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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4:06 1,144회 0건
96. 16화 이리스 평원(1)
유차레로 들어선 직후부터 아하루 일행의 분위기는 완전히 침체되어 있었다. 특히 헌터와 절친했던 노만의 경우는 심적인 타격을 많이 받앗는지 그새 몇 년은 더 늙은 사람 같을 지경이었다.
"죽은 사람은 잊어 버리슈, 그보다는 복수를 생각해야 할거 아뇨? 그런다고 헌터 형님이 퍽이나 좋아하겠수다"
보다 못한 군나르가 노만에게 그렇게 퉁명스런 어조로 통박했다가 대판 싸운이후로는 군나르도 함부로 노만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제기랄, 니미"
군나르는 일행의 침체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길을 가는 동안 연신 나지막하게 투덜대곤 했다.
일행의 리더격인 아하루가 어느정도 조정하면 분위기가 마냥 침체되지만은 않을텐데 아하루는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은지 유차레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거의 아무런 말도 않고 혼자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하루가 침묵을 지키니 다른 일행들도 아하루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다.
"카미야, 도대체 말이 안되는 것 같아"
아하루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은 차렌을 벗어나 유차레에 들어선지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뭐가요?"
아하루의 말에 궁굼증을 표하며 물어온 것은 정작 카미야가 아니라 곁에 잇던 군나르였다.
아하루가 저녁을 만드느라 지핀 불을 지긋이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영지는 영지라고 불리우기 아까울 정도로 테실리아 산맥의 작은 촌 마을에 불과하지. 그러다 보니 동차렌에서도 그런 영지가 잇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단 말이야.
그런데 신전 감찰단과 공작의 칼버린 기사단이 동시에 출동하다니 뭔가 말이 안맞는거 아냐?"
아하루의 말에 다들 상념에 빠져 들었다.
"뭐 누군가 해꼬지하려고 사교가 잇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은 아닐까요?"
군나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헛소리. 이제껏 영지를 벗어난 사람은 고작 손에 꼽을 정도야. 그리고 그들도 거개가 영주님의 은헤를 받아 대도시에 이주해서 잘먹고 잘살고 잇는데 그들이 그런 헛소문을 퍼뜨릴 리가 잇나.
더욱이 그놈의 신전 감찰단 이란 놈들이 어떤 놈들인가 말로는 신에 대해서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결국 제뱃속만 채우려는 놈들이네 그런 놈들이 뭐 먹을게 잇다고 궁벽한 시골로 기어들어가겟나?"
노만이 군나르에게 일침을 가했다. 군나르가 고개를 숙이며 뭔가 입속으로 꿍얼거렸다.
"맞는 말입니다. 더욱이 칼버린 기사단이라고 한다면 그 수준은 전국적인 지명도가 잇는 기사단입니다. 그런 칼버린 기사단이 고작 일개 지역의 신전 감찰단의 부탁에 움직인다는 것은 잇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반대라면 모르겟지만 말입니다."
카미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 반대라고 해도 의문이예요. 도대체 그 위명이 자자한 칼버린 기사단이 뭐가 부족해서 하베이도를 눈독을 들이죠?"
르네의 말에 다들 난감하다는 듯 얼굴을 찌프렸다.
"하아"
아하루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나 저나 이젠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카미야가 나뭇가지를 하나 들어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물었다. 아하루가 조금 불꽃이 커진 모닥불을 다른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들쑤셔댔다. 그리곤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휘엉청 보름달이 창공에 나타낫다. 보름달 때문인지 근처의 별들은 그 빛을 잃었는지 보이지 않앗다.
"일단 아파르령에 있는 라이갈이나 아니면 카핌 지방의 소데니언으로 가려고 해"
"라이갈...소데니언?"
카미야가 영지명을 되뇌이자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라이갈은 첫째 형수님의 친정이거든 저 아이들은 외 손녀가 되는 셈이니 두분도 거절하시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소데니언에는 둘째 형수님 친정이고. 지금 형수님의 아버님이 병환에 게셔서 병구완 하러 가셨거든... 아마 외동 딸이라지..."
"그래도 다행이군요"
"응"
아하루가 카미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단 라이갈에 저 아이들을 맞기고 소데니언에 있는 둘째 형수님께 사실을 말해야 겠지 그리고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아도 봐야겠고."
카미야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 이후에는 어쩌실 작정입니까?"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가 처연히 고개를 숙이고는 모닥불을 쑤시던 나뭇가지로 땅을 긁었다.
"글세... 일단 복수를 해야할까?"
아하루의 말에 카미야가 담담히 입을 열엇다.
"차라리 저와 함께 수도 룬으로 들어가시는게 어떨까요?"
"룬?"
카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 사람들 중엔 황족도 잇지요. 그 사람들에게 부탁한다면 비단 이번 일의 원인이나 배경뿐 만아니라 능히 아하루님이 하시고자 하는 복수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가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리고 아하루님의 아버님과 형제분들의 명예도 복원시켜야 하지 않습니까? 또한 혹 그분들이 살아 계신다면 구출 할수도 있겠지요"
카미야가 그렇게 까지 말하자 그제서야 아하루의 고개가 희미하게 끄덕여졌다.
