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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31 927회 0건
44. 독일.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 날. 3시. 나와 아버지는 그리고 2시쯤 온 소라는 차차를 앞마당에 한쪽에 묻었다. 아버지가 자리를 잡아 땅을 파고 내가 어제 그 셔츠 위에 깨끗한 면으로 된 천을 더 싸서 땅속에 묻고 소라가 인근 화원에서 사온 여러 가지 색 작은 돌멩이로 ‘친구 차차’ 란 글자를 만들고 그 주위에 하트를 두르고 나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오빠. 날씨가 따듯해지면 이 주위에 꽃씨를 심어줘.”
난 ‘무슨 소용일까. 죽었는데’ 라고 생각 했지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나름 자기 위안이란 생각을 했고 나 자신도 이 무덤을 만들면서 위안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 소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자 이제는 나보다 키가 0.5cm 더 큰 소라는 내 대답에 귀엽게 방긋 웃고는 일어서며 말했다.
“차차야 편이 쉬어. 언니 자주 놀러 올게.”
“편이 쉬어.”
나는 반사적으로 소라의 말을 따라 했고 아버지는 나와 무덤을 번가라 보고는 한숨을 쉬며 뒤 돌아서서 집안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난 그가 선물로 들어온 양주를 진열대에서 꺼내 들고 소파 앞에 있는 탁자에 올리는 것을 보았다.
“앉아 봐라.”
“예.”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앉았지만 그는 주방으로 향해서 얼음과 잔을 들고 와서 내 근처에 앉았다.
“마시겠냐.”
나는 독한 술은커녕 맥주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라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영 못 마셔서.”
아버지는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살짝 미소 짓고는 얼음을 집게로 집어서 잔에 담고 술을 따라서 입가에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네 엄마도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다.”
내 친부와 나의 유사점과는 다르게 엄마와 내가 닮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은 상쾌하게 느껴진다.
“그래요.”
아버지는 내 대답을 듣고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 마시고 얼음만 남은 잔을 탁자에 올려 두었다.
“넌 모르겠지만 닮은 부분은 더 있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강한 호기심과 약간의 기분 좋은 흥분을 느꼈다.
“어떤 거죠?”
“가는 팔목에 비해서 큰 손. 길고 가는 손가락. 음식을 안 가리지만 소식하는 부분. 독서 취미. 재미없는 책이라도 정독을 해서 책 읽은 대 오래 걸리는 부분.”
아버지는 말을 중단하고 나도 모르게 손톱을 앞니에 살짝 부딪치게 하는 버릇을 손을 들어 중단 시킨다.
“가끔 기분 좋아지면 나오는 이 버릇도 똑 같지.”
나는 이 버릇이 부끄러워 손을 탁자위에 올렸고 아버지는 다시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또 하나 있구나. 술을 안 따라 주는 거.”
순간 난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히히.”
내 웃음소리에 아버지는 버릇없는 놈. 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네 엄마는 내가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한번도 술 따라 준적이 없다. 그런 부분에선 진짜 고집이 있었지.”
나는 아버지가 술도 가끔 마시고 들어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남자라면 대다수가 하는 또 하나의 기호식품을 떠올렸다.
“담배는요.”
“담배는 네 엄마랑 사귀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해서 애초에 끊어 버렸다.”
아버지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일단 그가 나를 마냥 무시했었다고만 생각했지만 그는 나에 대해서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나의 관심을 두고 관찰했음을 의미한다. 만일 그저 냉대와 원망으로만 나를 대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담배 이야기가 끝난 후. 아직 차차 무덤을 손보고 있는 소라를 보고 있다가 나를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고 말한 건지 아냐.”
“아뇨.”
“네가 수진이가 죽었던 곳에 그것도 같은 나무토막 위에 목을 매려 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숨을 죽였다. 어머니가 그 방에서 자살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말을 듣기 까지는 잊고 있었으며 그 나무기둥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나무기둥인지 알지 못했다.
“죄. 죄송해요.”
나의 죄에 억눌린 대답.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한숨.
“흐~~~ 다시는 그러지 마라.
