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골네(무당)사월 초파일 특집
전통 불교와 미신은 완전한 차이가 나지만 우리나라의 토속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는 미신에는 불교가 많이 가미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추어 본 소설을 특집 형식으로 올립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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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글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자 작자가 아는 몇 가지를 말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무당은 우리 민족의 토속 종교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런 토속 종교인 무당이 존재하던 나라에 들어온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가 들어오자 토속 종교인 무당이 설 자리가 없어진 반면 토속 종교만이 신이 전부라고 믿어 온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융화되기는 무척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불교가 취한 것이 한국적인 불교 즉 토속적인 것이 가미가 된 불교 화 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절에 가면 있는 칠성각이며 산신각이고 그리고 바다나 강이 보이는 절에 있는 용왕 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수 불교에서는 칠성이며 산신 그리고 용왕이란 존재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칠성은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으로 여겼고 용왕은 바다와 강을 다스리는 신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산신입니다.
과연 산신이 산의 신을 말하는 것일까요?
혹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산신각의 산신은 다름이 아니라 단군 임금을 말한다고 말입니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 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습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인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십니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고 합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답니다.
한번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답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답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답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십니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堯를 말함.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庚寅年:당고의 즉위년은 무진년으로 50년 뒤면 정사 년이므로 경인년이란 표현은 아마 틀린 듯함)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답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자 대신 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답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 고려 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답니다.
그 밖의 다른 기록들도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단군신화라는 표현입니다.
한문으로 보면 檀君⌒神話로서 檀자는 박달나무 단자이고 君은 임금 군자이며 神은 귀신 신자이고 話는 말씀 화자입니다.
즉 뜻 그대로 표현을 한다면 막달나무 임금님 귀신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단군은 신의 반열에 드신 분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그건 신라 고구려 혹은 백제시대 때부터 유지해 온 사찰에 있는 산신각에 있는 산신의 탱화는 거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고 또 그 탱화는 구전으로 전해 오던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란 것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인데 하찮은 야설 따위나 쓰는 저이지만 전 그 학설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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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람은 죽지를 말고 젊은 사람은 늙지를 마라고 등잔가세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갑자 살았는데 요네 나는 백년도 못살아 구름도 쉬어 넘고 날짐승도 쉬어가는 심산유곡을 어이를 갈꼬 옛 늙은이 말 들으면 북망산이 멀다드니 오날 보니 앞동산이 북망 못가겠네 쉬어나가자 한번가면 못 오는 길을 어이를 갈꺼나 갈거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이가리 어이가리 북망산천을 어이가리 황천이 어데라고 그리쉽게 사셨는가 간다간다 나는간다 북망산천을 나는 간다>
그는 눈만 뜨면 이런 노래를(?)듣고 커 갔다.
아니 잠을 자면서 꿈결에서도 노래 아닌 노래를 들어야 하였다.
우리 엄마가 무당이라 사람들은 우리 엄마를 당골네라고 부르고 누나도 무당이고 알고 보면 아버지이자 동시에 외삼촌이기도 한 사람 역시 무당 노릇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다.
요즘 말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답은 아니다가 맞다.
물론 예전에 천시 받던 뱃놈 백정이의 경우 돈벌이가 좋고 좋은 고기만 먹이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 말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무당의 경우 돈은 좀 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람들은 무당 앞에서는 대 놓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돌아서면 서기가 무섭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럼 먼저 무당에 대하여 알아보자.
무당이나 점쟁이가 되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한 가지는 소위 무병에 걸린 경우이다.
무병은 백과사전에서 한 번 찾아보았다.
무병--->신병(神病)이라고도 한다.
그 증세는 대략 다음과 같다.
까닭 없이 원인 모를 병을 앓기 시작해 의약의 효험 없이 고생하다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불면증에 걸리며, 꿈을 자주 꾸고 환상·환청의 경험을 자주하고 심해지면 정신착란을 일으켜 집을 뛰쳐나가 산야를 헤맨다.
이렇게 환상에 이끌려 다니다가 땅속에서 방울·부채·명두·신 칼 등을 발견하기도 하며,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을 향해 느닷없이 뭐가 나쁘다는 둥 무엇을 조심하라는 둥의 이야기를 지껄이기도 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하다가 문복(問卜)을 하거나 굿에 참여해 그러한 증세가 무병 때문이며 자신이 무당이 될 운명임을 알게 되면 내림굿이라는 입무(入巫) 의례를 해 무당이 된다.
일단 내림굿을 받고 무의(巫儀)에 참석하게 되면서 병은 씻은 듯이 낫는다.
아직까지는 강신무가 되는 처음 단계에서 겪게 되는 무병에 대해 뚜렷한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어떤 방법의 치료도 불가능하며 오직 내림굿을 받고 무의에 참석함으로써 치료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병을 앓은 끝에 무당이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세습무가 있다.
세습무 역시 백과사전을 통하여 살펴보자.
세습무--->부모로부터 무당의 신분이나 무직(巫職)을 물려받은 무당을 세습무당이라고 한다.
주로 남도지방에 많은데, 전라도지방의 "단골레, 경상도지방의 "지모산이", 제주도지방의 "심방" 등이 대표적이다.
무당이 되기 위한 강신(降神)의 과정이나 신(神)이 들리는 일이 없으며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일은 있어도 신을 모시는 신단(神壇)을 차리거나 신탁(神託)을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무당인 부모로부터 춤이나 악기연주, 노래(巫歌), 의상, 제상차림, 조화(造花) 및 전지(煎紙) 만들기, 부적에 대한 이해, 점복(占卜) 등의 무업을 배워 무당이 된다.
무당의 자질을 영험과 재주라고 할 때 이들은 영험보다는 재주를 가지고 무업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무업을 수련하므로 이들의 무예는 매우 뛰어나며 오늘날 이들의 무예는 독자적인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무당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명창이나 가수로 전업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무업을 세습하는 것은 사회적인 신분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무업은 천한 직업으로 고정된 신분이어서 자식은 부모의 신분을 물려받으면서 무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무당의 피는 혈통적으로 유전된다는 사회적인 편견도 무업의 세습을 강제했다. 이처럼 이들은 신분이나 혈통적으로 특수하게 취급받았기 때문에 같은 무업계통에 종사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동해안 남무(男巫)인 김석출(金石出)의 가계처럼 대규모의 무가(巫家)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럼 나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무병을 앓아서 무당이 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뒤를 이어서 무당노릇을 하게 되는 세습무가 된 것이 바로 나이다.
무병을 앓아서 무당이 되어 점을 보는 점쟁이 겸 무당의 경우 음력 정월 한 달이 최고의 성업 기간이다.
명성이 높은 점쟁이의 경우 정월 한 달에 버는 돈이 일 년을 두고 버는 돈의 80% 이상이 되는 사람도 없잖아 많다.
하지만 세습무당의 경우 앞의 백과사전에서도 말하였다 시피 부모로부터 춤이나 악기연주, 노래(巫歌), 의상, 제상차림, 조화(造花) 및 전지(煎紙) 만들기, 부적에 대한 이해, 점복(占卜) 등의 무업을 배워 무당이기에 솔직하게 말하여 점복의 경우 무병에 결려 무당이 된 점쟁이와는 달리 신통력이 덜하기에 수입이 변변치 못 한 것이 대부분이고 고작 한다고 하는 것이 그런 무당이 데리고 온 손님들의 굿을 할 경우 춤이나 악기연주, 노래(巫歌), 의상, 제상차림, 조화(造花) 및 전지(煎紙) 만들기 등을 하는 허드렛일을 하여서 끼니를 연명한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즉 창녀 뒤에서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돈을 뜯어가는 깡패가 있듯이 무당 뒤에서 기둥서방 아닌 신(神) 서방 노릇을 하며 끼니를 연명하는 노릇을 하는 것이 세습무당의 본 임무인데 내가 바로 그런 세습무당의 길로 들어서야 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온 총각의 고민을 여러분들이 풀어 주였으며 한다.
남자들의 경우에도 간혹은 그런 경우가 있지만 여자들의 경우 거의 전부가 무병에 걸렸으나 그걸 모르고 치료를 시도하다가 문복(問卜)을 하거나 굿에 참여해 그러한 증세가 무병 때문이며 자신이 무당이 될 운명임을 알게 되면 내림굿이라는 입무(入巫) 의례를 해 무당이 되는데 우리 엄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가 아닌 외삼촌(사실은 나의 생부이지만)입을 빌리면 외할아버지도 세습무당이었고 외할머니의 경우 무병에 걸렸다가 무당이 되었던 전통적인 무당 집안이었고 엄마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하여도 모범생에 선생님들의 돈독한 사랑을 받으며 학교를 빛낼 학생으로 촉망을 받았으나 갑자기 무병에 걸렸고 그리고 2학년을 넘기지 못 하고 내림굿을 한 끝에 무당이 되었다고 하였다.
내가 나의 아버지가 평소에 외삼촌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아버지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리 누나가 무병에 결려 내림굿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나보다 3살이 많은 누나가 하나 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누나가 대학 2학년일 때 누나가 그만 무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일반인이 무병에 걸려서 하는 내림굿일 경우에도 아주 크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습무당 집안의 사람들이 무병에 걸려 무당이 되려고 내림굿을 하는 경우 사돈에 팔촌까지도 모여들어서 굿을 하게에 그 웅장함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규모는 대단하다.
우리 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엄마의 오빠이면서도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 외삼촌까지도 참석을 하였다.
무당만 하여도 거의 20명이상이 모인 정말이지 규모가 큰 내림굿을 누나는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습무당의 집안에 따라 약간의 다른 점은 있게 마련인데 우리 외갓집안의 경우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면 내림굿을 사흘 이상 하는 동안에 내림굿을 받는 무병을 앓는 여자의 경우 신(神) 서방과 동침을 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세습무당이 될 남자의 경우에게 신(神) 각시를 정하여 동침을 하게 되는 것이 외갓집안의 특징이었는데 우리 엄마가 내림굿을 받으면서 신의 명령에(?)따라 선택을 하였던 신(神) 서방이 다름이 아닌 자기 오빠인 나의 외삼촌이었고 그래서 누나도 외삼촌의 딸이기도 하며 나의 경우 엄마가 무당 노릇을 하다가 신통력 약해지자 다시 치성을 드리며 기도를 하는 도중에 신의 계시에 의하여 다시 자신의 오빠이자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사람하고 또 동침을 함으로서 탄생을 하게 된 것이 마로 나라는 인간이었다.
동해안의 유명한 세습무당의 표본이라고 할 김석출 선생님 집안도 그렇듯이 우리 외갓집안도 역시 근친혼이 아닌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이미 그런 저런 굿에 참석을 하며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징이나 장구 혹을 꽹과리 정도는 아주 능숙하게 다루면서 익혀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절대 나에게는 멀리 하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여자들이 신을 받는 행사인 내림굿에는 가까이 하지를 못 하게 하였다.
