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의 고3 시절은 아주 평범하게 지나갔다.
공부 밖에 몰랐다.
오직 공부만을 위해 시간을 보냈고..
나는 내가 원하던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의 모 대학에는 들어 갈 수 있었다.
누나는 지옥 같은 고3 일년간.. 나의 수험생 생활을 줄곧 도와 주었다.
힘든 공장 일을 하면서도 늘 도시락 싸느라 새벽5시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나를 위해 너무도 많이 고생을 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내가 대입시험을 치른 얼마 뒤에 서울 근교에 있던 공장으로 진급이 되어 갔다.
누나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었는데, 회사에서 누나와 다른 직원 몇 명을 새로 넓혀진 그 곳으로 보내 준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 갔다가 졸업할 때까지 나는 누나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부모님께서는 OO시 공사가 끝나신 뒤 친척분들이 많이 있었던 OO으로 이사를 하셨다.
내가 서울로 간 뒤, 우리 집이 너무 썰렁하다고 생각 하셨는지 팔아버리시고는 그 곳으로 가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 살고 계신다.
그리고,
경희는 내가 고3으로 정신 없을 때도 늘 우리 집을 드나들었고 외사촌 누나와도 잘 어울렸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라고 천마리 학을 접어주기도 했다.
나는 서울에 가서도 몇 차례 편지로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와 같은 대학에 합격하길 바랬다.
그러나, 경희는 결국 경제적인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친척을 따라 시골로 내려갔다고 했다.
편지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그녀와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경희가 서울로 오기 전에 내게 자신의 사진을 몇 장 오려 준 것을 늘 가지고 다녔다.
명희 누나는 그 이후 두 세 번인가를 더 나와 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그 때는 모두 내가 원해서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 임신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명희누나는 경희를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려고 했었다.
자기가 하지 못한 한을 풀려고 했었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명희누나는 내가 서울에 온 몇 년 후에 시집을 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어제..
나는 몇 년 만에 누나와 통화를 했습니다.
5년 전쯤이던가 누나는 OO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사귀다가 그 사람이랑 재혼을 한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누나와 가급적이면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년 전 저도 외국으로 나오면서 연락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생각이 나면서 누나에 대한 기억이 하나 둘씩 나더군요.
그래서 어제 오랜만에 잊고 있던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했습니다.
누나의 목소리는 여전했습니다..아직도 건강하시다고 그러고요.
제가 외국에서 혼자 사는 것이 걱정이 되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재촉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시더군요
누나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지도 모를 겁니다.
그리고, 굳이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이 글이 누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누나가 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누나는 제가 아직도 세상에서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 중에 한 사람 이니까 말입니다.
끝으로 사족..
힘들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 앞서 쓴 글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너무 단편적인 기억들 때문에 이야기가 조금 매끄러워 보이지 않고, 그때의 감상에만 빠진 글도 보이고 그러네요.
‘야설’이라고 하긴 좀 뭐한 부분도 있고…
너무 지루한 부분도 많아 보였습니다.
아마 글 쓴 경력이 미천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나중엔 더 좋아 지겠지요? (^ㅅ^)..
나중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자기 만족에 빠져서 이런 글을 쓰고 있었지만,
이렇게 저의 옛 이야기를 다 털어 놓고 보니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내 과거를 알고 있던 친구 녀석은 처음에 그냥 기구한(?) 너의 이야기를 써보라면서..
이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과거도 돌아보지만, 앞으로의 희망도 볼 거라고 꼬시더군요.
지금 느낌에.. 과거는 돌아 본 것 같은데..
희망은 잘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조만간 또 다른 저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끝까지 저에게 칭찬만 늘어놓으신 ‘근친고백카페’의 준꼬방장님 이하 많은 회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저를 너무 많이 띄워주셔서.. 소설 코너에도 올리는 무모한 짓을 하도록 만들어 주셨지만 (^ㅅ^:)
그리고, 소라소설에 올린 글을 읽고 좋은 이야기 해주시고 충고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4년 2월 어느 날
남십자성 아래에서
<끝>
나의 고3 시절은 아주 평범하게 지나갔다.
