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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4:04 942회 0건
195. 33화 빌토르(2)
성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을 뒤로하고 비루먹은 검은 말이 모는 마차는 천천히 길게 늘어선 대로를 따라 굴러가다가 어느 한 길모퉁이에서 마차를 틀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쭉 내려가서는 어느 낡고 조금은 허름한 여관쪽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마차는 여관에 따로 비치된 창고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에 걸터앉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조금은 뚱뚱한 사내는 비루먹은 말을 채근하며 마차가 천천히 뒤로 움직이게 하여 마차의 뒷 부분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됐군"
사내가 마차의 짐칸 부분이 창고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쪽에 있는 사내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의 눈짓을 받은 짐칸에 있던 다른 사내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마차의 위줄에 쌓인 술통을 내리고는 그 아래쪽의 술통의 마개를 따기 시작했다.
"푸하"
술통의 덮개가 열리자 그 안에서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하나 둘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흐헥 죽는줄 알았네"
"으윽 삭신이야"
술통에서 나온 사내들은 그동안 꼼짝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제각기 팔을 움직이거나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몸을 풀어대기 시작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말을 몰던 마부가 마부석에서 내려와서는 몸을 풀고 있는 사내들에게 약간은 미안한 듯이 말했다.
"아아 그게 아니죠"
마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부석에 같이 앉아있던 병사와 이야기하던 사내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네?"
마부가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사내가 가볍게 혀를 찻다.
"참내 그새 어제 한 이야기들을 잊으셨습니까?"
사내의 말에 그제서야 마부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부의 얼굴에는 여전히 쑥쓰러운듯한 빛이 남아있었다.
"어제 말한 대로 앞으로는 총대장답게 행동하시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강이 바로 섭니다."
"하지만 아직 익숙치않아서요.."
"어허 또"
"알겠습니다, 주의하도록 하지요"
마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총대장님은 너무 겸손한게 탈이란 말이야 안 그런가 슐만?"
마부가 그렇게 말하며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성문 앞에서 술통을 날랐던 사내를 향해 물었다. 술통을 날랐던 사내가 힐끗 사내를 바라보다가 콧웃음을 쳤다.
"흥, 젠장 그 얼굴에 30대라니 이건 사기가 분명해"
"어허"
사내가 능글 맞은 웃음을 띄우며 짐짓 나무라는 듯이 말하자 슐만이 더욱 더 코웃음을 쳐댔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정말 30대 후반이 맞는거요? 아니 내 보기에는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나 될까 싶은데"
슐만의 말에 사내가 빙긋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흐흐 다 부모를 잘 만난 덕인걸 어떡하나? 하기사 내가 조금 젊어보이기는 하지? 카카 다 마음을 넉넉하게 먹고 매사에 선을 행한 탓이야"
"쳇 얼굴만 젊어 뵈면 뭐하누? 속은 50대 구렁이면서"
"뭐야?"
사내가 슐만의 말에 짐짓 눈을 부라리자 슐만이 손사레를 쳤다.
"아아 됐수.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흠 아직 우리 신고식도 제대로 안했지? 어디 서열대로 신고식이나 한번 해볼까? 어떻습니까 아하루님 미노에 가면 모두 모여서 "용병들의 신고식"을 해보는게"
"용병들의 신고식?"
아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와중에 슐만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히익 용병들의 신고식? 누구 잡으려구? 젠장 호르텝 형! 호르텝 형! 이제 됐수? 그렇게 나에게서 형소리가 듣고 싶수?"
술만이 결국 형이라는 소리를 입에 담자 호르텝이 기꺼운 듯 껄껄대며 웃었다.
"오냐 오냐 앞으로 꼭 형이라는 소리 빼먹으면 맞는다? 낄낄 이 형이 앞으로 잘 보살펴 부지"
호르텝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휴 내가 어쩌다가"
슐만이 그런 호르텝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깊게 한숨을 내셨다. 곁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호르텝과 슐만의 모습을 보면서 낄낄대며 웃었다.
"그런데 호르텝, 정말 연기 잘하던데요?"
