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실입니다만, 야설에 올립니다. 알아서 판단해주시면 됩니다.
저는 35세 남자이며, 엄마는 55세입니다.
저는 업무상으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일본에 온지 6년 정도 됩니다. (현재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번 골든위크(일본의 5월초 긴 연휴)동안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집으로 와서, 휴가 기간 내내 엄마와 매일같이 박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고 있을 때까지도 멈추지 않고 섹스를 반복했습니다.
어제 비행기로 일본으로 돌아와, 어제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박아댔던 엄마의 보지를 추억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갑작스러우니, 일단 주변 소개부터 해야 될 거 같네요.
엄마를 먼저 소개해보겠습니다.
엄마는 55세. 키는 168정도로 아줌마 치고는 큰 편에 몸무게는 70정도? 약간 뚱뚱한 정도로 딱 그나이 정도의 슬슬 할머니가 되가는 몸매와 처녀때는 나름 예뻤다는 소리를 듣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원래부터 밝히는 성격으로, 제가 어렸을 때 친아버지랑 이혼한 후부터는,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10명 이상 남자가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뭐, 꼭 섹스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가계를 꾸려야 하는 게 가장 컸지요. 그렇지만, 엄마가 2003년부터 4년간 같이 살던 남자가 엄마한테 돈을 다 털어가며 가장 잘 해준 남자였는데, 이 남자랑 헤어진 이유가 남자가 늙고 불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에서 봐도 알 수 있듯, 엄마는 꽤 남자를 밝히는 편이었고, 당연히 돈많고 자기를 잘 돌봐주는 남자면서도 그것도 잘 하는 남자를 밝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다른 남자가 엄마 알몸 위에 올라타서 박아 대는 걸 몇번 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의 시커먼 보지도요...
엄마는 심장병이 있고, 그 외에도 안좋은 곳이 많은데다가, 담배도 오래 펴와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항상 뒷바라지해줄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대신 엄마는 가사나 가계관리를 잘 하면서 남자를 내조를 잘 하는 편이었지요.
하지만 지지리도 남자복이 없어, 만나는 남자가 대체로 다 허세만 심한 가난뱅이거나 사기꾼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엄마 인생에 봄이 올려면 멀은 거 같네요.
다음으로는 엄마와 제가 어떤 사이인지도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2남 중 막내로 35살이며 키는 180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엄마는 저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딱히 잘 난 것도 없는 평범한 남자입니다만, 엄마는 언제나 저를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한테 자랑하곤 합니다.
어느 엄마나 그렇듯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합니다만
우리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남들과 좀 다릅니다.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 저를 자식으로 사랑해줄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5살 때 아버지와 이혼한 후, 형과 저는 외할머니한테 맡겨졌고 엄마는 술집에 나가서 겨우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국민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형과 저는 아버지 밑으로 가게 되었고, 고등학교 이후는 저는 취업을 나가서 독립하였기 때문에, 엄마랑 같이 살았던 날이 극히 적다고 볼 수 있죠.
엄마는 이렇게 어렸을 적 형과 나를 엄마로서 잘 보살피지 못한 것을 평생 미안해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나보다 형을 더 이뻐했습니다. 형은 얼굴도 귀엽게 잘 생기고 똑똑했고, 저는 못생기고 비쩍 말라서는 여드름 투성이에 성격도 내성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뭐, 나름 남자답게 생겼습니다만.
엄마는 나보다 형을 더 이뻐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형은 어른이 된 후에 엄마랑 돈 문제 때문에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고요.
저는 가능하면 엄마 편에 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마저도 엄마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이 부분도 엄마가 지금의 저한테 미안해 하는 부분이지요.
이뻐라 하던 자식놈은 엄마한테 등돌리고, 덜 이뻐라하던 자식놈이 효자노릇을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엄마로부터 그다지 받은 건 없지만, 자력으로 대학가고 공부해서 해외취업으로 일본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 엄마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가족들, 삼촌이나 형들 포함해서, 그나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저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다들 가난에서 못벗어나는 인생들입니다. 대학을 나온 것도, 외국에 나와 본 것도 저 하나 뿐이네요)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엄마는 늙으막에나마 자식사랑이 커져서, 어렸을 때 못해준 것이 미안해서 지금이라도 저한테 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십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저와 엄마가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3년 정도 전부터입니다.
저는 일본에 가 있는 동안, 가끔 휴가를 내서 한국에 오면, 주로 엄마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한테는 잘 찾아가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다지 밖으로 다니거나 술을 먹지 않는 편이라 휴가를 와서 엄마 집에 있으면 거의 집에만 있는 편입니다.
