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도련님."
"아버지는요? 어떠세요."
정욱은 자신을 맞이하는 윤비서를 채촉하든 채근을하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미지의 세계에서의 잊지 못할 여행을 끝내고 자신이 기거하는 하숙집에 도착을 하자 주인 할머니에게 들은 것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에 정욱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것이다.
"잠시 무리를 하셔서 그런 것 뿐입니다. 그렇게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진희는 정욱을 안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병윤은 누워 있었고 그 곁에는 정선이 있었다.
"정욱이 왔구나. 여보 정욱이 왔어요."
그러자 눈감고 있던 병윤의 눈이 살며시 떠진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왔구나."
"예. 아버지. 몸은 어떠세요. 예?"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별로 걱정 할 필요 없다."
"어머니 의사는 왔다 갔어요? 뭐라고 그러시데요?"
"허어!! 걱정 할 필요 없다는데 그러는구나."
자꾸 불안해 한 듯 연신 물어보는 아들의 모습에 병윤은 짜증섞인 어조로 대꾸하였다.
"늙었다고 이 애비를 무시하는 거냐"
"..............."
"오래 살다보면은 격게 되는 과정이다 생각하면 돼."
그리고는 병윤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정욱은 왠지 걱정을 떨칠수가 없었다. 평상시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이랑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과 달리 힘이 없어 보였고 축쳐져 있다고나 할까.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렇게 위독한건 아닌데..... 처음에 내가 놀래가지고 그만 너한테 연락을 한다는게..... 그렇게 살을 붙여가지고.."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로 아버지는 괜찮으신거예요?"
"의사한테 물으니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는 하는데....... 너희 아버지 평소 모습이랑 저 모습을 보자니까 아무래도 불안해."
병윤이 잠들자 정선은 정욱을 따로 불러내서 그간 사정을 예기하였다. 위독한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기운이 없어지고 힘겨워하는 듯이 남편이 축 늘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병윤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그려려니 하였지만은 평소에 힘이 넘치고 주체하기 힘들었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힘이 남아돌던 그의 모습이랑 비교하자니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얼른 정욱에게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은 정욱은 여름 방학 여행을 떠난 중이었고 아무도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연락이 가능한지 알수가 없었기에 할수 없이 하숙집에다가 돌아오면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달라고 예기를 한것이었다.
"설마, 뭔 일이 있을라고요. 그건 그렇고..... 형들이랑 누나들한테는 예기하셨어요?"
"아니, 너희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 여기 저기다 할 예기들이 아니라면서 않했어."
"잘하셨어요."
여기까지 예기하던 중 정욱은 새어머니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고정되고 희한한 듯 바라보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였다.
"왜 그러세요? 뭐가 묻었어요?"
"너.... 방학동안 어디를 여행한거니?"
"그건 왜요?"
"너 너무 마른거 같아서......."
정선의 지적에 정욱은 벽에 걸려 있는 거울로 다가갔다. 거울을 보자 정욱은 정선이 왜 그렇게 자신을 희한한 듯 바라보았는지 이해가 갔다.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자신이 너무 야위었다는 사실을 실감할수 있었기에.....
"너 어디 아픈거니?"
"아, 아니에요.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정선의 걱정어린 물음을 정욱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수롭지 않게 그냥 받아 넘겼다.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볼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번 여름 방학동안 자신이 격었던 신천지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즐겼다. 이렇게 야윈 몰골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사실 2달동안 5명의 여자들이랑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겼는데 당연하다면은 당연한게 아닐까.
"내가 무리했나?"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은 자신은 혼자이고 그녀들은 5명이나 되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곁에 달라붙으며 사랑을 나눠주길 원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절제같은 것은 꿈도 꾸기 어렵지 않을까.
"정욱이 너 나랑 예기좀 않할래."
"예기하세요."
하지만은 정선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정욱도 정선이 둘러보는 곳을 쳐다보았지만은 아무것도 않보였다.
"여기서 말고...... 밖에서........."
"왜? 아, 알았어요."
그런 정선이 의문스러웠지만은 정욱은 뭔가 긴히 할 예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에 나무 그늘아래 이른 두사람, 정선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면서 예의주시 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정욱은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듯 한마디 하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예기인가요?"
그러자 정선이 놀라서 정욱을 처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너 어떻게 알았어. 라고 다 써져 있었다. 그런 새어머니의 모습에 정욱은 역시나 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방학 전에 윤비서가 와서 예기하였어요. 그리고 제 앞날에 대해서 어머니가 처가 사람들이랑 심도 있게 논의중이라고 말이지요."
처가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이준기 그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공식 명칭은 외할아버지라고 해야 하지만은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에 의문시 들기 때문에 대충 처가 사람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그, 그랬구나. 그럼.... 말 않해도 잘 알겠네. 너는.... 어떻게..."
"어머니는 정말로 아름다우세요."
"??!!"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뜬금없는 정욱의 말에 정선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런 정선을 정욱은 정겨운 시선을 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처음 어머니를 뵈었을 때 느낌이 뭔줄 아세요?"
"뭐였는데?"
이야기가 옆으로 어긋나고 이상하게 돌아가긴 하지만은 그래도 정선은 개의치 않고 정욱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어머니라고 부를수 있게 돼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그러니?"
결혼 일정이 잡히고 이집안 식구들이랑 대면하였을때의 정욱의 모습을 떠올렸다. 철부지에 주변이 산만해 하며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그를 말이다.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정욱의 그 말에 정선은 속으로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받아들이는 정욱의 처지가 떠올랐다. 겨우 몇 살 위의 계모를 그나마 어머니라고 부를수 있다는 것을 행복했다니...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정욱아."
정욱의 말에 감격한 정선이 그렇게 화답을 하자 정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제일 보기 좋아요. 항상 이렇게 보기 좋은 모습만 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리고는 정욱은 말없이 정선의 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정선은 덜떠름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정욱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깨달았는지 잔디밭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좋은 모습만을 보기를 원한다? 그럼 조금전에 난 그렇지 않았다 그말이네"
정욱이 예기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기에 뭔 의도로 그러는지 몰랐는데 가만 생각을 해보니까 자신에 대한 따끔한 충고였다.
뒤집어 해석을 한다면은 남편의 죽고 난이후의 일들을 정욱과 상의하려고 하였던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까지 보기 않좋았고 윗사람으로써 꽝이었다는 예기이기도 하다 그말이다.
"그래!! 나도 이러는거 싫어. 하지만은 어쩌겠니!!"
정욱으로부터 그렇게 지적을 받자 정선은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회장님 명의의 주식과 지분을 정욱이 앞으로 오게끔 만들어 놔라. 그렇게 해 놓으면은 최소한 지금과 같은 현상유지의 균형을 이룰수 있어.-
얼마전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린 밀명이었다. 정선은 거절을 할수도 없었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사실 그래야만 자신과 아버지가 살아남을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장자 서윤이 만일 회장 자리를 물려받는다면은 그날부로 자신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겨난다. 그리고 자신은 이 집에서 큰 며느리는 김미혜에 의해서 머리끄뎅이 잡아당기며 문밖으로 내팽겨쳐질것이 자명하였다.
시아버지 살아 계실때라면은 모를까 죽고 난 이후에 이런거 저런거 따져가며 눈치볼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선으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욱을 내세우게 되면은 그런 잡다한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이 된다. 이 집안에서 자기쪽 사람이라고 여길수 있는 것은 그 하나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은 오늘 이렇게 예기를 해보니까 이러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살아 있는 남편을 앞에 두고 죽고 난 이후의 일들을 계산하고 준비를 한다니.... 너무나도 속보이는 짓이 아닌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에 정선은 갈등을 하였다
정욱이 안방에 들어가보니 진희가 병윤의 곁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병윤은 깊은 잠에 들었는지 그대로 누워 있었다.
진희가 들어오는 정욱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정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전번에는 미안했어요"
방학전에 진희에게 가했던 못된짓들을 떠올리며 정욱은 속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자신의 본의가 아니었노라고..... 하지만은 진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병윤을 간호만 할뿐이었다.
정욱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그간 다혈질에 나이에 맞지 않게끔 혈기왕성해하며 힘차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인생을 즐기던 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정욱이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그분의 모습이 아니었다.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축 늘어지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힘없는 노인 그 자체였다.
"흐음"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정욱이 옆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정욱이랑 눈이 마주치자 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어디론가를 향해서 가리쳤다. 정욱이 보니 욕실이었다. 처음엔 뭔 뜻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했지만은 곧 알수가 있었다. 욕실은 화장실과 맞붙어 있는 곳이다. 잠시 화장실좀 다녀와도 되겠느냐는 말이었다. 아니면은 잠시 씻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여길 좀 맡아 달라는 소리이거나......
정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희는 조심스레 일어나서는 욕실로 향하였다.
진희가 자리를 비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윤이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 앉은 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윤비서는.....?"
"욕실에 들어갔어요. 볼일 보거나 아니면은 씻으로 갔나 봐요."
"그러냐!!"
"이제 몸 생각도 하시죠. 아버지도 세월을 비켜 갈수 없는 거 같은데......"
은근히 새어머니랑 진희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을 비꼬는 어조로 말한 것이다.
"그래 니 말이 맞다."
"??!!!"
아버지의 대답에 정욱은 당황하였다. 평상시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놀리거나 비꼬면은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두들겨 맞는 것이 순서인데.....
"세월 앞에선 나도 별수 없구나."
"왜 그러세요? 아버지?"
정욱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평상시의 아버지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은 그 사람은 생전에 않하던 짓을 한다-
이 순간 정욱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욱은 서서히 불안해졌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병윤은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너,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늘 그랬지."
"예."
갑자기 나온 어머니에 대한 예기에 정욱은 바짝 긴장을 하였다. 낳아준 생모에 대해 아버지쪽에서 먼저 예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이 애비가 오늘날까지 그에 대해서 언급을 않해준것에 대해서 많이 원망하고 있었지?"
"아니요"
그 말에 병윤은 뜻밖이라는 듯 정욱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았으니까요. 이 나이 먹도록 절 낳아준 분에 대해서 언급 않하시고 제가 말 꺼내지도 못하게 하시는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냐?"
"예. 항상요. 하지만은 그걸 잘 알면서도 알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워서..... 그만..... 아버지 신경 거슬리는 짓을 하였지만은요."
"내가 하는 일이 언제나 옳았다?...... 그런 소리를 너한테 듣다니.. 정말로 뜻밖이구나."
아무래도 평소에 자신에 대해서 자식들중에서 상당히 불만이 많았을 것이 막내인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병윤으로써는 기분이 묘했다. 병윤은 눈을 지긋히 감고 뭔가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 낳아준 생모에 대해서 지금 예기 해줄까"
"아니요"
"??!!"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을 하자 병윤은 당황하였다.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어째서...?"
지딴에서는 마음 단단히 먹고 겨우 꺼낸 이야기인데 이렇게 퇴짜를 맞으니 어이가 없어 하며 되물었다.
"대충 어떤 식으로 제가 태어났는지 감은 잡혀요. 그리고 낳아준 분에게서 제가 어떤 존재인지도요. 환영받지 못할 그런 출생 아닌가요."
그 말에 병윤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아버지가 침묵을 하자 정욱은 자신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고 느끼고는 말을 이었다.
"원치 않고 감당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은..... 대충 이런 식이겠지요. 이런데 굳이 그분에 대해서 알아서 뭣하게요."
"내가 너한테 정말로 몹쓸 짓을 하는 구나."
이 말에 정욱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은 평상시랑 전혀 다르다.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뭔가 유언을 남기려는 그런 식에 가깝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욱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런 예기 뭐하러 꺼내세요!!."
"너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아버지가 어떻게 인생을 즐기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시는지 않봐도 훤하니까요."
이때 욕실쪽의 문이 열리고 진희가 나왔다. 그녀가 나오자 정욱은 안방에서 나왔다. 겉으로는 진희가 있으니까 그녀보고알아서 해라는 식의 떠넘기기이지만은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평상시랑 달라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거기다가 자신의 생모 예기를 꺼내는 등 그걸로 인해서 자신의 심정이 말이 아니었다. 불안 초조,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정욱은 그녀의 등장을 핑계로 그 자리를 나온 것이다.