그 연유를 몰랐다.
누나의 내림굿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내림굿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내림굿--->신들린 사람에게 무당이 되도록 행하는 굿을 내림굿이라고 한다.
신들린 사람에게 실려 있을지도 모르는 잡귀·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을 행한 다음, 무속의 주신(主神)을 받아들여 새로운 무당을 탄생시키는 굿이다.
따라서 내림굿은 신이 내려서 무당이 되는 한강 이북의 강신무지역에만 존재한다.
본래 허주굿과 내림굿은 별개의 굿이었으나 요즘에는 허주굿의 과정이 내림굿에 포함되어 행해진다.
굿의 절차는 일반 재수굿의 절차에 내림굿의 절차가 추가되어 진행되는데, 내림굿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잡귀·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의 과정과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을 밝히는 과정, 그리고 말문을 여는 과정 등이 있다.
허주굿은 신병(神病)으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혼돈상태에 빠져 있는 강신자를 정화하는 것으로, 강신자가 혼돈상태에서 벗어나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현실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신이 인간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강신자가 숨겨져 있는 해당 신복(神服)과 무구(巫具)를 찾음으로써 확인된다.
"말문을 연다"는 것은 처음으로 신의 말인 공수를 주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강신자가 신의 뜻을 파악하고 신의 의사를 인간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세 과정은 평범했던 사람을 사제로 변화시키는 내림굿의 특징적인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당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 삶의 문제에 대해 신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문을 여는 과정이다.
따라서 말문이 열리지 않을 경우 강신자는 무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보통 말문을 여는 과정은 굿에 참여한 사람들의 점을 봐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강신자가 신의 사제로서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장래의 손님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편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몸주신"을 밝히는 과정으로서 강신자는 평생 동안 이 신을 모시게 된다.
내림굿을 마치고 나면 강신자는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다른 무당에 의해 별호를 얻게 되는데, 이는 내림굿을 거친 강신자는 더 이상 일상적인 인간세계에 속하는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강신자와 내림굿을 해준 무당은 서로 신자식(神子息)·신부모(神父母)의 관계를 맺게 되며, 신자식은 신부모에게서 무업(巫業)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야만 한다.
굿의 절차와 내용은 물론이고 수많은 종류의 무가(巫歌), 절차에 따라 달라지는 춤과 음악, 굿상 차리는 방법과 굿상에 올릴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 굿의 과정에 등장하는 무구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이렇게 무속의 절차와 내용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서 갓 무당이 된 강신자는 점차 성숙된 무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위의 설명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집안마다 조금씩 들린 것이 세습무당 집안의 풍습이다.
우리 외갓집안의 경우 여기서 약간 다름 점이 있다면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신이 인간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신자가 신 내림의 하나의 방법이기도 한 공수를 받아 말문을 열고 내림굿에 참석을 한 일반인들의 점을 보자고 또 자신에게 내린 신의 몸주신을 밝히고 다른 무당으로부터 별호를 얻고 또 내림굿을 진행하여준 무당하고 신(神)부모의 인연을 맺으며 그리고 강신자가 숨겨져 있는 해당 신복(神服)과 무구(巫具)를 찾음으로써 확인하게 되는 것과 달리 강신자가 자신의 신(神)서방을 지적하고 그 강신자에게 지적을 당한 신(神)서방이 될 자를 불러들여 숨겨져 있는 해당 신복(神服)과 무구(巫具)를 찾음으로써 한 과정을 통과 하게 되며 동안 신(神)서방을 지적당한 자는 내림굿을 하는 장소 안에 미리 준비를 하여 둔 정갈함 물로 목욕재개를 하고서는 또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면 신을 받고 지친 새 무당이 된 여자가 잠든 처소로 들어가서는 품어주면 그 처소 밖에서는 다시 신명나게 신(神)부모의 주도하에 내림굿을 절정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 우리 외갓집안의 내림굿 특징인데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우리 누나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엄마는 내림굿을 하게 되면 남자인 나를 가까이 오지 못 하게 하였던 것이었다.
누나의 내림굿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반 굿 같았으면 나도 참석을 하여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벌수가 잇을 것인데 엄마는 누나의 내림굿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부터 나에게는 굿 당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였다.
전에 없이 용돈까지도 넉넉하게 주면서 말입니다.
누나의 내림굿은 3일이 지나도 끝이 안 났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공수를 받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신자는 자기의 신을 받는데서 가장 주요한 것이 공수입니다.
그리고 받은 공수를 내림굿을 보려고 온 일반인들에게 검증을 받음으로서 무당이 되고 점쟁이 노릇을 하게 되는데 공수가 안 내려지면 공수가 나릴 때까지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상관없이 계속 국을 하여 신을 받아들이고 공수를 받아야 만이 다음 단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나에게 공수가 안 내려진다는 말은 저로 하여금 엄마의 신신당부도 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내림굿을 시작하고 4일이 지나자 초조하여진 저는 그만 굿 당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굿 당 안에서는 아직도 굿이 한창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전 엄마는 물론이고 제 얼굴을 아는 많은 무당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쓰지 않는 안경도 쓰고 가발에 심지어는 모자까지도 깊숙이 덮어쓰고 숨을 죽이고 지켜봐야 하였습니다.
“내가 평강공주님이시니라. 내가 평강공주님이시니라.”누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평강공주님 먼 길 행차하셨습니다. 이보게! 어서 나와 인사 여쭙게”누나 앞에서 요령을 흔들고 있던 나와 안면이 아주 많은 무당이 요령을 흔들며 좌중을 둘러보고 외쳤다.
“평강공주님 우리 아들 대학에 합격을 할 지 한 번 말씀을 해 주십시오”사십대 중반의 아주머니 하나가 복채를 상 위에 올리고는 누나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허어! 남보다 한 해 더 공부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그 정성이 갸륵하여 합격을 시켜 주신다는구나. 감사합니다. 평강공주님!”누나가 말을 마치자마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말하자
“어머머 우리 아들 재수 한 것 어찌 알았지? 용하네! 용해!”하고 그 아주머니가 감탄을 하며 누나에게 합장을 한 체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났다.
“평강공주님 우리 영감 보증서서 지금 말이 아닌데 어쩌겠어요?”오십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역시 상에다가 복패를 올리더니 물었다.
“믿을 놈에게 보증을 서야지 네년 자신도 믿지도 못 하면서 서라고 하긴 왜 했어! 또 너도 서 주라고 한 이유가 뭐여? 그 인간하고 한 번 붙어먹은 죄가 그리 크디?”누나가 그 여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하자
“..................”그 여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평강공주님 저희가 전번에 한 사업이 망하여 쉬었다가 다시 하려는데 언제쯤이 좋을까요?”한 남자가 상에 복채를 올리고 누나 앞으로 와 합장을 하고 묻자
“넌 사업은 안 돼. 말이 사업이고 사장이지 일은 남에게 맡기고 계집질이나 일삼는데 어느 신령님이 널 돕겠니?”하고 핀잔을 주자
“그럼 그렇기 이 영감 아직도 계집 꽁무니나 따라 다녀”구경꾼 중에 있던 한 여자가 나오더니 그 남자의 귀를 잡고 당기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공수가 터진 우리 누나는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의 점을 봐줬고 보는 사람들마나 신통력에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계집들이 남편 곁에서 떨어질까요?”그 여자가 누나에게 물었다.
“이년아 내가 비간 온다고 알려주면 비가 올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네 년이 판단하고 치성을 드려야지 그것까지도 일일이 내가 하랴?”누나가 그 여자를 향하여 윽박질렀다.
그렇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무당이나 점쟁이 지나온 일이나 다가 올 일을 예측은 해 준다.
더구나 연애 운이나(불륜관계 포함) 도둑 문제는 거의 100%의 확신을 가진다.
아주 영험한 무당의 경우 남자나 여자 즉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무당에게 점을 쳐 달라고 할 경우 문제의 남자나 여자가 여관이나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떠 올리고는 그 여관의 이름이며 상대의 생김새까지도 이야기를 해 주는 경우도 있으며 도회지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힘들지만 시골에서 생긴 도둑질이 발생을 할 경우 그 범임이 같은 마을에 산다고 할 경우 마치 본 것처럼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맞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사람이 행방불명이 될 경우 행방불명이 된 당사자가 지금 어떤 몰골로 있는가를 신통력을 가진 무당이라면 마치 보고 있는 듯이 말을 해 주기도 한다.
문제는 해결 방법인데 점쟁이는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구름에 비가 있다는 정도만 알려주는 정도이지 그 비를 피하는 방법이나 비가 자기 쪽으로 오지 않게 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 본인의 목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영험한 무당의 경우 치성을 드리라고 하든지 아님 다른 묘책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우리 엄마나 누나의 경우 비가 든 구름 정도는 확실하게 알려주지만 묘책은 틀릴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이제 모두 평강공주님을 믿으니 그만 하시고 온달장군을 찾아야하지요?”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누나 앞에 가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말하였다.
궁금한 생각이 들어 난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렸고 그리고 사람들 틈에서 눈만 빠끔하게 내고 얼굴이며 몸을 모조리 숨겼다.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누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구경꾼들을 둘러봤다.
“오셨구나! 오셨어. 우리낭군 오셨어. 오셨구나! 오셨어. 우리낭군 오셨어.”둘러보던 누나가 갑자기 내 앞에서 멈추더니 아주 화려한 춤사위를 보이는데 그 춤사위는 전문 춤꾼 그 이상의 솜씨였다.
“나오시오! 나오시오! 우리 낭군 나오시오! 나오시오! 나오시오! 우리 낭군 나오시오!”다시 누나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누나가 내가 숨은 곳 앞으로 춤을 추며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 앞으로 오더니 누나가 나에게 손을 뻗친 것이었다.
“누구지? 누구야?”무당들은 물론이고 징이며 사물을 두드리는 남자 무당들까지 소곤거리며 나를 뚫어지라고 쳐다보며 소곤거렸다.
“나오시오! 나오시오 온달장군 나오시오”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내 앞으로 오더니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준 덕에 내 몸 전체가 들어난 나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여전히 구경꾼들은 물론이고 나를 아는 무당들도 나란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나에게 집중이 되었다.
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 손에 끌려 앞으로 나간 나의 안경을 벗긴 것 역시 그 무당이었다.
“앗! 앗!”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군요! 오셨군요! 우리 낭군 오셨군요!”무당들은 물론이고 징이며 사물을 두드리는 남자 무당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 하는 순간에도 누나는 나의 손을 잡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흘낏 엄마를 봤다.
