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하나 올렸더니, 다시 병이 도진 듯합니다.
염려했던 일도 생각보다 잘 풀렸고 말입니다.
하여 소라에 글을 내리기 전에 도입부분만을 쓰다 멈췄던 글을 뚝딱거려 다시 올려 봅니다.
(제가 쓰고 있는 곳에서는 근친에 관한 글은 안 된다고 해서····.)
원래는 가정교사를 끝내고 30부작 정도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려던 글인데, 지금 제 사정상 이곳에 장편의 글은 올릴 수 없는 바, 단편으로 재구성해서 올려 봅니다.
이 글은 프롤로그를 제외한 5편으로 구성 됩니다.
참고로 오늘은 프롤로그만 올립니다.
읽으시는 분들 찝찝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개 올릴지, 두 개 올릴지,
그도 아니면 일주일에 하나씩 올릴지는 작가의 마음이란 거····.
음하하···, 이게 작가만이 부릴 수 있는 폭거라는 겁니다.^^;;;
참고로 이 글을 끝으로 전 다시 잠수를 타야한답니다.
그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온다면 제가 숙제로 남겨 두었던 글 두 개를 써보기 위해서 일겁니다.
바로 부녀간의 근친물과 남매간의 근친 두 개 말이죠.
(제가 글을 쓰는 곳에서는 직계간의 근친물은 안 된다고 하네요.)
어머니의 그림자를 쓰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친족 간의 근친물을 제가 잘 안 쓰게 됐죠.
거부감은 둘째 치더라도, 인과관계를 맺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 글엔 유부녀의 이야기와 형수나 처제 또는 시아버지 같은 속된 말로 피가 직접 섞이지 않은 근친물이 대부분이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림자를 쓸 때 세 가지를 완성하고 싶었드랬죠.
위에 적은 대로,
모자, 부녀, 그리고 남매 이렇게 완벽한 근친 구성을 말입니다.
하지만 번번이 초입부에서 주저앉아 엄두를 내지 못했고, 지금도 부녀의 이야기 초입만 써놓고 글을 멈췄고 말입니다.
각설하고 암튼 이 글을 끝으로 전 다시 잠시 이별을 고합니다.
모쪼록 다시 뵐 때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전 여기서 이만 물러갑니다.
안녕히····.
추신: 쪽지로 문의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 이전 글에 대한 입장은 이 글이 끝나고 집필실에 따로 의견을 남기겠습니다.
1.
“누나, 좋아해.”
그것이 시작이었다.
스물셋 나에게 다가왔던 스무 살의 후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빠와 단 둘이 살았던 나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절박한 하나의 소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그 아이의 고백은 나 자신을 꽁꽁 사매고 있던 담장을 치워버리게 하는 고백이었다. 부모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에 그런 그라면 누구보다 날 아껴줄 거라 믿었기에 말이다.
그런 그의 아버지를 만나며 난 더 확신했다.
이제 겨우 마흔 둘의 나이에 아내를 잃고 오로지 아들만을 바라보며 홀로 사는 그의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남자였다. 비록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남자를 낳고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은 그랬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그의 아버지는 내가 가지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서른 중반에 아내를 잃고 아들만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조금은 철부지 같은 그와는 너무도 달라보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저런 아버지에게서 자란 남자라면,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외롭게 자란 남자라면,
그 어느 누구보다 날 아껴주고 사랑해 줄 거라 믿었다.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은 물론이고, 살갑지 않은 오빠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사랑을 말이다.
그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졸라대는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결국 난 그를 받아 들였다.
그렇게 스물 셋의 나이에 난 여자가 되었다.
스스로를 악착 같이 지키던 내 육체에 남자의 흔적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군에서 제대를 한 남편과 꿈같은 결혼을 했다.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결혼이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
시아버지의 나이 마흔 넷이었다.
2.
“헤어지자.”
내 꿈은 정확히 이 년 만에 무너졌다.
제대를 하고 극구 반대하는 시아버지를 졸라 유학을 떠났던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여자를 만났다.
미칠 것 같았다.
아니 반쯤은 미쳤었다.
내 삶을 모두 던진 남자였다.
조금은 철이 없고, 조금은 즉흥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날 버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갈 거면 같이 가라는 시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난, 그에게 매달렸다.