안방에서 나온후 정욱은 거실 쇼파에 주저앉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예기해달라고 할걸 그랬나."
조금전 아버지에게서 나온 자신의 생모에 대한 언급, 정욱은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 후회가 들었다.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보고 싶어하던 분에 대해 아버지쪽에서 먼저 예기를 해준다는데 왜 그것을 거절을 했을까. 그런 자신의 행동에 의문까지 들었다.
하지만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이 잘한것이라고 자처를 하며....
태어나서 오늘날 이때까지 정욱은 항상 주변을 예의주시하며 지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느날 한 순간 생모라는 여자가 자신의 주변에 얼쩡거리며 먼 발치에서 바라본다던가 아들아 하면서 짠 하며 등장하는 그런 날이 있진 않을까 하며 막연한 기대를 품고 유년 시절에서 지금까지 그러고 지냈다. 하지만은 다 쓸데 없는 짓이었다.
그런 영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할 여배우는 어디에도 없었고 의심되는 상대도 없었다. 그 말은........
"나란 존재 자체를 잊었거나 떠올릴 필요가 없어서겠지."
그만큼 낳아준 생모가 자신을 원치 않는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정욱은 아버지가 밝히려는 그 순간을 당차게 만류를 하고 거부를 할 수가 있었다.
저녁때쯤 정원을 산책하던 중 정욱은 집안에 들어오는 여러대의 차량을 목격하였다. 하나 같이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서 들어오는 것이 그런데로 볼만하였다.
"다들.... 어쩐 일이에요?"
차에서 한명 한명씩 내리자 정욱은 이들이 누군지 알아볼수 있었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 내외랑 누나 내외들이었다.
"안녕.....하셨어요. 도..련님."
정욱의 물음에 제일 먼저 답한 것은 둘째 형수 정유민이었다. 그녀가 인사를 건내자 정욱은 싫은 표정을 애써 삼키고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냈다.
"오랫만이네요. 작은 형수님."
자신이랑 시선을 애써 피하는 것이 맘에 않들지만은 그래도 집안 식구들 중에서 얼굴 붉힐 일이 적은 상대가 바로 둘째 형 내외이기에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히며 정중하게 대하였다.
"정욱이 너, 아버지 편찮으신데 왜 우리들에게 연락 하지 않았어!!."
서진이 정욱을 보며 질책하는 듯이 나무랬다. 그도 그럴것이 한동안 아버지가 회사에 나오지도 않았고 오늘에서야 몸이 않좋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렇게 온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을 자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동생을 나무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자 정욱은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면서 천연덕스레 대꾸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잘도 찾아오는데..... 그딴게 뭐가 중요해요."
"너 몰라보게 대범해졌구나."
중간에 끼어든 목소리, 큰형 서윤이었다. 그랑 시선이 마주치자 서윤은 순간 움찔하였다.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곱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에 지난번 호텔에서 크게 한판 싸웠고 자신이 사실상 판정패? 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은 애써 서윤은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며 정욱에게 한마디 하였다.
"이제 우리들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말인가...."
"아니, 안중에 둘 가치도 없다. 그말이야."
"도련님. 듣자 듣자 하니까....."
그런 정욱의 태도에 김미혜가 발끈하며 나섰다. 큰 형수 김미혜뿐만 아니라 누나들과 매형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정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은 그들의 그런 모습이 아무렇지 않은 듯 정욱은 그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온거 허락받고 오신거예요. 아니면은 그딴거 생략하고 오신거예요"
그 말에 여기 정욱외에 여기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일그러진다.
전번 호텔에서의 난투극으로 단체로 불려왔을 때 병윤이 이들에게 허락 없이 이 집에 얼씬거리지 말라고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렇게 지적당하고 허를 찔리자 다들 표정이 과관이었다. 한동안 말못하다가 그런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서진이었다.
"아버지 편찬으시다는데....... 않찾아 뵐수도 없고..... 해서 그래서....."
"알았어요. 알았어. 제가 말씀 드릴께요. 다들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렇게 말하고는 정욱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는 이들, 하지만은 하나같이 불만을 감추지 못하였다.
"들어가 보세요. 아버지가 허락하셨어요."
정욱이 나오면서 그렇게 전하자 다들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 누나 내외들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정욱은 혼자서 정원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이랑 한 자리에 같이 한적도 없거니와 같이 하고싶지도 않기에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다.
"도련님은 왜 않들어가세요?"
혼자서 계속 정원에 나와 있는 정욱이 보기 딱한지 의성댁 아줌마가 한마디 하였다.
"들어가서 뭣하게요. 공연히 분위기 잡쳐서 아버지 심기만 흩트려 놓을뿐이죠."
"그래도 이렇게 따로 나와 있는 것은 보기 않좋은데......"
"언제부터 저를 보기 좋게 생각하던가요?"
그 말에 의성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마지막말에 상당히 감정이 섞여 있었고 그 속에 배여있는 정욱의 불편한 심기를 어느정도 읽을수 있었기에.......
대충 눈치를 보며 의성댁이 자리를 뜰려는 그 순간 정욱이 말하였다.
"그건 그렇고..... 아줌마. 아버지 언제부터 저렇게 자리에 누우셨어요?"
"한 2주 정도 됐을걸요"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데요? 의사한테는 진찰 받으셨고요?"
"아니요. 의사 부르지 않고 저렇게 누워 계세요. 사모님이 그럴 필요 없다고....."
그 말에 정욱은 왠지 석연치 않은 듯 재차 되물었다.
"그럴 필요없다고요? 어째서......."
"그게..... 저어......"
의성댁 아줌마가 망설이는 듯하자 정욱이 재촉하였다.
"말해보세요. 아줌마."
그러자 의성댁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거 같아요."
그리고는 의성댁은 지난일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2주 전 막 집안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때쯤 안방에서 병윤의 격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가뿐 숨을 몰아쉰후 조용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선과 진희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울려펴졌다고 하였다.
"정신 차리세요. 괜찮아요... 하면서 이렇게 외치면서 두 사람이 냉장고에서 물 꺼내고 얼음도 꺼내고 소란을 피웠죠. 저는 문밖에서 엿보고 있었고 모르는 척 하였어요. 다행히 별일은 없었는지 다들 안도 하는거 같았지요. 그때부터였어요. 회장님이 저렇게 자리에 누우신게......"
의성댁은 그때를 회상을 하며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정욱에게 말하진 않았지만은 그때 정선과 진희는 아무것도 않걸친 알몸이었다. 그리고 진희의 음부 사이에는 허연 액들이 흥건히 묻어 있었고....... 대충 어느정도 자신도 감을 잡을수 있었다.
의성댁으로부터 그렇게 예기를 듣자 정욱도 대강 감이 잡혔다. 아마도 그날밤 아버지가 너무 무리를 하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너무 정력을 소비를 해서 기운이 다한것일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의사에게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그런것엔 약도 처방도 없지 않은가.
"그랬군요."
"저 그런데..... 오늘 갑자기 많은 찾아오셔가지고 이것 저것 준비 할게 많아서요."
"그래요? 그럼 수고하세요."
정욱의 양해를 받은 후 의성댁은 안으로 들어갔다. 의성댁이 자리를 뜨자 정욱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가 있는 안방쪽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기에 좀 자제를 하시지요."
예나 지금이나 애인과 정부인을 매일 같이 끼고 뒹구는 아버지의 모험적인 사생활에 우려가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정욱이었다.
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식구들로 그날은 집안이 북적거렸다. 중년의 두 아들이랑 중년의 3명의 사위들.... 그리고 며느리와 딸들이 한결 같이 병윤의 주위에 맴돌았다.
"아버지. 이거 드셔보세요. 집 사람이 만든거 예요."
"됐다 너나 먹거라."
그러자 큰 며느리 김미혜의 낯이 일그러진다. 애써 만든것에 젓가락 하나 않대는 시아버지의 행동이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에..... 하지만은 김미혜랑 반대로 그 남편인 서윤의 반응은 달랐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아버지 답지 않게......"
"그러게요."
형의 말에 서진도 동조하며 걱정스레 되물었다. 하지만은 병윤은 그에 대한 대답없이 힘없이 수저를 들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다들 한결같이 안스러워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난 이후 거실에 다들 모여 앉아서 차를 마셨다. 서진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한동안 이 사람이 아버지 수발을 들었으면은 하는데..... 어떠세요."
그러자 서윤이 발끈하며 나섰다. 아무래도 동생 녀석이 아버지에게 뭔가 잘보이려고 선수를 치는 거 같기에 경쟁 심리에서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그런 일이라면은 당연히 맏며느리가 해야지. 제수씨가 왜 해."
그리고는 자신의 부인인 김미혜에게 시선을 돌리며 동조를 구하였다.
"그럼요. 아버님 병수발 드는건 당연히... 제 몫이죠. 아주버님"
말은 그렇게 했지만은 그렇게 말하는 김미혜의 표정은 밝지 못하였다. 이제 40줄에 이른 중년의 나이에 시댁 살이를 한다니..... 오랫동안 분가해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그것을 하라면은..... 맘에 않차는 건 당연할지 몰랐다.
거기다가 더욱 맘에 않드는 것은 자신이 이 집에 들어와서 시아버지 병간호 하며 수발을 든다면은 지금 시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저 머리에 피도 않마른 명목상의 시어머니랑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지 않은가. 얼마전에 자신의 아들 서준의 일로 그녀에게 당한 수모까지 떠올리자니 더욱 열을 받는 그녀였다. 하지만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내색 할수도 없고 남편의 말에 어떠한 반론도 할수 없었기에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예 하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들어와서 병간호 할께요."
"아냐. 내가 할거야."
처음 서진이 나서서 아버지 병간호를 자청하자 그 다음으로 서윤이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윤혜 윤채 윤미가 자신이 하겠다고 자청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 거기에 편승해서 사위들도 지원사격까지 하였다. 사위 자식도 자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까지 동원해가며......
"그만들 해라. 큰 애기나 작은 애기나 자식들 키우느라고 바쁠텐데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 그리고..... 너희들은 출가외인이잖아. 이 애비보단 시댁일이니 신경쓰거라."
"하지만은........."
"애빈 아직 괜찮아. 너희들 아니어도 챙겨주는 사람 많다. 않그러냐 정욱아."
"예? 예. 그럼요."
갑작스레 자신이 지명당하자 정욱은 당황하며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그러자 다들 정욱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래 너 혼자 아버지 곁에서 알랑 방귀 뀌며 호박씨 깐다 그거지."
종합적으로 보건데 이들의 눈빛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거 같았다. 그런 누나들 형들의 시선을 모른척하며 정욱은 차를 한모금 마셨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이런 모임이 얼른 종결되기를 가슴속에서 기원을 하였다.
어느정도 밤이 깊어지자 병윤은 아들 딸들 내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어쩔수 없이 그 말에 따르며 집을 나섰다. 배웅하는 정욱을 바라보며 서진이 한마디하였다.
"정욱이 너 아버지에게 뭔 일 생기면은 얼른 연락해."
"알았어요."
"경거망동 하지 말고......"
마지막에 서윤이 가시 돋힌 목소리로 한마디 하자 정욱의 눈이 치켜 세워졌다.
서로 눈에 불을 켠채 바라보자 다급해진 서진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제발 그만좀 해!! 허구헌날 이게 뭣하는 짓이야."
"저 놈 편이 아니라면은 넌 나서지마."
"작은 형이 그쪽 떨거지도 아닌데 너무 그러지마."
"뭐!!"
대놓고 빈정거리는 정욱의 말에 서윤이 이가 갈리는지 앞에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중재가 필요 한거같은데...."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다들 고개를 돌렸다. 정선이었다. 서윤과 정욱이 으르렁 거리는 장면을 보자 모르는척 하기 그런지 이렇게 직접 나선 것이다.
"끼어들지 마시죠. 나이값도 하셔야죠."
병윤의 큰딸은 윤혜가 한마디 하였다. 세파랗게 어린 것이 집안 어른 행세를 하는 것이 그간 못마땅하였는데 이렇게 계념 없이 나서서 뭐라고 하는 것이 볼성 사나운지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은 정선은 그런 큰딸의 잔소리를 못들은 척 하고 서윤에게 다가가서 한마디 하였다.
"그러니까 나이값 제대로 할줄 아는 그이 모셔올까 하는데 어때요"
"??!!"
