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비
다음 날. 아침. 난 밤새 꾼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치다가 10시에 일어났다. 아버지와 누나는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세탁물을 정리하고 있는 처음 보는 50대 초반의 아줌마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요즘 지겹도록 본 예의 그 안쓰러운 표정을 보이더니 살짝 미소 지어 주며 먼저 인사를 해왔다.
“가현군. 일어났어요.”
사람 사귀는데 젬병이인 나는 어색하게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아줬고 그녀는 하던 일을 하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말을 걸어왔다.
“누나랑 아버님은 어머니 빈소에 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동안 아버지와 누나가 나만 제외시키고 어머니 빈소에 갔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내 머릿속에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뿐 외출 하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내 지금 처지가 생각나 그만두었다.
“예. 알겠습니다.”
“가현군 밥 먹어야죠.”
나는 처음 보는 이 아줌마가 어색해서 잠깐 주춤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
“씻고 나와요. 차려 놓을게요.”
“예. 고맙습니다.”
그녀는 세탁물을 들고 가던 길을 갔고 나는 잠시 아버지랑 누나랑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 처음 본 아줌마의 음식솜씨는 제법 좋았다. 김치찌개도 맛있고 나물도 간이 딱 맞았으며 무엇보다 독특한 소스의 샐러드가 맛있게 느껴졌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나대신 설거지 하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괜히 내가 하려다 보면 분위기 어색해질 것 같아서 그 말만 하고 일어났다.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네요.”
“예. 가리는 건 없는데. 양은 별로.”
“남자는 잘 먹어야죠.”
괜한 참견이네 생각이 들었지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난 공손하게 답했다.
“죄송해요. 습관이라서.”
“가현군 방송에서 나오는 이미지랑 딱 들어맞네요.”
내 방송이미지는 수줍음 많고 귀엽고 착한 남동생이다. 순간 한태란 사장을 순간 떠올리며 말을 하다 말았다.
“사장님이.”
본래는 ‘사장님의 본래 주문은 발랄하고 귀엽지만 조금 쌀쌀 맞은 남동생이었어요.’ 라고 말하려 했었지만. 그 인간의 누나라면 왜? 진작 그 인간을 정신병원에 처넣어 버리지 않아서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다 돌아가셔야 했는지가 생각나 다른 말로 짧게 대답했다.
“아뇨. 들어가 볼게요.”
내 방 창틀에 턱을 괴고 내려다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역시 변한 것이 없었다. 대문에서부터 점점 높아지는 지형도 예전엔 금붕어를 키웠다는 작은 연못도 위에서 보면 글자 ‘옥’으로 보이는 그네, 벤치, 분수대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달라 진 것은 하나 있었다. 묶어 두지 않아서 정원을 자기 내키는 대로 휘젓고 다니는 차차와 차차 것치곤 너무 크고 호사스런 개 집 이었다.
“차차야!”
나는 개의 청각을 믿고 정원에 들어온 검은 고양이와 대치 중에 있는 녀석을 작게 불러 보았다. 하지만 녀석이 나를 친구로도 여기지 않는 건지 대답이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든다.
“차차.”
이번에도 차차는 어느새 담벼락 위에 올라간 고양이를 아쉬운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나쁜 녀석” 이라고 중얼거리고 완전 관찰모드로 전환을 해서 한참을 무료하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한 차차의 모험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다 보니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했고 자세를 바꾼 이상의 나쁜 생각과 이하의 좋은 생각을 했다. 처음엔 어머니와 내 친부의 생각을 하다가 모든 사실을 알아버리곤 시도했던 자살. 그리고 그리웠던 누나와 만남과 고백 마지막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날 불안하게 만드는 하늘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전화도 안 받고. 녀석에게 연락해 볼까.”
내 혼잣말의 녀석은 수애다. 난 누나가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전화번호를 바꿔놓은 휴대폰을 들어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가 가는 중에 수애에게 핀잔을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 그 불편한 심기를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녀석은 전화를 결국 받지 않았고 다시 걸고 다시 걸어 보아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짜증이 나서 전화기를 가볍게 침대 쪽으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다시 전화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에게 직접 걸어 볼까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늘이도 전화를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국 다시 전화기를 침대위로 던져 버렸다.
“하~~ 왜 그래. 진짜!”
누나랑은 이제 평범한 남매 사이로 돌아간 것 같은데. 왜 하늘이가 나를 피하는 걸까? 역시 오해하는 걸까? 그리고 왜? 수애도 전화를 안 받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맘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사는 아파트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웠다. 사람들의 눈에 뛰는 것이 두렵고 어머님의 냉대가 두렵고 나를 거부할지 모르는 하늘이의 반응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하~~~~”
한숨이 나왔고 울보란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게 또 눈물이 눈에 고였다.
똑! 똑!
갑자기 들린 노크 소리에 난 눈물을 훔치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내 목소리에 도우미 아줌마가 문을 반쯤만 들어서 말해왔다.
“친구라고 찾아 왔어요.”
‘누구지. 내가 이집에 있다는 걸. 아는 친구는 없는데. 혹시 기자가 거짓말을.’ 이라고 생각 한 후. 말했다.
“일단 문 열어주지 마세요.”
“알겠어요.”
나는 일단 창을 통해 대문 쪽을 보았다. 하지만 일단 남자라는 건 알 수 있었지 알수 있었지만 창살문에 가려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가서 현관에 있는 집 앞에 있는 정원, 집 뒤에 있는 정원 그리고 대문 밖이 보이는 CCTV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작아서 누구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나는 움직이고 있는 그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 확인하기 힘들어서 고개를 가져다 대고 보고 있으니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가현군 그거 터치스크린이야 누르면 전체 화면 되.”
“예.”
아줌마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눌러 보았고 역시 벤처업체 사장집이라서 그런지 전체화면 상태에서 확대가 가능하고 확대해도 화질이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에 놀라워하다. 남자의 신분을 알고 나도 모르게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창세?”
나갔다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킬 것 같아 문을 열어줬다.(문 여는 것도 터치스크린에서 작동.) 창세로 보이는 사람은 문이 열리자 문을 더 열어서 들어왔고 난 편안한 샌들을 꺼내 신고는 현관을 열어서 정원으로 나가서 내 눈으로 세련되고 멋있어 졌지만 예전 얼굴이 그대로 살아 있는 진짜 창세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했고 녀석이 먼저 소란스럽지 않고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를 불러 주었다.
