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6:25 사변의 발발-2
7 월도 하순이 넘어서고 8 월로 접어들면서 이제 천하(天下)는 완전히 공산당이 지배하는「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세상 하에서 그런 대로 안정이 되어가는 듯 했어.
우리식구들은 이곳「신도안」에만 있다 보니까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은 전혀 모르고 지내야 했었어.
대장…!
「신도안」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어.
특히 우리 집 식구들한테는 유난히 길고 지루한 여름이 되고 있는 거야.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동안의 인정이나 또 내 할아버님께서 베풀었던 후덕한 시혜(施惠) 때문에 동네사람들의 인심이 처음에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 호의 적으로 대해 주었었어.
하지만 바뀐 세상의 슬로건은 무식한 동네사람들에게 가만히만 있게 놔두질 않고 있는 거야 … 모두들에게 허무맹랑한 거품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내 할아버지에게 잘 보여서 논농사나 밭농사를 한 뼘이라도 더 붙여먹으려고 하던 사람들에게 어느 지방에선가 왔다는 민청 위원장(民靑 委員長)인가 하는 낯선 청년으로부터 받은 감화 때문에 모두들 눈빛이 달라져 가고 있었어.
특히 해방이 되고 난 뒤「만주」의 어디에선가 살다 왔다는「함안」대감 댁(동네 사람들은 모두들 우리 집을 그렇게 불렀었어.)네 서방님(내 아버지)을 바라보는 눈길이 변해가고 있는 거야.
평소 내 아버지는 소위 많이 배운 인-테리라고 하면서 동네 청년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고상한 척 위엄을 부리면서 지내오고 있었던 건 사실이 있었으니까 ….
그들은 그 동안 내 아버지를 서방님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는 척 해왔었지만 사실은 그토록 이나 거만하고 잘난 척 하는 내 아버지에게 속으로는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 !
이제는 많이 배운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네들처럼 무식하고 그저 농사나 지어먹던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 말을 곧이듣고 있는 거지.
그런데 우리집식구 들은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말이야… !!
말씀은 안하고 계셨지만 내 할아버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인 내 아버지가 가장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는 모양이셨어.
세상이 바뀐 지 한 두 달 지나는 동안 우리 동네나 이웃마을은 물론이고「계룡산」자락 주위의 각 마을들도 안정을 되찾아 가는 듯 했어.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질서가 잡혀가는 거지.
우리 동네에 새로운「촌장」이 부임해 왔어.
그 동안은 내 할아버님이「촌장」이라고 하기보다는 동네에서 자연 발생적인 형태로 마을 안의 대소사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는데 어디로부터인가「촌장」이라는 젊은 사람이 새로 부임해왔다고 하면서 설치고 다니는 거였어.
또 그 동안은 우리 집 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당집 할아버지라는 내 할아버님 년 배 되시는 분이 마을의 원로 노릇을 하시며 내 할아버님을 도와주기도 했었지.
요사이 근 한 달 전부터 새로 민청 위원장이라는 청년이 새로 부임해서 촌장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천영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그 동안「공주」에서 보도연맹이라는 공산당지하조직에서 일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서 공주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이번 전쟁 중에 해방군이라고 하는「인민군」들이 이 고장을 점령하는 바람에 풀려난 혁명 영웅이라고 기고만장 하고 있는 청년이었어.
「작산리」마을의 모든 대소사는 그놈의 손에 의해서「공주」에 있는 내무서(內務署)에 보고되고 있는 모양이었어.
또 한사람「박삼식」이라는 청년이 있었어.
이 사람은 바로 우리 옆집인 당집 할아버지네 집에 살던 머슴이었어.
당집할아버지는 이 동네의 땅 부자 집으로 유명했었지만 또 소문난 짠돌이 영감님으로도 유명했었어.
내 할아버님도 우리 동네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긴 마찬가지지만 내 할아버님은 워낙 인심이 후하셨고 소작농 하는 사람들한테도 일 년 도지세(賭地稅)를 다른 사람들 보다 적게 물리시는 분으로 소문이 나서 봄철이 되면 소작농들이 서로가 우리 집 논이나 밭을 붙여먹으려고 아우성을 치는 판이었지만 당집 할아버지네 땅은 모두들 하는 수 없으니까 죽지 못해 소작을 하는 형편이었었어.
