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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59 1,717회 0건
젊음, 그 열기 속으로 21부
미나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욕실에 있는동안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변한것 같지는 않았다. 그 눈길을 느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나도 남자이기 때문일까...?
침묵은 여전했지만 조금 전처럼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욕실 문 저편에서 고민했던 것이 우습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샤워 할래...?"
"..."
내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미나도 내 그런 기분을 느낀것인지 조금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옷... 안가져 왔는데...?"
살풋 입가가 말려올라가면서 그 사이로 미나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아마도 저번에 옷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으리라...
"훗... 저번에 산 것 있잖아. 아직 한번도 안입었어."
내 옷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미나와 함께 동대문에 가서 잔뜩 사왔던 적이 있다. 물론 오늘같은 일이 있을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게중에는 미나가 입을만한 것도 있을것이다.
"옷장에 있어...?"
"응..."
이런 대화를 이렇게 침착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적 없다. 게다가 미나를 상대로...
쇼파에 앉았던 미나가 일어서다가 휘청거렸다. 다가가 팔을 잡아주자 힘없이 내게 기대오는 미나였다.
"괜찮아?"
"응..."
여전히 불안한 걸음걸이로 침대 옆의 옷장으로 걸어가는 미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될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옷장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던 미나가 옷가지를 들고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시선이 닿지않도록 등뒤로 감추고는 욕실로 향했다. 분명히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하는 행동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이 상황이 무엇보다도 어색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을 테지만, 겉으로는 당당하게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미나가 욕실에 들어갔다.
이윽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빼물었다.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미나는 이상한 생각으로 이러는 것은 아닐지도 몰라...
-나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인지도...
-하지만...
-미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는 이야기 해보면 알겠지...
-문제는 내가 어떤 생각인가 하는것 아냐...?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미나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있고, 또 어떤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조금 있으면 알게될것이다. 아니, 이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기가 무엇이었던간에 미나의 이런 행동은 나름대로의 생각에서 나온것일테고... 문제는 내가 아직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갖고있다는 것이었다.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는 더이상 나아갈 수 없을것만 같았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했다간 미나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갑자기 들려오던 물소리가 그쳤다.
제대로 마음을 정하지도 못했는데...
머리 위로 떠돌던 담배연기가 생각나서 급히 창문을 열고서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려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에도 미나가 담배연기를 싫어한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허공에 대고서 손을 휘저어대는 내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미나가 나왔다.
물론 이전에도 미나가 샤워한 뒤의 모습을 본적은 있었지만...
흰색 반팔티와 반바지... 일전에 사왔던 반바지를 몇번인지 접어올려 입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 끝자락에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화장을 거의 하지않는 미나였지만, 지금은 그 엷은 화장마저도 지워진 맨 얼굴이었다. 물기 가득 머금은 미나의 두 눈이 반짝였다. 목욕 후의 여자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미나가 다가왔다.
"담배는 배란다에서 피워. 방에 냄새 배겨."
-훗... 이런 와중에도 그런걸...?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미나는 분위기를 돌리는데 재주가 있었다. 지금도 뭐라할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미나의 한마디 때문에 나의 당황은 어지간히 사라졌다.
전번에 입었던 다 낡아빠진 티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미나에게는 커다랗기만했고, 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리께에 질끈 묶여진 매듭 사이로 옴폭한 미나의 배꼽이 언뜻언뜻 보였고, 미나의 두다리가 가지런히 보였다.
미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눈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싫어...?"
무엇을 묻는것인지 의아했다.
"뭘...?"
"나... 지금이라도... 갈까...?"
"..."
내 기억 속에 그때같은 미나의 눈길은 없었다.
분명 처음 대하는 눈길이었지만, 미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나에게 요구하고 있는듯한 그 눈길이 눈부셨다. 미나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굳이 말로써 그걸 확인해주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허리께에 매듭지워져있는 티를 만지작거리는 미나의 손을 잡았다. 내 손 안에 들어온 자그마한 미나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린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일까...?

"..."
미나의 손을 잡은 채로 쇼파에 앉았다.
내 앞으로 다가온 미나는 앉지는 않고 나를 내려다 보았다.
미나의 왼손이 내 얼굴로 다가왔다. 조금 멈칫거리는듯 했지만, 이내 내 얼굴에 미나의 손끝이 닿았다.
마치 손으로 확인이라도 하듯이 미나의 손길이 움직였다. 내 눈썹을 스치던 미나의 손은 어느새 귓가를 간지럽히듯이 스치고 지나갔고, 콧 잔등을 쓸어내렸다.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내얼굴을 확인하던 미나의 손이 내 입술에 와 닿았다. 미나의 손길이 내 윗입술의 선을 따라 움직였다. 내 입술이 떨리는것은 아닌지...
그리고 나지막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그냥 여기 오고싶었어..."
"..."
"오지 않을려고 그랬는데... 결국에는 이리로 오고말았어..."