“성진 오랜만이네.”
“응. 반가워.”
녀석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의 행동 양식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행이네. 건강해 보여서.”
“응 덕분에.”
녀석은 내 짧은 대답을 듣고 정원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집이네. 정원도 건물도.”
“30년쯤 되었을 걸.”
“그래. 근데 손님이 왔는데 들어오라고도 안하고 섭섭해.”
이제 좀 녀석 다운 짓을 했고 난 그 말에 미안해하며 말했다.
“미안. 요즘 정신이 없어서. 들어가자.”
하지만 창세는 멋지게 세팅한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고 고개를 흔든 후.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벤치에 앉자.”
난 화단 중앙에 있는 벤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가자.”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오늘은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껴 있어서 7월 햇살을 신경 쓰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다.(아닌 사람도 있지만 외모에도 신경 써야 하는 연예인으로서의 버릇.)
“잘 살았어.”
“잘 살았지. 지방 대학 갔다고 욕먹고 카드 많이 쓴다고 욕먹고, 학점이게 뭐냐고 욕먹고 사법고시 합격한 형과 비교 당하며 욕먹고. 나야 매일 욕먹고 사는 인생이지. 음악으로 성공. 아니다. 미안해 하하하”
녀석은 ‘음악으로 성공한 녀석하고 다르게 말이야’ 라고 말하려 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냐. 근데 왼 일 이야.”
창세는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우리 집 근처야. 2년 전에 이사 와서 살고 있거든. 어제 길 가다가 진이 네가 보여서 그냥 얼굴이라도 보려고. 와봤다.”
“그랬구나.”
역시나 3년 넘게 만나보지 못한 친구라서 그런지 서먹해서 대화 소재를 찾기가 힘든데다 녀석이 관심 있어 할만한 연예계 이야기는 나에겐 금기어인 덕에 우리 사이에 잠깐 침묵이 지속되었다.
깡. 깡. 깡. 깡. 깡
버릇없는 개 같으니라고. 함부로 침묵을 깨어 버리는 차차는 아까 그 검은 고양이를 ?아서 뛰어다니다가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담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나를 발견 하고는 이번엔 내 쪽으로 오며 ‘깡깡’ 거렸다.
“요크셔테리어네. 이리와.”
창세는 내 쪽으로 오는 차차를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겨서 머리를 쓸어 주었다. 나는 창세가 개 다루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 재미있어서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
창세는 여전히 차차를 어루만져 주면서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웃음소리 넬 여유는 있나보네.”
그의 말에 순간 머리가 복잡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어제 널 봤다고 엄마에게 이야기 했었어.”
“그래.”
“우리 엄마. 너 TV에 나오기 전까지는 딸 하나 있었으면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아들만 셋 있는 것에 푸념을 하셨는데 너 나오고 나서는 왜 너희들은 저렇게 귀엽게 안 생겼냐고 농담처럼 말 하시더라. 그냥 네 녀석의 열성 팬이 되어선 공영장도 한번 다녀오셨어. 그 나이에 웃겨서. 뭐라더라 우수어린 눈빛에 부조화 적인 귀여운 얼굴이 너무 좋다나. 크크크”
물론 난 이런 아줌마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팬 등록은 자료 모우고 그 자료를 토대로 통계를 내는 것이 쉬워서 40대 50대 아줌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걸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줌마들이라 활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연장에서 본 기억은 없었다.
“정말 공연장에 오셨대.”
창세는 다시 검은 고양이의 출연으로 ‘깡깡’ 거리며 달려가기 시작하는 차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올해 2월 달인가. KJS방송국 가요순위 있잖아. 거기 가셨다 오셨어. 사실 나도 반강제로 갔었거든. 너 Live로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던데. 진짜 먼지더라. 솔직히 나도 엄마처럼 그 때 놀라 버렸다. 진짜 잘 하더라 너.”
난 창세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 내 음악을 좋아해 줘서.”
녀석은 아주 잠깐 심술궂어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인 후. 말을 이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어제 그러시더라. 친구니까 위로해 주라나.”
창세는 잠시 말을 끊어 놓고 너무 작아서 겨우 지금 발견한 가방을 뒤져서 내 퍼스트 싱글 새로운 여행과 1집 축복 CD를 내 손에 직접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인 봤어 오라시더라. 부탁한다.”
뜬금없는 사인 부탁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하하.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셔.”
“지자 순자 자자 쓰신다.”
난 창세가 의외로 예의 바른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멋진 어머니 지순자님에게 성가현이.’ 라고 적어주고 사인을 마무리 지은 다음 다시 넘겨주었다.
“감사.”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정작 자기는 내 사인에 관심이 없는지 확인도 안하고 호주머니에 그냥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알았다는 것처럼 말해왔다.
“네 실력을 인정하지만. 사실 난 걸그룹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나는 안 해줘도 돼.”
“응.”
녀석은 볼일이 끝나서 그러는 건지 갑자기 일어났다. 그리고 개를 잠시 쳐다 본 후. 입을 열었다.
“사실 엄마가 위로 해주라고 해서 이런 저런 말 생각 했었는데. 정작 여기 오니 말이 안 나오네. 그냥 힘내라. 데이트 있어서 가볼게.”
“고마워.”
난 녀석의 뒤 따라가서 대문 앞 까지만 배웅을 해주었고 녀석은 대문을 살짝 열어서 고개만 내밀고 말했다.
“나 다음 달에 군대 간다.”
“그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넌 안 간다며.”
녀석은 전혀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 져서 대답이 조금 늦게 나왔다.
“응 그렇게 됐어.”
“좋겠다. 가기 싫어 죽겠는데. 군대 가기 전에 또 보자.”
“응.”
“하늘에게 안부 전해줘.”
“으. 응.”
그는 내 대답이 이상하다는 것을 몰랐는지 내 대답을 듣고 바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는 ‘하늘’ 이란 명사에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순간 이지만 짜증나고 불안해서 도보로 하늘이네로 가고 싶은 충동이 들어서 잠겨진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려고 하다가 그만 두기 까지 했다.
