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애비는 컴컴한 벽면을 붙잡고 폴더 휴대폰의 뚜껑을 열었다.
다른 손엔 몸체를 한바퀴 둘러 정중앙에서 잠글 수 있도록 금속 클램프를 달아놓은 고동색 손가방이 하나 들려있었다.
계단통로 바닥이 거칠거칠한게 다듬질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안 좋은 다리가 더 끌리는 느낌이다.
벌써부터 달궈진 양계장 안에 들어온 것 같이 더웠다.
계단참 주변이 휴대폰 불빛에 희미하게 밝혀지며 넘어서면 안될 금지구역처럼 굳게 닫혀있는 철문의 손잡이가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댔다.
"아, 나예요. 나. 문앞이요. 예,예.."
철컥이며 잠겼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고 손잡이가 돌아갔다.
문을 열고 내다 본 것은 사각이마였다.
?은 그의 머리가 길동애비를 확인하고는 들어오라는 뜻으로 보일듯 말듯 끄덕이며 뒤로 사라졌다.
길동애비가 지하실에 들어섰을 때 제일 처음 본 것은 벌거벗은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치질검사를 받는 것처럼 자기 손으로 엉덩이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광길은 길동애비가 들어오는 철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공개한 엉덩이를 광길의 앞에 올려놓아 전적으로 그의 처분에 맡기고 있었다.
광길은 통통배의 낡은 선외기 엔진이 자체 스트로크에 못이겨 200마력의 힘으로 요동치듯 자기 앞에 끌어다 놓은 가랑이 사이에 꽂은 손을 위 아래로 진동시키며 탈탈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발끝으로 서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신발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알몸에 신발이라..시간이 흘러도 그 취향은 여전했다.
무덤덤한 그의 눈이 길동애비를 쳐다보았다.
"정정하시네."
후레자식. 어린 놈이..공경심은 손톱의 때만큼도 없다.
손도끼라도 있으면 파이우테족 전사처럼 저 골통으로 던져 꽂아넣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표독스런 쌍판은 더 살벌해졌구만. 그나저나 이게 무슨 냄새야.
길동애비는 속으로 몸서리를 쳤지만 겉으로는 반가운 척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우리 큰 고객. 또 불러줘서 고맙구만."
길동애비는 인사를 하며 실내를 돌아보았다.
분위기가 좀 묘했다.
듬성듬성 서있는 남자 여섯.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아 황량하기 짝이없는 콘크리트 나벽들. 닥트가 드러난 천정과 군데군데 밝혀놓아 전체적으로 그늘 속에 갇혀있는 듯한 조명. 구석 배수시설엔 뭔가 물청소를 한 거같이 질퍽하게 물이 고여있었고 무엇보다 냄새가 지독했다.
역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 물론 이건 길동애비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냄새였다.
설마 이 새끼들이 여기서 돼지를 잡았을리는 없고.
길동애비는 유심히 사내들의 눈을 쳐다보았다.
비정상적으로 번들거리며 열에 들떠 있는 것이 과거에 자신도 써보았던 메타돈 따위의 뽕가루를 맞았을 때나 볼 수 있는 눈들이었다.
이 놈들이 모두 중독자가 아니라면 이것은 자기제어를 못하고 피에 취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맛이 갔군.
길동애비는 입맛을 다셨다.
빨리 끝내고 나가야지 오래 잡혀 있다간 험한 꼴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동애비는 광길에게 희롱 당하고 있는 여자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이게 재료인가 봅니다."
광길은 아무 말 없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는 탈탈 털어대던 손을 멈추고 손장난을 시작했다.
여자의 구멍 속으로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집어넣고 은근하게 쑤시면서 엄지는 음부의 위쪽 클리토리스 부위를 문질렀다.
연약하고 좁은 살들이 멋도 모르고 그의 손가락에 감겨왔다.
음부 안 쪽과 바깥쪽을 더군다나 아주 민감한 음핵의 안팎을 집게발로 집고 있는 형상이어서 당하는 여자 쪽에서는 매우 고통스러울게 분명했다.
가까이에서 본 여자의 항문주변과 생식기 샅두덩에는 그녀에게서 울궈낸 애액이 에센스 크림처럼 펴발라져 있었다.
여자는 흐느끼다가 간헐적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계집 이런 경험은 처음이렷다.
상대적으로 짧은 상체와 긴 하체, 군살 없이 말린 허리, 탄력있게 융기한 엉덩이, 가는 팔과 근육을 잘 가린 피하지방 때문에 옹골진 곳 없이 뻗은 다리하며..허리를 굽히고 있었지만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만큼 뛰어난 몸매였다.
"어때? 영감님. 재료 쓸만한가?"
그녀를 살피는 길동애비에게 그가 말을 건넸다.
길동애비는 턱을 쓰다듬었다.
"좋아뵈긴 하는데..어디 한번 자세히 봐도 되겠는가요?"
그가 그녀의 구멍에서 천천히 손을 빼더니 그녀가 벌리고 있던 항문과 그 주위에 손가락에 묻은 애액을 처덕처덕 바르며 닦아냈다.
"좋으실 대로."
"그럼.."
길동애비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어디.."
그는 다짜고짜 숙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더니 불쑥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아픈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이 년이 어디서 소리를."
싱글대며 가식적인 웃음을 가득 띄우던 길동애비의 얼굴이 먹이를 자르려는 사마귀처럼 변하면서 무쇠라도 씹을 듯한 기세로 호통을 쳤다.
그녀는 순간 몸이 얼었다.
이 사람은 또 누구지.
"예,형님. 접니다. 오늘 미팅에 좀 늦을거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예,예..아뇨, 다른 일이 아니라..광길이네 좀 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요. 예..좀 더 보다 가려구요."
수찬은 편의점 카운터 쪽을 힐끗 보고는 전화기를 다른 손으로 옮겨 잡았다.
편의점 알바는 고개를 숙이고 잡지를 읽는 중이었다.
수찬은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
"형님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는데..길동애비라고 예전에..예,예. 그 영감이 광길이랑 연결돼 있는 거 같습니다..뭐, 이유야 한가지 밖에 더 있겠나 싶습니다..그렇죠. 워낙 여자 잡는 짓은 당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오죽하면 조련사라고들 했겠습니까."
수찬은 말을 끊고 잠시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 저도 그렇게 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그럼 얘네들 마저 나가는 거 보고 올라가겠습니다. 예."
수찬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잠시 내려다 보다가 곧 다른 번호를 연결시켰다.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이 자의 몸에 걸치면 삼류 배우의 궁색한 장신구가 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늙은이였다.
만져보진 않았지만 모조는 아닐 것 같은 밍크베스트도 순금의 무딘 광채가 빛나는 두꺼운 금반지와 올가미에 걸린 건지 멋으로 건 건지 모를 정도로 치렁치렁 목에 감아놓은 금 목걸이도 그녀라면 아령대신 써도 될 만큼 무거워 보이는 저 금딱지 시계도 죄다 그의 몸 이곳저곳에서 하품이 날 만큼 처량하게 늘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는 지나치게 금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보이는 이빨에는 적어도 대여섯개 정도의 골든크라운이 씌워져 있었고 안경 역시 금테인데다 둥근 콧등에 검은 피지를 잔뜩 박은 채 시종일관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얼굴도 누런 금색이었다.
