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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1:11 941회 0건
춤추는 인형 (8)




미경은 조심스레 말을 텄다.

“저기…….”

“네? 말씀하세요.”

“그 주인님이라는 사람은 누구죠?”

“저희…….”

“아뇨.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말해주세요.”

또다시 ‘저희들의 주인님입니다’라는 황당한 대답이 나오기 전에 미경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나마 그녀는 정말로 정신 연령이 애 수준의 바보는

아니었는지 미경이 원하는 바를 알아챈 듯, 엷은 웃음을 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궁금한가요?”

“네 그래요. 자꾸 주인님. 주인님. 그러는데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다시 한번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차차 알게 될 거에요.”

그 웃음에 미경은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물어볼 수 없었다.



그녀는 미경이 수프를 다 먹고 나자, 빈 그릇을 챙겨 들고는 나갈 준비를 하였다.

일어서서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고 감을 잊지는 않았다.

“우선, 저기 보이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욕실이 있고, 몸을 씻은 다음에

저기 옷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 입으세요. 그러고 나서 주인님을 뵐 수 있을 거예요.”

“에…? 예.”

저기가 정말 욕실이란 말이야? 갖출 건 다 갖추었네. 이거 완전히 특급 호텔 이잖아?

그녀는 괜찮다면 그 주인이라는 사람에게 이곳에서 며칠 묵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멋진 침대와 햇살이 들어오는 창, 고급

옷이 한가득 정렬되어 있을 듯한 큰 옷장. 단아한 화장대. 욕실 딸린 작은 방.

얼마나 클지 상상도 안 가는 거대한 저택. 일하는 하녀들, 시중 드는 시녀들.

꿈에서나 그려볼 만한 공주님의 생활이 아니던가.



“혼자 일어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앉아서 좀 쉰 덕분인지 수프를 한 그릇

먹어 치운 덕분인지 몸은 많이 나아져 있었다.

“괜찮은 것 같군요.”

“도와드릴까요?”

“네. 좀…….”

그녀가 와서 상체를 받쳐주자 미경은 그녀의 어깨를 짚고서는 천천히 일어났다.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만 낯선 곳에 있는 이상 한 명이라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상황을 만들어 두는 게 좋았다. 그런 점에서 눈앞의 그녀는 안성맞춤이었다.



어쨌든 미경은 그녀의 도움 하에 완전히 일어설 수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천천히 한 발 한 발 움직여 보았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좋아요. 이제 괜찮은가 보네요.”

그녀가 조심스레 한 발 한 발을 떼는 그녀를 보고는 마치 똑똑한 아이를 바라보는

듯이 그녀에게 칭찬을 하였다.

“이제 괜찮거든요? 그만 나가주실래요?”

미경의 말에 그녀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안 돼요. 환자를 혼자 두다니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저기…저는 환자가…….”

“안정. 안정. 절대안정이에요.”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야! 미경은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외치고 싶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환자 취급을 하는 거야. 정말 짜증나.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는 대신에 상냥한 웃음을 띠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르는군요. 이름이 뭐죠?”

“남의 이름을 물을 때는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름을 묻는 미경에게 그녀는 그렇게 대꾸하였다. 미경은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속으로 눌러 참았다.

“김미경 이예요.”







춤추는 인형 (9)



미경이 대답하자, 그녀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떡 벌리더니, 가슴에 힘을

주고는 자신의 신상내역에 대해서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흠흠.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 최강의 신영을 이룩한 그 근원지이자

본가인 이 저택에서 일하는 프로페셔널 메이드로서…….”

자, 잠깐. 지금 뭐라고? 미경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자…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했죠?”

자신의 말을 끊은 것이 기분이 좋지 않은지 그녀가 살짝 인상을 쓰더니

다시 대답해 주었다.

“프로페셔널 메이드…….” “아니, 그 앞에!”


미경은 자신도 모르게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신영을…….”

“신영!!”

“맞아요. 신영이에요.”

미경은 언제 환자였다는 듯이 그녀에게 순식간에 다가와서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는 재차 물었다.

“정말… 정말 그 신영이 맞아요?!”

“물론이에요!”

“아아~.”


미경은 머릿속으로 동화 같은 그림을 그려 보았다. 위기의 순간에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구해주고, 평범한 여자와 왕자와의 꿈같은 사랑. 자신의 상황과 딱 맞지

않는가. 신영의 주인이라면 분명 왕조 시대의 황제 폐하와도 같은 것. 지금 그의

궁전에 그녀가 있는 것이다.


미경은 머릿속으로 환상을 그리고 있느라, 눈앞의 그녀가 역겹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놀라는 모습이 가관이군요.”

“그래. 저 꿈에 부풀은 모습을 봐. 너무나 바보 같지 않아?”

한 방에서 남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꿈은 꿈일 뿐이지요.”

여자의 목소리는 분명 화면속의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훗. 나중에는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해 주지.” 그에 답하는 남자는 그녀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는 한민성 이었다.

“어머~ 그건 너무하지 않나요?”

그의 말에 그녀 루인이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

“후후 뭐가 너무하다는 거지?”

그는 자신의 앞에 등을 보이고 앉은 그녀의 앞으로 손을 뻗어서는 가슴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아아~ 그건 너무 관대해요.”

그는 나머지 손도 뻗어서 두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살며시 애무하였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더 깊어졌다.

“관대하다니?”

“흐응~ 한창 꿈에 부풀게 한 다음에 그 꿈을 산산조각 내 버리는 거예요.”

“후후… 역시 당신은 똑똑해.”

그들이 보는 화면에는 미경과 한 명의 메이드가 서 있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영상 뿐 아니라 음성까지 생생이 나오는 화면이었다.

“저런 천한 것은 제 주제를 알아야 해요.”

“그래. 그래.”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수컷의 영역표시를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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