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나타 - 제10부
혜진이가 아빠한테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아빠한테 대한 애틋한 감정이 사랑이란 걸 확신하게 되었지만, 자신 역시
아빠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아니,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상식이란 게 있고,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자신과 아빠와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한편으로 사랑이란 국경과 나이를… 모든 조건들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전혀 안될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해본다.
크리스챤은 아니지만,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 때,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그 반려자인 여자를 만들었고, 그 자손들 역시 한 부부의 소생들끼리 결합을 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인간의 역사는 근친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볍고, 아빠와의 사랑을 이루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요즈음 동아리 모임에 간다든지, 간혹 인혁이를 만나면 예전과는 달리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자신한테 관심을 가져 주었는데, 자신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 마음을 돌렸는가?
조금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오히려 홀가분하다.
요즘 하루하루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에 속이 바짝바짝 타고, 식욕도 떨어져 몸이 많이
수척해지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아빠의 집에 찾아가서 아빠에게 안기고 싶지만, 자신 역시 아빠를 사랑한다고는
하나 아직 남자의 경험이 없는 숫처녀이다.
그런 숫처녀가 아무리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알몸으로 아빠에게 안겨 있었는데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동아리 모임이 있어 오후 강의를 다 듣고 동아리 모임이 있는 OO강의실로 향한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인혁이가 자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아무리 자신한테 대한 마음을 접더라도 원수 대하듯 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냥 후배로 편하게 대하면 될 것을..
인혁이는 인혁이대로 요즘 사는 게 의욕이 없다.
그렇게 혜진이를 순수하게 보고 마음을 주었는데, 중년남자의 애인이라니…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여자로 보았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되나?
혜진이한테 사실을 확인해 보아야 하나?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혜진이가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 사라져
더욱 자신이 비참해질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사실을 부정하는 혜진이한테 실망감만 더할 뿐인 것을..
차라리 그 중년남자에게 확인을 해보자!
그리고, 나의 마음을 깨끗이 정리해야겠다.
오늘도 현식이는 회사에서 퇴근하여 직접 저녁을 차려 먹는다.
대충 식사를 끝내고 냉장고에서 양주를 꺼내 그라스에 따르고 얼음조각을 집어넣고
소파로 와서 마시며 혼자 생각에 잠긴다.
며칠 전, 혜진이 문제로 인해 골치가 썩이다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혜진이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본의 아닌 금욕생활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은 의도적으로 미주를 유혹해서 안았었는데, 그 일마저 번뇌를 만든다.
내가 정말 미주를 사랑해서 그녀를 안았던가?
그녀 역시 임자가 있는 유부녀이다.
그리고, 미주를 안아보니 그녀 역시 남편말고는 자신이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나름대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잘 지켜가고 있는데, 내가 그런 미주의
생활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는가?
마누라와 오랜 세월을 갈등 속에서 살다가 자신이 원한 대로 이혼을 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생활 역시 자신에게 번뇌를 만든다.
혜진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나도 혜진이를 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맞다라고.. 아니다라고 단정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혜진이가 어릴 적부터 유난히 귀여워하고 거의 내 품에서 자라다시피 했었고,
혜진이가 사춘기 때에 하루하루 달라지는 혜진이의 가슴을 보고 한번 보고 싶었고
만지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아빠와 딸 사이 이상의 감정이 있었던가?
처음 이혼하고 나서 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며칠간은 새로운 생활 때문에 혜진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 이후 혜진이가 여기에 찾아오면서 다시 예전처럼
혜진이와의 사이가 부쩍 가까워지고, 하루라도 혜진이가 오지 않으면 허전하고
보고 싶었다.
상큼한 혜진이의 모습, 발랄하고 구김이 없는 혜진이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혜진이에게 동화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요즘 근 보름 간을 혜진이가 여기에 들리지 않는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기에 들리던 혜진이가 들리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많이 보고싶다.
그날 일 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다른 일이 생겼는가? 혹, 몸이라도 아픈지..
전화를 해보려고 해도 망서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책도 없이 혜진이에게 전화를 했다가 우려한 이상의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오늘은 양주 두 잔째를 얼음에 타서 마신다.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벨이 울린다.
혜진이인가? 지금 시간이 아홉시라 늦은 시간인데 전화도 없이 찾아온 건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연다.
웬 젊은 청년 하나가 좀 심각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다.
“누구인지?”
“저.. 혜진이 친구인데요..”
“아! 그래요? 어서 들어와요.”
