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고백서]
본 근친상간 고백서는 근친상간을 주제로 한 창작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근친상간에 대한 경험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야설입니다. 각 편마다 전혀 다른 주인공들의 다른 이야기들이 있는 옴니버스 스타일로 꾸며져 있으며 각 편마다 다른 제목이 있습니다. 읽고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제2편 아빠의 빈자리 - 1 장
1993년 제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도 그 사건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
1993년 7월 26일(월요일) 14시 20분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15시 15분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아시아나 항공 소속 여객기가 악천후로 의한 기상상태로 인해 세 차례의 착륙시도에 실패한 후 15시 50분 목포공항에서 10여킬로미터 떨어진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뒷산에서 추락했습니다. 이 추락사고로 인해 200명의 탑승객 가운데 72명이 사망, 7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뉴스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고, 나는 뉴스를 보면서 그 비행기에 우리 아버지가 안 타고 계셨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때 항공사의 사고 대책 본부에 가셨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고, 집에 나와 여동생을 봐주고 있던 이모가 전화를 받고 오열했습니다.
“언니 어떡해, 우리 형부... 어떡해..... 엉엉엉.......”
그게 17년 전 일입니다.
아버지는 그때 목포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로 할아버지에게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가정적이고 능력이 있고 자상한 아버지.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 누운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시며 내 볼에 뽀뽀를 해주시던 아버지.
주말이면 항상 내 동생과 나를 데리고 놀이동산이며 공원엘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던 아버지.
엄마와 아주 사이가 좋아서 우리들 앞에서도 엄마를 끌어 안고 뽀뽀를 하시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엄마와 얼마나 다정한 사이였는지 내 머리 속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쯤, 아마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응접실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두 분이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추던 모습.
관중은 동생과 나 둘 뿐이었죠. 춤을 추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영화배우보다 더 멋있어 보였고 나도 크면 아빠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게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아빠를 떠나 보내기엔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아빠의 관을 땅 속으로 하관하고 첫 삽을 그 위에 덮을 때 목이 떠져라 발버둥 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 옆에 하얀 소복을 입고 있던 엄마도 오열했습니다.
“여보~~~!”
사랑하는 남편을 그렇게 갑자기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 이상으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었습니다.
그해 여름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시던 가구점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몇 달 간 식음을 전폐했고 이모가 우리 집에 매일 매일 와서 나와 내 동생을 건사해주고 엄마를 돌봐주었죠.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의 눈에도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 하고 얼마나 외로워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도 혼자 자면서도 혼자 자는 엄마가 나보다 더 외로울 것 같았죠.
그래서 엄마는 가끔씩 나와 내 동생을 번갈아 가며 데리고 자곤 했고, 나는 기꺼이 엄마와 같이 자면서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잘 때 엄마는 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다리로 나를 잡아당겼습니다.
포근한 엄마의 품
엄마도 나와 함께 자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고 나도 아빠를 갑자기 떠나 보낸 슬픔을 엄마 품안에서 잊을 수 있었습니다.
“OO야, 엄마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가 그렇게 말을 하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도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그러나 아내로서 엄마는 약했지만 엄마로서 엄마는 강했습니다.
어느날 엄마는 온 집 안을 다 뒤집어서 청소를 하고 한 트럭이나 될 만큼 많은 가구며 물건들을 치워버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아마도 치운 대부분의 물건들이 아빠의 물건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눈물을 닦고 일어선 우리 엄마는 아주 달라진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머리를 짧게 커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도 젊고 예쁘게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보험설계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 일 하는 걸 참 좋아했고 잘 했습니다.
엄마는 집안 살림도 야무지게 잘 했습니다.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살면서 살림 엉망으로 한다는 이야기 안 듣겠다며 보험일 하면서 집안 살림도 똑 부러지게 했습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내가 우리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그러셨습니다.
“이제 니가 니네 집 안의 가장이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안 계셔도 집안일정도는 알아서 다 했고 동생을 공부시키고 챙기는 일도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다 알아서 챙겨주었습니다.
엄마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어께도 주물러 주고 아빠가 늘 저녁 때 엄마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저녁 식사 후에 엄마에게 커피를 한 잔씩 타다가 주었습니다.
“으음.. 맛 있다. OO가 타주는 커피는 진짜 맛있어......”
“정말?”
“으응. 진짜루...... 커피 전문점에서 사 먹는 거 보다 니가 타주는 게 더 맛있어......”
진짜 엄마는 내가 타주는 커피가 커피전문점에서 사먹는 커피보다 맛있었을까요? 아직까지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요즘도 어머니는 그럽니다. 아들이 타주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엄마는 여전히 가끔 나를 데리고 잤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나를 품 안에 꼬옥 끌어안고 다리로 나를 잡아당겨서 도망가지 못하게 꼭 몸에 붙이고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잠을 자다가 비몽사몽 간에 깨어나 보면 내가 엄마를 끌어 안은 자세로 있었고 엄마의 몸에 내 아랫배는 물론이고 발딱 일어서 있는 자지가 엄마의 몸에 밀착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물론 나와 엄마는 팬티와 잠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지만 잠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발기한 내 자지를 엄마의 몸에 밀착시키고 부비부비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엄마랑 같이 자는 날에는 항상 자다보면 어느새 내가 아랫배를 엄마의 몸에 바짝 들이대고 내 자지를 엄마의 몸에 비비적 거리는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엄마에게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고 내가 엄마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습니다.
