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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52 582회 0건
부정(父情)(18부)



"선군씨!!!"

"누가 날... 부르지??"

"저 여기... 여기에요."

"김선경... 선..생..님..!!"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와 차가 있는 주차장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대로변에서 들려오는 낯선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촌스럽지는 않지만 짙은 화장을 한 김선경 선생이 손짖과 더불어 밝게 웃음띤 얼굴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고려의 문신 김부식이 백제 미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했던가!"

그녀의 모습을 보니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내 눈앞에 비춰지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4글자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이 말이 가장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호호... 여기에요..."

"어떻게 여기에...??"

어리둥절한 내 모습과는 달리 선경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놀란 내 모습을 보고 재밌다는듯 장난어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선경의 그런 모습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날리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호호호호... 많이 놀라셨나요?"

"네... 허... 이것 참... 오랜만이네요. 김선경 선생님. 이런데서 뵙게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쩜! 제 이름 기억하고 계시네요!!"

"아...! 네...! 우리 경인이 담당 의사선생님인데...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죠... 선생님. 잘지내고 계셨습니까?"

"예. 보시다시피 저는 잘지내고 있어요. 선군씨도 그동안 잘 지냈나요? 경인씨는 병원에서 가끔씩 보는데...!!"

"네! 저도 잘지내고 있습니다. 교생 실습도 끝났고, 이제 학창 시절을 마무리짓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왠일로 학교에 오셨습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비록 교정이었지만 차들의 통행이 빈번한 길 가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빵...빵..."

"어머나...!!!"

"선생님 여기로...!!!"

그때 갑자기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선경은 내 쪽으로 급히 몸을 피했다. 얼떨결에 나는 인도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몸을 피하는 선경을 끌어당겨 안았다.
비록 부지불식 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차가 지나가고 난 후.
정신을 수습하고보니. 선경은 내 품에 꼭안겨 있었고,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선경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멋쩍은 표정으로 떨어졌고, 떨어지는 선경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선군씨...!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아뇨... 괜찮습니다...!!"

급히 정신을 수습한 것인지. 선경은 나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나는 그녀에게 괘념치말라는 말을 했고, 속으로는 교정에서 그렇게 급히 차를 몬 사람을 욕하고 있었다.

"선군씨."

"예?"

"제가 오늘 학교에 온 이유는 바로. 선군씨를 만나기 위해 왔어요. 왜냐하면...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거든요."

"......."

"학교에 와서... 전에 선군씨가 가르쳐 준 삐삐로 연락드릴려고 했는데...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여서 선군씨를 불렀던 거에요."

"그렇습니까."

"멀리서인데도 선군씨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띠였어요. 큰 키에 우람한 체구가 말이에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그랬습니까? 제 체격이 좀 큰 편이죠."

금방 화색을 띤 선경은 용무가 있어서 나를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선군씨.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그런데 선경은 갑자기 간절함이 짙게 배어있는 표정을 짓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부탁이 있음을 얘기했다.

"무슨 부탁이기에 이렇게 두서없이 부탁을 하는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선경의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성 앞에서는 표정을 잘감추지 못하는 나는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미안해요... 제가 밑도 끝도 없이... 실수를 했네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나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던지. 선경은 사과를 했다.

"선군씨... 시간있으세요... 우리 이럴게 아니라...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을래요? 제가 부탁할 것도 있고 해서요."

"예. 그러죠. 차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뇨... 전 아직 차가 없어요. 아직 운전 면허를 못땄거든요. 그래서 아직까지 두 발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답니다. 호호호"

"그렇습니까? 잘됐네요. 그러면 제 차로 가시죠."

"어머. 선군씨는 차 있으세요?"

"네... 장모님께서 뽑아주셨어요. 요즘 그걸타고 등하교를 하고있습니다."

"와! 멋져요. 나중에 선군씨께 운전 좀 가르쳐달라고 해야겠네! 나중에 운전 좀 가르쳐 주세요... 헤헤!!"

