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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3:13 514회 0건
SF] 혹성상인 27. --- 화려한 파티
27.

덜컹 덜컹 덜컹…
한스가 탄 공격용 장갑차는 천천히 모함을 빠져 나와 줄지어 가고 있는 다른 장갑차들과 함께 공격 개시선으로 굴러갔다.
옆에 앉아있는 무장 병사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긴장을 달래고 있었다. 한스는 답답한 금속판 안에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타이힐에서 탱고로 돌아간 한스는 아버지에게 심한 꾸지람을 받았다. 아무 말없이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난 한스는 일어서려는 아버지에게 한마디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제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신 걸 아시지요?”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한스를 쳐다보았다. 한스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한스야, 너는 내가 처음에 너에게 한 말을 기억하느냐?”
“…”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했지?”
“…의리라고 하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의리란 무엇인가를…”
“…”
“그만 되었다. 나가 보아라.”
한스는 돌아서 문을 향해 걸었다. 한스가 문을 열 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잣말인지, 아니면 한스에게 들으라는 말인지 스쳐 지나가는 듯한 말이 들렸다.
“사자는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기 때문에 사자인 것이지…”

회장 집무실을 나온 한스의 앞에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메사 카를로스. 한스가 타이힐에서 돌아올 때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조각한 듯 깨끗하고 반듯한 얼굴, 창백한 피부, 생각보다 훨씬 젊은 그는 전략정보처의 헤드였다.
“도련님,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네. 말씀하시지요.”
한스는 차가운 표정의 이 남자가 싫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거역하기 힘든 위엄이 숨어있었다.

“페트리샤 공주와 잤습니까?”
“… 네.”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러세요.”
“링링과 잤습니까?”
“…아, 아닙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한스도 몰랐다. 다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자신과 링링을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카를로스는 한스의 부자연스러운 억양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묻지 않고 한스를 보내줬다.


한스는 다시 링링과 함께 이시스로 나왔다. 이번에는 좀더 와일드한 일을 지시 받았다. 전쟁터에 가보라는 것이다. 비록 병사가 되어 싸우라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터를 견학하라는 것도 한스에게는 긴장감을 심어 주었다. 한스는 덜컹대는 장갑차 안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병사들 사이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절반 가량은 남자였고 절반 가량은 서버들이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이건 말이 전쟁이지 실은 소풍이에요. 적은 이미 궤멸됐고 그들의 무기는 100% 못쓰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그냥 점령하러 가는 거지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에요.”
언제나 그렇듯이 링링이 씩씩하고 명랑하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 병사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놀러 가는 것이라면 왜 그렇죠?”
“이 병사들은 싸움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간혹 아주 드물게 적의 무기가 파괴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거 보다는…”

이때 장갑차의 스피커를 통해 공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장갑차는 지상 2미터 높이로 천천히 떠오르더니 4-5대씩 무리를 이루어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무기들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틈새로 새어 나오는 바람소리, 자꾸 힘을 더하는 엔진소리를 뚫고 링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도시는 나사미야 행성에서 제일 큰 브란제빌이에요. 거주 서버가 거의 1천5백만에 이르죠. 이 도시를 점령하면 이제 행성의 70%가 우리의 것이 되는 거에요.”

눈깜짝할 사이에 장갑차들은 도시의 상공으로 진입했다. 수많은 장갑차 무리들이 나누어져 도시의 외곽으로 가고 한스가 탄 장갑차와 다른 장갑차들은 도심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링링의 말처럼 도시 안에서는 별다른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서버 측 차량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도주했지만 곧 건쉽들의 레이저포를 맞고 파괴되어 떨어졌다.

한스가 탄 장갑차 편대는 부심쯤으로 보이는 거리로 이동하여 유유하게 자리를 잡아 착륙준비를 했다. 그때 장갑차의 스피커로 사령관의 말이 흘러 나왔다.

“나 사령관이다. 모든 병사에게 말한다. 브란제빌을 접수하라. 시작하라, 화려한 파티를. 가장 뜨겁고 가장 아름다운 피와 살의 사육제를 시작하라. 브란제빌은 제군들의 것이다. 이시스의 역사는 오늘의 파티를 기억할 것이다. 회사는 제군들을 믿고 제군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시작하라, 용감무쌍한 병사들이여!”

첫 장갑차의 착륙과 동시에 병사들이 뛰어 나와 뒤이어 내려 앉는 장갑차들을 엄호했다. 한스와 링링도 병사들의 뒤를 따라 장갑차에서 나왔다. 거리에는 의외로 서버들이 많았다. 그들 일부는 회사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었고 많은 수는 호기심에 병사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병사들이 움직이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한스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령당한 도시의 시민들이 점령군을 환영한다니. 그때 중대장이 확성기로 그녀들에게 경고했다.

“브란제빌의 모든 서버에게 명령한다. 즉시 해산하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집단 행동을 하는 경우는 무조건 사살하겠다. 다시 명령한다. 즉시 해산하라!”
중대장의 경고에 서버들은 웅성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계속 병사들을 환영했다. 그 순간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기관포와 레이저가 작열하고 수많은 서버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서버들은 놀라 흩어져 도망쳤다. 그 와중에 밀고 밀치며 넘어지고 밟히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병사들은 전기곤봉을 꺼내 들고 우르르 도망치는 서버들을 쫓았다.

한스와 링링에게는 두 명의 병사가 호위로 따라 붙었다. 중대장이 한스의 곁에 다가와 씩 웃고는 조심하란 말을 남기고 병사들을 쫓아 갔다. 한스와 링링도 그 들의 뒤를 따랐다. 여기 저기 피를 흘리며 쓰러져 꿈틀대는 서버들을 피해가며 가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하늘에 저공비행 수송기들이 나타나 뿌연 연무를 도시에 뿌리며 지나갔다. 중간 중간 서버들이 한 둘씩 겁먹은 얼굴로 길가에 숨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가끔씩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서버들도 보였고 전기 곤봉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서버도 있었다.

