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에 햇볕은 따가웠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다. 가로수 밑을 지나고 있는 리드미컬한 발걸음을 옮기는 여인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간다. 그녀는 모델로서 오랜 무영생활을 하고 있는 남규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미모와 몸매를 지니고 있기에 여고를 졸업하고 연예인에 대한 꿈에 부풀어 서울로 올라 온지도 10년 가까이 되었다.
오랫동안 트레이닝을 하며 고생을 하였지만 그동안 그녀를 캐스팅해주는 기획사도 후원자도 없었다. 생활비를 벌려고 요정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요정에서 안기부의 나이든 간부 최재인을 후원자로 만나게 되었다. 안기부 직원이라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기관이고 두려워한다. 최재인이 그녀의 꿈을 달성시켜 준다고 하여서 희망에 부풀었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예인 진출을 후원해 준다는 약속과 거주할 수 있는 저택도 제공 받는 조건으로 남규리는 최재인의 내연녀가 되었다. 저택이라고 하지만 별장이나 다름이 없다. 그녀는 제공받은 별장에서 최재인과 정기적으로 은밀하게 만난다. 몇 번인가 최재인이 섭외해준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캐스팅해주는 기획사는 아직 없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최재인의 내연녀가 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아직 그녀 자신의 꿈을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인생이 초라해지기에 포기하기도 늦었고,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타이트한 블라우스와 스커트가 남규리의 볼륨 있는 몸매를 한결 돋보여서 아직은 사람들의 시선을 향하게 한다. 그렇잖아도 볼륨 있는 몸매를 더욱 섹시하게 보이려고 그녀는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걷는다. 며칠 전에 그녀는 오디션을 받아 보라는 기획사의 연락을 받았었다. 이름도 없는 기획사여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렸다가 나오는 길이다. 기획사에 들려보니 탐탁지 않았고 오디션의 결과가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조금 전 기획사를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사내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인식하고 있었다. 안경을 끼고 양쪽 어깨에 사진기와 가방을 메었지만 핸섬한 사내였다. 그녀는 사내가 예술을 하는 사진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유명 여자 연예인이 사진작가에게 캐스팅되어 스타덤에 올랐다는 매스컴을 떠올린다.
사내를 의식한 그녀가 잠시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오던 사내가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 어, 아가씨, 잠간만 실례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못들은 척 계속 걸어간다. 되도록 도도해 보이고 능력 있는 모델로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힐끔 뒤돌아보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 그녀를 부르며 따라오는 사내는 강민우였다. 강민우는 전재민의 내연녀 남규리에게 직접 접근하려고 안경을 끼고 사진기를 메고 사진작가처럼 꾸민 것이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말 좀 물어 봅시다.”
“전 바쁜 사람이에요.”
남규리는 강민우를 무시하듯이 대답만 하고 걸어간다. 보통 사람들은 안중에 없는 그녀는 능력 있는 모델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강민우는 그녀 곁에 바짝 다가서서 보조를 맞추어 걸음을 옮긴다.
“혹시 모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진미영도 제가 캐스팅 했는데, 아가씨 이미지가 개성적이고 좋군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바싹 따라오는 사내의 말에 남규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나 진미영이라면 사진 모델을 통해 연예인이 된 대표적인 여배우이기에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녀는 사내를 유심히 살핀다. 강민우는 일단 남규리의 마음을 동요하게 하여 접근에 성공한 것에 안도를 한다.
“혹시 모델이 되고 싶지 않으시냐고 했습니다.”
“괜히 사람 놀리지 마세요.”
남규리는 우월감을 나타내려고 되도록 차갑게 느끼는 말투를 흘린다. 호기심을 느끼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의 관심을 더욱 유발하는 요령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민우는 이미 그녀가 무명의 모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도도한 표정 속에는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을 감지한다.
“농담이 아닙니다. 나 역시 바쁜 사람인데, 아가씨한테 농담하고 다니겠습니까?”
“그럼, 정말이에요?”
“난 사진작가입니다.”
“........!”
강민우가 어깨에 멘 가방의 자크를 열고 명함을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남규리는 명함을 받아 읽었다. 한문과 영어로 된 명함이었다. 성(性)이 진(陳)씨라는 것밖에는 읽을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여고를 졸업했지만, 그녀는 한문 실력이 없었다. 그녀는 한문 글씨위에 DAVIS라고 쓰인 발음을 읊조린다. 그녀는 언 듯 모델들 사이에서 데이비스 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 같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사진작가라는 말을 들었다. 요즈음 알려지기 시작한 아티스트이자, 젊은 포토그래퍼이다.