“예”
난 또 다시 죄에 억눌린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봐 주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 그대로 무감정한 표정이었지만 잔주름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슬픈 표정이 되더니 입을 열었다.
“너에게 채워 진. 살아가야만 하는 족쇄가 가볍다면 내가 좀더 무거운 걸 채워주지.”
아버지가 하지 않을 것 같은 너무 의유적인 말에 나는 의문을 느끼곤 눈을 빠르게 껌벅 거렸다.
“무슨 말인지?”
내 말에 순간 아버지는 갑자기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며 슬픈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어 말해왔다.
“네 누나에게 아이가 있다.”
“예!!??!!??”
나는 순간 놀라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이 여파로 탁자가 움직이는 바람에 양주병이 넘어져 버렸고 내가 ‘중절 수술했다는 것은 거짓말?’ 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아버지는 술을 다시 원위치 시키고 휴지로 흘러나온 술을 닦으며 약간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 아이를 네가 책임지고 키워라. 그 아이가 너의 새로운 ‘삶의 족쇄’가 되어 줄 거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서 곧바로 눈물을 흘려버렸다. 누나가 사무치도록 그립고 누나가 그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을 죄책감과 배덕감이 너무 미안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을 강요해 온다.
“그만 울고 대답해라. 책임 질 건지 말건지. 네가 책임 못 지겠다면 내가 직접 양육 하겠다.”
그 아이는 나와 누나의 아이. 즉 아버지에겐 죄스러운 일로 인해 태어난 아이다. 아버지에게 내가 책임져야 할 굴레를 쉬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었다. 그러니까 내가 절대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키울게요.”
아버지는 일어서 있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술을 따라 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알았다. 그럼. 네 누나가 살았던 곳에 다녀와라. 외할머니의 자매분이 그 아이를 데리고 있다고 하더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출발 준비를 하려고 내 방으로 올라가려 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향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꼬집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독일은 비자 없어도 여행 가능하지만. 너 여권은 있냐.”
여권은 하늘이와 신청을 해놓고 받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신청을 했었는데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럼 일단 구청에 다녀와 비행기 표는 내가 알아 볼 거니까. 그리고 또 가이드 필요 없겠어?”
생각해 보니 난 미국에 5년 동안 있었던 주제에 영어도 독일어도 거의 하지 못한다.
“예 아마도.”
“그것도 내가 알아보지.”
“고맙습니다.”
“또 하나 있다. 그 아이는 독일에서 태어난 아이라서 법정이 문제가 생길수도 있어. 내 변호사와 면담을 하고 가.”
“예. 그리고 고맙습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고 아버지는 나를 도와주고 있으면서도 단단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술을 따라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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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 작은 발 그리고 해맑은 아이의 웃음소리. 초원의 풀밭을 맨발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갓 돌이 지난 예쁜 아이가 양손을 벌리고 있는 엄마의 품을 향한다.

잠시 후. 따듯한 그 품에 안겨. 세상만사 따위 이 따듯함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하하하하.”
아이의 엄마는 아이와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이 아이를 꼭 안아주며 말한다.
“미안.”
눈물을 흘린다.
“미안. 아가야. 미안. 하지만 너에게 죽어가는 엄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아기의 뺨에 사랑스럽게 자기 뺨을 비비는 그녀.
“나처럼 그런 경험을 하게하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
아이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는지 그저 미소를 지었다.
“엄마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근데 아빠는?”
그녀는 아이의 질문에 작게 속삭였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
그러자 아이가 희미하게 답한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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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눈을 떴고 꿈속에 나온 누나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려 애썼다. 하지만 역시 꿈. 잠을 깬 순간 거의 다 잊어버리는 현상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손님. 프랑크프루트에 막 도착 했습니다.”
또렷하고 사냥한 목소리에 난 고개를 돌렸고 예쁜 여성승무원을 목격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 곳에 있는지 순식간에 판단되어져 왔다.
이곳은 비행기 안이었고 난 지금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막 도착했으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엄마 없이 6개월 동안을 혼자 지냈을 불쌍한 꼬마를 찾아서 돌아가는 것에 있었다.