오늘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가는 금방이라고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난 힘겹게 결심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을 해내고 내 방으로 가서 가방에서 짙은 색 스키니 진을 무릎 약간 위까지 잘라 버려서 입고 바람 잘 통하는 재질에 골반까지 가리는 헐렁한 가디건을 걸치고 턱 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핀으로 고정해서 앞으로 오른쪽은 깔끔하게 고정하고 왼쪽을 눈을 살짝 가릴 정도로 내렸다. 그리고 선이 굵은 뿔태안경을 쓰고 적당한 신발을 찾으려고 1층으로 내려왔다. 내 의도는 예전 소현누나랑 모텔 갈 때 한번씩 이용한 모호한 여장이었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의도 하지 않은 감정을 해 주었다.
“어머! 아가씨 누구세요.”
“헤헤 접니다. 사정이 있어서요.”
“에? 가현군?”
나는 창피해서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하고 신발장을 열어서 누나 것으로 보이는 굽이 낮은 예쁘장한 샌들을 골라서 신었다. 일단 나는 만사 OK 이지만 아줌마는 아닌지 대답이 없는 나에게 다시 의문을 표시해 왔다.
“그러고 어디가려고요.”
몰래 나가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후회 하면서 약간 설명했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게 하려고요.”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여자처럼. 헤헤헤헤”
아줌마는 이색적인 나의 행동에 웃었고. 나도 어색하게 같이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머졌을 때. 그녀가 가만히 있던 나에게 현관 쪽으로 손을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짜 잘 빠진 여자 같네요. 그럼 다녀와요.”
“예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의 전원주택에서 하늘이 아파트 까지는 도보로 가도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하지만 막상 밖에 나오고 나니 여장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해져서 금방 생각이 바꿨다.
“택시. 택시.”
하지만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아서 하늘이 아파트까지의 거리를 반 정도를 걸어갔고 이제 잡아봐야 뭐 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을 신경 쓰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하늘이가 사는 아파트 동 입구. 나는 주변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핀을 다 빼고 머리를 뒤로 모아 묶고 안경을 까지 벗으려다 렌즈 안 끼고 왔다는 것이 생각나서 도로 껴서 복장을 정리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겸해서 아주 많이 심호흡을 하고 인터폰에 손을 가져갔다.
“1203"
호번을 치고 ‘연결’ 버튼을 누르자 신호가 들어간다는 음이 들려왔다. 나는 그 음이 들렸을 때부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어머니 그림자가 요동치며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심장의 요동침이 느껴지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하늘이와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그것을 간신히 눌러주고 있었다.
“누구세요.”
우려하던 음성이 먼저 들려왔다. 나는 카메라가 없는 방향에 일부로 서 있었고 하늘이 어머니는 다시 방문자의 신분을 확인해 왔다.
“누구시죠. 그 쪽에 서 있지 마시고 왼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카메라 옷깃만 나와요.”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카메라 위치로 이동해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왔습니다.”
불청객이 왔기 때문일까 그녀는 늦게 답을 주었다.
“가현군 왼 일이야.”
마음을 얼어버릴 것 같은 싸늘함이 묻은 음성. 나는 그 음성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용건을 이야기 했다.
“죄송하지만 하늘이 있으면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해주세요.”
그녀는 ‘잠시만’ 이라는 말 같은 것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답해 주지 않았다. 나는 아직 연결이 끊어진 게 아니라서 기다렸고 그 기다림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하늘이가 안 만나겠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다 허물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이 나지 않아서 제차 대답을 전달해 주는 것에 반사적으로 도망쳐 버렸다.
“가현군 듣고 있어. 하늘이가 돌아가라고 하더라.”
“알겠습니다.”
어머니님은 내 대답이 들림과 동시에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연결을 끊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 하늘이랑 소원해 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멍해져 있었다.
이유가 뭐야? 하늘이가 왜 나를 거부하지? 가장 유력한 이유? 역시 누나 때문인 것 같았다. 다른 이유란 없었다. 하지만 누나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그 것을 분명히 하늘이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고 떨리는 가슴을 안고 어머님의 음성을 기다렸다. 하지만 의외로 하늘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냥 가 줄래.”
반가움을 앞을 섭섭했기 때문에 화가 뒤를 이었지만 난 애써 감정 표현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잘못 한개 있음은 말해줘.”
“그런 거 없어.”
감정을 애써 억제하는 음성. 역시 하늘이는 남을 속이기 힘든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 하고 있어.”
“어서 가”
격앙된 음성. 하늘이의 음성이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듯 했다. 그녀만은 내게 항상 친절하고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일방적인 믿음을 배신한 것이었기에 나도 격앙된 음성을 참지 못했다.
“말을 해줘야 알거 아냐!”
내 말목소리가 나가고 그 행동이 후회가 되었을 때. 연결이 끊어 졌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한숨을 길게 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
그리고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가던 몇 명의 사람들이 나를 이상 눈초리로 보고 가는 것이 보였지만. 복잡한 심정이었기 때문인지 그런 것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가현군 여기서 뭐하나?”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멍하게 고개를 들어 보았다. 아버님 이었다. 나는 놀라서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는 양복 상의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여기서 왜 한심한 꼴로 있어. 아직도 충격에서 해어나지 못했나.”
그는 어머님과 다르게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내 자살미수 소식에 나의 대한 평가가 최하가 되어 버렸을 것이 분명한데 냉대나 거부가 아니라 다그친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심려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왔다.
“잠시 나랑 이야기 하겠나.”
“예.”
그는 나를 비교적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벤치로 안내해서 나를 먼저 안게 하고 건물 모퉁이 돌아가서 시원한 음료수 두개를 가져와서 한 개를 나에게 내 밀었다.
“마셔.”
“감사합니다.”
나는 벤치에서 엉덩이를 약간 들어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고나서 도로 앉았다. 그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본 후. 가방과 겉옷을 벤치위에 올려두고 음료수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제 자살할 생각이 없나.”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이상하게 대답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예.”
한숨과 함께 대답이 나왔고 아버님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힘든가 보군. 힘들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가 암담해 보일 태니.”
그 말처럼. 미래가 암담하게 보인다. 나는 죽을 때 까지 아니 죽어서도 끔찍한 강간 사건으로 태어난 부정한 태생이란 꼬리표에 모아지는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갈 것이 분명하고 만일 나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비록 줄어들겠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그 꼬리표를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내 대답은 무척이나 힘들고 기운이 없었다.
“예.”
“사람의 인생. 누구나 굴곡이 있어 누구나 한번쯤 자살 충동을 느끼지 나도 그랬거든. 물론 자네의 지금 상황은 일반적인 예를 벗어나기는 하지.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자면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적어도 자네 어머니인 수진 선배 보다는 낮잖아.”