집에 숫컷 강아지 키워 보신 분들 계신가요? 그 어린 강아지도 조금만 크면 주인 남자건 여자건 주인집 꼬마들이건 다리에 기어올라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동작을 하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내가 마치 그런 것 같았습니다. 잠 결에 그냥 엄마를 끌어 안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내 자지를 엄마의 몸에다가 문지르며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강아지말이죠.
엄마의 보험 일은 점점 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매달 더 많은 보험계약성과를 올리며 나와 동생에게 맛있는 외식도 자주 시켜주었고 외식을 하고나면 항상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걸 하나씩 사주었습니다.
“엄마가 이번 달에.. 회사 우리팀 중에서 최고 실적 올렸다.”
“정말?”
“응... 저녁 먹고 엄마가 니네들 갖고 싶은 거 하나씩 사줄게.”
“엄마 정말이야?”
동생이랑 나는 이구동성으로 정말이냐고 엄마에게 물어보았고, 각자 갖고 싶은 걸 엄마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내가 갖고 싶어하던 것은 17인치 컬러 모니터였습니다.
“엄마! 나 17인치 컬러 모니터 하나만 사주면 안 돼?”
“야아.... 그건 너무 비싼 거잖아...”
“아이.. 엄마 치사하다. 우리가 갖고 싶은 거 사준다고 하구선......”
“알았어... 사줄게.. 근데 17인치 모니터는 비싸니까 이번 달 말구 다음 달에 엄마가 실적 많이 올리면 그때 사줄게.... 다음 달에..... 알았지?”
“알았어. 근데 꼭 사줘야 돼. 엄마.”
엄마는 그렇게 그 다음 달 나에게 17인치 컬러 모니터를 사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몇 주 후에 어느날 내가 엄마와 같이 자던 날이었습니다.
꿈 결에 나는 솜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양털같은 것을 끌어 안은 채로 너른 들판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 부드러운 그것의 정체가 무언지는 몰랐지만 그걸 꼬옥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 너무 좋았고 내 온 몸이 그것과 혼연일체로 밀착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그걸 꼭 끌어안은 채로 벌판을 뒹굴며 놀다가 내 아랫배의 묵직한 내 자지가 그 부드러운 물체 속으로 아주 딱 들어맞게 매끄럽게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나서 바로 나는 배설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몽정이란 걸 경험했던 순간이었죠.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나는 반쯤 옆으로 엎어져서 자는 자세였고 엄마 위로 다리 하나를 올리고 팔도 엄마를 안은 자세였습니다. 아랫배가 엄마의 몸에 바짝 밀착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내 자지가 엄마의 부드러운 몸에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나는 엄마의 몸에 내 자지를 비벼대다가 팬티 속에 그만 정액을 배설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슬며시 일어나 목욕탕에 가서 팬티를 벗어 놓고 내 방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몇 주후에 엄마는 나에게 약속한대로 17인치 컬러 모니터를 사주었습니다. 그 당시에 17인치 컬러 모니터는 지금으로 치며 23인치 LCD 모니터만큼이나 좋은 것이었습니다.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그 당시에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는 나에게 있어서는 성에 대한 질적인 업그레이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좋은 컴퓨터는 그만큼 양질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죠.
그리고 그때쯤 나는 성에 대해서 왕성한 호기심이 생길 때였고 자위를 하며 느끼는 짜릿한 쾌감의 유혹에 빠져들어 갈 때였습니다.
그때가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이었죠.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에 하이텔, 천리안같은 온라인 서비스나 사설 BBS를 사용할 때였습니다. 1200bps 모뎀을 사용하다가 2400bps가 나왔을 때는 정말 빠르다고 생각을 했고 56K 모뎀이 나왔을 때는 정말 다운로드 속도가 날아다닌다고 생각을 했죠. 56K bps면 요즘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 5M bps하고 비교하면 거의 100배 정도 느린 속도인데도 말이죠. 제 기억에 100k 바이트짜리 사진을 하나 다운로드하려면 10분 이상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 통신 동호회들을 돌아다니며 야사와 야설을 다운로드해서 읽으며 나는 점점 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야사들은 지금에 비하면 화질도 별로 안 좋고 포르노 사진의 전문성도 떨어지는 사진들이었지만 컴퓨터에서 칼라로 된 포르노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습니다. 그때 친구 놈에게서 플로피 디스크에 카피한 수 백장의 포르노 사진들은 자위를 할 때마다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 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날인가 나의 눈에 엄마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들의 몸에는 도대체 구멍이 도대체 몇 개가 있는지 궁금해 하며 한번 그걸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하는 시기였지요. 그 시기에 남자들은, 여자들이 다들 그 구멍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 구멍에 남자들의 성기를 삽입하여 성교라는 것을 하게 됨으로 자위하고는 비길 수도 없는 짜릿한 맛을 느끼게 된다는 그 진리를 터득할 바로 그때...... 남자들이라면 대체로 그 시기를 격은 게 언제쯤인지 아실 겁니다.
