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테스 5
미키가 옆에서 낑낑 대고 있었다.
정원으로 가서 맘껏 뛰어놀고 싶은데 내가 목덜미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차마 날 물지는 못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기의 주인인 노파를 바라볼 뿐 이었다.
할머니는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정원으로 가득 쏟아지고 있는 햇살을 바라 보았다.
내 앞에 있는 찻잔은 거의 다 비워져 가고 있었다. 한동안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했다.
"비라도 좀 와야 할텐데...저 잔디들이 벌써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구나"
"곧 올겁니다. 태풍이 몰려온다고 그러더군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 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태풍...그렇지....그러고 보니 꼭 3년전 이맘때 구나....그날도 큰 비와 돌개바람이 불어대던 밤이었지"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십니까?"
그녀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잊겠니?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구..넌 그날 밤을 벌써 잊었니?"
"전 기억을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망각을 이끄는 시간이란건 너무 느리거든요"
"자연히 잊혀질때까진 그대로 두는게 좋단다 애야...너무 그렇게 애쓰지 마라"
"대모님께는 미안한 이야기 지만....전 어떤것도 기억안할겁니다. 모든것들을...심지어는 지금 대모님과 차를 마시는 이 순간도..몇분뒤에 내가 자리를 뜨면 잊혀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할머니가 다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넌 아직 젊어서 그런거다....나같은 쓸모없는 늙은이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가져가려고 애를 쓴단다...안타깝게도 나이탓에 점점 기억력이 희미해져서 그것이 가슴아플 뿐이란다"
"전 대모님 처럼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전 밤에 잠을 잘 못이룹니다.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새벽에나 간신히 잠이 들거든요"
그녀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녀석두...아직도 그러니? 그래...하지만 모든게 시간이 지나면 별게 아닌게 된단다...넌 모든 현실을 잊고 싶겠지만 난 3년전 널 만나던 그 날밤은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거야...아니 내가 아무리 망령이 들더라도 그 기억만은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구나"
난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말을 했다.
"3년전 그날밤...난 죽을위기 였지...집으로 오는 길에 세명의 남자가 내가 차고 있는 차를 공격했지,,,그들은 나에게서 건물을 빼앗긴 과거의 채무자들이였지...마침 희도 민도 두고 운전기사 하나만 데리고 나선 길인것을 녀석들이 알아내고 날 죽이려고 덤볐지...아마 그때 근처에서 잠자고 있던 너가 뛰어들지 않았다면 오늘 난 여기에 없었을거야...모르긴 몰라도 너랑 차를 마시는 일도..미키랑 산보하는 일도 없었을거야 "
"전 별로 한 일이 없었어요...뒤 늦게 달려온 희와 민이가 다 그 녀석들을 처리했을 뿐이죠"
"녀석두...기억 못한다면서...다 기억하는구나..두 녀석이 달려왔더라도 너가 없었으면 어림없는 일이였어...넌 ..나대신 그녀석들이 들고 있는 칼을 맞았어....죽지 않은게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상처였는데 말이야...그런데 넌 그때 그 시간에 왜 길가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거냐? 3년이 지나도록 넌 한번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어"
"술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잠들어 있었을 뿐입니다.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세녀석이 낫고 칼을 들고 어떤 승용차 안으로 달려드는게 보여서 주제도 모르고 객기를 부린것 뿐이죠"
그녀가 음성을 누그러 뜨리면서 물었다.
"난 그걸 물은게 아니야...너가 술에 취해서 잠이 들었다는건 나도 알아..피투성이로 쓰러진 너 녀석입에는 지독한 술냄세가 났거든...난 왜 너가 그때 술을 마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게야..보통 많이 마신게 아니었어....괴로운 일이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사람이 마실수는 없는게야"
내가 아무 말없이 찻잔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오늘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싶은게로구나....그 일이 있고 3년이 지났고 넌 내 아들이 되었어
하지만 너의 과거에 대해선 난 아는게 너무 없구나...물론 맘만 먹으면 너 과거정도 알아내는거 쉽지만 너에게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너가 날 정말 엄마로 생각한다면 스스로 말할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죄송하지만...앞으로도 제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할날은 없을 겁니다. 정말 궁금하시면 대모님 능력정도라면 금새 제 과거를 알아내실수 있겠죠...하지만 전...모든걸 다 잊어 버렸습니다. 모든걸 다 잊으면서 살겠습니다."
그녀가 잠시 안타까운 눈빛을 지었다.
"사람들이 날보고 철마녀라고 부르지...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난 절대 하지 않는다. 난 누구도 믿지 않고 그렇게 혼자 살았어....지금 내가 관심이 가는 녀석은 이 미키랑 너 뿐이다 항상 그걸 잊지 마렴...."
"다 잊어버릴지 몰라요 대모님...그러니 저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지금까지 저에게 주신것만도 너무 과분합니다. 가게를 내도록 도와주셨고..대모님의 경호원인 민과 희까지 아낌없이 저에게 내어주셨지 않습니까? 전 뻔뻔한 놈이라 오늘처럼 또 뭘 부탁할 일이 있을때만 여기로 올겁니다. "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부탁을 필요로 하고 그럴때면 항상 비굴한 모습을 동반했다. 너처럼 당당하게 뭘 요구한 녀석은 없었어....난 그래서 너가 맘에 든다. 이 철마녀가 널 양아들로 맞았을때 사람들이 전부 나보고 망령났다고 비웃었겠지...난 너 몸속에 흐르는 차가운 피가 좋아,...그건 내 피와 비슷한 온도야....너 녀석도 고집이 세지만 이 늙은이는 더 만만하지 않지...그래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너가 아까 요구한 200억은 곧 입금시켜주마...또 다른 부탁이 있니?"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번에 하나씩만 부탁 안해도 된다. 그런데 내가 들으니 몇일전에 너 가게를 어지럽히고 간 녀석들이 있었다며? "
"민이나 희가 그러던가요?"
"이녀석아...내 정보통이 겨우 그 두녀석뿐인줄 알았더냐? 너가 싫어할까봐 말은 안했다만 너 집이랑 가게에는 내가 풀어놓은 애들이 더 있단다...그런데 그 녀석들을 가만히 두었니?"
"걱정마세요...알아듣기 좋게 이야기를 해줬으니까요"
"흠 그래?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내가 손을 쓰려고 했다...감히 철마녀의 아들을 건드린 녀석은 남김없이 피를 보게 할테다"
"미키에게나 잘 해주세요 이녀석이 놀고 싶어서 아까부터 낑낑대네요"
그제서야 자유의 몸이 된 미키가 컹컹 짖으면서 햇살이 눈부신 정원 속으로 사라졌다.
임성택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수가 없었다.
천당과 지옥을 몇일만에 갔다 온 기분이랄까....
책상앞에 있는 17인치 LCD 모니터에는 일성수산의 일봉 차트창과 주문창이 절반씩 떠 있었다.
몇일동안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던 일성수산은 9만원을 고비로 다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첨에는 정말 해피한 날들이었다.
시세 하락기 동안에 고객들이 많이 이탈했고 덕분에 수수료 수입도 팍 줄어서 근심이 많은 날들이었는데 자기가 고객에게 강력히 추천한 일성수산이 자기의 애타는 기도를 들었는지 급상승을 보였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5만원에서 7만원 그리고 9만원까지...
임성택은 환호성을 질렀다.
고객 계좌뿐 아니라 자신과 집안의 돈도 적지 않게 이곳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임성택은 흥분을 아니 할 수 가 없었다.
이틀전에 8만원까지 상승하자 이 쯤에서 물량을 조금 털어낼까 잠시 갈등을 하긴 했지만 직전 종가가 10만원대 였기 때문에 패턴상 충분히 10만원은 찍을 것으로 믿고 오히려 빛을 내어서 더 물량을 실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최소한 10만원은 가 줄것으로 믿었던
주가는 9만원에 올라서면서 부터 힘을 잃고 꼬꾸라 지기 시작하더니 출발대인 5만원까지 내려오고 말았던 것이다.
8만원에 팔 걸 그랬어 하면서 뒤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사후 약방문이였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한다고 쉴새없이 머리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한번 상승의 단맛을 본 임성택은 손 쉽게 매도 주문이 나가지 않았다.
중간에 물타기를 했기 때문에 평균 매입단가는 7만5천원선 이었고 지금 판다 해도 자기 손실은 무려 2천오백만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고객의 일임계좌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생각도 나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임성택은 지금 자신의 목돈과 추가로 은행에서 빌린 빚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담배를 잘 피우지 않는 임성택이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담배갑에 손이 갔고 한시간 전에 산 담배갑은 반밖에 남질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일성수산이 과거에 보여준 패턴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성수산처럼 대형주는 쉽게 급등락이나 급하락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몇일동안의 거래추이를 보면 일방적인 매집은 느껴지지 않았고 3일간의 하락과정에서도 하한가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하한가만 아니었지 꾸준히 7%-10%의 마이너스 하락률을 보이는건 예감이 좋지 않았다.
혹시 작전을?
임성택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성수산은 작전이 들어올 종목이 아니다.
워낙 우량주에 내수위주의 종목이기 때문에 기관들도 적지 않은 물량을 확보하고 있고 무엇보다 유통되는 주식수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하지만...최근 3일간의 거래량은 급감을 하고 있었다. 임성택은 전화를 들었다.
투신쪽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일성수산에 대한 조사와 자기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전화기를 드는 순간 임성택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있었다.
황급히 전화기를 내려놓고 주문창을 확대했다. 입에 물고 있던 반쯤 타고 있던 담배가 책상에 떨어졌다.
하한가 였다.
아직 장 마감하려면 두시간이나 남았는데도 ....
하한가가 다시 풀리면서 조금씩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임성택은 순간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매수잔량이 쌓이면서 매수세가 유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못한 기관이 드디어 자기 펀드 방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매수세에 나선 것이 틀림없다고 임성택은 생각했다.
일성수산만 믿고 몇일전에 덜컥 할부로 샀던 에쿠스 자동차 생각이 머리속에 잡혔다.
그리고 아내 지민이에게 이번달에 다이아 반지를 사주겠노라고 큰 소리 친 일도 떠올랐다.
(기관들아 힘내라 힘...어떤 놈들인지 아주 죽여버려..)
"기관들이 나섰습니다. 어쭈 녀석들이 아주 세게나오는데요"
대머리 유부장이 모니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김부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펀드방어를 하겠다 이거지?...새끼들 지금부터 진정한 결투다...허전무야 싸우러 가자"
허전무가 싱글 싱글 웃으면서 마우스를 신규매도 주문쪽에 넣고 시장가로 때렸다.