그는 내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는 지 한숨을 길게 쉬고 약간 붉어진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성필성씨는 자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자네를 수진 선배의 아들로 생각 하네. 뭐 외모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하늘이는 가현군이 어느 쪽이든 좋아해 줄 아이이고.”
어쩌면 이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아버님이라면 내 말을 반드시 전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하늘이에게 내려와 달라고 전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는 내 표정을 잠시 관찰 하다가 대답해 주었다.
“왜 싸웠나.”
“아닙니다.”
“그럼 왜.”
그는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못했고 그는 내 반응에 한참 동안 생각하는 표정을 보여주다가 다시 대답해 주었다.
“기다려 보게.”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 보게.”
아버님이 가시고 나서 30분을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난 수많은 불길한 상상을 하며 스스로를 구덩이에 파묻고 있었고 지금은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늘아.”
아까부터 반복하는 부름에 이제야 겨우 대답이 들렸다.
“나 왔어.”
나는 서두러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들어 거부해 왔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마음속 깊이 뜨끔함을 느끼며 멈추어 서서 물었다.
“왜 그래?”
그녀는 내 눈빛을 거부한 상태로 침묵했고 난 답답함에 못 이겨서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늘아.”
하지만 그녀의 대답대신 가는 빗줄기가 내 코끝에 떨어져 차가움을 전해왔고 나는 반사적 먹구름으로 이루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이번엔 이마와 턱에 차가움이 전해져 왔다. ‘네 마음도 이것과 같은 거니?’ 하고 마음속으로 물어보지만 내 안의 하늘이도 내 앞의 하늘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답해줘. 부탁이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그녀의 입으로부터 겨우 힘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헤어져.”
‘도대체 무슨 소리는 하는 걸까.’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헤어질 이유 따위는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강하게 의문을 표시했다.
“왜?”
“지쳤어. 더 이상은 힘들어서. 그만둘래.”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내 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냐아. 거.거짓말 마아.”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내 말소리도 몹시 떨리는 같았다. 나 스스로도 엉망진창이라고 느껴질 발음들이 흘러 나왔다.
침묵. 그 침묵 사이로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벤치위로 콘크리트 바닥 위로 차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차라리 엄청 쏟아졌으면 하고 바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대답 없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조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사과할게.”
“진이는 정말 바보 구나.”
비 때문이었을까. 평소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평소 그녀는 늘 내 눈을 마주봐 주었는데 지금은 전혀 나를 응시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다정함 대신 아주 오래된 원망과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널 좋아했는지 알아.”
“어?”
“역시 모르는 구나. 그 때 너와 이야기 하면서 난 운명적이라고 생각 했는데. 역시 그건 내 착각일 뿐이구나. 사실 진이 네가 바보가 아니고 내가 바보 인가봐. 그런 것에 집착하는 걸로 봐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마도 수애도 그러더라 내가 바보 같다고. 정신도 없는 널을 보살피고 있는 내가 바보처럼 보인다고.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고 하지만 난 해야 했어. 참고 해야 했어. 왜냐면 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 봤고 싶었어.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보잘것없는 거였어. 네 누나가 오니까 넌 바로 깨어나 버렸어. 1달 동안 내가 바라고 바란 일이 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을 가희언니는 한번에 이루어 버렸어.”
그녀가 눈물을 흘렸지만 내 머릿속엔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자들이란 복잡한 생물이란 생각뿐이었다.
“그러니까 가.”
그녀는 여전히 나와 시선 맞추길 거부하고 뒤돌아섰고 뒤늦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늘아 잠시만.”
난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녀는 내 손을 뿌리쳐 놓았다. 난 당황하다가 다시 다가가 이번엔 뿌리쳐지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었고 그녀는 이번엔 내 손을 뿌리치지 못하자 나를 외면한 채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선 우리들에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난 그녀의 옷이 점점 젖어가는 것이 신경 쓰여서 비를 피할 장소로 이동하자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그녀가 도망 갈 것 같아서 꾹 참고 입을 열었다.
“그런 이유로 헤어지자니 이상하잖아. 나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럼 다른 이유를 말해줘.”
“어?!!”
“너하고 같이 있으면 불안해. 넌 너무 예민하잖아. 잘 울고 주변 분위기에 신경 쓰고 그리고. 비관해서 자살시도 해 버리잖아. 왜 그래. 내가 마음 아파할 건 생각 안 해. 난 목석인지 알아. 약속도 안 지키고 바로 그날 저녁에.”
그녀는 신음까지 흘려가며 울기시작 했다. 어깨를 떨며 울음소리를 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왼지 그렇게 하면 도망가 버릴 것 같아 그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나빴어.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고 울음소리만 내었다.
“하늘아. 나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우리 옷이 너무 젖어서 기분까지도 비에 젖은 것처럼 우울해 졌을 때 내 물음에 겨우 하늘이가 힘겹게 대답해 왔다.
“이제 그만둬. 이제 나도 한계야. 이 인연은 처음부터 이상했어.”
“아냐. 처음이 어찌 되었든 지금이 중요하잖아.”
“가. 언니에게 가.”
역시 이건가. 그녀는 누나랑 나 사이가 아직도 그럴 거라고 생각 하는 걸까?
“아냐. 4년이나 지났잖아 예전하고는 다르다고 느낀다고. 보통 남매 같았어.”
그녀는 눈물로 상기된 얼굴로 돌아서며 내 말에 충동적으로 답해 왔다.
“임신까지 했었는데 어떻게 보통으로 돌아가.”
그녀는 순간 자기 입을 막아 버렸지만 내 뱉은 말을 담는 건 불가능 했다.
“무슨 소리야?”
난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물었지만. 그녀는 자기 언변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는지 패닉 상태여서 답을 기대하기 힘들었고 딸이 걱정되어 우산을 쓰고 나온 그녀의 어머님이 갑자기 나타나 손마저 놓게 만들었다.
“비 오는데 무슨 짓이야 그 손놓지 못해.”
어머님의 호통에 난 무의식적으로 손을 놓아버렸고 어머님은 내가 하늘이에게 무언가 해를 가했다고 생각 했는지 크게 화를 내었다.
“어서 가. 다시는 오지 마.”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서 하늘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늘아.”