"..."
"오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
"그 여자한테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미나야..."
"..."
내 입술을 따라 움직이던 미나의 손길이 떨렸고, 미나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나... 너무... 힘들어..."
미나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고... 말 끝이 흐려졌다. 그대로 놔둔다면 그 자리에 무너져 버릴것만 같았다. 앉아있는 내게로 미나의 몸이 다가왔다. 그냥... 안아주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팔을 뻗어 미나를 당겼을 때, 미나가 내게 안겨왔다.
앉아있는 내 몸 위로 미나의 몸이 쓰러졌다.
내 팔 안에 들어온 미나의 몸이 물결치듯이 흔들리면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말 보다는 그냥 그렇게 안아주는것이 더 낫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떨어져 내렸다. 아마도 미나의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것이리라...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츰 차츰 미나의 떨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감싸안은 미나의 두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머리라도 빗겨주는 것처럼...
"...조금 더 길면 좋을텐데..."
"훗..."
잘 자라지않는 내 머리카락을 만져보면서 미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재대한지 두달이 훨씬 지났지만, 막 제대했을 무렵이랑 별반 다르지않는 내 머리카락이었다.
"좀 더 있으면 자라겠지 뭐..."
"..."
조금 진정된것 같아서 미나를 옆에 앉히려고 했다. 그렇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다시 안겨오는 미나였다.
"..."
미나에게서 상쾌한 내음이 풍겨나왔다.
샴푸냄새와 비누냄새가 섞여있었지만, 분명히 그것과는 다른 내음이 그 속에 있었다.
조금 전에는 그저 미나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못했기에 미처 그런것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것이 갑자기 내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마치 꽃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공간속에 들어온것같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내 몸속으로 빨려들어오는 감당하기 힘든 감미로움...
그리고 얇은 면티 밑으로 꿈틀거리는 미나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얼굴이 미나의 가슴께에 위치하고 있었고... 단단한듯 하면서도 너무나 부드러운 미나의 가슴이 내 얼굴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디로든 고개를 돌려 피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있는 내 의지는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버렸다.
콩닥... 콩닥...
귓가로 미나의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눈은 감겨있어서 미나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내 오감은 미나의 몸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너무나도 강렬한 자극이었다.
미나의 허리 밑에 깔려있는 내 몸의 일부로 급격이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찔한...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힘든 그 자극이 내 몸을 강타하고 있었다.
내 몸의 반응은 내 의지를 배반하고 있었다.
움찔...
-...알아차린걸까...?
미나의 몸이 조금 긴장하는 듯했다. 그리고 미나의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아니... 내 심장이 빨라졌기에 미나의 심장소리를 못듣는 것인지도... 누구의 심장소리인지는 모를 울림이 내 청각을 뒤흔들고 있었다. 내 몸속의 혈액이 급류처럼 전신을 휘달리고 있었고, 맥박은 피부를 뚫고나올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호흡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자세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내 몸의 반응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이는 것이 될것이다. 그렇지만 더이상 호흡을 참을수는 없었다. 억지로... 내 의지를 배반한 몸을 가까스로 움직여 몸을 뒤척였다.
움찔...
아... 그 조그만 동작이...
미나의 하반신에 눌려있던 내 몸의 일부가 튕기듯이 일어났고... 미나의 허벅지를 찌르듯이 꿈틀거렸다. 내 몸 어딘가의 실핏줄이 터지기라도 한 것일까... 시야의 한 부분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내 머리를 감싸고있던 미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손안에 들어온 미나의 허리가 뻣뻣해지기 시작했고,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그 떨림은 내 몸의 일부분이 반응하는것과 동시였고, 미나와 나는 그걸 너무나 확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후욱, 후욱...
-젠장할...
위로를 받고싶어하는 미나를 상대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나를 미나가 어떻게 생각할지... 하지만 이런 자세로는 도저히 내 몸의 반응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미나를 옆으로 내려야만 했다.
몸안에 남아있던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뻣뻣하게 굳어있는 미나를 가까스로 옆으로 내려앉혔다.
"..."
"..."
미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뭐라고 농담이라도 해준다면 더없이 고맙겠지만 미나에게도 그럴 여유는 없는듯했다.
-어떤 표정을 하고있을까...?
-혹시...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하는건 아닐까...?
말없이 앉아있는 미나의 표정이 너무나 궁금했기에... 흘깃 미나의 얼굴을 살폈다. 앞으로 드리워진 기다란 머리카락 때문에 미나의 얼굴은 많이 가리워져 있었지만 그 표정을 알 수는 있었다.
다행이었다.
분명히 굳어있기는 했지만 싫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미나의 어깨가 어색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나의 얼굴이 들리워지고 미나의 두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그 눈길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었고, 내가 대답을 회피할 기회는 주지않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조금 갈라진 미나의 입술이 벌어지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 여자랑...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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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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