“그럼.......! 데이비스 진이세요?”
“네, 제 이름을 어떻게.......?”
“들은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모델로 성공 할 수 있어요?”
“아가씨 정도면 얼마든지 일류 모델이 될 수 있어요.”
“사실.......”
남규리는 모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지 망설인다. 자칫하면 그동안 어느 기획사에서도 캐스팅 되지 못한 능력이 들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추었다가 들통이 나는 것보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저는 모델생활을 해봤거든요.”
“아! 그런데 어떻게 숨은 보물을 발견 못했을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보세요!? 하지만 후원도 필요하잖아요.”
“후원이요!? 물론 후원자가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계약하기 나름이고, 도리어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버는 모델도 많잖아요.”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더운데 여기서 얘기 할게 아니라, 시원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떠세요?”
“네.......! 그러세요.”
남규리는 밑져야 본전이라 싶어서 순순히 강민우를 따라 나선다. 강민우는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며 앞서서 걸으며 힐끗 돌아본다. 타이트한 옷을 걸친 남규리의 몸매가 도발적이면서도 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강민우와 시선이 마주친 남규리는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강민우의 모습에 왠지 호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도도한 말투로 대했지만, 남규리는 어쩌면 인생에 변화를 가져 올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강민우를 따라 걸어간다. 그들은 길모퉁이를 돌아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팝송이 흐르는 커피숍 안은 손님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두 사람은 창가 구석진 자리에 마주보고 앉았다. 강민우의 시선이 그녀의 깊게 패인 블라우스의 앞가슴으로 향한다. 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녀는 자신감이 들어나는 표정을 한다.
“열흘 동안 모델이 돼 주시면, 스타라인에 캐스팅 되도록 적극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스타라인요.......!?”
스타라인이라는 말에 남규리의 눈빛이 반짝인다. 스타라인이라면 굴지의 국내 연예기획사 들 중 하나이다. 상대의 너무 엄청난 제안에 그녀는 반신반의한다. 열흘간의 모델이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한다.
“만약에 캐스팅이 안 되면 어쩌지요?”
“아! 그건 염려 마십시오. 어느 기획사이던 캐스팅 되도록 해야죠, 제 명예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떤 모델인데요? 모델 종류도 많잖아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규리요.”
“규리씨, 몸매와 이미지라면 여체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저더러 나체 모델이 돼 달란 말씀이신가요?”
“우리나라의 문화는 점점 미국이나 유럽, 가깝게는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추세지요. 요즘 일본에선 일류 탤런트도 나체 모델이 되어 여자의 아름다움을 걸림 없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체 모델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일본이니까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여자의 속마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찍어두지 못한 걸 후회하는 주부들도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촬영할 때는 거부감이 들고 여론에 이름이 나돌겠지만 그것이 유명세를 타는 거지요.”
“그렇기는 해요.”
“예술은 아름다운 겁니다.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건데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혹시 음란 비디오 같은 것을 찍으시려고 그러시는 거 아닌가요?”
“하하~! 포르노와 예술사진은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그럼 선생님은 예술적인 사진과 아티스트만 하시나요?”
“물론이지요. 난 되도록 정면으로 촬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열흘은 좀.......!?”
“세팅을 하고 편집을 해서 확인을 하고, 필요한 작품을 만들려면 최소한 열흘은 잡아야지요.”
“사진 촬영은 어디서 하나요?”
“음.......! 그게 좀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호수가 있거나 아늑한 배경이면 더욱 좋고, 한적한 곳이면 좋은데.......”
강민우는 최재인이 남규리에게 제공했다는 저택이 어딘지 모른다. 어떻게 하든지 그들이 만나는 장소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택의 장소에 따라 최재인의 씨크릿 암호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생각인지 골똘히 하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호수가 있고 아늑한 배경이라는 말에 남규리는 춘천을 떠올린다. 춘천은 자신의 주거지로 최재인이 구입해준 별장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별장을 어느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오직 최재인만을 정기적으로 은밀이 만나는 장소이기에 함부로 알려줄 수도 없었다. 강민우가 무슨 생각인가 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우선 급한 데로 물색하고, 내일 연락을 드릴 테니 연락처를 주십시오.”
