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에...
글에 대한 혹평을 하면 거의 죽일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사람 대부분 아마추어이고, 분류가 야설이니 독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양해는 있는 게 맞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비판이 있는 게 옳아 보입니다.
잘 몰랐는데 오래 글을 쓰다 보니 균형잡힌 전개를 하기 힘듭니다. 그럴 때는 역시 관찰자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맹목적 비난은 저도 기분 나쁩니다만...
건전한 비판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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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와 헤어져 집에 오는 동안,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경험이 없는 새엄마와 유진한테 어떻게 가족의 소중함을 주입할 수 있을까? 계기가 없는 한,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계기... 가족을 뭉치게 하는 외부의 위협... 그런게 필요한데..
‘띵~ 동~!’
“누구세요?”
“나야, 누나.”
‘덜컹~!’
마당을 가로지르는 사이에 유미누나가 미리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예쁘지만... 설명이 어려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저 옷차림은 뭐냐? 헐렁한 운동복이나 트렁크를 입고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외출하고 좀 전에 돌아왔나?
“생각보단 빨리 왔네?”
“응, 오늘은 좀 자제했어. 엄마랑 아빠는?”
“주무셔. 춥지?”
“괜찮아.”
누나의 곁을 스치자, 은은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고 보니 아직 화장도 지우지 않은 것 같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내 방으로 향하는 나를 유미 누나가 쪼르르 쫓아왔다.
또......!
오후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나간 내 운동복이 단정하게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몸만 빠져 나오고 내버려 둔 침대 위의 이불도 보이지 않는 게, 아마 이불장 속으로 들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꽂이의 책들도 키가 같은 녀석들끼리 모여서 정렬 중. 나 없는 동안 누나가 내 방을 치운 것이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려는데...
“이리 줘.”
“......”
“씻고 있어, 우유 데워가지고 올게.”
또 쪼르르 사라지는 누나의 모습. 이건......뭘까? 마치 누나가 내 아내가 된 듯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모습을 예전에 얼마나 꿈꿨던가? 그렇긴 해도...
마누라라도 이 정도는 안 하겠다......
샤워를 마치고 평생 해오던 버릇대로 알몸인 채 욕실 문을 열었다. 아앗! 황급히 다시 문을 닫았다. 내 책상 의자에 앉아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유미 누나... 내 알몸을 봤는데도, 내가 놀란 만큼도 놀라지 않은 듯 했다.
“누나, 있다고 말이나 좀 하지.”
“우유 가져 온다 그랬잖아?”
“그래도...! 미안해. 덜컥 열어서.”
“괜찮아. 나도 내 방에서는 그러는데 뭐.”
“나 속옷 좀 줘.”
“응.”
누나가 건네 준 속옷을 욕실에서 주섬주섬 입었다.
“근데, 어디 나갔다 온 거야?”
“아니. 왜?”
“옷차림이...”
“아, 이거? 자기 전까지는 이렇게 입고 있으려고...”
“잠옷도 좀 줘.”
“응.”
“집에서 그렇게 입고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괜찮아. 근데 너가 볼 땐 어때?”
“이쁘긴 해.”
“그럼 그냥 이렇게 입고 있을래. 앞으로는...”
“......”
“얼른 나와. 우유 다 식겠다.”
진짜 뭘까? 아... 정말 돌아버리겠다. 우유를 마시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누나... 컴을 내밀고 ‘고마워’하자, ‘일찍 자’하고 나가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누나.”
“왜?”
“누나가 나한테 잘해 주는 거 정말 고맙긴 한데...”
“......”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어.”
“......”
“그래서... 설명이 필요해.”
“......”
나는 돌아서서 누나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컵 쟁반을 들고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대답을 들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누나의 목소리...
“나도 내가 원하는 걸 가지고 싶어.”
“......”
“네가 그랬잖아. 원하는 건 스스로 얻으라고.”
“그게 나야? 누나가 원하는 게?”
“아니... 네가 아니고... 니 사랑.”
“그게.. 서로 달라?”
“응... 분명히.”
그녀가 닫고 나간 방 문을 한참 쳐다보았다. 가슴 속에서 뿌듯하게 일어서는 희열... 이제 막 껍데기가 굳는 계란처럼 허약한 그 희열이 깨질까 봐 조심스럽게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음 날 아침, 싫다는 성수를 기어이 따라 그의 부대가 있는 연천까지 간 후, 대광리역이라는 곳에서 내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다방에 들렀다. 주변의 군복 입은 사람만 보면 눈치를 살피는 성수의 모습이 낯설었다. 역시 군대네. 서울에 있을 때는 천지가 제 것인 양 안하무인이던 녀석이...
