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여인(에필로그)
문자의 사망소식을 전화로 듣고 꼭 3일 후, 나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바로 문자에게서 온 것이다.
우편물은 등기가 아니면 잽배원이 그냥 현관앞의 우편함에 꽂고 가는데 이날은 국제우편이라고 일부러 나를 불러 손에 건네준 것이다.
양쪽 주소는 모두 영어로 씌어 있는데 발신인:오문자, 수신인:문영도는 모두 한글이었다. 순간 좀 께름직한 기분도 들었다. 이미 그녀의 죽음을 알고 있는데 ...... "저승에서 온 편지"라는 미스테리 소설의 제목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것은 트릭이 아니다. 그저 디지탈과 아날로그의 차이일 뿐이지.
나는 정원의 바베큐용 식탁 앞의 의자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얇은 타자지가 꽤 여러장인데 글씨가 빡빡하게 쓰여 있었다.
< 사랑하는 영도씨.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군요. >
역시 디지탈과 아날로그의 차이다. 그녀는 죽기 전에 쓰고, 죽고 나서 나에게 부쳐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탓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말아 주세요.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그 때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기에 더욱 준엄한 것 아닐까요.
또 나를 위해서 슬퍼 하거나 행여 미안한 마음도 갖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나에게 어떤 존재며, 나에게 얼마나 대단한 것을 베풀어 주었는가를 생각하면 그런
감정들은 너무나 하잘 것 없는 것들이예요.
우선 당신은 나에게 "지상의 신", "살아 있는 신"과 같은 존재랍니다. >
나는 읽기를 잠시 멈추었다. 다음에 설명이 나오겠지만 좀 엉뚱했다.
<나는 미국생활을 하며 바로 크리스쳔이 되었습니다.
옛날 기지촌에서도 우리를 교회로 끌고 가고 싶은 사람들은 화장품 외판원만큼이나 많았지만
그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죠. 하나님이 진정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우리같은 양갈보를 만들
지는 않았을 것이며, 예수가 사랑을 부르짖고 우리를 대신해 속죄했다지만 양갈보마저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대부분이 교회를 나가고 있어, 내가 결혼과 함께 미국
시민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크리스쳔이 된거죠. 더구나 나는 이제 아무 반발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일 자세였어요.
미국에서도 한국 교회의 부흥회 같은 집회가 가끔 열립니다. 그날 교회에서 10여명 다른 신도
들과 철야기도를 하다 나는 정말 놀랍고 특별한 경험을 했숩니다.
부흥사의 가르침대로 우선 나는 모든 죄를 고백했습니다.
더듬어 보니 나의 죄는 너무나 많더군요. 나는 낱낱이 나의 죄를 파헤쳤어요. 이런 고백의 절차
가 없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죄까지도 ......
엄마나 오빠를 죽이고 싶었던 증오, 그들을 죽게 해달라고 정체도 모르는 신에게 기도했던 저주,
친구를 헐뜯고, 허영을 부리고, 남을 질투하고, 원망하고, 꼭꼭 감춰 두었던 내 마음속의 사악함
들도 모두 꺼내 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내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며 이어 눈물도 하염없
이 흘려 내렸어요. 모든 죄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내 몸은 마치 갓 세탁을 마친 것처럼 시원하고
깨끗하게 느껴 졌습니다. 그때 나는 신의 응답도 들은 듯 했습니다.
"네 모든 죄를 용서하마! 너는 이제 착하고 깨끗하게 되었단다. 자, 내 품에 안기렴." --- 그렇게
나는 신의 어린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도 시간에 희석된 것인지, 원래 신앙심이 얄팍해서인지, 차츰 회의와 아쉬움으로
변모해 가더군요. 신은 정말 나를 용서했을까? 신은 내 고백을 들어 주었을까? 아니, 과연 신이
존재하기는 할까? ......
차라리 형체가 분명하고, 서로 말도 주고받고, 신체적 접촉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
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곰살궂은 엄마 --- 딸이 첫멘스를 할 때 미소지으며 축하해주고 미리 준비했던 생리대를 채워주
는 엄마. 의외로 그런 엄마를 가진 여자들도 많더군요. 나도 그랬다면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 말
고도 소녀의 슬픔, 아픔, 또 모락모락 피어나는 동경과 환상도 모두 그 품속에 털어 놓을 수 있었
을텐데 ......
진지한 친구 --- 어울리면 즐겁고 도움이 되고 돈도 융통할 수 있는 그런 친구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결점, 사악함, 비겁함도 감싸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모호한 신이
아니라 바로 그 친구한테도 나의 죄와 비밀을 모두 털어 놓을텐데 ...... 그러나 나의 생애에 그런
대상은 없었죠.
그런데 인생의 막이 내려지기 직전에 나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이미 당신은 나를 많이 알고 있었죠. 암울했던 시절의 천덕꾸러기 소녀에서부터 어느새 성숙해
진 내 몸을 처음으로 샅샅이 탐색하고 어루만져 주었던 당신, 그런 당신에게 우리가 헤어진 후에
이어진 나의 모든 삶을 그대로 털어 놓을 수 있던 것은 정말 나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나의 삶은 여전히 치욕스럽고 후회스럽고 괴롭고 아픈 사연들로 얼룩져 있었지만 신이 아닌, 형
체가 분명한 당신에게 고백하면서 나는 또한번 몸을 세탁한 것 같은 희열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당신은 욕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주었어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그나마 나의 전 생애를 궤뚫고 있는 사람, 그렇기에 나에게는 "지상의 신",
"살아 있는 신"입니다.
더구나 당신은 나의 첫사랑입니다. >
나는 또 읽기를 멈추었다.
볼펜으로 쓰여진 그녀의 글씨는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것 같지만 초등학교 2~3학년이 쓴 정도로 조잡했다. 맞춤법도 더러 틀렸다. 하기야 나도 이런 식의 편지를 써본 것이 몇10년 전의 일이니 나 역시 얼마나 곱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장으로 읽는 그녀의 글은 마치 그녀가 옆에서 속삭이듯 감미롭고 다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더욱 내 가슴을 찌른다. 이제는 또 무슨 사연이 펄쳐 질지 ......
<아, 너무 당황하지는 말아 주세요. 당신에게 억지를 부리거나 부담을 주려는 것은 아니예요.
다만 여기에는 좀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기지촌의 여자애들은 유난히 첫사랑에 집착한답니다.
