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7화.
그날 할아버지가 끝내 돌아가셨다.
사망원인은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 우진은 그 통렬한 복수가 시원하기도 하고 또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도 친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장례식은 치료를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엄마도 가지 못하게 했다.
할아버지에게 그런 수모와 모욕을 당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으면서, 그가 가는 길에 곡까지 해야 한다면 그건 엄마에게 너무나 비참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엄마는 그의 곁을 지켰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근육을 다쳤지만 그가 젊은데다가 내장은 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 후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잊고 싶은 기억만 가득한 집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퇴원을 계속 늦췄다.
그 사이 아빠가 몇 번이고 찾아왔다.
그때마다 우진은 등을 돌리고 누워서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아빠는 더러운 가해자였고 할아버지와 똑 같은 악마였다. 그날 그는 더 이상 아빠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죽는 그 순간까지 아프게 할 것이라고 맹세한 바 있다.
아빠는 한숨만 쉬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그의 그런 행동이 우희누나는 몹시 못 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날도 저녁에 찾아와서 병실 꽃병에 꽃을 갈던 누나가 그를 향해 투덜거렸다.
“어쩜 너는 그렇게 못 됐니?”
“뭐가?”
“3년 동안 가출해서 아빠 속 새카맣게 태우더니, 꾀병이나 부리면서 할아버지 장례식도 안 오고, 너 때문에 요즘 아빠 얼굴 반쪽이야.”
“......,”
누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도 아마 그날 일이 없었다면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들인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평생을 그 혼자 간직할 상처였고 누나가 알아서도 안되는 일이다.
“아빠한테 잘해.”
“누나나 엄마한테 잘해. 요즘 집에도 안 들어온다며? 애인이랑 동거라도 하는 거야?”
“그건 네가 알거 없어.”
“뭐야, 정말 남자랑 동거해?”
우진이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자 누나가 큭큭 웃었다.
“꾀병 맞네. 실밥 푼 게 언제인데 아직도 아플 리가 없지. 왜 퇴원을 안 하는데? 병원에 예쁜 간호원 언니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거 없어.”
“거짓말. 말해봐. 이 누나는 다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침대로 뛰어 들더니 깔깔 거리며 그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호호, 얼마나 참나 보자.”
예전에 누나랑은 정말 이렇게 하며 많이 놀았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자 왠지 쑥스러워서 안하게 되었는데 누나가 벽을 허물고 다가오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말해. 누구야.”
“윽, 하......, 하지 마.”
“싫어. 더 할 거야. 그 여자가 누구야?”
우진은 너무 간지러워서 깔깔 웃으며 발버둥 치다가 그만 다리로 그녀의 무릎을 툭 건드리고 말았다.
“아앗~”
이때 누나는 허리를 숙인 채 자세가 매우 불안했기 때문에 한쪽 다리가 밀리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만 그의 가슴에 안기고 말았다.
물컹-
“.........,”
누나는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살결도 뽀얗고 가슴이 무척 컸다.
묵직한 중량감이 가슴을 압박하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누나의 치렁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였고 누나의 좋은 냄새에 가슴이 뛰었다.
“어머, 미쳤어. 아프니?”
우진이 움찔거리자 그녀는 자신이 동생의 상처를 건드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그의 복부를 만졌다.
“상처 괜찮아? 터졌어?”
우진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왜 미운 동생 상처 터져서 죽었으면 좋겠어?”
“응, 너 콱 죽어버려야 아빠가 더 이상 속 안상하지. 이 골치 덩어리. 가출이나 하고.......,”
우진은 다소 안색이 어두워졌다.
“누나는 아빠가 좋아?”
“그럼, 넌 싫어?”
“뭐, 그냥. 그런데 누나는 왜 엄마를 싫어해?”
“..........,”
살짝 안색이 굳어진 누나가 대답을 못했다.
근 한 달 병원에 있으면서 느꼈지만 엄마와 누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 다가가려 했지만 누나는 싸늘한 눈초리로 계속 피하기 일 수였다. 그때마다 엄마는 긴 한숨과 함께 무척 슬퍼했다.
병실이 잠시 어색해졌다.
잠시 후 누나가 갑자기 깔깔 웃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냈다.
“자, 그럼 우리 동생 상처 얼마나 나았는지 볼까?”