그 말에 서윤의 안색이 새파래진다. 자신의 아버지한테 이 짓거리 예기 할거라는 협박과 더불어서 여기에 데려와서 직접 나서게 한다는 엄포를 늘어 놓으니 말이다. 정선의 말 한마디는 그렇게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이년을 그냥....."
정선의 그 짓거리에 김미혜가 발끈하며 나섰다. 하지만은 그 불편한 심기를 입밖으로 꺼내진 못하였다. 눈앞에 있는 이 어린년의 위치를 불현 듯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동안 서로를 그렇게 으르렁 거리는 어조로 바라만 보다 다들 하나 둘 차에 오르며 집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이러다가 큰일 나는거 아냐."
서진은 백밀러로 멀어져 가는 집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앞을 보니 큰형이 탄 차가 먼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 병문안 와서 서진은 몇가지 걱정이 들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욱의 태도였다. 이전에는 그냥 찍소리않고 그냥 소리죽여 지내는 정도였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그게 아닌거 같았다. 오늘도 중간에 새파란 계모가 나서지 않았다면은 서윤이랑 사생 결단을 하였을지 모른다. 그만큼 집안 분위기는 이전과 다를 정도로 험악하기만 하였고 갈수록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서진은 옆에 있는 부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하였다.
"당신도 일간 하영이 데리고 아버지 찾아 뵙도록 해."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정유민, 그런 그녀를 보며 서진은 착잡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조금전의 그 으르렁 거리는 장면을 보고 주눅이 든거 같기에......
"당신 심정 잘 알아. 나도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집안이 도데체 어떻게 돌아갈려고 하는지...."
"그런데....... 괜찮을까요?"
"글세... 아버지 나이가 나이지만은.... 별일은 없을거야. 그젊은 여자 둘씩이나 데리고 지내는게 보통 일이야. 않그래."
대수롭지 않게 그냥 좋은 쪽으로 말을 돌리는 서진, 하지만은 정유민은 그런 남편이 답답한 듯 그 뜻이 아니라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반대쪽 차 유리로 돌렸다.
유리창에 비친 정유민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초조함과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의 자식 내외들이 다돌아가자 정선은 정욱과 방에서 예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이 이사님께서 저를 보았으면은 한다 그말이에요."
명목상 외할아버지이지만은 왠지 그런 호칭을 붙이기 너무나도 껄끄럽기에 회사에서의 직책명을 거론하였다. 정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 사람이 자신을 보자고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내일 좀 시간 내줄수 없을까. 내일이 않된다면은 모레나 글피는 어때?"
"그 이전에 뭔 일때문인지 알려주실수 없을까요."
그러자 정선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며 답하였다.
"예기..... 하면은 시간 내줄거니?"
그녀의 말에 정욱은 대강 어떤 일 때문에 만나자고하는지 알거 같았다.
"제 장래 일이라면은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회사일도 바쁠텐데.... 뭐라고 그런 일에까지 신경 쓰시는지....."
"그래도 한번 만나보는 건 어떠니. 손해 볼 일도 아니잖아. 않그래."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당장 나가 달라고 소리 칠려다가 정욱은 그녀랑 시선이 마주치자 그 말이 목구멍으로 도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제발.... 이렇게 부탁 할게."
간절하게 애원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런 새어머니의 모습에 정욱은 더는 몰인정하게 뿌리칠수가 없었다. 자신의 속마음에 자리 잡은 불편한 심기와 짜증 그리고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사이에 방황하던 정욱은 결국 그 원칙을 택하였고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답하였다.
"그렇게 할께요. 그러면 됐죠."
"그, 그래. 고마워."
자신의 요구를 정욱이 수락을 하자 정선의 얼굴이 밝아졌고 그렇게 들뜬 표정으로 정선은 정욱의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정욱은 아버지 곁으로 갔다.
안방에 들어가보니 병윤은 깊히 잠들어 있었고 곁에는 진희가 안마를 하고 있었다.
정욱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진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정욱이 만류를 하고 그대로 있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윤의 안마를 계속 하였다.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서서히 불안해지는 마음을 주체할수 없었다. 아버지 답지 않은 무기력한 모습을 근래에 들어서 목격을 하였고 그와 더불어서 앞날에 대비하라는 집안 식구들의 언질까지 받았기에 더욱 그러하였는지 모른다.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셔서 집안 이끌어 나가 주세요. 그럴수 있죠."
하루라도 빨리 쾌차를 해서 이런 불안한 상황을 해소해 나가주길 바라고 또 빌었다.
"어머니랑 윤비서를 생각해서라도 그래 주실수 있죠."
안마를 하고 있는 진희를 바라보며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밤이 깊어지자 정욱은 진희의 권유로 인해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빙빙 돌리지 않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약속 장소에 정욱이 나오자 준기는 간략하게 툭 터 놓고 예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준기의 태도가 싫진 않은지 정욱은 그의 말에 경청을 하였다. 하지만은 예기중반으로가자 더는 듣기 뭣한지 정욱이 광소를 터트리고 중간에 말을 끊었다.
"흐흐흐.... 뭐가 어째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라. 아직 대학교 재학중인데..... 그리고 이제 곧 21살짜리한테...... 지금 제 정신이세요?"
"물론 무리라는 건 잘 알지만은 그렇게까지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정도는아니라고 본다."
"그래 어떻게요? 어떤 식으로 해서 저를 회장 자리에 앉힐건데요?"
그 물음에 준기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병윤 명의의 회사 지분이랑 주식들이 정욱이 물려받으면은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을 한 회사의 중역들이 뒤에서 힘을 받혀주면은 가능하다고 말을 하며.....
"모험이지만은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은 형들이랑 매형들 어떻게 할건데요? 그들은 팔짱만 끼고 바라만 볼거 같아요?"
현재 회사 내의 세력 구도를 생각한다면은 이 문제는 그냥 지나칠수 없는 부분이다. 수십년동안 회사에서 일을하며 자신들의 기반을 쌓아온 그들이다. 그들만이 아닌 그들을 따르는 지지세력들까지 동원된다면은......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들이 아니었다.
"어느정도 견제하는데는 자신이 있다. 아울러 너의 형들이랑 매형들.... 그렇게까지 서로 결집력이 강하지 않아. 따로 따로 제 각각이지. 상황에 따라서 이해관계에 의해서 임시로 붙거나 혹은 떨어져 나가곤 하지. 내 말 알겠니?"
"예. 잘 알지요. 하지만은 한가지 잊고 계신게 있네요."
"뭐가 말이냐?"
"제가 언제 그런거 하고 싶다고 했나요"
그 말에 준기의 인상이 일그러진다. 이때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가며 어느정도 결실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갑자기 이렇게 초를 치니 말이다. 이걸로 다시 대화는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린 것이 이렇게 말을 돌리는 것이 맘에 않들지만은 그래도 아쉬운 것은 자신이고 다급하기에 불편한 맘을 억누르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내키지 않을거란건 잘 안다. 하지만은...... 그렇게 얌전히 지낼 일만은 아니라고 봐"
"어째서요?"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은 너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하는 거냐?"
그러자 정욱의 눈살이 찌뿌려지더니 이내 가시 돋힌 어조로 맞받아쳤다.
"그때가 되면은 따님은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보고 저희 아버지한테 시집 보낸 겁니까?"
"너!!"
자신의 역린을 정욱이 건드리자 준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준기가 으르렁 거리는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지만은 정욱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딸 바쳐서 이사 자리 따 냈으면은 됐지. 그 이상 뭘 더 바래요."
이렇게 예기 하고 싶었지만은 그래도 차마 서류상 명목상의 외할아버지의 위치에 있는 존재라서 참기로 하였다.
"그 예긴...... 그만해라. 나도 어쩔수 없었으니까."
애써 분을 삭히며 자리에 앉는 준기,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예기를 이어간다.
"넌 야심도 없니?. 너의 아버지 자리 이어 받고 싶다거나...... 한번 멋지게 살아 보고 싶고 모든지 다 갖고 싶다는...... 그런 남자로써의 기본 욕구도 없어!!"
"............."
"너 그런 식을 지냈다가는 아무것도 못 가진다."
"말 다 하셨으면은 전 이만 일어나 보죠."
이런 식으로 예기를 일방적으로 끝내고 정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져가는 정욱의 모습을 보며 준기는 이를 갈며 외쳤다.
"살고 싶다는 생각도 없는 놈이군."
어느정도 결실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만나자고 한것이지만은 않한이만 못한 결과가 되었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정욱의 행동에 준기는 혀를 찼다.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준기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명목상의 외할아버지의 설교를 다 듣고 나서 정욱은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를 위해서라기 보단 그쪽이 원하는 것이 많은 거겠지요."
준기를 떠올리며 그를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그 순간 맞은 편에서 몇 명의 사내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정욱은 문을 열고 그들이 타도록 기다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중 하나가 정욱에게 감사하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1층으로 내려가던중 그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어떻게 된거지?"
"놀라지 마세요. 연락하면은 되니까요."
정욱이 인터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그들중 한명이 정욱을 제지하였다.
"그럴 필요 없어. 연락 않해도 돼."
"??!!"
그리고는 같이 탄 4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정욱의 주위를 둘러섰다. 그들을 보면서 정욱은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봐 젊은 친구..... 나이에 맞게 처신하는게 어때."
"뭐든 일에는 순서란게 있는거야.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함부로 설쳐대다니... 보기 않좋아."
"당신들..... 누구야."
그들의 예기를 듣는 순간 정욱은 대강 이들의 목적을 알수있을거 같았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이러는 거란 것을.....
"긴말 하지 않겠어. 그렇게 몰인정한 분은 아니니까 어느정도 챙겨줄거라는 것만은 명심하도록 해. 만일에 경거망동했다가는 국물도 없을거라는 것도...... 알아 들었어."
여차하면은 당장 실력 행사로 들어가겠다는 듯이 대비를 하고 있는 이들..... 정욱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어느정도 실력 발휘를 할수 있지만은 이들 4명을 다 제압하기 힘들거 같았다. 그리고 이들 하나 하나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을 은연중 느낄수 있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욱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래. 생각 잘했어."
"우리 예기 명심해. 그쪽을 지켜 보고 있다는 것도 잊지마."
그리고는 그들은 어디론가 휴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의 전원이 들어오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그들은 내리고 제빨리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정욱은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 그대로 주저 앉았다.
"이건 정말로 너무해."
방금전의 일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기 어려웠다. 감시당하고 협박까지 당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였다.
"어느정도 챙겨 줄테니까 경거 망동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는지 대 놓고 예기하진 않았지만은 감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서히 정욱의 눈에는 핏발이 서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하였다. 문이 열리자 마자 얼굴에 분노로 물든 한 젊은이의 모습에 탑승하려는 사람들은 움찔하였다. 그가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걸어나간후에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서와라."
집에 도착을 하니 정선이 정욱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하지만은 그런 정선을 정욱은 시선하나 주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 입는데 문이 열리고는 정선이 들어왔다.
"오늘 어땠니?"
자신의 아버지랑 만나서 예기를 나누기로했기에 어떤 예기가 오고 갔는지..... 아니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정선은 궁금하였다. 하지만은 정욱은 정선의 말따위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피곤한 기색을 하며 정욱이 자신의 방으로올라가 버리자 정선은 약간 서먹한 표정으로 정욱이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주시하다가 돌아섰다. 뭐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어보면은 되겠지만은 대충 어떻게 예기가 되었을지 감이 잡히는 듯 하였다.
"휴학이라니..... 너 군대 이미 갔다 왔잖아. 그런데 무슨 일로......"
다들 한동안 연락도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정욱을 보며 한마디씩 하였다.
"아버지가 몸져 누우셔서...... 병간호도 할겸...... 당분간은 학교일에 신경 쓰기 어려워서 그래요."
"그 정도로 상태가 않좋으시니?"
"예."
"저런...... 하긴 옆에 돌봐드릴 사람이 너 뿐이라니..... 어쩔수 없겠지."
"너 고생 많겠구나."
다들 정욱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 걱정해주며 한마디씩 하였다.
"한동안 못볼거예요. 이해해주세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않그래도 면접 보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거든....."
"저런 졸업이 가까워졌네요. 석민이 형 그래 자리는 좋은데 있던가요?"