“호출번호를 가르쳐 드릴게요.”
남규리가 핸드백을 열고 메모지와 볼펜을 꺼낸다. 호출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강민우에게 건네준다. 강민우는 받아든 메모지를 들여다보고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강민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규리는 아직도 미심쩍은 듯 엉거주춤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커피숍을 나온 강민우가 영어 발음으로 인사를 하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You are beautiful! Thank you for Geu le. See You Agin!”
“아........! 네.”
남규리는 간단한 영어 회화도 해본 적이 없어 얼떨떨한 표정을 한다. 그의 영어발음이 유창하게 들려서 주눅이 든다. 아름답다는 말과 자신의 이름인 규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공연히 마음이 설렌다. 그녀는 인파속으로 들어가는 강민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강민우의 인상이 새롭게 부각된다. 한국 사회의 남자들과는 다르게 매너가 넘치면서도 솔직하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남규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왠지 호감을 느끼는 강민우의 말에 믿음이 가고, 그동안 꿈꾸어 왔던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뒤척이다가 늦게 잠들었다가 삐삐의 호출음을 듣고 눈을 떴다. 전화 연락을 하니 어제 만났던 장소인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기대감에 기분은 상쾌하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녀는 어떻게 호장을 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지 궁리를 한다, 진한 메이크업을 할까! 아니 자연미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티차림으로 옷장을 열고 걸린 옷들을 고른다. 사진작가는 어떤 모습을 원할까! 화려한 모습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적인 몸매를 보이는 것이 아름다울는지,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살핀다. 어차피 누드모델이니 옷은 상관이 없겠지만,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스 진의 취향에 맞추어, 자유 분망한 스타일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녀는 반팔 티에 엉덩이의 볼륨감이 타이트하게 들어나 보이는 청바지를 걸쳤다.
한 시간 후에 남규리는 강민우와 만났던 커피숍으로 들어간가. 강민우는 창가에 앉아서 외국 모델의 화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보에 열중하는 커피숍으로 들어오는 남규리도 모르고 있다. 탁자 옆으로 그녀가 다가서자 그때서야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You"re looking very pretty today!”
“아......!? 네. 음!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남규리는 또 다시 듣는 영어 발음에 목소리를 가다듬어 인사한다. 되도록 맑은 목소리를 내어 발랄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프리티라는 발음만 의식하고 자신을 칭찬한다는 생각에 만족스런 미소를 흘린다. 눈웃음을 하는 그녀는 공연히 엉덩이에 힘을 주고서서 강민우를 바라본다. 힐끗 올려다본 강민우는 보고 있던 화보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으며 일어선다.
“바로 갑시다.”
“네........!?”
그녀의 모습에 큰 관심을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강민우가 커피숍을 빠져나간다. 강민우를 따라 간곳은 인접해 있는 주차장이었다. 그녀는 부유층이나 타는 고급승용차 그랜저의 운전석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상당한 재력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민우는 승용차를 몰고 동대문 방향으로 향한다. 남규리는 갈색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강민우를 곁눈질해서 본다.
“어디로 가는 거지요?”
“수유리입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그럼, 수유리에 작업실이 있나요?”
“아뇨! 어쩔 수 없이 개인 별장을 빌렸습니다.”
“경치가 좋겠군요.”
“그냥 산 밑의 별장인데 별로.......! 우선 그곳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마땅한 곳을 알아봐야죠.”
그랜저 승용차는 북한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숲이 우거진 좁은 산길을 달린다. 비포장도로라서 승용차가 뒤뚱거린다. 승용차가 돌부리를 넘어 튀어 오르고, 조수석에 앉았던 남규리가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떨어진다. 그리고 승용차 대시보드를 팔로 짚고 넘어지려한다. 강민우가 재빨리 그녀의 겨드랑이를 붙잡는다. 강민우는 가슴에 안겨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미안합니다. 비포장도로라서.”
“괜찮아요.......!”
남규리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잠간 사이지만 그녀는 강민우에게서 흘러나오는 남성의 체취를 느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늑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녀는 선글라스 속으로 보이는 강민우의 미소 짓는 눈빛에 그윽함을 느낀다. 그녀는 그 미소 뒤에 숨겨져 있는 음모를 전혀 모를 수밖에 없다.