“쫄따구인거는 분명하네. 아이고 웃겨라.”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라니까, 자식이.”
“밖에 나갈래? 어떻게 군복 입은 사람 볼 때마다 일어서서 그렇게 단결, 단결 하냐?”
“추운데 그냥 있자. 그리고 사실은...”
“......”
“이상하게 나는 이런 게 좋거든. 질서만 지켜 주고, 맡은 일만 하면... 만사가 끝!”
“그러다 말뚝 박을라...”
“세상이 군대 같으면 좋겠다. 밤마다 ‘내일은 뭐할까...’ 이런 걱정 안하고... 흐흐흐.”
“서울역에 가서 그 분들하고 같이 살면 되겠네, 하하하.”
“그건 그렇고... 어젯밤 약속 잊지 않았지?”
“응... 그래도 암담하다.”
“너 잘 할 거야. 뭐 풀어나가는 거 귀신이잖아.”
...... 아니, 그렇지 않다, 성수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맞더라 ......
“성수야.”
“어.”
“사람을 원하는 거하고, 그 사람의 사랑을 원하는 거하고 차이가 뭘까?”
“오오...... 엘리트 김 수호가 개망나니 임 성수한테 그런 어려운 질문을?”
“농담 아니다. 모르겠으면 패스 하고...”
“소유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차이 아니겠어?”
“무슨 말이냐?”
“당신을 원해요... 했으면 그 사람을 가지고 싶은 거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했으면 그 사람에게 소유당하고 싶은 거고...”
“그런가?”
“뭐 대충 그렇지 않아? 근데, 초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너보다 똑똑했던 것 같아.”
“왜?”
“그거... 초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것 같거든? 크크크. 아야! 이 씨... 민간인이 군인을 막 패도 돼?”
“하여튼 기회만 있으면 겨 올라.”
“내가 너보다 똑똑해 보이니까 당황했구나... 쯔쯔. 근데 누구냐? 그 ‘원해요’하는 사람이?”
“그냥...”
“유진이도 니 싸랑을 원해, 크크크.”
“너 진짜 내가 걔 데리고 잠이라도 자면 어떡할라구 그러냐?”
“어떡하긴, 흐흐흐. 총 들고 탈영해서 죽을래 아니면 책임질래? 해야지. 잘 해보자, 매제. 푸하하하!”
“이것들이 이제 보니 남매 사기단이었구만!!”
......
어렵게, 어렵게 성수 새엄마를 꼬셔 밖에서 만나는 약속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졸업했다는 o o 대학교 정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결혼하기 전 기억을 좀 되살려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녀가 자유분방했던 그 시절을...
‘역시...!’
가죽 점퍼에 몸에 착 달라붙는 진, 그리고 부츠 차림의 그녀는 근처에서 북적거리는 이십대의 여자들 누구보다도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를 발견하고 걸어올 때, 눈이 얇게 깔린 아스팔트를 울리는 부츠 소리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도도하고 당당하게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제가 좀... 늦었죠?”
“아뇨. 늦지 않았어요. 오늘 너무 예뻐 보여요. 제가 부탁드린 대로 입으셨네요?”
“옷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다행히 처녀 때 입던 게 남아 있어서...”
그녀에게 캐주얼하게 입고 와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녀가 내 뒤쪽의 정문 기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 뒤쪽의 시선은 분명 기둥에 새겨진 학교의 명패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선글라스를 벗기고 싶었지만, 시선을 두려워하는 그녀의 입장을 존중했다.
“학교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소영 씨?”
소영 씨라는 발칙한 호칭이 싫지는 않은 듯 했다. 내가 내민 팔에 그녀가 팔을 감고, 천천히 캠퍼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데군데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회상을 깨지 않기 위해,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캠퍼스 거의 전체를 다 둘러보고, 다시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다닐 때하고는 많이 변했네요.”
“십 년이 넘었죠?”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때 추억 하나만 얘기해 줘요.”
“추억? 어떤 거요?”
“뭐 있잖아요. 소영 씨가 좋아했던 남학생이라든지...”
“특별히 누굴 심하게 좋아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저 같은 남학생이 없었나 보죠?”