"아니...... 전혀..... 눈높이 따위는 집어 치우고 어느정도 조건만 맞고 하면은 아무데나 들어갈 생각이야."
"정 힘들면은 저 한테 연락하세요. 저도 어떻게 연줄을 대서 선배한테 걸맞는 좋은 자리 알아보도록 하죠."
"말만이라도 고맙구나."
정욱의 말에 가소롭긴 하지만은 그래도 자신을 생각해주는 듯하기에 웃어 넘기는 석민이었다.
그렇게 같은 과 동문들과 동아리 친구들이랑 작별을 하며 정욱은 학교를 나왔다. 사실 휴학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은 아버지가 자신이 곁에 있기를 희망하는 눈치였고 정욱은 완강하게 거절할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집안 일로 인해서 적지 않게 신경쓸 일이 많은 상황이기에 전반적으로 학교를 맘 편하게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휴학을 할 결심을 한 것이다.학교를 나오는 중에 요란한 음악이 거리에 울려퍼지고 현란한 옷차림의 섹시한 여성들이 격렬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을 보자 정욱의 미소가 밝아진다.
"오랫만이군. 이렇게 보는 것이....."
나레이터 모델들을 본 것이 꽤 오랜만인거 같았다. 무더운 날씨에 걸맞게 그들의 차림또한 시원스레 보였다.
"그나저나 윤주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레이터 모델들을 보자니 이전의 윤주랑 정미를 만났을때가 떠올랐다. 정미는 가까이 있으니까 그렇게 궁금하진 않지만은 윤주는 아니었다. 멀리 일본에 가 있으니 말이다.
토루와 결혼식은 아마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은 아마도 지금쯤은 그 둘 사이에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여겨졌다.
"일간 일본에 한번 가봐야 겠어."
그렇게 결심을 하고 정욱은 발걸음을 옮겼다.
근래에 들어서 정선의 심정은 착잡해지기만 하였다. 그 이유는 남편이 몸져 눕게 되니 그 자식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 오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안주인인데도 불구하고 안방 옆의 서재에 틀어 박혀 있거나 정원에서 배회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공연히 그들이랑 얼굴을 맞대서 으르렁 거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때문이다.
"아버지. 몸은 어떠세요.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큰딸은 윤혜가 곁에서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원래는 주로 저녁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오전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너희들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야? 그런 거야?"
그들을 볼때마다 정선은 속으로 그렇게 외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의사에게 진찰 받은 결과 너무 고령이라 완치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소견을 들은 후로 저들의 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한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살아 남기 위해서 아니면은 한몫 단단히 챙기기 위한 것일 것이다.
평소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던 그들이 남편이 몸져 떠?가망성이 없다는 소리에 저렇게 180도 얼굴을 바꿔가며 나오니 말이다.
"그나저나 정욱이 너는 도데체 어쩔거니?"
얼마전 자신의 아버지랑 정욱이 만났고 어떤 예기가 있었는지 전해 들었다. 그 결과는 정말로 비관적이었다. 그위의 형들 누나들은 저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 곁에 아양을 떨고 갖은 공세를 펼치는데 정욱은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였다.
될게로 되라는 식에 가깝다. 옆에서 지켜보는 정선으로써는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사모님. 회사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의성댁이 인터컴 화면에 비친 얼굴을 가리키자 그것을 본 정선은 밖으로 향하였다.
"어서들 오세요."
"이거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그래 형님 좀 어떠십니까."
"여전하시죠. 뭐. 어서 들어오세요."
정선이 권하자 그들은 안으로 들어왔다. 회사 중역들인 김정준 이사와 유상민 사장, 회사 창업 맴버이자 회장인 병윤과는 의형제나 다름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더욱 각별한 사이이기에 정선으로써는 시아주버니 대하듯 그들을 이렇게 맞이한 것이다.
"어머!! 아저씨들.... 어서 오세요."
"갑자기 왠 일이세요?"
회사에서 아버지 다음 가는 실세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윤혜 윤채 윤미 3자매들은 물론 며느리들까지 다들 긴장하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형님 병문안도 할겸..... 그리고 상의 할 일도 있고 해서......"
"상의라고요? 무슨 일이시길래"
김미혜의 물음에 김정준의 눈살이 찌뿌려지더니 가시 돋힌 어조로 한마디 하였다.
"그쪽이랑 상관없으니까 형님에게 기별이나 넣어!!"
감히 며느리 따위가 왈가 왈부 하며 시시콜콜 이렇듯 따지는 것이 참기 어렵다는 듯 이렇게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대 놓고 질책을 하자 김미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자네 뭘 하는가. 우리 말 않들려!!"
김미혜가 부들 부들 떨며 멍하니 있자 옆에 있던 유상민도 같이 거들면서 그녀에게 큰 소리를 쳤다. 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지 전혀 분간이 않가는 두 사람의 태도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순간 얼이 빠졌다. 그들중에 제일 먼저 정신 차린 것은 정선이었다.
"제, 제가..... 기별 넣을께요."
그리고는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정선이 나오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아주버님들...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자 유상민과 김정준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그들은 며느리들과 딸들이 들으라는 듯 한마디씩 하고 들어갔다.
"하여간에 형님 자식 농사는 엉망진창이군."
"이렇게 치맛바람 날리는데 병이 완치 될리 있겠어."
남겨진 이들은 한동안 얼빠진 듯 있다가 그들이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다들 분통을 터트렸다.
"기가 막혀서....."
"하여간...... 저 아저씨들 보면은 재수가 없어서...."
며느리 김미혜를 비롯하여 시누이들까지 덩달아서 그들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명목상의 딸들이랑 며느리들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정선은 그들에게 대접할 차를 준비해 놓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한잔 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히 마시지요."
정선이 권하는 차를 다들 한모금씩 들이키고는 제일 먼저 김정준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회장님 이젠 뭔가 조치를........"
정준의 말을 중간에 끊고 병윤은 정선을 돌아다 보며 말하였다.
"당신 그만 나가봐. 한동안 부르지 않을테니까 여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이들 한테도 그렇게 일러두고......."
"예."
방을 나서면서 정선은 남편과 상민 정준 그 두사람의 표정을 보고 뭔 예기를 나눌것인지 대충 감을 잡을수 있을거 같았다. 아마도 후계구도에 대해 상의하지 않을까 싶다.
거의 밤쯤이 다 되자 그들은 병윤의 방에서 나왔다. 몇시간동안 틀어박혀서 긴 예기를 나누었지만은 결론이 신통치 않은 듯 표정이 시원치 않아 보였다.
"안녕히들 가세요."
"예. 수고하세요. 그럼."
정선과 작별을 한후 그들은 저택을 나섰다. 김정준과 유상민이 대문까지 나왔을때였다.
"어쩐 일이세요. 두분 다?"
"오!! 정욱이구나."
상대를 알아보고 두 사람은 시선을 그리로 향하였다.
"형님 병문안을 온거다. 한동안 않나오시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거 같다는 예기가 들려서 말이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데..... 곧 좋아지실 거예요. 쬐끔~~ 무리해서 저러시는 겁니다."
"이 녀석......"
정욱의 비아냥 거림에 가까운 말투에 상민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은 정욱은 그걸 못본척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서 말했다.
"살펴 들어가세요. 그리고 바쁘신거 잘 알지만은 자주 찾아오시고요."
그리고 정욱은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정욱을 한동안 주시하던 두사람은 심각한 표정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거..... 이대로 놔둬도 괜찮을까?"
"글세..... 아무리 회장님께서 저 녀석 애지 중지 하셔도 그렇지......"
"그래도 다른 놈들 보단 욕심에 덜 물든 녀석이잖아. 그래서 회장님도....."
그러자 김정준이 말도 않된다는 듯 반박을 하고 나섰다.
"겨우 그걸로 말이 될거라고 생각을 해. 이제 겨우 21살 먹은 놈이야. 세상 물정 전혀 모르니까 당연한거 잖아!!"
그 말에 유상민도 더는 대꾸도 못하였다. 한동안 두사람은 정욱이 들어간 곳을 주시하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도련님."
정욱이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그를 반긴 것은 정유민이었다. 정욱은 그녀의 환대를 건성으로 대충 받아넘기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선을 보자 말을 걸었다
"김이사 아저씨랑 유사장 아저씨 방금 봤어요."
"그러니. 그분들도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거야."
"그럴만도 하시겠네요. 아버지는요."
"그냥 올라가서 쉬어. 너무 오랫동안 그분들이랑 예기 나눠서 피곤하신가봐."
"알았어요."
정욱을 자기 방으로 올려보내고 정선은 안방으로 향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행동을 멈추고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둘째 며느리 정유민을 바라보았다.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 아니요. 저어....."
정선의 물음에 정유민은 놀라더니 이내 자리를 피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정선은 어리둥절하였다.
"왜 저러는 거지?"
저럴 이유가 없기에 정선은 의아해하였다. 하지만은 그녀의 생각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허구헌날 으르렁 거리는 남편의 자식들이랑 사위 며느리들의 시시껄렁한 것까지 신경쓸만큼 그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니까.
"흐음....."
진희랑 남편의 병간호를 교대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선은 갖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병든 남편을 앞에 두고 이러는 것이 도리는 아니지만은 그래도 마냥 팔짱만 끼고 바라볼수 없었다. 학교를 휴학을 하고 정욱은 집에서 아버지의 병간호에만 몰두하였다.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그 태도에 정선은 불안하기만 하였다.
어제 문밖에서 엿들었는데 서윤이 아버지랑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이제 자신이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가겠노라고 호언을 하면서 믿고 맡겨 달라고 대 놓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큰 아들의 말에 병윤은 일언 반구도 없었지만은......
그 외에도 딸 자식들이랑 사위들도 걸핏하면은 사위 자식도 자식이네 하며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기까지 하였다.
그런 형들 매형들의 상황을 바라만 보면서 정작 정욱은 태평하기만 하다.
"이러면은 않돼. 더 이상 이대로는 않돼."
정선의 초조함은 극에 달하였다. 아버지로부터 매일 정욱이를 좀 어떻게 해보라는 성화가 빗발치는 것을 접어두더라도 그간 서로 쌓아온 정을 봐서라도 그 녀석이 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낙오자가 되는 것을 두고 볼수가 없었다.
정선은 잠든 남편과 진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향하였다.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정욱의 방앞에 이르자 그 앞에 서 있는 둘째 며느리 정유민을 보고 정선이 의아해 하며 말을 걸었다. 정유민은 정선의 출현에 잠시 놀라는 듯 하였다.
"그, 그게.... 저어..... 도련님..."
"할말이 있어서 온거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유산 상속 문제나 회사 경영 관련 일로 언질을 주기 위해서 온것이려니 여기고 정선이 말하였다. 그러자 정유민은 정선과 시선을 피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애물단지 시동생이 이럴때는 가장 요긴해 보이는 가 보죠."
정선의 가시 돋힌 말에 정유민의 안색이 파래진다.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그래도 이날이때까지 당신네들이 정욱이 한테 한짓에 비할수 있겠어요. 않그래요."
그 말에 정유민은 정선을 젖히고 1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내려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정선은 방문을 대고 노크를 하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정선을 보고는 정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않잤니?"
"예. 잠도 않와서..... 책 보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렇게 몇마디 나누고 나자 정선은 문득 정욱의 표정에서 이상한점을 볼수가 있었다. 뭔가 불안해 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것이다.
"왜 그러는 거니? 정욱아."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온게 싫은 거니?"
그러자 정욱이 두손을 저으면서 부인하였다.
"그게 아니라...... 이 시간에... 이렇게 오시면은 주변에서........"
그 말에 정선은 정욱이 왜 그렇게 안절 부절하지 못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늦은 밤에 자신이 정욱의 방에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좋게 보일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요즘들어서 병문안 오던 며느리랑 딸들이 아주 눌러 지내기까지 하며 집안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다 시피 하지 않은가. 그런 상황인데 이렇게 늦은 밤에 자신이 여기를 찾아오는 것이 누군가에게 공연한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그렇구나. 내가 그 생각을 미쳐 못했네."
답답한 마음에 툭 터 놓고 예기를 할 생각에 그 부분을 놓쳤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럼 난 내려갈까."
"아니, 이왕 오셨는데......