소파로 걸어와서 자리를 권한다.
“이 쪽으로 앉아요.”
현식이가 소파에 앉자 그 청년도 현식이 맞은편에 앉는다.
“그런데, 늦은 시간에 웬일로?’
청년이 현식이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현식이 얼굴을 살펴본다.
“혜진이 친구라면 학생일 텐데 이 시간에 혼자 여기에 무슨 일로 왔어요?
참.. 커피한잔 드릴까?”
“아니.. 커피는 됐습니다. 한가지 여쭤볼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왔습니다.
혹시.. 혜진이와는 어떻게 되십니까?”
“혜진이가 말 안 하던가요? 내가 혜진이 아빠인데..”
“아! 그렇습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청년의 얼굴에서 안도하는 표정이 나타난다.
“혜진이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아이구.. 말씀 낮추십시오! 아들이나 마찬가지인데..
제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박 인혁이라고 합니다. 혜진이보다 이년 선배이고요.”
“그럴까? 그럼 혜진이보다 두 살이 많은가?”
“아닙니다. 작년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했으니 혜진이보다 다섯 살이 많습니다.”
현식이가 찬찬히 인혁의 얼굴을 살핀다.
아까 들어올 때 보니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남자답게 생긴 게 괜찮게 보인다.
“혜진이와 사귀나 보지?”
“아직은.. 혜진이가 저한테 마음을 안 주네요.”
“그런데 오늘 웬일인가?”
“제가 조금 오해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혜진이가 술을 마시고 여기 왔을 때,
제가 뒤따라 왔었습니다. 술을 마신 혜진이가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확인하러 왔나 보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됐네! 혜진이를 걱정해 주는 자네한테 오히려 고마워 해야지.”
그럼, 그날 미주 가게에 왔다던 남자애가 이 친구인 모양이군.
“자네.. 맥주 한잔 할텐가?”
“괜찮으시다면..”
현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로 가서 맥주 두병과 땅콩을 가지고 온다.
맥주병을 따서 인혁이에게 따르려니, 인혁이가
“아닙니다. 제가 먼저 한잔 올리겠습니다.”
맥주병을 인혁이에게 주고 잔을 들어 한잔 받는다.
그리고, 현식이가 다시 맥주병을 받아 들고 인혁이 잔에 한잔 따라준다.
“자.. 한잔 하세나.”
“예! 아버님.”
이 녀석이? 아버님이라니.. 조금 있으면 딸을 달라고 할 판이군.
같이 잔을 들고 한잔을 마신다.
고개를 돌리고 마시는 모습이 조금 가정교육은 된 듯 싶다.
인혁이가 현식의 빈잔에 맥주를 따르고, 현식이도 인혁이의 잔에 맥주를 따라준다.
현식이가 인혁을 바라보며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자네.. 혜진이한테 대시를 해보지? 마음을 안 준다고 그러고 있지 말고..”
“노력은 하는데 혜진이가 저한테 계속 거리를 두네요.”
“그래서 포기할 텐가?”
“사실은 오늘 아버님을 만나 뵙고, 마음을 정하려고 했읍니다만..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식이가 보기에 인혁의 성격도 시원시원한 게 혜진이 친구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인혁이가 현식의 표정을 살피더니 머뭇거리며 어렵게 입을 연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서 사십니까?”
“왜? 궁금한가? 사실은 얼마 전에 혜진이 엄마와 이혼을 했네.
그래서 혜진이가 요즘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고..”
“아.. 그렇습니까?”
이젠 인혁이가 이해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 날 혜진이가 술을 마시고 그랬었구나..
“그런데, 자네.. 그날 혜진이와 술 마시러 간 데가 혜진이가 살던 동네라던데?”
“아.. 예! 혜진이가 그리로 가자고 해서 따라갔었습니다.”
“그 녀석이 거길 어떻게 알고?”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혜진이가 아마.. 내가 그 술집 마담과 사귀는 게 아닌가 해서 그랬을 걸세.”
“그랬었군요..”
어느 새 맥주 두병이 비워진다.
“자네.. 한잔 더 할텐가?”
“아닙니다! 이젠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인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여러가지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닐세..”
현식이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혁이가 현관으로 나와서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나간다.
“그러..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
“안녕히 계십시오!”
인혁이가 아파트를 나오면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럼 그렇지.. 혜진이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나저나 앞으로 혜진이를 미안해서 어떻게 보나?