“호호호... 글쎄요. 그보다는 그런 거 있잖아요. 딱히 누구를 선택할 수 없는...”
“공주병이 있었네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왕자님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현실에 쉽게 순응하지 못했어요. 전 좀 특별하다 생각했었죠.”
“아... 사실 저도 제 나름 특별하다 생각하는데... 하하.”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잖아요.”
“히히히, 그렇네요. 배고프지 않아요?”
“저녁 먹으러 가요.”
“제가 살게요.”
네온이 번쩍거리는 먹자 골목은 내팽개치고 식당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주택가 골목으로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갔다. ‘어디가요?’라는 질문에 그저 ‘혹시 해서요...’하고 대답하고 이리저리 골목을 돌던 그녀의 걸음이 멈춘 곳에 ‘원조 할머니집’이라는 허름한 입간판이 서 있었다. 가게 외모가 얼마나 지저분한지 도저히 손님을 받는 집 같지 않았다.
“아는 집이세요?”
“네. 아직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근데... 그대로네.”
“이런데 식당이 있다는 게 이상하네요.”
“저쪽 큰 길 나기 전에는 다 이쯤에서 먹고 마시고 했어요. 다른 집들은 다 없어졌네요.”
“들어가 봐요.”
역시...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종업원도 없어서, 손님을 받아야 할 마루에 조그만 꼬마 소녀가 엎드린 채 그림책 같은 걸 보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방 안쪽에 대고 외쳤다.
“할머니, 손님!”
“어...”
마루 한 켠에 자리를 잡자 꼬마가 물을 가져다 주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성수 새엄마는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다가오자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머 드실랑가?”
“막걸리하구요, 파전 하나, 김치찌개 하나...”
막걸리라니... 그녀가 내게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도저히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게 더 놀라웠다.
“찌개는 쫌 기다려야 되는디..”
“파전 먼저 주세요.”
할머니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 후,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조금 흥분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의외로 소탈한 면이 있으시네요?”
“대학교 때는... 다들 그렇죠. 참 오랜만이네요. 할머니도 여전하시고...”
“그때도 같은 주인이었어요?”
“네... 근데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노인의 기억력을 무시했던 그녀의 판단은 틀렸다는 게 금방 드러났다. 막걸리와 파전을 가지고 나오시던 그 할머니는 선글라스를 벗은 성수 새엄마의 맨 얼굴을 보자마자, 발걸음을 딱 멈췄다.
“혹시... 소영이 아니대?”
“저... 기억하세요?”
“맞재? 소영이재?”
“그래요, 할머니. 저 소영이예요! 아... 어떡해...!”
탕! 소리와 함께 쟁반을 식탁에 거칠게 내던지고 주저앉은 할머니가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듯, 성수 새엄마를 얼싸 안았다.
“하이고, 우리 소영이 맞네!~~~ 이거시 얼마만이대?~~~ 어디 낯부닥 좀 보자~~~ 워매!~~~ 하나두 안 변했네, 그래!~~~ 먼 일이다냐, 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봤으믄 했는디...”
“할머니이~~~!”
허... 참! 집나간 딸 돌아온 것 같네. 감격스러운 재회의 장면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나는 묵묵히 종업원 역할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막걸리를 흔들어 열고... 반찬을 식탁에 올려 놓고... 나는 성수 새엄마의 감정 표현에 놀라고 있었다. 항상 수줍은 듯 내려져 있던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치 이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그마한 할머니의 몸통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있는 모습...
짧은 순간에 속사포 같은 질문으로 그녀의 근황을 다 파악한 할머니는 격정이 좀 가시자, 막걸리 한 사발을 물 마시듯 들이켰다. 그래도 여전히 성수 새엄마의 손을 꼭 잡고 계셨다.
“다혜야! 가서 문 닫아 부러라. 살다본 께 이런 날도 오네.”
“제가 할게요.”
아...참나... 손님과 주인이 바뀌는 게 순식간이었다. 꼬마 대신 가서 문 잠그고, 떨어진 막걸리 병 새로 가져오고, 찌개 넘치지 않게 불 조절하는 게 내 일이었다. 좀 전에는 끔찍하게 서로 붙잡고 울더니,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킥킥대다, 소곤대다, 다시 킥킥대다... 둘이 이야기하라고 꼬마랑 같이 그림 그리며 놀고... 그러다 와서 한 잔 하라는 할머니 허락에 다시 탁자에 붙었다.