이쪽에서 시장가로 매도를 때리자 모처럼 상승하던 가격이 다시 곤두박질을 했다. 그러자 곧바로 대규모의 신규매수가 들어왔다.
김부장이 유심히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래 좋다..어느집에 총알이 더 많은지 한번 까보자구...허전무야 그리고 박실장 모든 계좌에 있는 물량중 삼분지 일만 풀어서 전부 시장가로 때려"
난 김부장의 책상에서 멀지않은 총재전용 책상에 앉아서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Ficollo란 아디를 가진 저그 유저 녀석과 지금 한창 사우론 맵에서 일대일 중이었다.
게임은 중반을 넘어섰다. 공방 각각 1업된 마린과 메딕을 두 부대를 끌고 지금 녀석의 확장지역을 공격중이었다.
물론 좀 늦긴 하지만 뒤에선 믿음직스런 탱크 한부대가 뒤따라 오고 있었다.
막 변태되어서 땅속에 짱박히려던 러크 다섯마리가 마린의 기관총 사례를 받고 녹아 없어졌다.
확장 지역을 쑥밭을 만들고 당당히 탱크를 앞세우고 녀석의 본진쪽으로 총 러시를 들어가려는데 김부장의 큰 소리가 들렸다.
"기관녀석들 두껑 열렸다. 막 사들이는데?
유상무가 심각한 눈으로 보다가 말했다.
"지금 밀리면 안되...기싸움에서 눌리면 안된다구..."
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실장과 허전무에게 손짓을 했다.
"올인!(All-in)
피콜로 녀석의 본진은 제법 수비가 탄탄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집결된 모든 물량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스런 나의 메린 마딕 한부대가 전멸을 했고 탱크도 절반이 파괴되었다.
그제서야 난 맵 중앙에 전진 배치시킨 골리앗과 탱크를 모조리 녀석의 본진으로 이동 시켰다.
올인이였다.
김부장의 느끼한 웃음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으헤헤...새끼들 총알 다 떨어졌나 보다...사는 꼬락서니가 빌빌거리는데?"
박실장이 흥분했는지 주먹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왜 더 해보지 그래? 응 응? "
허전무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우린 아직도 60만주가 남았어.....여기서 완전히 밀어 붙이면 관망하던 개미들도 우리 뒤에 줄을 설거야,,,개미들이 원래 소심하잖아 "
김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리앗들이 깊숙이 파고들어서 오버로드를 사냥하기 시작하자 피콜로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오버로드 트러블에 걸린것이다.
난 탱크를 시즈모드에서 풀어서 전진 공격시키자 녀석의 주요 건물들이 하나둘씩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던 피콜로는 더 이상 오버로드를 만들 수 없자 드디어 GG를 쳤다.
이긴 것이다.
김부장이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기관이 드디어 매도세로 들어섰다. 이것봐...응? 이거 보이냐구? 개미들도 드디어 붙었어 다시 하한가야"
임성택은 멍해졌다.
믿었던 기관들이 아까 사들인 물량을 다시 되팔자로 나서면서 이제까지 눈치만 보던 개미들까지 물량을 마구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투매였다.
극심한 심리적 공황이 맞물리면서 대세는 매도분위기였다.
임성택은 기가 막혔다.
하한가에서 멈춘 가격은 매도잔량에 무려 130만주가 쌓였고 매수잔량은 ....0 이였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임성택에게 두번째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방금 증권전산에서 날라온 메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루머]
일성수산의 부도설이 나도는 가운데 당사측에는 이를 확인하려는 투자자들의 전화가 폭주중이다.
"이제서야 흘린 루머가 뜨는군"
허전무가 중얼거렸다. 막 스타크래프트 창을 닫던 내가 되물었다.
"그 루머는 언제 흘렸나요 ?"
허전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애들 풀어서 흘렸죠...증시에는 워낙 루머가 난무하는 곳이라 평소 같으면 약발이 없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 루머는 그래도 제법 효과가 있습니다. 길진 못하고 오늘 장끝날때까진 꽤 장을 흔들어 놓을 겁니다."
"이제는 그런짓 하지 마세요..흔적을 남기면 곤란하니까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렇게 나는 말했다.
김부장이 뭐가 좋은지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이제는 탄탄대로 하한가야. 투매가 일어나고 있다구...헤헤 우린 벌써 물량을 다 털었지롱.. . 평균 매입단가 4만 7천원에 평균 매도 단가가 7만 7천원이니 주당 3만원씩 해서 흐엑...일주일 만에 2천억을 벌었네"
"돈이 돈을 먹는 게임아닙니까? 이놈의 빌어먹을 자본주의 란 곳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난 사무실을 나섰다.
김부장이 따라와서 말했다.
"총재 어딜가? 돈벌었는데 술한잔 해야지?"
"오늘 저녁에 다시 이리로 올께요..그동안 네분 수고하셨는데 거하게 대접안 할 수 있나요?"
대머리 유상무가 쓱 하고 나섰다.
"그동안 사무실에서만 먹고 자고 해서 회포를 못풀었습니다. 흐흐 오늘은 기집들 끼고 잘 수 있겠죠?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1인당 여자 두명씩 붙여 드리면 괜찮겠나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졌다. 김부장이 따라오면서 물었다.
"근데 어딜가? 오늘의 대미는 보고 가야지?"
"일이 있습니다. 구인광고를 붙이러 가야 하거든요...우리 가게에 그만둔 애들이 몇명있어서"
(주)한두 코퍼레이션을 나온 나는 주차장에 세워둔 렉스턴을 타고 청담동 가게로 갔다.
내가 카페 "크로테스"로 들어가자 영철이 녀석이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반가운 얼굴로 날 맞아주었다.
"사장님 오셨어요?"
"응 그런데 너가 카운터 보냐?"
"그럼 어떡해요...미영이도 그만두었는데"
"조금만 참아라 다시 사람을 모집할테니까 ...어이 청수야...그거 다 준비되었니?"
청수가 전단지 한보따리를 낑낑대면서 들고 왔다.
전단지를 대충 살펴보면서 내가 말했다.
"꽤 많네 이거 전부 몇장이냐?"
"이백장요..."
"알았다 청수랑 영철이는 날 따라와 나머지 애들은 가게 잘보고 있어"
두 녀석을 렉스턴에 태우고 청담대로를 건너서 건대입구 쪽으로 왔다.
편의점 앞에 렉스턴을 주차시키고 두 녀석에게 말했다.
"자.. 스무장만 빼고 넌 이 구역에 이걸 같다 붙여라"
영철이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근데 사장님...구인광고지를 왜 이곳에만 붙이는겁니까? 여긴 다리 건너이고...청담이나 압구정 주택지에 붙이는게 더 낫지 않나요?"
내가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까라면 까"
두 녀석이 전단지를 낑낑 대면서 사라지자 난 차를 몰고 성민지가 사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성민지의 아파트 입구에 들어선 나는 경비실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낮잠을 자다 일어났는지 눈빛이 매우 흐리멍텅한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오?"
"구인광고지를 좀 붙이려 하는데 협조좀 해주세요"
그러자 경비원이 인상을 구기면서 험악한 소리를 했다.
"안되요...여기 그런거 붙이면 부녀회에서 난리가 납니다. 어서 가세요 어서"
난 빙그레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구두 티켓을 꺼냈다.
"신고 있는 구두가 많이 낡으셨군요...새로운 걸로 사셔야 될거 같은데..이거 약소하지만 뇌물이라 절대로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그러자 경비원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거 씨알도 먹히는 소리 하지 마쇼...이깟 구두 티켓가지고?..응?"
경비원의 눈이 잠시 커졌다. 그는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나 다시 비비기 시작했다.
난 웃으면서 말했다.
"구인광고지가 스무장 밖에 안되거든요? 금새 붙이고 나올께요 "
그러자 경비원이 괜시리 인상을 쓰는 척하다가 말했다.
"이거야 원...하긴 사람을 급하게 써야한다면 어쩔수 없겠지...참 그럼 이거 두고 가슈....내가 대신 붙여줄테니"
"어이구 이거 감사합니다.....그럼 부탁드립니다. 참 한장도 빼먹으시면 안되요"
"젊은 사람이 걱정은...염려마슈 "
나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태운 렉스턴이 사라지자 경비원은 황급히 아까 구두티켓을 꺼냈다.
-50만원 증정 구두티켓-
발행처 :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눈을 비비고 다시 티켓을 확인한 경비원은 누가 볼새라 얼른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수고비 치고 너무 황당한 댓가를 치르고 사라진 남자가 준 전단지를 들었다.
-카운터를 보실 분을 급구-
20대 후반의 여성(기혼도 환영)2명
소재 : 청담동에 있는 카페 " 크로테스"
보수 : 동종업계 최고 대우
시간: 오전 9시부터-오후 4시 1명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1명
다음날 아침
남편을 회사로 출근 시킨 성민지는 아들 훈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외출할때 쓰는 선글라스를 오늘 쓰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늘 당당하고 맵시 있게 유지하는 자신의 발걸음과는 거리가 멀게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 임성택은 요즘들어 자주 신경질을 자신에게 부리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말이 없었고 안피우던 줄담배만 피운채 자기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자상한 남자였다.
연애로 결혼을 했고 5년이 지났지만 남편은 변함없는 태도로 자신에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요 몇일간 남편의 태도로 보아서는 말못할 고민이 있는거 같은데 자신에게 털어놓지 않고 대신 화만 버럭내기 일쑤였다.
무슨 일이 있는것일까? 걱정이 되는 성민지였으나 더 묻지는 못했다.
사실 걱정과 근심은 성민지 자신이 더 컸다. 몇일전의 일을 생각만 하면....
성민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이 아니었다. 꿈이길 몇번이고 빌었지만 그건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이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늘 피곤했고 그때 당한 충격으로 아직도 아랫도리가 얼얼하고 아파왔다.
배란일은 아니여서 임신걱정은 안했지만..혹시 성병이라도 옮았으면 어쩌나 하고 혼자 끙끙댔다.
남편을 보기에도 민망했고 어린 훈이에게 예전처럼 얼굴을 들고 자상한 엄마의 모습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일이?
성민지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주저 앉아서 왁 울고 싶어졌다.
혹시나 그 뒤로 그 흑인이 자기 주변에 나타나면 어떡하나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외출도 좀처럼 하지 않으면서 불안에 떨면서 몇일을 보냈다.
다행히 그 흑인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따금 티비에서 흑인의 모습을 보거나 심지어는 햇볕에 거을린 남자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힘이 빠졌다.
아랫도리가 아직도 욱신거렸다.