술판을 벌이거나 영화나 소설을 보고, 아니면 그저 수다를 떨 때에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항상
첫사랑 쪽으로 화제가 모아 지거든요..
미친년들 --- 나는 처음 그런 애들을 경멸하고 비웃었습니다. 기껏 몸파는 주제에 첫사랑타령
이라니 ...... 나같으면 이런 처지에서 첫사랑이 나타난다면 창피하고 미안해서 줄행랑을 놓거나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도 차차 그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런 추억마저 못 가진 내가 초라하고
슬펐습니다.
몸파는 여자들의 첫사랑타령은 단순한 추억의 한조각이 아닙니다. 찌든 영혼에 화장한 것 같은
그 분수에 넘치는 허영은 그만큼 그녀들에게는 절실하게 소중했기 때문이죠. 첫사랑타령은 자
연발생적이면서도 결코 그녀들이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무기이기도 했습니
다. 마치 흑인노예들이 영가를 부르는 것처럼.
그들 역시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났건만 쇠사슬과 채찍을 벗어날 수 없는 노예들은 그 처절한
현실 속에서 노래 부릅니다.
그 노래는 곡조가 경쾌하든 애절하든, 가사가 환희에 넘치든 비통하든, 깊은 강을 건너 가든
황금마차를 타고 가든, 그 지향점은 하나입니다. 바로 천국이죠.
그곳에 가면 주님이 모든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함께 자유와 평등을 누린다. ...... 쇠사슬과
채찍의 바참함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잠시 외출하듯 탈출도 하고, 희망과 기대를
갖고, 또 지금의 고통을 잊기도 합니다.
첫사랑타령이 흑인영가와 한가지 다른 것은 그 귀착점이 앞날의 천국이 아니고 과거의 한점
에 모여 있다는 것이죠.
한때는 나를 진정 사랑해 준 남자도 있었단다.
한때는 나도 한 남자를 사무치게 사랑했었단다.
하기야 이미 그것은 흘러간 과거일뿐 지금은 그녀들 역시 쇠사슬과 채찍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노예들이죠. 가장 천한 노동과 더불어 온갖 멸시와 천대와 자학도 포함된 쇠사슬과
채찍 ......
하지만 그녀들은 단한번의 아름다운 체험을 잊지 않고 되새김질 함으로써 상처받은 영혼을 그
나마 치료합니다. 더구나 그것은 그녀들에게 비장의 보석이며, 아이텐티티며, 그들도 인간이며
여자였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영도씨도 알다시피 나의 첫남자는 당신의 아버지였습니다.
나는 그분께 큰 은혜를 입었고 또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랑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
어요. 나는 당신 어머니에게도 역시 은헤를 입었고 존경했으며, 당신의 형제들을 내 혈육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과의 그런 관계가 다른 가족을 배반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하지만 나는 그분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어요. 아, 이걸 어떡해? 난 어쩌면 좋아?
아, 난 천벌을 받을거야. ...... 혼자 오들오들 떨며 가슴 아파하는 것 말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아버님도 빈말이나마 내게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식의 말한마다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빨리 벗어."라든지 "좀 더 벌려."라는 말을 내게 던졌죠. 나는 그분이 특히 매정하다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도 나나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거예요.
두번째 남자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기지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담배진에 절은 한 40대 뚜쟁이는
"기초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나를 구석방으로 끌고 갔습니다.
나는 그 골방에서 2박3일동안 상상도 못했던 온갖 테크닉과 체위를 그와 함께 실습했죠. 그 교
육의 효과인지 하여튼 나는 그후 별탈 없이 양갈보 생활을 이어 왔어요.
GI들은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진심이든, 내마음이 진정 쏠
렸든 이미 그것은 첫사랑의 시효가 지난 것이죠.
이렇게 내 인생에는 첫사랑이 그냥 공백으로 굳어 버렸습니다. 나는 영혼의 치료제도, 비장의
보석도, 여자였다는 증명서도 없는,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초라한 양갈보였죠.
"로라 언니도 좀 털어놔 봐. 상대가 누구였어?"
"야, 냅둬라! 그년은 금테 두른 년이야. 우리같은 쌍것들한테는 말 못한대."
"그럴수록 더 듣고 싶네. 로라 언니는 정말 첫사랑도 특별할 것 같아."
부대 전체가 기동훈련을 떠나고 장마비는 줄기차게 오는 어느날, 우리는 대낮부터 술을 마셨습
니다. 예외 없이 첫사랑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늘 입 다물고 있던 내가 과녁이 되
어 버렸군요. 나도 마침내 입을 열었죠.
"피난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아버지의 제일 가가운 친구분의 집에 수양딸처럼 살게 되
었거든. 스물두살 때였어. 문영도라고 그집 아들이 나와 동갑인데 그때 대학생이었지. 몇년을
한집에서 살다보니 서로 이상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 하루는 그사람 공부방에 끌려
가서 결국 서로 알몸이 됐지.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 결혼하자면서 위로 올라 오는데 나는
씹까지는 안된다고 버티다가 그만 내 허벅지에 사정을 해 버렸지."
"그래서 ...... ? 진짜는 언제 했어?"
"못했어. 며칠 후 그집 아저씨한테 순결을 잃었거든. 그래서 그 집을 나와 버렸어."
"문 ......뭐라는 동갑내기 하고는 어떻게 ...... ?"
"다시는 못 만났지, 뭐."
"병신 같은 년. 단돈 3달러에도 가랭이를 걸리는 년이 콱 주어 버리지, 그런 식으로 끝 내?"
"우리 같은 년들 팔자가 맨날 그래."
내 첫사랑을 듣고 싶어 했던 릴리는 눈물까지 글성였습니다. 나도 울적한 기분이었고 다시는
꾸며낸 이야기조차 입에 담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때 한자리에 있던 애들은 그 이야기를 가끔
되살리기도 했답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나이 설흔이 되어서야 올가즘을 알았습니다.
처음 그 느낌이 왔을 때는 너무나 놀랍고 황홀했어요. 그 전의 숱한 경험 속에서는 왜 그렇지
않았는가가 의아스럽고 후회될만큼 ......
그런데 몸파는 여자에게 올가즘이란 너무 불편하고 오히려 비극이란 것을 곧 알게 됐죠. 올가
즘을 겪고 나면 우선 피로하고 다시 장사를 하기 싫어집니다. 마치 진수성찬을 포식했는데
다시 보리밥 한사발을 더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일이예요.
