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랑 1부
- 안녕들하세요.
처음 글을 올립니다. 야하면서 아름다운,
그리고 성적환상을 통해 건강한 일상이 가능한
그런 야설을 써보고 싶은데요.
잘 될까요? -
차가 팔당대교를 마악 진입할 때서야, 서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홍천으로 가 주실 수 있겠어요?"
백밀러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그린 듯 조용하다.
작년 강재의 49제때 처음보았던 그녀.
그 후, 일년 - 아니 정확히 316 일-이 지났는데,
이젠 좀 슬픔에서 벗어나 있어도 되련만, 그녀는 검은 원피스안에 그 가녀린 몸을
담고 애처로이 앉아만 있다.
얌전하게 모은 무릎, 그 무릎에서 곧게 내려온 종아리, 까만 빌로도 구두.
무릎위를 살짝 덮은 원피스의 치마단, 가지런히 무릎위에 놓인 두 손,
상복으로도 미처 다 가리지 못하는 허리주변의 얌전한 곡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
지만 알맞게 풍성함이 느껴지는 가슴, 그리고 저 가녀린 목.
서혜는 내 차 뒷좌석에 그렇게 슬픔으로 잠겨 있다.
강재녀석이 일본에서 비교언어학을 마치고 귀국한 것은 나보다 2년 앞서였다.
서울에 특별히 자리가 마련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단지 한국 남도지방의 방언과
지명을 연구해야겠다고 , 거기에서 자기는 현대 한국어, 현대 일본어, 고대일본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내겠다고 부득불 짐을 쌌던 것이 "99년 6월이었다.
그리고 새학기부터 서울모대학에 전임강사로 나가게 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교접
하고 싶은 암컷을 찾아냈다고 좋아했던 것이 그해 말이었다.
새천년이 어쩌구 한참 떠들다가 시들해질 무렵, 자기는 밀레니엄베이비 낳기가 싫
어서 3월달에 장가간다며 결혼소식을 알려온 것이 2000년 3월-결혼 2일전-이었고,
당시 한창 박사논문준비로 바빴던 나는 "자식아, 칠삭동이나 낳지 마라"라는 악담같
은 덕담으로 예식에 참석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했었다.
그러다가 논문이 통과되고, 서울대학시절의 은사님 소개로 모 사범대학의 비교언
어학과 개설멤버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귀국을 결정한 것이 6월이었고, 귀국을 앞
두고 일본 아이누언어를 접해보고 싶어,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혹카이도의 산
림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한달간의 원시여행후 동경의 사바세계로 돌아왔을 때 나
를 기다린 것은 뜻밖에도, 정말 뜻밖에도 강재의 죽음이었다.
세검정 근처 무슨 호텔인가하는 곳 주차장에서 아무 외상도 없이 죽어 있는, 경찰
표현을 빌면 죽어 나자빠져 있던 강재가 발견된 것은 2000년 6월 12일. 사인은 불명
의사의 소견으로는 직접사인 : 심장마비, 간접사인 : 과도한 음주로 인한 호흡곤란.
결국 녀석은 술을 뒈지도록 처먹고, 그 이쁜, 교접하고 싶다고 했던 암컷을 새파란
청상으로 남겨두고 훌쩍 가버린 것이다. 녀석이 발견된 것은 내가 여행을 떠난 바
로 다음날이었다.
귀국을 한 열흘 남겨두고 녀석의 49제가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그린벨트안에 복흥사(復興寺)란 절이 있었고, 그 이름에서 주는 이
미지가 처음에는 무슨 교회 부흥회같아서 우습기도 하다가. 그래 49제를 지내면서
새롭게 천도를 비는 절로서는 적당한 이름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7월말의 한여름. 장마도 끝나고 40년만의 무더위니 어쩌니 하는 때, 강재의 49제가
열렸다. 다소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참매미소리를 밟으며 일주문을 들어서서
한 10분쯤 올라가니 사천왕상이 나오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계단을 7계단 올라
가니 조그마한 석탑과 함께 경내가 갑자기 확 퍼져 나타났다. 순간 매미소리가 일
제히 멈췄다. 그런데 내 귀에는 더욱 크게 째앵하고 이명이 울렸다. 그리고 모든 것
이 정지했다. 경내의 황토흙은 한여름 태양빛에 마사토처럼 희게 반사되었고, 법당
처마의 풍경이 무성영화처럼 소리없이 땡그렁거리는데,
그 모든 한가운데, 그녀가, 서혜가 서 있었다.