하지만 모녀는 나를 뒤로 한 채로 비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간간히 하늘이가 슬픈 눈동자로 나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난 밤새 꾼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치다가 10시에 일어났다. 아버지와 누나는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세탁물을 정리하고 있는 처음 보는 50대 초반의 아줌마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요즘 지겹도록 본 예의 그 안쓰러운 표정을 보이더니 살짝 미소 지어 주며 먼저 인사를 해왔다.
“가현군. 일어났어요.”
사람 사귀는데 젬병이인 나는 어색하게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아줬고 그녀는 하던 일을 하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말을 걸어왔다.
“누나랑 아버님은 어머니 빈소에 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동안 아버지와 누나가 나만 제외시키고 어머니 빈소에 갔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내 머릿속에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뿐 외출 하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내 지금 처지가 생각나 그만두었다.
“예. 알겠습니다.”
“가현군 밥 먹어야죠.”
나는 처음 보는 이 아줌마가 어색해서 잠깐 주춤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
“씻고 나와요. 차려 놓을게요.”
“예. 고맙습니다.”
그녀는 세탁물을 들고 가던 길을 갔고 나는 잠시 아버지랑 누나랑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 처음 본 아줌마의 음식솜씨는 제법 좋았다. 김치찌개도 맛있고 나물도 간이 딱 맞았으며 무엇보다 독특한 소스의 샐러드가 맛있게 느껴졌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나대신 설거지 하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괜히 내가 하려다 보면 분위기 어색해질 것 같아서 그 말만 하고 일어났다.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네요.”
“예. 가리는 건 없는데. 양은 별로.”
“남자는 잘 먹어야죠.”
괜한 참견이네 생각이 들었지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난 공손하게 답했다.
“죄송해요. 습관이라서.”
“가현군 방송에서 나오는 이미지랑 딱 들어맞네요.”
내 방송이미지는 수줍음 많고 귀엽고 착한 남동생이다. 순간 한태란 사장을 순간 떠올리며 말을 하다 말았다.
“사장님이.”
본래는 ‘사장님의 본래 주문은 발랄하고 귀엽지만 조금 쌀쌀 맞은 남동생이었어요.’ 라고 말하려 했었지만. 그 인간의 누나라면 왜? 진작 그 인간을 정신병원에 처넣어 버리지 않아서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다 돌아가셔야 했는지가 생각나 다른 말로 짧게 대답했다.
“아뇨. 들어가 볼게요.”
내 방 창틀에 턱을 괴고 내려다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역시 변한 것이 없었다. 대문에서부터 점점 높아지는 지형도 예전엔 금붕어를 키웠다는 작은 연못도 위에서 보면 글자 ‘옥’으로 보이는 그네, 벤치, 분수대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달라 진 것은 하나 있었다. 묶어 두지 않아서 정원을 자기 내키는 대로 휘젓고 다니는 차차와 차차 것치곤 너무 크고 호사스런 개 집 이었다.
“차차야!”
나는 개의 청각을 믿고 정원에 들어온 검은 고양이와 대치 중에 있는 녀석을 작게 불러 보았다. 하지만 녀석이 나를 친구로도 여기지 않는 건지 대답이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든다.
“차차.”
이번에도 차차는 어느새 담벼락 위에 올라간 고양이를 아쉬운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나쁜 녀석” 이라고 중얼거리고 완전 관찰모드로 전환을 해서 한참을 무료하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한 차차의 모험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다 보니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했고 자세를 바꾼 이상의 나쁜 생각과 이하의 좋은 생각을 했다. 처음엔 어머니와 내 친부의 생각을 하다가 모든 사실을 알아버리곤 시도했던 자살. 그리고 그리웠던 누나와 만남과 고백 마지막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날 불안하게 만드는 하늘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전화도 안 받고. 녀석에게 연락해 볼까.”
내 혼잣말의 녀석은 수애다. 난 누나가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전화번호를 바꿔놓은 휴대폰을 들어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가 가는 중에 수애에게 핀잔을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 그 불편한 심기를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녀석은 전화를 결국 받지 않았고 다시 걸고 다시 걸어 보아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짜증이 나서 전화기를 가볍게 침대 쪽으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다시 전화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에게 직접 걸어 볼까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늘이도 전화를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국 다시 전화기를 침대위로 던져 버렸다.
“하~~ 왜 그래. 진짜!”
누나랑은 이제 평범한 남매 사이로 돌아간 것 같은데. 왜 하늘이가 나를 피하는 걸까? 역시 오해하는 걸까? 그리고 왜? 수애도 전화를 안 받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맘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사는 아파트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웠다. 사람들의 눈에 뛰는 것이 두렵고 어머님의 냉대가 두렵고 나를 거부할지 모르는 하늘이의 반응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하~~~~”
한숨이 나왔고 울보란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게 또 눈물이 눈에 고였다.
똑! 똑!
갑자기 들린 노크 소리에 난 눈물을 훔치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내 목소리에 도우미 아줌마가 문을 반쯤만 들어서 말해왔다.
“친구라고 찾아 왔어요.”
‘누구지. 내가 이집에 있다는 걸. 아는 친구는 없는데. 혹시 기자가 거짓말을.’ 이라고 생각 한 후. 말했다.
“일단 문 열어주지 마세요.”
“알겠어요.”
나는 일단 창을 통해 대문 쪽을 보았다. 하지만 일단 남자라는 건 알 수 있었지 알수 있었지만 창살문에 가려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가서 현관에 있는 집 앞에 있는 정원, 집 뒤에 있는 정원 그리고 대문 밖이 보이는 CCTV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작아서 누구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나는 움직이고 있는 그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 확인하기 힘들어서 고개를 가져다 대고 보고 있으니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가현군 그거 터치스크린이야 누르면 전체 화면 되.”
“예.”
아줌마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눌러 보았고 역시 벤처업체 사장집이라서 그런지 전체화면 상태에서 확대가 가능하고 확대해도 화질이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에 놀라워하다. 남자의 신분을 알고 나도 모르게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창세?”
나갔다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킬 것 같아 문을 열어줬다.(문 여는 것도 터치스크린에서 작동.) 창세로 보이는 사람은 문이 열리자 문을 더 열어서 들어왔고 난 편안한 샌들을 꺼내 신고는 현관을 열어서 정원으로 나가서 내 눈으로 세련되고 멋있어 졌지만 예전 얼굴이 그대로 살아 있는 진짜 창세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했고 녀석이 먼저 소란스럽지 않고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를 불러 주었다.
