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우는 송나희에게서 받은 정보가 확실한 것을 알았다. 허름한 시멘트 2층 건물 주변에는 인기척이 없다. 강민우는 천천히 고철 덩이들이 쌓인 사이를 걸어서 건물로 다가갔다. 주위를 살펴보니 민한구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가 있다면 승용차나 지프차가 있을 텐데 먼지만 풀풀 날린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침한 사무실 안은 텅 비었고 사방 벽의 공간마다 철제 캐비닛으로 가로 막혀 있다. 사용한지도 오래되었는지 캐비닛 문짝이 떨어져 있고 책상위에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흔적이 있다. 문이 닫힌 한쪽 사무실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민우는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문 위에 뚫려있는 작은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니 남자들 네 명이 탁자를 가운데 놓고 소파에 앉아 화투를 치고 있다.
강민우가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남자들은 떠들고 웃으며 화투를 치느라고 여념이 없다. 한쪽에는 배달시켜 먹은 중국음식점 그릇이 수북하다. 강민우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끝에 채인 먹다버린 맥주 캔이 덜그럭 소리를 낸다. 그때서야 남자들이 고개를 돌려 강민우를 쳐다본다. 귀잖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게 험상궂은 모습들이다. 그들 중 한명이 강민우에게 퉁명스럽게 묻는다.
“무슨 일이시오?”
“민한구 사장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민 사장님.......!?”
“........”
남자들은 강민우의 아래위를 살핀다. 그리고 서로의 의미 있는 시선을 마주친다. 가운데 소파에 앉은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화투짝을 탁자위에 뒤집어 놓으며 일어선다. 강민우는 그 남자의 귀 한쪽이 일그러진 것을 발견한다. 남자들은 폭력배 조직원들이었다. 일어선 남자가 옆의 책상위에 놓인 주전자를 들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강민우에게 물어본다.
“민사장님은 왜 찾으쇼?”
“물건 받을 것이 있어서요.”
“오늘은 아마 못 만나 볼 건데.”
“그럼 언제쯤.......?”
“직접 연락해보슈!”
“..........!”
남자는 거드름을 피우더니 다시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그들은 강민우가 안중에도 없는지 화투를 다시 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따금 강민우를 힐끔거리고 쳐다본다. 강민우는 더 이상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문을 열고 큰 사무실로 나왔다. 그들 중 누군가 ‘송 마담한테 갔나!’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음식찌꺼기를 먹던 쥐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났다.
강민우는 고철덩이가 된 자재들이 쌓인 사이를 걸어 나왔다. 미한 해운 주변을 거닐면서 궁리를 한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송 마담이 강민구가 찾는 여자라면 틀림없이 민한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혹시 남자들이 자신을 속이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강민우는 길 건너 건물의 다방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별로 없는 다방 안에는 마담과 마주 앉아서 노닥거리는 남자손님, 그리고 껌을 짝짝 씹으며 주문을 받는 젊은 여자만 있었다.
민한해운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은 강민우는 커피를 시켰다. 마담과 남자손님은 한창 짓궂은 장난을 하고 있다. 마담은 젖가슴을 주무르려는 남자 손을 막으려고 앙탈을 한다. 그러면서도 마담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드디어 마담의 블라우스 속으로 들어간 남자의 손길이 마담의 젖가슴을 움켜 쥔 모양이다. 마담이 몸을 웅크리며 소리를 지른다.
“하 앗! 젖꼭지 아파!”
“하하~! 그러니까 가만있으라니까.”
너털웃음을 흘리는 남자에게 마담이 눈을 흘기며 주먹질을 한다. 강민우의 시선을 의식하는지 남자와 마담이 고개를 돌려본다. 강민우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창문을 내다본다. 그는 이따금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태양이 내리쪼이는 민한해운에는 사람의 발그림자도 없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도 민한해운은 변화가 없었다. 강민우는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 잔을 놔두고 일어섰다. 그는 껌을 짝짝거리고 씹는 종업원에게 커피 값을 계산하고 다방을 나선다.
민한해운 앞의 다방에서 나온 강민우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황금동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동안 거리를 돌아보던 그는 대로 옆의 복덕방으로 들어갔다. 안경을 걸친 중년의 여자가 그를 보고도 책상위에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다. 강민우가 책상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말 좀 묻겠습니다.”
“네........!”
“혹시 이 주변에 송화라는 술집이 있습니까?”
“저쪽으로 가 보세요.”