거의 졸도 직전이었고 그런 엄마를 부축하고 있는 것은 외삼촌이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의 아버지도 되는 사람이었다.
“허어! 피는 못 속이는군! 내림이여 내림”구경꾼으로 온 남자 무당 하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난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허어 이일을 어찌하누? 신령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 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푸념 섞인 말투로 읊조렸다
“어찌하긴 어찌 해 신령님 뜻을 거역 할 거여? 이보게 온달장군 목욕재계 시키고 감시하소.”남자 무당이 벌떡 일어서서는 구경꾼으로 와 있는 것으로 만 알았던 남자 무당에게 명령을 하였다.
“낭군님 우리 낭군님 목욕재계하시고 기다리소. 소녀가 낭군님 품에 안기게 기다리소.”누나가 나의 잡았던 손을 명령을 받았던 무당 손에 넘겨주었다.
“온달장군 갑시다.”그 남자 무당이 나의 손을 잡고 당기며 군중들 틈을 헤치며 나갔다.
그리고 난 그 무당의 감시 하에 언제 준비를 하여 두었던지는 몰라도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고무다라이의 물을 이용하여 몸을 씻어야 하였다.
몸을 씻는 동안 날 감시하던 남자 무당은 나에게 놀라운 비밀을 이야기 하여주었다.
외할머니가 무당이었던 우리 외갓집에는 대대로 내림 무당 집안이었고 그 때문에 외삼촌 아니 나의 아버지도 사물을 치며 점을 치는 방법을 배웠단다.
참 여기서 하나 사전에 밝힐 것이 하나있다.
여자 무당의 경우 신을 받아들여 무당 짓을 하기에 배우지 아니하고도 신의 계시에 의한 능력으로 신통력을 보이는 점을 친다.
반면 내림굿을 하지 않는 박수무당인 남자 무당의 경우 내림굿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주로 주역을 공부하거나 골패를 이용하는 육임을 공부하여 점괘를 보는 것이다.
내림굿이나 큰 굿이 있을 경우 같이 참가하여 사물을 치거나 뒷바라지를 하는 것으로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외삼촌 아니 나의 아버지도 사물을 치며 점을 치는 방법을 배우던 도중에 여동생인 우리 엄마에게 신이 내렸고 내림굿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내림굿에서 엄마의 신(神)은 자기 오빠인 나의 외삼촌을 선택하였고 그리고 몸을 섞었으며 거기에서 나라는 인간을 잉태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운명으로 여긴 외할머니는 엄마가 산속으로 기도를 하러 갈라치면 엄마의 오빠인 외삼촌을 항상 대동하게 하였다는 것이었고 기도 중에 신의 계시에 의하여 다시 몸을 수시로 섞은 결과 내림굿을 하고 있는 나의 여동생까지 잉태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엄마에게 신이 내리는 순간에는 오빠인 나에겐 외삼촌이자 아버지며 자신에게는 오빠인 외삼촌이 아무리 사정을 하여도 몸을 허락하지 아니하지만 기도를 하는 도중에 신의 계시를 받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을 섞게 되는 것이 무당들의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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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제 친구 중에(부부친목계 계원임) 자기 마누라가 내림굿을 하고 신을 받고 점쟁이 노릇을 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초등학교는커녕 초등학교 문턱도 못 밟아본 여자이기에 한글은 물론이고 자기 이름마저도 쓰지 못 하여 은행 전표를 사전에 집에 많은 양을 가져다 놓고 필요한 경우 친구가 사전에 적어주면 그걸 가지고 가서 돈을 찾아 올 정도로 무식하였으며 부부 동반으로 노래연습장에 가게 되어 그 친구 마누라가 노래를 부를 경우 그 친구 말고는 나머지 계원들은 음치에 고래 잡아먹는 것 같이 고래고래 고한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소음을 피하여 밖에서 나와 있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런 그 여자가 신이 내렸고 그리고 내림굿을 하였다고 그 친구가 말하며 돈을 벌면 자그마한 암자나 하나 사서 운영을 할 계획이라고 당찬 포부까지 말하더군요.
놀라운 사실은 계모임을 하고 나와 노래연습장으로 가는 도중에 길가 건물에 달린 간판을 보고는 그대로 읽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한문까지도 능숙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노래연습장에서 생겼습니다.
고래 멱따는 소음을 피하여 나온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음치도 아니요 고래 멱따는 소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꾀꼬리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결국 그 여자하고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친구하고는 섹스를 피하였고 기도를 가서는 신의 계시라면서 같이 기도를 하는 다른 뭇 남자들과 정을 통한 것입니다.
그 친구나 다른 모든 이들이 믿지 못 할 말이었습니다.
신의 계시를 무시하면 신통력이 생기지 않는 다는 말이 말입니다.
신을 받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고 그 결과 친구는 그런 자기 마누라가 부정하다며 결국은 이혼을 하고 말았답니다.(이는 필자가 직접 목격을 한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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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난 굿 당의 굿을 하는 방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방에 갇혀야 하였고 어찌하던지 그 난감한 곳에서 피해 보려고 갖은 용을 썼다.
저를 감시하던 박수무당의 눈을 파하여 도망을 치려고 시도를 몇 번이나 하였다.
하지만 골병이 든 것은 나의 멱살이었다.
번번이 박수무당의 손에 잡혔고 결국은 멱살을 잡힌 체 다시 그 골방에 끌려 들어가야만 하였다.
“서방님 평강이옵니다. 소녀 들어가옵니다.”마침내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괴로운 순간이었다.
비록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이미 섹스 아니 빠구리 경험을 있었었다.
그러니까 누나의 내림굿을 하기 전 해의 여름이었다.
잡신이 들어와 힘들게 만든 어느 아주머니 하나에게 쓸모없는 귀신의 하나인 허주가 붙어 그 허주를 때어내는 굿을 하게 되었다.
큰 굿의 경우 많은 박수무당을 불러서 사물을 치게 하지만 그런 사소한 굿의 경우 나처럼 무당이 되지 못 하고 무당이 되어야 할 팔자를 가진 사람들 중에 별 것 아닌 사람을 아르바이트 형태로 오게 하여 사물을 치게 하는데 그 굿에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 몸에 붙은 허주는 아무리 엄마가 구슬리도 보고 야단을 쳤지만 나오려고 들지를 아니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굿을 하던 엄마가 지쳤던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쉬었다가 하자고 하곤 나가버리자 다른 사람들도 모조리 쉬려고 자리를 떴다.
“히히히 예쁜 총각이네 나랑 연애 한 번 어때?”허주가 붙은 아주머니가 히죽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무슨 연애요?”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며 묻자
“이거 몰라?”아주머니가 오히려 가까이 오더니 나의 좆을 덥석 잡았다.
빠구리 경험은 전무 한 상태이지만 야한 동영상은 수도 없이 접한 상태였고 그런 야한 동영상을 봐가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딸딸이를 치던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 마다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걱정이라면 장소가 문제였다.
“저기 좋은 곳 봐 뒀거든 어서 가”그 여자는 나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그 여자의 손에 끌려 간 곳은 굿 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름 없는 무덤 옆이었고 거기에 도착을 하자마자 그 여자는 치마를 들치더니 팬티를 내렸고 그리고 치마를 밑에 깔고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다.
내가 본 최초의 여자 알몸 아니 검은 털이 무성한 보지가 적나라하게 내려다 보였다.
생각을 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다.
난 바지만 밑으로 내려 발목에 걸치고는 그 아줌마 몸 위로 올라가 좆을 쑤셨다.
야한 동영상을 보며 딸딸이를 치던 것과는 비유가 안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쌌으면 그만 해”난 처음인지라 오래 버티질 못 하고 몇 번 펌프질을 하지도 못 한 상태에서 종착역에 닿고 말았다.
그러자 그 여자가 나의 가슴을 밀치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그 여자 말대로 그만 둘 내가 아니었다.
난 그대로 다시 펌프질을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계속 발버둥을 치며 가슴을 밀치며 그만 두라고 하였지만 난 그 여자를 누른 채 계속 펌프질을 하였다.
잡신이 붙은 여자인지라 힘은 좋았지만 밑에 깔린 탓에 나의 힘을 감당하지 못 하였다.
십 여분을 그렇게 펌프질을 해 대자 그 여자의 반항은 학연하게 줄었다.
다시 십 여분이 지나자 언제 만류를 하였느냐는 듯이 그 여자 스스로가 몸을 들썩이며 난 마구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십 여분이 지나자 난 그 여자 몸 안에 두 번째의 좆 물을 무사히 뿌릴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재개된 그 여자의 굿에서 그 여자 몸에 붙은 잡신은 아주 쉽게도 떨어져 나왔다.
그 여자가 굿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기에 윙크를 날리며 은근한 눈길을 주었으나 그 여자는 언제 봤냐는 듯이 날 무시하고 휭 하니 가버렸다.
그 여자는 그 여자 스스로가 나에게 몸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여자에게 붙었던 잡신이 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에게 두 번째 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핏줄을 나눈 누나란 것이 부담이 되었다.
비록 누나 스스로가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누나 몸에 붙은 평강공주님의 신이 나를 선택하였다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하면서도 말이다.
“들어오시라고 어서 하게 어서”날 감시하던 박수무당이 벌떡 일어서며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던 박수무당의 표정은 진지하면 진지하였지 하나도 장난기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드.....들어오시오”더듬으며 겨우 대답하였다.
“서방님”누나가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날 감시하던 박수무당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누나는 구석에 있던 이불을 곱게 펴더니 좌정을 하였다.
“서방님이 벗기셔야죠?”내가 우두커니 서 있자 누나가 말을 하며 올려다봤다.
“신의 계시니 주저 말고 어서 하시게”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던 무당의 목소리였다.
“뽕! 뽕!”창호지에 구멍이 꿇리기 시작하였다.
“서방님 부끄럽사옵니다. 어서 불을 끄시죠.”누나가 상냥스런 목소리로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순간 난 봤다.
누나의 붉혀진 얼굴을...........
난 불을 끄고 운명이며 팔자려니 하는 생각을 하며 누나의 무복을 벗겨야 하였고 그리고 기어이는 누나를 알몸으로 만들었고 나의 일부를 누나의 깊숙한 곳으로 보내는 의식을 치러야만 하였다.
누나는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너무나 노련하게 날 리드하였다.
아주 경험이 많은 그런 여자 같았다.
누나와 내가 빠구리를 하는 동안에도 옆방의 굿 당에서는 여전히 사물 소리가 들렸고 요령소리도 들렸으며 무당의 주술도 그대로 들렸다.
그러나 누나와 빠구리가 끝이 나고 난 아연 실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너무나도 노련하게 리드하던 누나는 숫처녀였다.