별장은 숲속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멘트 골조의 아담한 2층 양옥이었다. 나무로 둘러쌓인 별장은 적막하고 조용하고 벌써 떨어진 낙엽이 발에 밟힌다. 두 사람은 별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 안에는 토치카가 있었고 창문으로는 우거진 숲만 보였다. 아늑한 분위기를 느낀 남규리는 벌써 유명 모델이 된 기분이다.
“이 별장에는 관리인이 따로 없는 모양이네요.”
“모르지요. 잠시 빌렸으니까.”
“청소는 누가 하지요?”
“전화하면 오기로 돼 있습니다. 샤워부터 하세요.”
“샤워는 왜요?”
“촬영하려면 땀을 씻어야 윤활유를 바르잖아요.”
“윤활유를......!?”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올리브기름을 적당히 씁니다.”
“아! 네. 알겠어요.”
강민우가 작업을 서둘렀다. 남규리가 샤워를 마치자마자 강민우는 그녀를 지하실로 데리고 갔다. 어두운 지하실에는 조명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삼각대 위에 중형카메라와 촬영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소파와 의자들이 놓여있다. 간단한 도구들이지만 피사체만 있으면 촬영이 가능하였다. 강민우는 들고 들어온 카메라의 앵글을 조정한다, 그리고 멈칫 거리는 남규리를 빤히 바라본다.
“어서 벗고 소파로 가십시오.”
“네......!? 벗으라고요?”
“어차피 벗어야 촬영할 것 아닙니까? 작업하기 편하게 나도 벗을게요.”
“........!?”
주춤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강민우도 스스로 상체를 들어냈다. 그녀는 누드 모델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인가 미대생들 앞에서 누드모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한 남자가 있는 닫힌 공간에서 나체를 들어내기가 겸연쩍었다. 자신을 배려해서인지 상체를 들어내는 강민우를 바라본다. 강민우의 근육질로 다져진 상체를 바라보며 그녀는 내심 감탄한다. 나이 많은 최재인과는 비길 바도 안 되게 균형 잡힌 체격이었다. 강민우를 곁눈질하며 그녀는 주춤거리며 옷을 벗어 차곡차곡 포개 놓는다. 강민우가 시키는 대로 손바닥만한 꽃무늬 팬티마저 다 벗었다.
농염하고도 눈부신 몸매였다. 알맞게 살집이 오른 과일처럼 탐스러운 알몸이었다. 연꽃방울처럼 풍성하게 솟아오른 유방과 육감적인 둔부,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 사이의 무성한 검은 음모가 선정적으로 보인다. 조명아래 선 남규리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몸을 약간 움츠렸다.
남규리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몸을 움츠렸다. 강민우는 중형카메라를 세팅하고 있었다. 표정 변화 없이 발가벗은 그녀를 힐끗 바라 본 강민우가 소형 카메라를 들고 앵글 초점을 맞춘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봐요.”
“정면은 안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정면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를 담는 겁니다. 그게 염려되면 이걸 착용합시다.”
“.......”
가방에서 가면을 깨내 든 강민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반쯤 가려질만한 나비 가면이었다. 남규리는 가면까지 씌워주는 강민우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낀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시선에 완연하게 알몸이 들어나는 수치심보다는 친근감을 느껴 미소를 띤다. 가면을 착용한 그녀는 강민우의 지시에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좋아요. 거기 소파에 앉아요.”
“네.”
남규리는 소파에 앉아 요정처럼 미소를 띠워 보인다. 언뜻 보면 요정이 아니라 요부 같은 표정이다. 강민우가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들어보면서 허벅지를 툭 친다.
“얼굴은 약간 돌리고, 두 다리를 약간 벌려요.”
남규리는 말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강민우가 중형 카메라 앞으로 가서 다시 세팅을 하고 렌즈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수치심은커녕 오히려 긴장을 한다.
“표정을 바꿔요. 너무 굳어 있어서 증명사진 촬영하는 것 같아요.”
대꾸 없이 남규리는 턱을 움직여 얼굴 근육을 피면서 미소를 짓는다. 강민우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빤히 그녀를 바라보면서 사물을 관찰하듯이 고개를 좌우로 틀어 앵글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과 자세를 꼼꼼히 살핀다.
“이제 조금 좋아졌어요.”