정신적인 면에서는 더 했죠. 그 다음에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새옷을 차려 입고 문을 나서자
말자 흙탕물을 뒤집어 쓰는 기분이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테크닉이 좋은 손님이나 나의 생리적
문제 때문에라도 올가즘이 올 것 같은 조짐이 오면 이를 악물고 버티거나 차라리 행위를 중단
해야 했죠.
여자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인 그것마저 내버려야 한다는 것도 몸파는 여자의 슬픔이며 비극이죠.
그러나 또 인간의 간사함인지 나약함인지, 이미 길들여진 육체는 하루 이상 손님을 안 받으면
너무나 허전해서 손장난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때를 좋아 했어요. 시간 조절 뿐 아니라 마음에도 여유가 있었죠.이제는 마음놓고
진수성찬을 음미하든가, 새옷을 입고 뽐낼 수 있으니까요.
내 손이 여자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자극할 때 나는 문영도라는 첫사랑을 떠 올립니다.
그는 내가 처음 입에 담았던 동갑내기 대학생이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나보다 10살이 더
많아 나를 능숙하게 리드하기도 하죠. 또 실제로 우리가 경험했던 나보다 10살 어리면서도
당돌하고 순진한 소년으로 닥아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영도라는 이름은 내 마음 속에
첫사랑으로 계속 자라며 자리잡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실제의 당신이 나의 첫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그 해프닝 같은 하룻밤을 보내기 전까지 나는 사실 여자가 아니었어요. 생활의 피로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나는 그때까지 성욕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거든요. 영숙이가 가르
쳐 줘 자위도 몇번 해보았지만 별로 감흥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돌한 12살 소년의 열정에 나도 스파크가 일어났죠. 내 몸속에 이미 한껏 성숙해서
터질 듯한 욕정이 꿈틀거린다는 것을 나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은 분명 나의 성욕을
자극하고 일깨워 준 첫번째 남자였습니다.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정말 반가웠어요. 하지만 다른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영도씨에게도 살짝 일방적인 인사만 하고 지내차려 했죠. >
편지는 아직도 몇장이 더 남아 있지만 나는 또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나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던 그녀와 또 달리, 나 역시 그녀의 추억 속에 그토록 여러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완전히 잊고 있었었다. 가공의 내가 그녀 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녀가 정신적으로 가난하면서도 다정다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새삼스럽게 그녀가 애처롭고 무정했던 내가 미웠다.
또 그녀가 내게 들려 주었고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험하고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왔다는 것을 새롭게알게 되며 더욱 그녀가 애처롭고 미안했다.
<나의 죽음이 시계판처럼 확정되고 바늘이 종착점을 향해 째깍거리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사실 내 심경은 담담했습니다.
지금껏 나와 가갑고 아까웠던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아 온 내가 이만큼 삶을 누리고서도 또
연연해 한다면 정말 파렴치한 사람이겠죠. 오히려 그토록 서로 사랑하다 먼저 떠난 리처드를
빨리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갖게 되더군요.
그런데 불쑥 한국을 한번 가고 싶었습니다. 나를 반겨주거나 꼭 보고 싶은 대상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무덤도 모르고 단하나 혈육인 오빠도 꽤 오래 전 작고했거든요.
그래도 나는 내가 태어나고 40년을 몸담았던 그곳에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작별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죠.
안녕, 대한민국 하늘아. 안녕,한강아. 안녕, 이제는 딴 건물이 들어 선 옛날의 기지촌아 ......
그래도 고맙구나. 안녕. 나는 멀리 떠난단다. --- 나는 그저 이렇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당신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 였어요. 안녕, 꼬마 도령아. 그동안 잘 지냈니? 나는 이제 멀리
떠난단다. 너는 부디 잘 살아. 그동안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네가 참 고마웠어. 하지만 너는
전혀 모르겠지"
이렇게 혼자 인사하며 당신 뒤에서 혀를 한번 낼름거리려 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내게 섹스롤 요구했어요.
오, 어떻게 이런 일이 ...... ? 나는 온몸이 떨리고 얼굴이 달아 올랐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 ? 나는 속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섹스 자체도 참 좋았어요.
영도씨 말처럼 우리 나이에 섹스는 대단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죠. 나 역시 새삼스럽게 남자
품에 안긴다거나 누구를 내 몸에 받아들인다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으로 인해 다시 올가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꿈같은 일이죠.
특히 "지상의 신", "살아있는 신"인 당신에게 결코 남에게는 말할 수 없고 감추고 싶기만 했던
나의 치욕스럽고 후회스러웠던 지난날 마저 다 털어놓고 나니 나는 더욱 홀가분하고 깨끗해진
몸으로 당신에게 닥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욱 내가 몸서리 쳐질만큼 감동에 빠진 것은 내가 첫사랑의 남자에게 마지막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영도씨, 이런 말을 들어 봤나요?
"모든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첫사랑이기를 바라고, 모든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이 마지막 사랑
이기를 바란다."
누가 한 말인지 아세요?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랍니다. 못배운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난척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특별한 사연도 있기 때문이예요.
용줏골에 있을 때 본명은 김미순, 그곳에선 에밀리도 통하는 나의 단짝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진짜 일류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인텔리에 쭉 빠진 글래머였어요. 대학생일 때 미군 장교와
연애를 하다 갈라졌다는데 더 자세한 사연은 말을 안해 알 수 없었어요. 주량도 대단했는데
술이 취하면 영어로 워즈워즈나 롱펠로우의 시를 읊고, "시크리트 러브"나 "테네시 왈츠"를 부
르고 "생의 찬가"만은 꼭 불어로 불렀죠. 그리고 꼭 이말로 끝맺음을 했어요.
"야, 이년들아! 우리의 지금 처지가 아무리 좆같다고 해도 좀 참아 봐. 오스카 와일드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첫사랑이기를 바라고, 모든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기를 바란다고 ...... 네년들도 마지막 사랑만 잘 만나면 되는거야.
안그래? ...... 지금은 한갓 꿈이라든지 집에 가던 중 잠시 헤맸다고 생각하면 되는거야. 여자는
그렇게 마지막 사랑만 잘 잡으면 해피 앤드란 말야!"
그렇게 말했던 에밀리는 어느날 입에 거품을 잔득 품은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사망진단서에는
약물과용이라고 했지만 자실일수도 있겠죠. 마지막 사랑을 만나기에는 창창한 나이였는데 ......