엄마하고 있으면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리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합니다.
엄마는 내가 다리 주물러 주는걸 매우 좋아해서, 같이 티비를 보거나 하면 제 손은 항상 엄마 다리에 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스킨십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저는 근친에 대해서 별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엄마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엉덩이도 주무르게 되었는데 엄마도 별로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집에 있으면 옷도 되게 가볍게 입었고, 여름에 더울때라서 샤워하고 가슴 내놓고 거실에 있기도 예사였습니다.
팬티 하나만 걸치고 쇼파에 누워 있으면 제가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고요.
가끔 제 자지가 커지기도 했는데, 둘 다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 자지가 엄마 다리에 툭툭 닿기도 했는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고요.
암튼 머 꼭 다리 주무르는 것 만이 아니라, 평범하게 모자간의 상태에서 잘 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번 엄마랑 박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건 그렇게 쉽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년에 2~3번 휴가를 내서 한국에 가면, 주로 엄마랑 지냈지만 우리는 별 일없이 평범한 모자지간으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3년전, 엄마한테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 같이 살던 남자가 사고로 죽은 것입니다. 엄마한테는 아주 큰 쇼크였지요.
저는 엄마가 걱정이 되어, 3개월간 휴직을 하고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위에도 말씀드렸듯, 엄마가 심장병이 있는데다가 기가 허해 귀신도 가끔 보는 터라, 그런식으로 믿고 살던 남자가 무참히 가고 나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랑 사는 석달간 엄마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아무 것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몇날며칠 누워있는 경우도 많았고, 술을 취하도록 먹고 와서는 밤새 엉엉 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형은 그 남자 장례식에 와보지도 않고, 상여도 제가 맸지요.
암튼 그래서 엄마한테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그 때 엄마한테 의지할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휴직을 하고 엄마랑 살게된 얼마 후부터, 엄마가 밤에 무서워해서 저는 엄마랑 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떨어져서 자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달래주는 정도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 수록 엄마와 자는 거리가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정도부터는, 엄마한테 팔베게를 해주거나, 껴안고 자게 되었지요.
엄마는 그나마 제가 있어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가 죽은 것이 한여름이었는데, 그 후로 내가 3달 휴직을 하고 엄마를 보살피면서 살게된 것이 여름 내내여서, 우리는 상당히 가벼운 차림으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엄마 뒤에서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 가슴을 만져보고, 젖꼭지를 가지고 놀기도 하였습니다.
"니가 애냐 엄마 젖이나 만지게" 엄마가 이러면서 웃으면
"내가 어려서 엄마 젖을 몇번 만져보지도 못했자나요. 지금이라도 좀 만져봅시다. 늙어서 쭈구렁 되기전에" 이러면서 만졌죠.
우리는 그다지 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기 전에 스킨십을 많이 했고, 엄마가 혈행이 안좋아서 자주 주물러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꼴린 자지가 엄마 몸에 자주 닿게 되었지만, 슬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랑 첫 관계한 날이 떠오르네요.
한국에 간지 한달 반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제 방에서 잘 때는, 자위를 자주해서 엄마가 고린내 난다고 환기 좀 시키라는 소리를 자주했기 때문에, 엄마랑 자면서는 자위를 오래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너무 자지가 꼴렸습니다. 저녁에 밥먹고 내 방에 와서 인터넷을 하다가 급 야동이 땡겨서 야동을 좀 찾아보고, 근친 야설을 읽고 나서는, 자지가 계속 탱탱한 것이 죽지를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엄마는 먼저 자러 방에 들어갔고, 나는 자위를 할까 하다가, 오늘 한번 엄마한테 시도를 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엄마도 지금쯤이면 정신적인 충격도 좀 가라앉아서, 남자 몸이 그리울 것 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효도하는 셈 치고 엄마 보지에 박아보자, 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사실, 별로 깊게 생각을 안했습니다. 남들같으면 잘못하면 감옥간다는 걱정을 하거나 평생 엄마얼굴을 못볼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법도 했지만, 저는 별로 그런 걱정은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박고 싶어하면 엄마가 박게 해줄거라는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고,
그냥 그 때 가끔 만나던 26짜리 섹파 계집애 보지에 박는 정도로 생각을 했지요.
엄마는 방에서 자고 있었고, 저는 엄마의 뒤쪽으로 팬티 하나만 입고 들어갔습니다.
그 때 엄마는 항상 팬티 하나만 입고 잠을 잤습니다. 9월정도로 아직 더운 시기였고, 제가 자주 가슴을 만지곤 했으니까요.