"네... 알겠습니다...!"

"와! 좋아라!! 호호호호"

"선생님! 그럼 절 따라 오세요."

나는 선경의 부탁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의 저녁 식사 제의를 승낙했고, 차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선경은 엷은 미소와 함께 그 자리에 몸을 실었다. 곧바로 우리는 그녀가 자주찾는다는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선경의 말처럼 그곳은 그녀가 자주 찾는 곳 다웠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알아보았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부터 우리를 담당해야할 웨이터가 우리를 룸으로 안내했고 우리는 그를따라 그가 안내한 룸으로 들어갔다. 선경은 평소에 즐겨 먹던 것이었는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기 전까지 웨이터가 미리 가져다 준 와인으로 입을 적시고 있었다.
얼떨결에 따라들어와서 잘 못느끼고 있었지만.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모습이었고, 종업원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지 대부분 표정이 밝았다. 특히 웨이트의 시중드는 품새가 여간 세련된게 아니었다.

30분쯤 담소를 나누며 느긋하게 기다렸더니.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가져온 음식들은 양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아들었으며 나의 입맛을 자극하는 훌륭한 것이었다.

"이 정도의 음식이면 음식값이 상당히 비쌀 것이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하지만 좀 비싸겠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연속적으로 들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그녀의 지도(?)하에 다먹었다. 이내 후식이 들어왔고 우리는 후식을 먹으며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먹을만 해요? 저는 가끔씩 여기에 와서 이걸 먹거든요."

"예. 덕분에 난생 처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봅니다. 너무 훌륭한 맛이에요. 입 안에서 살살 녹아요!!"

"먹을만 했다니 다행이네요... 호호호...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어요."

선경은 나에게 음식 맛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 대답에 그녀는 기뻐했다.

"저 번부터 뵙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드렸어요...!!"

"그런데, 아까 제게 부탁하신다는 얘기가 뭡니까?"

빨간 립스틱의 섹시하고 도톰한 입술이 열렸다. 선경은 카랑카랑하고 똑부러지는 말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궁금증을 참지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자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부탁하려는 것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예... 그건 다른게 아니라. 제가 이번에 박사 논문을 쓰거든요."

"......."

"그런데 논문 내용 중에 통계 자료를 정리해서 실어야 될 부분이 있어서요. 이게 분량도 많고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제가...?"

"지난 번 스승의 날에 송진선 선생님께 갔을 때, 선생님께 선군씨가 그쪽 계통이 전공이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선군씨 전공이 수학이 맞죠?"

"예. 맞습니다."

"그래서 선군씨가 통계 자료를 정리하는데, 저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그게... 너무 갑자기 물어와서...!!"

"미안해요... 너무 갑작스런 부탁이라 당황했죠? 진작에 찾아뵙고 도움을 청했어야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병원일이 너무 바빠서 그랬어요... 이해해주세요...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는 메뉴얼을 드릴께요. 메뉴얼만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거에요... 안되나요? "

"아뇨.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밥값은 해야죠."

"호호호... 와!!! 너무 고마워요..."

선경의 부탁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던게 사실이었다. 내가 자신의 부탁에 아무말이 없자 선경은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도와주겠다는 나의 말에 장미꽃 같은 화사한 웃음을 띠며 다시 살아났다.

"근데... 이게 하루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서..."

"분량이 꽤 많은가 보죠?"

"네... 천 명 쯤 되는 사람을 표본으로해서 조사한 자료에요... 이것을 메뉴얼대로 분류하고 분류를 토대로 수치화해야되거든요."

"그렇게나 많아요?"

"네... 선군씨...하실 수 있겠죠?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죠?"

"........"

분량이 많다는 자신의 말에 다시금 내가 말이 없자 그녀는. 또다시 내가 거절하면 어쩌나하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다는듯 가끔씩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도와주시면... 사례는 후하게 드릴께요... 제발요...!!!"