하지만 그녀가 들려준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의 말은 정말 보편적인 진리를 갖고 있다고 있다
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런데 나는 바로 그 마지막 사랑을 첫사랑에게 받았으니 정말 뽐낼만 하죠?>
처음 검정볼펜으로 쓰여졌던 글씨는 만년필로, 다시 수성볼펜으로 바뀌기도 했다. 글씨체도 한동안은 또박또박 하다가 어느 대목은 비틀거리듯 흘려 쓴 것도 있다. 이 편지가 꽤 오랜 시간, 여러번에 걸쳐서 쓰여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글씨체의 변형에서는 그녀의 점점 소진되어가는 기력이 느껴졌다. 편지는 이제 마지막 한장이 남았다.
<말기암 환자에게 통증은 마치 남은 생명에 반비례 하는 것처럼 밀려 옵니다. 하지만 사그러
져 가는 나의 생명에, 당신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사랑이 정신적 안정이나 통증의 해소에 얼마
나 큰 역할을 하는지 몰라요. 의사가 "이제 진통제 투여를 늘려야겠다."고 하는 것을 몇차례
사양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학적 한계를 넘었는데 ......?" 라고 하더군요. 사랑의 치료
효과를 그 의사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나는 가끔 겁이 납니다. 벌써 두번이나 가볍기는 하지만 코우머, 즉 혼수상태를
겪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코우머 속에서 다시 눈도 뜨지 못하고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이 세상
을 하직하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그에 대비해 나는 틈만 나면 기도합니다. 기도의 주제중 하나가 바로 기도하면서 죽게 해 주
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리처드를 만날 것에 대해 나는 알말의 의구심도 갖고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그에게 닥아가고 싶거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편지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이 편지를 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신에게 받았고 또 그것에 감사하는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러나 기
력이 점점 떨어져 가며 사실 이 편지는 쓰다 중단하고, 또 다시 이어지기를 몇례나다 했답니다.
그렇기에 두서가 없는 점도 많겠지만 이제 거의 끝맺음을 하게 되니 그나마 안심이 되는군요.
사랑하는 영도씨, 부디 행복하세요. 특히 새로 만난 부인에게도 당신은 물론 잘 하겠지만, 더욱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먼 훗날 당신도 천국에 온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그럼 안녕. >
편지 말미에는 이라고 쓰인 영문의 추신이 이어졌다.
< 안녕하십니까? 어머니는 자신의 임종 후 이 편지를 귀하께 부칠 것을 내게 부탁하셨습니다.
오빠의 아내, 즉 어머니의 며느리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어를 모르는 내게 부탁하신
것은 그만큼 귀하가 특별해서겠죠. 우리 모두 그녀를 더 없이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그녀는 행
복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녀에게 특별한 귀하에게도 행복과 건강이 오래 하시기를 기원합
니다. 로즈마리 클루니>
그 마지막 장에 물방울이 떨어지며 글씨를 얼룩지게 했다. 나는 어느 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문자의 부음을 듣고서도 내 눈은 메말라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이제 영원히 헤어짐을 다시 확인하면서 처음 흘린 눈물이다. 뭉클하고 가슴에서 뭔가 치받는 느낌에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지금 더 실컷 울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역시 내 감정이나 눈은 너무 메말라 있었다.
그나마 눈물이 맺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다시 봉투에 접어 넣은 뒤 보관할 곳을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이 집에는 자물쇠가 있는 나만의 보관함이 없다. 스파이 영화처럼 책상 구석 어디에 테이프로 붙여 놓든지, 책장에서 앞으로 누구도 넘겨보지 않을 책갈피에 끼어 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연법칙대로라면 나는 아내나 자식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그후 그들이 내 유품을 챙기다 이 편지를 발견한다면 ...... 이제 누구에게도 혼란을 주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편지를 꺼내 꼼꼼히 읽었다. 이제는 문장의 흐르는 순서뿐 아니라 행간(行間)의 의미까지도 머리에 저장된 것 같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편지는 영혼의 속삭임처럼 내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다. 언제고 그녀를 떠 올리면 그 속삭임은 다시 내 심금을 울릴 것이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 편지에 불을 붙였다. 한장 한장이 불꽃을 피우다 재로 변하면서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나는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보낼 답장을 썼다. 전달할 방법도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학생들의 방학 때가 되면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여행을 가리라. 전에 한번 운을 띄우니 아내도 좋아 하는 눈치였다.
미국에 가면 이제 감정상으로는 그리 낮설지 않은 남동부의 세인트 빌 빌리지를 찾아 가리라. 아내와 같이 가도 좋고 혼자 가도 좋다. 그래서 나는 도리스 M 맥밀란의 무덤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마음속으로 써놓은 답장을 전달하리라.
<사랑하는 문자씨.
아직도 당신의 체취와 향기가 내게는 가득한데 당신은 이곳에 누워 있구려.
부디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인생을 궤뚫고 있다고 했지만 그런 당신을 만나고 그 생애의 일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나야말로 행운이며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구한 운명과 박복한 현실에서도 언제나 굳건히 일어서 나를 비롯한 주위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간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고 강하고 착하고 또 신비스런 여자였소.
특히 당신은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했으며 내 인생을 꽃 피게 했습니다. 20대
에도, 70대에도, 그리고 당신의 죽음 후에도 .....
그런데 당신이 나로 인해서 하며 자신을 세탁했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사실 당신은 애초에 천한 여인이었소.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세탁한 것이오.
그래서 당신의 신 앞에 설 때나 나를 만났을 때 이미 당신은 더 없이 깨끗하고 고결한 여인이
었습니다.
또 나의 첫사랑도 오문자씨 바로 당신입니다. 나는 단지 그것을 잊고 있었지만 그토록 순수
하고 열정적이며 달콤했던 사랑을 나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당신과의 그 첫사랑은
지금도 내 영혼을 쓰다듬고 나에게 비장의 보석이 되어 있답니다.
하지만 당신을 마지막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새 여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당신의 당부처럼 새 아내에게도 남편의 본분을 지켜야겠죠.
하지만 당신은 당초 사랑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고목에 새롭게 꽃을 피워 주었소. 그래서
내가 앞으로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대 역시 함께 하는 것이오. 문자씨는 내
영원한 사랑입니다. >
눈을 들어보니 태양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지만 아직 주위는 환했다.
그 환한 하늘에 별똥별이 꼬리를 그리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문자의 죽음과 연관된 특별한 징조나 상징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침 떨어지며 소멸되는 그 빛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우연 일 수도 있다.
인생도 저 드넓은 우주처럼 신비스럽고 또 새롭고 놀라운 일이나 특별한 우연도 항상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았다.