“누구다냐? 아들은 아닌 듯 헌디..”
“제 딸애 과외 선생님이세요.”
“딸이 있어? 몇 살인디...”
성수 새엄마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했다. 결혼했다고는 했지만, 그게 어떤 결혼인지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나서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두 분이 참 친하셨었나 봐요. 꼭 모녀 사이 같아 보이세요.”
“우리 소영이가 얼매나 나를 잘 따랐는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도 허고... 니 그때 자취했었재? 이거시 이라고 곱디 곱게 생겨논께 머시마들 혼을 빼놨재. 소영이가 우리집 자주 댕긴다고 소문난께 이것들이 핵교 나와 가꼬 공부는 안 허구 허구헌 날 우리 집 와서 죽치고 있는 거여.”
“아이, 할머니.”
“그란께 내가 야한티 니 우리 집서 아르바이트 안 할래? 해갖고 딱 박아놨재. 그란께 이것들이 거 머냐 도서관 자리잡땍이 아침부터 나와갖고 딱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거여. 그 때 돈은 많이 벌었는디, 내가 부모 입장이믄 저것들 보믄 속 터지것다... 그랬제. 허이구, 근디 이거시 인자까지 날 잊지 않구 보러 왔구먼.”
“죄송해요, 할머니... 꼭 뵈러 온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으허엉~~~!”
또 운다, 또. 저러다 몸에 있는 물이 눈물로 다 빠져 나가는 건 아닐까?
“음매, 그라고 본께 니 오믄 준다고 내가 그때 사진 어따 뒀는디... 쫌 있어봐라, 이?”
성수 새엄마가 슬그머니 나를 쳐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벌개져 있는 그녀의 눈가...
“저 우습죠.”
“아니... 좋아 보여요. 사실 좀 놀랐어요.”
할머니가 가져온 사진을 보며 또 소곤소곤, 킥킥... 둘만의 시간을 주려고 다혜라는 손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에 들러 그 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과자 같은 걸 사서 한아름 안겨 주었다. 감사합니다...하고 고개를 꾸벅하는 게 여간 귀엽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 애는 과자를 먹고, 나는 구름과자를 먹었다.
“할머니랑 같이 살아?”
“네.”
“엄마는?”
“엄마는 제가 열다섯 살 되면 와요.”
“아... 그래? 어디 멀리 가셨어?”
“돈 벌러 가셨어요. 아빠가 죽어서, 아빠 대신 갔어요.”
아... 혹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와작와작 과자를 씹는 소리.
“아저씨.”
“응?”
“어른들은 오래 지나도 얼굴 다 알아보죠?”
“응. 왜?”
“다행이다, 혹시 엄마가 나중에 절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걱정돼서요.”
“네가 알아보면 되잖아.”
“저는 까먹었어요, 히히. 사진이 있었는데 명수가 볼펜으로 엉망 만들어 버렸거든요.”
“응... 못된 친구구나.”
“괜찮아요. 사진 봐도 어차피 잘 몰라요. 다 변한대요, 얼굴이. 할머니가 엄마가 돈 벌어서 핸드폰 사면 전화할거래요.”
씨발...!
애를 낳지를 말던가... 낳으면 책임을 지던가...! 버려진 고양이를 보고 유미 누나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기 좋을 대로 사서 키우고 귀찮으면 버리고... 얘도 언젠가 어른들이 한 말이 다 거짓이라는 걸 알 텐데... 상처가 될 텐데...
꼭 다시 오라는 할머니와 헤어져 성수 새엄마와 택시를 탔다. 그녀는 선글라스로 부은 눈을 은폐...
“다혜는 부모가 없나 봐요?”
“아들이 사업 실패하고 자살했는데, 새언니... 그 애 엄마가 그냥 나가서 소식이 없대요. 저 있을 때는 그럴 사람 같지 않았는데...”
“어른들이 참 못됐죠?”
“그러네요.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그 애를 누가 돌보나 그게 제일 큰 걱정이래요. 그래서 제가 그 애 엄마 한 번 찾아보려구요.”
“그 애가 엄마 없이 크면, 유진이처럼 될까요?”
“......”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즐거웠어요. 소영 씨.”
“수호 씨.”
“네?”
“잠깐 올라가면 안돼요?”
“......”
“저 좀 안아줘요.”
“......”
“주인님.”
