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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3:00 1,001회 0건
제7화


한편 그 무렵…

“슬슬 끝날 때가 되었는데…”

눈이 침침했다. 이틀 연속 철야를 했더니 피로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시간조차도 아까워 샌드위치로 때우고 있었다. 캔커피를 한꺼번에 들이 마신 후 쓰레기를 휴지통에 던져넣고 마우스를 잡았다. 화면이 밝아지면서 숫자의 나열들이 나타났다.

새벽무렵 데이터의 입력을 겨우 끝냈다. 특정 염기배열의 연산. 조금 있으면 결과가 나올 터였다. 눈을 비비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확실한 근거는 없었지만 어딘가 신경이 쓰였다. 김지영교수에게 얘기를 하면 그냥 웃어넘길 것만 같아서 혼자서 진행해오던 분석이었다. 부여받은 연구과제 틈틈이 이 몇주간을 계속해서 혼자서 매달려왔다. 곧 그 결과가 나온다. 추정된 단백질의 구조가 나타날 것이었다. 모니터를 따라 흐르던 숫자의 행렬이 멈추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엔터키를 눌렀다.

“자. 이제 모습을 드러내봐”

엊그제부터 유미와도 만나지 못했었다. 오늘 아침 무리하지 말라던 메시지가 온 것 뿐이었다. 단 한줄의 메시지였지만 유미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기뻤다. 또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받는 것만 같았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무방비한 천진난만한 웃음이 떠 올랐다.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들었다. 유미에게 선물받은 마스코트가 달린 줄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속으로 10까지 세어나갔다. 눈을 떴다.

“뭐..뭐야..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놀란 눈이 더욱 커지고 말았다.

“선생님, 김지영 교수님… 교수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지영을 불렀다. 컴퓨터 제어분석기가 늘어서 있고 서류와 학회지가 잡다하게 쌓여져 있는 살풍경한 연구실에서 느닷없는 희성의 목소리가 오후의 나른한 분위기를 깨우고 있었다.

“굉장하네…”

화면에 떠오른 입체구조를 체표면을 따라 지영의 시선이 훑어내렸다. 컴퓨터가 그려낸 복잡한 형상의 단백질 표면은 플러스 전하를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언제나처럼 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채 어깨 너머로 몸을 내밀어 들여다 보는 지영의 달콤한 체취도 어깨에 느껴지는 뭉클한 감촉도 흥분한 탓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귓가에서 “느낌이 좋은 걸?”이라는 지영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여보세요.. T공대의 김지영입니다. 아뇨.. 전에는 .. 저야말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지영이 수화기를 들었다.

“선생님, 급히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요. 그쪽 포스터를 한대 좀 빌릴 수 없을까요? 그런 말씀 마시구요… 그걸 좀 어떻게… 바로 좀… 그럼.. 거기서… 네…네,, 언제나 신세만 지네요.. 감사합니다”

지영의 검은 머리가 찰랑거리듯 흔들리고 있었다. 깨끗한 눈동자,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얇고 요염한 입술, 성숙한 여인의 매력과 귀여움을 겸비한 청순한 옆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럼 바로 보내드릴게요.. 우리 젊은 친구가 재미있는 데이터를 끌어냈거든요.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은 지영이 희성을 바라보았다.

“수고했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지영의 큰 눈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희성은 그녀의 그런 눈빛에 약간의 설레임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거.. 전부 혼자 했다는 거잖아.. 훌륭해.. 역시 내가 잘 본 거 같아”

“아..아뇨.. 그냥 좀 신경이 쓰여서요.. 어쩌다 보니 나온 결과에요”

그녀의 목엔 커다란 진주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차마 파여진 그녀의 가슴쪽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얼굴에 살짝 그녀의 머리카락이 스쳐갔다.

“아직까진 감이긴 하지만.. 제대로 찾은 거 같아. 희성이가 이번 연구를 크게 한발 움직이게 한 거야. 자신을 가져도 좋을만큼 말이지. 자! 어깨를 쭉 펴고.. 남자잖아?”

희성의 고개를 받쳐 얼굴을 들게 했다. 마치 지금이라도 키스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희성이 연구실에 들어온 이후로 야단 맞은 적은 있었어도 칭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학회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지영으로부터의 칭찬이었다. 자신을 그정도로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감사합니다”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는 것도 칭찬을 받는 것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좀처럼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미의 부모님은 그저 잘 대해주었을 뿐 야단 같은 건 치치 않는 사람들이었다. 유미와 싸움은 했었지만 그것도 약간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영이 그만큼 희성을 신경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문득 희성은 김지영교수가 마치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희성아 바로 입력한 염기 데이터를 이화학연구센터로 보내주도록 해”

일어서면서 지영은 흰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브라인드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비쳐 들어와 그녀의 가녀린 몸 위로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네.. 전에 보냈던 곳으로 보내면 되는 거죠?”