엄마 자요? 물어보면서 나는 엄마를 뒤에서 살짝 안았습니다.
엄마는 별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는 대놓고 엄마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통통한 몸매에 가슴도 아줌마 스럽게 생긴 어디가나 있는 아줌마입니다. 엄마의 등짝에 뽀뽀를 하고, 엄마의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삼겹살이 묵직하게 잡힙니다.
그렇게 한참 엄마의 몸을 쓰다듬고 있자니 엄마가 깨었나 봅니다.
"잠 안자냐?" 엄마가 졸린 목소리로 묻자 "어 쫌만 있다가요"라고 대답하면서 여전히 엄마의 등이나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나는 조금 긴장한 상태에서, 나한테 등지고 누워있는 엄마의 오른손을 잡아다가 내 배 근처에 놓았습니다.
"니도 살 빼야 쓰겄다"
엄마는 손을 뒤로 내민 형태로 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와서 한달 넘게 엄마밥을 먹었더니 살이 꽤 쪘었습니다.
엄마는 손을 뒤로 내밀어 내 배를 쓰다듬다가, 내가 엄마 어깨를 끌어다니자 내 쪽으로 누었습니다. 내가 엄마보다 머리하나가 더 커서, 엄마는 내 얼굴을 보지는 않고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채로, 내 배를 계속 쓰다듬었습니다.
나는 엄마 손목을 잡고, 살짝 내 꼴린 자지의 팬티 위로 얹었습니다.
엄마는 내 자지를 쥐고는
"우리 아들 장가보내야 쓰겄네"라며 웃었습니다.
엄마는 내 얼굴은 보지 않은 채 이불 안에서 내 자지를 잠시 쥐고 있다가, 끙~ 소리를 내면서 돌아 누웠습니다. 부끄러웠나 봅니다.
나는 엄마를 올라타고 넘어가서서는 엄마가 누운 방향으로 엄마를 마주보고 누웠습니다. 엄마는 얼굴을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엄마 맞은 편에서 팬티를 벗고 알몸이 되었습니다. 엄마 앞에 바짝 선 자지를 들이보였습니다.
왠지는 몰라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다지 긴장되지도 않았고요. 섹파 애랑 당연히 할 것을 하는 그런 기분이었달까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다른 야설에서 보는 미칠듯한 긴장.. 그런 건 별로 못느꼈고, 대신에 내가 엄마한테 효도한번 해야지. 엄마만 좋다고 하면 한번 푹푹 박아보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엄마 앞에서 생자지를 내놓고, 이불을 들춰서 엄마 얼굴을 살폈습니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모르지요. 이불 들추기 전에 내 자지를 봤는지도.
"엄마 늙기 전에... 응?" 나는 조용히 물어보며 엄마 손을 내 자지에 잡아 끌었습니다.
엄마는 내 자지를 쥐고는 별 움직임이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엄마의 젖통을 만지다가, 엄마의 배나 등짝을 쓸어주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지를 엄마 배쪽으로 붙여서 엄마 배에 자지를 밀착시키고 허리를 움직였습니다. 자지끝 맑은 물을 엄마 배에 발랐습니다. 엄마는 손을 어디다 둬야될지 모르는 모습으로 내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길 기대하긴 커녕, 거부라도 안하는게 어디냐 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엄마 배에 좃물을 바르다가, 엄마가 부끄러움을 못견디고 돌아서 누웠습니다.
나는 엄마의 등을 끌어 안고, 엄마의 팬티 엉덩이 쪽에 내 자지를 부볐습니다.
엄마는 손을 뒤로 뻗어, 내 엉덩이를 쓸어 주었습니다.
박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저는 맘이 급해졌습니다.
잠시동안 그렇게 자지를 부비고 나서, 약간 몸을 떼고 엄마의 팬티를 끌어내렸습니다. 엄마는 내 손이 엉덩이로 가서 팬티를 내리기 시작하자 "헉" 하고 숨을 급히 들이 쉬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벗기는 걸 제지하지는 않았습니다.
팬티를 벗겨 내리자 엄마의 보지에서 후끈한 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 나 장가보내줄꺼지?" 내가 엄마의 뒤쪽에서 귀에 대고 속삭이니
엄마는 부끄러운지 말이 없었지만, 모처럼 적극적으로 손을 뒤로 뻗어 내 자지를 쥐고는 한두번 쓸어주었습니다.
엄마의 알몸을 뒤에서 꼭 끌어안고 힘을 주어 껴안아 주었습니다.