중년 여인은 고개도 안 들고 왼쪽을 손가락질 한다. 복덕방을 나온 강민우는 대로의 왼쪽을 행해 걸으며 간판들을 살핀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빌딩 사이에 있는 삼층 건물 앞에 섰다. 일층은 음식점이고 건물 지하 입구에 꼬마전구가 번쩍이며 돌아가는 간판이 보인다. 오래된 시설이지만 송화 살롱이라는 간판이다. 그의 추측이 맞은 것이다. 그들은 늦은 밤에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간판을 본 강민우는 긴장이 되었다. 민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폭력조직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던 송나희의 걱정스런 표정이 떠오른다. 강민우는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차고 있는 권총을 확인한다. 붉은 카펫이 깔린 지하 층계를 내려간 그는 살롱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내에는 카운터 안에 있는 중년 여인과 가슴이 들어나는 드레스를 걸친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입구로 들어선 강민우를 바라본 여자들이 황급히 일어선다.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화장을 하던 여자들이 모두 황급히 카펫이 깔린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카운터의 중년여인은 젊었을 때 꽤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미모가 있었다. 강민우는 중년여인이 송화살롱의 마담이고, 그가 찾는 송 마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마담이 눈웃음을 살살치며 강민우에게 묻는다.
“혼자세요?”
“혼자 오면 안 됩니까?”
“아뇨! 조금 이른 시간이라....... 조용한 방으로 모실게요.”
“........”
마담이 앞장을 서서 복도를 걸어간다. 강민우는 마담을 따라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다. 마담이 잠간 기다리라면서 홀 문을 닫고 나간다. 붉은 등의 불빛으로 갇혀진 공간에는 넓은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가 놓여있다. 여자의 나체를 상징하는 큰 그림이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붉은 채색으로 그려진 여인의 눈동자가 유난히 돋보인다. 잠시 후 맥주와 마른안주를 담은 쟁반을 들고 들어와 강민우의 옆자리에 앉는다.
“송 마담이라고 해요. 애들이 준비 중이라서, 이건, 제 서비스.”
“아직, 손님이 없나보죠?”
“낮에도 손님이 있는 날이 있어요. 여기 처음이시죠?”
“오래전에 친구와 들린 적이 있죠.”
“어머! 잘생긴 사장님이신데, 내가 기억을 못하지.”
“광주를 떠난 지 오래되어서.”
“지금 시간에는 예쁜 아가씨들 많은데, 조금 있다가 사장님 마음에 드는 아가씨 고르게 할게요.”
“요즘은 아가씨들을 두고 이런 장사해도 괜찮습니까?”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내 집에서 내가 장사하는데 누가 뭐라고 해요.”
“그럼, 이건물이 마담 소유요?”
“네. 처음에는 세 들었다가 이 장사해서 건물을 사게 됐죠. 이 장사한 지도 꽤 오래됐어요. 이 자리에서만 벌써 5년이 넘었으니.”
“혹시 최태웅이라고 압니까? 형님뻘 되는데.”
“네........!?”
미소가 가득했던 송 마담의 표정이 굳어진다. 돌발적인 질문을 하는 강민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강민우는 송 마담이 최태웅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송 마담은 이내 정색을 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태연하게 맥주병을 따서 강민우 앞의 유리잔에 맥주를 채운다.
“들은 것도 같고.......!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니, 왜 그러시는데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 형님이 중정에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도 같아요.”
“사실은 5.18 당시, 그 형님과 밤중에 여기 와서 같이 술을 마셨었는데, 기억해요?”
“음.......! 정말예요?”
“나를 본 기억이 안나요?”
송 마담은 기억을 떠올리며 강민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강민우는 송 마담이 조금씩 경계심을 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며 맥주가 가득히 담긴 유리잔을 들었다. 맥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송 마담의 눈빛에는 의아심이 가득하다. 맥주잔을 내려놓은 강민우가 다시 물었다.
“그날 남경식 형님하고 여럿이서 왔었는데.”
“남 경식.......!?”
“네.”
“사장님은 뭐하시는 분이세요?”
“나!? 하하~! 경찰에 있다가 옷 벗었죠.”
“아! 그렇구나. 경찰에선 왜 나왔어요?”
“하하~! 이런 장사하는 업주들 봐주다가 쫓겨났지.”
“호호~! 돈 많이 버셨겠네요.”
“다 그런 거 아니요.”
“그런데 왜, 사장님은 기억 안나 지......!?”
송 마담은 여자와 술장사를 해서 재산을 불린 여자이기에 경찰들과의 관계도 훤하게 알고 있다. 비리로 경찰에서 쫓겨났다는 강민우에 대한 경계심을 푼다. 강민우는 자신의 말을 송 마담이 믿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고 송 마담이 최태웅이나 남경식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형님하고 남경식은 자주 옵니까?”
“애구! 광주사태 이후 낯짝도 안 보여요. 아! 그 다음해 크리스마스인가......!? 최 씨가 술을 마시러 한번 왔기에 반가웠는데, 남씨가 와서 같이 술을 마시고 간적이 있어요.”
“하하~! 늦게까지 술 마셨겠네요?”
“호호~! 아뇨! 남씨는 엄청 여자를 밝혔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여관이었던 이 건물에 임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남씨는 여관에서 자고, 최씨는 바로 갔지요.”