“손님.”
생각을 하느라 멍해져 대답이 없었기 때문인지 승무원이 다시 불러왔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해서 곧장 일어나서 걸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입구 쯤에 와서 난 짐을 놓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뒤 돌아섰다. 하지만 이미 승무원이 내 집을 챙겨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손님 가방요.”
나는 노트북과 책 그리고 아이를 되려가기 위해서 준비해온 서류와 아이에게 줄 생각으로 공항 면세점에서 산 테디베어가 들어있는 가방을 건네받고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승무원은 내 인사에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왔다.
“아닙니다. 당연한걸요.”
“예.” 그렇게 말하고 난 뒤 돌아 섰고 승무원이 작별 인사를 해왔다.
“아무쪼록 이 여행길이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기분 좋은 이벤트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나는 걸어가다 나를 알아보고 나의 불행에 대해서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그녀에게 고개만 약간 돌려 고개를 한번 숙이고 비행기를 밖으로 나갔다.

비행기와 도킹되어 있는 공항 건물로 바로 들어가서 빙글 빙글 도는 짐들 중에서 바퀴달린 옷가방과 기타가방을 찾고 공항 검색 대를 지나서 대합실로 통하는 자동문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나를 안내해줄 가이드를 만나는 거였고 그 일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키가 작고 말랐으며 커다란 안경을 낀 치아가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남자가 ‘성가현씨 여깁니다.’ 라고 한글로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있다가 나를 바로 알아보고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성가현씨. 여깁니다.”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컸었기 때문에 많은 서구인들이 나와 그를 번가라 보고 있었다. 난 ‘이것도 나라 망신의 일종’ 인가 생각 하며 걸어가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성진이라고 합니다.”
일단 개인적인 일이고 다른 나라라서 예명으로 인사를 하지 않았고 그는 이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고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해왔다.
“저도 반가워요. 조혁이라고 해요.”
“예.”
나는 고개를 꾸벅했고 그는 짐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등에 매며 출구 쪽으로 향했고 나는 조용히 그를 따랐다.
그는 돔야구장 같은 높이의 천정을 가진 공항을 말없이 죽 가로질러 가서 다소 추운 날씨를 보여주는 밖으로 나온 후. 인근에 보이는 편의점에 가서 따듯해 보이는 캔 커피를 두개 사와서 나에게 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마셔둬요. 히터 틀어도 덕 보기 힘드니까.”
“예?”
그는 내 의문에 답해주지 않고 뜨거운 커피를 따고 조금 마신 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서 난 그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영하 10도 이하로 느껴지는 이 상황에 오픈카를 몰고 온 것이었다.
“미안해요. 사장님이 갑작스럽게 아드님 가이드 좀 하라고 하셔서 급하게 오느라 이것 타고 와 버렸네요.”
나는 몰고 오면서 추웠겠다. 생각하며 물었다.
“어디에 계시는 데요.”
“베를린에 있어요. 거기서 고객관리 및 서버관리 합니다.”
나는 나 때문에 또 한명이 희생되는 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론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바쁘신데 오시게 해서.”
“아닙니다. 사실은 한국말 잘하는 현지인 부하직원을 보네라고 했는데 성가현씨라고 해서 제가 억지로 왔어요. 사실 펜이거든요.”
나는 영업용 미소를 살짝 보이고는 영업용 멘트를 날렸다.
“부족한 제 음악을 좋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낸 후. 차가운 시선으로 답해주었다.
“뭐 부족한 면도 있기는 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남다르신데요. 헤헤.”
“헤헤 예 노력 하겠습니다.” 그는 또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낸 후. 운전석 쪽 문을 열고 들어간 후. 내 문을 버튼 하나로 열어줬고 내가 올라 탄 후. 그는 노련한 운전솜씨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 접어들었고 30분 쯤 달려서 기차역에 다시 주차를 했고 우리는 하이델베르크로 향하는 기차표를 사서 곡선이 매우 아름다운 신기하게 생긴 기차에 올라탔다.

“빠른 것 같은데 상당히 조용하네요.”