"아버지는요? 어떠세요."
정욱은 자신을 맞이하는 윤비서를 채촉하든 채근을하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미지의 세계에서의 잊지 못할 여행을 끝내고 자신이 기거하는 하숙집에 도착을 하자 주인 할머니에게 들은 것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에 정욱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것이다.
"잠시 무리를 하셔서 그런 것 뿐입니다. 그렇게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진희는 정욱을 안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병윤은 누워 있었고 그 곁에는 정선이 있었다.
"정욱이 왔구나. 여보 정욱이 왔어요."
그러자 눈감고 있던 병윤의 눈이 살며시 떠진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왔구나."
"예. 아버지. 몸은 어떠세요. 예?"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별로 걱정 할 필요 없다."
"어머니 의사는 왔다 갔어요? 뭐라고 그러시데요?"
"허어!! 걱정 할 필요 없다는데 그러는구나."
자꾸 불안해 한 듯 연신 물어보는 아들의 모습에 병윤은 짜증섞인 어조로 대꾸하였다.
"늙었다고 이 애비를 무시하는 거냐"
"..............."
"오래 살다보면은 격게 되는 과정이다 생각하면 돼."
그리고는 병윤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정욱은 왠지 걱정을 떨칠수가 없었다. 평상시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이랑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과 달리 힘이 없어 보였고 축쳐져 있다고나 할까.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렇게 위독한건 아닌데..... 처음에 내가 놀래가지고 그만 너한테 연락을 한다는게..... 그렇게 살을 붙여가지고.."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로 아버지는 괜찮으신거예요?"
"의사한테 물으니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는 하는데....... 너희 아버지 평소 모습이랑 저 모습을 보자니까 아무래도 불안해."
병윤이 잠들자 정선은 정욱을 따로 불러내서 그간 사정을 예기하였다. 위독한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기운이 없어지고 힘겨워하는 듯이 남편이 축 늘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병윤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그려려니 하였지만은 평소에 힘이 넘치고 주체하기 힘들었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힘이 남아돌던 그의 모습이랑 비교하자니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얼른 정욱에게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은 정욱은 여름 방학 여행을 떠난 중이었고 아무도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연락이 가능한지 알수가 없었기에 할수 없이 하숙집에다가 돌아오면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달라고 예기를 한것이었다.
"설마, 뭔 일이 있을라고요. 그건 그렇고..... 형들이랑 누나들한테는 예기하셨어요?"
"아니, 너희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 여기 저기다 할 예기들이 아니라면서 않했어."
"잘하셨어요."
여기까지 예기하던 중 정욱은 새어머니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고정되고 희한한 듯 바라보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였다.
"왜 그러세요? 뭐가 묻었어요?"
"너.... 방학동안 어디를 여행한거니?"
"그건 왜요?"
"너 너무 마른거 같아서......."
정선의 지적에 정욱은 벽에 걸려 있는 거울로 다가갔다. 거울을 보자 정욱은 정선이 왜 그렇게 자신을 희한한 듯 바라보았는지 이해가 갔다.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자신이 너무 야위었다는 사실을 실감할수 있었기에.....
"너 어디 아픈거니?"
"아, 아니에요.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정선의 걱정어린 물음을 정욱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수롭지 않게 그냥 받아 넘겼다.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볼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번 여름 방학동안 자신이 격었던 신천지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즐겼다. 이렇게 야윈 몰골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사실 2달동안 5명의 여자들이랑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겼는데 당연하다면은 당연한게 아닐까.
"내가 무리했나?"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은 자신은 혼자이고 그녀들은 5명이나 되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곁에 달라붙으며 사랑을 나눠주길 원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절제같은 것은 꿈도 꾸기 어렵지 않을까.
"정욱이 너 나랑 예기좀 않할래."
"예기하세요."
하지만은 정선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정욱도 정선이 둘러보는 곳을 쳐다보았지만은 아무것도 않보였다.
"여기서 말고...... 밖에서........."
"왜? 아, 알았어요."
그런 정선이 의문스러웠지만은 정욱은 뭔가 긴히 할 예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에 나무 그늘아래 이른 두사람, 정선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면서 예의주시 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정욱은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듯 한마디 하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예기인가요?"
그러자 정선이 놀라서 정욱을 처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너 어떻게 알았어. 라고 다 써져 있었다. 그런 새어머니의 모습에 정욱은 역시나 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방학 전에 윤비서가 와서 예기하였어요. 그리고 제 앞날에 대해서 어머니가 처가 사람들이랑 심도 있게 논의중이라고 말이지요."
처가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이준기 그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공식 명칭은 외할아버지라고 해야 하지만은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에 의문시 들기 때문에 대충 처가 사람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그, 그랬구나. 그럼.... 말 않해도 잘 알겠네. 너는.... 어떻게..."
"어머니는 정말로 아름다우세요."
"??!!"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뜬금없는 정욱의 말에 정선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런 정선을 정욱은 정겨운 시선을 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처음 어머니를 뵈었을 때 느낌이 뭔줄 아세요?"
"뭐였는데?"
이야기가 옆으로 어긋나고 이상하게 돌아가긴 하지만은 그래도 정선은 개의치 않고 정욱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어머니라고 부를수 있게 돼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그러니?"
결혼 일정이 잡히고 이집안 식구들이랑 대면하였을때의 정욱의 모습을 떠올렸다. 철부지에 주변이 산만해 하며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그를 말이다.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정욱의 그 말에 정선은 속으로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받아들이는 정욱의 처지가 떠올랐다. 겨우 몇 살 위의 계모를 그나마 어머니라고 부를수 있다는 것을 행복했다니...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정욱아."
정욱의 말에 감격한 정선이 그렇게 화답을 하자 정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제일 보기 좋아요. 항상 이렇게 보기 좋은 모습만 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리고는 정욱은 말없이 정선의 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정선은 덜떠름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정욱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깨달았는지 잔디밭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좋은 모습만을 보기를 원한다? 그럼 조금전에 난 그렇지 않았다 그말이네"
정욱이 예기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기에 뭔 의도로 그러는지 몰랐는데 가만 생각을 해보니까 자신에 대한 따끔한 충고였다.
뒤집어 해석을 한다면은 남편의 죽고 난이후의 일들을 정욱과 상의하려고 하였던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까지 보기 않좋았고 윗사람으로써 꽝이었다는 예기이기도 하다 그말이다.
"그래!! 나도 이러는거 싫어. 하지만은 어쩌겠니!!"
정욱으로부터 그렇게 지적을 받자 정선은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회장님 명의의 주식과 지분을 정욱이 앞으로 오게끔 만들어 놔라. 그렇게 해 놓으면은 최소한 지금과 같은 현상유지의 균형을 이룰수 있어.-
얼마전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린 밀명이었다. 정선은 거절을 할수도 없었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사실 그래야만 자신과 아버지가 살아남을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장자 서윤이 만일 회장 자리를 물려받는다면은 그날부로 자신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겨난다. 그리고 자신은 이 집에서 큰 며느리는 김미혜에 의해서 머리끄뎅이 잡아당기며 문밖으로 내팽겨쳐질것이 자명하였다.
시아버지 살아 계실때라면은 모를까 죽고 난 이후에 이런거 저런거 따져가며 눈치볼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선으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욱을 내세우게 되면은 그런 잡다한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이 된다. 이 집안에서 자기쪽 사람이라고 여길수 있는 것은 그 하나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은 오늘 이렇게 예기를 해보니까 이러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살아 있는 남편을 앞에 두고 죽고 난 이후의 일들을 계산하고 준비를 한다니.... 너무나도 속보이는 짓이 아닌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에 정선은 갈등을 하였다
정욱이 안방에 들어가보니 진희가 병윤의 곁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병윤은 깊은 잠에 들었는지 그대로 누워 있었다.
진희가 들어오는 정욱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정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전번에는 미안했어요"
방학전에 진희에게 가했던 못된짓들을 떠올리며 정욱은 속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자신의 본의가 아니었노라고..... 하지만은 진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병윤을 간호만 할뿐이었다.
정욱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그간 다혈질에 나이에 맞지 않게끔 혈기왕성해하며 힘차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인생을 즐기던 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정욱이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그분의 모습이 아니었다.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축 늘어지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힘없는 노인 그 자체였다.
"흐음"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정욱이 옆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정욱이랑 눈이 마주치자 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어디론가를 향해서 가리쳤다. 정욱이 보니 욕실이었다. 처음엔 뭔 뜻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했지만은 곧 알수가 있었다. 욕실은 화장실과 맞붙어 있는 곳이다. 잠시 화장실좀 다녀와도 되겠느냐는 말이었다. 아니면은 잠시 씻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여길 좀 맡아 달라는 소리이거나......
정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희는 조심스레 일어나서는 욕실로 향하였다.
진희가 자리를 비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윤이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 앉은 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윤비서는.....?"
"욕실에 들어갔어요. 볼일 보거나 아니면은 씻으로 갔나 봐요."
"그러냐!!"
"이제 몸 생각도 하시죠. 아버지도 세월을 비켜 갈수 없는 거 같은데......"
은근히 새어머니랑 진희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을 비꼬는 어조로 말한 것이다.
"그래 니 말이 맞다."
"??!!!"
아버지의 대답에 정욱은 당황하였다. 평상시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놀리거나 비꼬면은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두들겨 맞는 것이 순서인데.....
"세월 앞에선 나도 별수 없구나."
"왜 그러세요? 아버지?"
정욱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평상시의 아버지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은 그 사람은 생전에 않하던 짓을 한다-
이 순간 정욱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욱은 서서히 불안해졌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병윤은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너,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늘 그랬지."
"예."
갑자기 나온 어머니에 대한 예기에 정욱은 바짝 긴장을 하였다. 낳아준 생모에 대해 아버지쪽에서 먼저 예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이 애비가 오늘날까지 그에 대해서 언급을 않해준것에 대해서 많이 원망하고 있었지?"
"아니요"
그 말에 병윤은 뜻밖이라는 듯 정욱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았으니까요. 이 나이 먹도록 절 낳아준 분에 대해서 언급 않하시고 제가 말 꺼내지도 못하게 하시는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냐?"
"예. 항상요. 하지만은 그걸 잘 알면서도 알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워서..... 그만..... 아버지 신경 거슬리는 짓을 하였지만은요."
"내가 하는 일이 언제나 옳았다?...... 그런 소리를 너한테 듣다니.. 정말로 뜻밖이구나."
아무래도 평소에 자신에 대해서 자식들중에서 상당히 불만이 많았을 것이 막내인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병윤으로써는 기분이 묘했다. 병윤은 눈을 지긋히 감고 뭔가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 낳아준 생모에 대해서 지금 예기 해줄까"
"아니요"
"??!!"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을 하자 병윤은 당황하였다.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어째서...?"
지딴에서는 마음 단단히 먹고 겨우 꺼낸 이야기인데 이렇게 퇴짜를 맞으니 어이가 없어 하며 되물었다.
"대충 어떤 식으로 제가 태어났는지 감은 잡혀요. 그리고 낳아준 분에게서 제가 어떤 존재인지도요. 환영받지 못할 그런 출생 아닌가요."
그 말에 병윤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아버지가 침묵을 하자 정욱은 자신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고 느끼고는 말을 이었다.
"원치 않고 감당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은..... 대충 이런 식이겠지요. 이런데 굳이 그분에 대해서 알아서 뭣하게요."
"내가 너한테 정말로 몹쓸 짓을 하는 구나."
이 말에 정욱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은 평상시랑 전혀 다르다.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뭔가 유언을 남기려는 그런 식에 가깝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욱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런 예기 뭐하러 꺼내세요!!."
"너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아버지가 어떻게 인생을 즐기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시는지 않봐도 훤하니까요."
이때 욕실쪽의 문이 열리고 진희가 나왔다. 그녀가 나오자 정욱은 안방에서 나왔다. 겉으로는 진희가 있으니까 그녀보고알아서 해라는 식의 떠넘기기이지만은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평상시랑 달라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거기다가 자신의 생모 예기를 꺼내는 등 그걸로 인해서 자신의 심정이 말이 아니었다. 불안 초조,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정욱은 그녀의 등장을 핑계로 그 자리를 나온 것이다.