“혹시, 그 자리에 민 사장도 있었나요?”
“네.......! 민사장요?”
“민한건설의 민한구 사장.”
“그때는 없었는데요. 민 사장님을 아세요?”
“그 당시 형님들과 어울릴 때 몇 번 술자리를 같이 했지요. 요즘도 민 사장님 자주 오세요?”
“가끔요.......”
정색을 한 송 마담은 민한구의 이름을 들먹이는 강민우에게 다시 경계심을 갖는다. 강민우는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예민해지는 눈빛을 태연하게 받아드리면서 강민우는 자신의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송 마담의 표정을 살핀 강민우는 지금도 그녀가 민한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송 마담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미친년! 가만있지 못하고 지랄이야.”
“.........!?”
“사장님! 잠간 나갔다 올게요. 그리고 아가씨도 들여보낼게요.”
“........”
송마담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일어섰다. 술집 마담으로 오랜 경험에서 오는 선정적인 미소였다. 강민우를 다시 한 번 살피며 주춤거리더니 홀 문을 열고 나간다. 이제 강민우로서는 송 마담에게 최태웅에 관한 정보를 알아낸다면 광주에 내려온 성과가 있는 것이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구해냈던 ‘태성’모텔 노인의 말을 떠올린다. 노인은 세 사람이 들어왔다가 남경식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같은 크리스마스에 송 마담의 말은 최태웅이 먼저 나가고 남경식은 여자와 자고 다음날 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성’ 모텔에서 자고 나간 사람은 최태웅일 것이라고 강민우는 추측한다. 모텔에 투숙했던 여자와 그들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한다. 송마담이 나가고 나서도 간간이 들리는 여자의 외마디가 그의 호기심을 일으켰다.
고개를 갸웃거린 강민우가 일어나서 홀 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다. 카펫이 깔린 복도에는 아무도 없고 홀을 나간 송 마담은 카운터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송 마담은 민한구 사장에 대해서 물어보는 강민우가 아무래도 미덥지 않았다. 전화 통화가 안 되자, 송 마담은 다시 다이얼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이양반이 전화부터 받지........”
“........!?”
홀 문을 열고 서 있는 강민우는 강마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울러 작은 소리이지만 복도 끝으로부터 완연하게 들리는 여자의 외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조심스럽게 홀 문을 닫은 강민우가 천천히 복도 끝으로 다가갔다. 복도 끝을 돌아가니 어둠침침한 층계로 이어지는 또 다른 통로가 보인다. 망설이던 강민우가 층계를 오르니 층계 위에 철문이 닫혀있었다. 손으로 밀어 보니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강민우가 철문을 열고나간 곳은 일층의 음식점 뒤편 통로였다. 통로에는 음식점에서 창고로 쓰는지 식품과 식기들이 쌓여 있었다. 통로사이를 지나니 또 다른 층계가 보인다. 여자의 신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층계를 오르니 역시 막혀 있는 철문을 손으로 밀어보지만 열리지 않았다. 강민우는 어깨로 힘껏 철문을 밀어 보았다. 우지끈 소리를 내며 철문이 밀어 젖혀지고 복도가 보인다. 송 마담이 말 한데로 이층은 여관으로 운영했던 흔적이 분명하여 복도 양쪽으로 방문들이 나란히 있다.
복도 끝의 창문에서 흘러 들어온 불빛이 어둠침침한 공간을 밝혀주고 있다. 복도 끝 방에서 여자의 외마디가 들려오고 가까운 방에서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강민우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전화 벨소리가 나는 방문 앞으로 다가간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두 사나이가가 침대위에 올라앉아 트럼프를 하고 있었다. 전화벨소리는 여전히 울려도 사나이들은 트럼프만 치면서 투덜거린다.
“지랄이네!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고. 문사장이 오면 받게, 전화 받지 마.”
“그래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뻔해. 애들 데려 오라는 거겠지.”
“........!”
등을 보이고 트럼프를 치던 점퍼를 걸친 사나이가 흘깃흘깃 문 쪽을 바라본다. 강민우는 긴장하여 겨드랑이에 찬 권총을 확인한다. 방문 쪽을 힐끔거리던 점퍼의 사나이가 트럼프 치던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맞은편의 양복을 걸친 동료 사내에게 말한다.
“그런데,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사장이 암탉 잡아먹는 소리지. 뭐.”
“아닌데, 그 소리가.......”
“돈 잃겠으니까, 딴소리는! 어서 쳐.”
“아니, 잠간만........!”
“........!?”
점퍼의 남자가 트럼프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방문 쪽으로 다가온다. 방안을 들여다보던 강민우가 흠칫 몸을 사리며 문 옆에 달라붙는다. 방문이 열리는 동시에 강민우의 발끝이 사나이의 가슴을 걷어찬다. 강민우의 발길에 차인 사나이가 ‘컥~!’하고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하더니 침대에 부딪쳐 쓰러진다. 갑작스럽게 동료가 당하는 모습에 침대위에 있던 사나이가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외친다.