누나의 보지며 엉덩이 밑에 깔린 요에는 누나가 처녀였음을 증명하는 피가 나의 좆 물과 함께 묻어있었다.
그러자 누나는 웃었고 그리고 미리 방안에 준비하여 두었던 대야의 물로 뒷물 질을 하였고 다시 무복을 입고는 굿 당으로 가서는 마지막 굿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가 있은 작두 타기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처녀막이 뚫린 여자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사람보다도 더 활기차게 몸을 놀렸고 작두도 훌륭하게 탔다.
누나에게는 또 하나의 신 엄마가 생긴 것이다.
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한 무당이 누나의 신 엄마가 된 것이다.
굿이 끝났다.
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처녀막이 뚫린 여자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사람보다도 더 활기차게 몸을 놀리던 누나가 굿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걸음걸이가 거북해 보인 것이다.
누나가 얼굴을 붉히더니 나와 빠구리를 하였던 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의 신 엄마가 누나가 흐느끼는 방으로 조용하게 들어가며 방 앞에 있던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물리쳤다.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누나는 계속 훌쩍였다.
엄마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엄마의 한숨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누나는 계속 신 엄마 집에 들락날락하며 무당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질 아니하였다.
누나는 내림굿을 하고 나서 반년이 지나자 손님을 받았다.
누나의 명성은 용한 점쟁이로 자리 잡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 집에서 큰길 하나를 거리에 두고 세를 얻은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점을 보는 것은 거기에서 하였지만 일반 생활은 우리 집에서 엄마와 나 그리고 누나가 함께하였다.
누나하고 빠구리를 한 경험을 가졌던 내가 더 안달이 났다.
하지만 누나는 나와 손길은 물론이고 눈길마저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난 누나의 내림굿 때의 빠구리가 마지막이라고 단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신을 받은 강신무의 경우 일 이 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산속이나 위치가 좋은 곳을 찾아서 거기에서 생활을 하며 기도를 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신통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손님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를 하러 가는 계절은 손님이 적은 계절에 주로 간다.
무더운 여름이거나 아님 아주 추운 겨울을 이용하여 가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의 여름에 누나가 기도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누나의 기도에 동행하라고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누나가 백일기도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자기의 오빠이자 엄마 자신의 아들딸의 아비이기고 한 나의 외삼촌이자 아버지에게 상의를 하였더니 기도 중에 뒷바라지를 자신이 들겠다고 하자 엄마가 놀라며 나를 보내겠다고 하자 반대를 못 하더라는 말을 듣고 난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신의 계시라고 하지만 친여동생하고 빠구리를 한 것도 부족하여 자기 딸인 우리 누나를 넘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고 외삼촌이자 아버지를 잘 아는 박수무당이 나에게 알려준 이야기였다.
외할머니 그 위부터 기도를 하던 곳이 한 곳 있다.
깊고 외진 산속에 위치한 자연동굴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은 우리 외갓집의 식솔이라며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외갓집 식솔들 중에 누가 기도를 드리러 갈 경우 사전에 전 식솔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내어 언제부터 언제까지 누가 기도를 할 것이니 그리 알라고 하면 그 기간 중에는 아무도 거기로 오지 않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운 우리 외갓집안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기도는 깊지 않은 자연 동굴 속에서 이루어지고 생활은 동굴 입구에 지어지 허름한 움막 안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 자는 기도에만 전념하고 자신의 몸에 내린 몸주신에게 공양을 할 음식을 만드는 일이며 받치는 일만 할 뿐이지 자심이 목을 음식은 손끝도 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 하나 따라붙게 되는데 누나의 기도에 내가 따라붙게 된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여 가기 싫었다.
누나가 나의 빠구리 상대가 되어 줄 리가 만무하였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눈길이 스치는 것도 꺼려하던 누나가 아니었던가.
그런 누나의 기도에 뒷바라지에 가고 싶어 할 남자가 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였다.
기도 이틀 째 거의 자정에 가까운 무렵 동굴 안에서 기도를 하던 누나가 갑자기 온달장군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나가 헐래 벌떡 내가 있던 움막으로 들어오더니 사정을 말도 하지 않고는 마구잡이로 날 거의 끌다시피 동굴로 들어갔고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부둥켜안고는 온달장군이라고 말하며 자기를 보듬어 달라고 외쳤다.
난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누나를 기도하기 위하여 깔아둔 비닐장판 조각 위에 눕히고는 옷을 벗겼고 그리고 나도 옷을 벗고는 누나 몸 위에 올라타고는 빠구리를 하였다.
모처럼 온 기회인데 한 번으로 만족을 할 내가 아니었다.
한번 좆 물을 싸자 누나는 나를 나의 동정을 앗아간 잡신이 붙었던 아주머니처럼 나를 밀쳤지만 난 누나 몸 위에 올라타고는 계속 펌프질을 하였다.
나와 누나의 실랑이는 새벽 동이 트면서 끝이 났다.
그것 역시 조우에 불과하였다.
누나는 백일기도를 하는 백일동안 거의 사흘에 한 번꼴로 난 온달장군으로 알고 몸을 주었다.
하지만 가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자기 오빠와 빠구리를 하여 나와 내 누나를 낳게 만들 것과는 달리 고맙게도 누나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나의 첫 기도 후 난 바로 군대에 입대를 하여야 하였다.
군대에서도 걱정이라면 오직 한 가지.
누나가 내가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이에 기도를 간다면 어쩔까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박수무당이 따라가서 뒷바라지를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기를 임신토록 만든 장본인인 외삼촌이자 아버지인 엄마의 오빠가 뒷바라지를 한다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누나는 내가 군대에서 제대를 한 지난 늦가을까지도 기도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또 누나와 나의 외삼촌이자 나와 누나의 아버지이기도 한 엄마의 오빠가 자신이 자기 동생에게 임신시켰던 딸인 우리 누나의 기도 뒷바라지를 못 하여 안달은 내었다는 소문이 박수무당은 물론이가 강신 무당 사이에서도 파다하게 떠돌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행방도 모르는 상태란 것이 날 안심하게 만들었다.
행운은 나의 편이었다.
추석이 지나자 누나는 신통력에 떨어진다며 안타까워하였다.
가을이지만 끝나는 시점이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겨울을 극히 싫어하였다.
난 누나를 위하여 아니 누나를 품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하여 두툼한 비닐을 준비하였다.
누나가 용도를 물었다.
동굴 입구를 막아 바람이 적게 들어오게 할 작정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갖가지 겨울 장비를 준비하였다.
누나보다 훨씬 일찍 산으로 들어가 준비를 하였고 틈만 나면 산 밑으로 내려가 연료도 구입하였고 말라비틀어진 장작들도 낑낑거리며 운반하였다.
여름에 비하여서는 춥겠지만 그런대로 백일기도를 할 동안은 버틸만한 장작이며 연료가 모이자 난 누나에게 연락을 하였고 구월 초 누나가 사전 답사를 하더니 흡족해 하였고 그로부터 보름 후 완전하게 준비를 하여서 누나가 입산을 하였다.
오랫동안 몸주신을 부려먹기만 하였지 기도를 멀리 한 탓에 누나는 힘들어하며 기도를 하였으나 누나의 몸주신인 평강공주는 보름이 되어도 접신을 안 하는지 뜬눈으로 밤을 새며 기도를 하였다.
누나 몸에 누나 몸의 몸주신인 평강공주의 신이 붙지 않자 안달이 난 것은 누나보다 나였다.
날씨가 추운 탓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입술이 말라가기만 하였다.
“온달장군님 온당장군님”누나 입에서 온달장군을 찾기 시작한 것은 누나가 기도를 시작하고 보름하고도 이틀이 지난날의 멀쩡한 대낮이었다.
난 다시 누나의 몸주신인 평각공주의 낭군인 바보온달장군이 되어서 동굴 안에서 알몸으로 누나와 뒹굴기 시작하였다.
첫 기도 때와는 달리 두 번째 기도에서는 거의 매일 누나는 바보온달장군을 찾았다.
그 덕에 난 거의 매일 누나 보지에 나의 분신인 좆 물을 뿜을 수가 있었다.
음력으로 작년 년 말 설을 몇 칠 앞두고 하산을 할 때는 다리가 후둘 거려서 몇 번이고 쓰러질 뻔하였다.
그리고 난 결심을 하였다.
누나의 뒷바라지를 위하여서라도 난 박수무당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말이다.
단골네라는 비웃음에 시달릴 누나를 위하여서 말이다.
“상봉길경에 불복 만재로구려 만~재수야 아아헤헤헤 에헤에라 누려라열의 열 사랑만 하십소사 나하~ 봉헤 봉헤로다 보옹헤~나무~ 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억 일십일만 구천오백 동명풍으다 대자로 대비 아등도사는 금상에두 여래신데 무량수제불 열에만 보살이로다 아아헤헤헤 에헤에라 누려라 열의 열 사랑만 하십소사 나하~ 봉헤 봉헤로다 보옹헤~건구건명에도~ 이집도 좋소마는 이집은 구옥이니 곡가로다가 제쳐 놓고 와가성주를 이룩헐제 어떤 터에다가 터를 잡나 신궁기는 명당터요 구궁기 복터로다 노적봉이 비쳤으니 거부장자가 날자리 문필봉이 비쳤으니 대대문장이 날자리요 일산봉이 솟았으니 자손창성 헐자리요 효자봉이 비쳤으니 열부열녀가 날자리로구려 도량에 풀이나면 하방초라는 풀이 나고 늙지 않는 불로초와 죽지 않는 불사약이 좌우에 생초허니 그런 터에 사람나면 성인군자가 날 자리로구려 이런 터에다 집을 질 제 호박주추 산호기둥 금파도리 밀화대문 추문주를 늘여놓고 황금으로다 보를 얹고 순금으로 서까래 걸고 백금으로 부연 달고 천년 기와 만년 골패 보기 좋게두 이뤄를 놓고 자개로다가 마루를 깔고 백명주사로 벽을 바르고 잡귀잡신은 원강 천리로 소멸되니 무사태평이 이 아니냐 만복이 자아 아헤~ 에헤에라 누려라 열의열 사랑만 하십소사 나하 봉헤 봉헤로다 보옹에헹에”누나의 비나리가 시작이 되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누나의 몸주신인 평강공주의 목소리다.
뿐만 아니다.
누나가 비나리를 부려며 춤사위를 덩실덩실 추면서 나에게 눈웃음을 간간이 주고 있다.
아니 누나가 아니라 누나의 몸주신인 평강공주께서 나 아닌 부군인 온달장군을 찾을 것 같다.
흐흐흐 오늘도 기대를 해 봐?