엄마의 숨소리는 거칠었습니다.
나는 자지를 엄마 보지에 맞췄습니다. 엄마가 허리를 둥글게 하고 몸을 말고 있어서 그런지 잘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한쪽 손으로 엄마의 허벅지를 안아 올려 다리를 벌리게 하고, 한쪽 손으로 엄마의 허리를 밀었습니다.
엄마는 내 뜻을 이해했는지, 엉덩이만 샐쭉 내민 형태로 자세를 잡았습니다.
자지가 훨씬 박기 쉬운 형태로 엄마가 자세를 잡아주자, 나는 별 거부감 없이 자지끝을 엄마의 보지에 입맞출 수 있었습니다.
몇 년동안 해봐야지해봐야지 하던 것을 드디어 할 수 있었습니다.
내 자지는 부드럽게 엄마 보지에 파묻혔습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뜨겁고 축축하고 후끈한 보지... 게다가 엄마의 보지입니다.
어린애들처럼 꽉꽉 조이는 맛은 없지만, 남부럽지 않습니다.
엄마의 보지니까요.
엄마의 보지에 미끄덩하니 자지가 파묻히자,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을 질렀습니다.
내가 엄마의 허리로 손을 옮기자 엄마는 한 손으로 다리를 들어 지탱하여 내가 잘 박을 수 있도록 벌려주었습니다.
이런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꼴리는지요.
엄마의 보지국물로 미끈미끈해진 자지가 냄새를 풍기며 엄마 보지를 들락거렸습니다.
두 손으로 엄마의 허리를 잡아 엄마 보지에 뿌리까지 박아 넣고는 깊숙히 박았다가 끝까지 뺐다가 다시 깊숙히 박기를 몇번 반복하자, 금방 쌀 거 같은 신호가 왔습니다.
엄마는 상반신에 이불을 둘러써서, 하반신의 보지만 내 쪽으로 내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꼴렸습니다. 시커먼 엄마의 보지에 내 자지가 들락거리고 있다니..
나는 뒤에서 같이 누워 옆치기를 하던 자세에서 자세를 바꿔, 엄마의 엉덩이를 끌어안은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뒷치기 자세가 되자 엄마는 이불을 둘러쓰고 허리를 낮추고 엉덩이를 쭉 내밀어 내가 쉽게 박을 수 있는 자세를 해주었습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박았습니다. 천천히 깊숙히 박고 천천히 빼고...
입구에 살살살살 박다가 다시 꾹~~ 눌러 박고..
엄마의 보지콩알을 만져주기도 하고 손을 뻗어 젖통을 주무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신음을 참는데 필사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상태에서 허리를 미친놈 처럼 털어대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의 보지 속에 싸버렸습니다. 엄마한테 폐경이 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임신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번 쭉쭉 싸고 나서, 자지가 작아지자 엄마의 보지에서 자지를 뽑았습니다.
정액이 약간 흘러나오자, 엄마의 보지두덩에 정액을 문질렀습니다.
나는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다시 엄마 몸을 꽉 껴안아 주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씨근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엄마도 몸을 돌려서 나를 마주보고 껴안아 주었습니다.
잠시 그렇게 둘이 씨근거리고 있다가, 엄마는 티슈로 보지와 내 자지를 닦아주고는 뒷물을 하러 갔습니다.
나는 금방 시원하게 싸서 그런지 금새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엄마가 샤워하고 들어오자, 알몸의 엄마를 껴안고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날 새벽, 한 번 더 엄마 보지에 박았습니다.
이번에는 정상위였습니다.
내 팔 위에 엄마 허벅지를 걸터 올려 보지를 쫙 벌리게 하고, 퍽퍽 쑤셔 박았습니다.
엄마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엄마 참지 말고 소리 내봐" 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끙끙대며 신음을 참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두다리를 내 어깨에 걸치고 열심히 박아대자니 또다시 금방 올라와버렸습니다.
좀 더 오래 박고 싶어서 싸는 걸 참으려 했지만, 엄마가 내가 박는 거에 맞춰 같이 보지를 쳐 올리고,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끌어 안아 더 깊이 박히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찡하니 흥분이 되서 나도 모르게 깊숙히 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좃물만 티슈로 닦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무래도 조금은 민망한 맘이 들어, 일찌감치 피시방으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점심 쯤 되자 엄마한테서 밥먹으라는 연락이 와서, 집에 들어가 밥을 먹었고, 대낮에 날도 후끈하니 더운데 엄마랑 안방에서 엄마의 보지에 세번째 정액을 쌀 수 있었습니다.