“응.. 아 그리고 오늘 시간 괜찮아? 상으로 맛있는 거라도 사줄까 싶은데.. 맨날 빵이나 카레만 먹었잖아. 앞으로 더 바빠질텐데.. 그러다 쓰러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유미는 오늘 동아리 친구들하고 당일치기로 놀러를 다녀온다고 했었다. 아마도 늦게돌아올 것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지영이 멀어져갔다. 희성은 서랍안에 넣어두었던 작은 상자를 꺼내보았다. 지난 여름, 동아리에 매달리는 유미를 못만나던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뛰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어제 백화점에 들러 사둔 반지였다.

‘많이 신경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 유미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이번 연구가 잘 끝나면 그때.. 한번 더 고백할게.. 사랑해 유미야…’


“이거 맛있는데요?”

계속해서 나오는 요리를 먹을 때마다 희성은 감탄했다. 야채들로 만들어진 밑반찬들도 그랬고, 생선구이도 훌륭했다. 계절요리들의 소박하지만 담백한 맛이 요리사의 솜씨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한식요리를 먹자는 지영의 말에 그냥 학교근처의 식당일 줄 알았다.

“입에는 좀 맞는지 모르겠군요.. 더 드릴까요?”

단정한 용모의 여주인이 외모와 어울리는 웃음을 띈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번화가에서 조금 안쪽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가게의 간판 같은 것도 나와있지 않았다. 겉으로 봐서는 일반 가정집으로 착각하기 쉬운 그런 한식당에서 지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아주 세련된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인 것만 같았다.

“많이 먹었어?”

“더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에요”

지영은 몇가지 안주를 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남편과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식사는 그 때 하겠다며 마시기 시작한 몇잔의 술에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구실에서 보여주는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지영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앞에 놓여진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여전히 미소를 띈 얼굴로 여주인이 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품평이라도 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저기… 왜 그렇게…?”

“어머, 실례를 했군요.. 그냥.. 김교수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요..어떤 분인가 해서..”

“선생님이 저를요? 에이..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었다. 다른분야를 생각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여주인은 그저 웃기만 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김교수는 벌써 10년이나 우리집 단골인걸요.. 그 남편분이나 가족..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같이 온 적이 없답니다.. 학생은 더구나 그쪽이 처음이에요”

“어쩌다겠죠..어쩌다…” 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내심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맥주를 한잔 마신 김에 궁금하던 것을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선생님이.. 젊었을 땐 어떤 느낌이셨어요?”

“아주 귀염성 있는 아가씨였죠…” 여주인의 표정이 지난날을 더듬어 보고 있는 듯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우씨랑 결혼하고 우리집에 왔었어요… 그 무렵의 김교수는 조용하고.. 귀엽고.. 또.. 상냥했었지요”

“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하신 건가요? 그럼?”

“모르셨나보군요.. 둘이 같은반이었어요.. 아주 사이가 좋았죠”

“말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자리로 돌아온 지영이 여주인의 말을 끊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맥주 좀 더 가져올게요”

여주인이 당황해하며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아니. 그 무렵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인 거야?”

말을 마친 지영이 술잔을 비웠다. 지영의 뺨과 가는 목덜미, 그 아래로 보이는 살결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평소의 가운 위로도 확실하게 보여지던 두개의 풍만한 가슴이 몸에 잘 맞는 옅은 색의 블라우스 위로는 더욱 더 풍만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유미와 마찬가지로 스타일 좋고, 볼륨감 있는 몸매였지만 빨려들 것만 같은 매력이 있었다. 여자로써의 색기를 풍기고 있는 미모였다.

“고등학교 동창이랑 결혼하신 줄은 몰랐어요.. 역시 선생님이 먼저..?”

“이런 희성이까지 이러기야? 역시라니..? 무슨 뜻인 거야?”

촉촉히 젖은 눈동자가 희성을 흘겨보았다. 취해서 부리는 애교처럼 느껴졌다.

“아.. 아뇨.. 아무 뜻도 없어요. 그.. 그러니까.. 선생님의 남편은 어떤 분이세요?”

우선은 화제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지영이 같은 미녀가, 그것도 카리스마 있는 여자가 결혼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도 궁금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둘이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좀처럼 없는 일이기도 했었다.

“음.. 그러니까.. 내 주,인,님,은 있잖아…” 천천히 말을 또박또박 끊어서 이야기를 하며 또 다시 술잔을 비웠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언제나처럼 또 놀리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내 전부야. 내가 지금 이렇게 될 수 있는 것도 그를 만나서 나도 모르고 있는 내 자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부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전부 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야.. 그러니까.. 내 모든 것, 몸도 마음도 모두 다 그 사람 거야.. 알겠어? 희성씨~~~?”

“네~ 네”

‘아니 듣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렇게 팔불출일 줄이야.,,,’

이론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지도교수로부터 팔불출 같은 소리를 듣고 희성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참 그런데 희성이는 잘 되어가? 여자친구랑..”