온 세상의 뜨거운 슬픔을 한몸에 받겠다는 듯, 그 작열하는 여름태양아래, 그늘 한
점 없는 경내 한복판에 서혜는 까만 생머리에, 까만 원피스에, 까만 구두를 신고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강재의 미망인인줄 알았다.
가녀린 그녀의 몸매가 슬픔을 견뎌내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다.
"도형씨 아니세요?"가늘면서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침묵의 마법을 풀고 세상을
다시 돌려 놓았다.
나는 대답대신 그녀의 눈을 보았다.
깊고 맑고 잔잔하게 물이 고인 그 눈을.
"강재씨가 말씀 많이 하셨어요"
"예 에, "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울음이 나오는 듯 서혜는 왼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얀 팔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다섯 흐름. 그 녀의 손과 손가락은 물의 흐름
처럼 유려하고 가늘었다. 고개를 숙인 서혜의 왼쪽머리에 하얀 리본이 반짝였다.
분명 천으로 만든 리본인데 반짝거렸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때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한 보름 계속 비가 오며 쉬며 한다고 했다.
윈도우 브러쉬를 켰다.
강재의 1년상을 치루고 복흥사를 내려올 때, 서혜는 내 옆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는 생각난 듯이 물었다.
"저 좀 어디 데려다 주실래요? "
"예?"
"그리고 강재씨 얘기도 좀 해주시고요"
강재 부모님- 서혜의 시부모-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말씀드리고
차를 출발한 것이 한시간 전. 여태까지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홍천으로 가 주실래
요?" 가 전부다.
그녀의 슬픔을 벗어버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점점 세지고 있다.
그녀의 머리뒤 차뒷유리밖에 빗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다.
윈도우브러쉬를 한단 더 올린다.
"서혜씨."
".. ... .."
"홍천에 뭐가 있어요?"
"그이를 처음 만난 곳이예요"
"홍천에서요? 아니 어떻게요?" 나는 짐짓 과장된 어조로 흥미롭다는 듯 묻는다
"놀러 가서 만났었어요 " 그녀의 표정에 순간 부끄러운 듯 수줍은 미소가 스쳤다.
" 이모랑, 이모부랑 스키타러 갔다가 근처 강가에 들렀었는데, 거기서 만났더랬어
요"
세상에, 난 학교에서 일하다가 정이 든 줄 알았었는데, 놀러가서 잠깐 만난 것으
로 일이 시작된 것이라니. 더군다나 그 리버럴리스트 강재놈하고 이렇듯 조신한 서
혜의 커플이라니.
"언제요?"
"재작년 12월이었어요"
맙소사 강재놈은 어쩌다 이런 서혜씨를 만나서, 만난 지 3달만에 결혼을 하고, 결혼
한 지 3달만에 혼자 떠나갈 수 있었을까?
그러자 홍천으로 가자는 그녀의 마음이 가슴아프도록 전해져 온다.
많은 말은 아니지만, 조단 조단 물음에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운 엔진소리
와 윈도우브러쉬의 마찰음밖에 없던 차안을 부드러운 공기로 감싸주는 듯 하다.
백밀러로 그녀를 다시 본다.
의자에 앉아 아랫배와 다리가 90도로 꺾이는 부분이 여성스럽게 얌전하다.
그 조금 앞부분에 가지런히 모은 손.
가볍게, 그러나 수다스럽지 않게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
만일 여자가 이쁘고 날씬하지 않다면 그 슬픔이 이렇듯 절절히 이입될수 있었을까?
그냥 뚱뚱한 미망인이 슬피 운다면, 나도 슬프겠지. 않되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측은
해 했을 거야.
그러나 이렇게 가련하고 애절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서혜의 슬픔을 내가 대신 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홍천으로 접어들면서 비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한다.
윈도우브러쉬를 최대로 올린다.
칙 딱, 칙 딱. 칙 딱.
" 앞이 잘 보이세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예. 아직은 괜찮아요" 그러면서 나는 전조등을 켠다.
사실 이런 비는 처음인것 같다. 차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브러쉬의 비질소
리가 작게 들릴 정도 이다.