전통 불교와 미신은 완전한 차이가 나지만 우리나라의 토속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는 미신에는 불교가 많이 가미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추어 본 소설을 특집 형식으로 올립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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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글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자 작자가 아는 몇 가지를 말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무당은 우리 민족의 토속 종교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런 토속 종교인 무당이 존재하던 나라에 들어온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가 들어오자 토속 종교인 무당이 설 자리가 없어진 반면 토속 종교만이 신이 전부라고 믿어 온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융화되기는 무척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불교가 취한 것이 한국적인 불교 즉 토속적인 것이 가미가 된 불교 화 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절에 가면 있는 칠성각이며 산신각이고 그리고 바다나 강이 보이는 절에 있는 용왕 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수 불교에서는 칠성이며 산신 그리고 용왕이란 존재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칠성은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으로 여겼고 용왕은 바다와 강을 다스리는 신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산신입니다.
과연 산신이 산의 신을 말하는 것일까요?
혹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산신각의 산신은 다름이 아니라 단군 임금을 말한다고 말입니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 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습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인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십니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고 합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답니다.
한번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답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답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답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십니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堯를 말함.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庚寅年:당고의 즉위년은 무진년으로 50년 뒤면 정사 년이므로 경인년이란 표현은 아마 틀린 듯함)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답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자 대신 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답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 고려 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답니다.
그 밖의 다른 기록들도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단군신화라는 표현입니다.
한문으로 보면 檀君⌒神話로서 檀자는 박달나무 단자이고 君은 임금 군자이며 神은 귀신 신자이고 話는 말씀 화자입니다.
즉 뜻 그대로 표현을 한다면 막달나무 임금님 귀신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단군은 신의 반열에 드신 분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그건 신라 고구려 혹은 백제시대 때부터 유지해 온 사찰에 있는 산신각에 있는 산신의 탱화는 거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고 또 그 탱화는 구전으로 전해 오던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란 것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인데 하찮은 야설 따위나 쓰는 저이지만 전 그 학설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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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람은 죽지를 말고 젊은 사람은 늙지를 마라고 등잔가세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갑자 살았는데 요네 나는 백년도 못살아 구름도 쉬어 넘고 날짐승도 쉬어가는 심산유곡을 어이를 갈꼬 옛 늙은이 말 들으면 북망산이 멀다드니 오날 보니 앞동산이 북망 못가겠네 쉬어나가자 한번가면 못 오는 길을 어이를 갈꺼나 갈거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이가리 어이가리 북망산천을 어이가리 황천이 어데라고 그리쉽게 사셨는가 간다간다 나는간다 북망산천을 나는 간다>
그는 눈만 뜨면 이런 노래를(?)듣고 커 갔다.
아니 잠을 자면서 꿈결에서도 노래 아닌 노래를 들어야 하였다.
우리 엄마가 무당이라 사람들은 우리 엄마를 당골네라고 부르고 누나도 무당이고 알고 보면 아버지이자 동시에 외삼촌이기도 한 사람 역시 무당 노릇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다.
요즘 말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답은 아니다가 맞다.
물론 예전에 천시 받던 뱃놈 백정이의 경우 돈벌이가 좋고 좋은 고기만 먹이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 말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무당의 경우 돈은 좀 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람들은 무당 앞에서는 대 놓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돌아서면 서기가 무섭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럼 먼저 무당에 대하여 알아보자.
무당이나 점쟁이가 되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한 가지는 소위 무병에 걸린 경우이다.
무병은 백과사전에서 한 번 찾아보았다.
무병--->신병(神病)이라고도 한다.
그 증세는 대략 다음과 같다.
까닭 없이 원인 모를 병을 앓기 시작해 의약의 효험 없이 고생하다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불면증에 걸리며, 꿈을 자주 꾸고 환상·환청의 경험을 자주하고 심해지면 정신착란을 일으켜 집을 뛰쳐나가 산야를 헤맨다.
이렇게 환상에 이끌려 다니다가 땅속에서 방울·부채·명두·신 칼 등을 발견하기도 하며,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을 향해 느닷없이 뭐가 나쁘다는 둥 무엇을 조심하라는 둥의 이야기를 지껄이기도 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하다가 문복(問卜)을 하거나 굿에 참여해 그러한 증세가 무병 때문이며 자신이 무당이 될 운명임을 알게 되면 내림굿이라는 입무(入巫) 의례를 해 무당이 된다.
일단 내림굿을 받고 무의(巫儀)에 참석하게 되면서 병은 씻은 듯이 낫는다.
아직까지는 강신무가 되는 처음 단계에서 겪게 되는 무병에 대해 뚜렷한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어떤 방법의 치료도 불가능하며 오직 내림굿을 받고 무의에 참석함으로써 치료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병을 앓은 끝에 무당이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세습무가 있다.
세습무 역시 백과사전을 통하여 살펴보자.
세습무--->부모로부터 무당의 신분이나 무직(巫職)을 물려받은 무당을 세습무당이라고 한다.
주로 남도지방에 많은데, 전라도지방의 "단골레, 경상도지방의 "지모산이", 제주도지방의 "심방" 등이 대표적이다.
무당이 되기 위한 강신(降神)의 과정이나 신(神)이 들리는 일이 없으며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일은 있어도 신을 모시는 신단(神壇)을 차리거나 신탁(神託)을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무당인 부모로부터 춤이나 악기연주, 노래(巫歌), 의상, 제상차림, 조화(造花) 및 전지(煎紙) 만들기, 부적에 대한 이해, 점복(占卜) 등의 무업을 배워 무당이 된다.
무당의 자질을 영험과 재주라고 할 때 이들은 영험보다는 재주를 가지고 무업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무업을 수련하므로 이들의 무예는 매우 뛰어나며 오늘날 이들의 무예는 독자적인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무당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명창이나 가수로 전업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무업을 세습하는 것은 사회적인 신분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무업은 천한 직업으로 고정된 신분이어서 자식은 부모의 신분을 물려받으면서 무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무당의 피는 혈통적으로 유전된다는 사회적인 편견도 무업의 세습을 강제했다. 이처럼 이들은 신분이나 혈통적으로 특수하게 취급받았기 때문에 같은 무업계통에 종사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동해안 남무(男巫)인 김석출(金石出)의 가계처럼 대규모의 무가(巫家)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럼 나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무병을 앓아서 무당이 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뒤를 이어서 무당노릇을 하게 되는 세습무가 된 것이 바로 나이다.
무병을 앓아서 무당이 되어 점을 보는 점쟁이 겸 무당의 경우 음력 정월 한 달이 최고의 성업 기간이다.
명성이 높은 점쟁이의 경우 정월 한 달에 버는 돈이 일 년을 두고 버는 돈의 80% 이상이 되는 사람도 없잖아 많다.
하지만 세습무당의 경우 앞의 백과사전에서도 말하였다 시피 부모로부터 춤이나 악기연주, 노래(巫歌), 의상, 제상차림, 조화(造花) 및 전지(煎紙) 만들기, 부적에 대한 이해, 점복(占卜) 등의 무업을 배워 무당이기에 솔직하게 말하여 점복의 경우 무병에 결려 무당이 된 점쟁이와는 달리 신통력이 덜하기에 수입이 변변치 못 한 것이 대부분이고 고작 한다고 하는 것이 그런 무당이 데리고 온 손님들의 굿을 할 경우 춤이나 악기연주, 노래(巫歌), 의상, 제상차림, 조화(造花) 및 전지(煎紙) 만들기 등을 하는 허드렛일을 하여서 끼니를 연명한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즉 창녀 뒤에서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돈을 뜯어가는 깡패가 있듯이 무당 뒤에서 기둥서방 아닌 신(神) 서방 노릇을 하며 끼니를 연명하는 노릇을 하는 것이 세습무당의 본 임무인데 내가 바로 그런 세습무당의 길로 들어서야 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온 총각의 고민을 여러분들이 풀어 주였으며 한다.
남자들의 경우에도 간혹은 그런 경우가 있지만 여자들의 경우 거의 전부가 무병에 걸렸으나 그걸 모르고 치료를 시도하다가 문복(問卜)을 하거나 굿에 참여해 그러한 증세가 무병 때문이며 자신이 무당이 될 운명임을 알게 되면 내림굿이라는 입무(入巫) 의례를 해 무당이 되는데 우리 엄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가 아닌 외삼촌(사실은 나의 생부이지만)입을 빌리면 외할아버지도 세습무당이었고 외할머니의 경우 무병에 걸렸다가 무당이 되었던 전통적인 무당 집안이었고 엄마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하여도 모범생에 선생님들의 돈독한 사랑을 받으며 학교를 빛낼 학생으로 촉망을 받았으나 갑자기 무병에 걸렸고 그리고 2학년을 넘기지 못 하고 내림굿을 한 끝에 무당이 되었다고 하였다.
내가 나의 아버지가 평소에 외삼촌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아버지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리 누나가 무병에 결려 내림굿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나보다 3살이 많은 누나가 하나 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누나가 대학 2학년일 때 누나가 그만 무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일반인이 무병에 걸려서 하는 내림굿일 경우에도 아주 크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습무당 집안의 사람들이 무병에 걸려 무당이 되려고 내림굿을 하는 경우 사돈에 팔촌까지도 모여들어서 굿을 하게에 그 웅장함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규모는 대단하다.
우리 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엄마의 오빠이면서도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 외삼촌까지도 참석을 하였다.
무당만 하여도 거의 20명이상이 모인 정말이지 규모가 큰 내림굿을 누나는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습무당의 집안에 따라 약간의 다른 점은 있게 마련인데 우리 외갓집안의 경우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면 내림굿을 사흘 이상 하는 동안에 내림굿을 받는 무병을 앓는 여자의 경우 신(神) 서방과 동침을 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세습무당이 될 남자의 경우에게 신(神) 각시를 정하여 동침을 하게 되는 것이 외갓집안의 특징이었는데 우리 엄마가 내림굿을 받으면서 신의 명령에(?)따라 선택을 하였던 신(神) 서방이 다름이 아닌 자기 오빠인 나의 외삼촌이었고 그래서 누나도 외삼촌의 딸이기도 하며 나의 경우 엄마가 무당 노릇을 하다가 신통력 약해지자 다시 치성을 드리며 기도를 하는 도중에 신의 계시에 의하여 다시 자신의 오빠이자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사람하고 또 동침을 함으로서 탄생을 하게 된 것이 마로 나라는 인간이었다.
동해안의 유명한 세습무당의 표본이라고 할 김석출 선생님 집안도 그렇듯이 우리 외갓집안도 역시 근친혼이 아닌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이미 그런 저런 굿에 참석을 하며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징이나 장구 혹을 꽹과리 정도는 아주 능숙하게 다루면서 익혀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절대 나에게는 멀리 하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여자들이 신을 받는 행사인 내림굿에는 가까이 하지를 못 하게 하였다.