돌아오라고, 모든 걸 용서하겠다고 말이다.
시아버지도 그랬다.
날 버리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아들로 여기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도 그는 변함없었다.
애원하는 나와 분노하는 시아버지를 두고 그는 그 여자가 남아있는 그곳으로 떠나버렸다.
시아버지와 난 절망했다.
그토록 믿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에 난 절망했고,
자신의 삶 대부분을 바쳐 키워왔던 아들에 대한 실망감에 시아버지도 절망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아버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들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자신이 잘못 키워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말이다.
황망함에 난 그런 시아버지 앞에 같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니라고, 아버님은 잘못한 게 없다고,
모든 것은 현명하지 못한 내 탓이라고 말이다.
우린 함께 울었다.
시아버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걸 말이다.
그렇게 스물일곱의 나이에 난 혼자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마흔 여섯이 되었다.
3.
일 년의 시간이 흐르며 그를 조금씩 잊어갔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난 새로운 아버지를 얻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시아버지였던 분을 말이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아버지는 가까이서 날 배려했다.
내가 살 집을 얻어주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폈다.
그런 시아버지를 난 점점 의지했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술에 취한 시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훔치던 걸 몰래 지켜보던 순간 난 느꼈다.
어쩌면 나보다 상처를 더 받은 사람은 시아버지 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내를 잃고 아들만을 의지하며 청춘을 받쳤던 시아버지에게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남자는 시아버지에게 조차 연락을 끊었다.
시아버지가 마련해준 적지 않은 신혼집 아파트 전세금을 챙겨 떠난 뒤로 말이다.
그렇게 날 이해주는 시아버지를 의지해 그에 대한 상처를 잊어갈 쯤,
하나 밖에 없는 오빠가 다시 상처를 남겼다.
시아버지가 마련해준 전세금을 담보로 작은 사업을 하던 오빠가 자취를 감췄다.
살갑지 않은 오빠였지만,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이었기에 오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건만 오빠마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버렸다.
시아버지가 다시 나섰지만, 난 거절했다.
염치가 없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완강했고, 결국 난 차차 갚기로 하는 조건을 내세워 원룸 보증금만을 받았다.
모든 걸 잊기 위해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다.
일자리도 얻었고, 시아버지에게 빌린 보증금도 갚아 나갔다.
하지만 그 보증금은 늘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돈이 아니라, 다른 것들로 말이다.
어떤 날은 화장품으로,
어떤 날은 생필품으로,
어딴 날은 반찬이나, 고기 같은 것들로 고스란히 되돌아 왔다.
그것들을 받으며 시아버지에게 늘 죄송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시아버지는 말했다.
자기를 정말 아버지처럼 여긴다면 죄송할 게 아니라 그냥 고마워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아버지란 자식에게 그런 존재라고 말이다.
눈물이 났다.
이런 게 아버지의 사랑인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런 시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시아버지의 나이 마흔 일곱이 되었다,
4.
“친구 와이프가 하도 한번만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다.”
시아버지가 여자를 만났다.
기뻤다. 홀로 외롭게 지내는 시아버지 곁에 누군가 존재하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소식은 너무 반갑게 들렸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냥 한 번 만난 거라고 말을 했다. 그런 시아버지에게 그러지 말고 계속 만나보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그 여자를 만나는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던 순간, 난 알 수 없는 감정 하나를 느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오는 느낌,
그리고 그 여자를 향해 시아버지가 미소를 짓던 순간 아파오는 가슴,
난 당황했다.
이 감정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아버지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딸의 마음이 같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아버지 그리고 그 여자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 온 날,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는 날 보며 난 비로써 느꼈다.
내 가슴에 어쩌면 특별한 감정 하나가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시아버지 곁에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내가 싫어한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그건 분명 질투였다.
아버지에게 가지는 딸의 질투가 아닌,
분명히 다른 질투 말이다.
얼마 뒤, 시아버지가 그 여자를 더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애당초 그냥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던 시아버지와 달리 그 여자는 새 가정을 꿈꾼 것이다.
기뻤다.
시아버지 곁에 다시 나 말고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시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특별함이 실리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그리고 잊어갔다.
그에 대한 기억도, 상처도 말이다.
시아버지가 그의 아버지란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시아버지의 나이는 마흔 여덟이었다.
5.