"하지만 너무 카미야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카미야가 빙그래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아하루에게 얼굴을 붙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하, 그대신 밤마다 아하루님을 잠못자게 할테니 각오하세요"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카미야가 그런 아하루를 보고 두손을 뻗어 기지개를 폈다.
"아아, 요즘 욕구불만인 듯 해 누구처럼 투정이나 부릴까?"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의 얼굴은 모닥불빛에 반사되서인지 더욱 발그래해졌다.
"캉캉캉"
"말씀들 다 나누셨으면 이제 식사하세요. 카리에님 어서 레이첼님을 데리고 오세요. 그리고 저쪽 개울에서 손 씻는 거 잊지 마시고요?"
르네가 빈 그릇을 두둘기곤 손을 허리에 얹으며 말했다.
"아하루님은 어디로 가셨나?"
카미야의 물음에 군나르가 나뭇가지를 잘라 입을 쑤시던 손을 떼고는 한쪽 방면을 가르켰다. 카미야가 군나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검은 말 다크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잇는 아하루의 모습이 보였다.
카미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나르 옆에 털석 주저 앉아서는 말과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아하루를 바라보았다.
"대단하군요. 아하루님이나 저말이나"
군나르의 말에 카미야가 무슨 뜻이냐는 듯 군나르를 쳐다보앗다. 군나르가 카미야의 시선을 느끼곤 씩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저 다크란 놈 얼마 가지도 못해 죽을 것 같앗는데 용케도 이곳 까지 왔네요. 그리구 원래 야생마는 길들이기 어렵다는데 아하루님과 저 말은 뱃장이 잘 맞는가 보죠?"
카미야가 고개를 저었다.
"글세? 르네와 마리안의 이야기를 대충들은건데 원래 저말이 야생마인 것은 알지?"
군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카미야가 계속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다크는 그 야생마 중에서도 차기 향도마였던 것 같아. 그런데 무슨일인지 갑자기 병들기 시작한 거지. 자네도 향도마가 어떤건지 알지?
르네가 그러는데 다크의 안에 뭔가 뜨겁고 차가운 이질적인 기운들로 가득 차잇다는 거야. 아마도 무리를 대신해서 새로운 풀을 먹었는데 그게 독풀이었던 모양이지.
어쨌건 결국 쇠약해진 저놈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올수 박에 없었겠지.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잡아 온거고 말일세.
어쨌건 르네가 밤마다 아하루님 모르게 매일 같이 신성력을 퍼부었지. 덕분에 그 이질적인 두 개의 기운이 가라앉았고, 또한 저번에 미친 듯이 달렸던 그때 그 기운들이 어느 정도 발산된 덕분이기도 하다더군.
그나저나 꽤 신통한 놈이야. 저놈은 아하루님이 자신을 살려준 것을 어렴풋이 알아챈 모양인지 적어도 아하루님에게 만큼은 자신을 허락한 듯 보이니 말이야"
카미야의 설명을 들은 군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주위의 풀을 하나 뽑아들고는 입에 물었다.
그리곤 마치 다크의 말에 알아듣겠다는 듯 연신 투레질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아직 몸이 다 안낳은 건가요? 향도마의 핏줄을 타고 낫다면 몸짓도 우람하고 늠름해져야 하는게 아닌가요?"
군나르의 말에 카미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세? 아마도 그때 독풀을 먹은 영향으로 몸짓이 커지질 못하나 보지. 뭐 그래도 르네가 그러는데 저 상태로 달려도 지금 우리가 가진 말들보단 훨씬 뛰어날 거라고 하더군"
군나르가 놀란눈을 하며 카미야를 쳐다보앗다.
"헤~ 저 비루먹은 것 같은 말이요?"
카미야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군나르가 가리킨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앗다. 그곳에는 볼품없이 바짝 말라버려 뼈와 근육밖에 남아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검은 말과 보기에는 그다지 잘생기지도 못하고 배마져 약간 나왓을 뿐 아니라 얼굴엔 그 흔한 위엄이라든지 기품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수도 없는, 그나마 약간 봐줄만한 것은 조금 귀엽다고나 할까? 어찌보면 일반 평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로를 다독이며 보내고 잇었다.
"글세? 어차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겠지. 내가 저런 사람을 사랑하게 될줄 누가 알았겠나?"
카미야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웅엉거리듯 말했다.
"네?"
카미야의 말을 듣지 못한 군나르가 물었으나 카미야가 그저 씩하곤 웃음을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도 그만 자게나"
카미야의 말에 군나르가 두손을 펴선 기지개를 켰다.
"우우, 이렇게 들판에서 야영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이군요. 내일 타이건에 도착하면 따끈한 음식과 푹신한 침대에서 원없이 먹고, 원없이 자볼랍니다."
군나르가 굳엇던 뼈를 우드득 거리며 풀고는 천천히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밤하늘의 달빛은 적막이 내려 앉는 들판을 포근한 손길로 감싸 주고 잇었다. 그리고 그 달빛은 아하루 일행이 머물고 있는 바로 앞에 넓게 펼쳐진 이리스 평원에도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달빛에 반사되는 무수한 무기들의 반사광이 눈을 시리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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