"어디로 갈까요?"
"오봉산 아세요? 거기에 강이 하나 있어요"
콘도, 골프장, 스키장등이 들어서있는 종합레저타운을 지나 국도따라 한 10분쯤,
겨우겨우 빗속을 기어 오봉산공원에 도착했다.
이제 비는 아예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이쯤이었어요. 저는 이모랑 같이 마악 얼기 시작한 강물을 보고 있었어요"
차안에 앉아 그녀가 회상에 잠긴 듯 독백처럼 읖조린다.
"그 때. 그이가 나타났어요. 그러면서 다짜고짜 조르는 거예요. 차좀 태워달라고요.
혼 몸이 흠뻑 젖어서 몹시 추운데, 그것보다 더 급한 건 중요한 탁본이 있어서 빨리
원주로 가져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탁본? 난데없이 웬 탁본?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저 강가운데 돌섬이 하나 있는데 홍수가 지면 잠겼다가, 가
물면 나왔다가 한데요. 그런데 그 섬에 비석이 하나 엎어져 있는데 옛날 우리나라
고대 문자하고 한문하고 만주어하고 같이 새겨져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돌이라고
해요. 그 탁본이었던 거죠"
나는 더 이상 얘기를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차문을 박차고 뛰어 강가로 쫓아갔다. 장대비는 눈을 뜰 수 없게 쏟아 붓고
강물은 싯누런 황토물로 미친 말처럼 날뛰며 흘러가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 안에 내 일생을 건 숙제의 열쇠가 있다.
강재야 너 도대체 무엇을 찾은 거냐? 강재야"
나는 흥분이 북받쳐 강재를 불렀다.
"강 재 야!"
"강 - 재 - 야 아 -"
"안돼요 . 이제 돌아가요. 도형씨, 도형씨"
왼쪽 겨드랑이에 가벼운 당김이 느껴진다. 어느새 서혜가 나와 내팔을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하는 짓이 꼭 물에 뛰어들려는 놈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싶다.
서혜의 검은 원피스가 물에 흠뻑 젖어 있다. 이런 세상에.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고 차쪽으로 이끈다.
조수석에 앉히고 나는 차 앞부분을 돌아 운전석에 털썩 들어 앉았다.
잠시 머리를 쓰다듬어 올려 물기를 닦아내고 그녀를 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녀도 살짝 웃는다.
순간의 해프닝이 미망인의 슬픔을 잊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옆에 앉은 셈이 되었다.
뒤에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그녀의 향기가-비릿하면서도 달콤한-느껴진다
일단 어딘가로는 가야 한다.
히터를 튼다. 젖은 몸을 말리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아침 먹은 후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요기를 한것이 없다.
이제 해까지 기우는데, 비바람은 더욱 거세져 차를 들고 날릴 기세다
한 10분쯤 달렸을까?
도저히 더 갈 수가 없다.
시계 제로. 마음을 다잡아먹고 서혜를 바라본다
"서혜씨. 오늘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 . 어디 묵을 곳을 찾아야 합니다. 괜찮으시겠
어요?"
서혜는 이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한 5분만 가면 제 콘도가 있어요"
흠뻑 젖은 몸으로 객실에 들어오자 하늘은 "여태까지는 그래도 좀 봐준거야"라는 듯
이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쉬지 않고 때리는 천둥 번개. 더욱 거세진 비바람.
다소 멋적어 식탁의자의 등받이를 쓰다듬고 있으니 서혜가 말을 건넨다
"다행이예요. 지금 들어와서. 하마트면 큰일 날 뻔했어요."
어색한 순간을 달래주는 그녀의 현명한 마음씀이 고맙게 느껴진다.
식당가로 갈려니 옷이 젖어 갈 수가 없고, 할 수 없이 내가 지하 슈퍼에서 먹을거리
를 사오기로 한다.
한보따리 사가지고 올라오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오늘 밤 서혜를 가질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 작년 처음 본 이후 수시로 떠오르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강재도 상대가 나라면 마음을 놓을 것이 아닌가?
언젠가 몽골로 답사갔을 때, 그 곳 유목민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아내를 손님맞이
로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 우린 서로 귀한 손님되자고 의기투합했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서혜한테 끌리고 있고, 그녀도 언제까지나 슬픈미망
인으로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등등. - 1편 끝. -
- 안녕들하세요.
