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뭘까?? 아무리 배우고 익히고 참고 노력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자식 키우는 일이다.확실하다.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난 자타공인 자수성가의 표본이다.타인들도 인정하고 나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난 5형제중 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정치판을 기웃거리던 한량이셨다.
내가 아주 어렸을적엔 그래도 연줄을 잘 탔던 적이 있어서 집에 자동차도 두대나 굴리던
시절이 있다고 듣기만 했다.형들에게서.
내가 기억하는건 항상 아버지의 술주정과 빚쟁이들의 고함소리, 단칸방에 모여있는 형들의 땀냄새,
아버지의 폭행,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보복폭행, 그리고 형들의 반항으로 이어지는 폭력,
이런것들로 나의 유년기억은 꽉 채워져있다.
당연한 결론인지 나의 윗 형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삐뚤어져갔고 가족을 괴롭히거나 떠나거나
양자택일을 하기만 했다.
타고나는 천성이라는게 있는걸까?? 난 그 지옥에서도 내 힘으로 당당히 걸어나왔다.
누구하나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집에선 전혀 공부할 시간도 공간도 여건도 없었지만
학교수업시간만으로도 난 줄곧 일등을 달렸다.
간절함의 차이였다.지금 이 수업시간을 놓치면 난 더 이상 공부할 시간도 장소도 없다,
이 한 시간에 내 모든걸 걸자.선생님도 무섭다고 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곤 무아지경으로 집중했다.
또한 장학금이 없으면 대학진학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그냥 잘하는것이 아니라 전국일등을 목표로 공부에 임했다.목표자체를 높였기에 난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간절했기에 그 목표를 이룰수 있었다.
내가 최고대학 경영학과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가난하고 조그만 동네에선
개천에서 용 났다며 큰 잔치가 벌여졌고 자식에겐 한톨의 관심조차 없던 부모님도
갑자기 자신의 덕분인양 우쭐대며 다니곤 했다.
하지만 난 그것이 싫었다.당신들이 내게 해준건 단지 몸뚱아리뿐,나의 성공과 환희에 당신들이 기뻐할 근거나
지분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즉시 동네를 떠났고 한동안 부모님이나 형제들과도 인연을 끊었다.
그래! 난 개천에서 난 용이다. 용이 된 마당에 더 이상 개천에 있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랄까. 승천하려면 그들부터, 가족이라는 허울좋은 이 걸림돌들부터 제거해야
마음껏 날 수 있단 판단을 내리곤 조금의 미련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단 기쁨도 안도감도 나에겐 사치였다.여전히 미친듯이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가야할길은 보이지도 않을만큼 멀리 있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싸이코패스기질이 있지 않나 싶다.
남이 아닌 내 자신을 학대하고 혹사해서 얻는 기쁨이랄까?
고통과 고단함도 전혀 모른체 그렇게 오로지 성공 하나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난 오늘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투자의 제왕, 돈 글어모으는 악귀 소리까지 들어가며
체감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누구에게도 굽히기 싫었기에 성공을 위해선
누구에게도 잘 보였다.온전히 맹목적인 양,
내겐 쉬운 일이었다.지금은 굽히지만 어설프게 굽혀서 평생을 굽히느니 밑바닥까지 굽혀서
다시는 굽히지 않겠다, 이런 다짐이 있었고 난 지금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굽힐 필요도
아쉬운 소리 할 필요도 없는 위치에 올랐다.
그런줄 알았다.하지만 예상치 못 한 난관이 있었다.아무리 참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 내 맘대로 가지 않는 일,
내 아들이었다.
내 불행하고 부끄러운 가족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난 돈도, 명예도, 외모도 아닌
최고 학식이라는 처가에 장가를 갔다.장인장모 모두 학계 최고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존경또한 한 몸에 받는 분들이었다.
내 아내도 나와같은 최고학부 출신의 교육자였다.단아했고 기품이 있었으며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갖춘 여자였다.
난 졸부집안에 절대 딸을 보내지 않겠다는 처가의 완강한 고집에도 정말 정성을 다 했다.
그들의 지적이 다 옳으니깐 . 우리 집은 천박하고 방정맞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집안이었다.
내가 가진 부 빼곤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으니깐.졸부집안이 맞으니깐.기분 상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삶의 지혜중 하나는 갖고싶은걸 가지려면 철저히 고개를 숙여라 이다.
자존심?? 그 딴건 가진다음에도 충분히 세울 시간이 있다.일단 갖는게 중요한거니깐
그러기 위해선 항상 어설픈게 아닌 나의 최선을 보여야 한다.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많이.
그게 내 철학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나게 된 내 아내, 하지만 우물안의 개구리였던가?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사에서 곱디 곱게 자란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너무도 벅찬일이었다.