이 당집할아버지네 집에 오래 전부터 밥 어멈 노릇을 하고 있는「종기」라는 아이의 엄마가 있었어.
이 여자는 원래 이 당집할아버지네 집에서 머슴 노릇하던「먹보」라는 노총각한테 타지에서 시집왔던 여자였는데 그「먹보」라는 머슴이 장가를 가고 난 다음에도 그 집에서 계속 머슴노릇을 하게 되다 보니까 이 여자도 그 집의 밥 어멈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래.
그 후에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 이름을「종기」라고 지었다는 거래.
이「종기」엄마는 원래 같은 충청도의 부여(夫餘)어디선가 살다가 왔다는데… ? 그녀의 내력은「먹보」도 확실히는 모르는 모양이었어.
그 후 몇 년인가 가 지냈을 때쯤「종기」엄마의 남동생이라고 하는 청년 한 명이 찾아와서 그 청년도 함께 당집 할아버지네 머슴으로 살게 된 것이었대.
나도 그를 몇 번인가 본적은 있었지만 학교에 다니느라고「대전」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그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었어.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인데 나는 우리 동네 머슴들이 많이 모이는 우리 집 행랑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련님이었었어. 내 할아버님이 워낙 후덕하신 데다 내 엄마 역시「대전」에서 이곳에 오실 때면 꼭 잊지 않으시고 이곳 행랑채의 머슴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라든가 다른 필수품들을 따로 선물로 마련 해다 주시곤 하시는 거지.
내 어머님 말씀으로는 우리 집이 잘되려면 우리 집 일을 도와주는 저 머슴들이나 다른 일꾼들이 열심히 일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저들에게 성심껏 대해 주어야 한다고 늘 쌍 주장 해오시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무엇이던지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면 내 힘껏 도와주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또 그들의 방에 들어가서 그들한테서 옛날이야기 등을 듣는 걸 무척 좋아했었어.
그들도 내가 그들 방에 들어오면 유달리 좋아하기도 했었고 또 그들은 나한테서 내 엄마에 대한 일을 꼬치꼬치 묻는 걸 좋아하기도 했어.
사실은 그들은 감히 내 엄마에 대한 그 어떤 선망의 연정을 표현은 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몸에서 나온 나라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 입을 통하여 그녀에 대한 간접적인 회포를 풀어보고 싶어서 나만 보면 나를 만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곤 하는 거지.
나는 그들이 왜 내 엄마에 대한 일을 묻는지 눈치도 없이 그들이 묻는 대로 자세하게 설명 해주곤 했었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내 엄마에 대해서 묻는 말이 주로 내 엄마의 육체에 관한 것들이었는데도 나는 전혀 그 눈치도 못 채었던 거지.
물론 내가 차츰 커가면서 그들은 그런 짓을 하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이곳「신도안」일대의 엄마를 아는 사내 녀석들에게 있어서 내 엄마「조규정」이라는 여인의 존재는 가장 성스럽고도 이상적인「오-나 베드」여인으로 뇌리에 남아있었다는 거래.
바로 이「종기」네 삼촌인「박삼식」이라는 사람이 세상이 바뀌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내무서(內務署)의 높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며 우리 마을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는 거래.
세상이 바뀌고 나서 한 달쯤 되었을 때 였 어.
나는 아침부터 소년단원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마을 앞 공회당(公會堂)에 나가 있었어.
그때 소년 단장이면서 우리 동네 촌장 노릇을 하고 있는「천영석」이라는 사람이 우리들 앞에 나와서 또 무슨 연설을 하는 거였어.
- 동무들… ! 오늘은 우리 동네 출신의 위대한 혁명가「박삼식」선생께서 우리 마을을 방문하신다고 하니까 모두들 그분을 환영하는 뜻에서 동네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합니다… ! -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소년 단원 각자에게 청소 할 구역을 할당 해주었어.
나도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동네의 다른 집에 들어가 그 집사람들 불러내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청소를 해야 된다고 이르며 돌아다녔어.
우리 집을 담당했던 내 친구 소년단원도 역시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집 식구들 모두는 물론 심지어는 내 엄마까지 불러내어 청소를 시키는 것이었어.
나중에 내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소년 단원 아이와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 몰라… 완전히 막 돼 먹은 세상인것 같아서 차츰 나는 이놈의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호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거지… !