문자의 사망소식을 전화로 듣고 꼭 3일 후, 나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바로 문자에게서 온 것이다.
우편물은 등기가 아니면 잽배원이 그냥 현관앞의 우편함에 꽂고 가는데 이날은 국제우편이라고 일부러 나를 불러 손에 건네준 것이다.
양쪽 주소는 모두 영어로 씌어 있는데 발신인:오문자, 수신인:문영도는 모두 한글이었다. 순간 좀 께름직한 기분도 들었다. 이미 그녀의 죽음을 알고 있는데 ...... "저승에서 온 편지"라는 미스테리 소설의 제목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것은 트릭이 아니다. 그저 디지탈과 아날로그의 차이일 뿐이지.
나는 정원의 바베큐용 식탁 앞의 의자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얇은 타자지가 꽤 여러장인데 글씨가 빡빡하게 쓰여 있었다.
< 사랑하는 영도씨.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군요. >
역시 디지탈과 아날로그의 차이다. 그녀는 죽기 전에 쓰고, 죽고 나서 나에게 부쳐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탓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말아 주세요.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그 때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기에 더욱 준엄한 것 아닐까요.
또 나를 위해서 슬퍼 하거나 행여 미안한 마음도 갖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나에게 어떤 존재며, 나에게 얼마나 대단한 것을 베풀어 주었는가를 생각하면 그런
감정들은 너무나 하잘 것 없는 것들이예요.
우선 당신은 나에게 "지상의 신", "살아 있는 신"과 같은 존재랍니다. >
나는 읽기를 잠시 멈추었다. 다음에 설명이 나오겠지만 좀 엉뚱했다.
<나는 미국생활을 하며 바로 크리스쳔이 되었습니다.
옛날 기지촌에서도 우리를 교회로 끌고 가고 싶은 사람들은 화장품 외판원만큼이나 많았지만
그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죠. 하나님이 진정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우리같은 양갈보를 만들
지는 않았을 것이며, 예수가 사랑을 부르짖고 우리를 대신해 속죄했다지만 양갈보마저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대부분이 교회를 나가고 있어, 내가 결혼과 함께 미국
시민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크리스쳔이 된거죠. 더구나 나는 이제 아무 반발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일 자세였어요.
미국에서도 한국 교회의 부흥회 같은 집회가 가끔 열립니다. 그날 교회에서 10여명 다른 신도
들과 철야기도를 하다 나는 정말 놀랍고 특별한 경험을 했숩니다.
부흥사의 가르침대로 우선 나는 모든 죄를 고백했습니다.
더듬어 보니 나의 죄는 너무나 많더군요. 나는 낱낱이 나의 죄를 파헤쳤어요. 이런 고백의 절차
가 없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죄까지도 ......
엄마나 오빠를 죽이고 싶었던 증오, 그들을 죽게 해달라고 정체도 모르는 신에게 기도했던 저주,
친구를 헐뜯고, 허영을 부리고, 남을 질투하고, 원망하고, 꼭꼭 감춰 두었던 내 마음속의 사악함
들도 모두 꺼내 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내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며 이어 눈물도 하염없
이 흘려 내렸어요. 모든 죄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내 몸은 마치 갓 세탁을 마친 것처럼 시원하고
깨끗하게 느껴 졌습니다. 그때 나는 신의 응답도 들은 듯 했습니다.
"네 모든 죄를 용서하마! 너는 이제 착하고 깨끗하게 되었단다. 자, 내 품에 안기렴." --- 그렇게
나는 신의 어린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도 시간에 희석된 것인지, 원래 신앙심이 얄팍해서인지, 차츰 회의와 아쉬움으로
변모해 가더군요. 신은 정말 나를 용서했을까? 신은 내 고백을 들어 주었을까? 아니, 과연 신이
존재하기는 할까? ......
차라리 형체가 분명하고, 서로 말도 주고받고, 신체적 접촉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
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곰살궂은 엄마 --- 딸이 첫멘스를 할 때 미소지으며 축하해주고 미리 준비했던 생리대를 채워주
는 엄마. 의외로 그런 엄마를 가진 여자들도 많더군요. 나도 그랬다면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 말
고도 소녀의 슬픔, 아픔, 또 모락모락 피어나는 동경과 환상도 모두 그 품속에 털어 놓을 수 있었
을텐데 ......
진지한 친구 --- 어울리면 즐겁고 도움이 되고 돈도 융통할 수 있는 그런 친구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결점, 사악함, 비겁함도 감싸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모호한 신이
아니라 바로 그 친구한테도 나의 죄와 비밀을 모두 털어 놓을텐데 ...... 그러나 나의 생애에 그런
대상은 없었죠.
그런데 인생의 막이 내려지기 직전에 나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이미 당신은 나를 많이 알고 있었죠. 암울했던 시절의 천덕꾸러기 소녀에서부터 어느새 성숙해
진 내 몸을 처음으로 샅샅이 탐색하고 어루만져 주었던 당신, 그런 당신에게 우리가 헤어진 후에
이어진 나의 모든 삶을 그대로 털어 놓을 수 있던 것은 정말 나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나의 삶은 여전히 치욕스럽고 후회스럽고 괴롭고 아픈 사연들로 얼룩져 있었지만 신이 아닌, 형
체가 분명한 당신에게 고백하면서 나는 또한번 몸을 세탁한 것 같은 희열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당신은 욕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주었어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그나마 나의 전 생애를 궤뚫고 있는 사람, 그렇기에 나에게는 "지상의 신",
"살아 있는 신"입니다.
더구나 당신은 나의 첫사랑입니다. >
나는 또 읽기를 멈추었다.
볼펜으로 쓰여진 그녀의 글씨는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것 같지만 초등학교 2~3학년이 쓴 정도로 조잡했다. 맞춤법도 더러 틀렸다. 하기야 나도 이런 식의 편지를 써본 것이 몇10년 전의 일이니 나 역시 얼마나 곱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장으로 읽는 그녀의 글은 마치 그녀가 옆에서 속삭이듯 감미롭고 다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더욱 내 가슴을 찌른다. 이제는 또 무슨 사연이 펄쳐 질지 ......
<아, 너무 당황하지는 말아 주세요. 당신에게 억지를 부리거나 부담을 주려는 것은 아니예요.
다만 여기에는 좀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기지촌의 여자애들은 유난히 첫사랑에 집착한답니다.
술판을 벌이거나 영화나 소설을 보고, 아니면 그저 수다를 떨 때에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항상
첫사랑 쪽으로 화제가 모아 지거든요..