나는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창 밖의 사물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다가 내 노트북으로 아버지 회사 게임을 하고 있던 조혁에게 물었고 그는 아쉬운 표정(게임에서 졌음.)을 지으며 입만 벌려 답해 주었다.
“작년에 나온 신형기차인데. 평이 좋아요.”
그는 그렇게 말한 후. 다시 게임에 빠져들었고 난 그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다시 물어보지 못하고 누나가 보고 느끼고 마음에 들어 하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도 왔어 누나.’ 이렇게 마음속으로 불러보지만 대답해 주지 않는다. ‘좋은 곳이네.’ 할머니의 고향은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다. ‘외롭지 않았어.’ 내 마음이 아파온다. ‘그 아이의 존재가 그저 사랑스러움이었겠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 나는 아버지가 보여 주었던 누나의 편지를 잠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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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혹시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아버지에게 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독일에 제가 낳은 아이가 있어요. 제발 그 아이를 맡아 주세요.

그리고 마음약한 진이도 부탁합니다.

너무. 죄송해요.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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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편지라고 하기엔 너무 간결한 내용이라 거짓말로 써 놓은 것 같다. 하지만 이 편지지엔 이 편지지가 여러 장으로 붙어 있을 때. 이 장 바로 위 페이지에 적은 내용이 음각되어져 보였다.
그 내용은.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죽기 싫어요. 왜 저만 불행을 격어야 하죠.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내가 떠나 버리면 진이가 따라오려 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잘 감시해 주세요. 그 아이는 임신하고 7개월 하고 9일 만에 태어나서 살지 못할 수도 있었어요. 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요. 그저 엄마의 죽음을 목격했던 저의 기억이 싫어서 되려오지 않았지만 그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전 나쁜 엄마겠죠.’ 마지막으로 ‘아이는 진이 아이 입니다. 하지만 진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제가 진이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일이예요. 제발 진이를 용서해 주세요.’ 이었다.
누나는 이런 내용을 적으려 하다가 남은 우리들이 몹시 마음아파 할 것 같아서 뭉개서 버리고는 간결한 그 내용으로 다시 적어 놓은 것이었고 일부는 나와 자신의 일을 아버지에게 고백하려고 했던 내용도 있었다.
아버지는 알지 못한 이런 내용을 내가 알았을 때의 감정이란. 격어 본 나로서도 다시 떠올리기 힘든 것이었다. 누나가 너무나도 가엽고. 그런 누나를 살리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죄스럽고 이 세상 자체가 주물주가 밉고 저주스러웠다.

“흐음~~~ 누~ 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불러보았다. 역시 대답은 없었고 잠시 후. 엉뚱한 사람이 대답해 왔다.
“다 왔습니다.”
“아!!~~ 예~”
나는 멍해져 있어 창 밖을 보고 있음에도 기차가 멈추어 있고 사람이 우르르 내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조혁의 말에 의해 뒤 늦게 알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세요. 이 기차의 정비창이 바로 이 도시에 있어서 급하게 출발 하지는 않아요.”
“예.”
그는 내 노트북을 잘 섰다며 내 가방에 잘 챙겨서 넣어주며 장난스럽게 말해왔다.
“컴퓨터 안에 있는 작곡 프로그램 죽이던데요.”
나는 전문가용 정품이 1200만원이라고 털북숭이 선생이 말하던 것을 기억하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새로 작곡한 곡은 없어요.”
내 말에 그는 당황하는 척 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뇨. 절대 안 뒤져 봤어요.”
“압니다.”
그렇게 말 했지만 이번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금 악성코드를 심었고 나중에 내가 작곡한 곡을 유출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하지만 이네 그 생각이 웃음코드가 되었다.
“하하헤헤”
“왜 웃어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난 짐을 챙겨 들고 열차를 나왔고 그는 아까처럼 작은 가방을 들어 주었다.

“가현씨. 이건 어떠세요.”
택시를 잡아 탄 후. 그가 물어왔다.
“뭐가요.”
“요즘 우리회사의 대형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근데 문제가 발생 했어요.”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지 하고 고민 중이라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예의 상 답해 주었다.