내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난 환희에 떨었다.나의 성공이 대를 이루어 연결된다면 나의 제국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특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내 아내의 학식과 교양을 두루 지닌 그런 아들이기를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출산이후부터 계속되었다.
끊이지 않는 잔병치례에 몇번의 수술을 거칠 정도로 내 아들은 유약했다.
하지만 끄덕없었다.내게는 재력이 있다.내 아들 하나 살려낼 힘은 있으니까.
세계를 다 돌아다니며 온갖 유명하다는 치료는 다 했다. 아내는 지쳐갔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운 상상을 이어가며 치료에 치료를 더 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아들이 나아갈수록 아내가 병들어가고 있단 사실을. 버거워한다는걸.
풍족하게 돈만 벌어주면 남자의 역할은 끝이라는 동시대 남자들의 사고방식에 나도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더욱 성공에만 몰두했고 건강해질 내 아들과 함께 누릴 영광과
우리가 만들어낼 우리의 제국만을 꿈꾸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몸만 건강해지면 모든게 좋아질거라던
우리의 희망은 아들이 건강해질수록 처참하게 부서져갔다.
어느 날 나는 느꼈다.본능적으로. 내 아들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게으르고 교만하고 천박하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담겨져 있는 내 아들의 모습.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왜! 이렇게 완벽하고 확실한 경우의 수를 놔두고 그 희박한 확률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그림자와 우려를 씻기 위해서 아들을 몰아붙였다.최고의 교육과 학교, 심지어 친구들도 골라서 최고집안의 아이들하고만 어울리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쓰레기는 아무리 향수를 뿌려도 쓰레기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들은 교만하고 폭력적이고 안하무인으로 바뀌어갔고 어느 순간 우리의 통제마저 거부하기 시작했다. 유흥에 젖어들어갔고 여자에 빠지고 급기야 마약까지 손을 데기 시작했다.
구치소와 치료감호소를 수시로 들락날락 거렸고 그 때마다 돈의 힘으로 무마시키기에만 바뻤다.
하지만 그러한 실체적 진실보다 나를 더 절망케 한건은 내게 돌아온 아들의 반응이었다.
" 그냥 이렇게 살게요.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마요.그럼 확 죽어버릴테니깐.별 재미도 없는 내 인생 그리 애착 없어요"
그래, 인정하자, 내 아들은 쓰레기다.그렇다고 내가 치울수도 버릴수도 없는 처치곤란의 물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누구나 집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쟎아?
내놓기 창피한거. 신경끄자.내가 이룩한 영광과 이 제국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여기에 몰두하자.
하지만 내 아내는 아니었다.어렸을적 아들의 유약함에 육체적으로 지쳐가던 아내는 시간이 흐르고 드러나기 시작한 아들의 기행과 반항에 정신마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내가 외면하는 시간동안 홀로 되돌리려 했던 그 많은 노력들이 허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순간 아내는 쓰러지고 말았다.
50대 중반 너무나 일찍 찾아온 알츠하이머의 저주가 그녀에게 형벌처럼 내려졌고 모두에게 굽히고 싶지 않았던 내 삶과 다짐은 집안하나 건사 못 한다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 더 이상 당당할 수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엄마의 아픔을 계기로 새 삶을 살기로 하는 아들의 스토리도 보기도 했는데 현실은 전혀 반대였다. 아내가 쓰러지자 아들은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난 뒤처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붙여두는 것만으로 내 책무를 다한다고 생각했다.
모든것을 이루었지만, 아무것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누릴수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내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쓰레기처럼 살던 아들이 결혼을 하고 싶다며 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비서에게 미리 전해들은 소식으론 평범한 집안의 대학생이라고 했다. 돈이나 뜯으려는 파티걸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항상 그렇듯 돈으로 무마하려 했는데 아들의 반응이 뜻밖이었다.아니, 처음 느껴본 눈빛이었다.간절함. 내가 가졌던 그 간절한 소유욕.그게 보였다. 환희를 느꼈다. 맘을 바꿔 그 아이를 한번 보기로 했다. 병원에서 치료중인 아내까지 힘들게 데리고 와 보여주기로 했다. 아들의 새로운 모습이 투병생활에 큰 동기가 되길 바라며 5월의 어느 화창한 봄 밤, 그녀를 초대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전 혁준이 여자친구, 강희주라고 합니다,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쁘게 봐주세요"
이뻤다. 아들이 예전 데리고 다니던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160 내외의 자그마한 키였지만 뽀얀 피부에 목선이 유난히 길고 눈 웃음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국문학을 전공한다는 그녀는 별다른 주제 없이도 20년 넘게 웃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이 저택을 웃음을 넘어 폭소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그래, 이제 됐구나 싶었다. 이토록 늦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우리 가족이 정상을 찾아간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을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땐 미처 몰랐다.내가 아들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갈줄은.