욕실에서 몰래 상처가 난것은 아닐까 살펴봤지만 조금 부은정도여서 그녀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언제 어떻게 그런일이 생길거만 같아서 마음이 조바조바한 그녀는 당분간 외출은 하지말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로 들어오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하면서 자기에게 인사를 했다.
"훈이 어머님 안녕하세요...훈이 놀이방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인가 봐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상심한데 저 아저씨는 뭐가 저렇게도 좋을까?
성지민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맘을 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비원이 번쩍 거리는 구두를 들어올리면서 자랑을 했다.
"훈이 어머님...이거 어때요? 어제 새로 산 신발인데...잘 어울리는 거 같나요?"
겨우 신발 자랑할려고 사람을 붙잡은 것일까?
성민지는 지금 신발이고 뭐고 관심이 없었다.
형식적으로 그거 참 좋네요 아드님이 사주셨나요 라고 말했다.
"헤헤...아들은 아니구 누군가 선물로 준거라우 참 이거 한번 가져가보세요 어쩌면 훈이 어머님한테 맞을지도 모르겠네?quot;
싱글싱글 웃던 경비원이 웬 광고지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훑어보니 무슨 카운터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지였다.
그녀는 이런거나 아파트 주민에게 건네주는 경비원이 좀 미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집어 들면서 말했다.
"네...한번 읽어볼께요..그럼"
광고지를 손에 딸랑딸랑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성민지는 또 한번 한숨을 쉬었다.
역시 꿈이 아니었다. 이 악몽에서 빨리 벗어나길 빌고 또 빌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아파트 현관까지 걸어 온 그녀는 문을 열기전에 다시 한번 그 광고지를 대충 훑어보았다.
얼핏보니 아까 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벽에 잔뜩 붙여 놓은 그 구인광고지였다.
이 사람들이 아파트에까지 들어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광고지를 든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구인광고라...
그녀는 직장 생활을 결혼전에 잠시 한 적이 있었다.
의류업체에서 디愍犬袈?일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고 가정으로 들어와 버렸다.
직장이라...
그녀는 지금 남편 임성택의 수입으로도 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그래도 꽤 유망한 증권맨이었고 이 집도 둘이서 돈을 모아서 산 것이었다.
그녀는 광고지를 버리려다가 문득 남편얼굴을 떠올렸다.
어제 남편이 첨으로 돈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다.
왜 그러냐고 묻자...남편은 한 이천 정도 구할 수 없을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냥 얼버무렸던 것이다.
남편이 돈이 급하게 필요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유심히 구인광고지를 바라보았다.
카페에서 카운터를 구하는 내용...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가정에서 주부로 지내면서 가끔식 사회활동하는 옛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도 해 보았지만 지금은...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기업체에서 디자이너까지 했던 자신이 이깟 카페에서 경리나 다름없는 카운터나 본다는게 웬지 존심이 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거실 한쪽에 놓여진 휴지통에 구인지를 구겨서 버렸다.
남편 임성택은 새벽에 들어왔다.
엉망으로 취한 모습으로 비틀대면서 거실로 들어온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성민지는 놀랐다.
남편은 술을 거의 못하는 남자로 결혼후에 이렇게까지 고주망태가 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겨우 남편을 재운 성민지는 남편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민지는 지금 남편이 오늘 낮에 처분한 주식으로 인한 손실이 3억에 가깝다는것을 알리가 없었다.
오전 장 내내 하한가에서 맴돌던 일성수산을 결국 하한가인 3만 8천원에 겨우 처분한 임성택은 속이 쓰리고 쓰렸다.
고객들이 입은 손실도 손실이지만 임성택은 친척으로 부터 그리고 은행으로 부터 끌어들인 돈이 2억에 가까웠던 것이다.
다음날 술이 깬 임성택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식탁에서 아내에게 고백을 했다.
성민지는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신중한 사람이여서 큰 모험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남편의 침착함을 성민지는 존경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털어놓은 사실은 믿기가 힘들 말들 뿐이었다.
"미안하다...하지만 부모님께 부탁하면 그 정도는 막을 수 있을거야 너무 걱정마"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출근을 해 버렸다.
훈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면서 성민지는 이것 저것 생각을 했다.
시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니 남편말대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이 아파트를 살때도 시부모님이 적지 않게 도와주셨는데...또 손을 벌린다는것이 맘에 걸렸다. 붓고 있는 적금과 자신이 따로 들고온 지참금을 얼추 계산해 보았다. 그런대로 1억 5천 정도는 맞출수 있었지만 더는 무리였다.
그제서야 성민지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가를 깨달았다.
당장 다음달 부터 내야할 은행이자가 걱정이 되었다. 얼마나 내야할까....은행에서 끌어 쓴 돈이 1억3천이니 월 이자가 5-60만원에 육박했다.
일단은 은행보다는 친척에게 빌린 돈부터 갚아야 만 했다.
그렇다 해도 매월 50만원이 넘는 돈을 이자로 꼬박 은행에 내야 하는 결론이었다.
남편을 도와야 겠다는 의무감이 생겼고 자기가 은행이자 정도는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자 맘이 조급해졌다.
한달에 60만원 정도 벌 일자리는 찾으면 어렵지 않을거도 같았다.
길가에 꼽힌 생활정보지를 두개 집어든 그녀는 문득 생각이 나서 아파트 담벼락을 둘러보았다.
어제까지 잔뜩 붙어 있던 그 카페 광고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극성스런 아파트 부녀회가 이런걸 가만둘리 없었다.
하루만에 다 떼버린 그 자리에는 새로운 연극 포스터가 나붙고 있었다.
그녀는 생활정보지를 들고 아파트를들어왔다.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까지 대령한채 느긋하게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정보지에 난 구인광고를 뒤적거리던 그녀는 금새 난감해졌다.
식당아주머니 구함, 월수아줌마 구함, 생수기 판매 아줌마 구함
그녀로서는 쉽게 응하기 힘든 생소한 일들 뿐이었다.
돈버는게 이렇게 어려웠던가 그녀는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그래도 열심히 볼펜으로 체크하면서 두번째 생활정보지를 뒤졌다.
그중엔 꽤 괜찮은 곳이 있었으나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오후에 나가거나 하루종일 일하는 그런 자리뿐인데 훈이가 놀이방에서 돌아오는 오후4시까지는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성지민으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순간 신경질이 나서 들고 있던 볼펜을 집어 던졌다.
애꿎은 볼펜은 소파옆에 있는 휴지통에 맞고 땡구르를 거실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쓰레기통으로 갔다.
쓰레기통을 한참 뒤지자 어제 낮에 버렸던 구인광고지가 구겨진채 있는 것이 보였다.
구겨진 광고지를 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카페라...술을 팔고 그런곳이 아닐까?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동종업계 최고대우란 글씨에 눈이 머물렀다.
얼마나 줄려고 저렇게 큰소리를 하는걸까? 대게 저런건 뻥이라던데....
시간대를 보니 오전 시간대면 그런대로 자기에게 맞을듯도 했다.
카페에서 카운터를 본다면 그냥 돈만 거슬러 주는일이 아닐까?
그녀는 갈팡질팡 광고지를 버리려다가 결심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녀는 결심했다.
(그래 일단 손님인척 하고 그 곳을 가보자...)
청담동이면 버스타고 다리만 건너면 10분 거리였다.
일단 가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지난번 극장에서 봉변을 당한 이후 더욱 신중해진 성민지였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그녀는 아파트를 나와서 361 버스를 타고 청담동으로 갔다.
구인지에 있는 주소는 찾기가 쉬웠다.
파란색과 회색이 섞인 지은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카페는 한글로 크로테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페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작지도 크지 않은 공간에 탁자가 여러개 있었고 바도 보였다.
가게 안에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 생들이 검은색 네이프런을 두르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하고 착하게 생긴 아르바이트 생들의 얼굴을 보고 조금 맘이 놓였다.
그녀가 들어서자 조금 마른 남자애 명찰에 조영철이라 적힌 남자애가 와서 인사를 했다.
그녀는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 티를 주문하고 가져간 책을 꺼내서 읽는 척 했다.
가게에는 손님이 한명 밖에 없었다.
창가쪽에 30대 초반의 남자가 커피잔을 놓고 말없이 책을 일고 있는게 보였고 카운터에는 꽤 덩치가 좋은 남자애가 앉아서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나머지 남녀 아르바이트 생들은 바에 기대서 재미난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가 제법 화기 애해 하구나....그런데 사장은 어디있을까? 카운터에 앉아서 조는 남자가 사장일까?
사장치고는 너무 어려보이는데)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까 주문을 받은 영철이란 남자애가 창가에 앉은 남자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걸기 시작했다.
"사장님...그런데 카운터는 언제 구하실거에요? 저기 청수형 자는거 보이죠? 못봐주겠어요 진짜"
그녀는 잠시 놀랬다.
(창가에 앉은 저 남자가 사장이구나...전혀 사장같지도 않고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데?)
그러자 사장이란 남자는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글쎄다...오후에 일할 카운터는 구했는데 오전은 아직 소식이 없네"
그러자 영철이란 남자애가 다시 말했다.
"사장님 너무 까다로우신거 아니에요? 어제도 두명이나 왔다 갔는데 왜 채용안하셨어요?"
그러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든? 난 20대 후반이면 좋은데 그 여자들은 30은 훨씬 넘어 보이더라구"
그러자 영철이란 남자가 말했다.
"카운터인데 나이를 그렇게 따질거 있을까요?"
"에이 그래두...여긴 젊은애들 많이 오는 청담동이잖냐...너무 나이가 많으면 분위기가 안좋을 수도 있어
그리구 너무 어려도 문제야...내가 늘 가게를 비우는데 카운터라도 내 나이 정도는 되어야지"
성민지는 사장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사장이란 남자의 취향이 독특하구나...변태는 아니겠지?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난 그냥 관찰하러 온거라구)
성민지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영철이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구인지를 잘못붙힌거 같아요. 우리 카페라면 일할 사람은 줄을 섰을거라구요...솔직히 사장님만큼 후하게 주시는 분이 어딨나요?"
그녀가 또 생각했다.
(후하게 준다구? 얼마나 주길래 저런 소릴 할까? 내가 듣기론 서빙 아르바이트가 기껏해야 시간당 2-3,000원이랬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 그럼 너희들 시급을 이번 참에 좀 깍을까? 너무 많이 줘도 불만이다 이거지?"
그러자 영철이가 헤헤 거리면서 말했다.
"에이 말씀도 꼭 그렇게 섭하게 하시네...참 이번에 카운터 오실분은 얼마나 주실건가요? 전에 있었던 미영이 수준 정도?"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첨부터 그렇게 줄수야 있나 시간이 지나면서 올려줘야지"
"그럼 얼마나 주실 생각이세요?"