어쩌면 저 케브라 원단의 트레킹용 반바지에 떡하니 끼워놓은 못난이 혁대, 저 네모난 버클도 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자가 그녀에게는 이상한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이 살인자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수없이 개를 때려잡아본 개장수를 보는 강아지나 솜씨좋은 땅꾼에게 걸린 뱀 혹은 도끼를 든 백정 앞에 끌려온 소처럼 천적관계의 포식자를 알아보는 피식자의 본능이 주는 두려움이었다.
광길은 옆에서 이들의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이 길동애비 앞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을 질릴 만큼 보아왔다.
희안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처음엔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어 무슨 속임수를 쓰는 것인가 의심도 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여자들과 길동애비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능력이 아마 수십년간 포주를 하며 여자를 후리던 경험이 만들어낸 설명하기 힘든 권위의 일종일 거라고 여겼다.
당장 이 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이 이미 그녀를 물먹은 한지처럼 나긋나긋하게 풀어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길동애비의 말을 듣는 그녀의 모습엔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처연함마저 보이는 것이었다.
다른 면에 있어서 이 영감은 어릿광대 사기꾼에 불과하지만 여자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라는 것을 그는 부인할 수 없었다.
광길은 이 점을 높이 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 늙은이의 목을 땄을 것이다.
후리후리한 키의 그녀는 땅달막한 길동애비를 내려다 보았으나 곧 주눅이 들어 시선을 그의 발밑으로 떨어뜨렸다.
반면 기름진 그의 시선은 그녀가 홍로처럼 빨갛게 익을만큼 온 몸 구석구석을 천천히 뜯어보고 있었다.
눈물 범벅이 되어 떨고 있었으나 서릿발같이 시원한 눈매와 곱게 솟은 콧날, 많은 웃음을 담고 살았을 붉고 도톰한 입술, 아직도 젖내가 날 듯한 뺨과 갸날프게 붓질한 듯한 턱선을 보며 길동애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년 얼굴도 예쁘네..
"손 내리고 똑바로 서거라."
사무적이고도 위압적인 소리였다.
그녀는 이미 자포자기된 상태였으나 오싹거릴 정도로 엄습하는 겁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이 기분은 불안 같은 것이었으며 그게 맞다면 경외에 가까운 불안이었다.
쥐나 개구리가 어디서 자기를 주시하는 눈이 있는지 몰라 어둠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불안이었고 저 담 모퉁이까지 가면 살 수 있는데 여기서 발을 떼는 순간 노리고 있던 저격수의 총알이 자신을 직격하리라는 걸 느끼는 전투원의 사선에 선 예감같은 공포였다.
그 자에게는 그녀로 하여금 남자를 상대하는 여자의 어떤 가면이나 자기방어에 쓰는 여자의 어떤 전략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무의식 중에 갖게 만드는 노련함이 있었고 또 여자의 고통을 속속들이 알고 그것을 철저히 이용하는 카리스마 비슷한 것도 보였다.
한마디로 그것은 두렵고 불안한 기세였으며 시선과 태도,명령 한 마디가 일으키는 확고부동한 분위기였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당연히 해야하는 일을 시키는 것처럼 그녀에게 지시했고 완전히 기가 꺾인 채 그녀는 그 지시를 따랐다.
그녀는 어렴풋이 아까 광길이 언급한 교육 나부랭이가 이 자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싸구려 흰 면 셔츠와 투턱 주름을 넣은 남색 캐주얼 정장바지 차림의 중년 남성이 비좁은 상가 3층에 끼어있는 허름한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사무실 문엔 증거전문 조사기관 DOT 컨설팅이라는 아크릴 간판이 붙어있었다.
"여보세요."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의외라는 듯 외쳤다.
"수찬이? 정수찬이? 이야..오랫만이네. 어쩐일이냐? 나? 나야 뭐 하던 일이 그런 일이라..어쩔 수 없이 또 이 바닥에 있지,뭐."
사무실 안은 중년 남성이 직접 사용하는 사무용 책상 하나와 온갖 잡동사니를 쳐넣어두는 철제 사물함이 두 개, 그리고 상담할 손님이 왔을 때 앉을 수 있도록 낡아빠진 소파와 탁자가 기역자로 구겨 넣어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대표 이 관중이라고 적혀진 검은 색 명판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뭐..그래도 경찰 일 할 때가 좋았지. 힘은 들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잖아. 너같은 새끼도 잡아넣고.."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컨설팅? 씨발, 요샌 그렇게 써줘야돼. 하다못해 구멍가게를 해도 영어가 들어가야 사람들이 봐준다니까. 말이 컨설팅이지, 흥신소 아니겠냐. 넌 어떠냐? 아, 그래..여전히? 미친 놈, 알아서 잘 하겠지만 임마, 웬만하면..너 이번에 또 들어가면 쉽게 못 나온다. 흥..놀구 있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빈 사무실을 휘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데..뭔 일이고? 전화를 다하고."
말을 듣는 그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
"길동애비? 알지. 아직 경찰 그만두기 전이었으니까..좀 됐는데."
그는 한숨을 쉬며 눈 밑을 긁적였다.
"뭘 알고 싶은데? 왜 들어갔냐고? 아..이 새끼,이거. 공짜로?"
그는 다시 키득거렸다.
"알았다, 알았어. 음..내가 알기론..그 포주 영감 막판에 부동산에 손을 댔어. 그렇지, 직종변경이라기 보다는 사업확장을 한거지. 그러구 한참 재미를 봤어. 주총까지 들어가서 총회꾼 노릇도 했거든. 부동산 회사들 있잖아. 응..별 짓 다한거지. 그러다가 똥을 밟았어. 제대로."
길동애비는 산출물의 품질을 살펴보는 청과물 경매사처럼 그녀의 팔을 벌려보라고 시키거나 제자리에서 뜀을 시켜보기도 하고 옆으로 뒤로 돌려보기도 하며 감춰진 육체의 여러 비밀스런 부위와 여성스런 균형들을 낱낱이 관찰했다.
그녀는 그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동작을 취하면서 이미 벗은 몸이 또 한번 발가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것이 정적인 방식으로 사진처럼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순간순간 몸이 취할 수 있는 여러 상태에서 그녀의 치부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를 다이내믹하게 까 보이는 것이었다.
나체로 움직이는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었으나 그녀에게는이런 식으로 자신의 매력이 노출되는 것이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손을 죽 올려봐. 만세 하는 것처럼."
그는 무용강사가 주의를 환기시키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녀가 지친 팔을 들어올렸다.
"그게 무슨 만세야. 만세도 못해봤나, 이 년이."