" 난 그녀를 며느리가 아닌 내 여자로 만들고 말았다"
자식 키우는 일이다.확실하다.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난 자타공인 자수성가의 표본이다.타인들도 인정하고 나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난 5형제중 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정치판을 기웃거리던 한량이셨다.
내가 아주 어렸을적엔 그래도 연줄을 잘 탔던 적이 있어서 집에 자동차도 두대나 굴리던
시절이 있다고 듣기만 했다.형들에게서.
내가 기억하는건 항상 아버지의 술주정과 빚쟁이들의 고함소리, 단칸방에 모여있는 형들의 땀냄새,
아버지의 폭행,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보복폭행, 그리고 형들의 반항으로 이어지는 폭력,
이런것들로 나의 유년기억은 꽉 채워져있다.
당연한 결론인지 나의 윗 형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삐뚤어져갔고 가족을 괴롭히거나 떠나거나
양자택일을 하기만 했다.
타고나는 천성이라는게 있는걸까?? 난 그 지옥에서도 내 힘으로 당당히 걸어나왔다.
누구하나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집에선 전혀 공부할 시간도 공간도 여건도 없었지만
학교수업시간만으로도 난 줄곧 일등을 달렸다.
간절함의 차이였다.지금 이 수업시간을 놓치면 난 더 이상 공부할 시간도 장소도 없다,
이 한 시간에 내 모든걸 걸자.선생님도 무섭다고 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곤 무아지경으로 집중했다.
또한 장학금이 없으면 대학진학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그냥 잘하는것이 아니라 전국일등을 목표로 공부에 임했다.목표자체를 높였기에 난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간절했기에 그 목표를 이룰수 있었다.
내가 최고대학 경영학과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가난하고 조그만 동네에선
개천에서 용 났다며 큰 잔치가 벌여졌고 자식에겐 한톨의 관심조차 없던 부모님도
갑자기 자신의 덕분인양 우쭐대며 다니곤 했다.
하지만 난 그것이 싫었다.당신들이 내게 해준건 단지 몸뚱아리뿐,나의 성공과 환희에 당신들이 기뻐할 근거나
지분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즉시 동네를 떠났고 한동안 부모님이나 형제들과도 인연을 끊었다.
그래! 난 개천에서 난 용이다. 용이 된 마당에 더 이상 개천에 있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랄까. 승천하려면 그들부터, 가족이라는 허울좋은 이 걸림돌들부터 제거해야
마음껏 날 수 있단 판단을 내리곤 조금의 미련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단 기쁨도 안도감도 나에겐 사치였다.여전히 미친듯이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가야할길은 보이지도 않을만큼 멀리 있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싸이코패스기질이 있지 않나 싶다.
남이 아닌 내 자신을 학대하고 혹사해서 얻는 기쁨이랄까?
고통과 고단함도 전혀 모른체 그렇게 오로지 성공 하나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난 오늘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투자의 제왕, 돈 글어모으는 악귀 소리까지 들어가며
체감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누구에게도 굽히기 싫었기에 성공을 위해선
누구에게도 잘 보였다.온전히 맹목적인 양,
내겐 쉬운 일이었다.지금은 굽히지만 어설프게 굽혀서 평생을 굽히느니 밑바닥까지 굽혀서
다시는 굽히지 않겠다, 이런 다짐이 있었고 난 지금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굽힐 필요도
아쉬운 소리 할 필요도 없는 위치에 올랐다.
그런줄 알았다.하지만 예상치 못 한 난관이 있었다.아무리 참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 내 맘대로 가지 않는 일,
내 아들이었다.
내 불행하고 부끄러운 가족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난 돈도, 명예도, 외모도 아닌
최고 학식이라는 처가에 장가를 갔다.장인장모 모두 학계 최고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존경또한 한 몸에 받는 분들이었다.
내 아내도 나와같은 최고학부 출신의 교육자였다.단아했고 기품이 있었으며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갖춘 여자였다.
난 졸부집안에 절대 딸을 보내지 않겠다는 처가의 완강한 고집에도 정말 정성을 다 했다.
그들의 지적이 다 옳으니깐 . 우리 집은 천박하고 방정맞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집안이었다.
내가 가진 부 빼곤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으니깐.졸부집안이 맞으니깐.기분 상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삶의 지혜중 하나는 갖고싶은걸 가지려면 철저히 고개를 숙여라 이다.
자존심?? 그 딴건 가진다음에도 충분히 세울 시간이 있다.일단 갖는게 중요한거니깐
그러기 위해선 항상 어설픈게 아닌 나의 최선을 보여야 한다.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많이.
그게 내 철학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나게 된 내 아내, 하지만 우물안의 개구리였던가?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사에서 곱디 곱게 자란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너무도 벅찬일이었다.
