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시 한번 시도
정신적인 혼란을 맛보았다. 내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하고 나는 닥치는데로 생활하였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미 약해진 의지는 나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의 손가락들이 나를 향하는 듯한 착각을 받곤 하였다.
어제 내가 깨어난 곳은 전에 자주가던 와인바의 뒷방이었다. 고주망태가 되어서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아서 골방에 눕혔더니 곤하게 쓰러지더란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인듯 하다.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몸에서 찌든 냄새가 나는데 내가 속상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겨우 몸을 추스려 계단을 올라왔다.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내 주머니에 잡혀지는 꾸겨진 종이를 펴 보았다. D건설 창립기념일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이었다. 장소는 남산의 H호텔 볼룸 이었다. 나는 미련을 버려야 내가 편할 것 같았지만 선뜻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그 초청장을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D건설은 급성장하는 업체라서 창립기념일에 요즘 힘을 받는 각계의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하였다. 칵테일 잔을 들고 이곳 저곳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화제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그 장소에 들어갈 때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더니 이제 나는 단순한 별로 반갑지 않은 객일 뿐 이었다.
새로 취임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나와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느낌을 받았다. 빈 속에 들어간 술은 나의 몸을 뜨겁게 하였다.
이 장소에 나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어서 그대로 걸어나왔다. 어디를 가야 하는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업무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대문 방향으로 산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 가는 거야. 하늘이 포기하였는데 내가 욕심내고 용쓴다고 바뀌겠냐?’나는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내 자신에게 충고하였다.
“박사장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찾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박사장님!”
내가 뒤 돌아 보았을 때,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연아가 숨이 차는지 헐떡거리며 손에 잡힐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희미한 미소 밖에 줄 것이 없었다.
그녀가 나의 팔짱을 끼고 길을 나섰을 때 나는 그녀에게 몸을 맏기고 따랐다.
우리가 그녀의 집을 들어설 때, 새로운 감회가 일어났다. 그녀는 항상 내 주변에 머물면서 나의 의지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막상 나는 그녀에게 준 것이 없었다.
그녀가 준비해준 욕탕에 누워서 그동안 술독에 빠졌던 독기를 빼는 느낌으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는데 이제 나의 것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눈을 감고 영원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내가 몸을 말리고 욕실을 나설 때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연아가 내가 목욕하는 동안에 음식을 장만한 모양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의 테이블에 놓여진 수저와 젓가락도 색상 배치와 놓여진 위치도 완벽한 상태였다. 그녀가 차려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댔다. 정성이 묻어나는 음식을 먹은지 오래된 듯 하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청초한 그녀의 모습은 눈의 모습도 흰자와 검은자의 대치가 완벽했다. 흰자는 티가 없이 순백의 모습 이었다. 그녀가 손에 안겨준 제스민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안드레 보첼리의 노래가 슬프게 연주되는 것을 제외하곤 우리는 정지된 세상에 있는 듯 한 착각을 느꼈다.
“이곳에 계세요. 저는 장선씨에게 부탁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그냥 부담없이 호의를 받아주세요. 당신 이곳에 계시다가 편하실 때 아무때나 가세요.”
“---“
“제가 부담스러우면 제가 친구네 집에 가있을께요.”
그녀의 뜻이 고마왔다. 그녀는 사정을 하였다.
“그렇게 무력하게 쓰러지지 마세요. 그런 분 아니시지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의 손을 잡아왔다. 그녀의 체온이 무척 따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함께 새 사업 시작해요. 다시 새롭게 시작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예요…”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나의 삶에 차지하는 역활과 비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호의를 받아도 되는 것인지…
나는 앉았던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의 다리 앞에 무릅을 꿇었다.
“연아씨, 나를 힘들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나는 무척 혼란스러워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왔다. 그녀의 무릅에 손을 얹고 그녀를 올려 보았다.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요. 내가 당신을 요구할 때 나를 도와줘요. 그러나 지금은 내가 받을 수 없어요.”