길동애비는 혀를 차며 그녀를 나무랬다.
"만세 한번 불러볼테야? 응?..그래, 만세 불러봐야 쓰겠구만. 저기 저 분이 니 물주니까..허..뭐라고 할까? 음?.. 저, 우리 큰 고객님. 이 년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길동애비는 보물을 눈 앞에 둔 해적처럼 두터운 입술을 크게 벌리며 광길에게 물었다.
광길은 잔혹한 눈가에 웃음을 걸고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한때 선생이었던 여자에게 뒤바뀐 처지를 잘 각인시켜줄 호칭을 궁리하는 중이었다.
"오빠? 큰 오빠?..큰 오빠가 좋겠네. 여기 오빠는 여러 명 있으니까. 큰 오빠로 하지."
"좋습니다. 들었지? 이 년아. 큰 오빠 만세 하면서 만세부르는 거야. 자 시작."
사내들이 낄낄거렸다.
그녀가 차마 손을 들지 못하자 다시금 얼음장같은 목소리와 혹독한 표정으로 돌변한 길동애비가 무섭게 다그쳤다.
"어서. 큰 오빠 만세."
길동애비가 선창하자 그녀는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은채 손을 들어올렸다.
가죽쪼가리로 변할만큼 철저하게 무두질되던 그녀의 심장에 채석장의 돌처럼 정이 박혀 금이 가는것 같았다.
질 낮은 양아치에 불과했던 제자 놈이 이제 큰 오빠가 되었다.
"이 년아. 그래서야 만세하겠냐. 십세도 못하겠다. 다시 해봐. 큰 오빠 만세."
그녀가 다시 두 손을 들어올렸고 있는 힘껏 소리도 내라며 야단을 치는 길동애비의 재촉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굴욕적인 선창을 따라했다.
만세 동작으로 인해 팔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근육의 크기와 힘, 가느다랗지만 팽팽한 윗 팔의 생김새, 깨끗한 겨드랑이, 둥글고 좁은 어깨와 다소곳한 직선의 쇄골, 무엇보다 엷은 가슴근육의 수축과 이완으로 탄력있게 변하는 설탕으로 빚은 듯한 깔대기 모양의 정갈한 두 젖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길동애비는 만세를 부르고 서 있도록 시킨 후 그녀에게 다가가 젖을 양손으로 붙잡고 주무르며 크기와 촉감을 얘기했다.
"적당하네. 적당해. 요정도가 딱 좋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서양년들처럼 너무 큰 건 에이..그런거 좋으면 목장에 가야지. 젖소도 아니고. 이 년은 뭐랄까..아주 비율이 좋네요. 훈련만 시키면..정말 좋아질 겁니다. 우리 고객님 마음에 쏙 들거예요. 너, 이름이 뭐냐."
길동애비가 젖을 주무르며 물어보았다.
마른 상추처럼 고사되어가는 감정에 만세 부른 손이 꺾여졌다.
목이메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미..영..이요."
"응? 미영이?"
"네.."
그녀가 조그만 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성은? 성없어?"
"김..이요..김 미영.."
관중은 담배를 찾는지 휴대폰을 어깨에 끼고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호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때가 구조조정하는 기업들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회사들이 인기좋던 때였는데 뭐라더라..그래. 그래. 잘 아네. 리츠. 요샌 깡패들도 공부하나부다. 에이..씨발. 세상 참."
그는 일어서서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서랍을 열자 반 쯤 찬 담배갑이 나왔다.
"그래서 외국계 리츠가 하나 생겼는데 무슨 개발전문리츠라고 하던데..이름은 생각이 안나고. 근데 여기에 부동산 사기꾼들이 끼었던 거지. 채권단 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끌어내 가지고..한마디로 그 돈으로 구조조정할 부동산을 사들인거야. 자기네들은 돈 한푼 안들이고. 주식공모가 필요하지 않다는걸 최대한 이용한 거지. 근데 그게 워낙 액수가 큰 것들이라서..게다가 리츠란게 최소 설립금액만 백억이 넘어가잖아. 아무나 리츠하는 것도 아니고. 국토부나 금융위원회도 보고 있는건데. 근데도 그게 됐어. 그러니 희안하지. 그래서 다들 조용해진거야. 액수도 많이 걸린데다 관여된 기관이나 사람들이 많아서 함부로 터뜨릴 수가 없는거지."
그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첫모금을 아주 깊이 내뱉었다.
"근데 이 영감이 어디서 그걸 알아가지고 여기에 대출해 준 주채권단 은행 주총에 들어간거야. 몇 주 샀더라고. 주식을..그리구선 은행장 나오라고 난리를 피웠더구만. 하던 수법대로 한거지. 자기 입 막으려면 자기한테도 대출을 달라. 그렇게 나간거야."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냐,아냐. 우리가 수사한거 아냐. 이 리츠 건은 아무도 수사하지 못했어. 그냥 그대로 유지되다가 5년 후에 제대로 청산됐어. 그 사이에 먹을 놈은 다 먹었겠지. 어차피 세금으로 메꾸는 거잖아. 다 좋은 거지. 국민들이야 알 턱이 없고. 그 영감만 구속된 건데 그것도 우리가 수사한게 아니고."
그는 소파에 몸을 깊게 기대고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인조가죽 표면에 도포된 폴리머가 부슬부슬 벗겨진 밤색 랜드로바 프리웨이의 구두 뒤축이 한쪽 방향으로만 닳아 있었다.
"그 영감이 자수한거야. 그래. 처음 찾아왔을 때 뭐랄까..아주 똥줄이 탔더구만. 그렇지. 살려고 자수한거지, 살려고. 뻔하지. 어떤 놈인지 아주 잘 차려놓은 밥상인데 이 어설픈 영감이 숟가락을 놓으려고 했으니..아마 죽인다고 했겠지. 그래서 허겁지겁 온 거야. 지 발로. 응? 어떤 건이냐구? 그게 아마 성매매알선 처벌법으로 들어갔을 거야. 자기 포주했던 거. 그렇지. 은행 협박 건은 아니고. 그건 묻혔다니까. 그거였으면 기업협박이니까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이었겠지."
광길은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다시한번 되뇌였다.
김미영.
과거 한동안,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그의 성욕을 돋구고 수없이 자위행위를 불러오던 이름이었다.
잊을 수 없었던 이름. 잊을 수 없었던 성욕. 애증이 엇갈리던 잊을 수 없었던 육체.
그녀의 이름과 몸은 그에게는 욕망 그 자체였다.
이제 그녀가 사로잡힌 카나리아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욕망이 뜨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다시금 눈을 떴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좀 전까지 즐기던 그녀의 구멍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축축하고 은밀하고 음란한 곳, 24시간 내내 꺼내놓고 순두부처럼 으깨주고 싶은 곳. 그곳을 잡고 만 있으면 그녀를 소유했다는 증거가 되는 곳.
그 곳을 학대할수록 느껴지던 통제불능의 만족감이 그를 덮쳐왔다.