“저, 유진씨랑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느 날 같은 직장의 비슷한 연배 남자가 고백을 해왔다.
물론 난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에 대한 평판도 그다지 별로였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이 아예 없었던 나는 그를 밀어 낼 수밖에 없었다.
“나, 한 번 결혼했던 여자에요.”
“알고 있어요.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을 받아 주세요.”
“아뇨, 그럴 수 없어요. 전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그를 밀어내기 위한 말이었다.
다행히 그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가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날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를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난 또다시 세상의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직접 전해 줄 것이 있다는 말에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던 순간 그는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짐승의 완강한 힘은 여자인 나로서는 버티기 어려운 일이었다.
얼굴에 쏟아지던 무지막지 한 주먹질과 온 몸에 가해진 발길질,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절망하고 무서웠던 건,
내 몸을 힘으로 정복해버린 그의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시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해 달라고, 이 지옥 같은 순간이 꿈이게 해달라고 말이다.
공허한 외침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날 도와주지 않았고, 난 무참히 유린당했다.
여자로써, 한 인간으로써 말이다.
그렇게 난 세상의 남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헤어진 남편과 날 배신한 오빠, 그리고 짐승 같은 직장 동료에게 말이다.
누군가의 신고로 병원으로 실려 가며 시아버지를 떠올렸다.
내게 유일하게 남은 버팀목이자,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유일한 남자.
난 그 순간 빌고 빌었다.
더럽혀진 날 시아버지가 포기하지 말기를 말이다.
시아버지마저 내게 등을 돌린다면 내 곁엔 이제 아무도 없기에 말이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살 자신이 없기에 말이다.
그렇게 빌었다.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내 곁에 남아 달라고,
그래만 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이다.
아니,
매달리겠다고 다짐했다.
버림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더 이상 버려지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이다.
그는 이제 나에게 마지막 희망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스물아홉이 되던 그 해 내 삶은 변했다.
내 가슴에 숨겨진 감정 하나를 희미하게 느끼며 당황했고.
그 당혹감에 혼란스러워할 틈도 없이 내 몸과 마음이 무참하게 부서져버린 것이다.
스물아홉 가을은 그렇게 내게 잔인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가을이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나만을 위해,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염려했던 일도 생각보다 잘 풀렸고 말입니다.
하여 소라에 글을 내리기 전에 도입부분만을 쓰다 멈췄던 글을 뚝딱거려 다시 올려 봅니다.
(제가 쓰고 있는 곳에서는 근친에 관한 글은 안 된다고 해서····.)
원래는 가정교사를 끝내고 30부작 정도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려던 글인데, 지금 제 사정상 이곳에 장편의 글은 올릴 수 없는 바, 단편으로 재구성해서 올려 봅니다.
이 글은 프롤로그를 제외한 5편으로 구성 됩니다.
참고로 오늘은 프롤로그만 올립니다.
읽으시는 분들 찝찝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개 올릴지, 두 개 올릴지,
그도 아니면 일주일에 하나씩 올릴지는 작가의 마음이란 거····.
음하하···, 이게 작가만이 부릴 수 있는 폭거라는 겁니다.^^;;;
참고로 이 글을 끝으로 전 다시 잠수를 타야한답니다.
그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온다면 제가 숙제로 남겨 두었던 글 두 개를 써보기 위해서 일겁니다.
바로 부녀간의 근친물과 남매간의 근친 두 개 말이죠.
(제가 글을 쓰는 곳에서는 직계간의 근친물은 안 된다고 하네요.)
어머니의 그림자를 쓰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친족 간의 근친물을 제가 잘 안 쓰게 됐죠.
거부감은 둘째 치더라도, 인과관계를 맺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 글엔 유부녀의 이야기와 형수나 처제 또는 시아버지 같은 속된 말로 피가 직접 섞이지 않은 근친물이 대부분이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림자를 쓸 때 세 가지를 완성하고 싶었드랬죠.
위에 적은 대로,
모자, 부녀, 그리고 남매 이렇게 완벽한 근친 구성을 말입니다.
하지만 번번이 초입부에서 주저앉아 엄두를 내지 못했고, 지금도 부녀의 이야기 초입만 써놓고 글을 멈췄고 말입니다.
각설하고 암튼 이 글을 끝으로 전 다시 잠시 이별을 고합니다.