나는 무엇을 얘기하는 지 입에서 나오는데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지금 당신을 받을 수 없어요…”
우리는 서로 껴안고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막혔던 담이 주체를 못하고 터진 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품에서 내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이미 중천에 오른 후였다. 연아는 이미 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품이 포근했다. 나는 그녀를 살며시 안아보았다. 그녀의 몸이 안겨져 오는 느낌이 마치 떠나있던 나의 몸의 일부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포옹하고 있었다.
‘차라리 시간이 이 상태에서 멈추었으면…’
단순한 나의 바램일 뿐이었다.
나는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그녀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그나마 그녀와 만남이 나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대로 좌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시작했다. 전보다 더 체계적이고 강도가 높은 훈련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트레이너까지 확보하고 몸만들기와 건강을 찾는 것에 전념했다.
연아가 나를 찾아온 것은 상당히 이른 아침이었다. 내가 거주하는 장소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의 원룸을 찾아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준 그녀를 문밖에 세워둘 수 만 없어서 들어오게 하였다. 그녀는 내가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맞아주니 생긋한 미소를 지으면서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안개꽃 한다발과 투명한 유리병에 들어있는 초를 건내준다.
“기억하시죠? 이 안개꽃. 당신이 나에게 처음 선물한 것예요. 당신의 선물에 대한 복수고 이 초는 나의 순수한 선물이고…”
그녀가 자리를 잡고 앉고 내가 안개꽃을 유리병에 담아 그녀 앞에 둘 때까지 조용한 침묵 만이 있었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D건설에 투자했던 미국사모펀드가 D건설의 일정 자산을 매각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의도가 파악이 되질 앉아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계속 이어 나갔다.
“D건설을 확보하면 당신 회사였던 제우스 인베스먼트는 자동으로 인수하는 꼴이 됩니다.”
D건설 인수? 무슨 능력으로 무슨 자본으로?
나의 머리가 무척 천천히 돌아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도저히 무슨 의도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D건설을 인수하세요. 미국 사모펀드의 회장을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녀는 인수자금을 유럽계와 일본자금을 끌어서 차입매수(LBO) 하자는 것이었다. LBO는 피인수기업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끌어들여 인수하는 것이기에 자금이 별로 필요없었다.
“돈을 빌려주는 곳은 당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나에게 오기 전에 이미 금융업체들을 접촉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해야 했다. 연아가 도와주려는 순수한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그녀에게 매달려야 하는 것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심정이 더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녀는 내가 고민하자 서류봉투를 내어 밀었다.
“그 안에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어요. 한번 읽어 보세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으니 당신의 결단이 필요해요.”
머뭇거리던 그녀가 일어서서 나가고 나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주변 주택가의 빨레줄이었지만 오래된 나의 습관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뜯어본 서류봉투에는 연아가 접촉한 금융기관들의 조건과 금액이 적혀 있었다. A4용지에 간략하게 메모된 내용은 D건설의 자산 가치와 매각이 가능한 자산들도 있었다. 제우스 인베스먼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와 더불어 나온 내용에 미국 사모펀드의 회장이 여자라는 것 이었다. 50대 중반 정도되는 코가 매부리코여서 강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실적도 있었다. 사모펀드의 보편적 투자패턴인 2~3년 보유하고 매각하는 그런 수순이었다. 이번 D건설 자산 매각은 수익성이 가장 높은 아파트사업을 매각한다는 것이었다. 장기적 부동산 불황과 북한과의 관계에 매각이 수월한 아파트사업을 매각하여 투자환수와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주고 공공분야와 해외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의사였다.
며칠 후 나는 사모펀드사의 회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나를 소개하고 회사 인수의사를 밝혔다. 일부 사업보다 D건설 전체 지분을 인수할 의사를 밝혔다. 그날 저녁 회장인 케서린 코헨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나는 그녀와 서로 소개를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인수를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전체 지분 인수를 위해서 3조원을 제시했다. 서로 이메일과 팩스로 정보를 주고 받았다.
나에게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실수가 없도록 세세한 부분을 검토하고 가격이 절충되기 시작하면 마지노선에서 더 이상 물러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금융기관들이 제공할 액수가 있었는데 이것을 초과하면 차입금에 의존하는 나에게 인수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케서린과 직접 주고받는 동안 우리는 가격을 포함한 몇가지 이슈를 제외하곤 대부분 합의가 되어 가는 상태였다. 케서린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전화 통화를 시작하고 며칠 후 였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M 커피熾?나갔다. 연아가 다정하게 중년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동석하게 되었다.