그는 묵직한 아랫도리를 의식했다.
그녀를 살피는 도중에도 광길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던 길동애비는 귀신같이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혈관에 피도 안 돌거 같은 놈이..좀 열이 났네. 더 오르게 해줄까.
그는 젖을 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계집 데려가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기도 하고 이참에 한번 태워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재빠르게 결정을 내린 그가 쥐었던 젖을 풀었다.
"그래요, 형. 고마워요. 예, 그럼요, 잘 알지. 술이나 같이 해. 제가 연락할께요. 예, 들어가세요."
대충 이야기를 다 들은 수찬은 조용히 종료버튼을 눌렀다.
문제의 리츠 사기 건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뭔가 피해가 발생하고 법적인 문제가 생겨야 비로서 사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건은 그러한 직접적인 피해를 어느 곳에서도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세금이 살포되며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세금이야 주인없는 돈 아니었던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기가 승화한 예술이지..수찬은 강해 보이는 각진 턱을 주억거렸다.
그는 이런 식으로 그 사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리츠에 끼어들어간 부동산 사기꾼들이 바로 자기네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팀에 속해 부분적으로나마 일의 성공에 기여를 한 바 있었는데 그의 팀이 한 일은 리츠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자기네들끼리 차액보전이라고 부르는 짓이었다.
말하자면 돈이 필요한 회사에 잠깐 동안 모자란 만큼의 금액을 주어 위기를 넘기게 하고 대신 그에 해당하는 다른 댓가를 받아내는 것이었는데 이게 일반적인 차입과 다른 점은 진짜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것처럼 보이게만 한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었지만 수찬의 팀이 하던 수법은 주로 차명계좌를 백여개 가량 왕창 늘려서 자본금이 충당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사채를 끌던 자기 돈을 박던 준비된 일정 정도의 돈은 그 계좌 사이를 쉬지않고 돌아다니며 설립에 필요한 최저자본금이 완성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따라서 이 부실한 뼈대를 오랜 시간 세워둘 수는 없고 숏펀치를 내고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단타로 치고 빠져야 되는데 그러려니 언제 이 짓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했다.
아주 중요한 순간, 예를 들어 감사기관의 감사가 들어오면 바로 그때가 팀이 솜씨를 보일 타이밍인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스미스인터내셔널이었다.
이 곳은 당시 리츠를 인가받았던 회사였는데 영국에 본사를 둔 스미스뱅크 리미티드라는 금융그룹이 각 나라에 문어발처럼 늘려놓은 펀드운영 회사 중 하나였다.
애초에 이 빌어먹을 회사는 금융후진국에 펀드를 운영해서 부를 분배한다던가 아니면 그 나라 국민 경제에 기여한다던가 하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단지 금융거래관행이나 해당법률의 맹점을 이용해서 수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야말로 수찬의 회사와는 강력접착제보다도 더 끈끈하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던 것이다.
스미스인터내셔널은 우선 최초 설립인가에 필요한 설립자본금 10억만 준비하고 6개월 후 충당되어야 할 최저자본금 100억 중 차액 90억의 마련을 수찬의 회사에 맡겼다.
수찬의 회사는 국토부와 금융위를 드나들며 감사의 방법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시기를 늦추며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다가 실적을 제시해야 할 순간에 그들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가짜 계좌들을 딸랑거리며 죽어라 들이밀다가 위기의 순간이 넘어가면 계좌들의 돈은 차례대로 빼내 회수하고 차액 90억에 대한 댓가는 상응하는 주식으로 받아 수고비를 배당금으로 챙기는 것이니 말그대로 차액이 보전된 셈이었다.
수찬의 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설립을 막아주는 동안 스미스인터내셔널은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헐값에 나오긴 했으나 어쨌든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부동산을 인수해야 하는데 인수자금이 없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주식 공모를 한 것도 아니고 수찬의 회사가 끼워넣은 가짜 자본금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다른 방식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것이 채권단 은행으로부터 끌어낸 불법대출이었다.
자기 자본금을 사용하지 않고 대출로 부동산을 인수하려 하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될 리가 없었다.
따라서 주채권 은행과 리츠사의 커넥션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퍼낸 불법대출금으로 해당 부동산을 인수했는데 관중의 말마따나 빚진 놈 물건을 다른 빚으로 삼킨 것이어서 실제로 스미스인터내셔널은 최초 10억원을 제외하면 이 프로젝트에 돈 한푼 들이지 않은 것이었다.
그나마 그 10억원은 리츠가 성공적으로 청산되면 회수되는 것이고 구조조정으로 나온 부동산이라는 게 워낙 헐값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서 안정기를 거치고 제대로 된 가치로 매각한 수익은 엄청난 것이어서 스미스인터내셔널로서는 빈손으로 와서 돈을 싸짊어지고 나갔다고 보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게다가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각종 세제 혜택을 본 데다 매각 전까지 해당 부동산을 운영하는 동안 구조조정 기업 그러니까 원주인한테 이 부동산을 재임대하여 임대수익을 톡톡히 올렸으므로 3중,4중의 이익을 거두어갔다.
"미영이라고 했지? 그래, 미영아."
길동애비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저기 저 오빠 보이지? 니가 만세부른 큰 오빠."
그녀가 멍한 시선으로 그와 광길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부터 큰 오빠 무릎위에 올라가서 오빠 거시기 한번 타보는거야. 알았지?"
그녀는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몰라 그를 쳐다보았다.
광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표정에서 길동애비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거시기 타는거 몰라? 아, 이 년. 정말."
길동애비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내들의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손님인지라 광길을 향해 성기를 가리키는 비속어를 쓸 수 없어 자기 딴에는 유화적인 표현을 한 것이었으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에게 짜증이 나려했다.
"이 년아. 니 씹질 좀 보자고. 어느 정도 하는지 알아야 할거 아냐. 저기 저 오빠가 니 서방님이시니 기둥 좀 타서 즐겁게 해 드리라고. 니 솜씨도 좀 보여주고. 알았어?"
하지만 수찬은 이 사건에 길동애비가 연관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약 길동애비를 솎아낸 것이 회사였다면 그건 보나마나 광길네 팀이 주도했을 것이다.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보스가 신임하는 청소부들이니까.
하여튼 좆나게 비밀스러워.
수찬은 회사의 운영방식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수찬이 정말 궁금한 점은 왜 아직도 그들이 만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길동애비는 분명 처리대상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다 수찬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 생각이 미쳤다.
보스는 길동애비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했을까.
살리라고 했을까. 보스성격에?
죽이라고 했으면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는 뭘까.
광길네 팀이 실패한건가. 그가 경찰한테 도망가서?
아니면..광길이 살려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아직도 그들이 만나고 있는게 이해가 됐다.
가능성이 있다. 충분히.