"이 녀석아 너가 사장해라 임마..."
"에이 그래야 제가 안되면 사람을 데리고 오죠 카운터 빨리 구해야죠"
"그러니? 저번에 미영이가 얼마씩 받았지? 난 기억이 잘 안나네"
성민지는 사장의 머리 긁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장사하는 사람이 뭐 저러냐?)
영철이의 말이 들렸다.
"미영이가 시간당 7천5백원이었으니 새로오실 분은 대략 7천원 정도면 되겠네요?"
성지민은 자기가 잘못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7천원이라 그랬나 방금? 그렇게 많이 주다니?)
성지민이 놀라고 있는데 사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7천원으로 하지 뭐 그럼"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면서 영철이에게 말했다.
"저기 구인광고 보고 왔는데요...카운터 구하신다길래"
그러자 사장이 일어서서 자기 쪽으로 자리를 권했다.
성민지는 웬지 관심도 생기고 조바심이 생겼다. 머리속으로 7천원이란 말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둘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손님으로 오지 않고 그냥 자기가 직접 이야기 할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이 가게에서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 시작했다.
사장은 꽤 젊고 예의가 있어 보였고 가게에서 일하는 애들도 다 착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은 가게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고 ...그만하면 눈치도 덜 보이고 자꾸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마친 여자가 연락 주세요 그러면서 카페를 나갔다.
성민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벌써 저 여자로 결정했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과 자신의 소심함을 원망했다.
영철이가 다가가서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어때요?"
그러자 사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여자도 아니에요? 또 왜 그러신건데요?"
"너무 향수가 짙어...난 저런 향수는 질색이야"
"에이 또 왜 그러세요...너무 까다로우신거 아닌가요?"
그러자 사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장님은 그럼 어떤 취향이신데요?"
그러자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흠 난 그게 좋더라...프랑스제 오데코롱말이야...거 뭐야 상표 이름이,,,"
사장이 그 상표를 말하자 성민지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그건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상표였다.
자기도 모르게 백을 집어들고 그 오데코롱을 가져 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있었다.
성민지는 잠시 주저하다가 백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참후에 메이컵을 다시하고 나온 성민지는 용기를 내서 사장이 앉은 창가로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사장이 사람좋은 얼굴을 하고 고개를 책에서 떼었다.
"네 무슨 일이신데요?"
"구인광고를 보고 왔어요...카운터를 구하신다길래.."
삼십분후에 카페를 나선 성민지는 조금 들뜨기도 했고 자신이 너무 성급한 결정을 했나 근심되었다.
그러나 바로 채용이 되었다는 것은 기분좋은 사실이었다.
그녀로서는 이 결정이 그녀 인생에 있어 새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채....
사장이란 남자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를 채용하겠다고 했고 내일부터 나와 줄수 있냐고 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보니 인상이 더 좋아 보였고 그 인상좋은 사장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훈이 때문에 3시까지만 해도 되겠냐는 부탁에 선선히 허락했다.
남편에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당분간은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버스를 탔다.
어제까지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만 같은 성민지였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훈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는길에 자신도 외출준비 아니 출근준비를 하고 나왔다.
훈이를 데려다 주고 그녀는 바로 버스를 타고 카페 "크로테스"로 출근을 했다.
역시 사장은 콧배기도 비추지 않았다.
그리고 일은 힘들것이 없었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애들도 자기를 언니 그리고 누나 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오전에는 특히 손님들도 별로 없어서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서 책을 보기 시작했고 자리도 꽤 푹신하고 넒어서 독서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사장은 이따금씩 나타났는데 자기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늘 앉는 자리에 가서 책을 읽거나 가끔씩 아르바이트 애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정도였다.
3일이 지나자 그녀는 이 가게가 점점 맘에 들기 시작했다.
사장은 별로 말이 없는 자였다.
애들 이야기로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남이라는데 ...
"여기 사장님은 어떠신 분이야?"
3일째 되던날 성민지는 청수라는 덩치좋은 남자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청수가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멋장이시죠...누님도 몇일 안 계셨지만 사장님은 거의 잔소리를 안하세요..가게 일도 거의 우리에게 맡기시죠 "
"그러다가 무슨일이 생기면 어떡하니?"
"에이 사장님은 그런거 신경 안쓰세요...이건 비밀인데요...손님들중에 사장님에게 관심보이는 여자들이 몇명있답니다."
그녀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니? 그래서?"
"근데 사장님은 거들떠도 안보세요...여자들에겐 관심이 없는건지 그냥 웃기만 하시죠.."
청수는 내가 시키는대로 잘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놈은 잘안다.
나를 거친 여자가 한트럭은 넘을것이란것을...
덤프트럭으로 말이다.
성민지는 사장이란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영화에서처럼 사장이란 직위를 남용해서 자기를 어떻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때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소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극장에서의 봉변 이후로 주위에 있는 남자들이 다 두렵기만 했다.
그날 오후가 될때까지 사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 한통만 ?놓으면 더 이상 사장을 찾는 전화도 없었다.
그 전화를 카운터에 있는 성민지가 받았고 목소리는 여자였다.
그 시간 아파트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나는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했다.
그녀는 저번주에 만났던 보험설계사 최지혜였다.
에어콘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내 침실에서 그녀와 난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허억..으응.아아...더 세게"
그녀가 내 몸위에서 그렇게 속삭였다.
"그래? 후회하지마..한번 죽어봐라...야압"
"허어억"
그녀가 몸을 뒤로 한껏 꺽으면서 단말마를 뱉었다.
"어떠니? 계속 해줄까?"
"아아...너무 ..너무 세...그래도 계속...으응 아악"
그녀가 날 조랑말로 생각했는지 내 몸위로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쾌감을 더 높일수 있게 몸을 여기저기 비틀었고 난 거기에 정확하게 보조를 맞추어주었다.
"흐윽....자기는..왜 그동안 연락을 아앗...."
"연락을 안했냐구? 야아앗"
"흐흥...너무 좋아 그렇게 계속 그렇게,,,"
"날 다신 안보려 할줄 알았어..그래서 연락을 안했어 흐윽 아 너무 좋은걸?"
"허억..나,,,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아아...거기 그렇게 으응.....그래도 자기가 연락을 줄줄 알았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벽으로 가서 그녀를 세웠다.
벌거벗은 채 벽에 기대선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들어서 내 옆구리에 갖다대고는 난 몸을 숙여서 그녀의 몸에 내 하체를 밀착시키면서 서서히 밀어넣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목을 꽈악 끌어안았다.
"아아악...너무 너무 좋아...이런 이런 자세는 처음이야"
"흐읍,..그러니? 아직 보여주지 않은게 더 많은데 어쩌지?"
"허어 허억....그래? 자긴..너무 미워....자긴 바람둥이야...으응...도대체 지금까지 몇명이나...하악"
"너처럼 매력적인 여잔 너가 첨이야...헉헉...그것만 알아둬...이 체위 좋니?"
"거짓말...허어읍...흑흑...이 자세..너무 자극적이야..아 난 죽을거 같아 "
"이대로 계속하면...헉헉...넌 섹스밖에 생각안날거야...헉헉...물론 떠오르는 남자는 나일테구 허업"
"몰라..미워...아악...나 지금 하려고 그래..."
"그래? 허업!"
"응..지금 해줘..지금 지금 이대로"
난 그녀를 거칠게 잡아당기고 침대에 쓰러뜨렸다.
먹이를 덮치는 야수처럼 그대로 돌진한 나는 그녀의 하체 깊숙이 아주 깊숙이 성이 날대로 난 내 물건을
밀어넣고 거칠게 펌프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미친여자처럼 머리카락을 흔들어 대면서 지금 지금,,하면서 소릴 질렀고 내가 마지막을 준비하려 하자 그녀가 황급하게 소리쳤다.
"안에 해줘...안에...오늘 안전한 날이야...아아... 자기걸 다 받아 들이고 싶어 안에 넣고 깊이 싸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뒤로 한껏 빼었다가 투수가 포수쪽으로 공을 던지듯이 세게 내 물건을
쑤셔박았다.
머리속이 하애져 오고 몸전체로 싸늘한 기운이 감싸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양이 나왔는지 알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질내로 쏟아져들어오는 정액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 아 아 아 악!"
그녀는 소릴 지르면서 손톱을 세운채 내 등을 찍으면서 필사적으로 내 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방울이라도 더 받으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묘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폭풍이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직도 정상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헐떡 대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면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좋았어?" 내가 그렇게 묻자 그녀는 으응 하는 콧소리를 내면서 내 몸에 안겨왔다.
"조금만 더 이렇게 안아줘 아주 조금만"
안겨오는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더 천천히 내려오고 싶었던 것이다.
담배를 꺼내 물자 그녀가 어느새인가 라이터를 집어 들고는 불을 차악 하고 붙여주었다.
난 미소를 띠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남자를 잘 아네?"
"뭐가"
"남자는 여자가 불을 붙여주면 굉장히 행복함을 느껴...나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발그레 입을 벌리고 장난스레 눈을 찡그렸다.
"남편하고는 요즘도 그러니?"
"어쩐일인지 요즘은 채팅도 잘 안하구 이혼 이야기도 꺼내지 않아..."
난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쏘아올렸다.
에어콘 바람에 연기가 부서지고 있었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말이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 또 오게 될까? 여기에?"
"그러고 싶니?"
"잘 모르겠어...그때 자기랑 자고 여길 나갈땐 다시는 안올거라 생각했는데...내 맘은 나도 잘 모르겠어"
"남편이 다시 잘해준다면 남편에게로 돌아가"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니?"
"남편과는 계속 잘 지내고 싶어...하지만 남편은 나랑 잠자리를 할 수 없어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했거든 그래서...."
난 그녀의 말을 거기에서 끊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댔다.
"그래서 내가 대용품이다 이건가?"
그녀가 화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말을 그렇게 하냐? 자긴?"
"아무래도 좋아...하지만 이건 말해주고 싶어...난 과거를 잊고 사는 사람이다. 난 모든걸 잊어...오늘일도 곧 있으면 과거가 될거야..."
그녀가 내게 몸을 돌리면서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다는 거야...과거 없이는 미래도 없지...난 그래"
"그러니까..나와 했던 것도 모두 잊을거란 거니?"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를 부벼껐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한참이나 쏘아보기 시작했다.
입술을 한참이나 움직이던 그녀가 한숨을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바닥에 떨어진 자기의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말없이 방문을 나섰다.
난 그녀를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쾅 하는
문소리와 함께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니까..
같이 있던 사람이 없어지자
에어콘에 노출된 내 알몸은 금새 추워졌다.