“.........”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강민우의 손길이 남규리의 얼굴방향을 교정하더니 어깨와 앞가슴을 스쳐 지나간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안쪽으로 틀게 하고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올리브의 감촉이 그녀의 성감을 엷게 자극했다.------
오랫동안 트레이닝을 하며 고생을 하였지만 그동안 그녀를 캐스팅해주는 기획사도 후원자도 없었다. 생활비를 벌려고 요정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요정에서 안기부의 나이든 간부 최재인을 후원자로 만나게 되었다. 안기부 직원이라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기관이고 두려워한다. 최재인이 그녀의 꿈을 달성시켜 준다고 하여서 희망에 부풀었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예인 진출을 후원해 준다는 약속과 거주할 수 있는 저택도 제공 받는 조건으로 남규리는 최재인의 내연녀가 되었다. 저택이라고 하지만 별장이나 다름이 없다. 그녀는 제공받은 별장에서 최재인과 정기적으로 은밀하게 만난다. 몇 번인가 최재인이 섭외해준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캐스팅해주는 기획사는 아직 없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최재인의 내연녀가 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아직 그녀 자신의 꿈을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인생이 초라해지기에 포기하기도 늦었고,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타이트한 블라우스와 스커트가 남규리의 볼륨 있는 몸매를 한결 돋보여서 아직은 사람들의 시선을 향하게 한다. 그렇잖아도 볼륨 있는 몸매를 더욱 섹시하게 보이려고 그녀는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걷는다. 며칠 전에 그녀는 오디션을 받아 보라는 기획사의 연락을 받았었다. 이름도 없는 기획사여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렸다가 나오는 길이다. 기획사에 들려보니 탐탁지 않았고 오디션의 결과가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조금 전 기획사를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사내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인식하고 있었다. 안경을 끼고 양쪽 어깨에 사진기와 가방을 메었지만 핸섬한 사내였다. 그녀는 사내가 예술을 하는 사진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유명 여자 연예인이 사진작가에게 캐스팅되어 스타덤에 올랐다는 매스컴을 떠올린다.
사내를 의식한 그녀가 잠시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오던 사내가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 어, 아가씨, 잠간만 실례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못들은 척 계속 걸어간다. 되도록 도도해 보이고 능력 있는 모델로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힐끔 뒤돌아보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 그녀를 부르며 따라오는 사내는 강민우였다. 강민우는 전재민의 내연녀 남규리에게 직접 접근하려고 안경을 끼고 사진기를 메고 사진작가처럼 꾸민 것이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말 좀 물어 봅시다.”
“전 바쁜 사람이에요.”
남규리는 강민우를 무시하듯이 대답만 하고 걸어간다. 보통 사람들은 안중에 없는 그녀는 능력 있는 모델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강민우는 그녀 곁에 바짝 다가서서 보조를 맞추어 걸음을 옮긴다.
“혹시 모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진미영도 제가 캐스팅 했는데, 아가씨 이미지가 개성적이고 좋군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바싹 따라오는 사내의 말에 남규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나 진미영이라면 사진 모델을 통해 연예인이 된 대표적인 여배우이기에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녀는 사내를 유심히 살핀다. 강민우는 일단 남규리의 마음을 동요하게 하여 접근에 성공한 것에 안도를 한다.
“혹시 모델이 되고 싶지 않으시냐고 했습니다.”
“괜히 사람 놀리지 마세요.”
남규리는 우월감을 나타내려고 되도록 차갑게 느끼는 말투를 흘린다. 호기심을 느끼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의 관심을 더욱 유발하는 요령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민우는 이미 그녀가 무명의 모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도도한 표정 속에는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을 감지한다.
“농담이 아닙니다. 나 역시 바쁜 사람인데, 아가씨한테 농담하고 다니겠습니까?”
“그럼, 정말이에요?”
“난 사진작가입니다.”
“........!”
강민우가 어깨에 멘 가방의 자크를 열고 명함을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남규리는 명함을 받아 읽었다. 한문과 영어로 된 명함이었다. 성(性)이 진(陳)씨라는 것밖에는 읽을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여고를 졸업했지만, 그녀는 한문 실력이 없었다. 그녀는 한문 글씨위에 DAVIS라고 쓰인 발음을 읊조린다. 그녀는 언 듯 모델들 사이에서 데이비스 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 같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사진작가라는 말을 들었다. 요즈음 알려지기 시작한 아티스트이자, 젊은 포토그래퍼이다.