엄마와의 이 것이 엄마와의 첫날이었습니다.
저는 35세 남자이며, 엄마는 55세입니다.
저는 업무상으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일본에 온지 6년 정도 됩니다. (현재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번 골든위크(일본의 5월초 긴 연휴)동안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집으로 와서, 휴가 기간 내내 엄마와 매일같이 박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고 있을 때까지도 멈추지 않고 섹스를 반복했습니다.
어제 비행기로 일본으로 돌아와, 어제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박아댔던 엄마의 보지를 추억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갑작스러우니, 일단 주변 소개부터 해야 될 거 같네요.
엄마를 먼저 소개해보겠습니다.
엄마는 55세. 키는 168정도로 아줌마 치고는 큰 편에 몸무게는 70정도? 약간 뚱뚱한 정도로 딱 그나이 정도의 슬슬 할머니가 되가는 몸매와 처녀때는 나름 예뻤다는 소리를 듣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원래부터 밝히는 성격으로, 제가 어렸을 때 친아버지랑 이혼한 후부터는,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10명 이상 남자가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뭐, 꼭 섹스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가계를 꾸려야 하는 게 가장 컸지요. 그렇지만, 엄마가 2003년부터 4년간 같이 살던 남자가 엄마한테 돈을 다 털어가며 가장 잘 해준 남자였는데, 이 남자랑 헤어진 이유가 남자가 늙고 불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에서 봐도 알 수 있듯, 엄마는 꽤 남자를 밝히는 편이었고, 당연히 돈많고 자기를 잘 돌봐주는 남자면서도 그것도 잘 하는 남자를 밝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다른 남자가 엄마 알몸 위에 올라타서 박아 대는 걸 몇번 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의 시커먼 보지도요...
엄마는 심장병이 있고, 그 외에도 안좋은 곳이 많은데다가, 담배도 오래 펴와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항상 뒷바라지해줄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대신 엄마는 가사나 가계관리를 잘 하면서 남자를 내조를 잘 하는 편이었지요.
하지만 지지리도 남자복이 없어, 만나는 남자가 대체로 다 허세만 심한 가난뱅이거나 사기꾼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엄마 인생에 봄이 올려면 멀은 거 같네요.
다음으로는 엄마와 제가 어떤 사이인지도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2남 중 막내로 35살이며 키는 180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엄마는 저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딱히 잘 난 것도 없는 평범한 남자입니다만, 엄마는 언제나 저를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한테 자랑하곤 합니다.
어느 엄마나 그렇듯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합니다만
우리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남들과 좀 다릅니다.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 저를 자식으로 사랑해줄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5살 때 아버지와 이혼한 후, 형과 저는 외할머니한테 맡겨졌고 엄마는 술집에 나가서 겨우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국민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형과 저는 아버지 밑으로 가게 되었고, 고등학교 이후는 저는 취업을 나가서 독립하였기 때문에, 엄마랑 같이 살았던 날이 극히 적다고 볼 수 있죠.
엄마는 이렇게 어렸을 적 형과 나를 엄마로서 잘 보살피지 못한 것을 평생 미안해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나보다 형을 더 이뻐했습니다. 형은 얼굴도 귀엽게 잘 생기고 똑똑했고, 저는 못생기고 비쩍 말라서는 여드름 투성이에 성격도 내성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뭐, 나름 남자답게 생겼습니다만.
엄마는 나보다 형을 더 이뻐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형은 어른이 된 후에 엄마랑 돈 문제 때문에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고요.
저는 가능하면 엄마 편에 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마저도 엄마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이 부분도 엄마가 지금의 저한테 미안해 하는 부분이지요.
이뻐라 하던 자식놈은 엄마한테 등돌리고, 덜 이뻐라하던 자식놈이 효자노릇을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엄마로부터 그다지 받은 건 없지만, 자력으로 대학가고 공부해서 해외취업으로 일본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 엄마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가족들, 삼촌이나 형들 포함해서, 그나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저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다들 가난에서 못벗어나는 인생들입니다. 대학을 나온 것도, 외국에 나와 본 것도 저 하나 뿐이네요)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엄마는 늙으막에나마 자식사랑이 커져서, 어렸을 때 못해준 것이 미안해서 지금이라도 저한테 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십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저와 엄마가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3년 정도 전부터입니다.
저는 일본에 가 있는 동안, 가끔 휴가를 내서 한국에 오면, 주로 엄마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한테는 잘 찾아가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다지 밖으로 다니거나 술을 먹지 않는 편이라 휴가를 와서 엄마 집에 있으면 거의 집에만 있는 편입니다.