미친년들 --- 나는 처음 그런 애들을 경멸하고 비웃었습니다. 기껏 몸파는 주제에 첫사랑타령
이라니 ...... 나같으면 이런 처지에서 첫사랑이 나타난다면 창피하고 미안해서 줄행랑을 놓거나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도 차차 그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런 추억마저 못 가진 내가 초라하고
슬펐습니다.
몸파는 여자들의 첫사랑타령은 단순한 추억의 한조각이 아닙니다. 찌든 영혼에 화장한 것 같은
그 분수에 넘치는 허영은 그만큼 그녀들에게는 절실하게 소중했기 때문이죠. 첫사랑타령은 자
연발생적이면서도 결코 그녀들이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무기이기도 했습니
다. 마치 흑인노예들이 영가를 부르는 것처럼.
그들 역시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났건만 쇠사슬과 채찍을 벗어날 수 없는 노예들은 그 처절한
현실 속에서 노래 부릅니다.
그 노래는 곡조가 경쾌하든 애절하든, 가사가 환희에 넘치든 비통하든, 깊은 강을 건너 가든
황금마차를 타고 가든, 그 지향점은 하나입니다. 바로 천국이죠.
그곳에 가면 주님이 모든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함께 자유와 평등을 누린다. ...... 쇠사슬과
채찍의 바참함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잠시 외출하듯 탈출도 하고, 희망과 기대를
갖고, 또 지금의 고통을 잊기도 합니다.
첫사랑타령이 흑인영가와 한가지 다른 것은 그 귀착점이 앞날의 천국이 아니고 과거의 한점
에 모여 있다는 것이죠.
한때는 나를 진정 사랑해 준 남자도 있었단다.
한때는 나도 한 남자를 사무치게 사랑했었단다.
하기야 이미 그것은 흘러간 과거일뿐 지금은 그녀들 역시 쇠사슬과 채찍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노예들이죠. 가장 천한 노동과 더불어 온갖 멸시와 천대와 자학도 포함된 쇠사슬과
채찍 ......
하지만 그녀들은 단한번의 아름다운 체험을 잊지 않고 되새김질 함으로써 상처받은 영혼을 그
나마 치료합니다. 더구나 그것은 그녀들에게 비장의 보석이며, 아이텐티티며, 그들도 인간이며
여자였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영도씨도 알다시피 나의 첫남자는 당신의 아버지였습니다.
나는 그분께 큰 은혜를 입었고 또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랑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
어요. 나는 당신 어머니에게도 역시 은헤를 입었고 존경했으며, 당신의 형제들을 내 혈육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과의 그런 관계가 다른 가족을 배반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하지만 나는 그분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어요. 아, 이걸 어떡해? 난 어쩌면 좋아?
아, 난 천벌을 받을거야. ...... 혼자 오들오들 떨며 가슴 아파하는 것 말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아버님도 빈말이나마 내게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식의 말한마다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빨리 벗어."라든지 "좀 더 벌려."라는 말을 내게 던졌죠. 나는 그분이 특히 매정하다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도 나나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거예요.
두번째 남자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기지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담배진에 절은 한 40대 뚜쟁이는
"기초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나를 구석방으로 끌고 갔습니다.
나는 그 골방에서 2박3일동안 상상도 못했던 온갖 테크닉과 체위를 그와 함께 실습했죠. 그 교
육의 효과인지 하여튼 나는 그후 별탈 없이 양갈보 생활을 이어 왔어요.
GI들은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진심이든, 내마음이 진정 쏠
렸든 이미 그것은 첫사랑의 시효가 지난 것이죠.
이렇게 내 인생에는 첫사랑이 그냥 공백으로 굳어 버렸습니다. 나는 영혼의 치료제도, 비장의
보석도, 여자였다는 증명서도 없는,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초라한 양갈보였죠.
"로라 언니도 좀 털어놔 봐. 상대가 누구였어?"
"야, 냅둬라! 그년은 금테 두른 년이야. 우리같은 쌍것들한테는 말 못한대."
"그럴수록 더 듣고 싶네. 로라 언니는 정말 첫사랑도 특별할 것 같아."
부대 전체가 기동훈련을 떠나고 장마비는 줄기차게 오는 어느날, 우리는 대낮부터 술을 마셨습
니다. 예외 없이 첫사랑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늘 입 다물고 있던 내가 과녁이 되
어 버렸군요. 나도 마침내 입을 열었죠.
"피난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아버지의 제일 가가운 친구분의 집에 수양딸처럼 살게 되
었거든. 스물두살 때였어. 문영도라고 그집 아들이 나와 동갑인데 그때 대학생이었지. 몇년을
한집에서 살다보니 서로 이상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 하루는 그사람 공부방에 끌려
가서 결국 서로 알몸이 됐지.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 결혼하자면서 위로 올라 오는데 나는
씹까지는 안된다고 버티다가 그만 내 허벅지에 사정을 해 버렸지."
"그래서 ...... ? 진짜는 언제 했어?"
"못했어. 며칠 후 그집 아저씨한테 순결을 잃었거든. 그래서 그 집을 나와 버렸어."
"문 ......뭐라는 동갑내기 하고는 어떻게 ...... ?"
"다시는 못 만났지, 뭐."
"병신 같은 년. 단돈 3달러에도 가랭이를 걸리는 년이 콱 주어 버리지, 그런 식으로 끝 내?"
"우리 같은 년들 팔자가 맨날 그래."
내 첫사랑을 듣고 싶어 했던 릴리는 눈물까지 글성였습니다. 나도 울적한 기분이었고 다시는
꾸며낸 이야기조차 입에 담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때 한자리에 있던 애들은 그 이야기를 가끔
되살리기도 했답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나이 설흔이 되어서야 올가즘을 알았습니다.
처음 그 느낌이 왔을 때는 너무나 놀랍고 황홀했어요. 그 전의 숱한 경험 속에서는 왜 그렇지
않았는가가 의아스럽고 후회될만큼 ......
그런데 몸파는 여자에게 올가즘이란 너무 불편하고 오히려 비극이란 것을 곧 알게 됐죠. 올가
즘을 겪고 나면 우선 피로하고 다시 장사를 하기 싫어집니다. 마치 진수성찬을 포식했는데
다시 보리밥 한사발을 더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일이예요.
