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이가 한동안 현식이 품에 안겨서 울먹이다가 말한다.
“아빠..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으응.. 술 한잔 하느라고..”
“그 아줌마한테 갔었어?”
“혜진아! 그런 소린…”
문득 전에 마누라가 자신이 술 마시고 오면 바가지 긁던 생각이 난다.
여자란 마누라던 딸이던 다 똑 같은가?
“아빠.. 미안해! 아빠가 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가 오지 않아서
걱정도 많이 되고..”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한잔했다. 자.. 저리로 가서 좀 앉자!”
같이 소파로 가서 앉는다.
“오늘 올 거라고 미리 연락을 하지..”
“당연히 아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 자꾸 외박하면 어떡해? 엄마가 걱정하잖아!”
“엄마도 오늘 늦게 들어 왔나 봐.. 아까부터 몇 번 전화했는데, 열한시가 넘어서 통화했어..
오늘 아빠 집에서 자고 간다고..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가 다 되어간다.
“요즘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더니, 잘 되어가는 모양이지?”
“그런가 봐..”
“네가 자주 여기 와서 자고 간다고 엄마가 뭐라 안 그래?”
“한번씩 말이야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애..”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기도 그렇고..”
“내가 알아서 잘 할게..”
“글쎄다.. 그건 그렇고, 혜진아!”
“왜? 아빠..”
“지금 내 감정도 너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야.. 딸로써 뿐만 아니라, 여자로써도..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꺼린다. 너의 앞길을 막는 것도 같고..
네가 정상적으로 또래의 남자애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나중에 가정을 꾸렸으면 좋을 것
같다.”
“아빠…”
혜진이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잘 알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난 이제 아빠없인 못살아..”
“네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빤 항상 네 곁에 있다.”
혜진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야.. 여자로써 하는 말이야.”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을 해봐. 네가 나말고 네 또래의 남자애와 사귈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처음에야 마음이 잘 가지 않고 내 생각도 많이 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점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갈 거야..”
혜진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현식이는 마음이 아프지만, 어차피 홍역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냉정해지리라 마음을 먹는다.
“지금은 늦었으니까 여기서 자고 가..
아빠는 바닥에서 잘 테니까 넌 침대에서 자..”
현식이가 소파에서 일어나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고 나온다.
혜진이는 계속 소파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다.
현식이가 혜진이에게 다가가서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혜진아.. 너무 슬프다고 생각 하지마.. 네가 우니까 아빠의 마음이 너무 아파..”
혜진이가 휴지로 눈물을 닦고 울음을 그친다.
현식이가 혜진이를 부축해서 침대로 데리고 간다.
“푹 자.. 자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을 거야..”
혜진이가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현식이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실내의 조명을 어둡게 한 뒤, 잠자리에 든다.
한동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고,
혜진이는 밤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혁이가 여기에 다녀가서 아빠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물론 자신도 아빠와의 관계가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빠말고는 다른 남자를 생각할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자리에 일어나서 아빠의 곁에 가서 품에 안겨 사랑을 받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아빠의 태도가 너무 완강한 것 같다.
새벽 네 시가 넘어서 간신히 잠이 든다.
현식이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아침 일곱시가 조금 넘어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장 속에 넣은 뒤 혜진이가 잠든 침대로 가보니
많이 수척해진 얼굴로 눈가에 눈물자욱이 조금 남아 있는 상태로 곤하게 잠이 들어 있다.
인석.. 왜 아빠한테 마음을 줘 가지곤..
혹시 혜진이가 잠에서 깰까 봐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잠시 서서 혜진이를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욕실에서 세면을 하고 나와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 식탁에 차려 놓고, 전기밥솥에
밥을 앉힌 뒤 참치 통조림과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시간을 보니 여덟시가 다 되어간다.
회사에 조금 늦을 것 같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서둘러 옷을 입은 뒤, 메모지를 꺼내 혜진이에게 몇자를 적는다.
“혜진아.
곤하게 자는 너를 깨울 수가 없어 너에게 몇자 적어 놓고 회사에 간다.
오늘 중요한 수업이 없으면 하루 쉬도록 하려무나.