엄마하고 있으면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리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합니다.
엄마는 내가 다리 주물러 주는걸 매우 좋아해서, 같이 티비를 보거나 하면 제 손은 항상 엄마 다리에 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스킨십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저는 근친에 대해서 별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엄마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엉덩이도 주무르게 되었는데 엄마도 별로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집에 있으면 옷도 되게 가볍게 입었고, 여름에 더울때라서 샤워하고 가슴 내놓고 거실에 있기도 예사였습니다.
팬티 하나만 걸치고 쇼파에 누워 있으면 제가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고요.
가끔 제 자지가 커지기도 했는데, 둘 다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 자지가 엄마 다리에 툭툭 닿기도 했는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고요.
암튼 머 꼭 다리 주무르는 것 만이 아니라, 평범하게 모자간의 상태에서 잘 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번 엄마랑 박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건 그렇게 쉽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년에 2~3번 휴가를 내서 한국에 가면, 주로 엄마랑 지냈지만 우리는 별 일없이 평범한 모자지간으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3년전, 엄마한테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 같이 살던 남자가 사고로 죽은 것입니다. 엄마한테는 아주 큰 쇼크였지요.
저는 엄마가 걱정이 되어, 3개월간 휴직을 하고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위에도 말씀드렸듯, 엄마가 심장병이 있는데다가 기가 허해 귀신도 가끔 보는 터라, 그런식으로 믿고 살던 남자가 무참히 가고 나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랑 사는 석달간 엄마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아무 것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몇날며칠 누워있는 경우도 많았고, 술을 취하도록 먹고 와서는 밤새 엉엉 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형은 그 남자 장례식에 와보지도 않고, 상여도 제가 맸지요.
암튼 그래서 엄마한테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그 때 엄마한테 의지할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휴직을 하고 엄마랑 살게된 얼마 후부터, 엄마가 밤에 무서워해서 저는 엄마랑 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떨어져서 자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달래주는 정도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 수록 엄마와 자는 거리가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정도부터는, 엄마한테 팔베게를 해주거나, 껴안고 자게 되었지요.
엄마는 그나마 제가 있어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가 죽은 것이 한여름이었는데, 그 후로 내가 3달 휴직을 하고 엄마를 보살피면서 살게된 것이 여름 내내여서, 우리는 상당히 가벼운 차림으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엄마 뒤에서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 가슴을 만져보고, 젖꼭지를 가지고 놀기도 하였습니다.
"니가 애냐 엄마 젖이나 만지게" 엄마가 이러면서 웃으면
"내가 어려서 엄마 젖을 몇번 만져보지도 못했자나요. 지금이라도 좀 만져봅시다. 늙어서 쭈구렁 되기전에" 이러면서 만졌죠.
우리는 그다지 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기 전에 스킨십을 많이 했고, 엄마가 혈행이 안좋아서 자주 주물러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꼴린 자지가 엄마 몸에 자주 닿게 되었지만, 슬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랑 첫 관계한 날이 떠오르네요.
한국에 간지 한달 반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제 방에서 잘 때는, 자위를 자주해서 엄마가 고린내 난다고 환기 좀 시키라는 소리를 자주했기 때문에, 엄마랑 자면서는 자위를 오래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너무 자지가 꼴렸습니다. 저녁에 밥먹고 내 방에 와서 인터넷을 하다가 급 야동이 땡겨서 야동을 좀 찾아보고, 근친 야설을 읽고 나서는, 자지가 계속 탱탱한 것이 죽지를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엄마는 먼저 자러 방에 들어갔고, 나는 자위를 할까 하다가, 오늘 한번 엄마한테 시도를 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엄마도 지금쯤이면 정신적인 충격도 좀 가라앉아서, 남자 몸이 그리울 것 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효도하는 셈 치고 엄마 보지에 박아보자, 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사실, 별로 깊게 생각을 안했습니다. 남들같으면 잘못하면 감옥간다는 걱정을 하거나 평생 엄마얼굴을 못볼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법도 했지만, 저는 별로 그런 걱정은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박고 싶어하면 엄마가 박게 해줄거라는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고,
그냥 그 때 가끔 만나던 26짜리 섹파 계집애 보지에 박는 정도로 생각을 했지요.
엄마는 방에서 자고 있었고, 저는 엄마의 뒤쪽으로 팬티 하나만 입고 들어갔습니다.
그 때 엄마는 항상 팬티 하나만 입고 잠을 잤습니다. 9월정도로 아직 더운 시기였고, 제가 자주 가슴을 만지곤 했으니까요.