수찬은 이 건을 잘만 쓰면 광길이를 완전히 물먹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길동애비를 직접 추적해야 하는건 아닌지 생각하며 녀석이 대기하고 있는 차 쪽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운전솜씨는 녀석을 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손엔 몸체를 한바퀴 둘러 정중앙에서 잠글 수 있도록 금속 클램프를 달아놓은 고동색 손가방이 하나 들려있었다.
계단통로 바닥이 거칠거칠한게 다듬질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안 좋은 다리가 더 끌리는 느낌이다.
벌써부터 달궈진 양계장 안에 들어온 것 같이 더웠다.
계단참 주변이 휴대폰 불빛에 희미하게 밝혀지며 넘어서면 안될 금지구역처럼 굳게 닫혀있는 철문의 손잡이가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댔다.
"아, 나예요. 나. 문앞이요. 예,예.."
철컥이며 잠겼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고 손잡이가 돌아갔다.
문을 열고 내다 본 것은 사각이마였다.
?은 그의 머리가 길동애비를 확인하고는 들어오라는 뜻으로 보일듯 말듯 끄덕이며 뒤로 사라졌다.
길동애비가 지하실에 들어섰을 때 제일 처음 본 것은 벌거벗은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치질검사를 받는 것처럼 자기 손으로 엉덩이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광길은 길동애비가 들어오는 철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공개한 엉덩이를 광길의 앞에 올려놓아 전적으로 그의 처분에 맡기고 있었다.
광길은 통통배의 낡은 선외기 엔진이 자체 스트로크에 못이겨 200마력의 힘으로 요동치듯 자기 앞에 끌어다 놓은 가랑이 사이에 꽂은 손을 위 아래로 진동시키며 탈탈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발끝으로 서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신발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알몸에 신발이라..시간이 흘러도 그 취향은 여전했다.
무덤덤한 그의 눈이 길동애비를 쳐다보았다.
"정정하시네."
후레자식. 어린 놈이..공경심은 손톱의 때만큼도 없다.
손도끼라도 있으면 파이우테족 전사처럼 저 골통으로 던져 꽂아넣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표독스런 쌍판은 더 살벌해졌구만. 그나저나 이게 무슨 냄새야.
길동애비는 속으로 몸서리를 쳤지만 겉으로는 반가운 척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우리 큰 고객. 또 불러줘서 고맙구만."
길동애비는 인사를 하며 실내를 돌아보았다.
분위기가 좀 묘했다.
듬성듬성 서있는 남자 여섯.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아 황량하기 짝이없는 콘크리트 나벽들. 닥트가 드러난 천정과 군데군데 밝혀놓아 전체적으로 그늘 속에 갇혀있는 듯한 조명. 구석 배수시설엔 뭔가 물청소를 한 거같이 질퍽하게 물이 고여있었고 무엇보다 냄새가 지독했다.
역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 물론 이건 길동애비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냄새였다.
설마 이 새끼들이 여기서 돼지를 잡았을리는 없고.
길동애비는 유심히 사내들의 눈을 쳐다보았다.
비정상적으로 번들거리며 열에 들떠 있는 것이 과거에 자신도 써보았던 메타돈 따위의 뽕가루를 맞았을 때나 볼 수 있는 눈들이었다.
이 놈들이 모두 중독자가 아니라면 이것은 자기제어를 못하고 피에 취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맛이 갔군.
길동애비는 입맛을 다셨다.
빨리 끝내고 나가야지 오래 잡혀 있다간 험한 꼴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동애비는 광길에게 희롱 당하고 있는 여자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이게 재료인가 봅니다."
광길은 아무 말 없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는 탈탈 털어대던 손을 멈추고 손장난을 시작했다.
여자의 구멍 속으로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집어넣고 은근하게 쑤시면서 엄지는 음부의 위쪽 클리토리스 부위를 문질렀다.
연약하고 좁은 살들이 멋도 모르고 그의 손가락에 감겨왔다.
음부 안 쪽과 바깥쪽을 더군다나 아주 민감한 음핵의 안팎을 집게발로 집고 있는 형상이어서 당하는 여자 쪽에서는 매우 고통스러울게 분명했다.
가까이에서 본 여자의 항문주변과 생식기 샅두덩에는 그녀에게서 울궈낸 애액이 에센스 크림처럼 펴발라져 있었다.
여자는 흐느끼다가 간헐적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계집 이런 경험은 처음이렷다.
상대적으로 짧은 상체와 긴 하체, 군살 없이 말린 허리, 탄력있게 융기한 엉덩이, 가는 팔과 근육을 잘 가린 피하지방 때문에 옹골진 곳 없이 뻗은 다리하며..허리를 굽히고 있었지만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만큼 뛰어난 몸매였다.
"어때? 영감님. 재료 쓸만한가?"
그녀를 살피는 길동애비에게 그가 말을 건넸다.
길동애비는 턱을 쓰다듬었다.
"좋아뵈긴 하는데..어디 한번 자세히 봐도 되겠는가요?"
그가 그녀의 구멍에서 천천히 손을 빼더니 그녀가 벌리고 있던 항문과 그 주위에 손가락에 묻은 애액을 처덕처덕 바르며 닦아냈다.
"좋으실 대로."
"그럼.."
길동애비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어디.."
그는 다짜고짜 숙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더니 불쑥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아픈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이 년이 어디서 소리를."
싱글대며 가식적인 웃음을 가득 띄우던 길동애비의 얼굴이 먹이를 자르려는 사마귀처럼 변하면서 무쇠라도 씹을 듯한 기세로 호통을 쳤다.
그녀는 순간 몸이 얼었다.
이 사람은 또 누구지.
"예,형님. 접니다. 오늘 미팅에 좀 늦을거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예,예..아뇨, 다른 일이 아니라..광길이네 좀 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요. 예..좀 더 보다 가려구요."
수찬은 편의점 카운터 쪽을 힐끗 보고는 전화기를 다른 손으로 옮겨 잡았다.
편의점 알바는 고개를 숙이고 잡지를 읽는 중이었다.
수찬은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
"형님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는데..길동애비라고 예전에..예,예. 그 영감이 광길이랑 연결돼 있는 거 같습니다..뭐, 이유야 한가지 밖에 더 있겠나 싶습니다..그렇죠. 워낙 여자 잡는 짓은 당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오죽하면 조련사라고들 했겠습니까."
수찬은 말을 끊고 잠시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 저도 그렇게 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그럼 얘네들 마저 나가는 거 보고 올라가겠습니다. 예."
수찬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잠시 내려다 보다가 곧 다른 번호를 연결시켰다.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이 자의 몸에 걸치면 삼류 배우의 궁색한 장신구가 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늙은이였다.
만져보진 않았지만 모조는 아닐 것 같은 밍크베스트도 순금의 무딘 광채가 빛나는 두꺼운 금반지와 올가미에 걸린 건지 멋으로 건 건지 모를 정도로 치렁치렁 목에 감아놓은 금 목걸이도 그녀라면 아령대신 써도 될 만큼 무거워 보이는 저 금딱지 시계도 죄다 그의 몸 이곳저곳에서 하품이 날 만큼 처량하게 늘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는 지나치게 금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보이는 이빨에는 적어도 대여섯개 정도의 골든크라운이 씌워져 있었고 안경 역시 금테인데다 둥근 콧등에 검은 피지를 잔뜩 박은 채 시종일관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얼굴도 누런 금색이었다.