"네 알겠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호호호... 고마워요. 아휴...!! 거절하시면 어쩌나 하고 걱정 많이했는데... 이렇게 흔쾌히 승낙해주시니... 너무 너무 다행이고 너무 너무 고마워요... 일은 내일부터 하시면 될거에요... 내일 저희 병원에 오실 수 있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학교 수업 마치고 갈께요."

최종적으로 나의 승낙이 떨어지자. 시무룩하던 선경의 표정은 금새 밝아졌고 이후 그녀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되찾았으며 시종일관 싱글거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곳에 온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우리... 나갈까요?"

"네... 그렇게 하죠... 오늘 식사 대접 잘받았습니다."

선경은 내가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나가자고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랬더니 선경은 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스토랑 출구쪽으로 걸어갔고, 나도 그녀를 따라 그곳을 벗어났다. 좀 전에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계산이 끝냈는지 선경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유유히 그곳을 나왔다.

"선군씨. 뭐 먹고 싶은게 없어요?"

"예??"

"시간되세요?"

"왜요?"

"별일없으면... 우리 술 한잔 하러가요?"

레스토랑을 나와 발걸음을 주차장으로 옮기려하자 선경은 나를 불러세웠고 그냥가기 섭섭했던지 술 마실 것을 제안했다.

"네. 저는 괜찮은데. 근데 선생님은 일찍 들어가야 안됩니까? 남편이랑 애들이 기다릴 텐데요?"

"호호호... 저는 괜찮아요... 저 아직 결혼 안했어요."

"네???"

"아하... 저를 아줌마로 봤구나!! 선군씨... 제가 아줌마 같아 보여요? 제가 그렇게 늙게 보여요?"

"아뇨... 제가 엉겁결에 실수를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호호호호... 아니에요... 당황하지 말아요. 제가 장난 한 번 해본 거에요."

"그래도. 저는 당연히 결혼하신줄 알고... 선생님같이 아름다운 분을 남자들이 그냥 놓아두지 않았을 것 같아서요..."

"호호호... 좋아라... 선군씨 눈에도 제가 그렇게 예뻐요??"

"네...! 제가 본 여성들 중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예뻐요."

"와!!! 선군씨 뭐든지 말만해요. 무슨 술 좋아하세요? 내가 한턱 쏠께요... 빈말이래도... 저 기분 너무 좋아요... 그런 칭찬 처음이에요... 호호호호"

"하하하... 아니에요. 모두 진심에서 하는 소리에요. 저는 여성분 앞에서는 거짓말을 잘 못했요... 저는 아무 술이나 다 좋아합니다."

"그럼... 우리 소주 마시러가요."

"좋습니다."

"호호호호... 오랜만에 편안한 분위기에는 술을 마실 수 있겠네!!! 선군씨... 우리 어서 가요."

우린 주차장에 차를 그대로 둔 채 레스토랑에서 가까운 술집으로 걸어갔고, 그곳에서 한잔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났는데도 그것을 느끼질 못했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술잔을 나누었다.
선경은 술마시러 올 때 말한 것 처럼 나름 편안했던지 제법 많은 술을 마셨다. 급기야 조금씩 눈동자가 풀어지면서 자신의 인내와는 무관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화사한 아름다움의 도도한 이미지는 술기운에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선경에게서 한결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

"선군씨...!"

"예!!"

"나... 오늘 기분 무지... 좋아... 간만에... 이렇게 취하도록... 마시는 것 같아...!"

"저도 그래요...!!"

이제 선경은 나에게 뒤끝을 흐리며 반말을 하고 있었다. 연장자인 그녀가 반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선경은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터치하기도 했고 장난스럽게 어깨에 기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호호호... 선군씨! 이제부터... 우리... 누나 동생하면 안돼?"

"저야 좋죠. 이렇게 예쁜 누님을 언제 가질 수 있겠어요."