“뭐야!? 죽으려고 환장했나?”
“.........”
양복을 걸친 사나이가 안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강민우를 향해 돌진한다. 몸을 슬쩍 옆으로 비튼 강민우가 나이프를 든 사나이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뒷목을 가격당한 사나이는 비틀거리더니 탁자를 들이받고 나동그라진다. 탁자를 들이 받은 사나이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다시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며 나이프를 꺼내든다. 잔득 노려보며 한발자국씩 다가서던 사나이가 나이프를 휘두르더니 강민우의 가슴을 향해 저돌적으로 공격해온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너, 오늘 제삿날이다.”
“........”
강민우는 훌쩍 침대를 밟고 뛰어오르더니 한 바퀴 회전을 하여 사나이의 목덜미를 돌려 찬다. 사나이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방구석에 처박힌다. 그 순간 침대 옆에 쓰러졌던 점퍼의 사나이가 탁자 옆에 쓰러진 철제의자를 들고 강민우의 등을 내리친다. 한손으로 내려치는 철제의자를 잡은 강민우의 발끝이 사나이의 명치끝에 작렬한다. 사나이는 숨을 들이키는 외마디를 지르며 세면장 입구에 나뒹군다.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난장판이 된 방안을 휘둘러 본 강민우가 방을 나선다. 방을 나온 그는 연이어 붙어 있는 방문들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모두 텅 비어있고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어 먼지와 거미줄이 보인다. 복도 끝 쪽 방으로 다가가던 강민우가 한 방문 앞에서 멈추어 선다. 방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흐린 전등불아래 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손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여자들이 누워 잠들어 있기도 하고, 퀭한 눈빛으로 넋을 잃고 있는 여자뿐만 아니라, 멀쩡하게 앉아서 화장을 하고 있는 여자도 있다. 강민우는 송 마담과 민한구가 결탁하여 외국으로 여자들을 빼돌리고 있고, 이곳을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여자의 외마디가 들려오던 복도 끝 쪽 방에서는 이제 잠잠해졌다. 강민우는 까치발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나던 방문 앞에서 귀를 기울인다. 인기척이 나기에 천천히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다행히도 문이 열린다.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강민우는 재빨리 문 옆에 있는 세면장 벽에 달라붙어 몸을 숨겼다. 침대위에는 버둥거리며 누워있는 여자와 팬티바람의 중년남자 모습이 보였다. 강민우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남자는 깔고 앉은 여자의 손을 침대에 묶는 중이다. 타월로 재갈이 물린 여자는 안간힘을 쓰며 저항을 한다. 여자의 손목을 묶은 남자가 씩씩거리며 중얼거린다.
“어차피 일본으로 가고 싶은 거 아냐. 곱게 말을 듣지, 앙탈이야.”
“으 으.........!”
여자가 하는 말은 재갈이 물려 있어 알아들을 수 없다. 강민우는 여자의 외마디가 들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를 강간하려는 중년남자가 민한구임을 짐작한다. 민한구는 이미 찢겨진 여자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스커트를 벗겨내고 블라우스와 브래지어, 그리고 팬티를 차례대로 벗겨내면서 여자의 몸을 쓰다듬는다. 몸을 숨기고 바라보던 강민우의 머릿속에 사나이들과 격투를 할 당시 방바닥에 뒹굴던 전화기가 떠오른다.
강민우는 소리 없이 방을 빠져 나온다. 사나이들이 쓰러져 있는 방으로 향하던 그가 멈칫 선다.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이다. 복도 중앙에 또 다른 층계를 올라오는 여자의 하이힐 소리였다. 벽에 붙어선 강민우가 층계를 내려다보았다. 전화를 걸다가 받지 않으니 직접 올라오고 있는 송 마담이었다. 급하게 층계를 오르는 송 마담이 짜증 섞인 혼잣말을 한다.
“염병할 인간들! 전화도 안 받고 계집질인가!?”
“........!”
강민우는 송 마담이 층계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몸을 날렸다. 송 마담을 돌려 세워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손가락으로 조용하라는 표시를 한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송 마담이 기겁을 하여 눈을 크게 뜨고 강민우를 쳐다본다. 소리를 지르려던 그녀는 강민우에게 급소를 맞고 정신을 잃는다. 기절한 송 마담을 들쳐 업은 강민우는 사나이들이 쓰러져 있는 방으로 갔다.
