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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31 745회 0건
아름다웠던 시절

7부

이모의 집에 가까워 졌다.
이모는 아침부터 바쁜지 마당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 이모! ”

“ 응, 너희들이구나... 어서들 와, 기다리고 있었어...”

“ 근데, 희숙이는요? ”

“ 방에.... 아직 잘거야... ”

“ 아니 다 큰 얘가... 이 시간이 되도록... 엄마도 돕지 않고... ”

“ 그냥 나 둬... 조금 더 자게... ”

그러자 방문이 열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깼는지 사촌 여동생인 희숙이가 이제 막 눈을 뜬 것처럼 눈을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 일어났네... ”

“ 조금만 있어 아침준비는 다 했는데 이제 차리기만 하면 되니까... ”

이모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희숙이를 보더니 포기를 했는지 경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 경희야 네가 나 좀 도와줄래... ”

“ 네에... ”

“ 근데... 너 어디 아프니 안색도 안 좋아 보이고... 걷어오는 게...... ”

아까부터 걸어오는 경희를 좀 이상하게 쳐다보던 이모가 물었다.

“ 네... 어제 좀 넘어졌어요. ”

“ 그랬구나... 난 또... 좀 조심하지 않고서...”

천만다행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면 숨길수가 없다는 말처럼 어딘지 모르게 표시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한번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텐데 그러면 같이 밥 먹기도 그렇고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경희가 태연하게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적당하게 이모에게 둘러댔다. 하지만 경희가 부끄러운 듯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잔뜩 들어 있었다. 행여 아줌마인 이모에게 들키지나 않는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이모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이모의 모습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어제와는 영 딴판이었다.
얇은 치마가 엉덩이에 달라붙어서 그런지 부엌으로 들어가는 이모의 엉덩이가 살짝 흔들리는 게 예사롭지가 않아보였다.

어제 오후에 본 이모의 모습은 이렇지가 않았다. 이모는 평소 얼굴 화장이라는 모르고 살아 온 여자처럼 수수한 맨 얼굴이 전부였다. 그리고 늘 입던 헐렁한 월남치마, 그리고 일하기 간편한 셔츠나 스웨터 정도를 아무렇게나 걸친 순박한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었다. 이게 내가 평소 기억 속의 남아있는 익숙한 이모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이모의 모습은 그 분위기에서부터 낯설게 느껴졌다.
옷차림은 어제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한 듯, 안한 듯 옅게 화장을 한 약간 기름기가 흐르는 불그스름한 얼굴에서 웬일인지 여인의 요염함이 살며시 묻어나고, 입고 있는 파란색 계통의 화사한 치마는 엉덩이에 달라붙으며 여자의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웬일인지 예전에 느꼈던 이모의 수수함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보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숙할 대로 성숙해서 무르익은 40대 여자의 농염함이 느껴졌다.

난 속으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모가 조카를 의식해서 얼굴이랑 몸 매무새를 다르게 했다는 것이 약간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그 충격은 지금 이모에게서 느끼는 낯설다는 느낌이었다. 그럼 이모가 나를 남자로 의식하고 보고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었다.

‘ 에잇, 그럴 리가? 아닐 거야...... ’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속으로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여자들만 있다가 남자인 나라도 들어오니 그래서 다른 날보다 조금 신경을 쓴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모는 이모부도 계시고 하니 설마 나한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도 아침을 먹는 내내 나의 눈길은 이모를 의식하고 있었다.
경희와 이모가 능숙하게 상을 차리고 밥을 먹는데 그런 생각 때문인지 조금 부끄럽고 어색했다. 난 일부러 이모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이모도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밥을 먹는 내내 알 수 없는 긴장감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옆의 경희도 밤에 나와의 일 때문에 이모에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내 희숙이와 자기들끼리 재잘대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런 어색하기만한 분위기를 깬 것은 이모였다. 이모가 나에게 말을 먼저 꺼냈다.

“ 참, 너 뭐 할 거니? 경희한테 넌지시 말을 해두었는데... ”

“ 아, 이모네 포도밭일 말이군요. ”

“ 으응, 부탁할게... 남자가 필요한데 사람을 불러서 쓰자니 포도수확 철도 아니고... 일당은 내가 알아서 쳐 줄 테니... ”

“ 네, 좋아요. 어차피 당분간은 할 일도 없을 테고... ”

“ 그럼 오늘부터라도... ”

“ 아이, 이모도 참... 우리 오빠 아직 쉬지도 못했어요. ”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경희가 그런 이모에게 당돌하게 대꾸했다.

“ 응, 그러니... ”

“ 헤헤헤... 이모, 오늘은 집 정리도 해야 하고... 오후엔 바닷바람 좀 쐬려고 해요. ”

“ 그래라 그럼... 그러고 보니 아직 쉬지도 못했을 텐데... 내가 공연한 소릴 했구나... ”

“ 괜찮아요. 이모 내일부턴 꼭 해드릴게요. ”

“ 응... ”

이모는 말이 나온 김에 빨리 시작하고 싶었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난 할 일이 많았다. 집도 정리해야 되고 전에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도 한번 둘러봐야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진작에 팔아치워야 했지만 워낙 시골이라 살 사람도 없어서 그냥 방치해 놓았었다. 임자 없는 땅이라고 다른 사람이 남의 땅에 몰래 뭘 심어 먹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궁금했다. 이래저래 찾아보면 할 일은 많았다.