케서린은 키도 컸지만 손과 발이 무척 커서 억세보이는 여성이었다. 기초화장만 하여서 수수한 편이었지만 그녀의 검은 테 안경 건너로 보이는 눈매는 날카로왔다.
연아가 중간에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풀어나갔다. D건설 매각 소식이 돌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다른 업체가 참여하여 가격을 올리는 현상이 나오면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무척 절박한 심정을 갖고 케서린을 대하게 되었다.
예상했던데로 가격과 지불조건에서 막혔다. 나는 한국시장 형편과 다른 이유를 대며 설명하고 설득하였다. 가격조건이 무리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외국투자자들이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하여 세금을 내지 않은 케이스로 여론이 악화되어 세금부담이 있다며 전혀 움직일 기세가 아니었다.
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계속 뚫고 나가려는 나와 막으려는 케서린의 방어에 지루하게 연장되고 있었다. 연아의 제안으로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와 간단한 술을 주문했다. 케서린은 외모에 맞게 술도 고래수준이었다. 전혀 피곤하거나 흐트러지는 기색없이 대장부같이 술을 마셨다.
“미스터 박, 우리 이제 사업얘기 그만 둡시다. 이번이 아니면 다른 사업에 다시 추진하면 됩니다.”
그녀는 이미 합의점을 모색하기가 불가능한 것을 눈치채고 나를 포기하는 눈치였다. 내가 올릴 수 있는 마지노선과 그녀의 가격은 약 5천억원의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돌려도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이것이 나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능력있는 펀더들은 이 때 어떻게 대처할 까?’
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으나 도저히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우리가 식사를 끝나고 헤어질 때는 이미 밤 10시 넘어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연아는 나를 위로하려다 멈추었다. 연아가 그렇게 준비해주고 도와주었건만 나의 무능력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나는 붙잡는 연아를 뿌리치고 돌아섰다.
집에 도착하여 열쇠를 꽂고 문을 열다 나는 도저히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탔다.
정신적인 혼란을 맛보았다. 내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하고 나는 닥치는데로 생활하였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미 약해진 의지는 나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의 손가락들이 나를 향하는 듯한 착각을 받곤 하였다.
어제 내가 깨어난 곳은 전에 자주가던 와인바의 뒷방이었다. 고주망태가 되어서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아서 골방에 눕혔더니 곤하게 쓰러지더란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인듯 하다.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몸에서 찌든 냄새가 나는데 내가 속상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겨우 몸을 추스려 계단을 올라왔다.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내 주머니에 잡혀지는 꾸겨진 종이를 펴 보았다. D건설 창립기념일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이었다. 장소는 남산의 H호텔 볼룸 이었다. 나는 미련을 버려야 내가 편할 것 같았지만 선뜻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그 초청장을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D건설은 급성장하는 업체라서 창립기념일에 요즘 힘을 받는 각계의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하였다. 칵테일 잔을 들고 이곳 저곳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화제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그 장소에 들어갈 때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더니 이제 나는 단순한 별로 반갑지 않은 객일 뿐 이었다.
새로 취임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나와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느낌을 받았다. 빈 속에 들어간 술은 나의 몸을 뜨겁게 하였다.
이 장소에 나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어서 그대로 걸어나왔다. 어디를 가야 하는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업무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대문 방향으로 산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 가는 거야. 하늘이 포기하였는데 내가 욕심내고 용쓴다고 바뀌겠냐?’나는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내 자신에게 충고하였다.
“박사장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찾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박사장님!”
내가 뒤 돌아 보았을 때,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연아가 숨이 차는지 헐떡거리며 손에 잡힐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희미한 미소 밖에 줄 것이 없었다.
그녀가 나의 팔짱을 끼고 길을 나섰을 때 나는 그녀에게 몸을 맏기고 따랐다.
우리가 그녀의 집을 들어설 때, 새로운 감회가 일어났다. 그녀는 항상 내 주변에 머물면서 나의 의지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막상 나는 그녀에게 준 것이 없었다.