내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난 환희에 떨었다.나의 성공이 대를 이루어 연결된다면 나의 제국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특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내 아내의 학식과 교양을 두루 지닌 그런 아들이기를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출산이후부터 계속되었다.
끊이지 않는 잔병치례에 몇번의 수술을 거칠 정도로 내 아들은 유약했다.
하지만 끄덕없었다.내게는 재력이 있다.내 아들 하나 살려낼 힘은 있으니까.
세계를 다 돌아다니며 온갖 유명하다는 치료는 다 했다. 아내는 지쳐갔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운 상상을 이어가며 치료에 치료를 더 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아들이 나아갈수록 아내가 병들어가고 있단 사실을. 버거워한다는걸.
풍족하게 돈만 벌어주면 남자의 역할은 끝이라는 동시대 남자들의 사고방식에 나도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더욱 성공에만 몰두했고 건강해질 내 아들과 함께 누릴 영광과
우리가 만들어낼 우리의 제국만을 꿈꾸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몸만 건강해지면 모든게 좋아질거라던
우리의 희망은 아들이 건강해질수록 처참하게 부서져갔다.
어느 날 나는 느꼈다.본능적으로. 내 아들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게으르고 교만하고 천박하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담겨져 있는 내 아들의 모습.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왜! 이렇게 완벽하고 확실한 경우의 수를 놔두고 그 희박한 확률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그림자와 우려를 씻기 위해서 아들을 몰아붙였다.최고의 교육과 학교, 심지어 친구들도 골라서 최고집안의 아이들하고만 어울리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쓰레기는 아무리 향수를 뿌려도 쓰레기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들은 교만하고 폭력적이고 안하무인으로 바뀌어갔고 어느 순간 우리의 통제마저 거부하기 시작했다. 유흥에 젖어들어갔고 여자에 빠지고 급기야 마약까지 손을 데기 시작했다.
구치소와 치료감호소를 수시로 들락날락 거렸고 그 때마다 돈의 힘으로 무마시키기에만 바뻤다.
하지만 그러한 실체적 진실보다 나를 더 절망케 한건은 내게 돌아온 아들의 반응이었다.
" 그냥 이렇게 살게요.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마요.그럼 확 죽어버릴테니깐.별 재미도 없는 내 인생 그리 애착 없어요"
그래, 인정하자, 내 아들은 쓰레기다.그렇다고 내가 치울수도 버릴수도 없는 처치곤란의 물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누구나 집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쟎아?
내놓기 창피한거. 신경끄자.내가 이룩한 영광과 이 제국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여기에 몰두하자.
하지만 내 아내는 아니었다.어렸을적 아들의 유약함에 육체적으로 지쳐가던 아내는 시간이 흐르고 드러나기 시작한 아들의 기행과 반항에 정신마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내가 외면하는 시간동안 홀로 되돌리려 했던 그 많은 노력들이 허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순간 아내는 쓰러지고 말았다.
50대 중반 너무나 일찍 찾아온 알츠하이머의 저주가 그녀에게 형벌처럼 내려졌고 모두에게 굽히고 싶지 않았던 내 삶과 다짐은 집안하나 건사 못 한다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 더 이상 당당할 수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엄마의 아픔을 계기로 새 삶을 살기로 하는 아들의 스토리도 보기도 했는데 현실은 전혀 반대였다. 아내가 쓰러지자 아들은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난 뒤처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붙여두는 것만으로 내 책무를 다한다고 생각했다.
모든것을 이루었지만, 아무것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누릴수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내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쓰레기처럼 살던 아들이 결혼을 하고 싶다며 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비서에게 미리 전해들은 소식으론 평범한 집안의 대학생이라고 했다. 돈이나 뜯으려는 파티걸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항상 그렇듯 돈으로 무마하려 했는데 아들의 반응이 뜻밖이었다.아니, 처음 느껴본 눈빛이었다.간절함. 내가 가졌던 그 간절한 소유욕.그게 보였다. 환희를 느꼈다. 맘을 바꿔 그 아이를 한번 보기로 했다. 병원에서 치료중인 아내까지 힘들게 데리고 와 보여주기로 했다. 아들의 새로운 모습이 투병생활에 큰 동기가 되길 바라며 5월의 어느 화창한 봄 밤, 그녀를 초대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전 혁준이 여자친구, 강희주라고 합니다,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쁘게 봐주세요"
이뻤다. 아들이 예전 데리고 다니던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160 내외의 자그마한 키였지만 뽀얀 피부에 목선이 유난히 길고 눈 웃음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국문학을 전공한다는 그녀는 별다른 주제 없이도 20년 넘게 웃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이 저택을 웃음을 넘어 폭소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그래, 이제 됐구나 싶었다. 이토록 늦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우리 가족이 정상을 찾아간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을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땐 미처 몰랐다.내가 아들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갈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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