김치찌개는 끓였으니까 식었으면 데우고 밥은 전기밥솥에 해 놓았으니까
꼭 밥을 먹고 가거라.
어젯밤에 아빠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네 장래가 걸린 문제이니까 현명하게 판단하리라 믿는다.
식사하고 나면 설거지는 나중에 아빠가 회사 갔다 와서 할 테니까
싱크대에 넣어두고 가거라..”
현식이는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혜진이가 큰 충격을 안 받았으면 좋겠는데..
똑똑한 아이니까 엉뚱한 행동은 하지 않겠지.
마음이 아프더라도 혜진이를 정상적인 자신의 울타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혜진이의 처녀야 자신이 취했다 하더라도 요즘은 옛날과는 달리 그것을 문제 삼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애당초 혜진이의 짝이 될 자격이 없는 남자일 것이다.
회사 마치자 마자 부랴부랴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혜진이는 없고 식탁을 보니 깨끗이 치워져 있다.
싱크대에도 빈 그릇은 보이지 않고 비어 있다.
밥솥을 열어보니 식사는 조금 한 모양이다.
녀석.. 입맛도 없었을 텐데 아빠가 걱정할까 봐 먹는 시늉을 한 모양이다.
그 이후, 보름이 다 되어 가도록 혜진이에게서 연락이 없다.
내 말대로 마음을 그렇게 먹었는가?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든다.
이젠 애인으로써의 딸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딸로써 혜진이를 대할 것이고
그 애의 행복을 위해서 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미주씨가 홀몸이라면 내 배필로써 적당할 터인데, 그녀 역시 임자가 있는 사람이다.
내 짝은 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냥 서로 도움을 주는 애인사이로 지내도록 해야겠다.
미주씨도 남편과의 성생활이 되지 않고, 자신 역시 홀몸이라 서로가 필요할 것이다.
육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격이나 마음씀씀이 역시 자신과는 잘 맞다.
하루는 오후 시간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처에게서 전화가 온다.
“저예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저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다른 게 아니라 요즘 혜진이가 많이 아파요.”
“뭐야? 혜진이가 아파?”
현식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기.. 병원에 가보아도 특별한 병은 없는 것 같은데, 몇 일째 식사도 하지 못하고
영 기운이 없는 게 기동을 못해요.. 삼일째 학교에도 못 가고 있어요.”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보름 전인가.. 당신 집에서 자고 온 뒤로 그렇네요.
자리에 누워서 계속 헛소리처럼 당신만 찾고 있어요..”
“알았어.. 내 지금 바로 갈게..”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차를 몰고 부랴부랴 전에 살던 집으로 향한다.
혜진이가 갑자기 왜 아픈가.. 혹시 안 좋은 병이라도 걸린 건가?
병원에서는 특별한 병이 없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큰 병원으로 데려가 봐야 겠다.
회사에서 삼십분이 걸리는 거리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어느 듯 도착하여 부근에 주차를 하고 한달음에 집에 쫓아 들어간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안방에서 전처가 나와서 자신을 맞이한다.
“당신이 온다고 하니까 조금 정신을 차렸어요..”
안방으로 들어간다.
혜진이가 자리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는지 몸을 움직인다.
“혜진아! 그대로 누워 있어.”
현식이가 외투를 벗고 혜진이 곁에 앉는다.
혜진이가 퀭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본다.
이마를 짚어 보니 크게 열은 없는 것 같다.
현식이가 혜진이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어 본다.
“많이 아파?”
혜진이가 이불 속에서 손을 빼내 자신의 이마를 짚고 있는 현식이의 손을 덮는다.
“이젠.. 괜찮아. 아빠를 보니까 힘이 나는 것 같아..”
“그래.. 힘을 내야지..”
미선이가 현식이를 보고 말한다.
“저 잠깐 나갔다 올께요. 요 앞의 마트에 가서 혜진이가 먹을 걸 좀 사와야 겠어요.
그 동안 얘가 하나도 먹질 못해서..”
미선이가 안방에서 나간다.
“아빠..”
“왜?”