어쩌면 저 케브라 원단의 트레킹용 반바지에 떡하니 끼워놓은 못난이 혁대, 저 네모난 버클도 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자가 그녀에게는 이상한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이 살인자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수없이 개를 때려잡아본 개장수를 보는 강아지나 솜씨좋은 땅꾼에게 걸린 뱀 혹은 도끼를 든 백정 앞에 끌려온 소처럼 천적관계의 포식자를 알아보는 피식자의 본능이 주는 두려움이었다.
광길은 옆에서 이들의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이 길동애비 앞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을 질릴 만큼 보아왔다.
희안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처음엔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어 무슨 속임수를 쓰는 것인가 의심도 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여자들과 길동애비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능력이 아마 수십년간 포주를 하며 여자를 후리던 경험이 만들어낸 설명하기 힘든 권위의 일종일 거라고 여겼다.
당장 이 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이 이미 그녀를 물먹은 한지처럼 나긋나긋하게 풀어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길동애비의 말을 듣는 그녀의 모습엔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처연함마저 보이는 것이었다.
다른 면에 있어서 이 영감은 어릿광대 사기꾼에 불과하지만 여자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라는 것을 그는 부인할 수 없었다.
광길은 이 점을 높이 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 늙은이의 목을 땄을 것이다.
후리후리한 키의 그녀는 땅달막한 길동애비를 내려다 보았으나 곧 주눅이 들어 시선을 그의 발밑으로 떨어뜨렸다.
반면 기름진 그의 시선은 그녀가 홍로처럼 빨갛게 익을만큼 온 몸 구석구석을 천천히 뜯어보고 있었다.
눈물 범벅이 되어 떨고 있었으나 서릿발같이 시원한 눈매와 곱게 솟은 콧날, 많은 웃음을 담고 살았을 붉고 도톰한 입술, 아직도 젖내가 날 듯한 뺨과 갸날프게 붓질한 듯한 턱선을 보며 길동애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년 얼굴도 예쁘네..
"손 내리고 똑바로 서거라."
사무적이고도 위압적인 소리였다.
그녀는 이미 자포자기된 상태였으나 오싹거릴 정도로 엄습하는 겁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이 기분은 불안 같은 것이었으며 그게 맞다면 경외에 가까운 불안이었다.
쥐나 개구리가 어디서 자기를 주시하는 눈이 있는지 몰라 어둠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불안이었고 저 담 모퉁이까지 가면 살 수 있는데 여기서 발을 떼는 순간 노리고 있던 저격수의 총알이 자신을 직격하리라는 걸 느끼는 전투원의 사선에 선 예감같은 공포였다.
그 자에게는 그녀로 하여금 남자를 상대하는 여자의 어떤 가면이나 자기방어에 쓰는 여자의 어떤 전략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무의식 중에 갖게 만드는 노련함이 있었고 또 여자의 고통을 속속들이 알고 그것을 철저히 이용하는 카리스마 비슷한 것도 보였다.
한마디로 그것은 두렵고 불안한 기세였으며 시선과 태도,명령 한 마디가 일으키는 확고부동한 분위기였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당연히 해야하는 일을 시키는 것처럼 그녀에게 지시했고 완전히 기가 꺾인 채 그녀는 그 지시를 따랐다.
그녀는 어렴풋이 아까 광길이 언급한 교육 나부랭이가 이 자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싸구려 흰 면 셔츠와 투턱 주름을 넣은 남색 캐주얼 정장바지 차림의 중년 남성이 비좁은 상가 3층에 끼어있는 허름한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사무실 문엔 증거전문 조사기관 DOT 컨설팅이라는 아크릴 간판이 붙어있었다.
"여보세요."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의외라는 듯 외쳤다.
"수찬이? 정수찬이? 이야..오랫만이네. 어쩐일이냐? 나? 나야 뭐 하던 일이 그런 일이라..어쩔 수 없이 또 이 바닥에 있지,뭐."
사무실 안은 중년 남성이 직접 사용하는 사무용 책상 하나와 온갖 잡동사니를 쳐넣어두는 철제 사물함이 두 개, 그리고 상담할 손님이 왔을 때 앉을 수 있도록 낡아빠진 소파와 탁자가 기역자로 구겨 넣어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대표 이 관중이라고 적혀진 검은 색 명판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뭐..그래도 경찰 일 할 때가 좋았지. 힘은 들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잖아. 너같은 새끼도 잡아넣고.."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컨설팅? 씨발, 요샌 그렇게 써줘야돼. 하다못해 구멍가게를 해도 영어가 들어가야 사람들이 봐준다니까. 말이 컨설팅이지, 흥신소 아니겠냐. 넌 어떠냐? 아, 그래..여전히? 미친 놈, 알아서 잘 하겠지만 임마, 웬만하면..너 이번에 또 들어가면 쉽게 못 나온다. 흥..놀구 있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빈 사무실을 휘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데..뭔 일이고? 전화를 다하고."
말을 듣는 그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
"길동애비? 알지. 아직 경찰 그만두기 전이었으니까..좀 됐는데."
그는 한숨을 쉬며 눈 밑을 긁적였다.
"뭘 알고 싶은데? 왜 들어갔냐고? 아..이 새끼,이거. 공짜로?"
그는 다시 키득거렸다.
"알았다, 알았어. 음..내가 알기론..그 포주 영감 막판에 부동산에 손을 댔어. 그렇지, 직종변경이라기 보다는 사업확장을 한거지. 그러구 한참 재미를 봤어. 주총까지 들어가서 총회꾼 노릇도 했거든. 부동산 회사들 있잖아. 응..별 짓 다한거지. 그러다가 똥을 밟았어. 제대로."
길동애비는 산출물의 품질을 살펴보는 청과물 경매사처럼 그녀의 팔을 벌려보라고 시키거나 제자리에서 뜀을 시켜보기도 하고 옆으로 뒤로 돌려보기도 하며 감춰진 육체의 여러 비밀스런 부위와 여성스런 균형들을 낱낱이 관찰했다.
그녀는 그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동작을 취하면서 이미 벗은 몸이 또 한번 발가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것이 정적인 방식으로 사진처럼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순간순간 몸이 취할 수 있는 여러 상태에서 그녀의 치부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를 다이내믹하게 까 보이는 것이었다.
나체로 움직이는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었으나 그녀에게는이런 식으로 자신의 매력이 노출되는 것이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손을 죽 올려봐. 만세 하는 것처럼."
그는 무용강사가 주의를 환기시키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녀가 지친 팔을 들어올렸다.
"그게 무슨 만세야. 만세도 못해봤나, 이 년이."
길동애비는 혀를 차며 그녀를 나무랬다.