정신적인 면에서는 더 했죠. 그 다음에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새옷을 차려 입고 문을 나서자
말자 흙탕물을 뒤집어 쓰는 기분이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테크닉이 좋은 손님이나 나의 생리적
문제 때문에라도 올가즘이 올 것 같은 조짐이 오면 이를 악물고 버티거나 차라리 행위를 중단
해야 했죠.
여자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인 그것마저 내버려야 한다는 것도 몸파는 여자의 슬픔이며 비극이죠.
그러나 또 인간의 간사함인지 나약함인지, 이미 길들여진 육체는 하루 이상 손님을 안 받으면
너무나 허전해서 손장난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때를 좋아 했어요. 시간 조절 뿐 아니라 마음에도 여유가 있었죠.이제는 마음놓고
진수성찬을 음미하든가, 새옷을 입고 뽐낼 수 있으니까요.
내 손이 여자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자극할 때 나는 문영도라는 첫사랑을 떠 올립니다.
그는 내가 처음 입에 담았던 동갑내기 대학생이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나보다 10살이 더
많아 나를 능숙하게 리드하기도 하죠. 또 실제로 우리가 경험했던 나보다 10살 어리면서도
당돌하고 순진한 소년으로 닥아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영도라는 이름은 내 마음 속에
첫사랑으로 계속 자라며 자리잡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실제의 당신이 나의 첫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그 해프닝 같은 하룻밤을 보내기 전까지 나는 사실 여자가 아니었어요. 생활의 피로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나는 그때까지 성욕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거든요. 영숙이가 가르
쳐 줘 자위도 몇번 해보았지만 별로 감흥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돌한 12살 소년의 열정에 나도 스파크가 일어났죠. 내 몸속에 이미 한껏 성숙해서
터질 듯한 욕정이 꿈틀거린다는 것을 나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은 분명 나의 성욕을
자극하고 일깨워 준 첫번째 남자였습니다.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정말 반가웠어요. 하지만 다른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영도씨에게도 살짝 일방적인 인사만 하고 지내차려 했죠. >
편지는 아직도 몇장이 더 남아 있지만 나는 또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나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던 그녀와 또 달리, 나 역시 그녀의 추억 속에 그토록 여러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완전히 잊고 있었었다. 가공의 내가 그녀 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녀가 정신적으로 가난하면서도 다정다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새삼스럽게 그녀가 애처롭고 무정했던 내가 미웠다.
또 그녀가 내게 들려 주었고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험하고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왔다는 것을 새롭게알게 되며 더욱 그녀가 애처롭고 미안했다.
<나의 죽음이 시계판처럼 확정되고 바늘이 종착점을 향해 째깍거리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사실 내 심경은 담담했습니다.
지금껏 나와 가갑고 아까웠던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아 온 내가 이만큼 삶을 누리고서도 또
연연해 한다면 정말 파렴치한 사람이겠죠. 오히려 그토록 서로 사랑하다 먼저 떠난 리처드를
빨리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갖게 되더군요.
그런데 불쑥 한국을 한번 가고 싶었습니다. 나를 반겨주거나 꼭 보고 싶은 대상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무덤도 모르고 단하나 혈육인 오빠도 꽤 오래 전 작고했거든요.
그래도 나는 내가 태어나고 40년을 몸담았던 그곳에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작별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죠.
안녕, 대한민국 하늘아. 안녕,한강아. 안녕, 이제는 딴 건물이 들어 선 옛날의 기지촌아 ......
그래도 고맙구나. 안녕. 나는 멀리 떠난단다. --- 나는 그저 이렇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당신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 였어요. 안녕, 꼬마 도령아. 그동안 잘 지냈니? 나는 이제 멀리
떠난단다. 너는 부디 잘 살아. 그동안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네가 참 고마웠어. 하지만 너는
전혀 모르겠지"
이렇게 혼자 인사하며 당신 뒤에서 혀를 한번 낼름거리려 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내게 섹스롤 요구했어요.
오, 어떻게 이런 일이 ...... ? 나는 온몸이 떨리고 얼굴이 달아 올랐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 ? 나는 속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섹스 자체도 참 좋았어요.
영도씨 말처럼 우리 나이에 섹스는 대단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죠. 나 역시 새삼스럽게 남자
품에 안긴다거나 누구를 내 몸에 받아들인다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으로 인해 다시 올가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꿈같은 일이죠.
특히 "지상의 신", "살아있는 신"인 당신에게 결코 남에게는 말할 수 없고 감추고 싶기만 했던
나의 치욕스럽고 후회스러웠던 지난날 마저 다 털어놓고 나니 나는 더욱 홀가분하고 깨끗해진
몸으로 당신에게 닥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욱 내가 몸서리 쳐질만큼 감동에 빠진 것은 내가 첫사랑의 남자에게 마지막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영도씨, 이런 말을 들어 봤나요?
"모든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첫사랑이기를 바라고, 모든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이 마지막 사랑
이기를 바란다."
누가 한 말인지 아세요?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랍니다. 못배운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난척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특별한 사연도 있기 때문이예요.
용줏골에 있을 때 본명은 김미순, 그곳에선 에밀리도 통하는 나의 단짝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진짜 일류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인텔리에 쭉 빠진 글래머였어요. 대학생일 때 미군 장교와
연애를 하다 갈라졌다는데 더 자세한 사연은 말을 안해 알 수 없었어요. 주량도 대단했는데
술이 취하면 영어로 워즈워즈나 롱펠로우의 시를 읊고, "시크리트 러브"나 "테네시 왈츠"를 부
르고 "생의 찬가"만은 꼭 불어로 불렀죠. 그리고 꼭 이말로 끝맺음을 했어요.
"야, 이년들아! 우리의 지금 처지가 아무리 좆같다고 해도 좀 참아 봐. 오스카 와일드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첫사랑이기를 바라고, 모든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기를 바란다고 ...... 네년들도 마지막 사랑만 잘 만나면 되는거야.
안그래? ...... 지금은 한갓 꿈이라든지 집에 가던 중 잠시 헤맸다고 생각하면 되는거야. 여자는
그렇게 마지막 사랑만 잘 잡으면 해피 앤드란 말야!"
그렇게 말했던 에밀리는 어느날 입에 거품을 잔득 품은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사망진단서에는
약물과용이라고 했지만 자실일수도 있겠죠. 마지막 사랑을 만나기에는 창창한 나이였는데 ......