아무리 위대한 혁명가 운운하더라도 감히 내 엄마에게까지 청소를 시키다니… !?
청소가 끝나갈 무렵쯤 해서 예의 그 위대한 혁명가라는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어.
그 사람을 보고 있던 동네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들의 눈을 의심하듯 믿을 수 없는 눈앞의 일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 거야.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집 할아버지네 집에서 얼마 전까지 머슴 노릇을 하고 있던「박삼식」이가 아닌가 말이야 … !?
동네 사람들 누구나 놀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누가 설마하니 당집 할아버지 댁에서 머슴으로 있던「삼식」이가 이렇게 숨어 지내던 「남로당」의 거물급 인사(人事)였었을 줄이야… !?.
「종기」네 삼촌은 마을사람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고 나서 마을 촌장 겸 민청 위원장 의 안내를 받아서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큰 당집할아버지네 대청마루에다 마련한 환영 연회석으로 올라갔어.
마을 사람들 모두들은 하나 같이 입의 침이 마르게「종기」네 삼촌을 칭찬하고 있는 거야 … !
그가 처음「종기」엄마를 찾아 왔을 때 그 인품이 어땠었다는 둥 또 어쩐지 그의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었다는 둥 크게 될 사람은 모진 고생쯤은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둥 … 사람들은 말들이 많기도 했어.
심지어 내 엄마께서도 노골적인 표현은 안 하시지만 은근히 그에 대해서 칭찬을 하시기도 하셨어.
- 야…! 어쩐지 보통 머슴 같지가 않더라마는… !? 외모도 그렇고 말하는 것이 어쩐지 막된 무식쟁이 같지는 않았었어 … ! -
라고 말이야… 나는 잠깐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
[ 언제 엄마가 삼식이 형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라도 있었나 … ? ]
그때에는 벌써 당집 할아버지네 식구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 그 집은 빈집이었었어.
아니 그저 빈집이 아니라 이미 새로된 세상에 압류되어서 마을의 촌장 집 사무실과 민청위원회의 사무실로 겸해서 쓰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당집할아버지는 세상이 바뀌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내무 서에서 온 사람들한테 끌려갔다는데 그 후에는 소식이 없다는 거야.
그 영감님 댁 식구들도 각자 살기 위해서 흩어졌다는 말은 전에 한일이 있고 …
그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해놓고「종기」네 삼촌은 또 바람같이 사라졌어 ….
점점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 할아버지께서는 내 아버지에게 이럴 바에야 차라리「대전」으로 나가서 숨어 있으라고 하셨어.
그곳은 그래도 큰 도회지이니까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누군 줄 모를 테니까 그저 죽은 체하고 때를 기다려보라고 하신 거지. 어느 날 달도 없는 야밤을 택해서 내 아버지께서는「대전」으로 도망하시듯 가버리고 말았어.
그런데… 내 아버지께서「대전」으로 가신지 얼마 안 있어서「대전」에서 아주 반가운 소식이 날아 왔어.
내 아버지께서는 바로 옛날 우리식구들이「만주」에서 살았을 때에 내 외 할아버님 과 같이 장사를 하며 막역하게 지내던 중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그 후에 중공군(中共軍)의 팔로군(八路軍)부대에 들어가서 크게 출세를 해 가지고 이번 전쟁에서 인민군부대의 고문관이 되어서「대전」까지 독려 차 내려왔던 길에 내 아버지를 만났다는 거래 .
내 아빠는 그 중국사람 덕택으로 다시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치하에서도 마음 놓고 양조장을 경영하실 수 있게 되었다는 거래.
너무나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 소식을 듣고 내 엄마는 또다시 크게 걱정을 하시는 거야 ….
내 할아버님께서도 도대체 시국(時局)이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이라 더욱 불안 해 하시는 것 같았어.
어찌됐거나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우리 집 사람들은 한시름 놓게 된 거야.
그 후로 우리 집 식구들은 별로 큰 시련 없이 잘 지내고 있었어.
대장... !!
내가 이야기 하려는 내용이 결코 무슨 이데오로기나 사상적인 면으로 전개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은 대장도 알고 있잖아... ? 이렇게 지루하다고 할정도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은 지금 이야기중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가 나중에 나의 비뚤어진 성애(性愛)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이야기를 안 할수가 없어... ! 부탁해... 대장... !