아하루가 분위기를 돌려보려는 듯 다른 화제를 꺼냈다. 호르텝이 만면에 다시금 웃음을 배어물고는 마치 요염한 여배우처럼 한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대고는 요상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호호, 제가 한 연기하지요. 그럴 듯 했나요?"
"우엑"
"크윽"
사람들이 마치 요염한 여배우 마냥 흉내내는 호르텝을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이구 주접 좀 그만 떠시우. 정말 불가사의야 불가사의 도대체 나이는 먹어 다 어따 팽겨친 거유?"
"인석이?"
슐만의 말에 호르텝이 뭔가를 냅다 슐만에게 던졌다. 그것은 정확히 슐만의 이마 한가운데 명중되었다.
"아코"
슐만이 갑작스레 날라오는 물체를 피하지 못하고 이마를 감싸쥐었다.
"크 뭐요?"
"임마 형님을 모시기를 하늘 모시듯 해야지. 내가 이래뵈도 우리 동네에서는 말이야.."
"아악"
"으윽"
"형 호르텝 형. 알았수 알았다구 내가 잘못했수"
호르텝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고 슐만도 황급히 손을 내젖기 시작했다. 호르텝이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쩝, 어찌됐건 술만 너 이따가 나 좀 따로 보자.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 우리 서로 의논해 보자구"
"히엑 그..그것만은..."
"자자 그만하고 어느 정도 몸이 풀렸으면 들어가도록 하죠"
아하루가 빙긋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호르텝이 못이기는 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창고 한켠에 마련된 작은 쪽문을 통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상인들 전용으로 마련된 건물 탓인지 창고에 비치된 작은 쪽문으로 빠져나가자 이내 숙소의 카운터가 보였다.
그곳에는 여자 종업원이 뭔가를 적어나가고 있다가 아하루 일행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오십시오."
여종업원의 인사에 호르텝이 여종업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작은 나뭇패를 꺼냈다. 그 나무패를 본 여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블 앞에 놓인 열쇠 꾸러미중 한 꾸러미를 통째로 내밀었다.
"묶으실 곳은 2층입니다."
호르텝이 여종업원에게서 열쇠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살짝 눈웃음을 짓고는 물었다.
"아가씨 이름이?"
"실다입니다."
실다가 예의바른 웃음을 마주 지으며 웃으며 대답했다.
"실다라... 이름도 얼굴만큼 아주 예쁘군. 그런데 실다. 우리가 아직 아침을 못 먹어서 그런데 어디 아침을 해결할 만한 곳이 없을까?
실다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가서 바로 왼쪽편으로 조금 더 가면 골목이 나오는데 그중 두 번째 골목쪽으로 들어가 보세요. 그럼 자그마한 식당이 하나 나올 겁니다.
비교적 값도 저렴하고 맛도 있지요. 음식 종류는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마음에 드실거예요."
"고마워 실다."
실다의 말에 호르텝이 한쪽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아하루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기다렸다가 먹을까요? 아니면 먼저 먹고 기다릴까요?"
"흐음,"
아하루가 잠시 뒤를 돌아 보았다. 다들 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무척 피곤하고 지친 기색은 역력해보였다.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먼저 짐을 풀고 나가서 먹도록 하지요"
아하루의 말에 사내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서둘러 2층을 오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허름한 여관 건물답게 방도 그렇게 깔끔한 편은 못됐다. 돈이 부족한 상인들이나 순례객들이 주로 묶는 듯 각 방은 침대 대신 장정 대여덟명이 누워도 됨직한 커다란 침상이 방 안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상 한켠에는 이불과 요가 놓여져 있었다.
그 외에 있는 것이라고는 작은 테이블 하나와 수납장이 전부였다. 사내들은 각기 자신들의 침을 침상 한켠에 모아두기 시작했다.
"참 궁금한게 있는데요?"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사내가 물었다. 아하루가 자신의 짐을 부리다가 말고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죠? 아르몬?"
아르몬이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왜 꼭 이런 방식으로 들어와야 하는겁니까?"