미키가 옆에서 낑낑 대고 있었다.
정원으로 가서 맘껏 뛰어놀고 싶은데 내가 목덜미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차마 날 물지는 못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기의 주인인 노파를 바라볼 뿐 이었다.
할머니는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정원으로 가득 쏟아지고 있는 햇살을 바라 보았다.
내 앞에 있는 찻잔은 거의 다 비워져 가고 있었다. 한동안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했다.
"비라도 좀 와야 할텐데...저 잔디들이 벌써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구나"
"곧 올겁니다. 태풍이 몰려온다고 그러더군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 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태풍...그렇지....그러고 보니 꼭 3년전 이맘때 구나....그날도 큰 비와 돌개바람이 불어대던 밤이었지"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십니까?"
그녀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잊겠니?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구..넌 그날 밤을 벌써 잊었니?"
"전 기억을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망각을 이끄는 시간이란건 너무 느리거든요"
"자연히 잊혀질때까진 그대로 두는게 좋단다 애야...너무 그렇게 애쓰지 마라"
"대모님께는 미안한 이야기 지만....전 어떤것도 기억안할겁니다. 모든것들을...심지어는 지금 대모님과 차를 마시는 이 순간도..몇분뒤에 내가 자리를 뜨면 잊혀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할머니가 다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넌 아직 젊어서 그런거다....나같은 쓸모없는 늙은이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가져가려고 애를 쓴단다...안타깝게도 나이탓에 점점 기억력이 희미해져서 그것이 가슴아플 뿐이란다"
"전 대모님 처럼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전 밤에 잠을 잘 못이룹니다.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새벽에나 간신히 잠이 들거든요"
그녀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녀석두...아직도 그러니? 그래...하지만 모든게 시간이 지나면 별게 아닌게 된단다...넌 모든 현실을 잊고 싶겠지만 난 3년전 널 만나던 그 날밤은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거야...아니 내가 아무리 망령이 들더라도 그 기억만은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구나"
난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말을 했다.
"3년전 그날밤...난 죽을위기 였지...집으로 오는 길에 세명의 남자가 내가 차고 있는 차를 공격했지,,,그들은 나에게서 건물을 빼앗긴 과거의 채무자들이였지...마침 희도 민도 두고 운전기사 하나만 데리고 나선 길인것을 녀석들이 알아내고 날 죽이려고 덤볐지...아마 그때 근처에서 잠자고 있던 너가 뛰어들지 않았다면 오늘 난 여기에 없었을거야...모르긴 몰라도 너랑 차를 마시는 일도..미키랑 산보하는 일도 없었을거야 "
"전 별로 한 일이 없었어요...뒤 늦게 달려온 희와 민이가 다 그 녀석들을 처리했을 뿐이죠"
"녀석두...기억 못한다면서...다 기억하는구나..두 녀석이 달려왔더라도 너가 없었으면 어림없는 일이였어...넌 ..나대신 그녀석들이 들고 있는 칼을 맞았어....죽지 않은게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상처였는데 말이야...그런데 넌 그때 그 시간에 왜 길가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거냐? 3년이 지나도록 넌 한번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어"
"술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잠들어 있었을 뿐입니다.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세녀석이 낫고 칼을 들고 어떤 승용차 안으로 달려드는게 보여서 주제도 모르고 객기를 부린것 뿐이죠"
그녀가 음성을 누그러 뜨리면서 물었다.
"난 그걸 물은게 아니야...너가 술에 취해서 잠이 들었다는건 나도 알아..피투성이로 쓰러진 너 녀석입에는 지독한 술냄세가 났거든...난 왜 너가 그때 술을 마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게야..보통 많이 마신게 아니었어....괴로운 일이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사람이 마실수는 없는게야"
내가 아무 말없이 찻잔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오늘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싶은게로구나....그 일이 있고 3년이 지났고 넌 내 아들이 되었어
하지만 너의 과거에 대해선 난 아는게 너무 없구나...물론 맘만 먹으면 너 과거정도 알아내는거 쉽지만 너에게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너가 날 정말 엄마로 생각한다면 스스로 말할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죄송하지만...앞으로도 제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할날은 없을 겁니다. 정말 궁금하시면 대모님 능력정도라면 금새 제 과거를 알아내실수 있겠죠...하지만 전...모든걸 다 잊어 버렸습니다. 모든걸 다 잊으면서 살겠습니다."
그녀가 잠시 안타까운 눈빛을 지었다.
"사람들이 날보고 철마녀라고 부르지...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난 절대 하지 않는다. 난 누구도 믿지 않고 그렇게 혼자 살았어....지금 내가 관심이 가는 녀석은 이 미키랑 너 뿐이다 항상 그걸 잊지 마렴...."
"다 잊어버릴지 몰라요 대모님...그러니 저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지금까지 저에게 주신것만도 너무 과분합니다. 가게를 내도록 도와주셨고..대모님의 경호원인 민과 희까지 아낌없이 저에게 내어주셨지 않습니까? 전 뻔뻔한 놈이라 오늘처럼 또 뭘 부탁할 일이 있을때만 여기로 올겁니다. "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부탁을 필요로 하고 그럴때면 항상 비굴한 모습을 동반했다. 너처럼 당당하게 뭘 요구한 녀석은 없었어....난 그래서 너가 맘에 든다. 이 철마녀가 널 양아들로 맞았을때 사람들이 전부 나보고 망령났다고 비웃었겠지...난 너 몸속에 흐르는 차가운 피가 좋아,...그건 내 피와 비슷한 온도야....너 녀석도 고집이 세지만 이 늙은이는 더 만만하지 않지...그래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너가 아까 요구한 200억은 곧 입금시켜주마...또 다른 부탁이 있니?"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번에 하나씩만 부탁 안해도 된다. 그런데 내가 들으니 몇일전에 너 가게를 어지럽히고 간 녀석들이 있었다며? "
"민이나 희가 그러던가요?"
"이녀석아...내 정보통이 겨우 그 두녀석뿐인줄 알았더냐? 너가 싫어할까봐 말은 안했다만 너 집이랑 가게에는 내가 풀어놓은 애들이 더 있단다...그런데 그 녀석들을 가만히 두었니?"
"걱정마세요...알아듣기 좋게 이야기를 해줬으니까요"
"흠 그래?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내가 손을 쓰려고 했다...감히 철마녀의 아들을 건드린 녀석은 남김없이 피를 보게 할테다"
"미키에게나 잘 해주세요 이녀석이 놀고 싶어서 아까부터 낑낑대네요"
그제서야 자유의 몸이 된 미키가 컹컹 짖으면서 햇살이 눈부신 정원 속으로 사라졌다.
임성택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수가 없었다.
천당과 지옥을 몇일만에 갔다 온 기분이랄까....
책상앞에 있는 17인치 LCD 모니터에는 일성수산의 일봉 차트창과 주문창이 절반씩 떠 있었다.
몇일동안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던 일성수산은 9만원을 고비로 다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첨에는 정말 해피한 날들이었다.
시세 하락기 동안에 고객들이 많이 이탈했고 덕분에 수수료 수입도 팍 줄어서 근심이 많은 날들이었는데 자기가 고객에게 강력히 추천한 일성수산이 자기의 애타는 기도를 들었는지 급상승을 보였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5만원에서 7만원 그리고 9만원까지...
임성택은 환호성을 질렀다.
고객 계좌뿐 아니라 자신과 집안의 돈도 적지 않게 이곳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임성택은 흥분을 아니 할 수 가 없었다.
이틀전에 8만원까지 상승하자 이 쯤에서 물량을 조금 털어낼까 잠시 갈등을 하긴 했지만 직전 종가가 10만원대 였기 때문에 패턴상 충분히 10만원은 찍을 것으로 믿고 오히려 빛을 내어서 더 물량을 실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최소한 10만원은 가 줄것으로 믿었던
주가는 9만원에 올라서면서 부터 힘을 잃고 꼬꾸라 지기 시작하더니 출발대인 5만원까지 내려오고 말았던 것이다.
8만원에 팔 걸 그랬어 하면서 뒤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사후 약방문이였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한다고 쉴새없이 머리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한번 상승의 단맛을 본 임성택은 손 쉽게 매도 주문이 나가지 않았다.
중간에 물타기를 했기 때문에 평균 매입단가는 7만5천원선 이었고 지금 판다 해도 자기 손실은 무려 2천오백만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고객의 일임계좌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생각도 나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임성택은 지금 자신의 목돈과 추가로 은행에서 빌린 빚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담배를 잘 피우지 않는 임성택이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담배갑에 손이 갔고 한시간 전에 산 담배갑은 반밖에 남질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일성수산이 과거에 보여준 패턴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성수산처럼 대형주는 쉽게 급등락이나 급하락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몇일동안의 거래추이를 보면 일방적인 매집은 느껴지지 않았고 3일간의 하락과정에서도 하한가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하한가만 아니었지 꾸준히 7%-10%의 마이너스 하락률을 보이는건 예감이 좋지 않았다.
혹시 작전을?
임성택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성수산은 작전이 들어올 종목이 아니다.
워낙 우량주에 내수위주의 종목이기 때문에 기관들도 적지 않은 물량을 확보하고 있고 무엇보다 유통되는 주식수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하지만...최근 3일간의 거래량은 급감을 하고 있었다. 임성택은 전화를 들었다.
투신쪽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일성수산에 대한 조사와 자기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전화기를 드는 순간 임성택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있었다.
황급히 전화기를 내려놓고 주문창을 확대했다. 입에 물고 있던 반쯤 타고 있던 담배가 책상에 떨어졌다.
하한가 였다.
아직 장 마감하려면 두시간이나 남았는데도 ....
하한가가 다시 풀리면서 조금씩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임성택은 순간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매수잔량이 쌓이면서 매수세가 유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못한 기관이 드디어 자기 펀드 방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매수세에 나선 것이 틀림없다고 임성택은 생각했다.
일성수산만 믿고 몇일전에 덜컥 할부로 샀던 에쿠스 자동차 생각이 머리속에 잡혔다.
그리고 아내 지민이에게 이번달에 다이아 반지를 사주겠노라고 큰 소리 친 일도 떠올랐다.
(기관들아 힘내라 힘...어떤 놈들인지 아주 죽여버려..)
"기관들이 나섰습니다. 어쭈 녀석들이 아주 세게나오는데요"
대머리 유부장이 모니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김부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펀드방어를 하겠다 이거지?...새끼들 지금부터 진정한 결투다...허전무야 싸우러 가자"
허전무가 싱글 싱글 웃으면서 마우스를 신규매도 주문쪽에 넣고 시장가로 때렸다.
