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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3:00 1,381회 0건
제6화

준결승까지는 실력대로의 전개였다. 상대가 안되어 보일 정도였다. 스트레이트로 준결승까지 올라왔었다. 가을의 동아리 대항전도 남자 단식 결승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훈이 이긴다면 종합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부원들이 코트를 둘러싸고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모두들 이미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깐 마사지좀 하고 올게요. 집중하고 싶으니까.. 혼자 있게 해주세요”

웃는 얼굴로 땀을 닦으며 코트 안쪽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간 지훈이 옆에는 유미만이 같이 있을 뿐이었다.
그 많은 테니스 동아리들 모두가 노리는 건 단 하나였다. 우승시에 누릴 수 있는 학교내 코트 우선 사용권. 우승을 하기만 한다면 다음 대회까지 연습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만큼 부원들의 기대가 한몸에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훈은 긴의자에 앉아 대퇴부와 종아리의 근육을 면밀히 풀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지훈아..”

“혼자 있게 해달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요”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모양을 보며 유미가 입을 열었다.

“다리 아픈 거지?”

“…괜찮아요..”

“거짓말 하지 마”

“정말이에요”

근육을 풀어주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자 그럼 보여줘봐”

그렇게 말을 하자 마자 앉아 있는 지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지훈의 오른쪽 무릎을 들어 올렸다.

“아.. 서..선배.. 아,,아파요”

유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무릎을 감싸쥐었다.

“그럴 줄 알았어… 언제부터인거야?”

“지금 유미 선배가 건드린 다음부터요”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인거야?”

“들켰네요. 역시.. 선배는 못 당하겠어요.. 준준결승 중간 무렵부터에요. 좀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그때 2세트에서 서브 3개 연달아 놓쳤잖아요… 대충 그때부터인데 좀 아프더라구요 쪼오끔”

“장난치지 마”

웃으면서 넘기려는 지훈을 따끔하게 몰아부쳤다.

“기권하자. 내가 대신 얘기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는 유카에게 고개를 들지 않고 소리치는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돼! 제발 가만히 좀 두란 말얏!”

“아 희성오빠 안녕하세요~ 유미 선배 응원하러 오신 거에요?”

“어? 지혜구나? 시합 벌써 끝났네..”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는 연구 탓에 지영으로부터 단단히 한소리를 들은 뒤였다. 그런 희성이 연구실을 빠져나와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코트 옆에서 희성을 알아본 지혜가 바로 앞으로까지 뛰어왔던 것이다.

“네. 남자 단식 결승만 남았어요. 여자경기는 막 끝났거든요. 유미 선배 3등했어요”

“그랬구나… 시간 못맞췄네. 응원하러 온다고 약속해 놓고… 또 한소리 듣겠는걸?”

실망한 듯이 어깨가 쳐졌다. 코트 옆은 이미 시합을 끝내고 응원을 나선 각 동아리의 팀원들로 만원이었다.

“그런데 지혜야. 유미는 어디 있어?”

“그..글쎄요? 조금 전까지 있었던 가 같은데… 대기실에 있으려나? 안내해드릴게요.. 저쪽으로 돌아 오세요”

스탠드의 아래쪽으로 돌아들어갔다.

“아, 오빠.. 지난 번엔 저..정말 죄송했어요”

“음.. 괜찮아. 저번에도 사과했었잖아. 그리고 유미한테도 설명한 거 아냐? 갑자기 그런 거라고…”

“아, 네.. 해..했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 뒤로 유미를 피해 왔었다.

“두번 다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꾸 그럼 아예 연구실 출입금지 시킬 거야”

“안 그래요.. 저 미워하지 마세요”

지혜는 희성을 올려다 보며 웃었다.

“왜 고집이야… 무리야 그런 다리로 시합을 뛸 순 없잖아”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만지고 있는 지훈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선배가 뭐라 하던 한시합만 뛰면 돼요”

“무리하지 않기로 약속했었잖아”

“모두 기대하고 있잖아요. 부원들의 기대.. 모른 척 할 수는 없다구요. 한 시합만 더 뛰면 이길 수 있다구요. 이기기만 하면…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요.. 모두에게.. “

“지훈아.. 지금까지도 충분해.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대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 오늘 시합은 무리하지 말자. 다음 대회도 있잖아 응?”