“그럼.......! 데이비스 진이세요?”
“네, 제 이름을 어떻게.......?”
“들은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모델로 성공 할 수 있어요?”
“아가씨 정도면 얼마든지 일류 모델이 될 수 있어요.”
“사실.......”
남규리는 모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지 망설인다. 자칫하면 그동안 어느 기획사에서도 캐스팅 되지 못한 능력이 들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추었다가 들통이 나는 것보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저는 모델생활을 해봤거든요.”
“아! 그런데 어떻게 숨은 보물을 발견 못했을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보세요!? 하지만 후원도 필요하잖아요.”
“후원이요!? 물론 후원자가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계약하기 나름이고, 도리어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버는 모델도 많잖아요.”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더운데 여기서 얘기 할게 아니라, 시원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떠세요?”
“네.......! 그러세요.”
남규리는 밑져야 본전이라 싶어서 순순히 강민우를 따라 나선다. 강민우는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며 앞서서 걸으며 힐끗 돌아본다. 타이트한 옷을 걸친 남규리의 몸매가 도발적이면서도 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강민우와 시선이 마주친 남규리는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강민우의 모습에 왠지 호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도도한 말투로 대했지만, 남규리는 어쩌면 인생에 변화를 가져 올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강민우를 따라 걸어간다. 그들은 길모퉁이를 돌아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팝송이 흐르는 커피숍 안은 손님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두 사람은 창가 구석진 자리에 마주보고 앉았다. 강민우의 시선이 그녀의 깊게 패인 블라우스의 앞가슴으로 향한다. 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녀는 자신감이 들어나는 표정을 한다.
“열흘 동안 모델이 돼 주시면, 스타라인에 캐스팅 되도록 적극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스타라인요.......!?”
스타라인이라는 말에 남규리의 눈빛이 반짝인다. 스타라인이라면 굴지의 국내 연예기획사 들 중 하나이다. 상대의 너무 엄청난 제안에 그녀는 반신반의한다. 열흘간의 모델이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한다.
“만약에 캐스팅이 안 되면 어쩌지요?”
“아! 그건 염려 마십시오. 어느 기획사이던 캐스팅 되도록 해야죠, 제 명예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떤 모델인데요? 모델 종류도 많잖아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규리요.”
“규리씨, 몸매와 이미지라면 여체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저더러 나체 모델이 돼 달란 말씀이신가요?”
“우리나라의 문화는 점점 미국이나 유럽, 가깝게는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추세지요. 요즘 일본에선 일류 탤런트도 나체 모델이 되어 여자의 아름다움을 걸림 없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체 모델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일본이니까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여자의 속마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찍어두지 못한 걸 후회하는 주부들도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촬영할 때는 거부감이 들고 여론에 이름이 나돌겠지만 그것이 유명세를 타는 거지요.”
“그렇기는 해요.”
“예술은 아름다운 겁니다.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건데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혹시 음란 비디오 같은 것을 찍으시려고 그러시는 거 아닌가요?”
“하하~! 포르노와 예술사진은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그럼 선생님은 예술적인 사진과 아티스트만 하시나요?”
“물론이지요. 난 되도록 정면으로 촬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열흘은 좀.......!?”
“세팅을 하고 편집을 해서 확인을 하고, 필요한 작품을 만들려면 최소한 열흘은 잡아야지요.”
“사진 촬영은 어디서 하나요?”
“음.......! 그게 좀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호수가 있거나 아늑한 배경이면 더욱 좋고, 한적한 곳이면 좋은데.......”
강민우는 최재인이 남규리에게 제공했다는 저택이 어딘지 모른다. 어떻게 하든지 그들이 만나는 장소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택의 장소에 따라 최재인의 씨크릿 암호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생각인지 골똘히 하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호수가 있고 아늑한 배경이라는 말에 남규리는 춘천을 떠올린다. 춘천은 자신의 주거지로 최재인이 구입해준 별장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별장을 어느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오직 최재인만을 정기적으로 은밀이 만나는 장소이기에 함부로 알려줄 수도 없었다. 강민우가 무슨 생각인가 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우선 급한 데로 물색하고, 내일 연락을 드릴 테니 연락처를 주십시오.”
“호출번호를 가르쳐 드릴게요.”