이쪽에서 시장가로 매도를 때리자 모처럼 상승하던 가격이 다시 곤두박질을 했다. 그러자 곧바로 대규모의 신규매수가 들어왔다.
김부장이 유심히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래 좋다..어느집에 총알이 더 많은지 한번 까보자구...허전무야 그리고 박실장 모든 계좌에 있는 물량중 삼분지 일만 풀어서 전부 시장가로 때려"
난 김부장의 책상에서 멀지않은 총재전용 책상에 앉아서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Ficollo란 아디를 가진 저그 유저 녀석과 지금 한창 사우론 맵에서 일대일 중이었다.
게임은 중반을 넘어섰다. 공방 각각 1업된 마린과 메딕을 두 부대를 끌고 지금 녀석의 확장지역을 공격중이었다.
물론 좀 늦긴 하지만 뒤에선 믿음직스런 탱크 한부대가 뒤따라 오고 있었다.
막 변태되어서 땅속에 짱박히려던 러크 다섯마리가 마린의 기관총 사례를 받고 녹아 없어졌다.
확장 지역을 쑥밭을 만들고 당당히 탱크를 앞세우고 녀석의 본진쪽으로 총 러시를 들어가려는데 김부장의 큰 소리가 들렸다.
"기관녀석들 두껑 열렸다. 막 사들이는데?
유상무가 심각한 눈으로 보다가 말했다.
"지금 밀리면 안되...기싸움에서 눌리면 안된다구..."
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실장과 허전무에게 손짓을 했다.
"올인!(All-in)
피콜로 녀석의 본진은 제법 수비가 탄탄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집결된 모든 물량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스런 나의 메린 마딕 한부대가 전멸을 했고 탱크도 절반이 파괴되었다.
그제서야 난 맵 중앙에 전진 배치시킨 골리앗과 탱크를 모조리 녀석의 본진으로 이동 시켰다.
올인이였다.
김부장의 느끼한 웃음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으헤헤...새끼들 총알 다 떨어졌나 보다...사는 꼬락서니가 빌빌거리는데?"
박실장이 흥분했는지 주먹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왜 더 해보지 그래? 응 응? "
허전무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우린 아직도 60만주가 남았어.....여기서 완전히 밀어 붙이면 관망하던 개미들도 우리 뒤에 줄을 설거야,,,개미들이 원래 소심하잖아 "
김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리앗들이 깊숙이 파고들어서 오버로드를 사냥하기 시작하자 피콜로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오버로드 트러블에 걸린것이다.
난 탱크를 시즈모드에서 풀어서 전진 공격시키자 녀석의 주요 건물들이 하나둘씩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던 피콜로는 더 이상 오버로드를 만들 수 없자 드디어 GG를 쳤다.
이긴 것이다.
김부장이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기관이 드디어 매도세로 들어섰다. 이것봐...응? 이거 보이냐구? 개미들도 드디어 붙었어 다시 하한가야"
임성택은 멍해졌다.
믿었던 기관들이 아까 사들인 물량을 다시 되팔자로 나서면서 이제까지 눈치만 보던 개미들까지 물량을 마구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투매였다.
극심한 심리적 공황이 맞물리면서 대세는 매도분위기였다.
임성택은 기가 막혔다.
하한가에서 멈춘 가격은 매도잔량에 무려 130만주가 쌓였고 매수잔량은 ....0 이였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임성택에게 두번째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방금 증권전산에서 날라온 메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루머]
일성수산의 부도설이 나도는 가운데 당사측에는 이를 확인하려는 투자자들의 전화가 폭주중이다.
"이제서야 흘린 루머가 뜨는군"
허전무가 중얼거렸다. 막 스타크래프트 창을 닫던 내가 되물었다.
"그 루머는 언제 흘렸나요 ?"
허전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애들 풀어서 흘렸죠...증시에는 워낙 루머가 난무하는 곳이라 평소 같으면 약발이 없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 루머는 그래도 제법 효과가 있습니다. 길진 못하고 오늘 장끝날때까진 꽤 장을 흔들어 놓을 겁니다."
"이제는 그런짓 하지 마세요..흔적을 남기면 곤란하니까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렇게 나는 말했다.
김부장이 뭐가 좋은지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이제는 탄탄대로 하한가야. 투매가 일어나고 있다구...헤헤 우린 벌써 물량을 다 털었지롱.. . 평균 매입단가 4만 7천원에 평균 매도 단가가 7만 7천원이니 주당 3만원씩 해서 흐엑...일주일 만에 2천억을 벌었네"
"돈이 돈을 먹는 게임아닙니까? 이놈의 빌어먹을 자본주의 란 곳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난 사무실을 나섰다.
김부장이 따라와서 말했다.
"총재 어딜가? 돈벌었는데 술한잔 해야지?"
"오늘 저녁에 다시 이리로 올께요..그동안 네분 수고하셨는데 거하게 대접안 할 수 있나요?"
대머리 유상무가 쓱 하고 나섰다.
"그동안 사무실에서만 먹고 자고 해서 회포를 못풀었습니다. 흐흐 오늘은 기집들 끼고 잘 수 있겠죠?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1인당 여자 두명씩 붙여 드리면 괜찮겠나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졌다. 김부장이 따라오면서 물었다.
"근데 어딜가? 오늘의 대미는 보고 가야지?"
"일이 있습니다. 구인광고를 붙이러 가야 하거든요...우리 가게에 그만둔 애들이 몇명있어서"
(주)한두 코퍼레이션을 나온 나는 주차장에 세워둔 렉스턴을 타고 청담동 가게로 갔다.
내가 카페 "크로테스"로 들어가자 영철이 녀석이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반가운 얼굴로 날 맞아주었다.
"사장님 오셨어요?"
"응 그런데 너가 카운터 보냐?"
"그럼 어떡해요...미영이도 그만두었는데"
"조금만 참아라 다시 사람을 모집할테니까 ...어이 청수야...그거 다 준비되었니?"
청수가 전단지 한보따리를 낑낑대면서 들고 왔다.
전단지를 대충 살펴보면서 내가 말했다.
"꽤 많네 이거 전부 몇장이냐?"
"이백장요..."
"알았다 청수랑 영철이는 날 따라와 나머지 애들은 가게 잘보고 있어"
두 녀석을 렉스턴에 태우고 청담대로를 건너서 건대입구 쪽으로 왔다.
편의점 앞에 렉스턴을 주차시키고 두 녀석에게 말했다.
"자.. 스무장만 빼고 넌 이 구역에 이걸 같다 붙여라"
영철이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근데 사장님...구인광고지를 왜 이곳에만 붙이는겁니까? 여긴 다리 건너이고...청담이나 압구정 주택지에 붙이는게 더 낫지 않나요?"
내가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까라면 까"
두 녀석이 전단지를 낑낑 대면서 사라지자 난 차를 몰고 성민지가 사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성민지의 아파트 입구에 들어선 나는 경비실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낮잠을 자다 일어났는지 눈빛이 매우 흐리멍텅한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오?"
"구인광고지를 좀 붙이려 하는데 협조좀 해주세요"
그러자 경비원이 인상을 구기면서 험악한 소리를 했다.
"안되요...여기 그런거 붙이면 부녀회에서 난리가 납니다. 어서 가세요 어서"
난 빙그레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구두 티켓을 꺼냈다.
"신고 있는 구두가 많이 낡으셨군요...새로운 걸로 사셔야 될거 같은데..이거 약소하지만 뇌물이라 절대로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그러자 경비원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거 씨알도 먹히는 소리 하지 마쇼...이깟 구두 티켓가지고?..응?"
경비원의 눈이 잠시 커졌다. 그는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나 다시 비비기 시작했다.
난 웃으면서 말했다.
"구인광고지가 스무장 밖에 안되거든요? 금새 붙이고 나올께요 "
그러자 경비원이 괜시리 인상을 쓰는 척하다가 말했다.
"이거야 원...하긴 사람을 급하게 써야한다면 어쩔수 없겠지...참 그럼 이거 두고 가슈....내가 대신 붙여줄테니"
"어이구 이거 감사합니다.....그럼 부탁드립니다. 참 한장도 빼먹으시면 안되요"
"젊은 사람이 걱정은...염려마슈 "
나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태운 렉스턴이 사라지자 경비원은 황급히 아까 구두티켓을 꺼냈다.
-50만원 증정 구두티켓-
발행처 :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눈을 비비고 다시 티켓을 확인한 경비원은 누가 볼새라 얼른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수고비 치고 너무 황당한 댓가를 치르고 사라진 남자가 준 전단지를 들었다.
-카운터를 보실 분을 급구-
20대 후반의 여성(기혼도 환영)2명
소재 : 청담동에 있는 카페 " 크로테스"
보수 : 동종업계 최고 대우
시간: 오전 9시부터-오후 4시 1명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1명
다음날 아침
남편을 회사로 출근 시킨 성민지는 아들 훈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외출할때 쓰는 선글라스를 오늘 쓰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늘 당당하고 맵시 있게 유지하는 자신의 발걸음과는 거리가 멀게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 임성택은 요즘들어 자주 신경질을 자신에게 부리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말이 없었고 안피우던 줄담배만 피운채 자기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자상한 남자였다.
연애로 결혼을 했고 5년이 지났지만 남편은 변함없는 태도로 자신에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요 몇일간 남편의 태도로 보아서는 말못할 고민이 있는거 같은데 자신에게 털어놓지 않고 대신 화만 버럭내기 일쑤였다.
무슨 일이 있는것일까? 걱정이 되는 성민지였으나 더 묻지는 못했다.
사실 걱정과 근심은 성민지 자신이 더 컸다. 몇일전의 일을 생각만 하면....
성민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이 아니었다. 꿈이길 몇번이고 빌었지만 그건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이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늘 피곤했고 그때 당한 충격으로 아직도 아랫도리가 얼얼하고 아파왔다.
배란일은 아니여서 임신걱정은 안했지만..혹시 성병이라도 옮았으면 어쩌나 하고 혼자 끙끙댔다.
남편을 보기에도 민망했고 어린 훈이에게 예전처럼 얼굴을 들고 자상한 엄마의 모습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일이?
성민지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주저 앉아서 왁 울고 싶어졌다.
혹시나 그 뒤로 그 흑인이 자기 주변에 나타나면 어떡하나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외출도 좀처럼 하지 않으면서 불안에 떨면서 몇일을 보냈다.
다행히 그 흑인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따금 티비에서 흑인의 모습을 보거나 심지어는 햇볕에 거을린 남자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힘이 빠졌다.
아랫도리가 아직도 욱신거렸다.