그러면서 그녀는 그의 환자복을 위로 밀어 올리고 배꼽 옆에 난 칼자국을 만졌다. 실밥을 푼 지 이미 오래고, 상처도 다 아물어서 이젠 3센티 정도의 빨간 자국만 남아 있었다.
“뭐야, 다 나았잖아. 순 사기꾼.”
우진이 빙긋 웃었다.
“아직 아파.”
“정말?”
“응, 누나가 아까 상처 건드려서 더 아파졌어. 일주일은 더 입원해야 할 거야.”
누나가 살짝 그를 노려봤다.
“더는 안 돼. 너 공부도 계속 해야 하고, 대학도 가야 하잖아. 할 거 많아. 창피하게 중졸이 뭐니? 누나가 창피해서 친구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어.”
우진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도 빨리 퇴원하고 싶어. 근데 누나 때문에 더 아파졌으니까 책임져. 상처에 호 불어주면 빨리 아물 것 같기도 하고.....,”
“쪼그만 게 까불어......,”
누나가 손바닥으로 찰싹 그의 복부를 때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우진은 엄살을 부렸다.
“아, 쒸~ 상처 터졌잖아.”
“멀쩡해. 안 터졌어.”
“속에서 터졌어. 아파 죽겠어. 빨리 호 불어줘.”
그가 아기처럼 칭얼거리자 우희누나는 살짝 눈을 흘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동생이 옛날처럼 누나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았다. 밖에 나가서 얻어터지고 돌아 올 때면 코 찌질 거리면서 누나에게 일러바치던 동생이다.
“호호, 여기?”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복부에 호~ 하고 입김을 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동생의 복근이 장난이 아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잘고 단단한 근육은 진짜 빨래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옛날 그 약해빠진 동생이 아니었다. 덩치는 커지고 어깨는 벌어지고 온몸은 근육으로 딴딴했다.
문득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어색한 기분이 든 그녀는 얼른 동생의 환자복을 내리고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가출해서 뭘 하고 나닌 거야?”
“말했잖아. 산에서 약초 캐고 다녔다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퇴원하면 누나 선물도 사 줄게.”
“뭘 사줄 건데?”
“누나, 구두 좋아하니까 그거 사줄까?”
“누나 구두 얼마짜린 줄 아니?”
“한 10만원?”
우희가 까르르 웃었다.
“그 정도면 포장지 값은 되겠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생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던 것이다. 그녀는 급히 다시 말했다.
“진이, 이제 다 컸네. 누나 선물도 할 생각도 다 하고. 퇴원하면 누나랑 같이 쇼핑하자. 너 입을 옷도 사야하고, 그때 누나 선물도 사주는 거다?”
“.........,”
이 집구석은 진짜 돈이 많다.
그는 3년 동안 산에서 약초나 버섯 산나물 등을 캐서 벌어 모은 돈이 꽤 많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나이또래가 스스로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의 기준이지만 그래도 3년 동안 모았으니 꽤 된다. 그런데 그 돈으로도 지금 누나가 입고 있는 옷을 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는 할아버지를 증오한다.
그래서 할아버지 돈도 증오했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죽었고 그 돈은 아빠가 물려받았다. 그런데 그는 지금 아빠도 증오한다. 아빠는 엄마를 폭행하고 비참하게 만든 할아버지와 공범이고 악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는 아빠의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다. 이 호텔 같은 병원 특실도 아빠의 카드로 지불이 되고, 누나가 지금 입고 있는 억 소리 나는 옷도 아빠의 돈이다.
이제 누나는 그 돈이 없으면 못 산다.
엄마도 그 풍족한 돈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가족, 엄마와 누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그도 이제는 안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돈이 없어서 불행해 지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안다.
아빠에게 벗어나려면 그는 경제적 독립이 필요했다.
그래야 엄마 누나를 아빠로부터 완전하게 분리시켜서 그가 독점할 수 있다. 단지 그를 위해 엄마와 누나에게 목가적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누나가 그를 툭 쳤다.
“애가 완전히 넋이 나갔네? 뭘 멍청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 아니.”
그때 덜컹하며 병실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집에 돌아갔던 엄마가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나가 어색한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벌써 가려고? 엄마랑 같이 이야기나 하다 가지? 나는 같이 있고 싶은데......,”
누나가 빙긋 웃었다.
“누나 바빠.”
“데이트?”