“그럴 수 없어요. 부탁이에요. 그냥 뛰게 해 주세요”

“왜… 왜 그렇게 고집 부리는 거야? 남들 시선이 뭐 그렇게 중요한데?”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유미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빨갛게 젖어 있었다.

“저 자식은 엄마도 버린 자식이라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놈들이 뒤에서 그렇게 수근 거리는 거 한번도 들어 본 적 없죠?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 선배는 모르죠? 그래서… 그래서 선배는 모르는 거에요. 전국 4강에 들었을 때 조차도… 그래서… 난 더 열심히 뛸 수 밖에 없는 거에요. 두번 다시 그런 경험 또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선배 부탁이에요.. 딱 한 시합만 더 뛰게 해주세요”

눈물까지 뚝뚝흘리며 말하는 지훈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훈을 향해 손을 내 밀었다.

“가자.. 곧 시합 시작될 거야. 다들 기다리잖아”

지훈이 그 손을 맞잡았다.

“힘 내… 앗”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고 느끼는 순간 유미의 몸이 지훈에게로 당겨졌다. 유미의 어깨와 머리가 단단한 지훈의 품에 안겨들었다.

“지..지훈아”

넓은 지훈의 가슴에서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유미는 가만히 안겨있을 뿐이었다.

“고마워요..”

귓가에서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잘해볼게요”

유미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선배.. 만약에 내가 이긴다면… 돌아오는 일요일에… 그 때 얘기했던 데이트 말이에요. 단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데이트 해주세요. 그럼 나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유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스스로 팔을 올려 지훈을 마주 안았다.

“가자.. 시합 시작하겠다”

들 것에 실려 코트밖으로 나왔을 때 지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미를 보았다.

“..미안해요…”

라는 말 뿐이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복잡한 얼굴이었다. 들것 주위를 둘러싼 부원들의 위로의 말을 뒤로 하고 의무실로 실려가고 있었다. 제3세트 2게임까지는 압도적인 경기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였다. 서브를 하자 마자 무릎을 잡고 코트에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기권패. 유미는 한켠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미 선배!”

뒤쪽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난 듯한 얼굴로 지혜가 유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지고 말았네.. 아깝다 그치?”

“아쉽죠.. 유미 선배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알게 되어서 더 아쉬워요”

“무슨 뜻이야?”

갑작스런 지혜에 말에 당황스러웠다.

“희성 오빠가 응원하러 왔던 거 알아요?”

“뭐? 희성이가?”

“역시 몰랐군요.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 안해요?”

“그래? 어디..어디 있어?”

“벌써 갔어요. 연구실이 바쁘다더군요. 그 바쁜 연구실에서 힘들게 빠져나왔는데 선배는… 아까 그 시합 여기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희성 오빠가 몇번이고 선배에게 손을 흔들었는데 선배는 결국 모르더군요. 그동안 선배 누구를 보고 있었죠? 남자친구가 온 것 조차 모르고 도대체 누구를 보고 있었나요?”

둘 사이가 틀어지길 바라고 있는 지혜로써는 굳이 대기실에서 유미와 지훈이 안고 있었던 것을 희성이 보았다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히든카드는 숨겨둔채 유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둘을 갈라 놓기에는 그러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지혜야”

“선배는 도대체 누굴 좋아하는 거죠? 희성오빠인가요? 아님 지훈인가요?”

유미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자 지혜의 말끝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유미 선배 같은 여자가 희성오빠 여자친구라니 말도 안돼. 그렇게 착한 사람을 꼭 그렇게 바보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요? 지훈이가 좋으면 그냥 지훈이랑 사겨요. 착한 희성오빠랑은 헤어지만 되잖아요”

울면서 소리치던 지혜가 도망치듯 뒤돌아 뛰어가버렸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의 관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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