포르노 사진에서 보았던 그 보지.
컴퓨터에서 그 보지를 보고 보고 또 보고 서적을 뒤져가며 연구하고 또한 과연 여자의 보지 속에 자지를 삽입하는 그 느낌이란 게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하면서 여자의 보지에 대한 궁금증이 최대로 극대화될 때 쯤, 바로 컴퓨터에서 보았던 보지와 같은 보지를 우리 엄마도 틀림 없이 가지고 있을 꺼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지요.
아, 그렇지. 엄마도 여자였구나!
그 평범한 사실이 나에게 마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 아담처럼 그 전에는 느끼고 있지 못하다가 바로 섹스라는 알게 되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나의 눈에 엄마가 여자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풍만한 엄마의 가슴이 눈에 띄게 신경이 쓰였고 어깨에 드러난 브레지어 끈에 자꾸 시선이 갔습니다.
언듯언듯 엄마가 치마를 걷고 앉을 때 드러나는 하얀 허벅지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엎드려서 마루를 닦는 엄마의 뒤에서 드러난 엉덩이의 윤곽을 쳐다보며 그 가운데쯤에 엄마도 구멍이 있겠지 하며 상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같이 잘 때면 자는 척하면서 나는 은근 슬적 엄마의 가슴을 만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나랑 같이 잘 때 거의 브레지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젖가슴을 직접 만져 볼 수는 없었지만 브레지어 위로 몽실몽실한 엄마의 가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엄마는 잠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들, 너 언제 이렇게 컸냐? 1년만에 진짜 많이 컸네......”
“그래?”
“응. 근데 이젠 다 큰 녀석이 엄마 젖 만지니까 좀 징그럽다. 야...”
“징그럽긴 뭐가 징그러..... 아들이 엄마 젖 만지는데......”
그러면서 나는 일부러 엄마의 젖가슴을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거렸지요.
엄마에겐 내가 엄마 젖을 만지는 게 그냥 어린 아들이 엄마 젖을 만지는 순수한 의도라는 걸 강조했지만 내 마음 속에 실은 야한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엄마랑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지만 그 당시엔 내가 엄마의 보지를 몰래 만져 본다는 건 생각 조차하지 못 했습니다.
감히 어느 아들이 엄마의 보지를 몰래 만져본다는 걸 시도하겠습니까? 야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그러나 난 포르노를 보면 볼수록...... 사진 속의 여자들의 벌어진 보지를 보면 볼수록...... 실제로 여자들의 보지를 보고 싶어 하는 그 욕구는 더욱 더 커져 갔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하는 이야기로는 어떤 녀석은 벌써 창녀촌엘 가봤다는 녀석도 있었고 어떤 녀석들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의 다른 여학교 아이들하고 단체로 떼씹을 해봤다는 소문도 있었죠.
난 언제쯤이나 여자의 보지를 한번 실제로 볼 수 있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장가나 간다면야 그땐 맘껏 마누라 보지를 벌려놓고 볼 수도 있고 섹스도 할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적어도 10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그 10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겐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긴 시간처럼 생각이 됐지요.
그렇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자 친구를 사귀에서 섹스를 하거나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바로 그날로 당장 용돈을 모아 창녀촌으로 직행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 4년 반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밤 늦게 방에서 자위를 할 때마다 여자의 보지를 실제로 보고 싶어하면서 자위를 했습니다. 실제 여자의 보지 속에 자지를 끼워 넣는 그 기분이 얼마나 황홀할 지 상상하며 자지를 문질렀습니다.
“으으으으”
자지 끝에서 껄쭉한 밥물같은 정액이 분출되어 나올 때 나는 어느새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위를 하며 자지 끝에서 정액을 분출해 내며 실제 여자의 보지를 상상하던 그 순간 문득 나는 내 동생의 보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내 여동생을 쳐다보는 나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내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내 눈에 여동생은 항상 아직도 철없는 코흘리개 어린 기집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동생의 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다고 맘을 먹은 후로는 그렇게 어리게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컸습니다. 특히 여동생은 여자 아이라서 일찍 성숙해졌고 키도 그 나이의 아이들 중에 10 퍼센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컸습니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어린 꼬마 여자 아이들의 옷을 갈아 입히거나 오줌을 누이거나 목욕시키는 걸 우연히 목격하며 어린 여자애 보지를 본 경험이 다들 있으시지요?
가랑이 사이에 정확히 Y자로 갈라진 통통한 보지
그러나 내 동생은 클만큼 커서 그렇게 아주 어린 아이같은 보지는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딱 한번만 여동생의 보지를 보기로 했습니다.
“잘 자라”
“네. 안녕히 주무세요.”
11시쯤 마루에 있던 엄마가 마루에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항상 내 여동생은 11시 이전엔 먼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12시까지 1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살며시 내 방문을 열었습니다.
혹시라도 엄마가 일어나서 나오실까봐 내 방의 불을 끄고 내 방 문을 살며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살금살금 동생 방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우리 집의 구조는 현관문 바로 옆에 내 방이 있고 내 방에서 마루를 지나 주방 옆에 동생 방이 안방과 마주 보며 있었습니다.