“뭐, 대충......,”
“내 연적 만나러 가는 거네? 그럼 더 못 보내지. 어떤 놈팡인지 죽었어.”
“너 자꾸 까불래?”
누나가 그의 아미에 굴밤을 먹이고는 호호 하면서 총총히 병실을 나가버렸다. 엄마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엄마가 급히 누나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나의 목소리였다. ‘창녀’라든지 ‘꺼져’라든지 ‘암캐’라든지 원색적인 욕 소리였다.
우진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설마 누나도 아는 걸까?’
하지만 아니다.
더러운 집안 내막을 안다면 누나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비난해야지 엄마를 비난할 수는 없다. 누나는 여자고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엄마를 더 이해해야 한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참 후 엄마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눈이 빨갰다. 어디서 한 참 울다가 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엄마가 미소를 지었다.
“진이 배고프지?”
“응. 엄마.”
엄마는 싸 가지고 온 것을 침대에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갈비, 찜, 생선 등 이것저것 진짜 많았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엄마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엄마는 진짜 음식이 잘한다.
“먹어.”
“엄마도 같이 먹자.”
“엄마는 먹고 왔어. 배불러.”
“에잇, 이리 와. 오늘은 아들이 먹여줄게.”
엄마의 슬픈 눈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뭔가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가 갈비찜 하나를 들고 흔들자 엄마가 억지로 받아먹었다.
“맛있어?”
“응, 맛있어. 엄마도 먹여줄게.”
그러면서 엄마는 생선 가시를 손으로 발라서 현미밥에 올린다음 아들 입에 넣어 주었다. 그가 맛있게 먹자 엄마 입이 흐뭇하게 풀어지면서 눈가에 미소가 걸렸다.
우진은 그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엄마가 기쁘면 그도 기쁘다.
“엄마 사랑해.”
“그래, 내 새끼. 엄마도.....,”
그날 저녁 아빠가 다시 병원으로 찾아왔다.
어떻게든 그날 일을 정리해야 했던 우진은 아빠와의 만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저녁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그는 아빠가 기다리는 병원 인근 편의점 앞으로 나갔다.
아빠는 파라솔 밑에서 캔 맥주 한잔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할아버지가 끝내 돌아가셨다.
사망원인은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 우진은 그 통렬한 복수가 시원하기도 하고 또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도 친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장례식은 치료를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엄마도 가지 못하게 했다.
할아버지에게 그런 수모와 모욕을 당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으면서, 그가 가는 길에 곡까지 해야 한다면 그건 엄마에게 너무나 비참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엄마는 그의 곁을 지켰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근육을 다쳤지만 그가 젊은데다가 내장은 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 후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잊고 싶은 기억만 가득한 집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퇴원을 계속 늦췄다.
그 사이 아빠가 몇 번이고 찾아왔다.
그때마다 우진은 등을 돌리고 누워서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아빠는 더러운 가해자였고 할아버지와 똑 같은 악마였다. 그날 그는 더 이상 아빠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죽는 그 순간까지 아프게 할 것이라고 맹세한 바 있다.
아빠는 한숨만 쉬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그의 그런 행동이 우희누나는 몹시 못 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날도 저녁에 찾아와서 병실 꽃병에 꽃을 갈던 누나가 그를 향해 투덜거렸다.
“어쩜 너는 그렇게 못 됐니?”
“뭐가?”
“3년 동안 가출해서 아빠 속 새카맣게 태우더니, 꾀병이나 부리면서 할아버지 장례식도 안 오고, 너 때문에 요즘 아빠 얼굴 반쪽이야.”
“......,”
누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도 아마 그날 일이 없었다면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들인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평생을 그 혼자 간직할 상처였고 누나가 알아서도 안되는 일이다.
“아빠한테 잘해.”
“누나나 엄마한테 잘해. 요즘 집에도 안 들어온다며? 애인이랑 동거라도 하는 거야?”
“그건 네가 알거 없어.”
“뭐야, 정말 남자랑 동거해?”
우진이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자 누나가 큭큭 웃었다.
“꾀병 맞네. 실밥 푼 게 언제인데 아직도 아플 리가 없지. 왜 퇴원을 안 하는데? 병원에 예쁜 간호원 언니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거 없어.”
“거짓말. 말해봐. 이 누나는 다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침대로 뛰어 들더니 깔깔 거리며 그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호호, 얼마나 참나 보자.”