다소는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어... !
7 월도 하순이 넘어서고 8 월로 접어들면서 이제 천하(天下)는 완전히 공산당이 지배하는「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세상 하에서 그런 대로 안정이 되어가는 듯 했어.
우리식구들은 이곳「신도안」에만 있다 보니까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은 전혀 모르고 지내야 했었어.
대장…!
「신도안」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어.
특히 우리 집 식구들한테는 유난히 길고 지루한 여름이 되고 있는 거야.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동안의 인정이나 또 내 할아버님께서 베풀었던 후덕한 시혜(施惠) 때문에 동네사람들의 인심이 처음에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 호의 적으로 대해 주었었어.
하지만 바뀐 세상의 슬로건은 무식한 동네사람들에게 가만히만 있게 놔두질 않고 있는 거야 … 모두들에게 허무맹랑한 거품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내 할아버지에게 잘 보여서 논농사나 밭농사를 한 뼘이라도 더 붙여먹으려고 하던 사람들에게 어느 지방에선가 왔다는 민청 위원장(民靑 委員長)인가 하는 낯선 청년으로부터 받은 감화 때문에 모두들 눈빛이 달라져 가고 있었어.
특히 해방이 되고 난 뒤「만주」의 어디에선가 살다 왔다는「함안」대감 댁(동네 사람들은 모두들 우리 집을 그렇게 불렀었어.)네 서방님(내 아버지)을 바라보는 눈길이 변해가고 있는 거야.
평소 내 아버지는 소위 많이 배운 인-테리라고 하면서 동네 청년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고상한 척 위엄을 부리면서 지내오고 있었던 건 사실이 있었으니까 ….
그들은 그 동안 내 아버지를 서방님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는 척 해왔었지만 사실은 그토록 이나 거만하고 잘난 척 하는 내 아버지에게 속으로는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 !
이제는 많이 배운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네들처럼 무식하고 그저 농사나 지어먹던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 말을 곧이듣고 있는 거지.
그런데 우리집식구 들은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말이야… !!
말씀은 안하고 계셨지만 내 할아버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인 내 아버지가 가장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는 모양이셨어.
세상이 바뀐 지 한 두 달 지나는 동안 우리 동네나 이웃마을은 물론이고「계룡산」자락 주위의 각 마을들도 안정을 되찾아 가는 듯 했어.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질서가 잡혀가는 거지.
우리 동네에 새로운「촌장」이 부임해 왔어.
그 동안은 내 할아버님이「촌장」이라고 하기보다는 동네에서 자연 발생적인 형태로 마을 안의 대소사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는데 어디로부터인가「촌장」이라는 젊은 사람이 새로 부임해왔다고 하면서 설치고 다니는 거였어.
또 그 동안은 우리 집 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당집 할아버지라는 내 할아버님 년 배 되시는 분이 마을의 원로 노릇을 하시며 내 할아버님을 도와주기도 했었지.
요사이 근 한 달 전부터 새로 민청 위원장이라는 청년이 새로 부임해서 촌장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천영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그 동안「공주」에서 보도연맹이라는 공산당지하조직에서 일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서 공주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이번 전쟁 중에 해방군이라고 하는「인민군」들이 이 고장을 점령하는 바람에 풀려난 혁명 영웅이라고 기고만장 하고 있는 청년이었어.
「작산리」마을의 모든 대소사는 그놈의 손에 의해서「공주」에 있는 내무서(內務署)에 보고되고 있는 모양이었어.
또 한사람「박삼식」이라는 청년이 있었어.
이 사람은 바로 우리 옆집인 당집 할아버지네 집에 살던 머슴이었어.
당집할아버지는 이 동네의 땅 부자 집으로 유명했었지만 또 소문난 짠돌이 영감님으로도 유명했었어.
내 할아버님도 우리 동네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긴 마찬가지지만 내 할아버님은 워낙 인심이 후하셨고 소작농 하는 사람들한테도 일 년 도지세(賭地稅)를 다른 사람들 보다 적게 물리시는 분으로 소문이 나서 봄철이 되면 소작농들이 서로가 우리 집 논이나 밭을 붙여먹으려고 아우성을 치는 판이었지만 당집 할아버지네 땅은 모두들 하는 수 없으니까 죽지 못해 소작을 하는 형편이었었어.