그녀가 준비해준 욕탕에 누워서 그동안 술독에 빠졌던 독기를 빼는 느낌으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는데 이제 나의 것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눈을 감고 영원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내가 몸을 말리고 욕실을 나설 때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연아가 내가 목욕하는 동안에 음식을 장만한 모양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의 테이블에 놓여진 수저와 젓가락도 색상 배치와 놓여진 위치도 완벽한 상태였다. 그녀가 차려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댔다. 정성이 묻어나는 음식을 먹은지 오래된 듯 하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청초한 그녀의 모습은 눈의 모습도 흰자와 검은자의 대치가 완벽했다. 흰자는 티가 없이 순백의 모습 이었다. 그녀가 손에 안겨준 제스민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안드레 보첼리의 노래가 슬프게 연주되는 것을 제외하곤 우리는 정지된 세상에 있는 듯 한 착각을 느꼈다.
“이곳에 계세요. 저는 장선씨에게 부탁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그냥 부담없이 호의를 받아주세요. 당신 이곳에 계시다가 편하실 때 아무때나 가세요.”
“---“
“제가 부담스러우면 제가 친구네 집에 가있을께요.”
그녀의 뜻이 고마왔다. 그녀는 사정을 하였다.
“그렇게 무력하게 쓰러지지 마세요. 그런 분 아니시지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의 손을 잡아왔다. 그녀의 체온이 무척 따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함께 새 사업 시작해요. 다시 새롭게 시작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예요…”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나의 삶에 차지하는 역활과 비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호의를 받아도 되는 것인지…
나는 앉았던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의 다리 앞에 무릅을 꿇었다.
“연아씨, 나를 힘들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나는 무척 혼란스러워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왔다. 그녀의 무릅에 손을 얹고 그녀를 올려 보았다.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요. 내가 당신을 요구할 때 나를 도와줘요. 그러나 지금은 내가 받을 수 없어요.”
나는 무엇을 얘기하는 지 입에서 나오는데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지금 당신을 받을 수 없어요…”
우리는 서로 껴안고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막혔던 담이 주체를 못하고 터진 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품에서 내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이미 중천에 오른 후였다. 연아는 이미 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품이 포근했다. 나는 그녀를 살며시 안아보았다. 그녀의 몸이 안겨져 오는 느낌이 마치 떠나있던 나의 몸의 일부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포옹하고 있었다.
‘차라리 시간이 이 상태에서 멈추었으면…’
단순한 나의 바램일 뿐이었다.
나는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그녀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그나마 그녀와 만남이 나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대로 좌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시작했다. 전보다 더 체계적이고 강도가 높은 훈련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트레이너까지 확보하고 몸만들기와 건강을 찾는 것에 전념했다.
연아가 나를 찾아온 것은 상당히 이른 아침이었다. 내가 거주하는 장소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의 원룸을 찾아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준 그녀를 문밖에 세워둘 수 만 없어서 들어오게 하였다. 그녀는 내가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맞아주니 생긋한 미소를 지으면서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안개꽃 한다발과 투명한 유리병에 들어있는 초를 건내준다.
“기억하시죠? 이 안개꽃. 당신이 나에게 처음 선물한 것예요. 당신의 선물에 대한 복수고 이 초는 나의 순수한 선물이고…”
그녀가 자리를 잡고 앉고 내가 안개꽃을 유리병에 담아 그녀 앞에 둘 때까지 조용한 침묵 만이 있었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D건설에 투자했던 미국사모펀드가 D건설의 일정 자산을 매각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의도가 파악이 되질 앉아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계속 이어 나갔다.
“D건설을 확보하면 당신 회사였던 제우스 인베스먼트는 자동으로 인수하는 꼴이 됩니다.”
D건설 인수? 무슨 능력으로 무슨 자본으로?
나의 머리가 무척 천천히 돌아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도저히 무슨 의도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D건설을 인수하세요. 미국 사모펀드의 회장을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녀는 인수자금을 유럽계와 일본자금을 끌어서 차입매수(LBO) 하자는 것이었다. LBO는 피인수기업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끌어들여 인수하는 것이기에 자금이 별로 필요없었다.