아르몬의 말에 다들 궁금했던 모양인지 잠시 일손을 놓고 아하루를 바라보았다. 아하루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안전을 위해서라고만 해두죠. 어찌되었건 우리는 젠티에 쪽에 서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젠티에가 이겼죠.
뭐 어차피 진짜로 죽자살자 전투를 벌인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빌토르 측에서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을겁니다. 어쩌면 앙심을 품은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구요.
물론 일반 용병들에게 사사건건 간섭하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하나 사소한 충돌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혹여 우리들이 하는 일에 차질을 빚을까 싶어서 이렇게 불편한 방법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르몬을 비롯한 다른 사내들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몬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이번에 해야할 일은 뭡니까?"
"아아 그만"
아르몬이 재차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슐만이 아르몬을 제지했다.
"임무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수 없네. 자네들도 군대밥을 먹어봐서 알겠지만 작전에 대해서는 가능한한 적은 수의 사람만이 아는게 좋은 법이지.
물론 자네들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야. 다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경우 사소한 실수로라도 일이 새어나가까봐 저어한 때문이지. 그러니 이해하게나"
"이번 임무에 대해서는 일을 시작하기전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알고 임무를 맡는 것과 모르고 맡는 것과는 틀릴테니까요"
아하루가 슐만의 뒤를 이어 이렇게 말하자 사내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뱃가죽하고 등가죽하고 서로 끄러어앉고 반갑다고 난리유. 늦는 사람은 자기 돈으로 사먹기"
호르텝이 벌써 자신의 짐을 다 부려놓고는 웃으며 말했다. 사내들이 호르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른 자신들의 짐을 한쪽으로 몰아 넣기 시작했다.
그다지 많지도 않았던 짐들이라 그저 한쪽에 보기좋게 잘 정리하고는 사내들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자 갑시다. 이거 저도 배가 고픈데요?"
아하루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꼬르르륵"
"푸하하하"
누군가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갑작스레 방안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참 호르텝, 나가면서 그 여종업원에게 뒤에 올 사람들에게도 그쪽으로 오라고 전해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게되면 좋겠군요"
"그럴까요?"
"아마 그곳에도 여자가 있다면 호르텝 형님이 나서기만 하면 될걸요? 아까보니깐 호르텝 형님,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요? 완전 현란함의 극치입디다. 그런식으로 몇 명이나 꼬셨수?"
"이놈아 자고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은 여자의 옷을 벗겨도 네놈처럼 우격다짐으로는 여자들이 갑옷까지 껴입게 되는 법이야"
"쳇 내가 뭘 어쨌길레"
"자자 가도록 하죠. 일단은 먹어야 일을 해도 할수 있으니깐요"
아하루가 슐만과 호르텝을 말리고는 먼저 문 밖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남은 용병들도 아하루의 뒤를 따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호르텝도 사람들의 뒤를 따라나가려다 말고 슐만의 머리에 알밤을 한 대 쥐어 막았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험상궂은 인상을 지었다.
"임마!, 내 그래도 네놈 생각해서 줄이나 놔볼까 했더니... 됐다 됐어"
"줄? 그게 뭔소리요?"
호르텝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젖혔다.
"흥, 뭐긴 임마. 됐어! 없던 것으로 해"
"답답하우 뭐요? 무슨 줄이요?"
호르텝이 튕기면 튕길수록 슐만이 눈을 더욱 반짝거리며 물어왔다. 하지만 호르텝은 그런 슐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연신 고개만 내 저을 뿐이었다.
"알거 없어. 흐음.. 그래 미켈이나 호르텝이 적당하겠구먼?"
"아이구 형님. 제가 잘못했소. 뭔진 몰라두 차라리 나 해주쇼 예?"
슐만이 다급해져 호르텝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호르텝이 그런 슐만을 잠시 곁눈질로 힐끔 바라보더니 이내 슐만에게 잡힌 손을 빼내었다.
"나 남자는 별로야 손 빼! 잘못하기 뭘? 밥이나 먹으로 가야지"
"아이구 형님."
슐만이 밖으로 나가려는 호르텝의 뒤를 쫓아나가며 호르텝의 옷을 잡아다니며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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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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