삐그덕
평소엔 아무 소리도 안나던 마루바닥이 내가 밟는 소리에 삐거덕거리며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동생방에 다가가서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문고리를 살짝 돌려보니 역시 잠겨 있지는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살며시 동생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동생 방 안에는 벽에 밤에만 켜지는 작은 인형처럼 생긴 등 하나가 방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침대에서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불은 반쯤 덮혀 있었고 늘 동생이 밤에 입고 자는 잠옷을 입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난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동생 침대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후우”
난 일단 숨을 한번 조용히 내쉬고 침대 옆 바닥에 앉았습니다.
만약에 동생이 깨어나면 뭐라고 하지? ‘오빠 지금 뭐하는거야?’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딱히 뭐라고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오직 하나! 그냥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먼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추어야 하는데 전부 들추면 혹시 깰까 싶어서 위쪽은 놔두고 아래쪽 이불을 들춰서 반대쪽으로 넘겼습니다.
동생의 아랫도리가 드러났습니다.
나는 침대 옆에 바닥에 앉아서 자세를 낮춘 상태로 손을 슬며시 동생의 아랫배 위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동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는 배 위에 올려놓은 손을 한번 살살 움직여 보았습니다.
여전히 동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는 조금 용기가 생겨서 동생의 잠옷 위로 동생의 보지를 만져보았습니다.
끄으응
동생이 약간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욱 용기가 생겨서 좀 더 과감하게 동생의 다리를 잡아서 옆으로 들어서 옮겨놓아 보기도 하고 허리를 잡아서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동생은 내가 자기 몸을 들거나 만지거나 옆으로 옮겨놓아도 그냥 잠결에 몸을 살짝 움직일 뿐이지 전혀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마루 소파에서 잠이 들면 아빠가 동생을 번쩍 안아서 동생 방으로 데리고 가며 늘 그랬습니다.
“얘는 잠들면 누가 엎어가도 모른다니까...... 껄껄......”
나는 그날 아빠의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나는 파자마 아랫도리를 살살 벗겨내렸습니다.
내가 동생의 파마자 바지를 발목까지 다 벗겨내려도 동생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잠만 자고 있었고 오히려 발을 움직여서 자기가 자기 바지를 벗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랫도리엔 작은 팬티만 하나 입혀져 있었습니다.
나는 먼저 살짝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동생의 보지를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매끈한 보지살 위에 약간은 까칠한 것이 만져지는 것같았습니다.
동생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고 드디어 동생의 팬티를 서서히 아래로 벗겨내렸습니다.
팬티가 내려지며 보지가 드러나고 나는 엉덩이쪽으로 팬티 고무줄을 누르면서 팬티를 허벅지 아래로 내린 후에 완전히 팬티를 발 아래로 벗겨내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후우우
나는 동생의 팬티를 벗겨낸 다음 먼저 보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단 침대 옆에 다시 철썩 주저 앉아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서 동생의 보지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Y자로 갈아진 동생의 보지가 선명하게 보였는데 희미한 불빛 아래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살펴보니 동생의 보지 위에 솜털들이 돗아나있었고 그 중에 일부는 이미 까칠한 까만털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동생의 다리를 벌리고 그야말로 벌어진 그 보지의 실체를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살며시 동생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서 옆으로 벌려놓았고 드디어 벌어진 보지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위로부터 Y자 계곡이 계속해서 쭈우욱 갈라져서 내려와 있었습니다.
나는 사진에서 본 벌어진 보지의 보지구멍이 있을 것 같은 바로 그 근처에 두 손을 올려놓고 갈라진 살집을 양옆으로 살짝 벌려보았습니다.
통통한 살집 안에 약간 덜렁거리는 듯한 살점이 보이는 것 같았고 구멍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 사진에서 본 거하고 좀 다르네
포르노에서 본 보지의 모양하고는 사뭇 달라보였고 다만 벌려본 보지 가운데 쯤에 반짝반짝 물에 약간 젖은 듯한 곳이 안으로 좀 들어가 있는 것같았습니다.
생전 처음 여자의 보지를 벌리고 들여다 본 것인데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얘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나는 일단 그날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손으로 동생의 보지 위를 몇 번 쓰다듬으며 만져주고나서 팬티와 잠옷을 다시 입혀준 다음에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방에 돌아온 나는 컴퓨터에 보지를 벌리고 있는 여자 포르노 사진을 틀어놓고 자위를 했지요.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다음엔 엄마 꺼를 한번 봐야지......