“성진 오랜만이네.”
“응. 반가워.”
녀석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의 행동 양식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행이네. 건강해 보여서.”
“응 덕분에.”
녀석은 내 짧은 대답을 듣고 정원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집이네. 정원도 건물도.”
“30년쯤 되었을 걸.”
“그래. 근데 손님이 왔는데 들어오라고도 안하고 섭섭해.”
이제 좀 녀석 다운 짓을 했고 난 그 말에 미안해하며 말했다.
“미안. 요즘 정신이 없어서. 들어가자.”
하지만 창세는 멋지게 세팅한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고 고개를 흔든 후.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벤치에 앉자.”
난 화단 중앙에 있는 벤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가자.”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오늘은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껴 있어서 7월 햇살을 신경 쓰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다.(아닌 사람도 있지만 외모에도 신경 써야 하는 연예인으로서의 버릇.)
“잘 살았어.”
“잘 살았지. 지방 대학 갔다고 욕먹고 카드 많이 쓴다고 욕먹고, 학점이게 뭐냐고 욕먹고 사법고시 합격한 형과 비교 당하며 욕먹고. 나야 매일 욕먹고 사는 인생이지. 음악으로 성공. 아니다. 미안해 하하하”
녀석은 ‘음악으로 성공한 녀석하고 다르게 말이야’ 라고 말하려 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냐. 근데 왼 일 이야.”
창세는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우리 집 근처야. 2년 전에 이사 와서 살고 있거든. 어제 길 가다가 진이 네가 보여서 그냥 얼굴이라도 보려고. 와봤다.”
“그랬구나.”
역시나 3년 넘게 만나보지 못한 친구라서 그런지 서먹해서 대화 소재를 찾기가 힘든데다 녀석이 관심 있어 할만한 연예계 이야기는 나에겐 금기어인 덕에 우리 사이에 잠깐 침묵이 지속되었다.
깡. 깡. 깡. 깡. 깡
버릇없는 개 같으니라고. 함부로 침묵을 깨어 버리는 차차는 아까 그 검은 고양이를 ?아서 뛰어다니다가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담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나를 발견 하고는 이번엔 내 쪽으로 오며 ‘깡깡’ 거렸다.
“요크셔테리어네. 이리와.”
창세는 내 쪽으로 오는 차차를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겨서 머리를 쓸어 주었다. 나는 창세가 개 다루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 재미있어서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
창세는 여전히 차차를 어루만져 주면서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웃음소리 넬 여유는 있나보네.”
그의 말에 순간 머리가 복잡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어제 널 봤다고 엄마에게 이야기 했었어.”
“그래.”
“우리 엄마. 너 TV에 나오기 전까지는 딸 하나 있었으면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아들만 셋 있는 것에 푸념을 하셨는데 너 나오고 나서는 왜 너희들은 저렇게 귀엽게 안 생겼냐고 농담처럼 말 하시더라. 그냥 네 녀석의 열성 팬이 되어선 공영장도 한번 다녀오셨어. 그 나이에 웃겨서. 뭐라더라 우수어린 눈빛에 부조화 적인 귀여운 얼굴이 너무 좋다나. 크크크”
물론 난 이런 아줌마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팬 등록은 자료 모우고 그 자료를 토대로 통계를 내는 것이 쉬워서 40대 50대 아줌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걸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줌마들이라 활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연장에서 본 기억은 없었다.
“정말 공연장에 오셨대.”
창세는 다시 검은 고양이의 출연으로 ‘깡깡’ 거리며 달려가기 시작하는 차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올해 2월 달인가. KJS방송국 가요순위 있잖아. 거기 가셨다 오셨어. 사실 나도 반강제로 갔었거든. 너 Live로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던데. 진짜 먼지더라. 솔직히 나도 엄마처럼 그 때 놀라 버렸다. 진짜 잘 하더라 너.”
난 창세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 내 음악을 좋아해 줘서.”
녀석은 아주 잠깐 심술궂어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인 후. 말을 이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어제 그러시더라. 친구니까 위로해 주라나.”
창세는 잠시 말을 끊어 놓고 너무 작아서 겨우 지금 발견한 가방을 뒤져서 내 퍼스트 싱글 새로운 여행과 1집 축복 CD를 내 손에 직접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인 봤어 오라시더라. 부탁한다.”
뜬금없는 사인 부탁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하하.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셔.”
“지자 순자 자자 쓰신다.”
난 창세가 의외로 예의 바른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멋진 어머니 지순자님에게 성가현이.’ 라고 적어주고 사인을 마무리 지은 다음 다시 넘겨주었다.
“감사.”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정작 자기는 내 사인에 관심이 없는지 확인도 안하고 호주머니에 그냥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알았다는 것처럼 말해왔다.
“네 실력을 인정하지만. 사실 난 걸그룹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나는 안 해줘도 돼.”
“응.”
녀석은 볼일이 끝나서 그러는 건지 갑자기 일어났다. 그리고 개를 잠시 쳐다 본 후. 입을 열었다.
“사실 엄마가 위로 해주라고 해서 이런 저런 말 생각 했었는데. 정작 여기 오니 말이 안 나오네. 그냥 힘내라. 데이트 있어서 가볼게.”
“고마워.”
난 녀석의 뒤 따라가서 대문 앞 까지만 배웅을 해주었고 녀석은 대문을 살짝 열어서 고개만 내밀고 말했다.
“나 다음 달에 군대 간다.”
“그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넌 안 간다며.”
녀석은 전혀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 져서 대답이 조금 늦게 나왔다.
“응 그렇게 됐어.”
“좋겠다. 가기 싫어 죽겠는데. 군대 가기 전에 또 보자.”
“응.”
“하늘에게 안부 전해줘.”
“으. 응.”
그는 내 대답이 이상하다는 것을 몰랐는지 내 대답을 듣고 바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는 ‘하늘’ 이란 명사에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순간 이지만 짜증나고 불안해서 도보로 하늘이네로 가고 싶은 충동이 들어서 잠겨진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려고 하다가 그만 두기 까지 했다.