"만세 한번 불러볼테야? 응?..그래, 만세 불러봐야 쓰겠구만. 저기 저 분이 니 물주니까..허..뭐라고 할까? 음?.. 저, 우리 큰 고객님. 이 년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길동애비는 보물을 눈 앞에 둔 해적처럼 두터운 입술을 크게 벌리며 광길에게 물었다.
광길은 잔혹한 눈가에 웃음을 걸고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한때 선생이었던 여자에게 뒤바뀐 처지를 잘 각인시켜줄 호칭을 궁리하는 중이었다.
"오빠? 큰 오빠?..큰 오빠가 좋겠네. 여기 오빠는 여러 명 있으니까. 큰 오빠로 하지."
"좋습니다. 들었지? 이 년아. 큰 오빠 만세 하면서 만세부르는 거야. 자 시작."
사내들이 낄낄거렸다.
그녀가 차마 손을 들지 못하자 다시금 얼음장같은 목소리와 혹독한 표정으로 돌변한 길동애비가 무섭게 다그쳤다.
"어서. 큰 오빠 만세."
길동애비가 선창하자 그녀는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은채 손을 들어올렸다.
가죽쪼가리로 변할만큼 철저하게 무두질되던 그녀의 심장에 채석장의 돌처럼 정이 박혀 금이 가는것 같았다.
질 낮은 양아치에 불과했던 제자 놈이 이제 큰 오빠가 되었다.
"이 년아. 그래서야 만세하겠냐. 십세도 못하겠다. 다시 해봐. 큰 오빠 만세."
그녀가 다시 두 손을 들어올렸고 있는 힘껏 소리도 내라며 야단을 치는 길동애비의 재촉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굴욕적인 선창을 따라했다.
만세 동작으로 인해 팔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근육의 크기와 힘, 가느다랗지만 팽팽한 윗 팔의 생김새, 깨끗한 겨드랑이, 둥글고 좁은 어깨와 다소곳한 직선의 쇄골, 무엇보다 엷은 가슴근육의 수축과 이완으로 탄력있게 변하는 설탕으로 빚은 듯한 깔대기 모양의 정갈한 두 젖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길동애비는 만세를 부르고 서 있도록 시킨 후 그녀에게 다가가 젖을 양손으로 붙잡고 주무르며 크기와 촉감을 얘기했다.
"적당하네. 적당해. 요정도가 딱 좋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서양년들처럼 너무 큰 건 에이..그런거 좋으면 목장에 가야지. 젖소도 아니고. 이 년은 뭐랄까..아주 비율이 좋네요. 훈련만 시키면..정말 좋아질 겁니다. 우리 고객님 마음에 쏙 들거예요. 너, 이름이 뭐냐."
길동애비가 젖을 주무르며 물어보았다.
마른 상추처럼 고사되어가는 감정에 만세 부른 손이 꺾여졌다.
목이메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미..영..이요."
"응? 미영이?"
"네.."
그녀가 조그만 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성은? 성없어?"
"김..이요..김 미영.."
관중은 담배를 찾는지 휴대폰을 어깨에 끼고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호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때가 구조조정하는 기업들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회사들이 인기좋던 때였는데 뭐라더라..그래. 그래. 잘 아네. 리츠. 요샌 깡패들도 공부하나부다. 에이..씨발. 세상 참."
그는 일어서서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서랍을 열자 반 쯤 찬 담배갑이 나왔다.
"그래서 외국계 리츠가 하나 생겼는데 무슨 개발전문리츠라고 하던데..이름은 생각이 안나고. 근데 여기에 부동산 사기꾼들이 끼었던 거지. 채권단 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끌어내 가지고..한마디로 그 돈으로 구조조정할 부동산을 사들인거야. 자기네들은 돈 한푼 안들이고. 주식공모가 필요하지 않다는걸 최대한 이용한 거지. 근데 그게 워낙 액수가 큰 것들이라서..게다가 리츠란게 최소 설립금액만 백억이 넘어가잖아. 아무나 리츠하는 것도 아니고. 국토부나 금융위원회도 보고 있는건데. 근데도 그게 됐어. 그러니 희안하지. 그래서 다들 조용해진거야. 액수도 많이 걸린데다 관여된 기관이나 사람들이 많아서 함부로 터뜨릴 수가 없는거지."
그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첫모금을 아주 깊이 내뱉었다.
"근데 이 영감이 어디서 그걸 알아가지고 여기에 대출해 준 주채권단 은행 주총에 들어간거야. 몇 주 샀더라고. 주식을..그리구선 은행장 나오라고 난리를 피웠더구만. 하던 수법대로 한거지. 자기 입 막으려면 자기한테도 대출을 달라. 그렇게 나간거야."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냐,아냐. 우리가 수사한거 아냐. 이 리츠 건은 아무도 수사하지 못했어. 그냥 그대로 유지되다가 5년 후에 제대로 청산됐어. 그 사이에 먹을 놈은 다 먹었겠지. 어차피 세금으로 메꾸는 거잖아. 다 좋은 거지. 국민들이야 알 턱이 없고. 그 영감만 구속된 건데 그것도 우리가 수사한게 아니고."
그는 소파에 몸을 깊게 기대고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인조가죽 표면에 도포된 폴리머가 부슬부슬 벗겨진 밤색 랜드로바 프리웨이의 구두 뒤축이 한쪽 방향으로만 닳아 있었다.
"그 영감이 자수한거야. 그래. 처음 찾아왔을 때 뭐랄까..아주 똥줄이 탔더구만. 그렇지. 살려고 자수한거지, 살려고. 뻔하지. 어떤 놈인지 아주 잘 차려놓은 밥상인데 이 어설픈 영감이 숟가락을 놓으려고 했으니..아마 죽인다고 했겠지. 그래서 허겁지겁 온 거야. 지 발로. 응? 어떤 건이냐구? 그게 아마 성매매알선 처벌법으로 들어갔을 거야. 자기 포주했던 거. 그렇지. 은행 협박 건은 아니고. 그건 묻혔다니까. 그거였으면 기업협박이니까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이었겠지."
광길은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다시한번 되뇌였다.
김미영.
과거 한동안,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그의 성욕을 돋구고 수없이 자위행위를 불러오던 이름이었다.
잊을 수 없었던 이름. 잊을 수 없었던 성욕. 애증이 엇갈리던 잊을 수 없었던 육체.
그녀의 이름과 몸은 그에게는 욕망 그 자체였다.
이제 그녀가 사로잡힌 카나리아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욕망이 뜨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다시금 눈을 떴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좀 전까지 즐기던 그녀의 구멍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축축하고 은밀하고 음란한 곳, 24시간 내내 꺼내놓고 순두부처럼 으깨주고 싶은 곳. 그곳을 잡고 만 있으면 그녀를 소유했다는 증거가 되는 곳.
그 곳을 학대할수록 느껴지던 통제불능의 만족감이 그를 덮쳐왔다.
그는 묵직한 아랫도리를 의식했다.