글에 대한 혹평을 하면 거의 죽일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사람 대부분 아마추어이고, 분류가 야설이니 독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양해는 있는 게 맞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비판이 있는 게 옳아 보입니다.
잘 몰랐는데 오래 글을 쓰다 보니 균형잡힌 전개를 하기 힘듭니다. 그럴 때는 역시 관찰자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맹목적 비난은 저도 기분 나쁩니다만...
건전한 비판 기다립니다.
====================================================================================
성수와 헤어져 집에 오는 동안,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경험이 없는 새엄마와 유진한테 어떻게 가족의 소중함을 주입할 수 있을까? 계기가 없는 한,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계기... 가족을 뭉치게 하는 외부의 위협... 그런게 필요한데..
‘띵~ 동~!’
“누구세요?”
“나야, 누나.”
‘덜컹~!’
마당을 가로지르는 사이에 유미누나가 미리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예쁘지만... 설명이 어려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저 옷차림은 뭐냐? 헐렁한 운동복이나 트렁크를 입고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외출하고 좀 전에 돌아왔나?
“생각보단 빨리 왔네?”
“응, 오늘은 좀 자제했어. 엄마랑 아빠는?”
“주무셔. 춥지?”
“괜찮아.”
누나의 곁을 스치자, 은은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고 보니 아직 화장도 지우지 않은 것 같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내 방으로 향하는 나를 유미 누나가 쪼르르 쫓아왔다.
또......!
오후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나간 내 운동복이 단정하게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몸만 빠져 나오고 내버려 둔 침대 위의 이불도 보이지 않는 게, 아마 이불장 속으로 들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꽂이의 책들도 키가 같은 녀석들끼리 모여서 정렬 중. 나 없는 동안 누나가 내 방을 치운 것이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려는데...
“이리 줘.”
“......”
“씻고 있어, 우유 데워가지고 올게.”
또 쪼르르 사라지는 누나의 모습. 이건......뭘까? 마치 누나가 내 아내가 된 듯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모습을 예전에 얼마나 꿈꿨던가? 그렇긴 해도...
마누라라도 이 정도는 안 하겠다......
샤워를 마치고 평생 해오던 버릇대로 알몸인 채 욕실 문을 열었다. 아앗! 황급히 다시 문을 닫았다. 내 책상 의자에 앉아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유미 누나... 내 알몸을 봤는데도, 내가 놀란 만큼도 놀라지 않은 듯 했다.
“누나, 있다고 말이나 좀 하지.”
“우유 가져 온다 그랬잖아?”
“그래도...! 미안해. 덜컥 열어서.”
“괜찮아. 나도 내 방에서는 그러는데 뭐.”
“나 속옷 좀 줘.”
“응.”
누나가 건네 준 속옷을 욕실에서 주섬주섬 입었다.
“근데, 어디 나갔다 온 거야?”
“아니. 왜?”
“옷차림이...”
“아, 이거? 자기 전까지는 이렇게 입고 있으려고...”
“잠옷도 좀 줘.”
“응.”
“집에서 그렇게 입고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괜찮아. 근데 너가 볼 땐 어때?”
“이쁘긴 해.”
“그럼 그냥 이렇게 입고 있을래. 앞으로는...”
“......”
“얼른 나와. 우유 다 식겠다.”
진짜 뭘까? 아... 정말 돌아버리겠다. 우유를 마시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누나... 컴을 내밀고 ‘고마워’하자, ‘일찍 자’하고 나가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누나.”
“왜?”
“누나가 나한테 잘해 주는 거 정말 고맙긴 한데...”
“......”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어.”
“......”
“그래서... 설명이 필요해.”
“......”
나는 돌아서서 누나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컵 쟁반을 들고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대답을 들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누나의 목소리...
“나도 내가 원하는 걸 가지고 싶어.”
“......”
“네가 그랬잖아. 원하는 건 스스로 얻으라고.”
“그게 나야? 누나가 원하는 게?”
“아니... 네가 아니고... 니 사랑.”
“그게.. 서로 달라?”
“응... 분명히.”
그녀가 닫고 나간 방 문을 한참 쳐다보았다. 가슴 속에서 뿌듯하게 일어서는 희열... 이제 막 껍데기가 굳는 계란처럼 허약한 그 희열이 깨질까 봐 조심스럽게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음 날 아침, 싫다는 성수를 기어이 따라 그의 부대가 있는 연천까지 간 후, 대광리역이라는 곳에서 내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다방에 들렀다. 주변의 군복 입은 사람만 보면 눈치를 살피는 성수의 모습이 낯설었다. 역시 군대네. 서울에 있을 때는 천지가 제 것인 양 안하무인이던 녀석이...