"야... 좋아라... 오늘은 신나는 일만 생기네...! 그럼 지금부터... 한선군!!"

"예!!!"

"목소리 작다... 다시... 한선군!!"

남자 형제들 밖에 없던 나는. 어릴 때부터 누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나 동생하자는 그녀의 제안에 망설임없이 동조를 했다. 그녀 또한 나의 승낙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너무도 좋아라 했고 급기야 주변에 누가있는지도 신경쓰지 않은채 나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누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그녀의 행동이나 말을 제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는 낮은 자세를 취하였다.

"누님... 많이 취했구나?"

"그래 이 자샤... 이 누나 좀 취했다... 좀 취하면 안돼...!!"

"아닙니다. 누님... 누님 곁에는 제가 있으니, 걱정마시고 계속해서 마시도록 하세요. 오늘 저녁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이제는 서로 격없이 농담도 주고받으며 술을 마셨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인식하지 못한채 우리는 많은 술을 마셨다.

"누님... 많이 취하는데... 우리 그만 일어나자... 집에 가야지... 더 취하면 힘들어져...!"

주고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인 결과 선경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해버렸다. 그녀보다는 덜했지만 나도 상당히 취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제 그만 마실 것을 얘기했지만 그녀는 술상 위에 엎어진채 꼼짝을 안했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선경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축늘어진 그녀를 일으켜 세우기는 쉽지가 않았다.

"누나야... 어서 일어나봐라... 이제 가야지... 어서...!!"

그래도 나는 억지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축늘어진 선경을 부축하며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즉 우리가 저녁식사한 레스토랑 건물 앞까지 그녀를 데리고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업이 끝난 것인지. 건물은 굳게 닫혀있었고, 바깥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꼼짝도 않은채 닫혀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선경이도 추스릴겸 건물앞 벤취에 그녀를 내려놓고는 어떻게해야할지 궁리를 했다.
"이렇게 인사불성이 된 여자를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벤취에 널부러진 선경을 다시 일으켜 세운 다음. 레스토랑 건물 바로 앞에 네온사인 번쩍이는 여관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경인아...!!"

"군오빠... 왜 이렇게 늦어? 전화도 없이. 무슨 일 있는 거야?"

여관에 도착하여 선경을 침대 위에 널브러뜨려 놓고는 집에서 나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고 있을 경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경인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한참을 걱정하고 기다렸는지 평상시 차분하고 다소곳한 경인이의 목소리와는 사뭇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별일은 없어... 걱정하지마라... 그런데... 나 오늘 못들어가겠다...!!"

"아니. 왜??"

집에 못들어간다는 나의 말에 경인이는 깜짝 놀랐고, 깜짝 놀란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화기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응... 오늘... 재석이 알지? 일전에 늦게 군에 갔던 내 친구 말야."

"그래 알아... 근데?"

"재석이가... 오늘 첫휴가를 받아왔거든... 그런데 인마가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지 뭐냐. 그래서 친구들과 술판이 벌어졌고 나도 꽤 많이 마셨다... 지금 도저히 차를 몰고 가기 힘들어서. 애들이랑 여관에 왔다. 그래서 얘들이랑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갈께."

"그래?!... 할 수 없지 뭐... 몸 생각해서 술 좀 적당히 먹어...!!! 조심해... 오빠!!!"

"알았다... 내 걱정하지 말고... 일찍 자라."

나를 걱정하는 경인이에겐 미안했지만, 그녀에게는 거짓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선경에게 갔다. 그리고 술기운에 답답해할 것 같아서 그녀의 윗 옷을 벗겨서 옷걸이에 걸었다.