“나.. 지난번에 아빠 집에서 그렇게 오고 난 뒤 많이 힘들었어..
아빠가 내 곁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세상 살기가 싫었어..
그래도.. 아빠를 생각해서.. 아빠도 많이 힘들 테니까.. 참을려고 애를 썼는데..
아빠 말처럼.. 같은 또래 남자아이와 어울리려고 생각도 해보고..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어..”
“그래.. 혜진아. 아빠가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힘들게 해서..”
“아빠.. 나.. 버리지 않는 거지?”
“암! 당연하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혜진이 인데..”
“그냥.. 딸로써만 생각하는 것은 싫어.. 전처럼 사랑하는 여자로 생각해줘..”
“인석…”
“약속해 줘..”
혜진이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현식을 바라본다.
그런 혜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다.
만일 거절한다면 혜진이가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만에 하나 혜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아빠…”
“알았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야지?”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애..”
혜진이가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괜찮겠니?”
“괜찮아.. 아빠.
아빠만 혜진이를 사랑해준다면 힘이 절로 날 것 같아..”
참! 어쩔 수가 없는 건가?
마트에 갔던 미선이가 돌아온다.
“아니? 일어났어? 아까까지만 해도 정신을 못 차리던 애가..
아빠가 좋긴 좋은 모양이구나? 계속 아빠만 찾더니…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너 좋아하는 잣죽을 끓여줄게..”
미선이가 주방으로 가더니, 미음과 잣죽을 끓여서 온다.
현식이와 미선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혜진이가 미음과 잣죽을 맛있게 먹는다.
“아.. 맛있어.”
혜진이가 그릇을 비운 뒤 현식이를 보고 쌩끗 웃는다.
“너.. 어린애들처럼 꾀병 부린 것 아냐?”
현식이가 혜진이를 보고 눈을 홀기면서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한다.
“왜? 꾀병 좀 부리면 안돼?”
혜진이가 혀를 낼름 내민다.
그런 혜진이와 현식이를 미선이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저 애한테 나는 필요 없고 아빠만 필요한가?
애들 때문에 이혼했던 부부가 재결합한다더니..
그러나, 이제 자신은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
돌아갈래도 돌아갈 수가 없다.
현식이와 같이 살 때는 현식이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더니,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인지..
현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젠 가봐야겠다. 혜진이도 기운을 차렸고..”
혜진이가 아쉬운 표정으로 현식이를 바라본다.
“아빠.. 벌써 가려고?”
“오늘은 일치감치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인석아.. 너 땜에 아빠가 십년감수했다. 몸조리 잘해! 또 아프지 말고..”
“알았어.. 나.. 내일부터 아빠 집에 자주 놀러 갈 거야.”
“공부는 언제 하고?”
“아버님.. 제가 공부 때문에 아버님한테 속 썩인 일이 있습니까?”
“인제 살만한 모양이구나.. 입에서 농담도 다 나오고?”
“아닙니다. 살펴가시옵소서..”
“하! 하! 하! 하!”
“호! 호! 호! 호!
“깔! 깔! 깔! 깔!
오랜만에 세 식구가 같이 웃는다.
현식이가 안방에서 나온다.
미선이가 따라 나오면서 현식이에게 말을 한다.
“저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해요.”
“그래?”
“마당으로 나가서 이야기해요.”
같이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온다.
“무슨 이야기인데?”
“혜진이에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저 요즈음 만나는 사람 있어요.”
“이야기는 들었어.. 잘 되어가?”
“서로 잘 맞는 것 같아요..”
“같이 살자고는 안 해?”
“안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비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됐네.. 당신도 여자 몸으로 혼자 살기가 힘들 텐데..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은 만나는 사람 없어요?”
“아직은.. 그런데 만일 당신이 그 사람하고 같이 살게 되면 혜진이는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번에 혜진이가 아프면서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낮겠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랄게..”
“고마워요.. 그 사람과의 일이 결정되면 당신에게 연락 드릴께요..”
현식이가 나와서 차를 타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돌아온다.
********************************************************
장편을 쓰다 보니 야설이 아니라 소설이 되어 가네요..