공부 밖에 몰랐다.
오직 공부만을 위해 시간을 보냈고..
나는 내가 원하던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의 모 대학에는 들어 갈 수 있었다.
누나는 지옥 같은 고3 일년간.. 나의 수험생 생활을 줄곧 도와 주었다.
힘든 공장 일을 하면서도 늘 도시락 싸느라 새벽5시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나를 위해 너무도 많이 고생을 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내가 대입시험을 치른 얼마 뒤에 서울 근교에 있던 공장으로 진급이 되어 갔다.
누나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었는데, 회사에서 누나와 다른 직원 몇 명을 새로 넓혀진 그 곳으로 보내 준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 갔다가 졸업할 때까지 나는 누나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부모님께서는 OO시 공사가 끝나신 뒤 친척분들이 많이 있었던 OO으로 이사를 하셨다.
내가 서울로 간 뒤, 우리 집이 너무 썰렁하다고 생각 하셨는지 팔아버리시고는 그 곳으로 가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 살고 계신다.
그리고,
경희는 내가 고3으로 정신 없을 때도 늘 우리 집을 드나들었고 외사촌 누나와도 잘 어울렸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라고 천마리 학을 접어주기도 했다.
나는 서울에 가서도 몇 차례 편지로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와 같은 대학에 합격하길 바랬다.
그러나, 경희는 결국 경제적인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친척을 따라 시골로 내려갔다고 했다.
편지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그녀와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경희가 서울로 오기 전에 내게 자신의 사진을 몇 장 오려 준 것을 늘 가지고 다녔다.
명희 누나는 그 이후 두 세 번인가를 더 나와 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그 때는 모두 내가 원해서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 임신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명희누나는 경희를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려고 했었다.
자기가 하지 못한 한을 풀려고 했었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명희누나는 내가 서울에 온 몇 년 후에 시집을 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어제..
나는 몇 년 만에 누나와 통화를 했습니다.
5년 전쯤이던가 누나는 OO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사귀다가 그 사람이랑 재혼을 한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누나와 가급적이면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년 전 저도 외국으로 나오면서 연락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생각이 나면서 누나에 대한 기억이 하나 둘씩 나더군요.
그래서 어제 오랜만에 잊고 있던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했습니다.
누나의 목소리는 여전했습니다..아직도 건강하시다고 그러고요.
제가 외국에서 혼자 사는 것이 걱정이 되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재촉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시더군요
누나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지도 모를 겁니다.
그리고, 굳이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이 글이 누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누나가 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누나는 제가 아직도 세상에서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 중에 한 사람 이니까 말입니다.
끝으로 사족..
힘들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 앞서 쓴 글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너무 단편적인 기억들 때문에 이야기가 조금 매끄러워 보이지 않고, 그때의 감상에만 빠진 글도 보이고 그러네요.
‘야설’이라고 하긴 좀 뭐한 부분도 있고…
너무 지루한 부분도 많아 보였습니다.
아마 글 쓴 경력이 미천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나중엔 더 좋아 지겠지요? (^ㅅ^)..
나중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자기 만족에 빠져서 이런 글을 쓰고 있었지만,
이렇게 저의 옛 이야기를 다 털어 놓고 보니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내 과거를 알고 있던 친구 녀석은 처음에 그냥 기구한(?) 너의 이야기를 써보라면서..
이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과거도 돌아보지만, 앞으로의 희망도 볼 거라고 꼬시더군요.
지금 느낌에.. 과거는 돌아 본 것 같은데..
희망은 잘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조만간 또 다른 저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끝까지 저에게 칭찬만 늘어놓으신 ‘근친고백카페’의 준꼬방장님 이하 많은 회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저를 너무 많이 띄워주셔서.. 소설 코너에도 올리는 무모한 짓을 하도록 만들어 주셨지만 (^ㅅ^:)
그리고, 소라소설에 올린 글을 읽고 좋은 이야기 해주시고 충고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4년 2월 어느 날
남십자성 아래에서
<끝>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
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9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야동토렌트, 국산야동토렌트, 성인토렌트, 한국야동, 중국야동토렌트, 19금토렌트 |
추천 0 비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