안방에서 나온후 정욱은 거실 쇼파에 주저앉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예기해달라고 할걸 그랬나."
조금전 아버지에게서 나온 자신의 생모에 대한 언급, 정욱은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 후회가 들었다.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보고 싶어하던 분에 대해 아버지쪽에서 먼저 예기를 해준다는데 왜 그것을 거절을 했을까. 그런 자신의 행동에 의문까지 들었다.
하지만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이 잘한것이라고 자처를 하며....
태어나서 오늘날 이때까지 정욱은 항상 주변을 예의주시하며 지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느날 한 순간 생모라는 여자가 자신의 주변에 얼쩡거리며 먼 발치에서 바라본다던가 아들아 하면서 짠 하며 등장하는 그런 날이 있진 않을까 하며 막연한 기대를 품고 유년 시절에서 지금까지 그러고 지냈다. 하지만은 다 쓸데 없는 짓이었다.
그런 영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할 여배우는 어디에도 없었고 의심되는 상대도 없었다. 그 말은........
"나란 존재 자체를 잊었거나 떠올릴 필요가 없어서겠지."
그만큼 낳아준 생모가 자신을 원치 않는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정욱은 아버지가 밝히려는 그 순간을 당차게 만류를 하고 거부를 할 수가 있었다.
저녁때쯤 정원을 산책하던 중 정욱은 집안에 들어오는 여러대의 차량을 목격하였다. 하나 같이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서 들어오는 것이 그런데로 볼만하였다.
"다들.... 어쩐 일이에요?"
차에서 한명 한명씩 내리자 정욱은 이들이 누군지 알아볼수 있었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 내외랑 누나 내외들이었다.
"안녕.....하셨어요. 도..련님."
정욱의 물음에 제일 먼저 답한 것은 둘째 형수 정유민이었다. 그녀가 인사를 건내자 정욱은 싫은 표정을 애써 삼키고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냈다.
"오랫만이네요. 작은 형수님."
자신이랑 시선을 애써 피하는 것이 맘에 않들지만은 그래도 집안 식구들 중에서 얼굴 붉힐 일이 적은 상대가 바로 둘째 형 내외이기에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히며 정중하게 대하였다.
"정욱이 너, 아버지 편찮으신데 왜 우리들에게 연락 하지 않았어!!."
서진이 정욱을 보며 질책하는 듯이 나무랬다. 그도 그럴것이 한동안 아버지가 회사에 나오지도 않았고 오늘에서야 몸이 않좋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렇게 온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을 자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동생을 나무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자 정욱은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면서 천연덕스레 대꾸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잘도 찾아오는데..... 그딴게 뭐가 중요해요."
"너 몰라보게 대범해졌구나."
중간에 끼어든 목소리, 큰형 서윤이었다. 그랑 시선이 마주치자 서윤은 순간 움찔하였다.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곱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에 지난번 호텔에서 크게 한판 싸웠고 자신이 사실상 판정패? 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은 애써 서윤은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며 정욱에게 한마디 하였다.
"이제 우리들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말인가...."
"아니, 안중에 둘 가치도 없다. 그말이야."
"도련님. 듣자 듣자 하니까....."
그런 정욱의 태도에 김미혜가 발끈하며 나섰다. 큰 형수 김미혜뿐만 아니라 누나들과 매형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정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은 그들의 그런 모습이 아무렇지 않은 듯 정욱은 그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온거 허락받고 오신거예요. 아니면은 그딴거 생략하고 오신거예요"
그 말에 여기 정욱외에 여기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일그러진다.
전번 호텔에서의 난투극으로 단체로 불려왔을 때 병윤이 이들에게 허락 없이 이 집에 얼씬거리지 말라고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렇게 지적당하고 허를 찔리자 다들 표정이 과관이었다. 한동안 말못하다가 그런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서진이었다.
"아버지 편찬으시다는데....... 않찾아 뵐수도 없고..... 해서 그래서....."
"알았어요. 알았어. 제가 말씀 드릴께요. 다들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렇게 말하고는 정욱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는 이들, 하지만은 하나같이 불만을 감추지 못하였다.
"들어가 보세요. 아버지가 허락하셨어요."
정욱이 나오면서 그렇게 전하자 다들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 누나 내외들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정욱은 혼자서 정원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이랑 한 자리에 같이 한적도 없거니와 같이 하고싶지도 않기에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다.
"도련님은 왜 않들어가세요?"
혼자서 계속 정원에 나와 있는 정욱이 보기 딱한지 의성댁 아줌마가 한마디 하였다.
"들어가서 뭣하게요. 공연히 분위기 잡쳐서 아버지 심기만 흩트려 놓을뿐이죠."
"그래도 이렇게 따로 나와 있는 것은 보기 않좋은데......"
"언제부터 저를 보기 좋게 생각하던가요?"
그 말에 의성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마지막말에 상당히 감정이 섞여 있었고 그 속에 배여있는 정욱의 불편한 심기를 어느정도 읽을수 있었기에.......
대충 눈치를 보며 의성댁이 자리를 뜰려는 그 순간 정욱이 말하였다.
"그건 그렇고..... 아줌마. 아버지 언제부터 저렇게 자리에 누우셨어요?"
"한 2주 정도 됐을걸요"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데요? 의사한테는 진찰 받으셨고요?"
"아니요. 의사 부르지 않고 저렇게 누워 계세요. 사모님이 그럴 필요 없다고....."
그 말에 정욱은 왠지 석연치 않은 듯 재차 되물었다.
"그럴 필요없다고요? 어째서......."
"그게..... 저어......"
의성댁 아줌마가 망설이는 듯하자 정욱이 재촉하였다.
"말해보세요. 아줌마."
그러자 의성댁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거 같아요."
그리고는 의성댁은 지난일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2주 전 막 집안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때쯤 안방에서 병윤의 격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가뿐 숨을 몰아쉰후 조용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선과 진희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울려펴졌다고 하였다.
"정신 차리세요. 괜찮아요... 하면서 이렇게 외치면서 두 사람이 냉장고에서 물 꺼내고 얼음도 꺼내고 소란을 피웠죠. 저는 문밖에서 엿보고 있었고 모르는 척 하였어요. 다행히 별일은 없었는지 다들 안도 하는거 같았지요. 그때부터였어요. 회장님이 저렇게 자리에 누우신게......"
의성댁은 그때를 회상을 하며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정욱에게 말하진 않았지만은 그때 정선과 진희는 아무것도 않걸친 알몸이었다. 그리고 진희의 음부 사이에는 허연 액들이 흥건히 묻어 있었고....... 대충 어느정도 자신도 감을 잡을수 있었다.
의성댁으로부터 그렇게 예기를 듣자 정욱도 대강 감이 잡혔다. 아마도 그날밤 아버지가 너무 무리를 하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너무 정력을 소비를 해서 기운이 다한것일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의사에게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그런것엔 약도 처방도 없지 않은가.
"그랬군요."
"저 그런데..... 오늘 갑자기 많은 찾아오셔가지고 이것 저것 준비 할게 많아서요."
"그래요? 그럼 수고하세요."
정욱의 양해를 받은 후 의성댁은 안으로 들어갔다. 의성댁이 자리를 뜨자 정욱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가 있는 안방쪽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기에 좀 자제를 하시지요."
예나 지금이나 애인과 정부인을 매일 같이 끼고 뒹구는 아버지의 모험적인 사생활에 우려가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정욱이었다.
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식구들로 그날은 집안이 북적거렸다. 중년의 두 아들이랑 중년의 3명의 사위들.... 그리고 며느리와 딸들이 한결 같이 병윤의 주위에 맴돌았다.
"아버지. 이거 드셔보세요. 집 사람이 만든거 예요."
"됐다 너나 먹거라."
그러자 큰 며느리 김미혜의 낯이 일그러진다. 애써 만든것에 젓가락 하나 않대는 시아버지의 행동이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에..... 하지만은 김미혜랑 반대로 그 남편인 서윤의 반응은 달랐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아버지 답지 않게......"
"그러게요."
형의 말에 서진도 동조하며 걱정스레 되물었다. 하지만은 병윤은 그에 대한 대답없이 힘없이 수저를 들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다들 한결같이 안스러워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난 이후 거실에 다들 모여 앉아서 차를 마셨다. 서진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한동안 이 사람이 아버지 수발을 들었으면은 하는데..... 어떠세요."
그러자 서윤이 발끈하며 나섰다. 아무래도 동생 녀석이 아버지에게 뭔가 잘보이려고 선수를 치는 거 같기에 경쟁 심리에서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그런 일이라면은 당연히 맏며느리가 해야지. 제수씨가 왜 해."
그리고는 자신의 부인인 김미혜에게 시선을 돌리며 동조를 구하였다.
"그럼요. 아버님 병수발 드는건 당연히... 제 몫이죠. 아주버님"
말은 그렇게 했지만은 그렇게 말하는 김미혜의 표정은 밝지 못하였다. 이제 40줄에 이른 중년의 나이에 시댁 살이를 한다니..... 오랫동안 분가해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그것을 하라면은..... 맘에 않차는 건 당연할지 몰랐다.
거기다가 더욱 맘에 않드는 것은 자신이 이 집에 들어와서 시아버지 병간호 하며 수발을 든다면은 지금 시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저 머리에 피도 않마른 명목상의 시어머니랑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지 않은가. 얼마전에 자신의 아들 서준의 일로 그녀에게 당한 수모까지 떠올리자니 더욱 열을 받는 그녀였다. 하지만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내색 할수도 없고 남편의 말에 어떠한 반론도 할수 없었기에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예 하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들어와서 병간호 할께요."
"아냐. 내가 할거야."
처음 서진이 나서서 아버지 병간호를 자청하자 그 다음으로 서윤이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윤혜 윤채 윤미가 자신이 하겠다고 자청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 거기에 편승해서 사위들도 지원사격까지 하였다. 사위 자식도 자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까지 동원해가며......
"그만들 해라. 큰 애기나 작은 애기나 자식들 키우느라고 바쁠텐데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 그리고..... 너희들은 출가외인이잖아. 이 애비보단 시댁일이니 신경쓰거라."
"하지만은........."
"애빈 아직 괜찮아. 너희들 아니어도 챙겨주는 사람 많다. 않그러냐 정욱아."
"예? 예. 그럼요."
갑작스레 자신이 지명당하자 정욱은 당황하며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그러자 다들 정욱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래 너 혼자 아버지 곁에서 알랑 방귀 뀌며 호박씨 깐다 그거지."
종합적으로 보건데 이들의 눈빛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거 같았다. 그런 누나들 형들의 시선을 모른척하며 정욱은 차를 한모금 마셨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이런 모임이 얼른 종결되기를 가슴속에서 기원을 하였다.
어느정도 밤이 깊어지자 병윤은 아들 딸들 내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어쩔수 없이 그 말에 따르며 집을 나섰다. 배웅하는 정욱을 바라보며 서진이 한마디하였다.
"정욱이 너 아버지에게 뭔 일 생기면은 얼른 연락해."
"알았어요."
"경거망동 하지 말고......"
마지막에 서윤이 가시 돋힌 목소리로 한마디 하자 정욱의 눈이 치켜 세워졌다.
서로 눈에 불을 켠채 바라보자 다급해진 서진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제발 그만좀 해!! 허구헌날 이게 뭣하는 짓이야."
"저 놈 편이 아니라면은 넌 나서지마."
"작은 형이 그쪽 떨거지도 아닌데 너무 그러지마."
"뭐!!"
대놓고 빈정거리는 정욱의 말에 서윤이 이가 갈리는지 앞에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중재가 필요 한거같은데...."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다들 고개를 돌렸다. 정선이었다. 서윤과 정욱이 으르렁 거리는 장면을 보자 모르는척 하기 그런지 이렇게 직접 나선 것이다.
"끼어들지 마시죠. 나이값도 하셔야죠."
병윤의 큰딸은 윤혜가 한마디 하였다. 세파랗게 어린 것이 집안 어른 행세를 하는 것이 그간 못마땅하였는데 이렇게 계념 없이 나서서 뭐라고 하는 것이 볼성 사나운지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은 정선은 그런 큰딸의 잔소리를 못들은 척 하고 서윤에게 다가가서 한마디 하였다.
"그러니까 나이값 제대로 할줄 아는 그이 모셔올까 하는데 어때요"
"??!!"