남자가 되어 가지고 여자를 의심이나 하고.. 옹졸하다고 비웃지나 않을까?
인혁이가 가고 난 뒤, 현식은 소파에 앉아 TV를 켠다.
하지만, TV화면은 눈에 하나도 들어 오지 않는다.
혜진이 또래 남자친구를 보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물론 남자애가 인물이나 성격도 괜찮은 것 같고, 혜진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괜찮고
혜진이 남자친구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또 아빠 품에서 떠나려는가?
예전에 중학교 시절 혜진이가 초경을 하고 아빠 품에서 멀어졌듯이..
딸은 키워서 시집을 보내면, 남의 식구가 된다더니.. 이젠 혜진이 나이도 이십대로
접어 들었고, 몇 년 안 있으면 시집을 가야 할 나이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혜진이를 좋아하는 또래 남자애를 보고 나니
더욱 실감이 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들 장가를 보내면 엄마가 울고 딸을 시집 보내면 아빠가 운다더니…
언제까지 딸로 데리고 살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더욱 더 혜진이가 보고 싶다.
혜진이는 오후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계속 아빠
생각만 하고 있다.
오늘은 기필코 아빠를 만나러 가리라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자신도 놀랄 정도로 얼굴이 수척해 있었다.
이것 저것 따질 필요도 없이 무조건 아빠를 찾아가서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다.
현식이는 회사를 마치고 미주의 가게에 들린다.
지난번 미주와 몸을 섞고 난 뒤, 처음으로 미주한테 들리는 것이다.
그 동안 미주 가게로 전화하기도 그렇고 해서 연락을 하지 못했었다.
가게로 들어서니, 손님이 없는지 미주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가 들어서는
현식이를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미주가 얼굴이 빨개져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
“별일 없었지요?”
“예…”
늘상 앉는 자리에 현식이가 앉는다.
미주가 현식이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맥주를 내온다.
맥주병을 따면서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주가 현식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현식이도 맥주병을 들고 미주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자,, 한잔해요.”
현식이가 잔을 들어 올리자 미주도 잔을 든다.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미주의 모습이 귀여운 것 같아 현식이가
빙그레 웃는다.
현식이가 맥주를 한잔 쭉 들이킨다.
미주는 맥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비어 있는 현식의 잔에 다시 맥주를 따른다.
그런 미주를 보고 현식이가 묻는다.
“오늘 일하는 아주머니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네요?”
“오늘 일이 있다고 하루 쉰다네요..”
아직도 미주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고개를 좀 들어요. 나쁜 짓 한 것 있어요?”
미주가 빨개진 얼굴을 들고 투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한다.
“제가 나쁜 짓 한 게 뭐 있다고..”
“그 사이 미주씨가 많이 이뻐진 것 같아요..”
“설마?”
“사랑을 하면 이뻐진다고 그러잖아요?”
“참.. 자꾸 골리실 거예요?”
미주가 현식을 보고 눈을 홀긴다.
“하! 하! 하! 하!”
현식이가 잔을 들고 맥주를 비운다.
다시 미주가 현식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미주씨는 안 마셔요?”
미주가 잔을 들어 올린다.
“요즘 내가 현식씨 때문에 술꾼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술 맛이 인생의 맛이라고 그러잖아요?”
“참.. 지어내기는..”
“괜찮지요?”
미주가 무슨 말인가 하고 현식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한다.
“괜찮아요.. 저도 어린애가 아니고, 그냥 현식씨와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어요.
가정을 깨트리도 싶은 마음도 없고.. 한번씩 외로울 때 현식씨와 만났으면 해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고요..”
마침 손님이 한 팀 들어온다.
미주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없어서 제가 접대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냥 편하게 앉아서 한잔 하세요.”
“알았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손님한테 가보세요.
제가 알아서 마실께요.”
미주가 가버리고 현식이 혼자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여섯 병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주가 손님 좌석에 있다가 현식이에게 온다.
“벌써 가시게요?”
“가봐야지요. 어제도 술을 마셨더니 오늘은 술이 빨리 오르는 것 같네요.”
“건강도 생각을 하셔야지요.”
현식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술이 얼큰히 오르는 것 같다.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현식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아파트 현관문에 키를 꽂고 돌리니, 문이 열려 있어 의아한 마음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니, 혜진이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현식이에게 달려오더니
현식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현식의 입술을 찾는다.
갑자기 술이 왈칵 오르는 것 같다.
현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열고 혜진이의 혀를 받아 들인다.