방바닥에 나뒹군 사나이들은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침대시트를 여러 갈래로 찢어 송 마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모포로 뒤집어 씌워 침대위에 던졌다. 쓰러져 있는 사나이들도 재갈을 물리고 손과 발을 묶었다. 그리고 방바닥에 뒹구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다이얼을 돌린다. 그는 한상운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간단명료하게 지금의 위치와 상황을 알려준 그는 사나이들이 있는 방을 나왔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침한 사무실 안은 텅 비었고 사방 벽의 공간마다 철제 캐비닛으로 가로 막혀 있다. 사용한지도 오래되었는지 캐비닛 문짝이 떨어져 있고 책상위에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흔적이 있다. 문이 닫힌 한쪽 사무실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민우는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문 위에 뚫려있는 작은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니 남자들 네 명이 탁자를 가운데 놓고 소파에 앉아 화투를 치고 있다.
강민우가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남자들은 떠들고 웃으며 화투를 치느라고 여념이 없다. 한쪽에는 배달시켜 먹은 중국음식점 그릇이 수북하다. 강민우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끝에 채인 먹다버린 맥주 캔이 덜그럭 소리를 낸다. 그때서야 남자들이 고개를 돌려 강민우를 쳐다본다. 귀잖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게 험상궂은 모습들이다. 그들 중 한명이 강민우에게 퉁명스럽게 묻는다.
“무슨 일이시오?”
“민한구 사장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민 사장님.......!?”
“........”
남자들은 강민우의 아래위를 살핀다. 그리고 서로의 의미 있는 시선을 마주친다. 가운데 소파에 앉은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화투짝을 탁자위에 뒤집어 놓으며 일어선다. 강민우는 그 남자의 귀 한쪽이 일그러진 것을 발견한다. 남자들은 폭력배 조직원들이었다. 일어선 남자가 옆의 책상위에 놓인 주전자를 들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강민우에게 물어본다.
“민사장님은 왜 찾으쇼?”
“물건 받을 것이 있어서요.”
“오늘은 아마 못 만나 볼 건데.”
“그럼 언제쯤.......?”
“직접 연락해보슈!”
“..........!”
남자는 거드름을 피우더니 다시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그들은 강민우가 안중에도 없는지 화투를 다시 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따금 강민우를 힐끔거리고 쳐다본다. 강민우는 더 이상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문을 열고 큰 사무실로 나왔다. 그들 중 누군가 ‘송 마담한테 갔나!’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음식찌꺼기를 먹던 쥐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났다.
강민우는 고철덩이가 된 자재들이 쌓인 사이를 걸어 나왔다. 미한 해운 주변을 거닐면서 궁리를 한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송 마담이 강민구가 찾는 여자라면 틀림없이 민한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혹시 남자들이 자신을 속이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강민우는 길 건너 건물의 다방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별로 없는 다방 안에는 마담과 마주 앉아서 노닥거리는 남자손님, 그리고 껌을 짝짝 씹으며 주문을 받는 젊은 여자만 있었다.
민한해운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은 강민우는 커피를 시켰다. 마담과 남자손님은 한창 짓궂은 장난을 하고 있다. 마담은 젖가슴을 주무르려는 남자 손을 막으려고 앙탈을 한다. 그러면서도 마담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드디어 마담의 블라우스 속으로 들어간 남자의 손길이 마담의 젖가슴을 움켜 쥔 모양이다. 마담이 몸을 웅크리며 소리를 지른다.
“하 앗! 젖꼭지 아파!”
“하하~! 그러니까 가만있으라니까.”
너털웃음을 흘리는 남자에게 마담이 눈을 흘기며 주먹질을 한다. 강민우의 시선을 의식하는지 남자와 마담이 고개를 돌려본다. 강민우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창문을 내다본다. 그는 이따금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태양이 내리쪼이는 민한해운에는 사람의 발그림자도 없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도 민한해운은 변화가 없었다. 강민우는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 잔을 놔두고 일어섰다. 그는 껌을 짝짝거리고 씹는 종업원에게 커피 값을 계산하고 다방을 나선다.
민한해운 앞의 다방에서 나온 강민우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황금동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동안 거리를 돌아보던 그는 대로 옆의 복덕방으로 들어갔다. 안경을 걸친 중년의 여자가 그를 보고도 책상위에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다. 강민우가 책상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말 좀 묻겠습니다.”
“네........!”
“혹시 이 주변에 송화라는 술집이 있습니까?”
“저쪽으로 가 보세요.”