그 말에 서윤의 안색이 새파래진다. 자신의 아버지한테 이 짓거리 예기 할거라는 협박과 더불어서 여기에 데려와서 직접 나서게 한다는 엄포를 늘어 놓으니 말이다. 정선의 말 한마디는 그렇게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이년을 그냥....."
정선의 그 짓거리에 김미혜가 발끈하며 나섰다. 하지만은 그 불편한 심기를 입밖으로 꺼내진 못하였다. 눈앞에 있는 이 어린년의 위치를 불현 듯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동안 서로를 그렇게 으르렁 거리는 어조로 바라만 보다 다들 하나 둘 차에 오르며 집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이러다가 큰일 나는거 아냐."
서진은 백밀러로 멀어져 가는 집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앞을 보니 큰형이 탄 차가 먼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 병문안 와서 서진은 몇가지 걱정이 들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욱의 태도였다. 이전에는 그냥 찍소리않고 그냥 소리죽여 지내는 정도였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그게 아닌거 같았다. 오늘도 중간에 새파란 계모가 나서지 않았다면은 서윤이랑 사생 결단을 하였을지 모른다. 그만큼 집안 분위기는 이전과 다를 정도로 험악하기만 하였고 갈수록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서진은 옆에 있는 부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하였다.
"당신도 일간 하영이 데리고 아버지 찾아 뵙도록 해."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정유민, 그런 그녀를 보며 서진은 착잡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조금전의 그 으르렁 거리는 장면을 보고 주눅이 든거 같기에......
"당신 심정 잘 알아. 나도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집안이 도데체 어떻게 돌아갈려고 하는지...."
"그런데....... 괜찮을까요?"
"글세... 아버지 나이가 나이지만은.... 별일은 없을거야. 그젊은 여자 둘씩이나 데리고 지내는게 보통 일이야. 않그래."
대수롭지 않게 그냥 좋은 쪽으로 말을 돌리는 서진, 하지만은 정유민은 그런 남편이 답답한 듯 그 뜻이 아니라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반대쪽 차 유리로 돌렸다.
유리창에 비친 정유민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초조함과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의 자식 내외들이 다돌아가자 정선은 정욱과 방에서 예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이 이사님께서 저를 보았으면은 한다 그말이에요."
명목상 외할아버지이지만은 왠지 그런 호칭을 붙이기 너무나도 껄끄럽기에 회사에서의 직책명을 거론하였다. 정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 사람이 자신을 보자고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내일 좀 시간 내줄수 없을까. 내일이 않된다면은 모레나 글피는 어때?"
"그 이전에 뭔 일때문인지 알려주실수 없을까요."
그러자 정선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며 답하였다.
"예기..... 하면은 시간 내줄거니?"
그녀의 말에 정욱은 대강 어떤 일 때문에 만나자고하는지 알거 같았다.
"제 장래 일이라면은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회사일도 바쁠텐데.... 뭐라고 그런 일에까지 신경 쓰시는지....."
"그래도 한번 만나보는 건 어떠니. 손해 볼 일도 아니잖아. 않그래."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당장 나가 달라고 소리 칠려다가 정욱은 그녀랑 시선이 마주치자 그 말이 목구멍으로 도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제발.... 이렇게 부탁 할게."
간절하게 애원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런 새어머니의 모습에 정욱은 더는 몰인정하게 뿌리칠수가 없었다. 자신의 속마음에 자리 잡은 불편한 심기와 짜증 그리고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사이에 방황하던 정욱은 결국 그 원칙을 택하였고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답하였다.
"그렇게 할께요. 그러면 됐죠."
"그, 그래. 고마워."
자신의 요구를 정욱이 수락을 하자 정선의 얼굴이 밝아졌고 그렇게 들뜬 표정으로 정선은 정욱의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정욱은 아버지 곁으로 갔다.
안방에 들어가보니 병윤은 깊히 잠들어 있었고 곁에는 진희가 안마를 하고 있었다.
정욱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진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정욱이 만류를 하고 그대로 있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윤의 안마를 계속 하였다.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서서히 불안해지는 마음을 주체할수 없었다. 아버지 답지 않은 무기력한 모습을 근래에 들어서 목격을 하였고 그와 더불어서 앞날에 대비하라는 집안 식구들의 언질까지 받았기에 더욱 그러하였는지 모른다.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셔서 집안 이끌어 나가 주세요. 그럴수 있죠."
하루라도 빨리 쾌차를 해서 이런 불안한 상황을 해소해 나가주길 바라고 또 빌었다.
"어머니랑 윤비서를 생각해서라도 그래 주실수 있죠."
안마를 하고 있는 진희를 바라보며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밤이 깊어지자 정욱은 진희의 권유로 인해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빙빙 돌리지 않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약속 장소에 정욱이 나오자 준기는 간략하게 툭 터 놓고 예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준기의 태도가 싫진 않은지 정욱은 그의 말에 경청을 하였다. 하지만은 예기중반으로가자 더는 듣기 뭣한지 정욱이 광소를 터트리고 중간에 말을 끊었다.
"흐흐흐.... 뭐가 어째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라. 아직 대학교 재학중인데..... 그리고 이제 곧 21살짜리한테...... 지금 제 정신이세요?"
"물론 무리라는 건 잘 알지만은 그렇게까지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정도는아니라고 본다."
"그래 어떻게요? 어떤 식으로 해서 저를 회장 자리에 앉힐건데요?"
그 물음에 준기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병윤 명의의 회사 지분이랑 주식들이 정욱이 물려받으면은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을 한 회사의 중역들이 뒤에서 힘을 받혀주면은 가능하다고 말을 하며.....
"모험이지만은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은 형들이랑 매형들 어떻게 할건데요? 그들은 팔짱만 끼고 바라만 볼거 같아요?"
현재 회사 내의 세력 구도를 생각한다면은 이 문제는 그냥 지나칠수 없는 부분이다. 수십년동안 회사에서 일을하며 자신들의 기반을 쌓아온 그들이다. 그들만이 아닌 그들을 따르는 지지세력들까지 동원된다면은......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들이 아니었다.
"어느정도 견제하는데는 자신이 있다. 아울러 너의 형들이랑 매형들.... 그렇게까지 서로 결집력이 강하지 않아. 따로 따로 제 각각이지. 상황에 따라서 이해관계에 의해서 임시로 붙거나 혹은 떨어져 나가곤 하지. 내 말 알겠니?"
"예. 잘 알지요. 하지만은 한가지 잊고 계신게 있네요."
"뭐가 말이냐?"
"제가 언제 그런거 하고 싶다고 했나요"
그 말에 준기의 인상이 일그러진다. 이때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가며 어느정도 결실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갑자기 이렇게 초를 치니 말이다. 이걸로 다시 대화는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린 것이 이렇게 말을 돌리는 것이 맘에 않들지만은 그래도 아쉬운 것은 자신이고 다급하기에 불편한 맘을 억누르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내키지 않을거란건 잘 안다. 하지만은...... 그렇게 얌전히 지낼 일만은 아니라고 봐"
"어째서요?"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은 너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하는 거냐?"
그러자 정욱의 눈살이 찌뿌려지더니 이내 가시 돋힌 어조로 맞받아쳤다.
"그때가 되면은 따님은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보고 저희 아버지한테 시집 보낸 겁니까?"
"너!!"
자신의 역린을 정욱이 건드리자 준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준기가 으르렁 거리는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지만은 정욱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딸 바쳐서 이사 자리 따 냈으면은 됐지. 그 이상 뭘 더 바래요."
이렇게 예기 하고 싶었지만은 그래도 차마 서류상 명목상의 외할아버지의 위치에 있는 존재라서 참기로 하였다.
"그 예긴...... 그만해라. 나도 어쩔수 없었으니까."
애써 분을 삭히며 자리에 앉는 준기,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예기를 이어간다.
"넌 야심도 없니?. 너의 아버지 자리 이어 받고 싶다거나...... 한번 멋지게 살아 보고 싶고 모든지 다 갖고 싶다는...... 그런 남자로써의 기본 욕구도 없어!!"
"............."
"너 그런 식을 지냈다가는 아무것도 못 가진다."
"말 다 하셨으면은 전 이만 일어나 보죠."
이런 식으로 예기를 일방적으로 끝내고 정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져가는 정욱의 모습을 보며 준기는 이를 갈며 외쳤다.
"살고 싶다는 생각도 없는 놈이군."
어느정도 결실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만나자고 한것이지만은 않한이만 못한 결과가 되었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정욱의 행동에 준기는 혀를 찼다.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준기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명목상의 외할아버지의 설교를 다 듣고 나서 정욱은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를 위해서라기 보단 그쪽이 원하는 것이 많은 거겠지요."
준기를 떠올리며 그를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그 순간 맞은 편에서 몇 명의 사내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정욱은 문을 열고 그들이 타도록 기다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중 하나가 정욱에게 감사하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1층으로 내려가던중 그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어떻게 된거지?"
"놀라지 마세요. 연락하면은 되니까요."
정욱이 인터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그들중 한명이 정욱을 제지하였다.
"그럴 필요 없어. 연락 않해도 돼."
"??!!"
그리고는 같이 탄 4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정욱의 주위를 둘러섰다. 그들을 보면서 정욱은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봐 젊은 친구..... 나이에 맞게 처신하는게 어때."
"뭐든 일에는 순서란게 있는거야.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함부로 설쳐대다니... 보기 않좋아."
"당신들..... 누구야."
그들의 예기를 듣는 순간 정욱은 대강 이들의 목적을 알수있을거 같았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이러는 거란 것을.....
"긴말 하지 않겠어. 그렇게 몰인정한 분은 아니니까 어느정도 챙겨줄거라는 것만은 명심하도록 해. 만일에 경거망동했다가는 국물도 없을거라는 것도...... 알아 들었어."
여차하면은 당장 실력 행사로 들어가겠다는 듯이 대비를 하고 있는 이들..... 정욱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어느정도 실력 발휘를 할수 있지만은 이들 4명을 다 제압하기 힘들거 같았다. 그리고 이들 하나 하나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을 은연중 느낄수 있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욱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래. 생각 잘했어."
"우리 예기 명심해. 그쪽을 지켜 보고 있다는 것도 잊지마."
그리고는 그들은 어디론가 휴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의 전원이 들어오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그들은 내리고 제빨리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정욱은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 그대로 주저 앉았다.
"이건 정말로 너무해."
방금전의 일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기 어려웠다. 감시당하고 협박까지 당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였다.
"어느정도 챙겨 줄테니까 경거 망동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는지 대 놓고 예기하진 않았지만은 감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서히 정욱의 눈에는 핏발이 서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하였다. 문이 열리자 마자 얼굴에 분노로 물든 한 젊은이의 모습에 탑승하려는 사람들은 움찔하였다. 그가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걸어나간후에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서와라."
집에 도착을 하니 정선이 정욱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하지만은 그런 정선을 정욱은 시선하나 주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 입는데 문이 열리고는 정선이 들어왔다.
"오늘 어땠니?"
자신의 아버지랑 만나서 예기를 나누기로했기에 어떤 예기가 오고 갔는지..... 아니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정선은 궁금하였다. 하지만은 정욱은 정선의 말따위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피곤한 기색을 하며 정욱이 자신의 방으로올라가 버리자 정선은 약간 서먹한 표정으로 정욱이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주시하다가 돌아섰다. 뭐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어보면은 되겠지만은 대충 어떻게 예기가 되었을지 감이 잡히는 듯 하였다.
"휴학이라니..... 너 군대 이미 갔다 왔잖아. 그런데 무슨 일로......"
다들 한동안 연락도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정욱을 보며 한마디씩 하였다.
"아버지가 몸져 누우셔서...... 병간호도 할겸...... 당분간은 학교일에 신경 쓰기 어려워서 그래요."
"그 정도로 상태가 않좋으시니?"
"예."
"저런...... 하긴 옆에 돌봐드릴 사람이 너 뿐이라니..... 어쩔수 없겠지."
"너 고생 많겠구나."
다들 정욱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 걱정해주며 한마디씩 하였다.
"한동안 못볼거예요. 이해해주세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않그래도 면접 보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거든....."
"저런 졸업이 가까워졌네요. 석민이 형 그래 자리는 좋은데 있던가요?"