혜진이가 아빠한테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아빠한테 대한 애틋한 감정이 사랑이란 걸 확신하게 되었지만, 자신 역시
아빠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아니,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상식이란 게 있고,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자신과 아빠와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한편으로 사랑이란 국경과 나이를… 모든 조건들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전혀 안될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해본다.
크리스챤은 아니지만,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 때,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그 반려자인 여자를 만들었고, 그 자손들 역시 한 부부의 소생들끼리 결합을 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인간의 역사는 근친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볍고, 아빠와의 사랑을 이루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요즈음 동아리 모임에 간다든지, 간혹 인혁이를 만나면 예전과는 달리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자신한테 관심을 가져 주었는데, 자신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 마음을 돌렸는가?
조금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오히려 홀가분하다.
요즘 하루하루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에 속이 바짝바짝 타고, 식욕도 떨어져 몸이 많이
수척해지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아빠의 집에 찾아가서 아빠에게 안기고 싶지만, 자신 역시 아빠를 사랑한다고는
하나 아직 남자의 경험이 없는 숫처녀이다.
그런 숫처녀가 아무리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알몸으로 아빠에게 안겨 있었는데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동아리 모임이 있어 오후 강의를 다 듣고 동아리 모임이 있는 OO강의실로 향한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인혁이가 자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아무리 자신한테 대한 마음을 접더라도 원수 대하듯 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냥 후배로 편하게 대하면 될 것을..
인혁이는 인혁이대로 요즘 사는 게 의욕이 없다.
그렇게 혜진이를 순수하게 보고 마음을 주었는데, 중년남자의 애인이라니…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여자로 보았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되나?
혜진이한테 사실을 확인해 보아야 하나?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혜진이가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 사라져
더욱 자신이 비참해질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사실을 부정하는 혜진이한테 실망감만 더할 뿐인 것을..
차라리 그 중년남자에게 확인을 해보자!
그리고, 나의 마음을 깨끗이 정리해야겠다.
오늘도 현식이는 회사에서 퇴근하여 직접 저녁을 차려 먹는다.
대충 식사를 끝내고 냉장고에서 양주를 꺼내 그라스에 따르고 얼음조각을 집어넣고
소파로 와서 마시며 혼자 생각에 잠긴다.
며칠 전, 혜진이 문제로 인해 골치가 썩이다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혜진이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본의 아닌 금욕생활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은 의도적으로 미주를 유혹해서 안았었는데, 그 일마저 번뇌를 만든다.
내가 정말 미주를 사랑해서 그녀를 안았던가?
그녀 역시 임자가 있는 유부녀이다.
그리고, 미주를 안아보니 그녀 역시 남편말고는 자신이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나름대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잘 지켜가고 있는데, 내가 그런 미주의
생활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는가?
마누라와 오랜 세월을 갈등 속에서 살다가 자신이 원한 대로 이혼을 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생활 역시 자신에게 번뇌를 만든다.
혜진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나도 혜진이를 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맞다라고.. 아니다라고 단정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혜진이가 어릴 적부터 유난히 귀여워하고 거의 내 품에서 자라다시피 했었고,
혜진이가 사춘기 때에 하루하루 달라지는 혜진이의 가슴을 보고 한번 보고 싶었고
만지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아빠와 딸 사이 이상의 감정이 있었던가?
처음 이혼하고 나서 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며칠간은 새로운 생활 때문에 혜진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 이후 혜진이가 여기에 찾아오면서 다시 예전처럼
혜진이와의 사이가 부쩍 가까워지고, 하루라도 혜진이가 오지 않으면 허전하고
보고 싶었다.
상큼한 혜진이의 모습, 발랄하고 구김이 없는 혜진이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혜진이에게 동화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요즘 근 보름 간을 혜진이가 여기에 들리지 않는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기에 들리던 혜진이가 들리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많이 보고싶다.
그날 일 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다른 일이 생겼는가? 혹, 몸이라도 아픈지..
전화를 해보려고 해도 망서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책도 없이 혜진이에게 전화를 했다가 우려한 이상의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오늘은 양주 두 잔째를 얼음에 타서 마신다.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벨이 울린다.
혜진이인가? 지금 시간이 아홉시라 늦은 시간인데 전화도 없이 찾아온 건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연다.
웬 젊은 청년 하나가 좀 심각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다.
“누구인지?”
“저.. 혜진이 친구인데요..”
“아! 그래요? 어서 들어와요.”