재미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써 보겠읍니다.
“아빠..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으응.. 술 한잔 하느라고..”
“그 아줌마한테 갔었어?”
“혜진아! 그런 소린…”
문득 전에 마누라가 자신이 술 마시고 오면 바가지 긁던 생각이 난다.
여자란 마누라던 딸이던 다 똑 같은가?
“아빠.. 미안해! 아빠가 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가 오지 않아서
걱정도 많이 되고..”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한잔했다. 자.. 저리로 가서 좀 앉자!”
같이 소파로 가서 앉는다.
“오늘 올 거라고 미리 연락을 하지..”
“당연히 아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 자꾸 외박하면 어떡해? 엄마가 걱정하잖아!”
“엄마도 오늘 늦게 들어 왔나 봐.. 아까부터 몇 번 전화했는데, 열한시가 넘어서 통화했어..
오늘 아빠 집에서 자고 간다고..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가 다 되어간다.
“요즘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더니, 잘 되어가는 모양이지?”
“그런가 봐..”
“네가 자주 여기 와서 자고 간다고 엄마가 뭐라 안 그래?”
“한번씩 말이야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애..”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기도 그렇고..”
“내가 알아서 잘 할게..”
“글쎄다.. 그건 그렇고, 혜진아!”
“왜? 아빠..”
“지금 내 감정도 너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야.. 딸로써 뿐만 아니라, 여자로써도..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꺼린다. 너의 앞길을 막는 것도 같고..
네가 정상적으로 또래의 남자애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나중에 가정을 꾸렸으면 좋을 것
같다.”
“아빠…”
혜진이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잘 알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난 이제 아빠없인 못살아..”
“네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빤 항상 네 곁에 있다.”
혜진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야.. 여자로써 하는 말이야.”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을 해봐. 네가 나말고 네 또래의 남자애와 사귈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처음에야 마음이 잘 가지 않고 내 생각도 많이 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점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갈 거야..”
혜진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현식이는 마음이 아프지만, 어차피 홍역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냉정해지리라 마음을 먹는다.
“지금은 늦었으니까 여기서 자고 가..
아빠는 바닥에서 잘 테니까 넌 침대에서 자..”
현식이가 소파에서 일어나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고 나온다.
혜진이는 계속 소파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다.
현식이가 혜진이에게 다가가서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혜진아.. 너무 슬프다고 생각 하지마.. 네가 우니까 아빠의 마음이 너무 아파..”
혜진이가 휴지로 눈물을 닦고 울음을 그친다.
현식이가 혜진이를 부축해서 침대로 데리고 간다.
“푹 자.. 자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을 거야..”
혜진이가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현식이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실내의 조명을 어둡게 한 뒤, 잠자리에 든다.
한동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고,
혜진이는 밤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혁이가 여기에 다녀가서 아빠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물론 자신도 아빠와의 관계가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빠말고는 다른 남자를 생각할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자리에 일어나서 아빠의 곁에 가서 품에 안겨 사랑을 받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아빠의 태도가 너무 완강한 것 같다.
새벽 네 시가 넘어서 간신히 잠이 든다.
현식이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아침 일곱시가 조금 넘어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장 속에 넣은 뒤 혜진이가 잠든 침대로 가보니
많이 수척해진 얼굴로 눈가에 눈물자욱이 조금 남아 있는 상태로 곤하게 잠이 들어 있다.
인석.. 왜 아빠한테 마음을 줘 가지곤..
혹시 혜진이가 잠에서 깰까 봐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잠시 서서 혜진이를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욕실에서 세면을 하고 나와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 식탁에 차려 놓고, 전기밥솥에
밥을 앉힌 뒤 참치 통조림과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시간을 보니 여덟시가 다 되어간다.
회사에 조금 늦을 것 같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서둘러 옷을 입은 뒤, 메모지를 꺼내 혜진이에게 몇자를 적는다.
“혜진아.
곤하게 자는 너를 깨울 수가 없어 너에게 몇자 적어 놓고 회사에 간다.
오늘 중요한 수업이 없으면 하루 쉬도록 하려무나.