욕실에서 몰래 상처가 난것은 아닐까 살펴봤지만 조금 부은정도여서 그녀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언제 어떻게 그런일이 생길거만 같아서 마음이 조바조바한 그녀는 당분간 외출은 하지말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로 들어오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하면서 자기에게 인사를 했다.
"훈이 어머님 안녕하세요...훈이 놀이방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인가 봐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상심한데 저 아저씨는 뭐가 저렇게도 좋을까?
성지민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맘을 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비원이 번쩍 거리는 구두를 들어올리면서 자랑을 했다.
"훈이 어머님...이거 어때요? 어제 새로 산 신발인데...잘 어울리는 거 같나요?"
겨우 신발 자랑할려고 사람을 붙잡은 것일까?
성민지는 지금 신발이고 뭐고 관심이 없었다.
형식적으로 그거 참 좋네요 아드님이 사주셨나요 라고 말했다.
"헤헤...아들은 아니구 누군가 선물로 준거라우 참 이거 한번 가져가보세요 어쩌면 훈이 어머님한테 맞을지도 모르겠네?quot;
싱글싱글 웃던 경비원이 웬 광고지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훑어보니 무슨 카운터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지였다.
그녀는 이런거나 아파트 주민에게 건네주는 경비원이 좀 미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집어 들면서 말했다.
"네...한번 읽어볼께요..그럼"
광고지를 손에 딸랑딸랑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성민지는 또 한번 한숨을 쉬었다.
역시 꿈이 아니었다. 이 악몽에서 빨리 벗어나길 빌고 또 빌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아파트 현관까지 걸어 온 그녀는 문을 열기전에 다시 한번 그 광고지를 대충 훑어보았다.
얼핏보니 아까 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벽에 잔뜩 붙여 놓은 그 구인광고지였다.
이 사람들이 아파트에까지 들어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광고지를 든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구인광고라...
그녀는 직장 생활을 결혼전에 잠시 한 적이 있었다.
의류업체에서 디愍犬袈?일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고 가정으로 들어와 버렸다.
직장이라...
그녀는 지금 남편 임성택의 수입으로도 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그래도 꽤 유망한 증권맨이었고 이 집도 둘이서 돈을 모아서 산 것이었다.
그녀는 광고지를 버리려다가 문득 남편얼굴을 떠올렸다.
어제 남편이 첨으로 돈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다.
왜 그러냐고 묻자...남편은 한 이천 정도 구할 수 없을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냥 얼버무렸던 것이다.
남편이 돈이 급하게 필요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유심히 구인광고지를 바라보았다.
카페에서 카운터를 구하는 내용...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가정에서 주부로 지내면서 가끔식 사회활동하는 옛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도 해 보았지만 지금은...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기업체에서 디자이너까지 했던 자신이 이깟 카페에서 경리나 다름없는 카운터나 본다는게 웬지 존심이 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거실 한쪽에 놓여진 휴지통에 구인지를 구겨서 버렸다.
남편 임성택은 새벽에 들어왔다.
엉망으로 취한 모습으로 비틀대면서 거실로 들어온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성민지는 놀랐다.
남편은 술을 거의 못하는 남자로 결혼후에 이렇게까지 고주망태가 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겨우 남편을 재운 성민지는 남편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민지는 지금 남편이 오늘 낮에 처분한 주식으로 인한 손실이 3억에 가깝다는것을 알리가 없었다.
오전 장 내내 하한가에서 맴돌던 일성수산을 결국 하한가인 3만 8천원에 겨우 처분한 임성택은 속이 쓰리고 쓰렸다.
고객들이 입은 손실도 손실이지만 임성택은 친척으로 부터 그리고 은행으로 부터 끌어들인 돈이 2억에 가까웠던 것이다.
다음날 술이 깬 임성택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식탁에서 아내에게 고백을 했다.
성민지는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신중한 사람이여서 큰 모험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남편의 침착함을 성민지는 존경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털어놓은 사실은 믿기가 힘들 말들 뿐이었다.
"미안하다...하지만 부모님께 부탁하면 그 정도는 막을 수 있을거야 너무 걱정마"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출근을 해 버렸다.
훈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면서 성민지는 이것 저것 생각을 했다.
시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니 남편말대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이 아파트를 살때도 시부모님이 적지 않게 도와주셨는데...또 손을 벌린다는것이 맘에 걸렸다. 붓고 있는 적금과 자신이 따로 들고온 지참금을 얼추 계산해 보았다. 그런대로 1억 5천 정도는 맞출수 있었지만 더는 무리였다.
그제서야 성민지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가를 깨달았다.
당장 다음달 부터 내야할 은행이자가 걱정이 되었다. 얼마나 내야할까....은행에서 끌어 쓴 돈이 1억3천이니 월 이자가 5-60만원에 육박했다.
일단은 은행보다는 친척에게 빌린 돈부터 갚아야 만 했다.
그렇다 해도 매월 50만원이 넘는 돈을 이자로 꼬박 은행에 내야 하는 결론이었다.
남편을 도와야 겠다는 의무감이 생겼고 자기가 은행이자 정도는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자 맘이 조급해졌다.
한달에 60만원 정도 벌 일자리는 찾으면 어렵지 않을거도 같았다.
길가에 꼽힌 생활정보지를 두개 집어든 그녀는 문득 생각이 나서 아파트 담벼락을 둘러보았다.
어제까지 잔뜩 붙어 있던 그 카페 광고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극성스런 아파트 부녀회가 이런걸 가만둘리 없었다.
하루만에 다 떼버린 그 자리에는 새로운 연극 포스터가 나붙고 있었다.
그녀는 생활정보지를 들고 아파트를들어왔다.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까지 대령한채 느긋하게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정보지에 난 구인광고를 뒤적거리던 그녀는 금새 난감해졌다.
식당아주머니 구함, 월수아줌마 구함, 생수기 판매 아줌마 구함
그녀로서는 쉽게 응하기 힘든 생소한 일들 뿐이었다.
돈버는게 이렇게 어려웠던가 그녀는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그래도 열심히 볼펜으로 체크하면서 두번째 생활정보지를 뒤졌다.
그중엔 꽤 괜찮은 곳이 있었으나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오후에 나가거나 하루종일 일하는 그런 자리뿐인데 훈이가 놀이방에서 돌아오는 오후4시까지는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성지민으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순간 신경질이 나서 들고 있던 볼펜을 집어 던졌다.
애꿎은 볼펜은 소파옆에 있는 휴지통에 맞고 땡구르를 거실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쓰레기통으로 갔다.
쓰레기통을 한참 뒤지자 어제 낮에 버렸던 구인광고지가 구겨진채 있는 것이 보였다.
구겨진 광고지를 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카페라...술을 팔고 그런곳이 아닐까?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동종업계 최고대우란 글씨에 눈이 머물렀다.
얼마나 줄려고 저렇게 큰소리를 하는걸까? 대게 저런건 뻥이라던데....
시간대를 보니 오전 시간대면 그런대로 자기에게 맞을듯도 했다.
카페에서 카운터를 본다면 그냥 돈만 거슬러 주는일이 아닐까?
그녀는 갈팡질팡 광고지를 버리려다가 결심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녀는 결심했다.
(그래 일단 손님인척 하고 그 곳을 가보자...)
청담동이면 버스타고 다리만 건너면 10분 거리였다.
일단 가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지난번 극장에서 봉변을 당한 이후 더욱 신중해진 성민지였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그녀는 아파트를 나와서 361 버스를 타고 청담동으로 갔다.
구인지에 있는 주소는 찾기가 쉬웠다.
파란색과 회색이 섞인 지은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카페는 한글로 크로테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페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작지도 크지 않은 공간에 탁자가 여러개 있었고 바도 보였다.
가게 안에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 생들이 검은색 네이프런을 두르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하고 착하게 생긴 아르바이트 생들의 얼굴을 보고 조금 맘이 놓였다.
그녀가 들어서자 조금 마른 남자애 명찰에 조영철이라 적힌 남자애가 와서 인사를 했다.
그녀는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 티를 주문하고 가져간 책을 꺼내서 읽는 척 했다.
가게에는 손님이 한명 밖에 없었다.
창가쪽에 30대 초반의 남자가 커피잔을 놓고 말없이 책을 일고 있는게 보였고 카운터에는 꽤 덩치가 좋은 남자애가 앉아서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나머지 남녀 아르바이트 생들은 바에 기대서 재미난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가 제법 화기 애해 하구나....그런데 사장은 어디있을까? 카운터에 앉아서 조는 남자가 사장일까?
사장치고는 너무 어려보이는데)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까 주문을 받은 영철이란 남자애가 창가에 앉은 남자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걸기 시작했다.
"사장님...그런데 카운터는 언제 구하실거에요? 저기 청수형 자는거 보이죠? 못봐주겠어요 진짜"
그녀는 잠시 놀랬다.
(창가에 앉은 저 남자가 사장이구나...전혀 사장같지도 않고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데?)
그러자 사장이란 남자는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글쎄다...오후에 일할 카운터는 구했는데 오전은 아직 소식이 없네"
그러자 영철이란 남자애가 다시 말했다.
"사장님 너무 까다로우신거 아니에요? 어제도 두명이나 왔다 갔는데 왜 채용안하셨어요?"
그러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든? 난 20대 후반이면 좋은데 그 여자들은 30은 훨씬 넘어 보이더라구"
그러자 영철이란 남자가 말했다.
"카운터인데 나이를 그렇게 따질거 있을까요?"
"에이 그래두...여긴 젊은애들 많이 오는 청담동이잖냐...너무 나이가 많으면 분위기가 안좋을 수도 있어
그리구 너무 어려도 문제야...내가 늘 가게를 비우는데 카운터라도 내 나이 정도는 되어야지"
성민지는 사장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사장이란 남자의 취향이 독특하구나...변태는 아니겠지?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난 그냥 관찰하러 온거라구)
성민지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영철이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구인지를 잘못붙힌거 같아요. 우리 카페라면 일할 사람은 줄을 섰을거라구요...솔직히 사장님만큼 후하게 주시는 분이 어딨나요?"
그녀가 또 생각했다.
(후하게 준다구? 얼마나 주길래 저런 소릴 할까? 내가 듣기론 서빙 아르바이트가 기껏해야 시간당 2-3,000원이랬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 그럼 너희들 시급을 이번 참에 좀 깍을까? 너무 많이 줘도 불만이다 이거지?"
그러자 영철이가 헤헤 거리면서 말했다.
"에이 말씀도 꼭 그렇게 섭하게 하시네...참 이번에 카운터 오실분은 얼마나 주실건가요? 전에 있었던 미영이 수준 정도?"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첨부터 그렇게 줄수야 있나 시간이 지나면서 올려줘야지"
"그럼 얼마나 주실 생각이세요?"