예전에 누나랑은 정말 이렇게 하며 많이 놀았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자 왠지 쑥스러워서 안하게 되었는데 누나가 벽을 허물고 다가오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말해. 누구야.”
“윽, 하......, 하지 마.”
“싫어. 더 할 거야. 그 여자가 누구야?”
우진은 너무 간지러워서 깔깔 웃으며 발버둥 치다가 그만 다리로 그녀의 무릎을 툭 건드리고 말았다.
“아앗~”
이때 누나는 허리를 숙인 채 자세가 매우 불안했기 때문에 한쪽 다리가 밀리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만 그의 가슴에 안기고 말았다.
물컹-
“.........,”
누나는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살결도 뽀얗고 가슴이 무척 컸다.
묵직한 중량감이 가슴을 압박하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누나의 치렁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였고 누나의 좋은 냄새에 가슴이 뛰었다.
“어머, 미쳤어. 아프니?”
우진이 움찔거리자 그녀는 자신이 동생의 상처를 건드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그의 복부를 만졌다.
“상처 괜찮아? 터졌어?”
우진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왜 미운 동생 상처 터져서 죽었으면 좋겠어?”
“응, 너 콱 죽어버려야 아빠가 더 이상 속 안상하지. 이 골치 덩어리. 가출이나 하고.......,”
우진은 다소 안색이 어두워졌다.
“누나는 아빠가 좋아?”
“그럼, 넌 싫어?”
“뭐, 그냥. 그런데 누나는 왜 엄마를 싫어해?”
“..........,”
살짝 안색이 굳어진 누나가 대답을 못했다.
근 한 달 병원에 있으면서 느꼈지만 엄마와 누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 다가가려 했지만 누나는 싸늘한 눈초리로 계속 피하기 일 수였다. 그때마다 엄마는 긴 한숨과 함께 무척 슬퍼했다.
병실이 잠시 어색해졌다.
잠시 후 누나가 갑자기 깔깔 웃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냈다.
“자, 그럼 우리 동생 상처 얼마나 나았는지 볼까?”
그러면서 그녀는 그의 환자복을 위로 밀어 올리고 배꼽 옆에 난 칼자국을 만졌다. 실밥을 푼 지 이미 오래고, 상처도 다 아물어서 이젠 3센티 정도의 빨간 자국만 남아 있었다.
“뭐야, 다 나았잖아. 순 사기꾼.”
우진이 빙긋 웃었다.
“아직 아파.”
“정말?”
“응, 누나가 아까 상처 건드려서 더 아파졌어. 일주일은 더 입원해야 할 거야.”
누나가 살짝 그를 노려봤다.
“더는 안 돼. 너 공부도 계속 해야 하고, 대학도 가야 하잖아. 할 거 많아. 창피하게 중졸이 뭐니? 누나가 창피해서 친구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어.”
우진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도 빨리 퇴원하고 싶어. 근데 누나 때문에 더 아파졌으니까 책임져. 상처에 호 불어주면 빨리 아물 것 같기도 하고.....,”
“쪼그만 게 까불어......,”
누나가 손바닥으로 찰싹 그의 복부를 때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우진은 엄살을 부렸다.
“아, 쒸~ 상처 터졌잖아.”
“멀쩡해. 안 터졌어.”
“속에서 터졌어. 아파 죽겠어. 빨리 호 불어줘.”
그가 아기처럼 칭얼거리자 우희누나는 살짝 눈을 흘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동생이 옛날처럼 누나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았다. 밖에 나가서 얻어터지고 돌아 올 때면 코 찌질 거리면서 누나에게 일러바치던 동생이다.
“호호, 여기?”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복부에 호~ 하고 입김을 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동생의 복근이 장난이 아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잘고 단단한 근육은 진짜 빨래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옛날 그 약해빠진 동생이 아니었다. 덩치는 커지고 어깨는 벌어지고 온몸은 근육으로 딴딴했다.
문득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어색한 기분이 든 그녀는 얼른 동생의 환자복을 내리고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가출해서 뭘 하고 나닌 거야?”
“말했잖아. 산에서 약초 캐고 다녔다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퇴원하면 누나 선물도 사 줄게.”
“뭘 사줄 건데?”
“누나, 구두 좋아하니까 그거 사줄까?”