모쪼록 다시 뵐 때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전 여기서 이만 물러갑니다.
안녕히····.
추신: 쪽지로 문의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 이전 글에 대한 입장은 이 글이 끝나고 집필실에 따로 의견을 남기겠습니다.
1.
“누나, 좋아해.”
그것이 시작이었다.
스물셋 나에게 다가왔던 스무 살의 후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빠와 단 둘이 살았던 나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절박한 하나의 소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그 아이의 고백은 나 자신을 꽁꽁 사매고 있던 담장을 치워버리게 하는 고백이었다. 부모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에 그런 그라면 누구보다 날 아껴줄 거라 믿었기에 말이다.
그런 그의 아버지를 만나며 난 더 확신했다.
이제 겨우 마흔 둘의 나이에 아내를 잃고 오로지 아들만을 바라보며 홀로 사는 그의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남자였다. 비록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남자를 낳고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은 그랬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그의 아버지는 내가 가지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서른 중반에 아내를 잃고 아들만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조금은 철부지 같은 그와는 너무도 달라보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저런 아버지에게서 자란 남자라면,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외롭게 자란 남자라면,
그 어느 누구보다 날 아껴주고 사랑해 줄 거라 믿었다.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은 물론이고, 살갑지 않은 오빠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사랑을 말이다.
그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졸라대는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결국 난 그를 받아 들였다.
그렇게 스물 셋의 나이에 난 여자가 되었다.
스스로를 악착 같이 지키던 내 육체에 남자의 흔적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군에서 제대를 한 남편과 꿈같은 결혼을 했다.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결혼이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
시아버지의 나이 마흔 넷이었다.
2.
“헤어지자.”
내 꿈은 정확히 이 년 만에 무너졌다.
제대를 하고 극구 반대하는 시아버지를 졸라 유학을 떠났던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여자를 만났다.
미칠 것 같았다.
아니 반쯤은 미쳤었다.
내 삶을 모두 던진 남자였다.
조금은 철이 없고, 조금은 즉흥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날 버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갈 거면 같이 가라는 시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난, 그에게 매달렸다.
돌아오라고, 모든 걸 용서하겠다고 말이다.
시아버지도 그랬다.
날 버리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아들로 여기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도 그는 변함없었다.
애원하는 나와 분노하는 시아버지를 두고 그는 그 여자가 남아있는 그곳으로 떠나버렸다.
시아버지와 난 절망했다.
그토록 믿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에 난 절망했고,
자신의 삶 대부분을 바쳐 키워왔던 아들에 대한 실망감에 시아버지도 절망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아버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들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자신이 잘못 키워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말이다.
황망함에 난 그런 시아버지 앞에 같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니라고, 아버님은 잘못한 게 없다고,
모든 것은 현명하지 못한 내 탓이라고 말이다.
우린 함께 울었다.
시아버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걸 말이다.
그렇게 스물일곱의 나이에 난 혼자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마흔 여섯이 되었다.
3.
일 년의 시간이 흐르며 그를 조금씩 잊어갔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난 새로운 아버지를 얻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시아버지였던 분을 말이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아버지는 가까이서 날 배려했다.
내가 살 집을 얻어주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폈다.
그런 시아버지를 난 점점 의지했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술에 취한 시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훔치던 걸 몰래 지켜보던 순간 난 느꼈다.
어쩌면 나보다 상처를 더 받은 사람은 시아버지 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내를 잃고 아들만을 의지하며 청춘을 받쳤던 시아버지에게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남자는 시아버지에게 조차 연락을 끊었다.
시아버지가 마련해준 적지 않은 신혼집 아파트 전세금을 챙겨 떠난 뒤로 말이다.
그렇게 날 이해주는 시아버지를 의지해 그에 대한 상처를 잊어갈 쯤,
하나 밖에 없는 오빠가 다시 상처를 남겼다.
시아버지가 마련해준 전세금을 담보로 작은 사업을 하던 오빠가 자취를 감췄다.
살갑지 않은 오빠였지만,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이었기에 오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건만 오빠마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버렸다.
시아버지가 다시 나섰지만, 난 거절했다.
염치가 없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완강했고, 결국 난 차차 갚기로 하는 조건을 내세워 원룸 보증금만을 받았다.
모든 걸 잊기 위해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다.