하지만 그녀가 들려준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의 말은 정말 보편적인 진리를 갖고 있다고 있다
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런데 나는 바로 그 마지막 사랑을 첫사랑에게 받았으니 정말 뽐낼만 하죠?>
처음 검정볼펜으로 쓰여졌던 글씨는 만년필로, 다시 수성볼펜으로 바뀌기도 했다. 글씨체도 한동안은 또박또박 하다가 어느 대목은 비틀거리듯 흘려 쓴 것도 있다. 이 편지가 꽤 오랜 시간, 여러번에 걸쳐서 쓰여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글씨체의 변형에서는 그녀의 점점 소진되어가는 기력이 느껴졌다. 편지는 이제 마지막 한장이 남았다.
<말기암 환자에게 통증은 마치 남은 생명에 반비례 하는 것처럼 밀려 옵니다. 하지만 사그러
져 가는 나의 생명에, 당신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사랑이 정신적 안정이나 통증의 해소에 얼마
나 큰 역할을 하는지 몰라요. 의사가 "이제 진통제 투여를 늘려야겠다."고 하는 것을 몇차례
사양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학적 한계를 넘었는데 ......?" 라고 하더군요. 사랑의 치료
효과를 그 의사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나는 가끔 겁이 납니다. 벌써 두번이나 가볍기는 하지만 코우머, 즉 혼수상태를
겪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코우머 속에서 다시 눈도 뜨지 못하고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이 세상
을 하직하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그에 대비해 나는 틈만 나면 기도합니다. 기도의 주제중 하나가 바로 기도하면서 죽게 해 주
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리처드를 만날 것에 대해 나는 알말의 의구심도 갖고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그에게 닥아가고 싶거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편지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이 편지를 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신에게 받았고 또 그것에 감사하는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러나 기
력이 점점 떨어져 가며 사실 이 편지는 쓰다 중단하고, 또 다시 이어지기를 몇례나다 했답니다.
그렇기에 두서가 없는 점도 많겠지만 이제 거의 끝맺음을 하게 되니 그나마 안심이 되는군요.
사랑하는 영도씨, 부디 행복하세요. 특히 새로 만난 부인에게도 당신은 물론 잘 하겠지만, 더욱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먼 훗날 당신도 천국에 온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그럼 안녕. >
편지 말미에는 이라고 쓰인 영문의 추신이 이어졌다.
< 안녕하십니까? 어머니는 자신의 임종 후 이 편지를 귀하께 부칠 것을 내게 부탁하셨습니다.
오빠의 아내, 즉 어머니의 며느리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어를 모르는 내게 부탁하신
것은 그만큼 귀하가 특별해서겠죠. 우리 모두 그녀를 더 없이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그녀는 행
복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녀에게 특별한 귀하에게도 행복과 건강이 오래 하시기를 기원합
니다. 로즈마리 클루니>
그 마지막 장에 물방울이 떨어지며 글씨를 얼룩지게 했다. 나는 어느 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문자의 부음을 듣고서도 내 눈은 메말라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이제 영원히 헤어짐을 다시 확인하면서 처음 흘린 눈물이다. 뭉클하고 가슴에서 뭔가 치받는 느낌에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지금 더 실컷 울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역시 내 감정이나 눈은 너무 메말라 있었다.
그나마 눈물이 맺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다시 봉투에 접어 넣은 뒤 보관할 곳을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이 집에는 자물쇠가 있는 나만의 보관함이 없다. 스파이 영화처럼 책상 구석 어디에 테이프로 붙여 놓든지, 책장에서 앞으로 누구도 넘겨보지 않을 책갈피에 끼어 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연법칙대로라면 나는 아내나 자식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그후 그들이 내 유품을 챙기다 이 편지를 발견한다면 ...... 이제 누구에게도 혼란을 주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편지를 꺼내 꼼꼼히 읽었다. 이제는 문장의 흐르는 순서뿐 아니라 행간(行間)의 의미까지도 머리에 저장된 것 같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편지는 영혼의 속삭임처럼 내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다. 언제고 그녀를 떠 올리면 그 속삭임은 다시 내 심금을 울릴 것이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 편지에 불을 붙였다. 한장 한장이 불꽃을 피우다 재로 변하면서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나는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보낼 답장을 썼다. 전달할 방법도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학생들의 방학 때가 되면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여행을 가리라. 전에 한번 운을 띄우니 아내도 좋아 하는 눈치였다.
미국에 가면 이제 감정상으로는 그리 낮설지 않은 남동부의 세인트 빌 빌리지를 찾아 가리라. 아내와 같이 가도 좋고 혼자 가도 좋다. 그래서 나는 도리스 M 맥밀란의 무덤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마음속으로 써놓은 답장을 전달하리라.
<사랑하는 문자씨.
아직도 당신의 체취와 향기가 내게는 가득한데 당신은 이곳에 누워 있구려.
부디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인생을 궤뚫고 있다고 했지만 그런 당신을 만나고 그 생애의 일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나야말로 행운이며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구한 운명과 박복한 현실에서도 언제나 굳건히 일어서 나를 비롯한 주위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간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고 강하고 착하고 또 신비스런 여자였소.
특히 당신은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했으며 내 인생을 꽃 피게 했습니다. 20대
에도, 70대에도, 그리고 당신의 죽음 후에도 .....
그런데 당신이 나로 인해서 하며 자신을 세탁했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사실 당신은 애초에 천한 여인이었소.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세탁한 것이오.
그래서 당신의 신 앞에 설 때나 나를 만났을 때 이미 당신은 더 없이 깨끗하고 고결한 여인이
었습니다.
또 나의 첫사랑도 오문자씨 바로 당신입니다. 나는 단지 그것을 잊고 있었지만 그토록 순수
하고 열정적이며 달콤했던 사랑을 나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당신과의 그 첫사랑은
지금도 내 영혼을 쓰다듬고 나에게 비장의 보석이 되어 있답니다.
하지만 당신을 마지막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새 여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당신의 당부처럼 새 아내에게도 남편의 본분을 지켜야겠죠.
하지만 당신은 당초 사랑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고목에 새롭게 꽃을 피워 주었소. 그래서
내가 앞으로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대 역시 함께 하는 것이오. 문자씨는 내
영원한 사랑입니다. >
눈을 들어보니 태양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지만 아직 주위는 환했다.
그 환한 하늘에 별똥별이 꼬리를 그리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문자의 죽음과 연관된 특별한 징조나 상징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침 떨어지며 소멸되는 그 빛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우연 일 수도 있다.
인생도 저 드넓은 우주처럼 신비스럽고 또 새롭고 놀라운 일이나 특별한 우연도 항상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았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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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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