그러나 그 이후에 엄마랑 같이 자면서도 몰래 엄마의 보지를 들여다 보는 걸 시도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잠결에 슬적슬적 엄마의 몸을 만지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 계속 -
근친상간 고백서 - 제1편은 엄마와 다녀온 신혼여행이라는 글입니다. 제 작가 집필실에 오시면 1편을 읽어보실 수가 있습니다. 제1편은 엄마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면 제2편은 아들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근친상간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니 읽으시며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집필실에 오시면 전 이런 년입니다 라는 글도 꼭 한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과 쪽지로 제 글에 대해서 피드백을 좀 주시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본 근친상간 고백서는 근친상간을 주제로 한 창작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근친상간에 대한 경험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야설입니다. 각 편마다 전혀 다른 주인공들의 다른 이야기들이 있는 옴니버스 스타일로 꾸며져 있으며 각 편마다 다른 제목이 있습니다. 읽고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제2편 아빠의 빈자리 - 1 장
1993년 제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도 그 사건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
1993년 7월 26일(월요일) 14시 20분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15시 15분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아시아나 항공 소속 여객기가 악천후로 의한 기상상태로 인해 세 차례의 착륙시도에 실패한 후 15시 50분 목포공항에서 10여킬로미터 떨어진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뒷산에서 추락했습니다. 이 추락사고로 인해 200명의 탑승객 가운데 72명이 사망, 7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뉴스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고, 나는 뉴스를 보면서 그 비행기에 우리 아버지가 안 타고 계셨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때 항공사의 사고 대책 본부에 가셨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고, 집에 나와 여동생을 봐주고 있던 이모가 전화를 받고 오열했습니다.
“언니 어떡해, 우리 형부... 어떡해..... 엉엉엉.......”
그게 17년 전 일입니다.
아버지는 그때 목포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로 할아버지에게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가정적이고 능력이 있고 자상한 아버지.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 누운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시며 내 볼에 뽀뽀를 해주시던 아버지.
주말이면 항상 내 동생과 나를 데리고 놀이동산이며 공원엘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던 아버지.
엄마와 아주 사이가 좋아서 우리들 앞에서도 엄마를 끌어 안고 뽀뽀를 하시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엄마와 얼마나 다정한 사이였는지 내 머리 속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쯤, 아마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응접실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두 분이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추던 모습.
관중은 동생과 나 둘 뿐이었죠. 춤을 추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영화배우보다 더 멋있어 보였고 나도 크면 아빠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게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아빠를 떠나 보내기엔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아빠의 관을 땅 속으로 하관하고 첫 삽을 그 위에 덮을 때 목이 떠져라 발버둥 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 옆에 하얀 소복을 입고 있던 엄마도 오열했습니다.
“여보~~~!”
사랑하는 남편을 그렇게 갑자기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 이상으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었습니다.
그해 여름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시던 가구점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몇 달 간 식음을 전폐했고 이모가 우리 집에 매일 매일 와서 나와 내 동생을 건사해주고 엄마를 돌봐주었죠.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의 눈에도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 하고 얼마나 외로워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도 혼자 자면서도 혼자 자는 엄마가 나보다 더 외로울 것 같았죠.
그래서 엄마는 가끔씩 나와 내 동생을 번갈아 가며 데리고 자곤 했고, 나는 기꺼이 엄마와 같이 자면서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잘 때 엄마는 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다리로 나를 잡아당겼습니다.
포근한 엄마의 품
엄마도 나와 함께 자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고 나도 아빠를 갑자기 떠나 보낸 슬픔을 엄마 품안에서 잊을 수 있었습니다.
“OO야, 엄마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가 그렇게 말을 하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도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그러나 아내로서 엄마는 약했지만 엄마로서 엄마는 강했습니다.
어느날 엄마는 온 집 안을 다 뒤집어서 청소를 하고 한 트럭이나 될 만큼 많은 가구며 물건들을 치워버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아마도 치운 대부분의 물건들이 아빠의 물건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눈물을 닦고 일어선 우리 엄마는 아주 달라진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머리를 짧게 커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도 젊고 예쁘게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보험설계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 일 하는 걸 참 좋아했고 잘 했습니다.
엄마는 집안 살림도 야무지게 잘 했습니다.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살면서 살림 엉망으로 한다는 이야기 안 듣겠다며 보험일 하면서 집안 살림도 똑 부러지게 했습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내가 우리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그러셨습니다.
“이제 니가 니네 집 안의 가장이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안 계셔도 집안일정도는 알아서 다 했고 동생을 공부시키고 챙기는 일도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다 알아서 챙겨주었습니다.
엄마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어께도 주물러 주고 아빠가 늘 저녁 때 엄마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저녁 식사 후에 엄마에게 커피를 한 잔씩 타다가 주었습니다.
“으음.. 맛 있다. OO가 타주는 커피는 진짜 맛있어......”
“정말?”
“으응. 진짜루...... 커피 전문점에서 사 먹는 거 보다 니가 타주는 게 더 맛있어......”
진짜 엄마는 내가 타주는 커피가 커피전문점에서 사먹는 커피보다 맛있었을까요? 아직까지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요즘도 어머니는 그럽니다. 아들이 타주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엄마는 여전히 가끔 나를 데리고 잤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나를 품 안에 꼬옥 끌어안고 다리로 나를 잡아당겨서 도망가지 못하게 꼭 몸에 붙이고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잠을 자다가 비몽사몽 간에 깨어나 보면 내가 엄마를 끌어 안은 자세로 있었고 엄마의 몸에 내 아랫배는 물론이고 발딱 일어서 있는 자지가 엄마의 몸에 밀착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물론 나와 엄마는 팬티와 잠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지만 잠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발기한 내 자지를 엄마의 몸에 밀착시키고 부비부비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엄마랑 같이 자는 날에는 항상 자다보면 어느새 내가 아랫배를 엄마의 몸에 바짝 들이대고 내 자지를 엄마의 몸에 비비적 거리는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엄마에게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고 내가 엄마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습니다.