“돈을 빌려주는 곳은 당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나에게 오기 전에 이미 금융업체들을 접촉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해야 했다. 연아가 도와주려는 순수한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그녀에게 매달려야 하는 것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심정이 더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녀는 내가 고민하자 서류봉투를 내어 밀었다.
“그 안에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어요. 한번 읽어 보세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으니 당신의 결단이 필요해요.”
머뭇거리던 그녀가 일어서서 나가고 나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주변 주택가의 빨레줄이었지만 오래된 나의 습관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뜯어본 서류봉투에는 연아가 접촉한 금융기관들의 조건과 금액이 적혀 있었다. A4용지에 간략하게 메모된 내용은 D건설의 자산 가치와 매각이 가능한 자산들도 있었다. 제우스 인베스먼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와 더불어 나온 내용에 미국 사모펀드의 회장이 여자라는 것 이었다. 50대 중반 정도되는 코가 매부리코여서 강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실적도 있었다. 사모펀드의 보편적 투자패턴인 2~3년 보유하고 매각하는 그런 수순이었다. 이번 D건설 자산 매각은 수익성이 가장 높은 아파트사업을 매각한다는 것이었다. 장기적 부동산 불황과 북한과의 관계에 매각이 수월한 아파트사업을 매각하여 투자환수와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주고 공공분야와 해외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의사였다.
며칠 후 나는 사모펀드사의 회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나를 소개하고 회사 인수의사를 밝혔다. 일부 사업보다 D건설 전체 지분을 인수할 의사를 밝혔다. 그날 저녁 회장인 케서린 코헨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나는 그녀와 서로 소개를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인수를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전체 지분 인수를 위해서 3조원을 제시했다. 서로 이메일과 팩스로 정보를 주고 받았다.
나에게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실수가 없도록 세세한 부분을 검토하고 가격이 절충되기 시작하면 마지노선에서 더 이상 물러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금융기관들이 제공할 액수가 있었는데 이것을 초과하면 차입금에 의존하는 나에게 인수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케서린과 직접 주고받는 동안 우리는 가격을 포함한 몇가지 이슈를 제외하곤 대부분 합의가 되어 가는 상태였다. 케서린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전화 통화를 시작하고 며칠 후 였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M 커피熾?나갔다. 연아가 다정하게 중년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동석하게 되었다.
케서린은 키도 컸지만 손과 발이 무척 커서 억세보이는 여성이었다. 기초화장만 하여서 수수한 편이었지만 그녀의 검은 테 안경 건너로 보이는 눈매는 날카로왔다.
연아가 중간에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풀어나갔다. D건설 매각 소식이 돌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다른 업체가 참여하여 가격을 올리는 현상이 나오면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무척 절박한 심정을 갖고 케서린을 대하게 되었다.
예상했던데로 가격과 지불조건에서 막혔다. 나는 한국시장 형편과 다른 이유를 대며 설명하고 설득하였다. 가격조건이 무리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외국투자자들이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하여 세금을 내지 않은 케이스로 여론이 악화되어 세금부담이 있다며 전혀 움직일 기세가 아니었다.
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계속 뚫고 나가려는 나와 막으려는 케서린의 방어에 지루하게 연장되고 있었다. 연아의 제안으로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와 간단한 술을 주문했다. 케서린은 외모에 맞게 술도 고래수준이었다. 전혀 피곤하거나 흐트러지는 기색없이 대장부같이 술을 마셨다.
“미스터 박, 우리 이제 사업얘기 그만 둡시다. 이번이 아니면 다른 사업에 다시 추진하면 됩니다.”
그녀는 이미 합의점을 모색하기가 불가능한 것을 눈치채고 나를 포기하는 눈치였다. 내가 올릴 수 있는 마지노선과 그녀의 가격은 약 5천억원의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돌려도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이것이 나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능력있는 펀더들은 이 때 어떻게 대처할 까?’
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으나 도저히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우리가 식사를 끝나고 헤어질 때는 이미 밤 10시 넘어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연아는 나를 위로하려다 멈추었다. 연아가 그렇게 준비해주고 도와주었건만 나의 무능력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나는 붙잡는 연아를 뿌리치고 돌아섰다.
집에 도착하여 열쇠를 꽂고 문을 열다 나는 도저히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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