일자리도 얻었고, 시아버지에게 빌린 보증금도 갚아 나갔다.
하지만 그 보증금은 늘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돈이 아니라, 다른 것들로 말이다.
어떤 날은 화장품으로,
어떤 날은 생필품으로,
어딴 날은 반찬이나, 고기 같은 것들로 고스란히 되돌아 왔다.
그것들을 받으며 시아버지에게 늘 죄송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시아버지는 말했다.
자기를 정말 아버지처럼 여긴다면 죄송할 게 아니라 그냥 고마워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아버지란 자식에게 그런 존재라고 말이다.
눈물이 났다.
이런 게 아버지의 사랑인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런 시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시아버지의 나이 마흔 일곱이 되었다,
4.
“친구 와이프가 하도 한번만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다.”
시아버지가 여자를 만났다.
기뻤다. 홀로 외롭게 지내는 시아버지 곁에 누군가 존재하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소식은 너무 반갑게 들렸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냥 한 번 만난 거라고 말을 했다. 그런 시아버지에게 그러지 말고 계속 만나보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그 여자를 만나는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던 순간, 난 알 수 없는 감정 하나를 느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오는 느낌,
그리고 그 여자를 향해 시아버지가 미소를 짓던 순간 아파오는 가슴,
난 당황했다.
이 감정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아버지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딸의 마음이 같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아버지 그리고 그 여자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 온 날,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는 날 보며 난 비로써 느꼈다.
내 가슴에 어쩌면 특별한 감정 하나가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시아버지 곁에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내가 싫어한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그건 분명 질투였다.
아버지에게 가지는 딸의 질투가 아닌,
분명히 다른 질투 말이다.
얼마 뒤, 시아버지가 그 여자를 더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애당초 그냥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던 시아버지와 달리 그 여자는 새 가정을 꿈꾼 것이다.
기뻤다.
시아버지 곁에 다시 나 말고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시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특별함이 실리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그리고 잊어갔다.
그에 대한 기억도, 상처도 말이다.
시아버지가 그의 아버지란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시아버지의 나이는 마흔 여덟이었다.
5.
“저, 유진씨랑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느 날 같은 직장의 비슷한 연배 남자가 고백을 해왔다.
물론 난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에 대한 평판도 그다지 별로였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이 아예 없었던 나는 그를 밀어 낼 수밖에 없었다.
“나, 한 번 결혼했던 여자에요.”
“알고 있어요.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을 받아 주세요.”
“아뇨, 그럴 수 없어요. 전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그를 밀어내기 위한 말이었다.
다행히 그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가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날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를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난 또다시 세상의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직접 전해 줄 것이 있다는 말에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던 순간 그는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짐승의 완강한 힘은 여자인 나로서는 버티기 어려운 일이었다.
얼굴에 쏟아지던 무지막지 한 주먹질과 온 몸에 가해진 발길질,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절망하고 무서웠던 건,
내 몸을 힘으로 정복해버린 그의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시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해 달라고, 이 지옥 같은 순간이 꿈이게 해달라고 말이다.
공허한 외침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날 도와주지 않았고, 난 무참히 유린당했다.
여자로써, 한 인간으로써 말이다.
그렇게 난 세상의 남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헤어진 남편과 날 배신한 오빠, 그리고 짐승 같은 직장 동료에게 말이다.
누군가의 신고로 병원으로 실려 가며 시아버지를 떠올렸다.
내게 유일하게 남은 버팀목이자,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유일한 남자.
난 그 순간 빌고 빌었다.
더럽혀진 날 시아버지가 포기하지 말기를 말이다.
시아버지마저 내게 등을 돌린다면 내 곁엔 이제 아무도 없기에 말이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살 자신이 없기에 말이다.
그렇게 빌었다.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내 곁에 남아 달라고,
그래만 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이다.
아니,
매달리겠다고 다짐했다.
버림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더 이상 버려지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이다.
그는 이제 나에게 마지막 희망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스물아홉이 되던 그 해 내 삶은 변했다.
내 가슴에 숨겨진 감정 하나를 희미하게 느끼며 당황했고.
그 당혹감에 혼란스러워할 틈도 없이 내 몸과 마음이 무참하게 부서져버린 것이다.
스물아홉 가을은 그렇게 내게 잔인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가을이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나만을 위해,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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