처음 글을 올립니다. 야하면서 아름다운,
그리고 성적환상을 통해 건강한 일상이 가능한
그런 야설을 써보고 싶은데요.
잘 될까요? -
차가 팔당대교를 마악 진입할 때서야, 서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홍천으로 가 주실 수 있겠어요?"
백밀러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그린 듯 조용하다.
작년 강재의 49제때 처음보았던 그녀.
그 후, 일년 - 아니 정확히 316 일-이 지났는데,
이젠 좀 슬픔에서 벗어나 있어도 되련만, 그녀는 검은 원피스안에 그 가녀린 몸을
담고 애처로이 앉아만 있다.
얌전하게 모은 무릎, 그 무릎에서 곧게 내려온 종아리, 까만 빌로도 구두.
무릎위를 살짝 덮은 원피스의 치마단, 가지런히 무릎위에 놓인 두 손,
상복으로도 미처 다 가리지 못하는 허리주변의 얌전한 곡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
지만 알맞게 풍성함이 느껴지는 가슴, 그리고 저 가녀린 목.
서혜는 내 차 뒷좌석에 그렇게 슬픔으로 잠겨 있다.
강재녀석이 일본에서 비교언어학을 마치고 귀국한 것은 나보다 2년 앞서였다.
서울에 특별히 자리가 마련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단지 한국 남도지방의 방언과
지명을 연구해야겠다고 , 거기에서 자기는 현대 한국어, 현대 일본어, 고대일본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내겠다고 부득불 짐을 쌌던 것이 "99년 6월이었다.
그리고 새학기부터 서울모대학에 전임강사로 나가게 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교접
하고 싶은 암컷을 찾아냈다고 좋아했던 것이 그해 말이었다.
새천년이 어쩌구 한참 떠들다가 시들해질 무렵, 자기는 밀레니엄베이비 낳기가 싫
어서 3월달에 장가간다며 결혼소식을 알려온 것이 2000년 3월-결혼 2일전-이었고,
당시 한창 박사논문준비로 바빴던 나는 "자식아, 칠삭동이나 낳지 마라"라는 악담같
은 덕담으로 예식에 참석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했었다.
그러다가 논문이 통과되고, 서울대학시절의 은사님 소개로 모 사범대학의 비교언
어학과 개설멤버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귀국을 결정한 것이 6월이었고, 귀국을 앞
두고 일본 아이누언어를 접해보고 싶어,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혹카이도의 산
림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한달간의 원시여행후 동경의 사바세계로 돌아왔을 때 나
를 기다린 것은 뜻밖에도, 정말 뜻밖에도 강재의 죽음이었다.
세검정 근처 무슨 호텔인가하는 곳 주차장에서 아무 외상도 없이 죽어 있는, 경찰
표현을 빌면 죽어 나자빠져 있던 강재가 발견된 것은 2000년 6월 12일. 사인은 불명
의사의 소견으로는 직접사인 : 심장마비, 간접사인 : 과도한 음주로 인한 호흡곤란.
결국 녀석은 술을 뒈지도록 처먹고, 그 이쁜, 교접하고 싶다고 했던 암컷을 새파란
청상으로 남겨두고 훌쩍 가버린 것이다. 녀석이 발견된 것은 내가 여행을 떠난 바
로 다음날이었다.
귀국을 한 열흘 남겨두고 녀석의 49제가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그린벨트안에 복흥사(復興寺)란 절이 있었고, 그 이름에서 주는 이
미지가 처음에는 무슨 교회 부흥회같아서 우습기도 하다가. 그래 49제를 지내면서
새롭게 천도를 비는 절로서는 적당한 이름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7월말의 한여름. 장마도 끝나고 40년만의 무더위니 어쩌니 하는 때, 강재의 49제가
열렸다. 다소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참매미소리를 밟으며 일주문을 들어서서
한 10분쯤 올라가니 사천왕상이 나오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계단을 7계단 올라
가니 조그마한 석탑과 함께 경내가 갑자기 확 퍼져 나타났다. 순간 매미소리가 일
제히 멈췄다. 그런데 내 귀에는 더욱 크게 째앵하고 이명이 울렸다. 그리고 모든 것
이 정지했다. 경내의 황토흙은 한여름 태양빛에 마사토처럼 희게 반사되었고, 법당
처마의 풍경이 무성영화처럼 소리없이 땡그렁거리는데,
그 모든 한가운데, 그녀가, 서혜가 서 있었다.