"아니...... 전혀..... 눈높이 따위는 집어 치우고 어느정도 조건만 맞고 하면은 아무데나 들어갈 생각이야."
"정 힘들면은 저 한테 연락하세요. 저도 어떻게 연줄을 대서 선배한테 걸맞는 좋은 자리 알아보도록 하죠."
"말만이라도 고맙구나."
정욱의 말에 가소롭긴 하지만은 그래도 자신을 생각해주는 듯하기에 웃어 넘기는 석민이었다.
그렇게 같은 과 동문들과 동아리 친구들이랑 작별을 하며 정욱은 학교를 나왔다. 사실 휴학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은 아버지가 자신이 곁에 있기를 희망하는 눈치였고 정욱은 완강하게 거절할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집안 일로 인해서 적지 않게 신경쓸 일이 많은 상황이기에 전반적으로 학교를 맘 편하게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휴학을 할 결심을 한 것이다.학교를 나오는 중에 요란한 음악이 거리에 울려퍼지고 현란한 옷차림의 섹시한 여성들이 격렬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을 보자 정욱의 미소가 밝아진다.
"오랫만이군. 이렇게 보는 것이....."
나레이터 모델들을 본 것이 꽤 오랜만인거 같았다. 무더운 날씨에 걸맞게 그들의 차림또한 시원스레 보였다.
"그나저나 윤주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레이터 모델들을 보자니 이전의 윤주랑 정미를 만났을때가 떠올랐다. 정미는 가까이 있으니까 그렇게 궁금하진 않지만은 윤주는 아니었다. 멀리 일본에 가 있으니 말이다.
토루와 결혼식은 아마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은 아마도 지금쯤은 그 둘 사이에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여겨졌다.
"일간 일본에 한번 가봐야 겠어."
그렇게 결심을 하고 정욱은 발걸음을 옮겼다.
근래에 들어서 정선의 심정은 착잡해지기만 하였다. 그 이유는 남편이 몸져 눕게 되니 그 자식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 오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안주인인데도 불구하고 안방 옆의 서재에 틀어 박혀 있거나 정원에서 배회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공연히 그들이랑 얼굴을 맞대서 으르렁 거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때문이다.
"아버지. 몸은 어떠세요.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큰딸은 윤혜가 곁에서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원래는 주로 저녁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오전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너희들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야? 그런 거야?"
그들을 볼때마다 정선은 속으로 그렇게 외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의사에게 진찰 받은 결과 너무 고령이라 완치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소견을 들은 후로 저들의 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한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살아 남기 위해서 아니면은 한몫 단단히 챙기기 위한 것일 것이다.
평소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던 그들이 남편이 몸져 떠?가망성이 없다는 소리에 저렇게 180도 얼굴을 바꿔가며 나오니 말이다.
"그나저나 정욱이 너는 도데체 어쩔거니?"
얼마전 자신의 아버지랑 정욱이 만났고 어떤 예기가 있었는지 전해 들었다. 그 결과는 정말로 비관적이었다. 그위의 형들 누나들은 저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 곁에 아양을 떨고 갖은 공세를 펼치는데 정욱은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였다.
될게로 되라는 식에 가깝다. 옆에서 지켜보는 정선으로써는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사모님. 회사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의성댁이 인터컴 화면에 비친 얼굴을 가리키자 그것을 본 정선은 밖으로 향하였다.
"어서들 오세요."
"이거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그래 형님 좀 어떠십니까."
"여전하시죠. 뭐. 어서 들어오세요."
정선이 권하자 그들은 안으로 들어왔다. 회사 중역들인 김정준 이사와 유상민 사장, 회사 창업 맴버이자 회장인 병윤과는 의형제나 다름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더욱 각별한 사이이기에 정선으로써는 시아주버니 대하듯 그들을 이렇게 맞이한 것이다.
"어머!! 아저씨들.... 어서 오세요."
"갑자기 왠 일이세요?"
회사에서 아버지 다음 가는 실세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윤혜 윤채 윤미 3자매들은 물론 며느리들까지 다들 긴장하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형님 병문안도 할겸..... 그리고 상의 할 일도 있고 해서......"
"상의라고요? 무슨 일이시길래"
김미혜의 물음에 김정준의 눈살이 찌뿌려지더니 가시 돋힌 어조로 한마디 하였다.
"그쪽이랑 상관없으니까 형님에게 기별이나 넣어!!"
감히 며느리 따위가 왈가 왈부 하며 시시콜콜 이렇듯 따지는 것이 참기 어렵다는 듯 이렇게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대 놓고 질책을 하자 김미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자네 뭘 하는가. 우리 말 않들려!!"
김미혜가 부들 부들 떨며 멍하니 있자 옆에 있던 유상민도 같이 거들면서 그녀에게 큰 소리를 쳤다. 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지 전혀 분간이 않가는 두 사람의 태도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순간 얼이 빠졌다. 그들중에 제일 먼저 정신 차린 것은 정선이었다.
"제, 제가..... 기별 넣을께요."
그리고는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정선이 나오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아주버님들...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자 유상민과 김정준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그들은 며느리들과 딸들이 들으라는 듯 한마디씩 하고 들어갔다.
"하여간에 형님 자식 농사는 엉망진창이군."
"이렇게 치맛바람 날리는데 병이 완치 될리 있겠어."
남겨진 이들은 한동안 얼빠진 듯 있다가 그들이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다들 분통을 터트렸다.
"기가 막혀서....."
"하여간...... 저 아저씨들 보면은 재수가 없어서...."
며느리 김미혜를 비롯하여 시누이들까지 덩달아서 그들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명목상의 딸들이랑 며느리들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정선은 그들에게 대접할 차를 준비해 놓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한잔 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히 마시지요."
정선이 권하는 차를 다들 한모금씩 들이키고는 제일 먼저 김정준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회장님 이젠 뭔가 조치를........"
정준의 말을 중간에 끊고 병윤은 정선을 돌아다 보며 말하였다.
"당신 그만 나가봐. 한동안 부르지 않을테니까 여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이들 한테도 그렇게 일러두고......."
"예."
방을 나서면서 정선은 남편과 상민 정준 그 두사람의 표정을 보고 뭔 예기를 나눌것인지 대충 감을 잡을수 있을거 같았다. 아마도 후계구도에 대해 상의하지 않을까 싶다.
거의 밤쯤이 다 되자 그들은 병윤의 방에서 나왔다. 몇시간동안 틀어박혀서 긴 예기를 나누었지만은 결론이 신통치 않은 듯 표정이 시원치 않아 보였다.
"안녕히들 가세요."
"예. 수고하세요. 그럼."
정선과 작별을 한후 그들은 저택을 나섰다. 김정준과 유상민이 대문까지 나왔을때였다.
"어쩐 일이세요. 두분 다?"
"오!! 정욱이구나."
상대를 알아보고 두 사람은 시선을 그리로 향하였다.
"형님 병문안을 온거다. 한동안 않나오시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거 같다는 예기가 들려서 말이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데..... 곧 좋아지실 거예요. 쬐끔~~ 무리해서 저러시는 겁니다."
"이 녀석......"
정욱의 비아냥 거림에 가까운 말투에 상민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은 정욱은 그걸 못본척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서 말했다.
"살펴 들어가세요. 그리고 바쁘신거 잘 알지만은 자주 찾아오시고요."
그리고 정욱은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정욱을 한동안 주시하던 두사람은 심각한 표정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거..... 이대로 놔둬도 괜찮을까?"
"글세..... 아무리 회장님께서 저 녀석 애지 중지 하셔도 그렇지......"
"그래도 다른 놈들 보단 욕심에 덜 물든 녀석이잖아. 그래서 회장님도....."
그러자 김정준이 말도 않된다는 듯 반박을 하고 나섰다.
"겨우 그걸로 말이 될거라고 생각을 해. 이제 겨우 21살 먹은 놈이야. 세상 물정 전혀 모르니까 당연한거 잖아!!"
그 말에 유상민도 더는 대꾸도 못하였다. 한동안 두사람은 정욱이 들어간 곳을 주시하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도련님."
정욱이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그를 반긴 것은 정유민이었다. 정욱은 그녀의 환대를 건성으로 대충 받아넘기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선을 보자 말을 걸었다
"김이사 아저씨랑 유사장 아저씨 방금 봤어요."
"그러니. 그분들도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거야."
"그럴만도 하시겠네요. 아버지는요."
"그냥 올라가서 쉬어. 너무 오랫동안 그분들이랑 예기 나눠서 피곤하신가봐."
"알았어요."
정욱을 자기 방으로 올려보내고 정선은 안방으로 향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행동을 멈추고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둘째 며느리 정유민을 바라보았다.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 아니요. 저어....."
정선의 물음에 정유민은 놀라더니 이내 자리를 피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정선은 어리둥절하였다.
"왜 저러는 거지?"
저럴 이유가 없기에 정선은 의아해하였다. 하지만은 그녀의 생각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허구헌날 으르렁 거리는 남편의 자식들이랑 사위 며느리들의 시시껄렁한 것까지 신경쓸만큼 그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니까.
"흐음....."
진희랑 남편의 병간호를 교대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선은 갖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병든 남편을 앞에 두고 이러는 것이 도리는 아니지만은 그래도 마냥 팔짱만 끼고 바라볼수 없었다. 학교를 휴학을 하고 정욱은 집에서 아버지의 병간호에만 몰두하였다.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그 태도에 정선은 불안하기만 하였다.
어제 문밖에서 엿들었는데 서윤이 아버지랑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이제 자신이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가겠노라고 호언을 하면서 믿고 맡겨 달라고 대 놓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큰 아들의 말에 병윤은 일언 반구도 없었지만은......
그 외에도 딸 자식들이랑 사위들도 걸핏하면은 사위 자식도 자식이네 하며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기까지 하였다.
그런 형들 매형들의 상황을 바라만 보면서 정작 정욱은 태평하기만 하다.
"이러면은 않돼. 더 이상 이대로는 않돼."
정선의 초조함은 극에 달하였다. 아버지로부터 매일 정욱이를 좀 어떻게 해보라는 성화가 빗발치는 것을 접어두더라도 그간 서로 쌓아온 정을 봐서라도 그 녀석이 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낙오자가 되는 것을 두고 볼수가 없었다.
정선은 잠든 남편과 진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향하였다.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정욱의 방앞에 이르자 그 앞에 서 있는 둘째 며느리 정유민을 보고 정선이 의아해 하며 말을 걸었다. 정유민은 정선의 출현에 잠시 놀라는 듯 하였다.
"그, 그게.... 저어..... 도련님..."
"할말이 있어서 온거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유산 상속 문제나 회사 경영 관련 일로 언질을 주기 위해서 온것이려니 여기고 정선이 말하였다. 그러자 정유민은 정선과 시선을 피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애물단지 시동생이 이럴때는 가장 요긴해 보이는 가 보죠."
정선의 가시 돋힌 말에 정유민의 안색이 파래진다.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그래도 이날이때까지 당신네들이 정욱이 한테 한짓에 비할수 있겠어요. 않그래요."
그 말에 정유민은 정선을 젖히고 1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내려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정선은 방문을 대고 노크를 하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정선을 보고는 정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않잤니?"
"예. 잠도 않와서..... 책 보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렇게 몇마디 나누고 나자 정선은 문득 정욱의 표정에서 이상한점을 볼수가 있었다. 뭔가 불안해 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것이다.
"왜 그러는 거니? 정욱아."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온게 싫은 거니?"
그러자 정욱이 두손을 저으면서 부인하였다.
"그게 아니라...... 이 시간에... 이렇게 오시면은 주변에서........"
그 말에 정선은 정욱이 왜 그렇게 안절 부절하지 못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늦은 밤에 자신이 정욱의 방에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좋게 보일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요즘들어서 병문안 오던 며느리랑 딸들이 아주 눌러 지내기까지 하며 집안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다 시피 하지 않은가. 그런 상황인데 이렇게 늦은 밤에 자신이 여기를 찾아오는 것이 누군가에게 공연한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그렇구나. 내가 그 생각을 미쳐 못했네."
답답한 마음에 툭 터 놓고 예기를 할 생각에 그 부분을 놓쳤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럼 난 내려갈까."
"아니, 이왕 오셨는데......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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