"이 녀석아 너가 사장해라 임마..."
"에이 그래야 제가 안되면 사람을 데리고 오죠 카운터 빨리 구해야죠"
"그러니? 저번에 미영이가 얼마씩 받았지? 난 기억이 잘 안나네"
성민지는 사장의 머리 긁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장사하는 사람이 뭐 저러냐?)
영철이의 말이 들렸다.
"미영이가 시간당 7천5백원이었으니 새로오실 분은 대략 7천원 정도면 되겠네요?"
성지민은 자기가 잘못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7천원이라 그랬나 방금? 그렇게 많이 주다니?)
성지민이 놀라고 있는데 사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7천원으로 하지 뭐 그럼"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면서 영철이에게 말했다.
"저기 구인광고 보고 왔는데요...카운터 구하신다길래"
그러자 사장이 일어서서 자기 쪽으로 자리를 권했다.
성민지는 웬지 관심도 생기고 조바심이 생겼다. 머리속으로 7천원이란 말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둘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손님으로 오지 않고 그냥 자기가 직접 이야기 할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이 가게에서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 시작했다.
사장은 꽤 젊고 예의가 있어 보였고 가게에서 일하는 애들도 다 착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은 가게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고 ...그만하면 눈치도 덜 보이고 자꾸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마친 여자가 연락 주세요 그러면서 카페를 나갔다.
성민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벌써 저 여자로 결정했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과 자신의 소심함을 원망했다.
영철이가 다가가서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어때요?"
그러자 사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여자도 아니에요? 또 왜 그러신건데요?"
"너무 향수가 짙어...난 저런 향수는 질색이야"
"에이 또 왜 그러세요...너무 까다로우신거 아닌가요?"
그러자 사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장님은 그럼 어떤 취향이신데요?"
그러자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흠 난 그게 좋더라...프랑스제 오데코롱말이야...거 뭐야 상표 이름이,,,"
사장이 그 상표를 말하자 성민지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그건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상표였다.
자기도 모르게 백을 집어들고 그 오데코롱을 가져 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있었다.
성민지는 잠시 주저하다가 백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참후에 메이컵을 다시하고 나온 성민지는 용기를 내서 사장이 앉은 창가로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사장이 사람좋은 얼굴을 하고 고개를 책에서 떼었다.
"네 무슨 일이신데요?"
"구인광고를 보고 왔어요...카운터를 구하신다길래.."
삼십분후에 카페를 나선 성민지는 조금 들뜨기도 했고 자신이 너무 성급한 결정을 했나 근심되었다.
그러나 바로 채용이 되었다는 것은 기분좋은 사실이었다.
그녀로서는 이 결정이 그녀 인생에 있어 새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채....
사장이란 남자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를 채용하겠다고 했고 내일부터 나와 줄수 있냐고 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보니 인상이 더 좋아 보였고 그 인상좋은 사장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훈이 때문에 3시까지만 해도 되겠냐는 부탁에 선선히 허락했다.
남편에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당분간은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버스를 탔다.
어제까지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만 같은 성민지였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훈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는길에 자신도 외출준비 아니 출근준비를 하고 나왔다.
훈이를 데려다 주고 그녀는 바로 버스를 타고 카페 "크로테스"로 출근을 했다.
역시 사장은 콧배기도 비추지 않았다.
그리고 일은 힘들것이 없었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애들도 자기를 언니 그리고 누나 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오전에는 특히 손님들도 별로 없어서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서 책을 보기 시작했고 자리도 꽤 푹신하고 넒어서 독서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사장은 이따금씩 나타났는데 자기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늘 앉는 자리에 가서 책을 읽거나 가끔씩 아르바이트 애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정도였다.
3일이 지나자 그녀는 이 가게가 점점 맘에 들기 시작했다.
사장은 별로 말이 없는 자였다.
애들 이야기로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남이라는데 ...
"여기 사장님은 어떠신 분이야?"
3일째 되던날 성민지는 청수라는 덩치좋은 남자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청수가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멋장이시죠...누님도 몇일 안 계셨지만 사장님은 거의 잔소리를 안하세요..가게 일도 거의 우리에게 맡기시죠 "
"그러다가 무슨일이 생기면 어떡하니?"
"에이 사장님은 그런거 신경 안쓰세요...이건 비밀인데요...손님들중에 사장님에게 관심보이는 여자들이 몇명있답니다."
그녀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니? 그래서?"
"근데 사장님은 거들떠도 안보세요...여자들에겐 관심이 없는건지 그냥 웃기만 하시죠.."
청수는 내가 시키는대로 잘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놈은 잘안다.
나를 거친 여자가 한트럭은 넘을것이란것을...
덤프트럭으로 말이다.
성민지는 사장이란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영화에서처럼 사장이란 직위를 남용해서 자기를 어떻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때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소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극장에서의 봉변 이후로 주위에 있는 남자들이 다 두렵기만 했다.
그날 오후가 될때까지 사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 한통만 ?놓으면 더 이상 사장을 찾는 전화도 없었다.
그 전화를 카운터에 있는 성민지가 받았고 목소리는 여자였다.
그 시간 아파트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나는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했다.
그녀는 저번주에 만났던 보험설계사 최지혜였다.
에어콘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내 침실에서 그녀와 난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허억..으응.아아...더 세게"
그녀가 내 몸위에서 그렇게 속삭였다.
"그래? 후회하지마..한번 죽어봐라...야압"
"허어억"
그녀가 몸을 뒤로 한껏 꺽으면서 단말마를 뱉었다.
"어떠니? 계속 해줄까?"
"아아...너무 ..너무 세...그래도 계속...으응 아악"
그녀가 날 조랑말로 생각했는지 내 몸위로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쾌감을 더 높일수 있게 몸을 여기저기 비틀었고 난 거기에 정확하게 보조를 맞추어주었다.
"흐윽....자기는..왜 그동안 연락을 아앗...."
"연락을 안했냐구? 야아앗"
"흐흥...너무 좋아 그렇게 계속 그렇게,,,"
"날 다신 안보려 할줄 알았어..그래서 연락을 안했어 흐윽 아 너무 좋은걸?"
"허억..나,,,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아아...거기 그렇게 으응.....그래도 자기가 연락을 줄줄 알았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벽으로 가서 그녀를 세웠다.
벌거벗은 채 벽에 기대선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들어서 내 옆구리에 갖다대고는 난 몸을 숙여서 그녀의 몸에 내 하체를 밀착시키면서 서서히 밀어넣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목을 꽈악 끌어안았다.
"아아악...너무 너무 좋아...이런 이런 자세는 처음이야"
"흐읍,..그러니? 아직 보여주지 않은게 더 많은데 어쩌지?"
"허어 허억....그래? 자긴..너무 미워....자긴 바람둥이야...으응...도대체 지금까지 몇명이나...하악"
"너처럼 매력적인 여잔 너가 첨이야...헉헉...그것만 알아둬...이 체위 좋니?"
"거짓말...허어읍...흑흑...이 자세..너무 자극적이야..아 난 죽을거 같아 "
"이대로 계속하면...헉헉...넌 섹스밖에 생각안날거야...헉헉...물론 떠오르는 남자는 나일테구 허업"
"몰라..미워...아악...나 지금 하려고 그래..."
"그래? 허업!"
"응..지금 해줘..지금 지금 이대로"
난 그녀를 거칠게 잡아당기고 침대에 쓰러뜨렸다.
먹이를 덮치는 야수처럼 그대로 돌진한 나는 그녀의 하체 깊숙이 아주 깊숙이 성이 날대로 난 내 물건을
밀어넣고 거칠게 펌프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미친여자처럼 머리카락을 흔들어 대면서 지금 지금,,하면서 소릴 질렀고 내가 마지막을 준비하려 하자 그녀가 황급하게 소리쳤다.
"안에 해줘...안에...오늘 안전한 날이야...아아... 자기걸 다 받아 들이고 싶어 안에 넣고 깊이 싸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뒤로 한껏 빼었다가 투수가 포수쪽으로 공을 던지듯이 세게 내 물건을
쑤셔박았다.
머리속이 하애져 오고 몸전체로 싸늘한 기운이 감싸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양이 나왔는지 알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질내로 쏟아져들어오는 정액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 아 아 아 악!"
그녀는 소릴 지르면서 손톱을 세운채 내 등을 찍으면서 필사적으로 내 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방울이라도 더 받으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묘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폭풍이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직도 정상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헐떡 대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면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좋았어?" 내가 그렇게 묻자 그녀는 으응 하는 콧소리를 내면서 내 몸에 안겨왔다.
"조금만 더 이렇게 안아줘 아주 조금만"
안겨오는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더 천천히 내려오고 싶었던 것이다.
담배를 꺼내 물자 그녀가 어느새인가 라이터를 집어 들고는 불을 차악 하고 붙여주었다.
난 미소를 띠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남자를 잘 아네?"
"뭐가"
"남자는 여자가 불을 붙여주면 굉장히 행복함을 느껴...나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발그레 입을 벌리고 장난스레 눈을 찡그렸다.
"남편하고는 요즘도 그러니?"
"어쩐일인지 요즘은 채팅도 잘 안하구 이혼 이야기도 꺼내지 않아..."
난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쏘아올렸다.
에어콘 바람에 연기가 부서지고 있었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말이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 또 오게 될까? 여기에?"
"그러고 싶니?"
"잘 모르겠어...그때 자기랑 자고 여길 나갈땐 다시는 안올거라 생각했는데...내 맘은 나도 잘 모르겠어"
"남편이 다시 잘해준다면 남편에게로 돌아가"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니?"
"남편과는 계속 잘 지내고 싶어...하지만 남편은 나랑 잠자리를 할 수 없어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했거든 그래서...."
난 그녀의 말을 거기에서 끊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댔다.
"그래서 내가 대용품이다 이건가?"
그녀가 화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말을 그렇게 하냐? 자긴?"
"아무래도 좋아...하지만 이건 말해주고 싶어...난 과거를 잊고 사는 사람이다. 난 모든걸 잊어...오늘일도 곧 있으면 과거가 될거야..."
그녀가 내게 몸을 돌리면서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다는 거야...과거 없이는 미래도 없지...난 그래"
"그러니까..나와 했던 것도 모두 잊을거란 거니?"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를 부벼껐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한참이나 쏘아보기 시작했다.
입술을 한참이나 움직이던 그녀가 한숨을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바닥에 떨어진 자기의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말없이 방문을 나섰다.
난 그녀를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쾅 하는
문소리와 함께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니까..
같이 있던 사람이 없어지자
에어콘에 노출된 내 알몸은 금새 추워졌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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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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