“쫄따구인거는 분명하네. 아이고 웃겨라.”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라니까, 자식이.”
“밖에 나갈래? 어떻게 군복 입은 사람 볼 때마다 일어서서 그렇게 단결, 단결 하냐?”
“추운데 그냥 있자. 그리고 사실은...”
“......”
“이상하게 나는 이런 게 좋거든. 질서만 지켜 주고, 맡은 일만 하면... 만사가 끝!”
“그러다 말뚝 박을라...”
“세상이 군대 같으면 좋겠다. 밤마다 ‘내일은 뭐할까...’ 이런 걱정 안하고... 흐흐흐.”
“서울역에 가서 그 분들하고 같이 살면 되겠네, 하하하.”
“그건 그렇고... 어젯밤 약속 잊지 않았지?”
“응... 그래도 암담하다.”
“너 잘 할 거야. 뭐 풀어나가는 거 귀신이잖아.”
...... 아니, 그렇지 않다, 성수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맞더라 ......
“성수야.”
“어.”
“사람을 원하는 거하고, 그 사람의 사랑을 원하는 거하고 차이가 뭘까?”
“오오...... 엘리트 김 수호가 개망나니 임 성수한테 그런 어려운 질문을?”
“농담 아니다. 모르겠으면 패스 하고...”
“소유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차이 아니겠어?”
“무슨 말이냐?”
“당신을 원해요... 했으면 그 사람을 가지고 싶은 거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했으면 그 사람에게 소유당하고 싶은 거고...”
“그런가?”
“뭐 대충 그렇지 않아? 근데, 초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너보다 똑똑했던 것 같아.”
“왜?”
“그거... 초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것 같거든? 크크크. 아야! 이 씨... 민간인이 군인을 막 패도 돼?”
“하여튼 기회만 있으면 겨 올라.”
“내가 너보다 똑똑해 보이니까 당황했구나... 쯔쯔. 근데 누구냐? 그 ‘원해요’하는 사람이?”
“그냥...”
“유진이도 니 싸랑을 원해, 크크크.”
“너 진짜 내가 걔 데리고 잠이라도 자면 어떡할라구 그러냐?”
“어떡하긴, 흐흐흐. 총 들고 탈영해서 죽을래 아니면 책임질래? 해야지. 잘 해보자, 매제. 푸하하하!”
“이것들이 이제 보니 남매 사기단이었구만!!”
......
어렵게, 어렵게 성수 새엄마를 꼬셔 밖에서 만나는 약속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졸업했다는 o o 대학교 정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결혼하기 전 기억을 좀 되살려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녀가 자유분방했던 그 시절을...
‘역시...!’
가죽 점퍼에 몸에 착 달라붙는 진, 그리고 부츠 차림의 그녀는 근처에서 북적거리는 이십대의 여자들 누구보다도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를 발견하고 걸어올 때, 눈이 얇게 깔린 아스팔트를 울리는 부츠 소리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도도하고 당당하게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제가 좀... 늦었죠?”
“아뇨. 늦지 않았어요. 오늘 너무 예뻐 보여요. 제가 부탁드린 대로 입으셨네요?”
“옷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다행히 처녀 때 입던 게 남아 있어서...”
그녀에게 캐주얼하게 입고 와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녀가 내 뒤쪽의 정문 기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 뒤쪽의 시선은 분명 기둥에 새겨진 학교의 명패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선글라스를 벗기고 싶었지만, 시선을 두려워하는 그녀의 입장을 존중했다.
“학교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소영 씨?”
소영 씨라는 발칙한 호칭이 싫지는 않은 듯 했다. 내가 내민 팔에 그녀가 팔을 감고, 천천히 캠퍼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데군데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회상을 깨지 않기 위해,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캠퍼스 거의 전체를 다 둘러보고, 다시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다닐 때하고는 많이 변했네요.”
“십 년이 넘었죠?”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때 추억 하나만 얘기해 줘요.”
“추억? 어떤 거요?”
“뭐 있잖아요. 소영 씨가 좋아했던 남학생이라든지...”
“특별히 누굴 심하게 좋아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저 같은 남학생이 없었나 보죠?”