집에 숫컷 강아지 키워 보신 분들 계신가요? 그 어린 강아지도 조금만 크면 주인 남자건 여자건 주인집 꼬마들이건 다리에 기어올라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동작을 하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내가 마치 그런 것 같았습니다. 잠 결에 그냥 엄마를 끌어 안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내 자지를 엄마의 몸에다가 문지르며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강아지말이죠.
엄마의 보험 일은 점점 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매달 더 많은 보험계약성과를 올리며 나와 동생에게 맛있는 외식도 자주 시켜주었고 외식을 하고나면 항상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걸 하나씩 사주었습니다.
“엄마가 이번 달에.. 회사 우리팀 중에서 최고 실적 올렸다.”
“정말?”
“응... 저녁 먹고 엄마가 니네들 갖고 싶은 거 하나씩 사줄게.”
“엄마 정말이야?”
동생이랑 나는 이구동성으로 정말이냐고 엄마에게 물어보았고, 각자 갖고 싶은 걸 엄마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내가 갖고 싶어하던 것은 17인치 컬러 모니터였습니다.
“엄마! 나 17인치 컬러 모니터 하나만 사주면 안 돼?”
“야아.... 그건 너무 비싼 거잖아...”
“아이.. 엄마 치사하다. 우리가 갖고 싶은 거 사준다고 하구선......”
“알았어... 사줄게.. 근데 17인치 모니터는 비싸니까 이번 달 말구 다음 달에 엄마가 실적 많이 올리면 그때 사줄게.... 다음 달에..... 알았지?”
“알았어. 근데 꼭 사줘야 돼. 엄마.”
엄마는 그렇게 그 다음 달 나에게 17인치 컬러 모니터를 사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몇 주 후에 어느날 내가 엄마와 같이 자던 날이었습니다.
꿈 결에 나는 솜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양털같은 것을 끌어 안은 채로 너른 들판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 부드러운 그것의 정체가 무언지는 몰랐지만 그걸 꼬옥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 너무 좋았고 내 온 몸이 그것과 혼연일체로 밀착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그걸 꼭 끌어안은 채로 벌판을 뒹굴며 놀다가 내 아랫배의 묵직한 내 자지가 그 부드러운 물체 속으로 아주 딱 들어맞게 매끄럽게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나서 바로 나는 배설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몽정이란 걸 경험했던 순간이었죠.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나는 반쯤 옆으로 엎어져서 자는 자세였고 엄마 위로 다리 하나를 올리고 팔도 엄마를 안은 자세였습니다. 아랫배가 엄마의 몸에 바짝 밀착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내 자지가 엄마의 부드러운 몸에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나는 엄마의 몸에 내 자지를 비벼대다가 팬티 속에 그만 정액을 배설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슬며시 일어나 목욕탕에 가서 팬티를 벗어 놓고 내 방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몇 주후에 엄마는 나에게 약속한대로 17인치 컬러 모니터를 사주었습니다. 그 당시에 17인치 컬러 모니터는 지금으로 치며 23인치 LCD 모니터만큼이나 좋은 것이었습니다.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그 당시에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는 나에게 있어서는 성에 대한 질적인 업그레이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좋은 컴퓨터는 그만큼 양질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죠.
그리고 그때쯤 나는 성에 대해서 왕성한 호기심이 생길 때였고 자위를 하며 느끼는 짜릿한 쾌감의 유혹에 빠져들어 갈 때였습니다.
그때가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이었죠.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에 하이텔, 천리안같은 온라인 서비스나 사설 BBS를 사용할 때였습니다. 1200bps 모뎀을 사용하다가 2400bps가 나왔을 때는 정말 빠르다고 생각을 했고 56K 모뎀이 나왔을 때는 정말 다운로드 속도가 날아다닌다고 생각을 했죠. 56K bps면 요즘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 5M bps하고 비교하면 거의 100배 정도 느린 속도인데도 말이죠. 제 기억에 100k 바이트짜리 사진을 하나 다운로드하려면 10분 이상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 통신 동호회들을 돌아다니며 야사와 야설을 다운로드해서 읽으며 나는 점점 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야사들은 지금에 비하면 화질도 별로 안 좋고 포르노 사진의 전문성도 떨어지는 사진들이었지만 컴퓨터에서 칼라로 된 포르노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습니다. 그때 친구 놈에게서 플로피 디스크에 카피한 수 백장의 포르노 사진들은 자위를 할 때마다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 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날인가 나의 눈에 엄마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들의 몸에는 도대체 구멍이 도대체 몇 개가 있는지 궁금해 하며 한번 그걸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하는 시기였지요. 그 시기에 남자들은, 여자들이 다들 그 구멍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 구멍에 남자들의 성기를 삽입하여 성교라는 것을 하게 됨으로 자위하고는 비길 수도 없는 짜릿한 맛을 느끼게 된다는 그 진리를 터득할 바로 그때...... 남자들이라면 대체로 그 시기를 격은 게 언제쯤인지 아실 겁니다.