남규리가 핸드백을 열고 메모지와 볼펜을 꺼낸다. 호출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강민우에게 건네준다. 강민우는 받아든 메모지를 들여다보고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강민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규리는 아직도 미심쩍은 듯 엉거주춤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커피숍을 나온 강민우가 영어 발음으로 인사를 하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You are beautiful! Thank you for Geu le. See You Agin!”
“아........! 네.”
남규리는 간단한 영어 회화도 해본 적이 없어 얼떨떨한 표정을 한다. 그의 영어발음이 유창하게 들려서 주눅이 든다. 아름답다는 말과 자신의 이름인 규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공연히 마음이 설렌다. 그녀는 인파속으로 들어가는 강민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강민우의 인상이 새롭게 부각된다. 한국 사회의 남자들과는 다르게 매너가 넘치면서도 솔직하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남규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왠지 호감을 느끼는 강민우의 말에 믿음이 가고, 그동안 꿈꾸어 왔던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뒤척이다가 늦게 잠들었다가 삐삐의 호출음을 듣고 눈을 떴다. 전화 연락을 하니 어제 만났던 장소인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기대감에 기분은 상쾌하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녀는 어떻게 호장을 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지 궁리를 한다, 진한 메이크업을 할까! 아니 자연미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티차림으로 옷장을 열고 걸린 옷들을 고른다. 사진작가는 어떤 모습을 원할까! 화려한 모습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적인 몸매를 보이는 것이 아름다울는지,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살핀다. 어차피 누드모델이니 옷은 상관이 없겠지만,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스 진의 취향에 맞추어, 자유 분망한 스타일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녀는 반팔 티에 엉덩이의 볼륨감이 타이트하게 들어나 보이는 청바지를 걸쳤다.
한 시간 후에 남규리는 강민우와 만났던 커피숍으로 들어간가. 강민우는 창가에 앉아서 외국 모델의 화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보에 열중하는 커피숍으로 들어오는 남규리도 모르고 있다. 탁자 옆으로 그녀가 다가서자 그때서야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You"re looking very pretty today!”
“아......!? 네. 음!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남규리는 또 다시 듣는 영어 발음에 목소리를 가다듬어 인사한다. 되도록 맑은 목소리를 내어 발랄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프리티라는 발음만 의식하고 자신을 칭찬한다는 생각에 만족스런 미소를 흘린다. 눈웃음을 하는 그녀는 공연히 엉덩이에 힘을 주고서서 강민우를 바라본다. 힐끗 올려다본 강민우는 보고 있던 화보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으며 일어선다.
“바로 갑시다.”
“네........!?”
그녀의 모습에 큰 관심을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강민우가 커피숍을 빠져나간다. 강민우를 따라 간곳은 인접해 있는 주차장이었다. 그녀는 부유층이나 타는 고급승용차 그랜저의 운전석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상당한 재력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민우는 승용차를 몰고 동대문 방향으로 향한다. 남규리는 갈색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강민우를 곁눈질해서 본다.
“어디로 가는 거지요?”
“수유리입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그럼, 수유리에 작업실이 있나요?”
“아뇨! 어쩔 수 없이 개인 별장을 빌렸습니다.”
“경치가 좋겠군요.”
“그냥 산 밑의 별장인데 별로.......! 우선 그곳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마땅한 곳을 알아봐야죠.”
그랜저 승용차는 북한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숲이 우거진 좁은 산길을 달린다. 비포장도로라서 승용차가 뒤뚱거린다. 승용차가 돌부리를 넘어 튀어 오르고, 조수석에 앉았던 남규리가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떨어진다. 그리고 승용차 대시보드를 팔로 짚고 넘어지려한다. 강민우가 재빨리 그녀의 겨드랑이를 붙잡는다. 강민우는 가슴에 안겨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미안합니다. 비포장도로라서.”
“괜찮아요.......!”
남규리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잠간 사이지만 그녀는 강민우에게서 흘러나오는 남성의 체취를 느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늑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녀는 선글라스 속으로 보이는 강민우의 미소 짓는 눈빛에 그윽함을 느낀다. 그녀는 그 미소 뒤에 숨겨져 있는 음모를 전혀 모를 수밖에 없다.