김치찌개는 끓였으니까 식었으면 데우고 밥은 전기밥솥에 해 놓았으니까
꼭 밥을 먹고 가거라.
어젯밤에 아빠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네 장래가 걸린 문제이니까 현명하게 판단하리라 믿는다.
식사하고 나면 설거지는 나중에 아빠가 회사 갔다 와서 할 테니까
싱크대에 넣어두고 가거라..”
현식이는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혜진이가 큰 충격을 안 받았으면 좋겠는데..
똑똑한 아이니까 엉뚱한 행동은 하지 않겠지.
마음이 아프더라도 혜진이를 정상적인 자신의 울타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혜진이의 처녀야 자신이 취했다 하더라도 요즘은 옛날과는 달리 그것을 문제 삼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애당초 혜진이의 짝이 될 자격이 없는 남자일 것이다.
회사 마치자 마자 부랴부랴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혜진이는 없고 식탁을 보니 깨끗이 치워져 있다.
싱크대에도 빈 그릇은 보이지 않고 비어 있다.
밥솥을 열어보니 식사는 조금 한 모양이다.
녀석.. 입맛도 없었을 텐데 아빠가 걱정할까 봐 먹는 시늉을 한 모양이다.
그 이후, 보름이 다 되어 가도록 혜진이에게서 연락이 없다.
내 말대로 마음을 그렇게 먹었는가?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든다.
이젠 애인으로써의 딸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딸로써 혜진이를 대할 것이고
그 애의 행복을 위해서 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미주씨가 홀몸이라면 내 배필로써 적당할 터인데, 그녀 역시 임자가 있는 사람이다.
내 짝은 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냥 서로 도움을 주는 애인사이로 지내도록 해야겠다.
미주씨도 남편과의 성생활이 되지 않고, 자신 역시 홀몸이라 서로가 필요할 것이다.
육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격이나 마음씀씀이 역시 자신과는 잘 맞다.
하루는 오후 시간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처에게서 전화가 온다.
“저예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저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다른 게 아니라 요즘 혜진이가 많이 아파요.”
“뭐야? 혜진이가 아파?”
현식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기.. 병원에 가보아도 특별한 병은 없는 것 같은데, 몇 일째 식사도 하지 못하고
영 기운이 없는 게 기동을 못해요.. 삼일째 학교에도 못 가고 있어요.”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보름 전인가.. 당신 집에서 자고 온 뒤로 그렇네요.
자리에 누워서 계속 헛소리처럼 당신만 찾고 있어요..”
“알았어.. 내 지금 바로 갈게..”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차를 몰고 부랴부랴 전에 살던 집으로 향한다.
혜진이가 갑자기 왜 아픈가.. 혹시 안 좋은 병이라도 걸린 건가?
병원에서는 특별한 병이 없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큰 병원으로 데려가 봐야 겠다.
회사에서 삼십분이 걸리는 거리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어느 듯 도착하여 부근에 주차를 하고 한달음에 집에 쫓아 들어간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안방에서 전처가 나와서 자신을 맞이한다.
“당신이 온다고 하니까 조금 정신을 차렸어요..”
안방으로 들어간다.
혜진이가 자리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는지 몸을 움직인다.
“혜진아! 그대로 누워 있어.”
현식이가 외투를 벗고 혜진이 곁에 앉는다.
혜진이가 퀭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본다.
이마를 짚어 보니 크게 열은 없는 것 같다.
현식이가 혜진이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어 본다.
“많이 아파?”
혜진이가 이불 속에서 손을 빼내 자신의 이마를 짚고 있는 현식이의 손을 덮는다.
“이젠.. 괜찮아. 아빠를 보니까 힘이 나는 것 같아..”
“그래.. 힘을 내야지..”
미선이가 현식이를 보고 말한다.
“저 잠깐 나갔다 올께요. 요 앞의 마트에 가서 혜진이가 먹을 걸 좀 사와야 겠어요.
그 동안 얘가 하나도 먹질 못해서..”
미선이가 안방에서 나간다.
“아빠..”
“왜?”