“호호호... 글쎄요. 그보다는 그런 거 있잖아요. 딱히 누구를 선택할 수 없는...”
“공주병이 있었네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왕자님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현실에 쉽게 순응하지 못했어요. 전 좀 특별하다 생각했었죠.”
“아... 사실 저도 제 나름 특별하다 생각하는데... 하하.”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잖아요.”
“히히히, 그렇네요. 배고프지 않아요?”
“저녁 먹으러 가요.”
“제가 살게요.”
네온이 번쩍거리는 먹자 골목은 내팽개치고 식당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주택가 골목으로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갔다. ‘어디가요?’라는 질문에 그저 ‘혹시 해서요...’하고 대답하고 이리저리 골목을 돌던 그녀의 걸음이 멈춘 곳에 ‘원조 할머니집’이라는 허름한 입간판이 서 있었다. 가게 외모가 얼마나 지저분한지 도저히 손님을 받는 집 같지 않았다.
“아는 집이세요?”
“네. 아직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근데... 그대로네.”
“이런데 식당이 있다는 게 이상하네요.”
“저쪽 큰 길 나기 전에는 다 이쯤에서 먹고 마시고 했어요. 다른 집들은 다 없어졌네요.”
“들어가 봐요.”
역시...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종업원도 없어서, 손님을 받아야 할 마루에 조그만 꼬마 소녀가 엎드린 채 그림책 같은 걸 보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방 안쪽에 대고 외쳤다.
“할머니, 손님!”
“어...”
마루 한 켠에 자리를 잡자 꼬마가 물을 가져다 주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성수 새엄마는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다가오자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머 드실랑가?”
“막걸리하구요, 파전 하나, 김치찌개 하나...”
막걸리라니... 그녀가 내게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도저히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게 더 놀라웠다.
“찌개는 쫌 기다려야 되는디..”
“파전 먼저 주세요.”
할머니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 후,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조금 흥분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의외로 소탈한 면이 있으시네요?”
“대학교 때는... 다들 그렇죠. 참 오랜만이네요. 할머니도 여전하시고...”
“그때도 같은 주인이었어요?”
“네... 근데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노인의 기억력을 무시했던 그녀의 판단은 틀렸다는 게 금방 드러났다. 막걸리와 파전을 가지고 나오시던 그 할머니는 선글라스를 벗은 성수 새엄마의 맨 얼굴을 보자마자, 발걸음을 딱 멈췄다.
“혹시... 소영이 아니대?”
“저... 기억하세요?”
“맞재? 소영이재?”
“그래요, 할머니. 저 소영이예요! 아... 어떡해...!”
탕! 소리와 함께 쟁반을 식탁에 거칠게 내던지고 주저앉은 할머니가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듯, 성수 새엄마를 얼싸 안았다.
“하이고, 우리 소영이 맞네!~~~ 이거시 얼마만이대?~~~ 어디 낯부닥 좀 보자~~~ 워매!~~~ 하나두 안 변했네, 그래!~~~ 먼 일이다냐, 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봤으믄 했는디...”
“할머니이~~~!”
허... 참! 집나간 딸 돌아온 것 같네. 감격스러운 재회의 장면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나는 묵묵히 종업원 역할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막걸리를 흔들어 열고... 반찬을 식탁에 올려 놓고... 나는 성수 새엄마의 감정 표현에 놀라고 있었다. 항상 수줍은 듯 내려져 있던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치 이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그마한 할머니의 몸통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있는 모습...
짧은 순간에 속사포 같은 질문으로 그녀의 근황을 다 파악한 할머니는 격정이 좀 가시자, 막걸리 한 사발을 물 마시듯 들이켰다. 그래도 여전히 성수 새엄마의 손을 꼭 잡고 계셨다.
“다혜야! 가서 문 닫아 부러라. 살다본 께 이런 날도 오네.”
“제가 할게요.”
아...참나... 손님과 주인이 바뀌는 게 순식간이었다. 꼬마 대신 가서 문 잠그고, 떨어진 막걸리 병 새로 가져오고, 찌개 넘치지 않게 불 조절하는 게 내 일이었다. 좀 전에는 끔찍하게 서로 붙잡고 울더니,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킥킥대다, 소곤대다, 다시 킥킥대다... 둘이 이야기하라고 꼬마랑 같이 그림 그리며 놀고... 그러다 와서 한 잔 하라는 할머니 허락에 다시 탁자에 붙었다.