엄마 자요? 물어보면서 나는 엄마를 뒤에서 살짝 안았습니다.
엄마는 별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는 대놓고 엄마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통통한 몸매에 가슴도 아줌마 스럽게 생긴 어디가나 있는 아줌마입니다. 엄마의 등짝에 뽀뽀를 하고, 엄마의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삼겹살이 묵직하게 잡힙니다.
그렇게 한참 엄마의 몸을 쓰다듬고 있자니 엄마가 깨었나 봅니다.
"잠 안자냐?" 엄마가 졸린 목소리로 묻자 "어 쫌만 있다가요"라고 대답하면서 여전히 엄마의 등이나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나는 조금 긴장한 상태에서, 나한테 등지고 누워있는 엄마의 오른손을 잡아다가 내 배 근처에 놓았습니다.
"니도 살 빼야 쓰겄다"
엄마는 손을 뒤로 내민 형태로 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와서 한달 넘게 엄마밥을 먹었더니 살이 꽤 쪘었습니다.
엄마는 손을 뒤로 내밀어 내 배를 쓰다듬다가, 내가 엄마 어깨를 끌어다니자 내 쪽으로 누었습니다. 내가 엄마보다 머리하나가 더 커서, 엄마는 내 얼굴을 보지는 않고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채로, 내 배를 계속 쓰다듬었습니다.
나는 엄마 손목을 잡고, 살짝 내 꼴린 자지의 팬티 위로 얹었습니다.
엄마는 내 자지를 쥐고는
"우리 아들 장가보내야 쓰겄네"라며 웃었습니다.
엄마는 내 얼굴은 보지 않은 채 이불 안에서 내 자지를 잠시 쥐고 있다가, 끙~ 소리를 내면서 돌아 누웠습니다. 부끄러웠나 봅니다.
나는 엄마를 올라타고 넘어가서서는 엄마가 누운 방향으로 엄마를 마주보고 누웠습니다. 엄마는 얼굴을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엄마 맞은 편에서 팬티를 벗고 알몸이 되었습니다. 엄마 앞에 바짝 선 자지를 들이보였습니다.
왠지는 몰라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다지 긴장되지도 않았고요. 섹파 애랑 당연히 할 것을 하는 그런 기분이었달까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다른 야설에서 보는 미칠듯한 긴장.. 그런 건 별로 못느꼈고, 대신에 내가 엄마한테 효도한번 해야지. 엄마만 좋다고 하면 한번 푹푹 박아보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엄마 앞에서 생자지를 내놓고, 이불을 들춰서 엄마 얼굴을 살폈습니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모르지요. 이불 들추기 전에 내 자지를 봤는지도.
"엄마 늙기 전에... 응?" 나는 조용히 물어보며 엄마 손을 내 자지에 잡아 끌었습니다.
엄마는 내 자지를 쥐고는 별 움직임이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엄마의 젖통을 만지다가, 엄마의 배나 등짝을 쓸어주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지를 엄마 배쪽으로 붙여서 엄마 배에 자지를 밀착시키고 허리를 움직였습니다. 자지끝 맑은 물을 엄마 배에 발랐습니다. 엄마는 손을 어디다 둬야될지 모르는 모습으로 내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길 기대하긴 커녕, 거부라도 안하는게 어디냐 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엄마 배에 좃물을 바르다가, 엄마가 부끄러움을 못견디고 돌아서 누웠습니다.
나는 엄마의 등을 끌어 안고, 엄마의 팬티 엉덩이 쪽에 내 자지를 부볐습니다.
엄마는 손을 뒤로 뻗어, 내 엉덩이를 쓸어 주었습니다.
박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저는 맘이 급해졌습니다.
잠시동안 그렇게 자지를 부비고 나서, 약간 몸을 떼고 엄마의 팬티를 끌어내렸습니다. 엄마는 내 손이 엉덩이로 가서 팬티를 내리기 시작하자 "헉" 하고 숨을 급히 들이 쉬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벗기는 걸 제지하지는 않았습니다.
팬티를 벗겨 내리자 엄마의 보지에서 후끈한 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 나 장가보내줄꺼지?" 내가 엄마의 뒤쪽에서 귀에 대고 속삭이니
엄마는 부끄러운지 말이 없었지만, 모처럼 적극적으로 손을 뒤로 뻗어 내 자지를 쥐고는 한두번 쓸어주었습니다.
엄마의 알몸을 뒤에서 꼭 끌어안고 힘을 주어 껴안아 주었습니다.
엄마의 숨소리는 거칠었습니다.