“나.. 지난번에 아빠 집에서 그렇게 오고 난 뒤 많이 힘들었어..
아빠가 내 곁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세상 살기가 싫었어..
그래도.. 아빠를 생각해서.. 아빠도 많이 힘들 테니까.. 참을려고 애를 썼는데..
아빠 말처럼.. 같은 또래 남자아이와 어울리려고 생각도 해보고..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어..”
“그래.. 혜진아. 아빠가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힘들게 해서..”
“아빠.. 나.. 버리지 않는 거지?”
“암! 당연하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혜진이 인데..”
“그냥.. 딸로써만 생각하는 것은 싫어.. 전처럼 사랑하는 여자로 생각해줘..”
“인석…”
“약속해 줘..”
혜진이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현식을 바라본다.
그런 혜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다.
만일 거절한다면 혜진이가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만에 하나 혜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아빠…”
“알았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야지?”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애..”
혜진이가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괜찮겠니?”
“괜찮아.. 아빠.
아빠만 혜진이를 사랑해준다면 힘이 절로 날 것 같아..”
참! 어쩔 수가 없는 건가?
마트에 갔던 미선이가 돌아온다.
“아니? 일어났어? 아까까지만 해도 정신을 못 차리던 애가..
아빠가 좋긴 좋은 모양이구나? 계속 아빠만 찾더니…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너 좋아하는 잣죽을 끓여줄게..”
미선이가 주방으로 가더니, 미음과 잣죽을 끓여서 온다.
현식이와 미선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혜진이가 미음과 잣죽을 맛있게 먹는다.
“아.. 맛있어.”
혜진이가 그릇을 비운 뒤 현식이를 보고 쌩끗 웃는다.
“너.. 어린애들처럼 꾀병 부린 것 아냐?”
현식이가 혜진이를 보고 눈을 홀기면서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한다.
“왜? 꾀병 좀 부리면 안돼?”
혜진이가 혀를 낼름 내민다.
그런 혜진이와 현식이를 미선이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저 애한테 나는 필요 없고 아빠만 필요한가?
애들 때문에 이혼했던 부부가 재결합한다더니..
그러나, 이제 자신은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
돌아갈래도 돌아갈 수가 없다.
현식이와 같이 살 때는 현식이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더니,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인지..
현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젠 가봐야겠다. 혜진이도 기운을 차렸고..”
혜진이가 아쉬운 표정으로 현식이를 바라본다.
“아빠.. 벌써 가려고?”
“오늘은 일치감치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인석아.. 너 땜에 아빠가 십년감수했다. 몸조리 잘해! 또 아프지 말고..”
“알았어.. 나.. 내일부터 아빠 집에 자주 놀러 갈 거야.”
“공부는 언제 하고?”
“아버님.. 제가 공부 때문에 아버님한테 속 썩인 일이 있습니까?”
“인제 살만한 모양이구나.. 입에서 농담도 다 나오고?”
“아닙니다. 살펴가시옵소서..”
“하! 하! 하! 하!”
“호! 호! 호! 호!
“깔! 깔! 깔! 깔!
오랜만에 세 식구가 같이 웃는다.
현식이가 안방에서 나온다.
미선이가 따라 나오면서 현식이에게 말을 한다.
“저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해요.”
“그래?”
“마당으로 나가서 이야기해요.”
같이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온다.
“무슨 이야기인데?”
“혜진이에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저 요즈음 만나는 사람 있어요.”
“이야기는 들었어.. 잘 되어가?”
“서로 잘 맞는 것 같아요..”
“같이 살자고는 안 해?”
“안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비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됐네.. 당신도 여자 몸으로 혼자 살기가 힘들 텐데..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은 만나는 사람 없어요?”
“아직은.. 그런데 만일 당신이 그 사람하고 같이 살게 되면 혜진이는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번에 혜진이가 아프면서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낮겠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랄게..”
“고마워요.. 그 사람과의 일이 결정되면 당신에게 연락 드릴께요..”
현식이가 나와서 차를 타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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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을 쓰다 보니 야설이 아니라 소설이 되어 가네요..
재미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써 보겠읍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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