“누구다냐? 아들은 아닌 듯 헌디..”
“제 딸애 과외 선생님이세요.”
“딸이 있어? 몇 살인디...”
성수 새엄마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했다. 결혼했다고는 했지만, 그게 어떤 결혼인지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나서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두 분이 참 친하셨었나 봐요. 꼭 모녀 사이 같아 보이세요.”
“우리 소영이가 얼매나 나를 잘 따랐는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도 허고... 니 그때 자취했었재? 이거시 이라고 곱디 곱게 생겨논께 머시마들 혼을 빼놨재. 소영이가 우리집 자주 댕긴다고 소문난께 이것들이 핵교 나와 가꼬 공부는 안 허구 허구헌 날 우리 집 와서 죽치고 있는 거여.”
“아이, 할머니.”
“그란께 내가 야한티 니 우리 집서 아르바이트 안 할래? 해갖고 딱 박아놨재. 그란께 이것들이 거 머냐 도서관 자리잡땍이 아침부터 나와갖고 딱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거여. 그 때 돈은 많이 벌었는디, 내가 부모 입장이믄 저것들 보믄 속 터지것다... 그랬제. 허이구, 근디 이거시 인자까지 날 잊지 않구 보러 왔구먼.”
“죄송해요, 할머니... 꼭 뵈러 온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으허엉~~~!”
또 운다, 또. 저러다 몸에 있는 물이 눈물로 다 빠져 나가는 건 아닐까?
“음매, 그라고 본께 니 오믄 준다고 내가 그때 사진 어따 뒀는디... 쫌 있어봐라, 이?”
성수 새엄마가 슬그머니 나를 쳐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벌개져 있는 그녀의 눈가...
“저 우습죠.”
“아니... 좋아 보여요. 사실 좀 놀랐어요.”
할머니가 가져온 사진을 보며 또 소곤소곤, 킥킥... 둘만의 시간을 주려고 다혜라는 손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에 들러 그 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과자 같은 걸 사서 한아름 안겨 주었다. 감사합니다...하고 고개를 꾸벅하는 게 여간 귀엽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 애는 과자를 먹고, 나는 구름과자를 먹었다.
“할머니랑 같이 살아?”
“네.”
“엄마는?”
“엄마는 제가 열다섯 살 되면 와요.”
“아... 그래? 어디 멀리 가셨어?”
“돈 벌러 가셨어요. 아빠가 죽어서, 아빠 대신 갔어요.”
아... 혹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와작와작 과자를 씹는 소리.
“아저씨.”
“응?”
“어른들은 오래 지나도 얼굴 다 알아보죠?”
“응. 왜?”
“다행이다, 혹시 엄마가 나중에 절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걱정돼서요.”
“네가 알아보면 되잖아.”
“저는 까먹었어요, 히히. 사진이 있었는데 명수가 볼펜으로 엉망 만들어 버렸거든요.”
“응... 못된 친구구나.”
“괜찮아요. 사진 봐도 어차피 잘 몰라요. 다 변한대요, 얼굴이. 할머니가 엄마가 돈 벌어서 핸드폰 사면 전화할거래요.”
씨발...!
애를 낳지를 말던가... 낳으면 책임을 지던가...! 버려진 고양이를 보고 유미 누나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기 좋을 대로 사서 키우고 귀찮으면 버리고... 얘도 언젠가 어른들이 한 말이 다 거짓이라는 걸 알 텐데... 상처가 될 텐데...
꼭 다시 오라는 할머니와 헤어져 성수 새엄마와 택시를 탔다. 그녀는 선글라스로 부은 눈을 은폐...
“다혜는 부모가 없나 봐요?”
“아들이 사업 실패하고 자살했는데, 새언니... 그 애 엄마가 그냥 나가서 소식이 없대요. 저 있을 때는 그럴 사람 같지 않았는데...”
“어른들이 참 못됐죠?”
“그러네요.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그 애를 누가 돌보나 그게 제일 큰 걱정이래요. 그래서 제가 그 애 엄마 한 번 찾아보려구요.”
“그 애가 엄마 없이 크면, 유진이처럼 될까요?”
“......”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즐거웠어요. 소영 씨.”
“수호 씨.”
“네?”
“잠깐 올라가면 안돼요?”
“......”
“저 좀 안아줘요.”
“......”
“주인님.”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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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9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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