소파로 걸어와서 자리를 권한다.
“이 쪽으로 앉아요.”
현식이가 소파에 앉자 그 청년도 현식이 맞은편에 앉는다.
“그런데, 늦은 시간에 웬일로?’
청년이 현식이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현식이 얼굴을 살펴본다.
“혜진이 친구라면 학생일 텐데 이 시간에 혼자 여기에 무슨 일로 왔어요?
참.. 커피한잔 드릴까?”
“아니.. 커피는 됐습니다. 한가지 여쭤볼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왔습니다.
혹시.. 혜진이와는 어떻게 되십니까?”
“혜진이가 말 안 하던가요? 내가 혜진이 아빠인데..”
“아! 그렇습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청년의 얼굴에서 안도하는 표정이 나타난다.
“혜진이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아이구.. 말씀 낮추십시오! 아들이나 마찬가지인데..
제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박 인혁이라고 합니다. 혜진이보다 이년 선배이고요.”
“그럴까? 그럼 혜진이보다 두 살이 많은가?”
“아닙니다. 작년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했으니 혜진이보다 다섯 살이 많습니다.”
현식이가 찬찬히 인혁의 얼굴을 살핀다.
아까 들어올 때 보니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남자답게 생긴 게 괜찮게 보인다.
“혜진이와 사귀나 보지?”
“아직은.. 혜진이가 저한테 마음을 안 주네요.”
“그런데 오늘 웬일인가?”
“제가 조금 오해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혜진이가 술을 마시고 여기 왔을 때,
제가 뒤따라 왔었습니다. 술을 마신 혜진이가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확인하러 왔나 보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됐네! 혜진이를 걱정해 주는 자네한테 오히려 고마워 해야지.”
그럼, 그날 미주 가게에 왔다던 남자애가 이 친구인 모양이군.
“자네.. 맥주 한잔 할텐가?”
“괜찮으시다면..”
현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로 가서 맥주 두병과 땅콩을 가지고 온다.
맥주병을 따서 인혁이에게 따르려니, 인혁이가
“아닙니다. 제가 먼저 한잔 올리겠습니다.”
맥주병을 인혁이에게 주고 잔을 들어 한잔 받는다.
그리고, 현식이가 다시 맥주병을 받아 들고 인혁이 잔에 한잔 따라준다.
“자.. 한잔 하세나.”
“예! 아버님.”
이 녀석이? 아버님이라니.. 조금 있으면 딸을 달라고 할 판이군.
같이 잔을 들고 한잔을 마신다.
고개를 돌리고 마시는 모습이 조금 가정교육은 된 듯 싶다.
인혁이가 현식의 빈잔에 맥주를 따르고, 현식이도 인혁이의 잔에 맥주를 따라준다.
현식이가 인혁을 바라보며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자네.. 혜진이한테 대시를 해보지? 마음을 안 준다고 그러고 있지 말고..”
“노력은 하는데 혜진이가 저한테 계속 거리를 두네요.”
“그래서 포기할 텐가?”
“사실은 오늘 아버님을 만나 뵙고, 마음을 정하려고 했읍니다만..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식이가 보기에 인혁의 성격도 시원시원한 게 혜진이 친구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인혁이가 현식의 표정을 살피더니 머뭇거리며 어렵게 입을 연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서 사십니까?”
“왜? 궁금한가? 사실은 얼마 전에 혜진이 엄마와 이혼을 했네.
그래서 혜진이가 요즘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고..”
“아.. 그렇습니까?”
이젠 인혁이가 이해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 날 혜진이가 술을 마시고 그랬었구나..
“그런데, 자네.. 그날 혜진이와 술 마시러 간 데가 혜진이가 살던 동네라던데?”
“아.. 예! 혜진이가 그리로 가자고 해서 따라갔었습니다.”
“그 녀석이 거길 어떻게 알고?”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혜진이가 아마.. 내가 그 술집 마담과 사귀는 게 아닌가 해서 그랬을 걸세.”
“그랬었군요..”
어느 새 맥주 두병이 비워진다.
“자네.. 한잔 더 할텐가?”
“아닙니다! 이젠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인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여러가지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닐세..”
현식이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혁이가 현관으로 나와서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나간다.
“그러..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
“안녕히 계십시오!”
인혁이가 아파트를 나오면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럼 그렇지.. 혜진이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나저나 앞으로 혜진이를 미안해서 어떻게 보나?