“뭔가요.”
“스페랭 슈펜도이거란 분을 아세요.”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이름 이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아뇨.”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의 음악을 여러 번 담당 하셨던 독일 사람인데 이번에 우리 회사 대형 프로젝트 게임에 음악을 맡아 주셨었어요. 근데 작년 7월에 사망하셨죠. 제가 그분과 조율을 해서 음원을 관리 했는데 이 후에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그분이 만들어 놓은 음악을 헤치지 않으면서 나머지 필요한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을 아직 찾고 있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요.”
난 그에게 예의상 답변을 해줬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알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그 작업을 권해 보는 것이다.
“그거 생각 없으세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나는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리를 보면서 답했다.
“아뇨. 지금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그래요. 제가 보기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드는데.”
“예. 죄송해요. 그런 분이 하시던 걸 한다는 것도 부담이고 현제 저로선 힘드네요.”
“예~~~”
그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제의를 일단 거절을 해 놨지만. 불빛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한 거리를 보다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일단 그 일은 아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이고 난 그에게 갑아 줄 빛도 사죄해야 할 죄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나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해준 그가 고마워서 내가 할 수 있다면 무료로 도와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난 집에 돌아가면 그에게 물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다른 건에 대해 물었다.
“아직 멀었나요.”
그는 또 어느새 게임을 하고 있다가 나를 돌아보며 답해 주었다.
“제가 전에 누님에게 사장님이 보낸 걸 전해주려고 직접 왔었거든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어두운 들판. 쌓인 눈 때문인지 기계적인 소리도 동물의 울음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한적한 농장의 눈이 깨끗하게 치워진 포장도로를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목표로 홀로 걸어가며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대부분이 누나와 관련된 것이고 그 다음으로 그 아이. 그리고 반년 동안 보지 못한 상태인 하늘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외롭지는 않았을까?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음식은? 친구들은? 아이를 낳는 것에 힘들지 않았을까? 그 아이에게 나와 같은 어둠은 없을까? 착할까? 예쁠까? 건강할까? 하늘이는 무사히 있을까? 나를 잊어버린 걸까?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걸까? 어디에 있는 걸까? 나를 아직도 미워하는 걸까?
생각을 아무리 해도 생각만으론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특히 바로 앞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를 찾으러 온 것처럼 하늘이도 내가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운~~무~~~~
소우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더 가까워 졌을 때. 작은 크기의 종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며 집 앞에 왔을 땐. 으르렁대는 개 짓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왈~ 왈~ 왈~ 왈~
차차랑 다르게 목청이 굵은 개 짓는 소리에 살짝 긴장한 난 휴대폰 플레쉬로 주위를 확인하고 3층 상당히 예스러운 3층짜리 목조건물의 울타리에 다가가서 입구를 확인하고 그 쪽으로 이동을 한 다음 전기로 작동하는 초인종을 찾아보았다.
“아! 여기에 있네.”
겨우 찾은 의외로 카메라도 달려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그러자 잠시 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Wer ist da?”
순간 난 내가 이곳이 독일이란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직시하곤 스마트폰으로 미리 찾아 놓은 글을 찾아서 잃었다.
“Mein Name ist 진. Mein Sie ist nun Neme 가희.”
뭔가 말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했고 그 쪽에서 대충 알아듣고는 뭐라고 그런다. 나는 이번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멍해 있었고 그 쪽에선 대답 없는 나 때문에 잠시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이 들려왔다.
이 순간 답답한 상황이라 보니. 나에게 ‘저 불빛이 보이는 집에 가세요.’ 라고만 알려주고 버리고 가버린 조혁이 원망스러웠다. ‘끝까지 책임지란 말이야.’

5분 후. 갑자기 개 짓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나는 다시 주변을 경계했고 잠시 후. 3층 집 현관이 열리면서 개 2마리가 튀어 나와서 내 쪽으로 달려 와서 지저대었다.