온 세상의 뜨거운 슬픔을 한몸에 받겠다는 듯, 그 작열하는 여름태양아래, 그늘 한
점 없는 경내 한복판에 서혜는 까만 생머리에, 까만 원피스에, 까만 구두를 신고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강재의 미망인인줄 알았다.
가녀린 그녀의 몸매가 슬픔을 견뎌내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다.
"도형씨 아니세요?"가늘면서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침묵의 마법을 풀고 세상을
다시 돌려 놓았다.
나는 대답대신 그녀의 눈을 보았다.
깊고 맑고 잔잔하게 물이 고인 그 눈을.
"강재씨가 말씀 많이 하셨어요"
"예 에, "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울음이 나오는 듯 서혜는 왼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얀 팔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다섯 흐름. 그 녀의 손과 손가락은 물의 흐름
처럼 유려하고 가늘었다. 고개를 숙인 서혜의 왼쪽머리에 하얀 리본이 반짝였다.
분명 천으로 만든 리본인데 반짝거렸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때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한 보름 계속 비가 오며 쉬며 한다고 했다.
윈도우 브러쉬를 켰다.
강재의 1년상을 치루고 복흥사를 내려올 때, 서혜는 내 옆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는 생각난 듯이 물었다.
"저 좀 어디 데려다 주실래요? "
"예?"
"그리고 강재씨 얘기도 좀 해주시고요"
강재 부모님- 서혜의 시부모-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말씀드리고
차를 출발한 것이 한시간 전. 여태까지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홍천으로 가 주실래
요?" 가 전부다.
그녀의 슬픔을 벗어버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점점 세지고 있다.
그녀의 머리뒤 차뒷유리밖에 빗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다.
윈도우브러쉬를 한단 더 올린다.
"서혜씨."
".. ... .."
"홍천에 뭐가 있어요?"
"그이를 처음 만난 곳이예요"
"홍천에서요? 아니 어떻게요?" 나는 짐짓 과장된 어조로 흥미롭다는 듯 묻는다
"놀러 가서 만났었어요 " 그녀의 표정에 순간 부끄러운 듯 수줍은 미소가 스쳤다.
" 이모랑, 이모부랑 스키타러 갔다가 근처 강가에 들렀었는데, 거기서 만났더랬어
요"
세상에, 난 학교에서 일하다가 정이 든 줄 알았었는데, 놀러가서 잠깐 만난 것으
로 일이 시작된 것이라니. 더군다나 그 리버럴리스트 강재놈하고 이렇듯 조신한 서
혜의 커플이라니.
"언제요?"
"재작년 12월이었어요"
맙소사 강재놈은 어쩌다 이런 서혜씨를 만나서, 만난 지 3달만에 결혼을 하고, 결혼
한 지 3달만에 혼자 떠나갈 수 있었을까?
그러자 홍천으로 가자는 그녀의 마음이 가슴아프도록 전해져 온다.
많은 말은 아니지만, 조단 조단 물음에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운 엔진소리
와 윈도우브러쉬의 마찰음밖에 없던 차안을 부드러운 공기로 감싸주는 듯 하다.
백밀러로 그녀를 다시 본다.
의자에 앉아 아랫배와 다리가 90도로 꺾이는 부분이 여성스럽게 얌전하다.
그 조금 앞부분에 가지런히 모은 손.
가볍게, 그러나 수다스럽지 않게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
만일 여자가 이쁘고 날씬하지 않다면 그 슬픔이 이렇듯 절절히 이입될수 있었을까?
그냥 뚱뚱한 미망인이 슬피 운다면, 나도 슬프겠지. 않되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측은
해 했을 거야.
그러나 이렇게 가련하고 애절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서혜의 슬픔을 내가 대신 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홍천으로 접어들면서 비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한다.
윈도우브러쉬를 최대로 올린다.
칙 딱, 칙 딱. 칙 딱.
" 앞이 잘 보이세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예. 아직은 괜찮아요" 그러면서 나는 전조등을 켠다.
사실 이런 비는 처음인것 같다. 차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브러쉬의 비질소
리가 작게 들릴 정도 이다.