별장은 숲속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멘트 골조의 아담한 2층 양옥이었다. 나무로 둘러쌓인 별장은 적막하고 조용하고 벌써 떨어진 낙엽이 발에 밟힌다. 두 사람은 별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 안에는 토치카가 있었고 창문으로는 우거진 숲만 보였다. 아늑한 분위기를 느낀 남규리는 벌써 유명 모델이 된 기분이다.
“이 별장에는 관리인이 따로 없는 모양이네요.”
“모르지요. 잠시 빌렸으니까.”
“청소는 누가 하지요?”
“전화하면 오기로 돼 있습니다. 샤워부터 하세요.”
“샤워는 왜요?”
“촬영하려면 땀을 씻어야 윤활유를 바르잖아요.”
“윤활유를......!?”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올리브기름을 적당히 씁니다.”
“아! 네. 알겠어요.”
강민우가 작업을 서둘렀다. 남규리가 샤워를 마치자마자 강민우는 그녀를 지하실로 데리고 갔다. 어두운 지하실에는 조명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삼각대 위에 중형카메라와 촬영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소파와 의자들이 놓여있다. 간단한 도구들이지만 피사체만 있으면 촬영이 가능하였다. 강민우는 들고 들어온 카메라의 앵글을 조정한다, 그리고 멈칫 거리는 남규리를 빤히 바라본다.
“어서 벗고 소파로 가십시오.”
“네......!? 벗으라고요?”
“어차피 벗어야 촬영할 것 아닙니까? 작업하기 편하게 나도 벗을게요.”
“........!?”
주춤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강민우도 스스로 상체를 들어냈다. 그녀는 누드 모델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인가 미대생들 앞에서 누드모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한 남자가 있는 닫힌 공간에서 나체를 들어내기가 겸연쩍었다. 자신을 배려해서인지 상체를 들어내는 강민우를 바라본다. 강민우의 근육질로 다져진 상체를 바라보며 그녀는 내심 감탄한다. 나이 많은 최재인과는 비길 바도 안 되게 균형 잡힌 체격이었다. 강민우를 곁눈질하며 그녀는 주춤거리며 옷을 벗어 차곡차곡 포개 놓는다. 강민우가 시키는 대로 손바닥만한 꽃무늬 팬티마저 다 벗었다.
농염하고도 눈부신 몸매였다. 알맞게 살집이 오른 과일처럼 탐스러운 알몸이었다. 연꽃방울처럼 풍성하게 솟아오른 유방과 육감적인 둔부,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 사이의 무성한 검은 음모가 선정적으로 보인다. 조명아래 선 남규리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몸을 약간 움츠렸다.
남규리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몸을 움츠렸다. 강민우는 중형카메라를 세팅하고 있었다. 표정 변화 없이 발가벗은 그녀를 힐끗 바라 본 강민우가 소형 카메라를 들고 앵글 초점을 맞춘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봐요.”
“정면은 안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정면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를 담는 겁니다. 그게 염려되면 이걸 착용합시다.”
“.......”
가방에서 가면을 깨내 든 강민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반쯤 가려질만한 나비 가면이었다. 남규리는 가면까지 씌워주는 강민우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낀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시선에 완연하게 알몸이 들어나는 수치심보다는 친근감을 느껴 미소를 띤다. 가면을 착용한 그녀는 강민우의 지시에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좋아요. 거기 소파에 앉아요.”
“네.”
남규리는 소파에 앉아 요정처럼 미소를 띠워 보인다. 언뜻 보면 요정이 아니라 요부 같은 표정이다. 강민우가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들어보면서 허벅지를 툭 친다.
“얼굴은 약간 돌리고, 두 다리를 약간 벌려요.”
남규리는 말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강민우가 중형 카메라 앞으로 가서 다시 세팅을 하고 렌즈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수치심은커녕 오히려 긴장을 한다.
“표정을 바꿔요. 너무 굳어 있어서 증명사진 촬영하는 것 같아요.”
대꾸 없이 남규리는 턱을 움직여 얼굴 근육을 피면서 미소를 짓는다. 강민우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빤히 그녀를 바라보면서 사물을 관찰하듯이 고개를 좌우로 틀어 앵글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과 자세를 꼼꼼히 살핀다.
“이제 조금 좋아졌어요.”
“.........”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강민우의 손길이 남규리의 얼굴방향을 교정하더니 어깨와 앞가슴을 스쳐 지나간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안쪽으로 틀게 하고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올리브의 감촉이 그녀의 성감을 엷게 자극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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