그 연유를 몰랐다.
누나의 내림굿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내림굿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내림굿--->신들린 사람에게 무당이 되도록 행하는 굿을 내림굿이라고 한다.
신들린 사람에게 실려 있을지도 모르는 잡귀·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을 행한 다음, 무속의 주신(主神)을 받아들여 새로운 무당을 탄생시키는 굿이다.
따라서 내림굿은 신이 내려서 무당이 되는 한강 이북의 강신무지역에만 존재한다.
본래 허주굿과 내림굿은 별개의 굿이었으나 요즘에는 허주굿의 과정이 내림굿에 포함되어 행해진다.
굿의 절차는 일반 재수굿의 절차에 내림굿의 절차가 추가되어 진행되는데, 내림굿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잡귀·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의 과정과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을 밝히는 과정, 그리고 말문을 여는 과정 등이 있다.
허주굿은 신병(神病)으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혼돈상태에 빠져 있는 강신자를 정화하는 것으로, 강신자가 혼돈상태에서 벗어나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현실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신이 인간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강신자가 숨겨져 있는 해당 신복(神服)과 무구(巫具)를 찾음으로써 확인된다.
"말문을 연다"는 것은 처음으로 신의 말인 공수를 주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강신자가 신의 뜻을 파악하고 신의 의사를 인간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세 과정은 평범했던 사람을 사제로 변화시키는 내림굿의 특징적인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당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 삶의 문제에 대해 신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문을 여는 과정이다.
따라서 말문이 열리지 않을 경우 강신자는 무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보통 말문을 여는 과정은 굿에 참여한 사람들의 점을 봐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강신자가 신의 사제로서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장래의 손님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편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몸주신"을 밝히는 과정으로서 강신자는 평생 동안 이 신을 모시게 된다.
내림굿을 마치고 나면 강신자는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다른 무당에 의해 별호를 얻게 되는데, 이는 내림굿을 거친 강신자는 더 이상 일상적인 인간세계에 속하는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강신자와 내림굿을 해준 무당은 서로 신자식(神子息)·신부모(神父母)의 관계를 맺게 되며, 신자식은 신부모에게서 무업(巫業)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야만 한다.
굿의 절차와 내용은 물론이고 수많은 종류의 무가(巫歌), 절차에 따라 달라지는 춤과 음악, 굿상 차리는 방법과 굿상에 올릴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 굿의 과정에 등장하는 무구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이렇게 무속의 절차와 내용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서 갓 무당이 된 강신자는 점차 성숙된 무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위의 설명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집안마다 조금씩 들린 것이 세습무당 집안의 풍습이다.
우리 외갓집안의 경우 여기서 약간 다름 점이 있다면 강신자가 자신에게 내린 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신이 인간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신자가 신 내림의 하나의 방법이기도 한 공수를 받아 말문을 열고 내림굿에 참석을 한 일반인들의 점을 보자고 또 자신에게 내린 신의 몸주신을 밝히고 다른 무당으로부터 별호를 얻고 또 내림굿을 진행하여준 무당하고 신(神)부모의 인연을 맺으며 그리고 강신자가 숨겨져 있는 해당 신복(神服)과 무구(巫具)를 찾음으로써 확인하게 되는 것과 달리 강신자가 자신의 신(神)서방을 지적하고 그 강신자에게 지적을 당한 신(神)서방이 될 자를 불러들여 숨겨져 있는 해당 신복(神服)과 무구(巫具)를 찾음으로써 한 과정을 통과 하게 되며 동안 신(神)서방을 지적당한 자는 내림굿을 하는 장소 안에 미리 준비를 하여 둔 정갈함 물로 목욕재개를 하고서는 또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면 신을 받고 지친 새 무당이 된 여자가 잠든 처소로 들어가서는 품어주면 그 처소 밖에서는 다시 신명나게 신(神)부모의 주도하에 내림굿을 절정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 우리 외갓집안의 내림굿 특징인데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우리 누나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엄마는 내림굿을 하게 되면 남자인 나를 가까이 오지 못 하게 하였던 것이었다.
누나의 내림굿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반 굿 같았으면 나도 참석을 하여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벌수가 잇을 것인데 엄마는 누나의 내림굿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부터 나에게는 굿 당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였다.
전에 없이 용돈까지도 넉넉하게 주면서 말입니다.
누나의 내림굿은 3일이 지나도 끝이 안 났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공수를 받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신자는 자기의 신을 받는데서 가장 주요한 것이 공수입니다.
그리고 받은 공수를 내림굿을 보려고 온 일반인들에게 검증을 받음으로서 무당이 되고 점쟁이 노릇을 하게 되는데 공수가 안 내려지면 공수가 나릴 때까지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상관없이 계속 국을 하여 신을 받아들이고 공수를 받아야 만이 다음 단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나에게 공수가 안 내려진다는 말은 저로 하여금 엄마의 신신당부도 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내림굿을 시작하고 4일이 지나자 초조하여진 저는 그만 굿 당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굿 당 안에서는 아직도 굿이 한창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전 엄마는 물론이고 제 얼굴을 아는 많은 무당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쓰지 않는 안경도 쓰고 가발에 심지어는 모자까지도 깊숙이 덮어쓰고 숨을 죽이고 지켜봐야 하였습니다.
“내가 평강공주님이시니라. 내가 평강공주님이시니라.”누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평강공주님 먼 길 행차하셨습니다. 이보게! 어서 나와 인사 여쭙게”누나 앞에서 요령을 흔들고 있던 나와 안면이 아주 많은 무당이 요령을 흔들며 좌중을 둘러보고 외쳤다.
“평강공주님 우리 아들 대학에 합격을 할 지 한 번 말씀을 해 주십시오”사십대 중반의 아주머니 하나가 복채를 상 위에 올리고는 누나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허어! 남보다 한 해 더 공부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그 정성이 갸륵하여 합격을 시켜 주신다는구나. 감사합니다. 평강공주님!”누나가 말을 마치자마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말하자
“어머머 우리 아들 재수 한 것 어찌 알았지? 용하네! 용해!”하고 그 아주머니가 감탄을 하며 누나에게 합장을 한 체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났다.
“평강공주님 우리 영감 보증서서 지금 말이 아닌데 어쩌겠어요?”오십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역시 상에다가 복패를 올리더니 물었다.
“믿을 놈에게 보증을 서야지 네년 자신도 믿지도 못 하면서 서라고 하긴 왜 했어! 또 너도 서 주라고 한 이유가 뭐여? 그 인간하고 한 번 붙어먹은 죄가 그리 크디?”누나가 그 여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하자
“..................”그 여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평강공주님 저희가 전번에 한 사업이 망하여 쉬었다가 다시 하려는데 언제쯤이 좋을까요?”한 남자가 상에 복채를 올리고 누나 앞으로 와 합장을 하고 묻자
“넌 사업은 안 돼. 말이 사업이고 사장이지 일은 남에게 맡기고 계집질이나 일삼는데 어느 신령님이 널 돕겠니?”하고 핀잔을 주자
“그럼 그렇기 이 영감 아직도 계집 꽁무니나 따라 다녀”구경꾼 중에 있던 한 여자가 나오더니 그 남자의 귀를 잡고 당기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공수가 터진 우리 누나는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의 점을 봐줬고 보는 사람들마나 신통력에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계집들이 남편 곁에서 떨어질까요?”그 여자가 누나에게 물었다.
“이년아 내가 비간 온다고 알려주면 비가 올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네 년이 판단하고 치성을 드려야지 그것까지도 일일이 내가 하랴?”누나가 그 여자를 향하여 윽박질렀다.
그렇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무당이나 점쟁이 지나온 일이나 다가 올 일을 예측은 해 준다.
더구나 연애 운이나(불륜관계 포함) 도둑 문제는 거의 100%의 확신을 가진다.
아주 영험한 무당의 경우 남자나 여자 즉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무당에게 점을 쳐 달라고 할 경우 문제의 남자나 여자가 여관이나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떠 올리고는 그 여관의 이름이며 상대의 생김새까지도 이야기를 해 주는 경우도 있으며 도회지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힘들지만 시골에서 생긴 도둑질이 발생을 할 경우 그 범임이 같은 마을에 산다고 할 경우 마치 본 것처럼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맞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사람이 행방불명이 될 경우 행방불명이 된 당사자가 지금 어떤 몰골로 있는가를 신통력을 가진 무당이라면 마치 보고 있는 듯이 말을 해 주기도 한다.
문제는 해결 방법인데 점쟁이는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구름에 비가 있다는 정도만 알려주는 정도이지 그 비를 피하는 방법이나 비가 자기 쪽으로 오지 않게 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 본인의 목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영험한 무당의 경우 치성을 드리라고 하든지 아님 다른 묘책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우리 엄마나 누나의 경우 비가 든 구름 정도는 확실하게 알려주지만 묘책은 틀릴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이제 모두 평강공주님을 믿으니 그만 하시고 온달장군을 찾아야하지요?”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누나 앞에 가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말하였다.
궁금한 생각이 들어 난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렸고 그리고 사람들 틈에서 눈만 빠끔하게 내고 얼굴이며 몸을 모조리 숨겼다.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우리 낭군 오셨는가?”누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구경꾼들을 둘러봤다.
“오셨구나! 오셨어. 우리낭군 오셨어. 오셨구나! 오셨어. 우리낭군 오셨어.”둘러보던 누나가 갑자기 내 앞에서 멈추더니 아주 화려한 춤사위를 보이는데 그 춤사위는 전문 춤꾼 그 이상의 솜씨였다.
“나오시오! 나오시오! 우리 낭군 나오시오! 나오시오! 나오시오! 우리 낭군 나오시오!”다시 누나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누나가 내가 숨은 곳 앞으로 춤을 추며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 앞으로 오더니 누나가 나에게 손을 뻗친 것이었다.
“누구지? 누구야?”무당들은 물론이고 징이며 사물을 두드리는 남자 무당들까지 소곤거리며 나를 뚫어지라고 쳐다보며 소곤거렸다.
“나오시오! 나오시오 온달장군 나오시오”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내 앞으로 오더니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준 덕에 내 몸 전체가 들어난 나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여전히 구경꾼들은 물론이고 나를 아는 무당들도 나란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나에게 집중이 되었다.
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 손에 끌려 앞으로 나간 나의 안경을 벗긴 것 역시 그 무당이었다.
“앗! 앗!”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군요! 오셨군요! 우리 낭군 오셨군요!”무당들은 물론이고 징이며 사물을 두드리는 남자 무당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 하는 순간에도 누나는 나의 손을 잡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흘낏 엄마를 봤다.