포르노 사진에서 보았던 그 보지.
컴퓨터에서 그 보지를 보고 보고 또 보고 서적을 뒤져가며 연구하고 또한 과연 여자의 보지 속에 자지를 삽입하는 그 느낌이란 게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하면서 여자의 보지에 대한 궁금증이 최대로 극대화될 때 쯤, 바로 컴퓨터에서 보았던 보지와 같은 보지를 우리 엄마도 틀림 없이 가지고 있을 꺼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지요.
아, 그렇지. 엄마도 여자였구나!
그 평범한 사실이 나에게 마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 아담처럼 그 전에는 느끼고 있지 못하다가 바로 섹스라는 알게 되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나의 눈에 엄마가 여자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풍만한 엄마의 가슴이 눈에 띄게 신경이 쓰였고 어깨에 드러난 브레지어 끈에 자꾸 시선이 갔습니다.
언듯언듯 엄마가 치마를 걷고 앉을 때 드러나는 하얀 허벅지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엎드려서 마루를 닦는 엄마의 뒤에서 드러난 엉덩이의 윤곽을 쳐다보며 그 가운데쯤에 엄마도 구멍이 있겠지 하며 상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같이 잘 때면 자는 척하면서 나는 은근 슬적 엄마의 가슴을 만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나랑 같이 잘 때 거의 브레지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젖가슴을 직접 만져 볼 수는 없었지만 브레지어 위로 몽실몽실한 엄마의 가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엄마는 잠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들, 너 언제 이렇게 컸냐? 1년만에 진짜 많이 컸네......”
“그래?”
“응. 근데 이젠 다 큰 녀석이 엄마 젖 만지니까 좀 징그럽다. 야...”
“징그럽긴 뭐가 징그러..... 아들이 엄마 젖 만지는데......”
그러면서 나는 일부러 엄마의 젖가슴을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거렸지요.
엄마에겐 내가 엄마 젖을 만지는 게 그냥 어린 아들이 엄마 젖을 만지는 순수한 의도라는 걸 강조했지만 내 마음 속에 실은 야한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엄마랑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지만 그 당시엔 내가 엄마의 보지를 몰래 만져 본다는 건 생각 조차하지 못 했습니다.
감히 어느 아들이 엄마의 보지를 몰래 만져본다는 걸 시도하겠습니까? 야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그러나 난 포르노를 보면 볼수록...... 사진 속의 여자들의 벌어진 보지를 보면 볼수록...... 실제로 여자들의 보지를 보고 싶어 하는 그 욕구는 더욱 더 커져 갔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하는 이야기로는 어떤 녀석은 벌써 창녀촌엘 가봤다는 녀석도 있었고 어떤 녀석들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의 다른 여학교 아이들하고 단체로 떼씹을 해봤다는 소문도 있었죠.
난 언제쯤이나 여자의 보지를 한번 실제로 볼 수 있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장가나 간다면야 그땐 맘껏 마누라 보지를 벌려놓고 볼 수도 있고 섹스도 할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적어도 10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그 10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겐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긴 시간처럼 생각이 됐지요.
그렇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자 친구를 사귀에서 섹스를 하거나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바로 그날로 당장 용돈을 모아 창녀촌으로 직행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 4년 반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밤 늦게 방에서 자위를 할 때마다 여자의 보지를 실제로 보고 싶어하면서 자위를 했습니다. 실제 여자의 보지 속에 자지를 끼워 넣는 그 기분이 얼마나 황홀할 지 상상하며 자지를 문질렀습니다.
“으으으으”
자지 끝에서 껄쭉한 밥물같은 정액이 분출되어 나올 때 나는 어느새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위를 하며 자지 끝에서 정액을 분출해 내며 실제 여자의 보지를 상상하던 그 순간 문득 나는 내 동생의 보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내 여동생을 쳐다보는 나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내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내 눈에 여동생은 항상 아직도 철없는 코흘리개 어린 기집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동생의 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다고 맘을 먹은 후로는 그렇게 어리게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컸습니다. 특히 여동생은 여자 아이라서 일찍 성숙해졌고 키도 그 나이의 아이들 중에 10 퍼센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컸습니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어린 꼬마 여자 아이들의 옷을 갈아 입히거나 오줌을 누이거나 목욕시키는 걸 우연히 목격하며 어린 여자애 보지를 본 경험이 다들 있으시지요?
가랑이 사이에 정확히 Y자로 갈라진 통통한 보지
그러나 내 동생은 클만큼 커서 그렇게 아주 어린 아이같은 보지는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딱 한번만 여동생의 보지를 보기로 했습니다.
“잘 자라”
“네. 안녕히 주무세요.”
11시쯤 마루에 있던 엄마가 마루에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항상 내 여동생은 11시 이전엔 먼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12시까지 1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살며시 내 방문을 열었습니다.
혹시라도 엄마가 일어나서 나오실까봐 내 방의 불을 끄고 내 방 문을 살며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살금살금 동생 방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우리 집의 구조는 현관문 바로 옆에 내 방이 있고 내 방에서 마루를 지나 주방 옆에 동생 방이 안방과 마주 보며 있었습니다.