“누나 구두 얼마짜린 줄 아니?”
“한 10만원?”
우희가 까르르 웃었다.
“그 정도면 포장지 값은 되겠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생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던 것이다. 그녀는 급히 다시 말했다.
“진이, 이제 다 컸네. 누나 선물도 할 생각도 다 하고. 퇴원하면 누나랑 같이 쇼핑하자. 너 입을 옷도 사야하고, 그때 누나 선물도 사주는 거다?”
“.........,”
이 집구석은 진짜 돈이 많다.
그는 3년 동안 산에서 약초나 버섯 산나물 등을 캐서 벌어 모은 돈이 꽤 많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나이또래가 스스로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의 기준이지만 그래도 3년 동안 모았으니 꽤 된다. 그런데 그 돈으로도 지금 누나가 입고 있는 옷을 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는 할아버지를 증오한다.
그래서 할아버지 돈도 증오했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죽었고 그 돈은 아빠가 물려받았다. 그런데 그는 지금 아빠도 증오한다. 아빠는 엄마를 폭행하고 비참하게 만든 할아버지와 공범이고 악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는 아빠의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다. 이 호텔 같은 병원 특실도 아빠의 카드로 지불이 되고, 누나가 지금 입고 있는 억 소리 나는 옷도 아빠의 돈이다.
이제 누나는 그 돈이 없으면 못 산다.
엄마도 그 풍족한 돈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가족, 엄마와 누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그도 이제는 안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돈이 없어서 불행해 지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안다.
아빠에게 벗어나려면 그는 경제적 독립이 필요했다.
그래야 엄마 누나를 아빠로부터 완전하게 분리시켜서 그가 독점할 수 있다. 단지 그를 위해 엄마와 누나에게 목가적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누나가 그를 툭 쳤다.
“애가 완전히 넋이 나갔네? 뭘 멍청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 아니.”
그때 덜컹하며 병실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집에 돌아갔던 엄마가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나가 어색한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벌써 가려고? 엄마랑 같이 이야기나 하다 가지? 나는 같이 있고 싶은데......,”
누나가 빙긋 웃었다.
“누나 바빠.”
“데이트?”
“뭐, 대충......,”
“내 연적 만나러 가는 거네? 그럼 더 못 보내지. 어떤 놈팡인지 죽었어.”
“너 자꾸 까불래?”
누나가 그의 아미에 굴밤을 먹이고는 호호 하면서 총총히 병실을 나가버렸다. 엄마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엄마가 급히 누나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나의 목소리였다. ‘창녀’라든지 ‘꺼져’라든지 ‘암캐’라든지 원색적인 욕 소리였다.
우진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설마 누나도 아는 걸까?’
하지만 아니다.
더러운 집안 내막을 안다면 누나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비난해야지 엄마를 비난할 수는 없다. 누나는 여자고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엄마를 더 이해해야 한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참 후 엄마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눈이 빨갰다. 어디서 한 참 울다가 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엄마가 미소를 지었다.
“진이 배고프지?”
“응. 엄마.”
엄마는 싸 가지고 온 것을 침대에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갈비, 찜, 생선 등 이것저것 진짜 많았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엄마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엄마는 진짜 음식이 잘한다.
“먹어.”
“엄마도 같이 먹자.”
“엄마는 먹고 왔어. 배불러.”
“에잇, 이리 와. 오늘은 아들이 먹여줄게.”
엄마의 슬픈 눈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뭔가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가 갈비찜 하나를 들고 흔들자 엄마가 억지로 받아먹었다.
“맛있어?”
“응, 맛있어. 엄마도 먹여줄게.”
그러면서 엄마는 생선 가시를 손으로 발라서 현미밥에 올린다음 아들 입에 넣어 주었다. 그가 맛있게 먹자 엄마 입이 흐뭇하게 풀어지면서 눈가에 미소가 걸렸다.
우진은 그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엄마가 기쁘면 그도 기쁘다.
“엄마 사랑해.”
“그래, 내 새끼. 엄마도.....,”
그날 저녁 아빠가 다시 병원으로 찾아왔다.
어떻게든 그날 일을 정리해야 했던 우진은 아빠와의 만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저녁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그는 아빠가 기다리는 병원 인근 편의점 앞으로 나갔다.
아빠는 파라솔 밑에서 캔 맥주 한잔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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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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