오늘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가는 금방이라고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난 힘겹게 결심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을 해내고 내 방으로 가서 가방에서 짙은 색 스키니 진을 무릎 약간 위까지 잘라 버려서 입고 바람 잘 통하는 재질에 골반까지 가리는 헐렁한 가디건을 걸치고 턱 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핀으로 고정해서 앞으로 오른쪽은 깔끔하게 고정하고 왼쪽을 눈을 살짝 가릴 정도로 내렸다. 그리고 선이 굵은 뿔태안경을 쓰고 적당한 신발을 찾으려고 1층으로 내려왔다. 내 의도는 예전 소현누나랑 모텔 갈 때 한번씩 이용한 모호한 여장이었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의도 하지 않은 감정을 해 주었다.
“어머! 아가씨 누구세요.”
“헤헤 접니다. 사정이 있어서요.”
“에? 가현군?”
나는 창피해서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하고 신발장을 열어서 누나 것으로 보이는 굽이 낮은 예쁘장한 샌들을 골라서 신었다. 일단 나는 만사 OK 이지만 아줌마는 아닌지 대답이 없는 나에게 다시 의문을 표시해 왔다.
“그러고 어디가려고요.”
몰래 나가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후회 하면서 약간 설명했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게 하려고요.”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여자처럼. 헤헤헤헤”
아줌마는 이색적인 나의 행동에 웃었고. 나도 어색하게 같이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머졌을 때. 그녀가 가만히 있던 나에게 현관 쪽으로 손을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짜 잘 빠진 여자 같네요. 그럼 다녀와요.”
“예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의 전원주택에서 하늘이 아파트 까지는 도보로 가도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하지만 막상 밖에 나오고 나니 여장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해져서 금방 생각이 바꿨다.
“택시. 택시.”
하지만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아서 하늘이 아파트까지의 거리를 반 정도를 걸어갔고 이제 잡아봐야 뭐 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을 신경 쓰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하늘이가 사는 아파트 동 입구. 나는 주변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핀을 다 빼고 머리를 뒤로 모아 묶고 안경을 까지 벗으려다 렌즈 안 끼고 왔다는 것이 생각나서 도로 껴서 복장을 정리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겸해서 아주 많이 심호흡을 하고 인터폰에 손을 가져갔다.
“1203"
호번을 치고 ‘연결’ 버튼을 누르자 신호가 들어간다는 음이 들려왔다. 나는 그 음이 들렸을 때부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어머니 그림자가 요동치며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심장의 요동침이 느껴지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하늘이와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그것을 간신히 눌러주고 있었다.
“누구세요.”
우려하던 음성이 먼저 들려왔다. 나는 카메라가 없는 방향에 일부로 서 있었고 하늘이 어머니는 다시 방문자의 신분을 확인해 왔다.
“누구시죠. 그 쪽에 서 있지 마시고 왼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카메라 옷깃만 나와요.”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카메라 위치로 이동해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왔습니다.”
불청객이 왔기 때문일까 그녀는 늦게 답을 주었다.
“가현군 왼 일이야.”
마음을 얼어버릴 것 같은 싸늘함이 묻은 음성. 나는 그 음성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용건을 이야기 했다.
“죄송하지만 하늘이 있으면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해주세요.”
그녀는 ‘잠시만’ 이라는 말 같은 것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답해 주지 않았다. 나는 아직 연결이 끊어진 게 아니라서 기다렸고 그 기다림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하늘이가 안 만나겠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다 허물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이 나지 않아서 제차 대답을 전달해 주는 것에 반사적으로 도망쳐 버렸다.
“가현군 듣고 있어. 하늘이가 돌아가라고 하더라.”
“알겠습니다.”
어머니님은 내 대답이 들림과 동시에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연결을 끊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 하늘이랑 소원해 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멍해져 있었다.
이유가 뭐야? 하늘이가 왜 나를 거부하지? 가장 유력한 이유? 역시 누나 때문인 것 같았다. 다른 이유란 없었다. 하지만 누나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그 것을 분명히 하늘이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고 떨리는 가슴을 안고 어머님의 음성을 기다렸다. 하지만 의외로 하늘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냥 가 줄래.”
반가움을 앞을 섭섭했기 때문에 화가 뒤를 이었지만 난 애써 감정 표현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잘못 한개 있음은 말해줘.”
“그런 거 없어.”
감정을 애써 억제하는 음성. 역시 하늘이는 남을 속이기 힘든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 하고 있어.”
“어서 가”
격앙된 음성. 하늘이의 음성이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듯 했다. 그녀만은 내게 항상 친절하고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일방적인 믿음을 배신한 것이었기에 나도 격앙된 음성을 참지 못했다.
“말을 해줘야 알거 아냐!”
내 말목소리가 나가고 그 행동이 후회가 되었을 때. 연결이 끊어 졌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한숨을 길게 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
그리고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가던 몇 명의 사람들이 나를 이상 눈초리로 보고 가는 것이 보였지만. 복잡한 심정이었기 때문인지 그런 것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가현군 여기서 뭐하나?”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멍하게 고개를 들어 보았다. 아버님 이었다. 나는 놀라서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는 양복 상의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여기서 왜 한심한 꼴로 있어. 아직도 충격에서 해어나지 못했나.”
그는 어머님과 다르게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내 자살미수 소식에 나의 대한 평가가 최하가 되어 버렸을 것이 분명한데 냉대나 거부가 아니라 다그친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심려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왔다.
“잠시 나랑 이야기 하겠나.”
“예.”
그는 나를 비교적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벤치로 안내해서 나를 먼저 안게 하고 건물 모퉁이 돌아가서 시원한 음료수 두개를 가져와서 한 개를 나에게 내 밀었다.
“마셔.”
“감사합니다.”
나는 벤치에서 엉덩이를 약간 들어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고나서 도로 앉았다. 그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본 후. 가방과 겉옷을 벤치위에 올려두고 음료수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제 자살할 생각이 없나.”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이상하게 대답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예.”
한숨과 함께 대답이 나왔고 아버님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힘든가 보군. 힘들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가 암담해 보일 태니.”
그 말처럼. 미래가 암담하게 보인다. 나는 죽을 때 까지 아니 죽어서도 끔찍한 강간 사건으로 태어난 부정한 태생이란 꼬리표에 모아지는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갈 것이 분명하고 만일 나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비록 줄어들겠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그 꼬리표를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내 대답은 무척이나 힘들고 기운이 없었다.
“예.”
“사람의 인생. 누구나 굴곡이 있어 누구나 한번쯤 자살 충동을 느끼지 나도 그랬거든. 물론 자네의 지금 상황은 일반적인 예를 벗어나기는 하지.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자면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적어도 자네 어머니인 수진 선배 보다는 낮잖아.”