나는 자지를 엄마 보지에 맞췄습니다. 엄마가 허리를 둥글게 하고 몸을 말고 있어서 그런지 잘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한쪽 손으로 엄마의 허벅지를 안아 올려 다리를 벌리게 하고, 한쪽 손으로 엄마의 허리를 밀었습니다.
엄마는 내 뜻을 이해했는지, 엉덩이만 샐쭉 내민 형태로 자세를 잡았습니다.
자지가 훨씬 박기 쉬운 형태로 엄마가 자세를 잡아주자, 나는 별 거부감 없이 자지끝을 엄마의 보지에 입맞출 수 있었습니다.
몇 년동안 해봐야지해봐야지 하던 것을 드디어 할 수 있었습니다.
내 자지는 부드럽게 엄마 보지에 파묻혔습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뜨겁고 축축하고 후끈한 보지... 게다가 엄마의 보지입니다.
어린애들처럼 꽉꽉 조이는 맛은 없지만, 남부럽지 않습니다.
엄마의 보지니까요.
엄마의 보지에 미끄덩하니 자지가 파묻히자,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을 질렀습니다.
내가 엄마의 허리로 손을 옮기자 엄마는 한 손으로 다리를 들어 지탱하여 내가 잘 박을 수 있도록 벌려주었습니다.
이런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꼴리는지요.
엄마의 보지국물로 미끈미끈해진 자지가 냄새를 풍기며 엄마 보지를 들락거렸습니다.
두 손으로 엄마의 허리를 잡아 엄마 보지에 뿌리까지 박아 넣고는 깊숙히 박았다가 끝까지 뺐다가 다시 깊숙히 박기를 몇번 반복하자, 금방 쌀 거 같은 신호가 왔습니다.
엄마는 상반신에 이불을 둘러써서, 하반신의 보지만 내 쪽으로 내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꼴렸습니다. 시커먼 엄마의 보지에 내 자지가 들락거리고 있다니..
나는 뒤에서 같이 누워 옆치기를 하던 자세에서 자세를 바꿔, 엄마의 엉덩이를 끌어안은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뒷치기 자세가 되자 엄마는 이불을 둘러쓰고 허리를 낮추고 엉덩이를 쭉 내밀어 내가 쉽게 박을 수 있는 자세를 해주었습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박았습니다. 천천히 깊숙히 박고 천천히 빼고...
입구에 살살살살 박다가 다시 꾹~~ 눌러 박고..
엄마의 보지콩알을 만져주기도 하고 손을 뻗어 젖통을 주무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신음을 참는데 필사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상태에서 허리를 미친놈 처럼 털어대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의 보지 속에 싸버렸습니다. 엄마한테 폐경이 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임신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번 쭉쭉 싸고 나서, 자지가 작아지자 엄마의 보지에서 자지를 뽑았습니다.
정액이 약간 흘러나오자, 엄마의 보지두덩에 정액을 문질렀습니다.
나는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다시 엄마 몸을 꽉 껴안아 주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씨근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엄마도 몸을 돌려서 나를 마주보고 껴안아 주었습니다.
잠시 그렇게 둘이 씨근거리고 있다가, 엄마는 티슈로 보지와 내 자지를 닦아주고는 뒷물을 하러 갔습니다.
나는 금방 시원하게 싸서 그런지 금새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엄마가 샤워하고 들어오자, 알몸의 엄마를 껴안고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날 새벽, 한 번 더 엄마 보지에 박았습니다.
이번에는 정상위였습니다.
내 팔 위에 엄마 허벅지를 걸터 올려 보지를 쫙 벌리게 하고, 퍽퍽 쑤셔 박았습니다.
엄마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엄마 참지 말고 소리 내봐" 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끙끙대며 신음을 참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두다리를 내 어깨에 걸치고 열심히 박아대자니 또다시 금방 올라와버렸습니다.
좀 더 오래 박고 싶어서 싸는 걸 참으려 했지만, 엄마가 내가 박는 거에 맞춰 같이 보지를 쳐 올리고,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끌어 안아 더 깊이 박히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찡하니 흥분이 되서 나도 모르게 깊숙히 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좃물만 티슈로 닦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무래도 조금은 민망한 맘이 들어, 일찌감치 피시방으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점심 쯤 되자 엄마한테서 밥먹으라는 연락이 와서, 집에 들어가 밥을 먹었고, 대낮에 날도 후끈하니 더운데 엄마랑 안방에서 엄마의 보지에 세번째 정액을 쌀 수 있었습니다.
엄마와의 이 것이 엄마와의 첫날이었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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