삐그덕
평소엔 아무 소리도 안나던 마루바닥이 내가 밟는 소리에 삐거덕거리며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동생방에 다가가서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문고리를 살짝 돌려보니 역시 잠겨 있지는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살며시 동생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동생 방 안에는 벽에 밤에만 켜지는 작은 인형처럼 생긴 등 하나가 방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침대에서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불은 반쯤 덮혀 있었고 늘 동생이 밤에 입고 자는 잠옷을 입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난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동생 침대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후우”
난 일단 숨을 한번 조용히 내쉬고 침대 옆 바닥에 앉았습니다.
만약에 동생이 깨어나면 뭐라고 하지? ‘오빠 지금 뭐하는거야?’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딱히 뭐라고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오직 하나! 그냥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먼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추어야 하는데 전부 들추면 혹시 깰까 싶어서 위쪽은 놔두고 아래쪽 이불을 들춰서 반대쪽으로 넘겼습니다.
동생의 아랫도리가 드러났습니다.
나는 침대 옆에 바닥에 앉아서 자세를 낮춘 상태로 손을 슬며시 동생의 아랫배 위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동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는 배 위에 올려놓은 손을 한번 살살 움직여 보았습니다.
여전히 동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는 조금 용기가 생겨서 동생의 잠옷 위로 동생의 보지를 만져보았습니다.
끄으응
동생이 약간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욱 용기가 생겨서 좀 더 과감하게 동생의 다리를 잡아서 옆으로 들어서 옮겨놓아 보기도 하고 허리를 잡아서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동생은 내가 자기 몸을 들거나 만지거나 옆으로 옮겨놓아도 그냥 잠결에 몸을 살짝 움직일 뿐이지 전혀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마루 소파에서 잠이 들면 아빠가 동생을 번쩍 안아서 동생 방으로 데리고 가며 늘 그랬습니다.
“얘는 잠들면 누가 엎어가도 모른다니까...... 껄껄......”
나는 그날 아빠의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나는 파자마 아랫도리를 살살 벗겨내렸습니다.
내가 동생의 파마자 바지를 발목까지 다 벗겨내려도 동생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잠만 자고 있었고 오히려 발을 움직여서 자기가 자기 바지를 벗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랫도리엔 작은 팬티만 하나 입혀져 있었습니다.
나는 먼저 살짝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동생의 보지를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매끈한 보지살 위에 약간은 까칠한 것이 만져지는 것같았습니다.
동생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고 드디어 동생의 팬티를 서서히 아래로 벗겨내렸습니다.
팬티가 내려지며 보지가 드러나고 나는 엉덩이쪽으로 팬티 고무줄을 누르면서 팬티를 허벅지 아래로 내린 후에 완전히 팬티를 발 아래로 벗겨내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후우우
나는 동생의 팬티를 벗겨낸 다음 먼저 보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단 침대 옆에 다시 철썩 주저 앉아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서 동생의 보지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Y자로 갈아진 동생의 보지가 선명하게 보였는데 희미한 불빛 아래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살펴보니 동생의 보지 위에 솜털들이 돗아나있었고 그 중에 일부는 이미 까칠한 까만털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동생의 다리를 벌리고 그야말로 벌어진 그 보지의 실체를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살며시 동생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서 옆으로 벌려놓았고 드디어 벌어진 보지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위로부터 Y자 계곡이 계속해서 쭈우욱 갈라져서 내려와 있었습니다.
나는 사진에서 본 벌어진 보지의 보지구멍이 있을 것 같은 바로 그 근처에 두 손을 올려놓고 갈라진 살집을 양옆으로 살짝 벌려보았습니다.
통통한 살집 안에 약간 덜렁거리는 듯한 살점이 보이는 것 같았고 구멍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 사진에서 본 거하고 좀 다르네
포르노에서 본 보지의 모양하고는 사뭇 달라보였고 다만 벌려본 보지 가운데 쯤에 반짝반짝 물에 약간 젖은 듯한 곳이 안으로 좀 들어가 있는 것같았습니다.
생전 처음 여자의 보지를 벌리고 들여다 본 것인데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얘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나는 일단 그날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손으로 동생의 보지 위를 몇 번 쓰다듬으며 만져주고나서 팬티와 잠옷을 다시 입혀준 다음에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방에 돌아온 나는 컴퓨터에 보지를 벌리고 있는 여자 포르노 사진을 틀어놓고 자위를 했지요.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다음엔 엄마 꺼를 한번 봐야지......
그러나 그 이후에 엄마랑 같이 자면서도 몰래 엄마의 보지를 들여다 보는 걸 시도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잠결에 슬적슬적 엄마의 몸을 만지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 계속 -
근친상간 고백서 - 제1편은 엄마와 다녀온 신혼여행이라는 글입니다. 제 작가 집필실에 오시면 1편을 읽어보실 수가 있습니다. 제1편은 엄마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면 제2편은 아들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근친상간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니 읽으시며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집필실에 오시면 전 이런 년입니다 라는 글도 꼭 한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과 쪽지로 제 글에 대해서 피드백을 좀 주시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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