그는 내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는 지 한숨을 길게 쉬고 약간 붉어진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성필성씨는 자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자네를 수진 선배의 아들로 생각 하네. 뭐 외모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하늘이는 가현군이 어느 쪽이든 좋아해 줄 아이이고.”
어쩌면 이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아버님이라면 내 말을 반드시 전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하늘이에게 내려와 달라고 전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는 내 표정을 잠시 관찰 하다가 대답해 주었다.
“왜 싸웠나.”
“아닙니다.”
“그럼 왜.”
그는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못했고 그는 내 반응에 한참 동안 생각하는 표정을 보여주다가 다시 대답해 주었다.
“기다려 보게.”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 보게.”
아버님이 가시고 나서 30분을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난 수많은 불길한 상상을 하며 스스로를 구덩이에 파묻고 있었고 지금은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늘아.”
아까부터 반복하는 부름에 이제야 겨우 대답이 들렸다.
“나 왔어.”
나는 서두러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들어 거부해 왔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마음속 깊이 뜨끔함을 느끼며 멈추어 서서 물었다.
“왜 그래?”
그녀는 내 눈빛을 거부한 상태로 침묵했고 난 답답함에 못 이겨서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늘아.”
하지만 그녀의 대답대신 가는 빗줄기가 내 코끝에 떨어져 차가움을 전해왔고 나는 반사적 먹구름으로 이루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이번엔 이마와 턱에 차가움이 전해져 왔다. ‘네 마음도 이것과 같은 거니?’ 하고 마음속으로 물어보지만 내 안의 하늘이도 내 앞의 하늘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답해줘. 부탁이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그녀의 입으로부터 겨우 힘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헤어져.”
‘도대체 무슨 소리는 하는 걸까.’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헤어질 이유 따위는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강하게 의문을 표시했다.
“왜?”
“지쳤어. 더 이상은 힘들어서. 그만둘래.”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내 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냐아. 거.거짓말 마아.”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내 말소리도 몹시 떨리는 같았다. 나 스스로도 엉망진창이라고 느껴질 발음들이 흘러 나왔다.
침묵. 그 침묵 사이로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벤치위로 콘크리트 바닥 위로 차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차라리 엄청 쏟아졌으면 하고 바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대답 없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조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사과할게.”
“진이는 정말 바보 구나.”
비 때문이었을까. 평소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평소 그녀는 늘 내 눈을 마주봐 주었는데 지금은 전혀 나를 응시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다정함 대신 아주 오래된 원망과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널 좋아했는지 알아.”
“어?”
“역시 모르는 구나. 그 때 너와 이야기 하면서 난 운명적이라고 생각 했는데. 역시 그건 내 착각일 뿐이구나. 사실 진이 네가 바보가 아니고 내가 바보 인가봐. 그런 것에 집착하는 걸로 봐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마도 수애도 그러더라 내가 바보 같다고. 정신도 없는 널을 보살피고 있는 내가 바보처럼 보인다고.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고 하지만 난 해야 했어. 참고 해야 했어. 왜냐면 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 봤고 싶었어.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보잘것없는 거였어. 네 누나가 오니까 넌 바로 깨어나 버렸어. 1달 동안 내가 바라고 바란 일이 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을 가희언니는 한번에 이루어 버렸어.”
그녀가 눈물을 흘렸지만 내 머릿속엔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자들이란 복잡한 생물이란 생각뿐이었다.
“그러니까 가.”
그녀는 여전히 나와 시선 맞추길 거부하고 뒤돌아섰고 뒤늦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늘아 잠시만.”
난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녀는 내 손을 뿌리쳐 놓았다. 난 당황하다가 다시 다가가 이번엔 뿌리쳐지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었고 그녀는 이번엔 내 손을 뿌리치지 못하자 나를 외면한 채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선 우리들에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난 그녀의 옷이 점점 젖어가는 것이 신경 쓰여서 비를 피할 장소로 이동하자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그녀가 도망 갈 것 같아서 꾹 참고 입을 열었다.
“그런 이유로 헤어지자니 이상하잖아. 나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럼 다른 이유를 말해줘.”
“어?!!”
“너하고 같이 있으면 불안해. 넌 너무 예민하잖아. 잘 울고 주변 분위기에 신경 쓰고 그리고. 비관해서 자살시도 해 버리잖아. 왜 그래. 내가 마음 아파할 건 생각 안 해. 난 목석인지 알아. 약속도 안 지키고 바로 그날 저녁에.”
그녀는 신음까지 흘려가며 울기시작 했다. 어깨를 떨며 울음소리를 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왼지 그렇게 하면 도망가 버릴 것 같아 그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나빴어.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고 울음소리만 내었다.
“하늘아. 나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우리 옷이 너무 젖어서 기분까지도 비에 젖은 것처럼 우울해 졌을 때 내 물음에 겨우 하늘이가 힘겹게 대답해 왔다.
“이제 그만둬. 이제 나도 한계야. 이 인연은 처음부터 이상했어.”
“아냐. 처음이 어찌 되었든 지금이 중요하잖아.”
“가. 언니에게 가.”
역시 이건가. 그녀는 누나랑 나 사이가 아직도 그럴 거라고 생각 하는 걸까?
“아냐. 4년이나 지났잖아 예전하고는 다르다고 느낀다고. 보통 남매 같았어.”
그녀는 눈물로 상기된 얼굴로 돌아서며 내 말에 충동적으로 답해 왔다.
“임신까지 했었는데 어떻게 보통으로 돌아가.”
그녀는 순간 자기 입을 막아 버렸지만 내 뱉은 말을 담는 건 불가능 했다.
“무슨 소리야?”
난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물었지만. 그녀는 자기 언변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는지 패닉 상태여서 답을 기대하기 힘들었고 딸이 걱정되어 우산을 쓰고 나온 그녀의 어머님이 갑자기 나타나 손마저 놓게 만들었다.
“비 오는데 무슨 짓이야 그 손놓지 못해.”
어머님의 호통에 난 무의식적으로 손을 놓아버렸고 어머님은 내가 하늘이에게 무언가 해를 가했다고 생각 했는지 크게 화를 내었다.
“어서 가. 다시는 오지 마.”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서 하늘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늘아.”
하지만 모녀는 나를 뒤로 한 채로 비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간간히 하늘이가 슬픈 눈동자로 나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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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9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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