이 당집할아버지네 집에 오래 전부터 밥 어멈 노릇을 하고 있는「종기」라는 아이의 엄마가 있었어.
이 여자는 원래 이 당집할아버지네 집에서 머슴 노릇하던「먹보」라는 노총각한테 타지에서 시집왔던 여자였는데 그「먹보」라는 머슴이 장가를 가고 난 다음에도 그 집에서 계속 머슴노릇을 하게 되다 보니까 이 여자도 그 집의 밥 어멈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래.
그 후에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 이름을「종기」라고 지었다는 거래.
이「종기」엄마는 원래 같은 충청도의 부여(夫餘)어디선가 살다가 왔다는데… ? 그녀의 내력은「먹보」도 확실히는 모르는 모양이었어.
그 후 몇 년인가 가 지냈을 때쯤「종기」엄마의 남동생이라고 하는 청년 한 명이 찾아와서 그 청년도 함께 당집 할아버지네 머슴으로 살게 된 것이었대.
나도 그를 몇 번인가 본적은 있었지만 학교에 다니느라고「대전」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그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었어.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인데 나는 우리 동네 머슴들이 많이 모이는 우리 집 행랑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련님이었었어. 내 할아버님이 워낙 후덕하신 데다 내 엄마 역시「대전」에서 이곳에 오실 때면 꼭 잊지 않으시고 이곳 행랑채의 머슴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라든가 다른 필수품들을 따로 선물로 마련 해다 주시곤 하시는 거지.
내 어머님 말씀으로는 우리 집이 잘되려면 우리 집 일을 도와주는 저 머슴들이나 다른 일꾼들이 열심히 일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저들에게 성심껏 대해 주어야 한다고 늘 쌍 주장 해오시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무엇이던지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면 내 힘껏 도와주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또 그들의 방에 들어가서 그들한테서 옛날이야기 등을 듣는 걸 무척 좋아했었어.
그들도 내가 그들 방에 들어오면 유달리 좋아하기도 했었고 또 그들은 나한테서 내 엄마에 대한 일을 꼬치꼬치 묻는 걸 좋아하기도 했어.
사실은 그들은 감히 내 엄마에 대한 그 어떤 선망의 연정을 표현은 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몸에서 나온 나라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 입을 통하여 그녀에 대한 간접적인 회포를 풀어보고 싶어서 나만 보면 나를 만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곤 하는 거지.
나는 그들이 왜 내 엄마에 대한 일을 묻는지 눈치도 없이 그들이 묻는 대로 자세하게 설명 해주곤 했었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내 엄마에 대해서 묻는 말이 주로 내 엄마의 육체에 관한 것들이었는데도 나는 전혀 그 눈치도 못 채었던 거지.
물론 내가 차츰 커가면서 그들은 그런 짓을 하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이곳「신도안」일대의 엄마를 아는 사내 녀석들에게 있어서 내 엄마「조규정」이라는 여인의 존재는 가장 성스럽고도 이상적인「오-나 베드」여인으로 뇌리에 남아있었다는 거래.
바로 이「종기」네 삼촌인「박삼식」이라는 사람이 세상이 바뀌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내무서(內務署)의 높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며 우리 마을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는 거래.
세상이 바뀌고 나서 한 달쯤 되었을 때 였 어.
나는 아침부터 소년단원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마을 앞 공회당(公會堂)에 나가 있었어.
그때 소년 단장이면서 우리 동네 촌장 노릇을 하고 있는「천영석」이라는 사람이 우리들 앞에 나와서 또 무슨 연설을 하는 거였어.
- 동무들… ! 오늘은 우리 동네 출신의 위대한 혁명가「박삼식」선생께서 우리 마을을 방문하신다고 하니까 모두들 그분을 환영하는 뜻에서 동네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합니다… ! -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소년 단원 각자에게 청소 할 구역을 할당 해주었어.
나도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동네의 다른 집에 들어가 그 집사람들 불러내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청소를 해야 된다고 이르며 돌아다녔어.
우리 집을 담당했던 내 친구 소년단원도 역시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집 식구들 모두는 물론 심지어는 내 엄마까지 불러내어 청소를 시키는 것이었어.
나중에 내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소년 단원 아이와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 몰라… 완전히 막 돼 먹은 세상인것 같아서 차츰 나는 이놈의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호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거지… !