"그나저나 침대에서 같이 잘 수는 없고, 참 난감하네... 할 수 없이 바닥에 이불깔고 자야지 어떡하겠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바닥에 이불을 대충 깔고는 씻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 잠이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나는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아직도 주위는 어두웠다. 정신을 차리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누운채로 손을 더듬어 시계를 찾아 시간을 확인했고, 그 결과 새벽 3시가 넘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순간 욕실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닌가.
나는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들어올때는 몰랐다. 이 방의 욕실이 저런 시설이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리벽인줄 알았던 벽이 마치 대형 스크린 처럼 욕실 안의 광경을 비추고 있지 않는가.
군대 있을 때, 즉 휴가다녀온 고참이 휴가 마지막 날 자신의 여친과 뜨겁게 섹스를 즐겼다는 사실을 야간 초소에서 자랑삼아 얘기할 때 고참을 통해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말을 믿지 않았고 고참이 자랑삼아 지어낸 얘기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바깥에서 자신의 샤워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선경이. 흥겨운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라의 육신에 비누 거품을 묻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나는듯 했다.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듯한 아름다운 육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온 몸에 비누 거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얼굴 아래로 가늘고 긴 목은 살짝만 건드려도 뚝하고 끊어질 것만 같았고 그 아래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젖가슴의 풍만함은 내 가슴을 떨게하기에 충분했다. 풍만한 젖가슴 끝 정점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는 새빨간 유두는 한 입에 베어 먹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비누 거품을 모두 칠했는지 선경은. 샤워기를 틀어 자신의 머리에서부터 물줄기를 분사시켰고, 그 물줄기는 아래로 흘러내리며 온 몸에 묻어있는 비누 거품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선경의 몸을 감싸고 있던 거품은 모두 제거되었고, 마침내 거품 속에 숨어있던 백옥같이 깨끗한 육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명등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나신은 너무도 투명한 유리같아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여지껏 그녀를 감싸고 있던 피부 조각인줄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완전히 드러난 그녀의 육체는 흠잡을 곳 하나없이 완벽했다. 끊어질듯 가냘픈 세류요(細柳腰)는 풍만한 젖가슴과 둔부에 의해 그 굴곡이 너무도 돋보였고, 배꼽 아래에 펼쳐진 울창한 수풀은 음부 전체를 빼곡히 덮고 있었다. 그런 선경의 나신은 너무나 자극적이라 꺼져 있던 나의 욕구를 서서히 깨우기 시작했다.

"아! 너무 아름답다. 그녀를 가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런 욕구를 참았다.

그 순간 욕실문이 왈칵하고 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다시 눕혔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채지 몸하게 모든 몸짓을 멈춘채 자는척 하고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와 욕실에서 걸어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는지 몸을 문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가 그치자마자 뚜벅 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내 앞에서 멈추었고 곧이어 방바닥에 앉는 소리가 났다. 그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서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화장대 앞에서 꿇어 앉아 있음인지. 희멀건 둔부가 나의 코앞에 있는게 아닌가. 한입 베어물고픈 충동에 온 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고 있었고, 혀를 내밀어 그곳을 핥아먹고 싶은 기분에 온 몸을 떨어야했다. 눈 앞에 펼쳐진 적나라한 모습에 자극 받은 자지는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 하느님... 부처님... 신이시어... 참자. 참아야 한다!!!"

방금 샤워마쳤음인지 샤워 비누 냄새와 희멀건 둔부의 살내음이 동시에 코를 자극했다. 마음 속으로 나는 신들을 찾았고 그들에게 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유혹을 이겨내려고 기도하고 있을 때 꿇어 앉았던 선경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나는 들키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내게서 멀어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떴고, 얇게 떠진 그 사이를 통해 욕실 쪽으로 걸어간 선경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선경은 욕실 쪽으로 뒤돌아선 채 여지껏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타올을 흘려내렸고, 샤워한다고 벗어놓은 속옷을 다시 입고는 스위치를 눌러 방안의 불을 끄더니 속옷 바람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내 귀에는 침대의 출렁거림과 삐걱거림이 그대로 들려왔다.




18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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