나는 커다란 개들의 출현에 놀라서 뒤로 조금 물러났지만 그런 행동을 오래 할 필요는 없었다. 갑자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고 개들은 조용해지더니 다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난 개들의 그런 행동들을 보면서 누나의 말을 떠올렸고 그 노인이 바로 에반젤린 할머니의 형부 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내 앞에 다가 왔을 때. 말을 잘 모르는 난 그저 짧은 인사를 할 뿐이었다.
“Guten Abend”
마르고 큰 키를 가진 노인은 나에게 램프처럼 생긴 휴대용 LED 조명을 비쳐보이고는 뭐라고 그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인사를 했고. 그는 나에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후. 따라오라고 손짓을 주었고 난 잠시 망설이다가 짐을 끌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의 집은 제법 넓었고 상당히 멋진 장식들이 많이 있었다. 동물의 머리만 있는 박제와 미국 남북전쟁에 썼을 것 같은 총. 그리고 날이 가는 검. 이 집안의 역사를 말해주는 흑백 사진부터 시작하는 무수한 사진들. 트로피. 상장. 골프채 내가 아이를 찾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지 않다면 한참동안 보고 있을 것 같은 수많은 구경꺼리들이 이 집안에 즐비했고 노인이 내가 잠시 자신의 자랑인 것 같은 것들을 내가 관심 있게 보는 것이 기분이 좋은지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말로 말을 하다가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난 듯 그만 두고는 낯익은 발음을 했다.
“Ga hun, angela”
분명히 내 예명인 가현 그리고 안젤라 라고 한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둘 다 이름 같았고 그 중에서 가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나가 지었을 아이의 이름으로 생각되어 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순간 우습게도 긴장되었다. 자식을 처음 만나는 아버지란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 느끼고 있는 난. 내가 과연 걷고 있는 것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조차 잊어버릴 만큼 긴장해서 처음 만나면 줘야지 생각한 테디베어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기타를 케이스를 조금 열어서 만지작거리고 노인에게 불린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들린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훌륭한 한국 본토 발음의 한국말.
“안녕하세요. 삼촌.”
그 아이는 임신하고 7개월 만에 태어나서 위험했을 때가 있었던 아이라. 조금 작을 거라고 마냥 생각 했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모 아들 영우보다 크고 말하는 것도 남달라 보였다.
“엄마는요?”
나를 많이 닮은 아니 어머니 진수진을 많이 닮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녀석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금방이라도 펑펑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미안.”
할말이 없었다. 그저 ‘미안’ 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아이는 나에게 찬찬히 다가오며 다시 물어 온다.
“엄마는 가현이를 두고 갔어요?”
이렇게 어린 녀석이 과연 죽음이란 것을 알까? 만일 알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엄마는 떠나셨어. 아주 먼 곳으로.”
아이는 내 말에 훌쩍거리다 살짝 다가와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난 아이의 섬세한 이목구비를 잠시 바라보다가 좀더 가까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겨우 눈물을 참으며 무릎을 꿇었고 녀석은 조금 더 다가와서 내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절 데려가려고 왔어요?”
“응.”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가현이는 갑자기 팔을 벌리며 말해왔다.
“안아주세요.”
순간 난 너무 귀엽고 또 사랑스러운 이 녀석을 본능적으로 끌어당겨 살며시 안아주었다. 아이의 체온은 따듯했고 나의 비어있던 마음에 아이의 온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느새 누나가 생각나고 이 아이와 누나가 겪었을 것들이 떠올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현아. 미안.”
“삼촌 엄마가 있는데 데려다 주세요.”
영우와 비교해 보면 놀랍도록 빠른 언어 능력이었지만 지금 나에겐 그런 생각 따위 들 리가 없었다.
“응.”
현이가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한다.
“Motti~~”
한국어 보다 독일어가 익숙한 아이라 그런지 ‘무티’ 라 말하며 운다. 작고 가냘프며 우울한 목소리의 작은 소년은 다시는 보지 못하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인지도 모르고 나를 다르게 부른다.
“삼촌~~”
그 모습이 너무 가엽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난 그저 아이를 안아주는 것과 같이 우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후. 난 바로 한국으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현이를 돌봐주신 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섭섭하다며 1주일 정도 관광이라도 하라고 해서 녀석과 난 그 목조건물의 2층의 손님방에 기거하게 되었다.