아침을 먹고 난 경희와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사촌동생이 쓰던 낚시도구를 대충 챙겼다. 그리고 낚싯대로 쓸 대나무도 챙겼다. 시골에서 낚싯대라고 해봐야 대나무로 된 것이었고 이모 집 뒤쪽으로 대나무 밭이 있었기에 집안에 늘 베어 놓은 대나무들이 몇 개 있었기에 그중에서 적당한 것으로 하나 들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일단 어지럽게 집주변에 난 풀들부터 뽑았다.
집안을 뒤져 낫이랑 간단한 도구를 찾아냈다. 옆에서 경희도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그리고 어지러운 집주변에 버릴 것은 갖다버리고 쓰러진 것은 세우고 1시간여의 작업이었고 구슬 같은 땀방울이 등허리를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옆에 있던 경희가 수건으로 이마에 흐른 땀들을 닦아주었다. 그래도 옆에서 나를 도와주는 경희가 있어선지 힘든 줄도 몰랐다.

경희는 치마를 입고 나를 도왔는데 팔이며 다리며 드러난 흰 피부가 걱정이 되었다. 난 얼굴 그을린다고 안에 들어가라고 했으나 경희는 괜찮다고 한사코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을 하며 옆에서 경희처럼 예쁜 여자가 미소만 지어줘도 힘이 절로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정리를 대충하고 나니 마음도 새롭고 집모양도 이제는 사람 사는 것처럼 단장이 되었다. 그래 놓고 나니 벌써 오전이 다 가버린 듯 했다.

“ 오빠 낚시는 어디로 갈 거야... ”

“ 으응, 저쪽에 가면 그런 곳이 있어... ”

“ 나도 가면 안 돼?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

“ 그러면 같이 가자... 지금이 물때가 한시라 이 시간에 가면 좋은 데가 있어... 오빠만 믿고 따라와...”

“ 야, 신난다... ”

“ 그런데 가는 길이 좀 험해서... 걱정이네... ”

“ 조심할게... ”

조금 더러워진 몸을 씻고는 마루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경희는 낚시를 간다고 하니 새삼스럽게 무얼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집안을 뒤져 전에 쓰던 여분의 낚시도구를 더 챙겼다.

“ 경희야 준비 다 됐어? ”

“ 응...”

경희가 잡은 고기를 담을 커다란 통을 하나 준비하고 그리고 그 안에 간단하게 회를 떠 먹을 것들을 준비 한 것 같았다. 조금 무거워 보였다. 난 경희에게서 그걸 받아들었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집이 바닷가라 집만 나오면 낚시를 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가던 곳이 있었기에 조금 걷더라도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땅도 둘러보고 겸사겸사 길을 걸었다. 도중에 전에 농사짓던 땅을 쳐다보니 말이 아니었다. 경계만 명확하게 남아 있었고 거기도 거의 풀밭 수준이었다.

“ 경희야 너 아니? 여기부터 저쪽 모퉁이까지 우리 땅이야... ”

“ 우와, 진짜 넓다... 근데 오빠만 알고 나한테는 말도 안 해줘? ”

“ 일할 사람이 없잖니... ”

“ ................... ”

“이젠 우리가 할 거야... ”

그곳은 산길을 걸어 20여분을 걸어야 도착할 수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랑 같이 오곤 했는데 모르는 사람은 들어올 수가 없는 곳이었다. 가파른 바위 절벽이 양쪽으로 있고 그 사이에 아담한 해변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어린 때 좋은 게 다른 사람은 절대 못 온다는 것이었다. 휴일 같은 경우 외지사람도 가끔 낚시를 오지만 오늘같이 물이 많이 빠지는 한시에만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양쪽의 바위는 너무 가파른 탓에 못 타고 들어가고 위험하지만 그 곳 주변이 낚시를 하기엔 너무도 좋았다. 그곳을 고집하는 이유가 위험해도 무엇보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이미 아침에 한차례 물이 빠지고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는데 물이 들어오는 시간에 고기는 더 잘 잡혔다. 그래서 일부러 이 시간 맞추어 온 것이다. 그런데 벌써 물이 많이 들어와 맨발로 도저히 못 들어갈 정도로 차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경희를 먼저 업어 그곳으로 내려놓았다.

“ 와아... 멋지다... 오빠 여기에 이런 곳이 다 있었네... ”

“ 으응... 예전에 여기서 좀 놀았거든... ”

“ 오빠 물 색깔도 예쁘고... 나 수영해도 돼? ”

“ 그럼, 물론이지... 근데 아직은 물에 들어가기가 차가울 텐데... ”

“ 아... 그렇구나.... ”

경희를 내려놓고는 다시 바깥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낚싯대랑 다른 것들을 옮겨왔다.

“ 여긴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못 들어와... 오늘처럼 물이 빠져야만... ”

“ 그렇구나... ”

“ 아마 우리 여기서 하룻밤 자야 나갈 수 있을 걸... 다시 물이 빠지려면... ”

“ 어떡해? 그럼... ”

경희가 갑자기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 뭘 어떡해? 여기서 낚시하고 먹고 너랑 나랑 하룻밤 자고 가면 돼지... ”

“ 아잉, 오빠... 나 어떡해... 무서워서 여기서 어떻게 자... ”

“ 후후후... 농담이야... 저녁때쯤에 다시 물이 빠져...... 하하하하핫... ”

나는 물이 더 들어오기 전에 갯가를 파서 미끼로 쓸 지렁이부터 잡아야 했기에 서둘렀다. 그동안 경희는 여기저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경희가 한쪽에서 발도 물속에 담그고 하더니 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걸어오다 보니 몸에 땀도 많이 나고 덥기도 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절대로 못 들어오는 곳이란 말에 용기를 얻은 모양이었다.

“ 오빠... 나 수영할래... 오빠 이쪽 쳐다보지 마... ”

“ ..................... ”

경희의 말 때문인지 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난 슬그머니 고개를 경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미 경희는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8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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