 노래를 계속 부르길래 저도 장단을 맞춰주었습니다. 좀 지칠때 쯤 발라드를 부르면서 상황을 살펴보니 술이 깨는지 옷 매무새를 다듬더군요. 참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집에 가자고 하고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다음주가 기대되는군요.
* 오늘 통화하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번주는 수경이에게 좀 시간을 줄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둘이 따로 만났던 일에 대해 지나치게 속도를 내면 쉽게 반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테니까요. 출장을 핑계로 며칠후에 연락할 계획입니다.
* 아직 별다른 할말은 없지만, 내일 만남을 하기전에 흥분이 되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님께서 생각하는 그런일은 아직 없을겁니다. 하지만 그런 단계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이번주에 분명 있겠지요. 그게 내일입니다. 그럼 이만.
* 아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수경이를 만났습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시겠지요. 너무 긴장하지는 마세요. 아직 눈돌아갈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경이가 앞으로도 저를 계속 만날지 어떨지에 대해서 결심을 굳힌 듯 합니다. 무엇보다 편하고, 취향도 비슷한 것 같고 착하고 지킬 선을 아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답니다. 이제 정기적인 만남을 유지시킬 장치가 필요합니다. 오전에 함께 헬스와 함께 수영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말은 헬스가 주 목적이라고 했지만, 며칠 다니게 되면 수영을 함께 하는것으로 꼬실 계획입니다. 아마 님에게도 곧 이야기 할 겁니다. 물론 저와 같이 다닌다는 얘기는 안할 가능성이 높겠죠. 수영장에서도 가깝게 지내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제 몸과 수경이의 여리여리한 몸이 비교가 되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테니까요. 덕분에 전 수경이 몸이나 미리 감상할 수 있겠군요. 그럼 다음주에는 잘빠진 수경의 몸매에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문득 님이 부럽기도 하군요. 그럼이만.
“오빠. 나 내일부터 운동 하려구.”
“응? 운동? 무슨운동?”
“헬스. 집 가까운 곳에 새로 생겼는데 오픈행사로 한달은 무료로 다녀보고 등록하라더라구.”
“응....그럼....헬스만 하는거야?”
“어..수영장도 있긴 한데....난 헬스만 하려고. 일단...”
아내는 누구와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곤하다며 방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한참동안 만지작 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살짝 키득거리는 듯한 소리가 거실로 새어나왔다. 아마도 ‘누군가"와 메세지를 주고받고 함께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점점 실전의 상황이 엄습해오는 긴장감에 나는 잠을 쉽게 이룰수가 없었다.
아내와의 섹스리스가 반년이 다 되어간다. 아내는 이제 내게 벗은 몸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전에도 나체의 몸을 대놓고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경계하는 눈빛까지 보일 정도로 우리는 성에 대해서는 돌아오기 힘든 선이 그어진 듯 했다. 지루하고 고정적인 패턴만 반복하는 아내에게 질린내가 던진 한두마디 서운한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부부의 ‘의무"를 외면하는 아내가 무척 서운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감도 함께 커져갔다.
‘어디...네가 창녀처럼 되는 날이 오는지 보자....’
길상에게서 메일이 왔다. 서둘러 메일함을 열었다.
* 몸이 아주 늘씬하군요. 헬스장 출근 일주일만에 수영장에 들어왔습니다. 덥고 땀차는 헬스만 하려니 수경이도 몸이 근질거렸나봅니다. 가슴은 한손으로 잡기 어려울만큼 좀 큰 것 같은데..정말 비컵 맞나요? 자존심이 강한것에 비해 부끄러움도 많이 타는 것 같군요. 수영은 따로 하겠다길래 저는 먼저하고나와서 창밖에서 지켜봤습니다. 주변 남자들도 힐끗거리더군요. 님 복받으실겁니다. ㅎㅎㅎ 다음주에는 저도 이제 시작해봐야겠군요. 그럼 이제 수시로 연락드리죠.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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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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