그녀를 살피는 도중에도 광길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던 길동애비는 귀신같이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혈관에 피도 안 돌거 같은 놈이..좀 열이 났네. 더 오르게 해줄까.
그는 젖을 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계집 데려가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기도 하고 이참에 한번 태워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재빠르게 결정을 내린 그가 쥐었던 젖을 풀었다.
"그래요, 형. 고마워요. 예, 그럼요, 잘 알지. 술이나 같이 해. 제가 연락할께요. 예, 들어가세요."
대충 이야기를 다 들은 수찬은 조용히 종료버튼을 눌렀다.
문제의 리츠 사기 건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뭔가 피해가 발생하고 법적인 문제가 생겨야 비로서 사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건은 그러한 직접적인 피해를 어느 곳에서도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세금이 살포되며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세금이야 주인없는 돈 아니었던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기가 승화한 예술이지..수찬은 강해 보이는 각진 턱을 주억거렸다.
그는 이런 식으로 그 사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리츠에 끼어들어간 부동산 사기꾼들이 바로 자기네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팀에 속해 부분적으로나마 일의 성공에 기여를 한 바 있었는데 그의 팀이 한 일은 리츠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자기네들끼리 차액보전이라고 부르는 짓이었다.
말하자면 돈이 필요한 회사에 잠깐 동안 모자란 만큼의 금액을 주어 위기를 넘기게 하고 대신 그에 해당하는 다른 댓가를 받아내는 것이었는데 이게 일반적인 차입과 다른 점은 진짜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것처럼 보이게만 한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었지만 수찬의 팀이 하던 수법은 주로 차명계좌를 백여개 가량 왕창 늘려서 자본금이 충당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사채를 끌던 자기 돈을 박던 준비된 일정 정도의 돈은 그 계좌 사이를 쉬지않고 돌아다니며 설립에 필요한 최저자본금이 완성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따라서 이 부실한 뼈대를 오랜 시간 세워둘 수는 없고 숏펀치를 내고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단타로 치고 빠져야 되는데 그러려니 언제 이 짓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했다.
아주 중요한 순간, 예를 들어 감사기관의 감사가 들어오면 바로 그때가 팀이 솜씨를 보일 타이밍인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스미스인터내셔널이었다.
이 곳은 당시 리츠를 인가받았던 회사였는데 영국에 본사를 둔 스미스뱅크 리미티드라는 금융그룹이 각 나라에 문어발처럼 늘려놓은 펀드운영 회사 중 하나였다.
애초에 이 빌어먹을 회사는 금융후진국에 펀드를 운영해서 부를 분배한다던가 아니면 그 나라 국민 경제에 기여한다던가 하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단지 금융거래관행이나 해당법률의 맹점을 이용해서 수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야말로 수찬의 회사와는 강력접착제보다도 더 끈끈하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던 것이다.
스미스인터내셔널은 우선 최초 설립인가에 필요한 설립자본금 10억만 준비하고 6개월 후 충당되어야 할 최저자본금 100억 중 차액 90억의 마련을 수찬의 회사에 맡겼다.
수찬의 회사는 국토부와 금융위를 드나들며 감사의 방법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시기를 늦추며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다가 실적을 제시해야 할 순간에 그들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가짜 계좌들을 딸랑거리며 죽어라 들이밀다가 위기의 순간이 넘어가면 계좌들의 돈은 차례대로 빼내 회수하고 차액 90억에 대한 댓가는 상응하는 주식으로 받아 수고비를 배당금으로 챙기는 것이니 말그대로 차액이 보전된 셈이었다.
수찬의 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설립을 막아주는 동안 스미스인터내셔널은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헐값에 나오긴 했으나 어쨌든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부동산을 인수해야 하는데 인수자금이 없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주식 공모를 한 것도 아니고 수찬의 회사가 끼워넣은 가짜 자본금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다른 방식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것이 채권단 은행으로부터 끌어낸 불법대출이었다.
자기 자본금을 사용하지 않고 대출로 부동산을 인수하려 하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될 리가 없었다.
따라서 주채권 은행과 리츠사의 커넥션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퍼낸 불법대출금으로 해당 부동산을 인수했는데 관중의 말마따나 빚진 놈 물건을 다른 빚으로 삼킨 것이어서 실제로 스미스인터내셔널은 최초 10억원을 제외하면 이 프로젝트에 돈 한푼 들이지 않은 것이었다.
그나마 그 10억원은 리츠가 성공적으로 청산되면 회수되는 것이고 구조조정으로 나온 부동산이라는 게 워낙 헐값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서 안정기를 거치고 제대로 된 가치로 매각한 수익은 엄청난 것이어서 스미스인터내셔널로서는 빈손으로 와서 돈을 싸짊어지고 나갔다고 보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게다가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각종 세제 혜택을 본 데다 매각 전까지 해당 부동산을 운영하는 동안 구조조정 기업 그러니까 원주인한테 이 부동산을 재임대하여 임대수익을 톡톡히 올렸으므로 3중,4중의 이익을 거두어갔다.
"미영이라고 했지? 그래, 미영아."
길동애비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저기 저 오빠 보이지? 니가 만세부른 큰 오빠."
그녀가 멍한 시선으로 그와 광길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부터 큰 오빠 무릎위에 올라가서 오빠 거시기 한번 타보는거야. 알았지?"
그녀는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몰라 그를 쳐다보았다.
광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표정에서 길동애비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거시기 타는거 몰라? 아, 이 년. 정말."
길동애비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내들의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손님인지라 광길을 향해 성기를 가리키는 비속어를 쓸 수 없어 자기 딴에는 유화적인 표현을 한 것이었으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에게 짜증이 나려했다.
"이 년아. 니 씹질 좀 보자고. 어느 정도 하는지 알아야 할거 아냐. 저기 저 오빠가 니 서방님이시니 기둥 좀 타서 즐겁게 해 드리라고. 니 솜씨도 좀 보여주고. 알았어?"
하지만 수찬은 이 사건에 길동애비가 연관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약 길동애비를 솎아낸 것이 회사였다면 그건 보나마나 광길네 팀이 주도했을 것이다.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보스가 신임하는 청소부들이니까.
하여튼 좆나게 비밀스러워.
수찬은 회사의 운영방식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수찬이 정말 궁금한 점은 왜 아직도 그들이 만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길동애비는 분명 처리대상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다 수찬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 생각이 미쳤다.
보스는 길동애비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했을까.
살리라고 했을까. 보스성격에?
죽이라고 했으면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는 뭘까.
광길네 팀이 실패한건가. 그가 경찰한테 도망가서?
아니면..광길이 살려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아직도 그들이 만나고 있는게 이해가 됐다.
가능성이 있다. 충분히.
수찬은 이 건을 잘만 쓰면 광길이를 완전히 물먹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길동애비를 직접 추적해야 하는건 아닌지 생각하며 녀석이 대기하고 있는 차 쪽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운전솜씨는 녀석을 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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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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