남자가 되어 가지고 여자를 의심이나 하고.. 옹졸하다고 비웃지나 않을까?
인혁이가 가고 난 뒤, 현식은 소파에 앉아 TV를 켠다.
하지만, TV화면은 눈에 하나도 들어 오지 않는다.
혜진이 또래 남자친구를 보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물론 남자애가 인물이나 성격도 괜찮은 것 같고, 혜진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괜찮고
혜진이 남자친구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또 아빠 품에서 떠나려는가?
예전에 중학교 시절 혜진이가 초경을 하고 아빠 품에서 멀어졌듯이..
딸은 키워서 시집을 보내면, 남의 식구가 된다더니.. 이젠 혜진이 나이도 이십대로
접어 들었고, 몇 년 안 있으면 시집을 가야 할 나이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혜진이를 좋아하는 또래 남자애를 보고 나니
더욱 실감이 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들 장가를 보내면 엄마가 울고 딸을 시집 보내면 아빠가 운다더니…
언제까지 딸로 데리고 살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더욱 더 혜진이가 보고 싶다.
혜진이는 오후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계속 아빠
생각만 하고 있다.
오늘은 기필코 아빠를 만나러 가리라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자신도 놀랄 정도로 얼굴이 수척해 있었다.
이것 저것 따질 필요도 없이 무조건 아빠를 찾아가서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다.
현식이는 회사를 마치고 미주의 가게에 들린다.
지난번 미주와 몸을 섞고 난 뒤, 처음으로 미주한테 들리는 것이다.
그 동안 미주 가게로 전화하기도 그렇고 해서 연락을 하지 못했었다.
가게로 들어서니, 손님이 없는지 미주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가 들어서는
현식이를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미주가 얼굴이 빨개져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
“별일 없었지요?”
“예…”
늘상 앉는 자리에 현식이가 앉는다.
미주가 현식이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맥주를 내온다.
맥주병을 따면서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주가 현식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현식이도 맥주병을 들고 미주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자,, 한잔해요.”
현식이가 잔을 들어 올리자 미주도 잔을 든다.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미주의 모습이 귀여운 것 같아 현식이가
빙그레 웃는다.
현식이가 맥주를 한잔 쭉 들이킨다.
미주는 맥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비어 있는 현식의 잔에 다시 맥주를 따른다.
그런 미주를 보고 현식이가 묻는다.
“오늘 일하는 아주머니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네요?”
“오늘 일이 있다고 하루 쉰다네요..”
아직도 미주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고개를 좀 들어요. 나쁜 짓 한 것 있어요?”
미주가 빨개진 얼굴을 들고 투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한다.
“제가 나쁜 짓 한 게 뭐 있다고..”
“그 사이 미주씨가 많이 이뻐진 것 같아요..”
“설마?”
“사랑을 하면 이뻐진다고 그러잖아요?”
“참.. 자꾸 골리실 거예요?”
미주가 현식을 보고 눈을 홀긴다.
“하! 하! 하! 하!”
현식이가 잔을 들고 맥주를 비운다.
다시 미주가 현식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미주씨는 안 마셔요?”
미주가 잔을 들어 올린다.
“요즘 내가 현식씨 때문에 술꾼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술 맛이 인생의 맛이라고 그러잖아요?”
“참.. 지어내기는..”
“괜찮지요?”
미주가 무슨 말인가 하고 현식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한다.
“괜찮아요.. 저도 어린애가 아니고, 그냥 현식씨와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어요.
가정을 깨트리도 싶은 마음도 없고.. 한번씩 외로울 때 현식씨와 만났으면 해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고요..”
마침 손님이 한 팀 들어온다.
미주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없어서 제가 접대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냥 편하게 앉아서 한잔 하세요.”
“알았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손님한테 가보세요.
제가 알아서 마실께요.”
미주가 가버리고 현식이 혼자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여섯 병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주가 손님 좌석에 있다가 현식이에게 온다.
“벌써 가시게요?”
“가봐야지요. 어제도 술을 마셨더니 오늘은 술이 빨리 오르는 것 같네요.”
“건강도 생각을 하셔야지요.”
현식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술이 얼큰히 오르는 것 같다.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현식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아파트 현관문에 키를 꽂고 돌리니, 문이 열려 있어 의아한 마음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니, 혜진이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현식이에게 달려오더니
현식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현식의 입술을 찾는다.
갑자기 술이 왈칵 오르는 것 같다.
현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열고 혜진이의 혀를 받아 들인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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