거의 졸도 직전이었고 그런 엄마를 부축하고 있는 것은 외삼촌이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의 아버지도 되는 사람이었다.
“허어! 피는 못 속이는군! 내림이여 내림”구경꾼으로 온 남자 무당 하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난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허어 이일을 어찌하누? 신령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 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푸념 섞인 말투로 읊조렸다
“어찌하긴 어찌 해 신령님 뜻을 거역 할 거여? 이보게 온달장군 목욕재계 시키고 감시하소.”남자 무당이 벌떡 일어서서는 구경꾼으로 와 있는 것으로 만 알았던 남자 무당에게 명령을 하였다.
“낭군님 우리 낭군님 목욕재계하시고 기다리소. 소녀가 낭군님 품에 안기게 기다리소.”누나가 나의 잡았던 손을 명령을 받았던 무당 손에 넘겨주었다.
“온달장군 갑시다.”그 남자 무당이 나의 손을 잡고 당기며 군중들 틈을 헤치며 나갔다.
그리고 난 그 무당의 감시 하에 언제 준비를 하여 두었던지는 몰라도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고무다라이의 물을 이용하여 몸을 씻어야 하였다.
몸을 씻는 동안 날 감시하던 남자 무당은 나에게 놀라운 비밀을 이야기 하여주었다.
외할머니가 무당이었던 우리 외갓집에는 대대로 내림 무당 집안이었고 그 때문에 외삼촌 아니 나의 아버지도 사물을 치며 점을 치는 방법을 배웠단다.
참 여기서 하나 사전에 밝힐 것이 하나있다.
여자 무당의 경우 신을 받아들여 무당 짓을 하기에 배우지 아니하고도 신의 계시에 의한 능력으로 신통력을 보이는 점을 친다.
반면 내림굿을 하지 않는 박수무당인 남자 무당의 경우 내림굿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주로 주역을 공부하거나 골패를 이용하는 육임을 공부하여 점괘를 보는 것이다.
내림굿이나 큰 굿이 있을 경우 같이 참가하여 사물을 치거나 뒷바라지를 하는 것으로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외삼촌 아니 나의 아버지도 사물을 치며 점을 치는 방법을 배우던 도중에 여동생인 우리 엄마에게 신이 내렸고 내림굿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내림굿에서 엄마의 신(神)은 자기 오빠인 나의 외삼촌을 선택하였고 그리고 몸을 섞었으며 거기에서 나라는 인간을 잉태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운명으로 여긴 외할머니는 엄마가 산속으로 기도를 하러 갈라치면 엄마의 오빠인 외삼촌을 항상 대동하게 하였다는 것이었고 기도 중에 신의 계시에 의하여 다시 몸을 수시로 섞은 결과 내림굿을 하고 있는 나의 여동생까지 잉태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엄마에게 신이 내리는 순간에는 오빠인 나에겐 외삼촌이자 아버지며 자신에게는 오빠인 외삼촌이 아무리 사정을 하여도 몸을 허락하지 아니하지만 기도를 하는 도중에 신의 계시를 받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을 섞게 되는 것이 무당들의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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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제 친구 중에(부부친목계 계원임) 자기 마누라가 내림굿을 하고 신을 받고 점쟁이 노릇을 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초등학교는커녕 초등학교 문턱도 못 밟아본 여자이기에 한글은 물론이고 자기 이름마저도 쓰지 못 하여 은행 전표를 사전에 집에 많은 양을 가져다 놓고 필요한 경우 친구가 사전에 적어주면 그걸 가지고 가서 돈을 찾아 올 정도로 무식하였으며 부부 동반으로 노래연습장에 가게 되어 그 친구 마누라가 노래를 부를 경우 그 친구 말고는 나머지 계원들은 음치에 고래 잡아먹는 것 같이 고래고래 고한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소음을 피하여 밖에서 나와 있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런 그 여자가 신이 내렸고 그리고 내림굿을 하였다고 그 친구가 말하며 돈을 벌면 자그마한 암자나 하나 사서 운영을 할 계획이라고 당찬 포부까지 말하더군요.
놀라운 사실은 계모임을 하고 나와 노래연습장으로 가는 도중에 길가 건물에 달린 간판을 보고는 그대로 읽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한문까지도 능숙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노래연습장에서 생겼습니다.
고래 멱따는 소음을 피하여 나온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음치도 아니요 고래 멱따는 소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꾀꼬리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결국 그 여자하고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친구하고는 섹스를 피하였고 기도를 가서는 신의 계시라면서 같이 기도를 하는 다른 뭇 남자들과 정을 통한 것입니다.
그 친구나 다른 모든 이들이 믿지 못 할 말이었습니다.
신의 계시를 무시하면 신통력이 생기지 않는 다는 말이 말입니다.
신을 받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고 그 결과 친구는 그런 자기 마누라가 부정하다며 결국은 이혼을 하고 말았답니다.(이는 필자가 직접 목격을 한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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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난 굿 당의 굿을 하는 방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방에 갇혀야 하였고 어찌하던지 그 난감한 곳에서 피해 보려고 갖은 용을 썼다.
저를 감시하던 박수무당의 눈을 파하여 도망을 치려고 시도를 몇 번이나 하였다.
하지만 골병이 든 것은 나의 멱살이었다.
번번이 박수무당의 손에 잡혔고 결국은 멱살을 잡힌 체 다시 그 골방에 끌려 들어가야만 하였다.
“서방님 평강이옵니다. 소녀 들어가옵니다.”마침내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괴로운 순간이었다.
비록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이미 섹스 아니 빠구리 경험을 있었었다.
그러니까 누나의 내림굿을 하기 전 해의 여름이었다.
잡신이 들어와 힘들게 만든 어느 아주머니 하나에게 쓸모없는 귀신의 하나인 허주가 붙어 그 허주를 때어내는 굿을 하게 되었다.
큰 굿의 경우 많은 박수무당을 불러서 사물을 치게 하지만 그런 사소한 굿의 경우 나처럼 무당이 되지 못 하고 무당이 되어야 할 팔자를 가진 사람들 중에 별 것 아닌 사람을 아르바이트 형태로 오게 하여 사물을 치게 하는데 그 굿에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 몸에 붙은 허주는 아무리 엄마가 구슬리도 보고 야단을 쳤지만 나오려고 들지를 아니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굿을 하던 엄마가 지쳤던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쉬었다가 하자고 하곤 나가버리자 다른 사람들도 모조리 쉬려고 자리를 떴다.
“히히히 예쁜 총각이네 나랑 연애 한 번 어때?”허주가 붙은 아주머니가 히죽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무슨 연애요?”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며 묻자
“이거 몰라?”아주머니가 오히려 가까이 오더니 나의 좆을 덥석 잡았다.
빠구리 경험은 전무 한 상태이지만 야한 동영상은 수도 없이 접한 상태였고 그런 야한 동영상을 봐가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딸딸이를 치던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 마다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걱정이라면 장소가 문제였다.
“저기 좋은 곳 봐 뒀거든 어서 가”그 여자는 나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그 여자의 손에 끌려 간 곳은 굿 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름 없는 무덤 옆이었고 거기에 도착을 하자마자 그 여자는 치마를 들치더니 팬티를 내렸고 그리고 치마를 밑에 깔고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다.
내가 본 최초의 여자 알몸 아니 검은 털이 무성한 보지가 적나라하게 내려다 보였다.
생각을 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다.
난 바지만 밑으로 내려 발목에 걸치고는 그 아줌마 몸 위로 올라가 좆을 쑤셨다.
야한 동영상을 보며 딸딸이를 치던 것과는 비유가 안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쌌으면 그만 해”난 처음인지라 오래 버티질 못 하고 몇 번 펌프질을 하지도 못 한 상태에서 종착역에 닿고 말았다.
그러자 그 여자가 나의 가슴을 밀치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그 여자 말대로 그만 둘 내가 아니었다.
난 그대로 다시 펌프질을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계속 발버둥을 치며 가슴을 밀치며 그만 두라고 하였지만 난 그 여자를 누른 채 계속 펌프질을 하였다.
잡신이 붙은 여자인지라 힘은 좋았지만 밑에 깔린 탓에 나의 힘을 감당하지 못 하였다.
십 여분을 그렇게 펌프질을 해 대자 그 여자의 반항은 학연하게 줄었다.
다시 십 여분이 지나자 언제 만류를 하였느냐는 듯이 그 여자 스스로가 몸을 들썩이며 난 마구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십 여분이 지나자 난 그 여자 몸 안에 두 번째의 좆 물을 무사히 뿌릴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재개된 그 여자의 굿에서 그 여자 몸에 붙은 잡신은 아주 쉽게도 떨어져 나왔다.
그 여자가 굿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기에 윙크를 날리며 은근한 눈길을 주었으나 그 여자는 언제 봤냐는 듯이 날 무시하고 휭 하니 가버렸다.
그 여자는 그 여자 스스로가 나에게 몸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여자에게 붙었던 잡신이 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에게 두 번째 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핏줄을 나눈 누나란 것이 부담이 되었다.
비록 누나 스스로가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누나 몸에 붙은 평강공주님의 신이 나를 선택하였다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하면서도 말이다.
“들어오시라고 어서 하게 어서”날 감시하던 박수무당이 벌떡 일어서며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던 박수무당의 표정은 진지하면 진지하였지 하나도 장난기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드.....들어오시오”더듬으며 겨우 대답하였다.
“서방님”누나가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날 감시하던 박수무당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누나는 구석에 있던 이불을 곱게 펴더니 좌정을 하였다.
“서방님이 벗기셔야죠?”내가 우두커니 서 있자 누나가 말을 하며 올려다봤다.
“신의 계시니 주저 말고 어서 하시게”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하던 무당의 목소리였다.
“뽕! 뽕!”창호지에 구멍이 꿇리기 시작하였다.
“서방님 부끄럽사옵니다. 어서 불을 끄시죠.”누나가 상냥스런 목소리로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순간 난 봤다.
누나의 붉혀진 얼굴을...........
난 불을 끄고 운명이며 팔자려니 하는 생각을 하며 누나의 무복을 벗겨야 하였고 그리고 기어이는 누나를 알몸으로 만들었고 나의 일부를 누나의 깊숙한 곳으로 보내는 의식을 치러야만 하였다.
누나는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너무나 노련하게 날 리드하였다.
아주 경험이 많은 그런 여자 같았다.
누나와 내가 빠구리를 하는 동안에도 옆방의 굿 당에서는 여전히 사물 소리가 들렸고 요령소리도 들렸으며 무당의 주술도 그대로 들렸다.
그러나 누나와 빠구리가 끝이 나고 난 아연 실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너무나도 노련하게 리드하던 누나는 숫처녀였다.