중년 여인은 고개도 안 들고 왼쪽을 손가락질 한다. 복덕방을 나온 강민우는 대로의 왼쪽을 행해 걸으며 간판들을 살핀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빌딩 사이에 있는 삼층 건물 앞에 섰다. 일층은 음식점이고 건물 지하 입구에 꼬마전구가 번쩍이며 돌아가는 간판이 보인다. 오래된 시설이지만 송화 살롱이라는 간판이다. 그의 추측이 맞은 것이다. 그들은 늦은 밤에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간판을 본 강민우는 긴장이 되었다. 민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폭력조직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던 송나희의 걱정스런 표정이 떠오른다. 강민우는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차고 있는 권총을 확인한다. 붉은 카펫이 깔린 지하 층계를 내려간 그는 살롱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내에는 카운터 안에 있는 중년 여인과 가슴이 들어나는 드레스를 걸친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입구로 들어선 강민우를 바라본 여자들이 황급히 일어선다.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화장을 하던 여자들이 모두 황급히 카펫이 깔린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카운터의 중년여인은 젊었을 때 꽤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미모가 있었다. 강민우는 중년여인이 송화살롱의 마담이고, 그가 찾는 송 마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마담이 눈웃음을 살살치며 강민우에게 묻는다.
“혼자세요?”
“혼자 오면 안 됩니까?”
“아뇨! 조금 이른 시간이라....... 조용한 방으로 모실게요.”
“........”
마담이 앞장을 서서 복도를 걸어간다. 강민우는 마담을 따라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다. 마담이 잠간 기다리라면서 홀 문을 닫고 나간다. 붉은 등의 불빛으로 갇혀진 공간에는 넓은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가 놓여있다. 여자의 나체를 상징하는 큰 그림이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붉은 채색으로 그려진 여인의 눈동자가 유난히 돋보인다. 잠시 후 맥주와 마른안주를 담은 쟁반을 들고 들어와 강민우의 옆자리에 앉는다.
“송 마담이라고 해요. 애들이 준비 중이라서, 이건, 제 서비스.”
“아직, 손님이 없나보죠?”
“낮에도 손님이 있는 날이 있어요. 여기 처음이시죠?”
“오래전에 친구와 들린 적이 있죠.”
“어머! 잘생긴 사장님이신데, 내가 기억을 못하지.”
“광주를 떠난 지 오래되어서.”
“지금 시간에는 예쁜 아가씨들 많은데, 조금 있다가 사장님 마음에 드는 아가씨 고르게 할게요.”
“요즘은 아가씨들을 두고 이런 장사해도 괜찮습니까?”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내 집에서 내가 장사하는데 누가 뭐라고 해요.”
“그럼, 이건물이 마담 소유요?”
“네. 처음에는 세 들었다가 이 장사해서 건물을 사게 됐죠. 이 장사한 지도 꽤 오래됐어요. 이 자리에서만 벌써 5년이 넘었으니.”
“혹시 최태웅이라고 압니까? 형님뻘 되는데.”
“네........!?”
미소가 가득했던 송 마담의 표정이 굳어진다. 돌발적인 질문을 하는 강민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강민우는 송 마담이 최태웅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송 마담은 이내 정색을 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태연하게 맥주병을 따서 강민우 앞의 유리잔에 맥주를 채운다.
“들은 것도 같고.......!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니, 왜 그러시는데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 형님이 중정에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도 같아요.”
“사실은 5.18 당시, 그 형님과 밤중에 여기 와서 같이 술을 마셨었는데, 기억해요?”
“음.......! 정말예요?”
“나를 본 기억이 안나요?”
송 마담은 기억을 떠올리며 강민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강민우는 송 마담이 조금씩 경계심을 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며 맥주가 가득히 담긴 유리잔을 들었다. 맥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송 마담의 눈빛에는 의아심이 가득하다. 맥주잔을 내려놓은 강민우가 다시 물었다.
“그날 남경식 형님하고 여럿이서 왔었는데.”
“남 경식.......!?”
“네.”
“사장님은 뭐하시는 분이세요?”
“나!? 하하~! 경찰에 있다가 옷 벗었죠.”
“아! 그렇구나. 경찰에선 왜 나왔어요?”
“하하~! 이런 장사하는 업주들 봐주다가 쫓겨났지.”
“호호~! 돈 많이 버셨겠네요.”
“다 그런 거 아니요.”
“그런데 왜, 사장님은 기억 안나 지......!?”
송 마담은 여자와 술장사를 해서 재산을 불린 여자이기에 경찰들과의 관계도 훤하게 알고 있다. 비리로 경찰에서 쫓겨났다는 강민우에 대한 경계심을 푼다. 강민우는 자신의 말을 송 마담이 믿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고 송 마담이 최태웅이나 남경식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형님하고 남경식은 자주 옵니까?”
“애구! 광주사태 이후 낯짝도 안 보여요. 아! 그 다음해 크리스마스인가......!? 최 씨가 술을 마시러 한번 왔기에 반가웠는데, 남씨가 와서 같이 술을 마시고 간적이 있어요.”
“하하~! 늦게까지 술 마셨겠네요?”
“호호~! 아뇨! 남씨는 엄청 여자를 밝혔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여관이었던 이 건물에 임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남씨는 여관에서 자고, 최씨는 바로 갔지요.”
“혹시, 그 자리에 민 사장도 있었나요?”
“네.......! 민사장요?”
“민한건설의 민한구 사장.”