“그럼요”

사랑스러운 유미의 얼굴이 떠 올랐다.

“그래…? 그럼 다행인데.. 그래도 여자친구 상당히 예쁘던데… 남자들이 막 따라오거나 하지 않아? 남자친구로써 걱정 같은 건 안돼?”

“뭐 인기는 제법 많은 편이죠.. 하지만 유미는 언제나 저 뿐이라던데요? 그래서 별로 걱정 같은 건 안하는 편이에요. 나도 그녀를 믿고 있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발심이 생겼다. 희성이도 자랑질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지영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좀 거칠게 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거 뿐이야?”

그녀의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당황을 하며 희성이 되물었다.

“네? 그거..뿐이라뇨..?”

“믿음만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거라고.. 알아? 잘 들어봐”

“서..선생님.. 갑자기.. 왜..왜 그러세요?”

또 설교라도 늘어놓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야단이라도 듣는 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녀관계란 건 말야.. 그런 <아름다운>관계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믿는다던가 하는 어린애 같은 소리만 해서는 안되지. 그러다가 언젠가는 뺏기고 말걸?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상처를 주고 받게 되어 있으니까… 그게 싫으면 말이지.. 정말 그녀가 소중하다면, 누구한테도 뺏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그렇게 착해보이는 얼굴로 믿는다고만 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그녀를 붙들어두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몸도 마음도 모두다 갖지 않으면 안돼. 남자잖아? 그정도는 강해져야 하지 않겠어? 뭐 소질은 있어보여… 내가 잘못보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그렇게 말을 마친 지영이 술잔을 채웠다.

“희성이한테도.. 언젠가… 그쪽 분야도 가르쳐 줄 날이 있겠지만 말야…”

지영의 눈빛이 요염하게 느껴졌다.

“알아 들어?”

“네…”

유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하고 있는 희성이에게 있어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적당히 대답을 하면서 맥주잔을 들려고 할 때였다. 여주인이 자리로 왔다.

“저기.. 김교수.. 현우씨가 왔어요…”

“어머.. 정말요?”

표정이 싹 달라지며 웃는 얼굴이 되었다. 희성은 어느사이엔가 안중에도 없었다.

“현우씨.. 어서 와요~”

밝은 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맨발로 뛰어나갈 기세였다. 여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희성이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온몸이 붕 떠 있는 듯한 감각. 조금 취했나 보았다. 어두운 방안에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교수.. 정말 남편을 사랑하나봐…’

키가 큰 남편의 팔에 안기고 매달려 어린 아이처럼 달라붙던 지영의 얼굴이 떠 올랐다. 처음 만난 지영의 남편은 마치 용맹한 육식동물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그런 지영의 어깨를 감싸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정중한 말투이긴 했지만 남자의 강인함이 느껴졌었다.

‘나도 그 남자처럼 기댈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침대 옆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을 들었다. 갑자기 유미가 보고 싶어졌다. 벌써 11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졌다. 아침부터 몇번이고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던 번호를 다시 눌렀다. 아직 밖인 걸까… 귓가로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보고 싶을 때일수록 만나질 못했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벨만 울리고 받질 않아 끊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유미?”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유미를 불렀다. 하지만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유미야? 여보세요? 나야 유미야.. 여보세요?”

몇번인가를 그렇게 불러대자 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응… 희성아… 미안…”

듣고 싶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드디어 들려왔다.

“응.. 전화… 괜찮아?”

“아… 응.. 괘.. 괜찮아… “

주위를 의식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평소보다 말수도 적었고, 목소리도 작았다.

“언제쯤 와?”

“아… 미..미안…… 오늘… 못 갈 거 같아… 일찍.. 전화하려고… 아음.. 전화하려고 해..했었는…데…”

“그래…?” 의기소침해졌다.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쉬어졌다.

“미안. 정말 미안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응.. 괜찮아.. 그렇게 미안해 하지 마.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유미야?”

“아, 미..미안.. 으으음…. 미안…”

“괜찮은 거야? 많이 마셨어?”

“그,,그런가봐…. 그럼.. 내일 봐… 희성이도… 조..조심하고… 그럼…..”

“응,. 유미야?”

“……. 응? ,,,왜.. 왜?... 아핫.. 하음..”

“왜 그래 유미야? 무슨 일 있어?”

“아.. 미안.. 아…아무것도… 아니얏… 수…술..음… 엎질렀어… 미안해…”

숨이라도 찬듯한 목소리였다.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 제법 많이 모양이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응… 그럼.. 내일 봐.. 또 전화할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잘자~”

“…으..으응.. 희성이도.. 힘들텐데.. 무리하지 마… 응원하는 거 아…알지?”

“응 고마워 유미야.. 사랑해~”

“응.. 고마워”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희성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사랑한다는 자신의 말에 유미가 “나도”가 아닌 “고마워”라고 했던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희성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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