아무리 위대한 혁명가 운운하더라도 감히 내 엄마에게까지 청소를 시키다니… !?
청소가 끝나갈 무렵쯤 해서 예의 그 위대한 혁명가라는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어.
그 사람을 보고 있던 동네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들의 눈을 의심하듯 믿을 수 없는 눈앞의 일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 거야.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집 할아버지네 집에서 얼마 전까지 머슴 노릇을 하고 있던「박삼식」이가 아닌가 말이야 … !?
동네 사람들 누구나 놀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누가 설마하니 당집 할아버지 댁에서 머슴으로 있던「삼식」이가 이렇게 숨어 지내던 「남로당」의 거물급 인사(人事)였었을 줄이야… !?.
「종기」네 삼촌은 마을사람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고 나서 마을 촌장 겸 민청 위원장 의 안내를 받아서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큰 당집할아버지네 대청마루에다 마련한 환영 연회석으로 올라갔어.
마을 사람들 모두들은 하나 같이 입의 침이 마르게「종기」네 삼촌을 칭찬하고 있는 거야 … !
그가 처음「종기」엄마를 찾아 왔을 때 그 인품이 어땠었다는 둥 또 어쩐지 그의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었다는 둥 크게 될 사람은 모진 고생쯤은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둥 … 사람들은 말들이 많기도 했어.
심지어 내 엄마께서도 노골적인 표현은 안 하시지만 은근히 그에 대해서 칭찬을 하시기도 하셨어.
- 야…! 어쩐지 보통 머슴 같지가 않더라마는… !? 외모도 그렇고 말하는 것이 어쩐지 막된 무식쟁이 같지는 않았었어 … ! -
라고 말이야… 나는 잠깐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
[ 언제 엄마가 삼식이 형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라도 있었나 … ? ]
그때에는 벌써 당집 할아버지네 식구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 그 집은 빈집이었었어.
아니 그저 빈집이 아니라 이미 새로된 세상에 압류되어서 마을의 촌장 집 사무실과 민청위원회의 사무실로 겸해서 쓰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당집할아버지는 세상이 바뀌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내무 서에서 온 사람들한테 끌려갔다는데 그 후에는 소식이 없다는 거야.
그 영감님 댁 식구들도 각자 살기 위해서 흩어졌다는 말은 전에 한일이 있고 …
그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해놓고「종기」네 삼촌은 또 바람같이 사라졌어 ….
점점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 할아버지께서는 내 아버지에게 이럴 바에야 차라리「대전」으로 나가서 숨어 있으라고 하셨어.
그곳은 그래도 큰 도회지이니까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누군 줄 모를 테니까 그저 죽은 체하고 때를 기다려보라고 하신 거지. 어느 날 달도 없는 야밤을 택해서 내 아버지께서는「대전」으로 도망하시듯 가버리고 말았어.
그런데… 내 아버지께서「대전」으로 가신지 얼마 안 있어서「대전」에서 아주 반가운 소식이 날아 왔어.
내 아버지께서는 바로 옛날 우리식구들이「만주」에서 살았을 때에 내 외 할아버님 과 같이 장사를 하며 막역하게 지내던 중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그 후에 중공군(中共軍)의 팔로군(八路軍)부대에 들어가서 크게 출세를 해 가지고 이번 전쟁에서 인민군부대의 고문관이 되어서「대전」까지 독려 차 내려왔던 길에 내 아버지를 만났다는 거래 .
내 아빠는 그 중국사람 덕택으로 다시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치하에서도 마음 놓고 양조장을 경영하실 수 있게 되었다는 거래.
너무나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 소식을 듣고 내 엄마는 또다시 크게 걱정을 하시는 거야 ….
내 할아버님께서도 도대체 시국(時局)이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이라 더욱 불안 해 하시는 것 같았어.
어찌됐거나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우리 집 사람들은 한시름 놓게 된 거야.
그 후로 우리 집 식구들은 별로 큰 시련 없이 잘 지내고 있었어.
대장... !!
내가 이야기 하려는 내용이 결코 무슨 이데오로기나 사상적인 면으로 전개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은 대장도 알고 있잖아... ? 이렇게 지루하다고 할정도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은 지금 이야기중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가 나중에 나의 비뚤어진 성애(性愛)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이야기를 안 할수가 없어... ! 부탁해... 대장... !
다소는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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