“기상. 아침 이예요!”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고 해도 역시 아이. 가현이 방방 뛰어다닌다. 난 겨우 눈을 뜨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훌쩍이던 모습은 어디로 보네고 있는 천진한 녀석을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한국시간 오후 3시 독일시간 오전 7시. 일단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어서 난 뻣뻣한 몸을 일으켰다.
“삼촌 기상. 기상. 기상. 입니다!”
목소리도 말하는 투도 귀여운 남자아이는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민다. 순간 난 녀석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녀석은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얼굴을 빼서 똑바로 선 후 어디 한국 드라마에서 나온 듯한 말을 흉내 낸다.
“지금 당장 오지 않음. 밥 없는 줄 알아요.”
녀석의 행동과 말이 웃겨 웃음소리가 나왔다.
“하하하하 넵. 갑니다.”
그렇게 말 한 후 난 벌떡 일어나서 녀석을 들어 보았다. 묵직한 몸무게가 느껴졌다. 현이는 나와 다르게 우량아로 커 가는 것 같았다. 몸이 몹시 좋지 않아서 병원신세를 자주 져야 했던 나와 다르게 이 꼬맹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건강했다.
“수라상 먹으러 갑시다.”
난 ‘왼 수라상’ 이라고 생각했고 잠시 후. 소시지와 샐러드 그리고 땅콩크림과 치즈를 향해 “수라상” 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난 한참동안 멍해 있다가 때마침 TV에서 들려오는 궁중음식을 주제로 한 한국 사극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한참 동안 웃었다. 아무래도 현이는 누나보다는 TV를 보고 한국말을 배운 것 같았다.
“하하하하.”
“왜요?”
난 일단 자리에 앉고 나서 아이가 앉는 것을 도와주고는 천천히 말했다.
“수라상은 임금님. King이 먹는 food가 올려진 상을 말해. 그러니까. 아무거나 수라상이 아니지.”
“가현이는 수라상이 좋은데.”
마냥 똑똑해서 그냥 이해할줄 알았는데. 고집을 피운다. 하지만 아이는 이네 미소 지으며 내 말을 수긍해 주었다.
“그럼 맛난 밥상을 뭐라고 해요.”
“음~~~~ 그냥 진수성찬.”
가현이는 내 말을 듣고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서 귀엽게 웃고는 말한다.
“오오오오. 진수성찬. 좋아요.”
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도 미소와 웃음이 나왔고 그 웃음이 가셨을 때. 할아버지가 식사 기도를 하고 우리는 그 기도를 듣고 있다가 ‘아멘’ 이라고 말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이 집안 음식은 지나치게 칼로리가 높은 것 같지만 맛은 있었다. 독특한 샐러드 소스에 버무려진 싱싱한 야채들이 맛있고. 할아버지가 돼지를 잡아 직접 만들었다는 소시지도 뛰어난 맛을 자랑 했으며 시내 가게에서 사왔다는 빵도 고소한 맛이 났다.
그 동안 난.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런 현상이 너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현이에게 물었다.
“현아. 정말 맛있어요. 가 뭐야.”
현이는 잠시 생각 하는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kostlich! Wirklich”
하지만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대충 비슷하게 발음 했고 할머니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상한 발음의 한국말로 말해 주었다.
“오 마 워 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역시 자매인지 에반젤린 할머니와 너무도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난 그녀에게 미소로 다시 답해 주었다.


“여기가 엄마랑 같이 살던 집이요!
오후가 지난 후. 나와 현이는 콜택시를 타고 시내에 있는 누나가 살던 집으로 갔다. 건물은 아주 낡아 보였지만 내부는 깨끗한 타일들이 조밀조밀 박혀 있는 제법 운치 있는 곳이지만 우리 목적지 7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힘들게 걸어 올라갔고 겨우 집 앞에 도착 했을 때. 현이가 나와 다르게 생생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고 난 숨을 좀 고른 후. 영어로 누나 이름이 적혀 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현아 여기야.”