“그때는 없었는데요. 민 사장님을 아세요?”
“그 당시 형님들과 어울릴 때 몇 번 술자리를 같이 했지요. 요즘도 민 사장님 자주 오세요?”
“가끔요.......”
정색을 한 송 마담은 민한구의 이름을 들먹이는 강민우에게 다시 경계심을 갖는다. 강민우는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예민해지는 눈빛을 태연하게 받아드리면서 강민우는 자신의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송 마담의 표정을 살핀 강민우는 지금도 그녀가 민한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송 마담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미친년! 가만있지 못하고 지랄이야.”
“.........!?”
“사장님! 잠간 나갔다 올게요. 그리고 아가씨도 들여보낼게요.”
“........”
송마담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일어섰다. 술집 마담으로 오랜 경험에서 오는 선정적인 미소였다. 강민우를 다시 한 번 살피며 주춤거리더니 홀 문을 열고 나간다. 이제 강민우로서는 송 마담에게 최태웅에 관한 정보를 알아낸다면 광주에 내려온 성과가 있는 것이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구해냈던 ‘태성’모텔 노인의 말을 떠올린다. 노인은 세 사람이 들어왔다가 남경식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같은 크리스마스에 송 마담의 말은 최태웅이 먼저 나가고 남경식은 여자와 자고 다음날 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성’ 모텔에서 자고 나간 사람은 최태웅일 것이라고 강민우는 추측한다. 모텔에 투숙했던 여자와 그들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한다. 송마담이 나가고 나서도 간간이 들리는 여자의 외마디가 그의 호기심을 일으켰다.
고개를 갸웃거린 강민우가 일어나서 홀 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다. 카펫이 깔린 복도에는 아무도 없고 홀을 나간 송 마담은 카운터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송 마담은 민한구 사장에 대해서 물어보는 강민우가 아무래도 미덥지 않았다. 전화 통화가 안 되자, 송 마담은 다시 다이얼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이양반이 전화부터 받지........”
“........!?”
홀 문을 열고 서 있는 강민우는 강마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울러 작은 소리이지만 복도 끝으로부터 완연하게 들리는 여자의 외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조심스럽게 홀 문을 닫은 강민우가 천천히 복도 끝으로 다가갔다. 복도 끝을 돌아가니 어둠침침한 층계로 이어지는 또 다른 통로가 보인다. 망설이던 강민우가 층계를 오르니 층계 위에 철문이 닫혀있었다. 손으로 밀어 보니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강민우가 철문을 열고나간 곳은 일층의 음식점 뒤편 통로였다. 통로에는 음식점에서 창고로 쓰는지 식품과 식기들이 쌓여 있었다. 통로사이를 지나니 또 다른 층계가 보인다. 여자의 신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층계를 오르니 역시 막혀 있는 철문을 손으로 밀어보지만 열리지 않았다. 강민우는 어깨로 힘껏 철문을 밀어 보았다. 우지끈 소리를 내며 철문이 밀어 젖혀지고 복도가 보인다. 송 마담이 말 한데로 이층은 여관으로 운영했던 흔적이 분명하여 복도 양쪽으로 방문들이 나란히 있다.
복도 끝의 창문에서 흘러 들어온 불빛이 어둠침침한 공간을 밝혀주고 있다. 복도 끝 방에서 여자의 외마디가 들려오고 가까운 방에서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강민우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전화 벨소리가 나는 방문 앞으로 다가간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두 사나이가가 침대위에 올라앉아 트럼프를 하고 있었다. 전화벨소리는 여전히 울려도 사나이들은 트럼프만 치면서 투덜거린다.
“지랄이네!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고. 문사장이 오면 받게, 전화 받지 마.”
“그래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뻔해. 애들 데려 오라는 거겠지.”
“........!”
등을 보이고 트럼프를 치던 점퍼를 걸친 사나이가 흘깃흘깃 문 쪽을 바라본다. 강민우는 긴장하여 겨드랑이에 찬 권총을 확인한다. 방문 쪽을 힐끔거리던 점퍼의 사나이가 트럼프 치던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맞은편의 양복을 걸친 동료 사내에게 말한다.
“그런데,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사장이 암탉 잡아먹는 소리지. 뭐.”
“아닌데, 그 소리가.......”
“돈 잃겠으니까, 딴소리는! 어서 쳐.”
“아니, 잠간만........!”
“........!?”
점퍼의 남자가 트럼프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방문 쪽으로 다가온다. 방안을 들여다보던 강민우가 흠칫 몸을 사리며 문 옆에 달라붙는다. 방문이 열리는 동시에 강민우의 발끝이 사나이의 가슴을 걷어찬다. 강민우의 발길에 차인 사나이가 ‘컥~!’하고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하더니 침대에 부딪쳐 쓰러진다. 갑작스럽게 동료가 당하는 모습에 침대위에 있던 사나이가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외친다.