“저들은 이미 항복을 했고 심지어는 우리를 환영하기까지 하는데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다루죠?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회사가 민심을 얻을 수 있겠어요?”
한스의 말에 링링이 고개를 흔들었다.
“회사는 결코 서버들의 민심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요. 자발적으로 항복하고 들어온 곳에는 자비를 베풀지만 이처럼 저항하다가 함락된 곳에는 반드시 응징을 하죠. 회사가 이들의 인기를 얻어 통치하려고 했다면 벌써 망했을 거에요. 회사는 인기 보다는 두려움으로 통치하고 지배하려고 하죠. 서버들을 다스리려면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야 줘야 돼요.”
“그건 잠시는 통하겠지만 오래 못 갈 것 같은데요.”
“도련님은 아직도 여자를 잘 몰라요.”

여자를 잘 모른다고? 여자를? 여자가 어떻다는 말인가. 여자는 사람도 아닌가?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고 존경해주는 존재보다 두려운 존재에 더 의지한다는 말인가. 적어도 링링은 전혀 그런 여자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링링이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러는 사이에 한쪽 골목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한스가 그 쪽을 보니 수십 명의 서버가 골목에서 대로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쭈그려 앉아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오리걸음으로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병사들이 총과 전기 곤봉으로 위협하고 발로 차며 그녀들을 재촉했다.

아마도 도망치던 무리 중의 일부가 한 골목에서 잡혀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엉덩이와 유방이 큰 서버들이 무더기로 오리걸음으로 엉기적 대며 걷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자극적인 느낌이었다. 병사들의 사정없는 발길질이 그녀들의 엉덩이에 가해지고 있었다. 대로까지 끌려 나온 그녀들은 차례대로 도로의 한복판에 머리를 박고 뒷짐을 진 자세 ? 소위 원산폭격 자세로 엎드리도록 명령 받았다.

한스가 보니 다른 골목에서도 서버들이 끌려 나와 대로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병사들이 지나 다니며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서버들의 엉덩이와 배를 발로 차며 험악하게 폭언을 퍼부었다. 서버들은 병사들의 발길질을 피하려고 몸을 다잡아 세우며 안간힘을 썼다.

한 곳에 쭉 머리 박고 엎드린 서버들 뒤에서 한 병사가 총의 개머리 판으로 그녀들의 엉덩이 사이를 차례로 내리 찍으며 지나갔다.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면 두 명의 병사가 그녀들을 군화발로 사정없이 걷어 차며 다시 머리 박고 엎드리게 했다.

넓은 도로가 온통 머리 박고 엎드린 서버와 비명 지르며 뒹구는 서버, 군화발로 구타하는 병사들로 가득 찼다. 상체가 가냘퍼 보이는 한 서버가 병사들의 계속되는 발길질에도 제대로 몸을 못 가누며 자세를 잡지 못하자 한 병사가 그녀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배를 붙잡고 누웠다.

병사는 다가가 군화발로 그녀의 유방을 내리찍고는 짓이겼다. 다른 병사가 다가가 그녀의 두 다리를 잡아 벌리고 팬티를 벗기고는 그녀의 보지에 전기곤봉을 대고 무식하게 찍어 눌렀다.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병사는 전기곤봉의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그녀의 엉덩이가 위로 솟구쳤다 떨어지며 그녀는 실신해 버렸다. 병사가 곤봉을 빼자 그녀의 찢어진 보지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지금 도시 전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한스가 이마를 찌푸리고 묻자 링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에요. 지휘관이나 병사들의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형태는 다르겠지만 이와 유사한 일이 지금 브란제빌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에요.”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도련님도 한 번 해보세요. 다른 남자들은 재미있다고 하던데요.”
“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혹시 난징 대학살이란 사건을 아세요?”
“…무슨 대학살이라고요?”

“아득한 옛날 지구에서 있었던 일이지요. 어떤 잔혹한 나라가 인구 많은 후진국의 한 대도시를 점령했을 때의 이야기지요. 4만명의 군인이 2백만의 민간인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인간 사냥을 했어요.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사단 전체가 계획적으로 말이죠. 재미로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 사람을 죽였어요. 각자 하고 싶은 방법대로.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발로 차고 곤봉으로 때려 죽였죠. 물론 여자들은 맘대로 강간하고요.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또 얼마나 잔인하게 죽였는가를 자랑하고 내기했어요.”
“그래서요?”
“적어도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었죠.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잔혹한 나라가 새로 점령하는 지역에서는 통치가 쉬웠어요. 저항다운 저항은 전혀 없었죠. 왜 그랬을까요. 소문이 난 거죠. 의외로 인간은 약해요. 인격을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무자비한 힘 앞에 서면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죠. 상대가 철저하게 비합리적인 것을 보면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복종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죠. 합리적으로 처리하면 그들은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이용하려고 나오죠.”
“그래서 그 무슨 대학살이 잘했다는 건가요?”
“서버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들은 그저 회사의 상품일 뿐이에요.”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고 있는 한스에게 더욱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늘어 놓은 링링은 다른 곳을 가보자고 이끌었다. 그들은 중대장이 준 쓰리 쿼터를 타고 다음 지구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또다른 기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변에 서있던 병사들은 한스를 보자 경례를 하고 시야가 트이게 비켜주었다. 수십 개의 도로용 바리케이트가 도로를 따라 일렬로 쭉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에 아랬도리를 홀랑 벗은 서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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