현이는 귀엽게 미소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그래요!”
그리고 현이는 열쇄를 호주머니에서 꺼내서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난 녀석의 뒤를 따라서 들어갔다.

누나와 현이가 살던 원룸형 집은 한국에 있는 누나의 방들처럼 깨끗하고 모든 것이 가지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난 그런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현이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책과 교육용 비디오, 누나가 대학에서 사용 했던 것 같은 아주 두꺼운 책들, 노트, 현이처럼 귀여운 인형들, 소형오디오, 23인치쯤으로 보이는 LCD TV, 냄비와 각종 주방 용품들이 걸려 있거나 수납장에 정리되어 있는 싱크대, 이제는 쓰지 않는 현이가 사용 했을 것 같은 유모차 그리고 벽을 메우고 있는 잡지에서 도려내거나 인터넷에서 프린터 한 것 같은 연예인으로서의 내 사진들. 또 그 아래에 적혀 있는 나를 응원하는 말. ‘우리 진이 파이팅!’ 나는 그것을 보고 슬픈 웃음소리를 내었다.
“헤헤헤헤헤 헤헤 흐. 흐. 누나.”
여기에서도 나를 생각해 줘 고맙고 미안하고 가버린 사실이 마음아파 이내 내 눈가는 촉촉해 졌고 곧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어???!!! 삼촌~”
현이가 내 바지를 붙잡고 슬픈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미안.”
“엄마 생각나?”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현이는 내 다리에 착 달라붙으며 말해왔다.
“진짜네! 삼촌은 눈물 대장이라고 하던데 진짜네요!”
나는 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창피해서 이번엔 얼굴이 빨갛게 될 정도로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누나가 아니 엄마가 그랬어?”
현이는 귀엽게 미소 지은 얼굴을 가로 저은 후. 고개를 약간 기울이는 깜찍한 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음~~~ 아니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순간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독이라는 생각을 한 난 효과 없는 변명을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지금 보다 작은 현이 찍혀 있는 사진 없어?”
현이는 존댓말을 쓰기는 하지만 행동은 전혀 조심스럽지 않다. 내 말을 들은 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어가서 누나와 현이 잤었을 침대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 각진 바구니를 꺼냈고 거기에서 현이 것으로 보이는 장난감 몇 개를 꺼낸 후. 앨범을 끄집어 올렸다.
“여기요.”
난 그것을 받아서 침대위에 올리고 펼쳐 보았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작아서 안쓰럽고 불안한 모습인 현이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눈동자로 보고 있는 살이 조금 올라있는 창백한 피부의 누나, 자신의 젖을 빨고 있는 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행복한 표정의 누나, 열심히 젖병을 빠는 현이, 작은 동물을 기어가며 ?고 있는 현이, 세상만사 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자는 현이 그리고 수많은 현이를 지나서 지금 보다 약간 작은 현이와 누나가 옆머리 맞대고 미소 짓고 있었다.
난 그 사진들을 보며 몇 번이나 다시 울고 싶은 것을 참았다. 거의 모든 사진이 누나가 현이를 찍은 사진이라서 누나가 별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 사진에 담겨 있는 것은 나도 알 것 같았다. 바로 그리움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현이와 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환송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지난 시간 동안 현이의 출국을 위한 서류처리도 하고 누나의 지인인 필립 슈왈레거를 만나서 가현이를 통역사로 누나의 부고를 전하고 누나의 아파트에 있는 짐들 중 꼭 가져가야 할 것들만 모아서 국제택배에 붙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한인 식당으로 가서 드라마에서 본 음식들을 대접하고 한국산 대형 LED 3D 스마트 TV를 설치해 드리고 그 외 작은 일들을 처리하고 누나가 다녔던 대학, 누나가 자주 갔다던 카폐, 누나가 다녔던 스포츠센터, 현이가 태어난 병원을 혼자서 둘러보고 다녔었다.

“Gesundheit!”
들어가면 바로 비행기로 통하는 문이 있는 장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고 그들은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답해 주었다.
“Guten Fl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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