"어디로 갈까요?"
"오봉산 아세요? 거기에 강이 하나 있어요"
콘도, 골프장, 스키장등이 들어서있는 종합레저타운을 지나 국도따라 한 10분쯤,
겨우겨우 빗속을 기어 오봉산공원에 도착했다.
이제 비는 아예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이쯤이었어요. 저는 이모랑 같이 마악 얼기 시작한 강물을 보고 있었어요"
차안에 앉아 그녀가 회상에 잠긴 듯 독백처럼 읖조린다.
"그 때. 그이가 나타났어요. 그러면서 다짜고짜 조르는 거예요. 차좀 태워달라고요.
혼 몸이 흠뻑 젖어서 몹시 추운데, 그것보다 더 급한 건 중요한 탁본이 있어서 빨리
원주로 가져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탁본? 난데없이 웬 탁본?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저 강가운데 돌섬이 하나 있는데 홍수가 지면 잠겼다가, 가
물면 나왔다가 한데요. 그런데 그 섬에 비석이 하나 엎어져 있는데 옛날 우리나라
고대 문자하고 한문하고 만주어하고 같이 새겨져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돌이라고
해요. 그 탁본이었던 거죠"
나는 더 이상 얘기를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차문을 박차고 뛰어 강가로 쫓아갔다. 장대비는 눈을 뜰 수 없게 쏟아 붓고
강물은 싯누런 황토물로 미친 말처럼 날뛰며 흘러가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 안에 내 일생을 건 숙제의 열쇠가 있다.
강재야 너 도대체 무엇을 찾은 거냐? 강재야"
나는 흥분이 북받쳐 강재를 불렀다.
"강 재 야!"
"강 - 재 - 야 아 -"
"안돼요 . 이제 돌아가요. 도형씨, 도형씨"
왼쪽 겨드랑이에 가벼운 당김이 느껴진다. 어느새 서혜가 나와 내팔을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하는 짓이 꼭 물에 뛰어들려는 놈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싶다.
서혜의 검은 원피스가 물에 흠뻑 젖어 있다. 이런 세상에.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고 차쪽으로 이끈다.
조수석에 앉히고 나는 차 앞부분을 돌아 운전석에 털썩 들어 앉았다.
잠시 머리를 쓰다듬어 올려 물기를 닦아내고 그녀를 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녀도 살짝 웃는다.
순간의 해프닝이 미망인의 슬픔을 잊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옆에 앉은 셈이 되었다.
뒤에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그녀의 향기가-비릿하면서도 달콤한-느껴진다
일단 어딘가로는 가야 한다.
히터를 튼다. 젖은 몸을 말리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아침 먹은 후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요기를 한것이 없다.
이제 해까지 기우는데, 비바람은 더욱 거세져 차를 들고 날릴 기세다
한 10분쯤 달렸을까?
도저히 더 갈 수가 없다.
시계 제로. 마음을 다잡아먹고 서혜를 바라본다
"서혜씨. 오늘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 . 어디 묵을 곳을 찾아야 합니다. 괜찮으시겠
어요?"
서혜는 이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한 5분만 가면 제 콘도가 있어요"
흠뻑 젖은 몸으로 객실에 들어오자 하늘은 "여태까지는 그래도 좀 봐준거야"라는 듯
이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쉬지 않고 때리는 천둥 번개. 더욱 거세진 비바람.
다소 멋적어 식탁의자의 등받이를 쓰다듬고 있으니 서혜가 말을 건넨다
"다행이예요. 지금 들어와서. 하마트면 큰일 날 뻔했어요."
어색한 순간을 달래주는 그녀의 현명한 마음씀이 고맙게 느껴진다.
식당가로 갈려니 옷이 젖어 갈 수가 없고, 할 수 없이 내가 지하 슈퍼에서 먹을거리
를 사오기로 한다.
한보따리 사가지고 올라오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오늘 밤 서혜를 가질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 작년 처음 본 이후 수시로 떠오르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강재도 상대가 나라면 마음을 놓을 것이 아닌가?
언젠가 몽골로 답사갔을 때, 그 곳 유목민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아내를 손님맞이
로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 우린 서로 귀한 손님되자고 의기투합했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서혜한테 끌리고 있고, 그녀도 언제까지나 슬픈미망
인으로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등등. - 1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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