누나의 보지며 엉덩이 밑에 깔린 요에는 누나가 처녀였음을 증명하는 피가 나의 좆 물과 함께 묻어있었다.
그러자 누나는 웃었고 그리고 미리 방안에 준비하여 두었던 대야의 물로 뒷물 질을 하였고 다시 무복을 입고는 굿 당으로 가서는 마지막 굿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가 있은 작두 타기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처녀막이 뚫린 여자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사람보다도 더 활기차게 몸을 놀렸고 작두도 훌륭하게 탔다.
누나에게는 또 하나의 신 엄마가 생긴 것이다.
누나의 내림굿을 주관한 무당이 누나의 신 엄마가 된 것이다.
굿이 끝났다.
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처녀막이 뚫린 여자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사람보다도 더 활기차게 몸을 놀리던 누나가 굿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걸음걸이가 거북해 보인 것이다.
누나가 얼굴을 붉히더니 나와 빠구리를 하였던 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의 신 엄마가 누나가 흐느끼는 방으로 조용하게 들어가며 방 앞에 있던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물리쳤다.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누나는 계속 훌쩍였다.
엄마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엄마의 한숨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누나는 계속 신 엄마 집에 들락날락하며 무당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질 아니하였다.
누나는 내림굿을 하고 나서 반년이 지나자 손님을 받았다.
누나의 명성은 용한 점쟁이로 자리 잡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 집에서 큰길 하나를 거리에 두고 세를 얻은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점을 보는 것은 거기에서 하였지만 일반 생활은 우리 집에서 엄마와 나 그리고 누나가 함께하였다.
누나하고 빠구리를 한 경험을 가졌던 내가 더 안달이 났다.
하지만 누나는 나와 손길은 물론이고 눈길마저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난 누나의 내림굿 때의 빠구리가 마지막이라고 단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신을 받은 강신무의 경우 일 이 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산속이나 위치가 좋은 곳을 찾아서 거기에서 생활을 하며 기도를 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신통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손님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를 하러 가는 계절은 손님이 적은 계절에 주로 간다.
무더운 여름이거나 아님 아주 추운 겨울을 이용하여 가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의 여름에 누나가 기도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누나의 기도에 동행하라고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누나가 백일기도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자기의 오빠이자 엄마 자신의 아들딸의 아비이기고 한 나의 외삼촌이자 아버지에게 상의를 하였더니 기도 중에 뒷바라지를 자신이 들겠다고 하자 엄마가 놀라며 나를 보내겠다고 하자 반대를 못 하더라는 말을 듣고 난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신의 계시라고 하지만 친여동생하고 빠구리를 한 것도 부족하여 자기 딸인 우리 누나를 넘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고 외삼촌이자 아버지를 잘 아는 박수무당이 나에게 알려준 이야기였다.
외할머니 그 위부터 기도를 하던 곳이 한 곳 있다.
깊고 외진 산속에 위치한 자연동굴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은 우리 외갓집의 식솔이라며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외갓집 식솔들 중에 누가 기도를 드리러 갈 경우 사전에 전 식솔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내어 언제부터 언제까지 누가 기도를 할 것이니 그리 알라고 하면 그 기간 중에는 아무도 거기로 오지 않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운 우리 외갓집안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기도는 깊지 않은 자연 동굴 속에서 이루어지고 생활은 동굴 입구에 지어지 허름한 움막 안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 자는 기도에만 전념하고 자신의 몸에 내린 몸주신에게 공양을 할 음식을 만드는 일이며 받치는 일만 할 뿐이지 자심이 목을 음식은 손끝도 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 하나 따라붙게 되는데 누나의 기도에 내가 따라붙게 된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여 가기 싫었다.
누나가 나의 빠구리 상대가 되어 줄 리가 만무하였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눈길이 스치는 것도 꺼려하던 누나가 아니었던가.
그런 누나의 기도에 뒷바라지에 가고 싶어 할 남자가 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였다.
기도 이틀 째 거의 자정에 가까운 무렵 동굴 안에서 기도를 하던 누나가 갑자기 온달장군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나가 헐래 벌떡 내가 있던 움막으로 들어오더니 사정을 말도 하지 않고는 마구잡이로 날 거의 끌다시피 동굴로 들어갔고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부둥켜안고는 온달장군이라고 말하며 자기를 보듬어 달라고 외쳤다.
난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누나를 기도하기 위하여 깔아둔 비닐장판 조각 위에 눕히고는 옷을 벗겼고 그리고 나도 옷을 벗고는 누나 몸 위에 올라타고는 빠구리를 하였다.
모처럼 온 기회인데 한 번으로 만족을 할 내가 아니었다.
한번 좆 물을 싸자 누나는 나를 나의 동정을 앗아간 잡신이 붙었던 아주머니처럼 나를 밀쳤지만 난 누나 몸 위에 올라타고는 계속 펌프질을 하였다.
나와 누나의 실랑이는 새벽 동이 트면서 끝이 났다.
그것 역시 조우에 불과하였다.
누나는 백일기도를 하는 백일동안 거의 사흘에 한 번꼴로 난 온달장군으로 알고 몸을 주었다.
하지만 가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자기 오빠와 빠구리를 하여 나와 내 누나를 낳게 만들 것과는 달리 고맙게도 누나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나의 첫 기도 후 난 바로 군대에 입대를 하여야 하였다.
군대에서도 걱정이라면 오직 한 가지.
누나가 내가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이에 기도를 간다면 어쩔까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박수무당이 따라가서 뒷바라지를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기를 임신토록 만든 장본인인 외삼촌이자 아버지인 엄마의 오빠가 뒷바라지를 한다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누나는 내가 군대에서 제대를 한 지난 늦가을까지도 기도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또 누나와 나의 외삼촌이자 나와 누나의 아버지이기도 한 엄마의 오빠가 자신이 자기 동생에게 임신시켰던 딸인 우리 누나의 기도 뒷바라지를 못 하여 안달은 내었다는 소문이 박수무당은 물론이가 강신 무당 사이에서도 파다하게 떠돌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행방도 모르는 상태란 것이 날 안심하게 만들었다.
행운은 나의 편이었다.
추석이 지나자 누나는 신통력에 떨어진다며 안타까워하였다.
가을이지만 끝나는 시점이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겨울을 극히 싫어하였다.
난 누나를 위하여 아니 누나를 품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하여 두툼한 비닐을 준비하였다.
누나가 용도를 물었다.
동굴 입구를 막아 바람이 적게 들어오게 할 작정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갖가지 겨울 장비를 준비하였다.
누나보다 훨씬 일찍 산으로 들어가 준비를 하였고 틈만 나면 산 밑으로 내려가 연료도 구입하였고 말라비틀어진 장작들도 낑낑거리며 운반하였다.
여름에 비하여서는 춥겠지만 그런대로 백일기도를 할 동안은 버틸만한 장작이며 연료가 모이자 난 누나에게 연락을 하였고 구월 초 누나가 사전 답사를 하더니 흡족해 하였고 그로부터 보름 후 완전하게 준비를 하여서 누나가 입산을 하였다.
오랫동안 몸주신을 부려먹기만 하였지 기도를 멀리 한 탓에 누나는 힘들어하며 기도를 하였으나 누나의 몸주신인 평강공주는 보름이 되어도 접신을 안 하는지 뜬눈으로 밤을 새며 기도를 하였다.
누나 몸에 누나 몸의 몸주신인 평강공주의 신이 붙지 않자 안달이 난 것은 누나보다 나였다.
날씨가 추운 탓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입술이 말라가기만 하였다.
“온달장군님 온당장군님”누나 입에서 온달장군을 찾기 시작한 것은 누나가 기도를 시작하고 보름하고도 이틀이 지난날의 멀쩡한 대낮이었다.
난 다시 누나의 몸주신인 평각공주의 낭군인 바보온달장군이 되어서 동굴 안에서 알몸으로 누나와 뒹굴기 시작하였다.
첫 기도 때와는 달리 두 번째 기도에서는 거의 매일 누나는 바보온달장군을 찾았다.
그 덕에 난 거의 매일 누나 보지에 나의 분신인 좆 물을 뿜을 수가 있었다.
음력으로 작년 년 말 설을 몇 칠 앞두고 하산을 할 때는 다리가 후둘 거려서 몇 번이고 쓰러질 뻔하였다.
그리고 난 결심을 하였다.
누나의 뒷바라지를 위하여서라도 난 박수무당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말이다.
단골네라는 비웃음에 시달릴 누나를 위하여서 말이다.
“상봉길경에 불복 만재로구려 만~재수야 아아헤헤헤 에헤에라 누려라열의 열 사랑만 하십소사 나하~ 봉헤 봉헤로다 보옹헤~나무~ 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억 일십일만 구천오백 동명풍으다 대자로 대비 아등도사는 금상에두 여래신데 무량수제불 열에만 보살이로다 아아헤헤헤 에헤에라 누려라 열의 열 사랑만 하십소사 나하~ 봉헤 봉헤로다 보옹헤~건구건명에도~ 이집도 좋소마는 이집은 구옥이니 곡가로다가 제쳐 놓고 와가성주를 이룩헐제 어떤 터에다가 터를 잡나 신궁기는 명당터요 구궁기 복터로다 노적봉이 비쳤으니 거부장자가 날자리 문필봉이 비쳤으니 대대문장이 날자리요 일산봉이 솟았으니 자손창성 헐자리요 효자봉이 비쳤으니 열부열녀가 날자리로구려 도량에 풀이나면 하방초라는 풀이 나고 늙지 않는 불로초와 죽지 않는 불사약이 좌우에 생초허니 그런 터에 사람나면 성인군자가 날 자리로구려 이런 터에다 집을 질 제 호박주추 산호기둥 금파도리 밀화대문 추문주를 늘여놓고 황금으로다 보를 얹고 순금으로 서까래 걸고 백금으로 부연 달고 천년 기와 만년 골패 보기 좋게두 이뤄를 놓고 자개로다가 마루를 깔고 백명주사로 벽을 바르고 잡귀잡신은 원강 천리로 소멸되니 무사태평이 이 아니냐 만복이 자아 아헤~ 에헤에라 누려라 열의열 사랑만 하십소사 나하 봉헤 봉헤로다 보옹에헹에”누나의 비나리가 시작이 되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누나의 몸주신인 평강공주의 목소리다.
뿐만 아니다.
누나가 비나리를 부려며 춤사위를 덩실덩실 추면서 나에게 눈웃음을 간간이 주고 있다.
아니 누나가 아니라 누나의 몸주신인 평강공주께서 나 아닌 부군인 온달장군을 찾을 것 같다.
흐흐흐 오늘도 기대를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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