“뭐야!? 죽으려고 환장했나?”
“.........”
양복을 걸친 사나이가 안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강민우를 향해 돌진한다. 몸을 슬쩍 옆으로 비튼 강민우가 나이프를 든 사나이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뒷목을 가격당한 사나이는 비틀거리더니 탁자를 들이받고 나동그라진다. 탁자를 들이 받은 사나이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다시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며 나이프를 꺼내든다. 잔득 노려보며 한발자국씩 다가서던 사나이가 나이프를 휘두르더니 강민우의 가슴을 향해 저돌적으로 공격해온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너, 오늘 제삿날이다.”
“........”
강민우는 훌쩍 침대를 밟고 뛰어오르더니 한 바퀴 회전을 하여 사나이의 목덜미를 돌려 찬다. 사나이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방구석에 처박힌다. 그 순간 침대 옆에 쓰러졌던 점퍼의 사나이가 탁자 옆에 쓰러진 철제의자를 들고 강민우의 등을 내리친다. 한손으로 내려치는 철제의자를 잡은 강민우의 발끝이 사나이의 명치끝에 작렬한다. 사나이는 숨을 들이키는 외마디를 지르며 세면장 입구에 나뒹군다.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난장판이 된 방안을 휘둘러 본 강민우가 방을 나선다. 방을 나온 그는 연이어 붙어 있는 방문들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모두 텅 비어있고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어 먼지와 거미줄이 보인다. 복도 끝 쪽 방으로 다가가던 강민우가 한 방문 앞에서 멈추어 선다. 방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흐린 전등불아래 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손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여자들이 누워 잠들어 있기도 하고, 퀭한 눈빛으로 넋을 잃고 있는 여자뿐만 아니라, 멀쩡하게 앉아서 화장을 하고 있는 여자도 있다. 강민우는 송 마담과 민한구가 결탁하여 외국으로 여자들을 빼돌리고 있고, 이곳을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여자의 외마디가 들려오던 복도 끝 쪽 방에서는 이제 잠잠해졌다. 강민우는 까치발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나던 방문 앞에서 귀를 기울인다. 인기척이 나기에 천천히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다행히도 문이 열린다.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강민우는 재빨리 문 옆에 있는 세면장 벽에 달라붙어 몸을 숨겼다. 침대위에는 버둥거리며 누워있는 여자와 팬티바람의 중년남자 모습이 보였다. 강민우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남자는 깔고 앉은 여자의 손을 침대에 묶는 중이다. 타월로 재갈이 물린 여자는 안간힘을 쓰며 저항을 한다. 여자의 손목을 묶은 남자가 씩씩거리며 중얼거린다.
“어차피 일본으로 가고 싶은 거 아냐. 곱게 말을 듣지, 앙탈이야.”
“으 으.........!”
여자가 하는 말은 재갈이 물려 있어 알아들을 수 없다. 강민우는 여자의 외마디가 들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를 강간하려는 중년남자가 민한구임을 짐작한다. 민한구는 이미 찢겨진 여자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스커트를 벗겨내고 블라우스와 브래지어, 그리고 팬티를 차례대로 벗겨내면서 여자의 몸을 쓰다듬는다. 몸을 숨기고 바라보던 강민우의 머릿속에 사나이들과 격투를 할 당시 방바닥에 뒹굴던 전화기가 떠오른다.
강민우는 소리 없이 방을 빠져 나온다. 사나이들이 쓰러져 있는 방으로 향하던 그가 멈칫 선다.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이다. 복도 중앙에 또 다른 층계를 올라오는 여자의 하이힐 소리였다. 벽에 붙어선 강민우가 층계를 내려다보았다. 전화를 걸다가 받지 않으니 직접 올라오고 있는 송 마담이었다. 급하게 층계를 오르는 송 마담이 짜증 섞인 혼잣말을 한다.
“염병할 인간들! 전화도 안 받고 계집질인가!?”
“........!”
강민우는 송 마담이 층계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몸을 날렸다. 송 마담을 돌려 세워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손가락으로 조용하라는 표시를 한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송 마담이 기겁을 하여 눈을 크게 뜨고 강민우를 쳐다본다. 소리를 지르려던 그녀는 강민우에게 급소를 맞고 정신을 잃는다. 기절한 송 마담을 들쳐 업은 강민우는 사나이들이 쓰러져 있는 방으로 갔다.
방바닥에 나뒹군 사나이들은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침대시트를 여러 갈래로 찢어 송 마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모포로 뒤집어 씌워 침대위에 던졌다. 쓰러져 있는 사나이들도 재갈을 물리고 손과 발을 묶었다. 그리고 방바닥에 뒹구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다이얼을 돌린다. 그는 한상운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간단명료하게 지금의 위치와 상황을 알려준 그는 사나이들이 있는 방을 나왔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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